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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adership in Sports ⑥

제리 로이스터 전 롯데 자이언츠 감독

‘No Fear’정신으로 꼴찌 팀 패배주의를 한 방에 날린 지도자

  • 하정민│동아일보 경제부 기자 dew@donga.com

제리 로이스터 전 롯데 자이언츠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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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7년 말 한국 야구에 제리 로이스터라는 외국인 감독이 부임했다. 그는 7년간 부진한 성적을 거둬 패배주의에 찌든 롯데 자이언츠를 맡아 3년 연속 4강에 올려놓는 기적을 연출했다. 그는 선수가 가진 단점을 보완하기보다는 장점을 최대한 활용하고, 번트를 비롯한 감독의 작전에 의존하는 세밀한 야구 대신 장타를 선호하는 메이저리그 식 '빅볼'을 선보이며 구도(球都) 부산 팬들의 열광적인 지지를 이끌어냈다. 특히 로이스터 감독은 자신의 입지를 위해 선수 혹사도 마다하지 않는 일부 지도자와 달리 당장의 성적보다는 선수들의 미래를 더 중시하는 선수단 운용을 통해 바람직한 스포츠 지도자의 상(像)을 재정립했다.
제리 로이스터 전 롯데 자이언츠 감독
‘8888577’ 야구팬이라면 누구나 다 아는 유명한 비밀번호다. 이는 2001년부터 2007년까지 롯데 자이언츠 야구단이 거둔 시즌 순위를 나열한 숫자다. 4년 연속 꼴찌, 7년 연속 포스트 시즌 탈락도 유례없지만 2002년 성적은 치욕에 가깝다. 2002년 롯데는 시즌 동안 35승 1무 97패라는 초라한 성적을 거뒀다. 승률은 0.265였다. 8개 구단에 불과한 한국 야구계에서는 일반적으로 꼴찌 팀도 4할을 웃도는 승률을 거둔다. 거기서 조금 더 힘을 내 반타작만 하면 4개 팀이 겨루는 포스트 시즌에 진출할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 승률 2할은 프로 팀이라는 이름을 붙이기에 부끄러운 수준이 아닐 수 없다.

오랫동안 부진한 성적에 롯데 선수들은 헤어날 수 없는 패배주의에 빠졌다. 초반부터 앞서지 못하면 역전 가능성을 완전히 접어둔 채 그냥 맥없이 포기해버렸다. 선수단은 물론 팬들마저 분노의 감정을 넘어 절망과 좌절이 섞인 체념으로 하루하루를 보내야 했다. 한국 야구팬 중 가장 열정적이고 때로는 극성맞다는 평가를 받는 롯데 자이언츠의 연고지 부산 팬들은 급기야 선수단의 각성을 촉구하며 ‘야구장 안 가기 운동’이라는 극단적인 행위까지 벌였다. 당시 부산 사직야구장에는 “너희가 응원해라. 야구는 차라리 우리가 할게”라며 선수단의 부진한 성적을 질타하는 문구의 플래카드가 걸렸다. 경기에 참여하는 선수단 인원보다 야구를 보러 온 관중 수가 더 적은 웃지 못할 광경도 벌어졌다.

하지만 지난 4년간 롯데 자이언츠는 완전히 다른 팀으로 변신했다. 30년 한국 프로야구 역사상 최초의 외국인 사령탑이었던 제리 로이스터(Jeron Kennis Royster·59) 덕분이다. 로이스터 감독은 부임 첫해에 꼴찌 이미지가 강했던 롯데를 단숨에 시즌 3위로 올려놨다. 반짝 성과가 아니냐는 일각의 시선이 있었지만 롯데의 돌풍은 2009년과 2010년에도 이어졌다. 시즌 초 부진에 시달리며 꼴찌를 면치 못했지만, 6월 이후 무서운 상승세를 발휘하며 4위로 시즌을 마감했다. 3년 연속 4강에 진출한 건 롯데 자이언츠 구단 역사상 최초였다.

로이스터 감독이 롯데에 부임해서 가장 먼저 한 일은 덕 아웃 한구석의 화이트보드에 ‘No Fear(노 피어·두려움은 없다)’라는 문구를 써놓는 것이었다. 이 ‘노 피어’ 정신은 꼴찌 팀인 롯데가 단숨에 강팀으로 변모한 원동력이자, 로이스터 감독이 역대 롯데 감독 중 팬으로부터 가장 사랑받은 감독이 된 이유다. 그는 ‘노 피어’라는 단어를 통해 선수단 전체에 만연해 있는 패배주의를 걷어내려 했다.

그는 항상 선수들에게 ‘롯데는 강팀이며 실패를 두려워하지 말라’면서 자신감을 심어줬다. 선수를 엄격히 훈육하고 조련한다는 이미지가 강한 국내 지도자들과 달리, 그는 선수들이 자신의 역량을 발휘할 수 있도록 보조하는 역할에 주력했다. 선수들의 개별 훈련이나 게임 운영에도 크게 간섭하지 않고 선수들을 완전히 믿고 맡겼다. 물론 무한한 자유에는 그에 걸맞은 책임이 따르긴 했지만 그는 야구 감독이 디렉터(Director)가 아니라 매니저(Manager)임을 온몸으로 보여준 최초의 지도자였다.

로이스터는 누구인가

로이스터는 1952년 미국 캘리포니아주 새크라멘토에서 태어났다. 어릴 때부터 야구를 좋아했던 그는 1973년 21세의 나이로 메이저리그 서부 지구의 명문 팀인 LA 다저스와 입단 계약을 맺었다. 선수 시절 주 포지션은 3루수였다. 선수 로이스터는 그다지 두각을 나타내지 못했다. 15년간 메이저리그에서 그가 거둔 성적은 타율 2할4푼9리, 홈런 40개였다. 결국 애틀랜타 브레이브스, 샌디에이고 파드리스, 시카고 화이트삭스, 뉴욕 양키스 등을 전전하다 1988년 은퇴했다.

로이스터는 1999년 마이너리그에 속한 몬트리올 엑스포스에서 수비·주루 코치를 맡으며 야구 지도자로서의 인생을 시작했다. 2000년부터 2001년까지 메이저리그에 소속된 밀워키 브루어스의 타격 코치를 지낸 그는 이듬해인 2002년에는 밀워키 브루어스의 감독으로 발탁됐다. 하지만 그해 밀워키 브루어스는 53승 94패의 부진한 성적을 기록했다. 결국 그는 1년 만에 성적 부진으로 해고당했다. 2003년 이후에는 LA 다저스 마이너리그 팀의 수비 코디네이터, LA 다저스 트리플A팀의 감독 등을 지냈다.

로이스터는 2007년 말 롯데 자이언츠의 감독으로 전격 부임했다. 당시 그를 발탁한 사람은 신동빈 롯데 자이언츠 구단주였다. 7년간의 기나긴 암흑기 동안 롯데는 여러 명의 지도자와 만났지만 어떤 지도자도 성과를 내지 못했다. 암흑기 초기인 2001년에 롯데를 맡았던 고(故) 김명성 롯데 감독은 2001년 7월 순위 싸움으로 인한 스트레스와 과로 때문에 심장마비로 사망했다. 이에 한국 야구 역사상 유일한 4할 타자로 화려한 선수 커리어를 갖고 있는 백인천 감독을 영입했지만 그는 감독으로서 최악에 가까운 모습을 보이고 퇴출당했다. 롯데는 팀 프랜차이즈 출신인 양상문 코치를 감독으로 승격시켰지만 그 역시 포스트 시즌 진출에는 실패했다.

양 감독의 퇴출 후 2006년 롯데 감독이 된 사람은 강병철 감독이었다. 그는 1984~86년, 1991~93년 롯데의 사령탑을 지내며 재임 기간 롯데를 두 번이나 한국시리즈 정상에 올려놓았다. 하지만 베테랑 강 감독마저 2년 연속 7위를 기록하는 데 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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