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3월호

인터뷰

‘번역청을 설립하라’ 박상익 우석대 교수

“모국어 망치는 대열에 서길 거부한다”

  • 입력2018-03-04 09: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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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실패 뻔한’ 번역청 설립 국민청원운동 나선 역사학자

    • 한글의 역사는 길어야 100년… 역사적 허위의식 버려야

    • 미국 유학파가 주류인 학계가 문제…“번역을 연구 실적에 포함시켜라”

    • 인공지능이 번역 다 한다? “한글 번역 풍부해야 정교한 자동 번역 가능”

    [조영철 기자]

    [조영철 기자]

    책이 팔리지 않는 세상이다. ‘단군 이래 최대 불황’ ‘출판 경기가 바닥을 뚫고 지하로 내려갔다’는 말이 출판계에 회자된 지 10년 가까이 됐다. 지난해 국민 1인당 연평균 독서량은 9.5권. ‘독서인구’ 1인당 평균 독서권수도 연 17.3권에 그친다. 출판계 불황은 필연이다. ‘책의 시대’는 종언을 고한 것인가. 

    이러한 시대에 152쪽짜리 작은 문고판 책 한 권이 잔잔한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 1월 출간된 ‘번역청을 설립하라’(유유刊). 책 출간과 동시에 청와대 국민소통 광장에서는 책 제목과 같은 ‘번역청을 설립하라’는 국민청원운동이 개시됐다. 2월 7일 종료된 이 청원에는 9417명이 동참했다. 

    책을 펴내고 번역청 설립 운동을 주창한 이는 박상익(64) 우석대 역사교육과 교수다. 그는 30년간 저술·번역 활동을 통해 ‘한글 콘텐츠’ 확충에 매진해 왔다. 그간 펴낸 저서와 역서는 총 26권에 달한다. 그는 ‘반체제’ 지식인으로 통한다. 타성에 젖어 틀 안에 안주하는 학계 풍토에 반기를 들어온 까닭이다. 

    박 교수가 번역 문제를 들고 나온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2006년 ‘번역은 반역인가’란 책으로 우리 사회에 도발적인 화두(話頭)를 던졌다. 그 후 12년. 상황은 더 나빠졌다. 책이 팔리지 않는데 번역이 더 나은 대접을 받을 리 없다. 한글 콘텐츠 확충의 중요성을 역설하는 그를 만났다. 

    왜 ‘번역청’을 설립해야 합니까. 

    “번역을 시장에만 맡겨둬서는 손쓸 수 없는 상황에 이르렀기 때문입니다. 한국의 출판 및 번역 시장은 죽었습니다. 일본의 출판 시장은 한국의 10 배 정도 됩니다. 책을 통한 지식 생산-재생산의 ‘선순환’ 구조가 확립돼 있습니다. 책에서 인용한 최재천 이화여대 석좌교수의 이야기를 봅시다. 그와 같은 분야를 연구하는 하세가와 마리코(長谷川眞理子) 와세다대 교수가 교양서 두 권의 인세로 도쿄의 아파트를 구입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베스트셀러 작가인 최 교수의 경우엔 인세가 지인들에게 밥을 한두 번 사면 없어지는 수준이라고 해요.

    학문 못 하는 반쪽짜리 ‘한글’

    이런 상황이기에 출판·번역 분야에 정부가 개입해야 합니다. 철도, 도로, 항만처럼 번역도 사회간접자본(SOC)이라는 발상의 대전환이 필요합니다. 우리도 한글 콘텐츠만 읽고서도 노벨상을 받을 수 있는 학문적 수준에 도달한다는 원대한 비전을 가져야 해요. 일본은 19세기 말 메이지(明治)유신 무렵 번역국을 두고 정부 차원에서 서양 고전 수만 종을 번역했습니다. 유럽은 그보다 앞서 16,17세기 각국 정부 주도로 그리스어, 라틴어 문헌을 각국어로 옮겼어요. 

    한국은 이른바 고전 반열에 오른 책 중에도 번역되지 않은 책이 부지기수입니다. 부끄러운 일이죠. 훗날 후손들에게 ‘못난 조상’이라 손가락질받지 않기 위해서라도 지금부터라도 대오 각성해야 합니다. 지금 시작해 빨라야 한 세기가 지나 열매를 볼 수 있어요.” 

    박 교수의 말대로 일본은 ‘탈아입구(脫亞入歐)’를 지향한 메이지유신을 전후해 국가 주도로 대대적인 번역 사업을 벌였다. 도쿠가와(德川) 막부 시대 난학(蘭學)을 맹아(萌芽)로 한 번역 사업은 일본 근대화의 근본 힘으로 작용했다. 마루야마 마사오(丸山眞男)·가토 슈이치(加藤周一)가 쓴 ‘번역과 일본의 근대’에는 당시 일본 지식인들이 낯선 서구 문물을 받아들이고 일본적 개념으로 재정립해 일본화한 과정이 묘사돼 있다. 이들은 번역이란 단순 어학 차원의 문제가 아닌, 언어로 된 문화를 주체적으로 수용하는 과정이라는 점 또한 환기시킨다. 

    일본에 비춰볼 때 한국은 ‘근대국가’ 반열에 들지 못했다는 것인가요. 

    “그렇다고 할 수 있어요. 한국의 역사는 단군왕검부터 헤아리면 5000년, 실증 사학론으로 접근해도 2000년은 됩니다. 문제는 한국의 문자 역사도 그만큼 된다고 여기는 겁니다. 엄청난 착각이에요. ‘역사만큼 우리의 문자 역사도 장구하다’는 허위의식에 빠져 있는 겁니다. 

    ‘한글’에만 국한해보면 우리의 문자 역사는 100년도 채 안 됩니다. 세종대왕이 훈민정음을 창제·반포했지만, 20세기 초까지 한문을 사용해왔습니다. 이후 일제강점기에는 일본어가 한문의 자리를 차지합니다. 광복 이듬해인 1946년 성인 문맹률이 77%였습니다. 다섯 중 한 명만 한글을 읽을 수 있었던 셈입니다. 1970년대 들어서야 문맹률이 0%에 가까워졌습니다. 한글이 중심이 된 문자 생활의 역사가 반세기 남짓, 길게 봐야 1세기가 안 됩니다. 아프리카 신생국과 다를 바 없는 수준이에요. 

    한편 대학 교육을 받은 사람도 100년 전 조상들이 쓴 글을 해독하지 못합니다. 우리가 번역을 해야 하는 이유입니다. 한문, 옛 한글 텍스트를 현대 한국어로 옮겨 읽을 수 있어야 합니다. 또 우리 것만으로는 부족하니 선진국의 학문과 지식을 우리말로 번역해야 합니다. 이렇게 해서 한글 콘텐츠를 풍부하게 해야 합니다.” 

    한글은 반쪽이다? 

    “한글이 일상의 언어는 될 수 있지만, 학문은 할 수 없는 언어이기 때문에 저는 한글을 ‘반쪽짜리’라고 말합니다. 한글 콘텐츠만 가지고는 석사 논문도 제대로 쓸 수가 없어요. 우리말과 글을 갈고닦고 나아가 한글 콘텐츠를 확충해야 하는데, 하지 않았습니다. 오랫동안 한글을 방기(放棄)해온 겁니다. 모국어에 못할 짓을 하면서도 이조차 깨닫지 못하고 있어요.”

    우리가 아무리 못났어도

    번역청 설립 운동이 성공할까요? 

    “잘 안 될 것이라 봐요. 서명한 사람도 20만 명에 턱없이 못 미치죠. 이게 한국 사회의 수준입니다. 정치적 이슈도 아니고, 제가 대단한 존재도 아닌데 성사되겠습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가 이렇게 외치는 것은 ‘역사적 알리바이’를 남기고 싶어서입니다. 후손들이 모국어 콘텐츠 발전의 중요성을 역설한 사람이 있긴 있었다는 것을 알게 하고 싶어요. 제 주장이 현재는 공허한 메아리가 될지라도 후과(後果)에 대한 책임은 제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은 이들에게 있다고도 말하고 싶습니다.” 

    그는 “번역청이 설립돼도 문제”라고도 했다. 염불(저술·번역)보다 잿밥(연구비)에 눈먼 학자들을 염려해서다. 이는 ‘신동아’ 1월호가 공개한 ‘이국종 비망록’의 내용과 일맥상통한다. 이국종 아주대 교수는 “학회 장사꾼들과 예산 따먹기 프로들로 인해 중증외상센터 관련 예산이 증액돼도 막상 현장에는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격정적으로 토로했다. 

    박 교수는 책의 마지막 글 ‘역사적 알리바이 만들기’를 이렇게 마무리한다. 


    [조영철 기자]

    [조영철 기자]

    적어도 이 시대에 모국어를 저주하고 망치는 자들의 대열에 서기를 거부한 사람이 있었다는 물증 하나는 후대에 남길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우리가 아무리 못났어도 100년 뒤 후손들에게 손가락질당하는 꼴은 면해야 할 것 아닌가. 어쭙잖지만 이것이 내가 생각하는 역사의식이다.


    어느 곳에서든지 당신들을 반갑게 맞이하지 않고,
    당신들 말을 듣지도 아니하거든,
    거기서 나갈 때에 발바닥의 먼지를 떨어버려 그들에게 증거를 삼으라.
    - ‘신약성서’ 마르코(마가) 복음 6장 11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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