2011년 10월호

‘이명박-김정일 담판으로 최종 결정’ 시나리오 있다

북한 통과 가스관 추진 내막

  • 윤성학|대외경제정책연구원 연구위원 dima7@naver.com

    입력2011-09-19 16: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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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명박 대통령은 최근 중앙아시아 순방을 통해 한국-북한-러시아를 잇는 가스관 연결 사업 추진 의향을 나타냈다.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과 메드베데프 러시아 대통령도 이 사업에 의욕을 보이고 있다. 만약 실현된다면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한반도 정세에 일대 전환점이 될 것이 틀림없다. 국내에선 벌써 찬반 여론이 거세다. 국내의 몇 안 되는 러시아통이자 이 대통령의 중앙아시아 순방에 동행한 윤성학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연구위원(전 러시아 이메모연구소 연구원)이 남·북·러 3국의 가스관 사업 추진 내막을 전해왔다.(편집자 주)
    ‘이명박-김정일 담판으로 최종 결정’ 시나리오 있다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 연안 러스키섬의 가스관 매립공사. 남·북·러 가스관 연결사업은 블라디보스토그에서 북한 동해안을 거쳐 한국에 가스관을 잇는 사업이다.

    한반도의 정치경제 지형도를 바꿀 남·북·러 가스관 연결 사업이 그 어느 때보다 구체화되고 있다. 8월26일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과 메드베데프 러시아 대통령 간의 시베리아 울란우데 정상회담에서 이 문제가 공식 거론됐다. 두 사람 모두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이어 9월8일 이명박 대통령은 “생각보다 빠르게 논의가 진행될 것”이라고 힘을 실어주었다. 공교롭게도 이날 푸틴 러시아 총리는 한반도 북쪽의 사할린~하바로프스크~블라디보스토크를 잇는 가스관 1차 라인 개통식에 참석했다.

    한반도 정세 바꿀 사안

    남·북·러 가스관 프로젝트와 관련해 가장 이목을 끄는 것은 북한의 움직임이다. 북한은 지금까지 가스관이 북한 영토를 지나는 것에 대해 사실상 반대해왔는데 최근 태도가 급선회하고 있기 때문이다.

    북한은 천안함-연평도 사태 이후 한국에 대한 비난을 자제하면서 경제적 지원과 협력을 요청하고 있다. 한국, 미국, 일본이 대북 경제제재의 고삐를 늦추지 않는 상황에서 북한의 경제상황이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다. 중국의 원조 규모는 북한의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상황. 북한으로서는 한국의 지원과 경제협력을 이끌어낼 새로운 카드가 필요한 시점이다. 남·북·러 가스관 프로젝트는 구미가 당기는 돌파구인 셈이다. 러시아 방문기간 중 김 위원장을 수행했던 빅토르 이샤예프 러시아 극동연방관구 대통령 전권대표는 “김 위원장은 러시아와 남한이 천연가스 공급에 합의하면 가스관 건설을 위해 영토를 내줄 준비가 돼 있다”고 했다.

    세계 1위의 가스 보유국인 러시아는 동시베리아 극동 가스를 한국에 파는 구상을 해왔었다. 2007년 12월 산업에너지부의 ‘동부 천연가스 프로그램(Eastern Gas Program)’에서 처음으로 공식 제기됐다. 이 전략은 2030년까지 약 120.8Bcm의 천연가스를 동북아 국가에 판매하겠다는 계획의 일환이다. 러시아는 극동 가스의 최대 잠재 수요국가로, 지리적으로 가깝고 에너지 소비가 선진화된 한국을 꼽는다. 예를 들어 한국의 수많은 가구는 도시가스를 사용하지만 중국의 가구는 그렇지 않다.



    극동가스를 한국으로 보내기 위해선 세 가지 방법이 있다. 북한의 동해안 영토를 가로지르는 육상가스관 방식, 동해 해저에 부설하는 해저가스관 방식, 배를 이용한 해상운송 방식이 그것이다.

    ‘이명박-김정일 담판으로 최종 결정’ 시나리오 있다

    이명박 대통령.

    필자가 연구한 바로는 이 세 가지 방식 중 육상가스관의 경제적 효율성이 가장 높다. 이명박 대통령은 2008년 9월 러시아 순방 당시 2015년부터 매년 시베리아 천연가스 750만t을 30년 동안 들여오는 내용의 양해각서를 러시아와 체결하면서 그 방식으로 육상가스관을 최선으로 꼽았다.

    그러나 2008년의 양해각서는 구체적인 방식을 담고 있지 않았다. 영토를 내주어야 할 북한이 배제된 가운데 남북은 지난 몇 년 동안 파국적인 대결로 이 의제를 논의할 자리조차 갖지 못했다. 북한의 시각에선 지난 정권에서 합의된 ‘나진-핫산’ 철도 연결조차 제대로 추진되지 못하는 상황에서 가스관 연결은 실질적인 고려사항이 아니었다. 이명박 정부도 가스관 연결은 공급국이 할 일이라며 러시아에 미뤘다. 사업을 주도해야 할 러시아는 2008년 12월 글로벌 금융위기를 겪으면서 동북아에 관심을 둘 여유가 없었다.

    3년의 공백 기간을 보낸 뒤 2011년 8월부터 남·북·러 가스관 프로젝트가 다시 부상하고 있다. 남·북·러는 3년 전과는 완전히 다른 환경에 놓여 있다. 2008년 마지못해 한국과 합의하던 러시아가 가장 적극적이다. 남·북·러 가스관 추진을 위해 러시아는 대통령 친서를 김정일 위원장에게 직접 보내고 정상회담을 성사시켰다. 9월에는 이 프로젝트 실무기관인 가즈프롬 관계자가 한국을 방문하며 11월에는 이명박 대통령과 메드베데프 대통령의 정상회담이 예정돼 있다.

    러시아의 ‘중국 견제’ 맞물려

    러시아가 이 프로젝트를 서두르는 배경에는 동북아 지역에서의 영향력 위축에 대한 우려가 자리 잡고 있다. 러시아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로 성장률이 마이너스로 추락하고 이에 따라 야심 차게 준비하던 극동개발계획도 지지부진해지면서 동북아 지역에서 입지 상실의 위기를 맞았다. 이에 반해 중국은 북한에 대한 영향력을 나날이 확대하고 있다. 중국은 북한의 나진 선봉항 사용권을 획득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동해와 접하고 있는 러시아로서는 중국의 군함과 선박이 동해를 휘젓고 다니는 상황에까지 이르게 된 것은 여간 심각한 일이 아니다. 나진 선봉과 러시아의 연해주는 지척에 있고 연해주는 19세기까지만 해도 중국 영토였다.

    러시아는 남·북·러 가스관 건설 사업을 통해 북한에 대한 영향력을 확보하고 한국과의 교역 및 투자를 확대하며 나아가 중국에 대항해 동북아 내 영향력을 강화하려고 한다. 러시아는 2012년 9월 블라디보스토크 아태경제협력체(APEC) 회의 개최를 계기로 동북아에서 과거의 영화를 되찾고 싶어하는 것이다. 러시아 ‘프라우다’는 8월26일 9년 만의 김정일의 러시아 방문에 대해 ‘서방의 부러움을 살 만한 러시아의 성공적 외교’라고 보도했다. 여기에 러시아의 속내가 담겨 있다. 특히 남·북·러 가스관 추진 사업은 임기 말 외교적 성과를 내고자 하는 메드베데프 대통령의 의도도 강하게 담겨 있다.

    러시아가 남·북·러 가스관 사업을 추진하는 데엔 경제적 이익도 크게 작용한다. 가스 수입대국인 한국에 지속적으로 수출할 수만 있다면 큰돈이 들어온다. 2008년 합의된 연간 공급 물량 750만t은 금액으로는 연간 30억∼50억달러이며 30년 규모로는 900억∼1500억달러라는 천문학적인 액수다. 러시아는 동시베리아와 극동의 가스전 및 가스관을 건설하는 데 300억달러의 자금을 들여야 한다. 따라서 한국과 같은 안정적인 거대시장과의 장기공급계약이 없이는 건설 자체가 불가능하다는 이야기가 된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는 “러시아가 한국시장을 선점한다면 중국에 대한 가스 협상에서도 유리한 고지를 점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러시아는 한국 다음으로 중국과 일본 시장에 진출할 예정이다.

    러시아는 2012년부터 사할린1 가스전 물량을 연해주 최대 도시인 블라디보스토크에 공급할 예정이다. 한국으로의 수출방식 선택을 더 늦출 수 없는 상황이다. 해상운송이든 북한 통과이든 결정을 하고 투자를 단행해야 될 시점에 몰리고 있는 것이다. 러시아는 이번 북러 정상회담을 통해 육상 PNG(Pipeline Natural Gas) 방식으로 가스를 공급키로 결정했다. 사실상 북한 통과 방식을 선택한 것이다. 이 방식은 해상운송 LNG(Liquefied Natural Gas) 방식보다 훨씬 저렴하다. 건설 유지 관리 측면에서도 월등한 경제성과 안전성을 확보할 수 있다. 러시아가 이러한 결정을 한 또 다른 이유는 사할린과 야쿠츠크의 가스를 기왕 블라디보스토크까지 끌어오기로 한 마당에 수출을 위해 LNG 공장을 추가로 건설하는 부담을 지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LNG 공장 건설에는 무려 50억달러가 들어간다.

    北, 통과 수수료론 성 안차

    메드베데프 대통령의 남·북·러 가스관 사업에 북한이 호응한 것은 북한의 처지로서는 불가피한 측면이 없지 않다. 과거의 북한은 남·북·러 철도연결 사업도 마무리되지 않은 시점에서 이 제안이 너무 앞서간다고 보았다. 6자회담과 북미수교 등 북한의 핵심 과제가 이 사업에 가려지는 것을 원치 않았다. 그러나 금강산 관광 중단 등 일련의 북한 봉쇄와 긴장이 지속되자 북한은 가스관 프로젝트를 적극 고려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직면한 것이다.

    북한은 이 사업을 통해 경제적 실익과 동북아 힘의 균형을 원하고 있다. 연간 1억달러 이상의 통과 수수료는 이 극빈국에 큰 보탬이 되는 금액이다. 또한 중국에 지나치게 의존적이 된 상황이 북한으로서도 내심 불만이었는데 러시아를 끌어들임으로써 균형점을 찾을 수 있다고 본다. 나아가 한국이 참여한다면 남북 경제협력이 활성화되는 계기가 될 수 있다고 보는 것이다.

    8월31일 북한 조선중앙통신은 ‘일정에 오른 에네르기(에너지)공동계획’ 기사에서 “(가스)수송관 건설과 관련한 여러 방안들이 검토되었으나 조선을 경유하는 가스수송관 건설이 비용상 가장 합리적이라는 것이 증명되었다”고 주장하면서 “모든 당사자들(남·북·러)에게 이익이 된다”고 했다. 북한의 속내가 완전히 파악된 것은 아니지만 당분간 이 사업을 위한 협상 테이블에 참여할 것은 분명해 보인다.

    북한은 동해안 지역을 가스관 노선으로 개방하면서 통과 수수료만 희망하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통과 수수료와 함께 한국과 러시아, 심지어 중국에 다른 것을 요구할 것으로 예상된다. 러시아에 대해서는 가스관 연결을 대가로 방공망 강화를 위한 S-300 지대공미사일, 대공레이더, 항법시스템 등 첨단 무기 및 전력 지원을 요청할 것으로 보인다. 김정일의 부레야 수력발전소 방문이 이러한 희망을 표현한다. 한국에 대해선 가스관 연결 대가로 금강산 관광 재개와 같은 카드를 내밀 것으로 예상된다. 중국에 대해선 식량과 에너지를 추가 지원하고 후계체제를 인정해달라고 요구할 것으로 보인다.

    남·북·러 가스관 사업이 진척된다면 남북정상회담은 불가피하다. 남·북·러 중 한국 정상과 러시아 정상이 만났고 북한 정상과 러시아 정상이 만나 이 문제에 대해 합의한 바 있다. 마지막으로 한국 정상과 북한 정상이 만나 담판을 통해 최종 결정하는 시나리오가 불가피하다. 한국 처지에선 북한의 의도를 파악하기 위해서라도 남북정상회담이 필요하다.

    통일부 장관 교체, 가스관과 연관

    남·북·러 가스관 프로젝트에 한국 정부도 크게 기대하고 있다. 홍준표 한나라당 대표는 가스관 건설 사업이 남북관계의 획기적 전환점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도 “가스관은 한번 설치되면 쉽게 끊기 어렵다”고 피력하면서 긍정적 효과를 기대했다. 정부는 당장의 경제적 실익보다는 러시아를 매개로 한 남북관계의 새로운 돌파구 내지 남북경협사업으로 생각하고 있다. 대북 원칙론을 강조해온 통일부 장관의 교체도 이러한 맥락에서 파악될 수 있을 것이다.

    한국은 세계 2위의 LNG 수입국이며 앞으로 발전용 난방에서 가스 비중을 더 높여나갈 예정이다. 한국의 관점에서 가스관 사업이 한국에 경제적 이익을 주는지 여부는 러시아의 공급 가격, 북한의 통과 수수료 등이 나와봐야 구체적으로 평가될 수 있다. 그러나 멀리 중동에서 배로 LNG를 실어오는 것과, 지척인 러시아 극동에서 육로로 가스를 가져오는 것을 비교할 때 후자가 전자에 비해 운송비나 가스 가격이 훨씬 저렴할 것으로 예상할 수 있다. 한국가스공사와 러시아 가즈프롬이 공동으로 진행한 남·북·러 가스관 사업 타당성 검토 결과에 따르면 북한 육로통과 방식은 기존의 해운운송 방식보다 운송비를 67%나 절감할 수 있다.

    고비용 LNG에 100% 의존하는 것에서 상대적으로 값싼 대체재가 제공되는 것이므로 기형적인 소비구조를 개선하고 가스 가격을 내리는 효과도 있을 것이다. 또한 LNG 수송선 접안시설이나 가스 기화설비의 확충이 필요하지 않고 가스 공급국인 중동의 정세에도 상대적으로 영향을 덜 받는 장점이 있다.

    ‘이명박-김정일 담판으로 최종 결정’ 시나리오 있다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왼쪽)과 메드베데프 러시아 대통령은 8월24일 정상회담에서 가스관 연결에 합의했다.

    일본 원자력발전소 폭발 사고 이후 아시아 스폿 시장에서 LNG 가격은 20% 올랐다. 가스가 자원무기화 되는 상황에서 일단 파이프라인이 설치되면 초기 건설비용으로 인해 러시아는 한국으로 가스를 우선적으로 공급할 수밖에 없다. 이러한 점에서 남·북·러 가스관 연결 사업이 성사되면 한국에 에너지 공급의 경제성, 안정성을 높여주는 효과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 가스관 사업은 북한 리스크를 안고 있다. 여러 국내 언론은 남·북·러 가스관이 향후 북한의 인질이 될 수 있으며 약 1억달러에 달하는 통과수수료가 북한의 무기 개발에 사용돼 한국의 안보를 위협할 것이라고 주장한다. 우리 정부의 계획대로라면 북한을 경유해 한국으로 공급될 가스 규모는 한국 전체 가스 도입 물량 2580만t(2009년 기준)의 약 29%에 해당되며 주로 난방과 발전 원료로 사용된다.

    이와 비슷한 사례가 러시아 가스를 유럽으로 중계하는 우크라이나에서 자주 발생했다. 1991년 소련체제 붕괴 이후 우크라이나는 통과 수수료와 가격 문제를 들어 유럽으로 이어진 러시아 가스관 밸브를 세 번이나 잠갔다. 유럽행 러시아 가스의 약 90%는 우크라이나를 통과한다. 가스 생산국과 통과국이 소비국인 유럽 여러 나라를 인질로 게임을 벌였던 것이다. 지구상에서 가장 예측불가능한 나라 중 하나인 북한도 우크라이나와 같은 카드를 사용할 개연성이 없지 않다.

    그러나 이러한 우려가 이 사업 자체를 포기해야 할 정도로 심각한 수준이라고 보기는 힘들다. 기본적으로 북한과 우크라이나는 큰 차이점이 있다. 우크라이나는 러시아와 한 나라였다가 1991년 이후 독립국가로 분리되면서 의도하지 않게 유럽으로 연결되는 가스관을 영토 내에 두게 되었다. 이에 따라 러시아는 이 가스관에 대한 견제장치를 처음부터 갖지 못했다. 여기에다 우크라이나는 거대 가스저장시설을 유지함으로써 러시아로부터 가스를 공급받지 못하더라도 상당 기간 버틸 수 있었다.

    ‘북한의 가스 차단’ 심각한 일 아냐

    그러나 남·북·러 가스관은 처음부터 국제가스관으로 개통하게 된다. 통과국에 대한 수수료와 벌칙을 명확하게 규정할 수 있다. 북한이 임의로 가스관 밸브를 잠그면 통과 수수료의 상실은 물론 국제적 신뢰를 잃게 된다. 북한이 한국과의 경협에서 여러 억지를 부려왔지만 전통적 우방이자 강대국인 러시아가 공동 참여하는 사업에서 러시아의 자산인 가스에 대해서까지 상식에 어긋나는 행위를 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또한 북한이 가스를 잠그면 소비국인 한국은 러시아에 가스 대금을 지급하지 않게 된다. 이때 한국은 다소 비싸지만 스폿 물량을 구매하거나 중동산 가스 수입을 다시 늘리고 가스 저장소에 비축된 여유분을 사용하게 된다. 북한의 갑작스러운 가스 공급 중단에 대처하기 위해 가스저장소나 액화시설을 더 구축해 1~2년 정도 상시적인 여유분을 확보해둘 필요는 있을 것이다.

    결국 북한이 가스관 밸브를 잠그더라도 한국이 보는 피해는 그리 크지 않을 것이며 오히려 북한이 져야 하는 경제적 정치적 손실은 막대하다. 특히 러시아와의 가스 공급 계약에서 이 부분에 대해 사전에 분명히 해둔다면 북한 리스크는 그리 심각하지 않을 것이다.

    실제로 국제파이프라인 운영에서 우크라이나 사태는 극히 예외적인 것이다. 아제르바이잔에서 그루지야를 거쳐 터키로 연결되는 송유관의 경우 관련 국가들이 커다란 이익을 얻었다. 투르크메니스탄 남부 욜로탄 가스전에서 우즈베키스탄과 카자흐스탄을 거쳐 중국 신장성으로 연결되는 가스관 사업도 중계국들의 협조 속에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다. 국제가스관은 구축되는 것이 어렵지 일단 운영되기 시작하면 이익이 매우 크기 때문에 어떤 국가도 일방적으로 행동할 수 없다.

    남·북·러 가스관 연결사업과 관련한 또 다른 오해는 지금과 같은 최악의 남북 대치국면에서 이러한 초대형 남북경협 사업이 가능하겠느냐는 의구심이다. 남북관계가 개선되고 북핵 문제가 진전되어야 가스관사업도 가능하다는 논리다. 그러나 필자가 보기에 일괄타결과 같은 근본주의적 해결방식은 현실적으로 거의 불가능하다. 러시아의 브론초프 동방학연구소 소장은 “6자회담은 정치안보적인 것이고 가스관은 경제적인 것이다. 둘을 분리해 접근하면 일이 쉽게 진행되지만 둘을 연관시키면 장애를 만날 것이다. 궁극적으로 둘은 연관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서방은 가스관 연결에 따른 러시아의 부상(浮上)을 우려한다. 특히 미국은 남북 간의 대규모 프로젝트에 회의적이다. 교역 중단 조치를 해제하지 않은 채 가스관 사업을 추진하는 것은 모양이 이상하다고 본다. 이에 대해 한국 정부는 가스관 사업이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대북제재 결의 대상에 포함되지 않는다고 본다. 외교부 당국자는 “유엔 대북제재는 통상적인 경제 교류나 인도적 지원, 한반도 평화에 기여하는 사업 등을 예외로 인정하고 있다”면서 “가스관 사업이 WMD(대량살상무기) 개발과 직접적으로 관련이 없으면 유엔 제재 내용을 위배한다고 보기 힘들다”고 했다.

    남·북·러 가스관 연결사업은 다양한 정치적 의미를 가질 수밖에 없지만 사업 추진 과정에서 철저하게 경제성에 입각해 모든 문제를 바라보아야 한다. 만약 다른 의도나 요구가 끼어들게 되면 이 사업은 제대로 추진될 수 없다. 북한은 최소 1억달러의 통과료를 앉아서 거둘 수 있고 한국은 중동 가스 수입에 비해 최소 2억달러 이상의 경비 절감과 100년 이상의 매장량을 자랑하는 야쿠츠크 가스를 선점할 수 있다. 러시아는 한국이라는 거대시장을 고정고객으로 만들 수 있다. 이러한 상호 이익의 관점에서 진행될 때만 이 사업의 불확실성이 제거될 수 있는 것이다.

    남·북·러 가스관 사업과 관련해 일부 국내 언론은 북한에 현금이 아닌 현물로 통과료를 주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는 잘못된 발상이다. 북한은 가스를 통과시키는 대가로 수수료를 받을 정당한 권리가 있다. 가스나 전기, 다른 현물을 주는 식으로는 사업이 진척되기 힘들 것이다. 북한의 처지에서 연간 1억달러는 큰돈이지만 외부의 간섭에 대해 극도의 경계심을 갖고 있다. 영토의 일부를 내주고 거대한 인공 구조물에 의해 한국과 직접 연결되는 것은 북한으로서도 상당한 모험이 된다.

    협상과정에서 북한이 오히려 통과료에 해당하는 가격으로 가스 설비나 발전소, 철도의 건설을 요구할 수 있다.

    동해안의 천리장성

    중국은 북한의 경제위기를 틈타 나진 선봉에 교두보를 마련했다. 이런 와중에 남·북·러 가스관이 동해안을 따라 구축된다면 이 가스관은 중국의 동해 진출을 견제하는 천리장성이 된다. 따라서 중국은 가스관 사업을 남의 일인 양 여기지는 않을 것 같다. 그러나 러시아는 이 사업에서 가급적 중국을 배제할 것으로 예상된다. 가스관 사업을 통해 중국의 대(對) 북한 영향력 비중을 줄여나가는 것은 한국의 국익에도 합치한다. 국내의 일부 오피니언 리더들이 남·북·러 가스관 사업에 중국도 참여시켜 북한을 견제하자고 주장하는 것은 이런 관점에서 옳은 판단이 아니다. 가스관 사업이 한국에 안겨주는 정치적 이익을 스스로 줄이고 이 사업을 더욱 복잡하게 만들 뿐이다.

    남·북·러 가스관은 두만강 하구에서 휴전선까지 북한의 동해안을 1000㎞가까이 종단하게 된다. 가스관 건설 사업을 위해 도로 설비가 필수적인데 이 도로는 향후 한국의 동해안 7번 국도와 연결되며 남북철도 연결 건설 사업에도 활용될 수 있을 것이다. 확보된 도로를 통해 수많은 외부인이 들어가 가스관을 매설하고 가압설비와 송전시설 등 부대시설을 설치하게 된다. 이는 북한 사회에 큰 충격과 변화를 줄 수 있다. 지극히 제한적인 지역에만 국한된 개성공단, 금강산 관광, 경수로 공사와는 비교가 되지 않는다.

    북한영토 내 가스관 부설에는 2년 정도가 소요될 것이다. 건설비용은 40억∼50억달러로 추정되는데 도로와 전기 등 관련 인프라를 어떻게 구축할 것인지에 따라 비용은 상승할 수 있다. 한국 정부는 가스관 공사 및 가스 공급 전부를 러시아에 맡길 예정이다. 그러나 이렇게 할 경우 비용이 크게 상승할 가능성이 높다. 러시아 건설업체는 한국 건설업체에 비해 대체로 효율성이 크게 떨어지고 건설단가도 높다. 푸틴 정부하에서 의욕적으로 추진된 동시베리아-태평양 송유관은 예상비용보다 두 배나 폭등하고 완공도 2∼3년 늦어졌다. 북한은 러시아 영토 이외 지역이므로 비용 상승 요인이 더 크다고 볼 수 있다. 북한 내 가스관 공사비용을 나중에 가스 공급으로 정산하는 방식으로 한국 건설업체가 직접 시공하는 것이 훨씬 효율적이라고 할 수 있다.

    지금 한국 정부는 남·북·러 가스관 사업과 관련한 북한 리스크를 전부 러시아에 떠넘기는 대신 우리가 가격과 물량을 부담하는 방식으로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러시아가 공급자고 파는 쪽이니까 모든 책임이 러시아에 있다. 우리는 가스를 구입하면 된다”는 정부 관계자의 무책임한 발언도 있었다. 가스 공급자가 가스관을 책임지고 시공한다는 국제관례는 없다. 중앙아시아-중국 가스관은 소비국인 중국이 100% 투자해 진행됐다. 또한 북한이 가스관을 잠그거나 파괴함으로써 가스 공급에 차질이 빚어지게 되면 러시아가 대형 액화천연가스(LNG) 수송선을 통해 공급한다는 계약 방식을 추진 중인데 러시아가 여기에 최종적으로 동의할지는 분명치 않으며 동의할 경우에도 한국이 막대한 비용 부담을 짊어질 가능성이 높다.

    이 대통령의 냉철한 전략 필요

    북한 리스크가 크다고 하더라도 경제성 없는 가스 공급이 되어서는 안 된다. 러시아가 가스관 사업을 좌지우지하도록 하는 것도 통일 등 한반도의 미래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냉전의 와중에도 소련과 유럽은 국제파이프라인을 구축해 윈윈 구도를 만들었다. 국제파이프라인은 결코 어떤 한 국가가 마음대로 휘두를 수 있는 위험한 장난감이 아니다. 한국이 러시아 가스의 북한 통과 책임을 러시아에만 전적으로 맡기는 대신 경제적인 부분에서 러시아에 양보해야 한다. 리스크를 전혀 지지 않겠다는 자세는 사업의 실익을 거의 가져오지 못하거나 심각한 부작용을 초래한다. 이는 비즈니스의 원칙이다. 남과 북의 협력도 병행하는 방향으로 추진하는 것이 이 사업의 정치적 경제적 실리를 극대화하는 방법일 것이다.

    러시아 정부의 동부가스화 사업 계획에 따르면 러시아 가스는 늦어도 2017년 한국에 들어올 것으로 예상된다. 경제성 있는 대체에너지가 개발되지 않은 상황에서 러시아 가스는 한국의 에너지 안보에 크게 기여할 수 있다. 남북이 가스관으로 연결된 뒤에는 보다 더 수월하게 철도로, 도로로 연결될 수 있을 것이다. 북한 측은 남북 간 가스관 연결뿐 아니라 철도 연결에도 관심을 표하고 있다. 송현철 북한 사회과학연구원 연구원은 최근 중국 옌지에서 열린 ‘2011 두만강 학술포럼’ 주제 발표 자료에서 “한반도와 중국, 러시아가 철도로 연결되면 수심 13m 이상으로 대형 상선이 접근할 수 있는 동북아시아의 유일한 항구인 부산으로 철도를 타고 중국 만주와 러시아 연해주의 물동량이 집중해 큰 이익을 볼 것”이라고 언급한 바 있다.

    남·북·러 가스관 사업은 남북 간 긴장 완화와 평화적 교류에 실질적으로 기여할 수 있다. 이명박 대통령이 냉철한 전략과 강한 추진력으로 한국의 이익을 극대화하고 리스크를 최소화하는 방향으로 이 사업을 성사시킨다면 이는 서울시장 시절의 청계천 복원과 같은 일이자 한반도의 전환점으로 평가될 수도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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