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이리의 중심 갈대광장 바로 앞에 있는 노랑미술관 전경. ‘ART&PLAY’라고 쓰인 조형물이 시선을 붙든다. [홍중식 기자]
갈대광장에서 건너다본 갤러리 MOA(오른쪽). 제27회 한국건축가협회상, ‘죽기 전에 보아야 할 세계 건축 1001개’(2009) 등에 선정됐다. [홍중식 기자]
1998년 2월 이들이 마련한 ‘서화촌(書畵村)건설위원회 창립총회’가 오늘날 헤이리의 출발점이 됐다. 이정호 헤이리 이사장•한향림 ‘한향림옹기박물관장’ 부부 등 출판 회화 도예 건축 사진 등 여러 분야에서 활동하는 회원들은 이듬해 북한이 건너다 보이는 파주 통일동산 근처 49만 5800m²(약 15만 평)를 사들였다. 경계의 3분의 1 정도가 묘지에 접한, 사실상 버려져 있던 땅이다. 그곳이 지금은 구릉과 개천, 각종 조형물과 나지막한 건물들이 조화롭게 어울리는 문화예술 공간이 됐다. 헤이리라는 이름은 마을 조성이 본격화한 뒤 ‘헤헤이 헤, 헤이리…’라는 소리가 담겨 있는 파주 농요에서 가져와 붙인 것이다.
산책로 ‘마음에 닿길’ 풍경. 길가 조형물에 읽는 이의 ‘마음에 와닿을’ 만한 아름다운 문장들이 적혀 있다. [홍중식 기자]
자연과 인공물이 조화롭게 어우러진 헤이리풍경. [홍중식 기자]
포레스타 북카페, 북하우스 서점 등이 모여 있는 한길북하우스. 정면에 ‘The Sacred And The Profane’(성과 속)이라고 쓰인 조형물이 서 있다. [홍중식 기자]
헤이리 조성에 참여한 건축가들은 다른 건물과의 어울림을 고려해 집을 설계했고, 입주민들은 자연의 원형을 유지하고자 경사지를 살리고, 늪을 보존했다. 자동차가 질주하지 않도록 길은 곡선으로 내고, 도로는 벽돌로 덮었다. 지금도 헤이리 마을의 길은 아스팔트에 뒤덮인 대도시 길과 달리 빗물이 스미고, 틈새에서 싹이 돋아나는 생태로다.
때때로 현재의 헤이리에 대해 ‘상업적으로 변질됐다’고 비판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방문객이 많아지고, 그들을 대상으로 한 상행위가 늘어나면서 정작 문화와 예술을 찾아보기 힘든 공간이 됐다는 지적이다. 그러나 여전히 헤이리는 ‘서화촌’을 꿈꾸던 예술가들의 삶터이자 꿈터다. 초기 조합원 중 상당수가 헤이리 마을 안에서 일상생활과 창작활동을 이어가고 있기도 하다.
아트센터 화이트블럭’ 내부. 각기 다른 형태를 한 전시실, 거대한 창을 통해 내다보이는 헤이리의 자연 풍광 등이 조화롭게 어우러진다. [홍중식 기자]
6개의 대형 전시실에서 다양한 현대미술을 소개하는 ‘아트센터 화이트블럭’. 2011년 미국건축가협회 건축디자인상, 2013년 제1회 파주시 건축문화상 등을 받았다. [홍중식 기자]
한길북하우스 내 포레스타 북카페. 이용자들이 자유롭게 펼쳐 읽을 수 있도록 벽면에 가득 꽂혀 있는 책은 ‘마음의 양식’이면서 동시에 그 자체로 멋진 예술품이다. [홍중식 기자]
상당수 공간이 관람료를 받는다. 그곳을 짓고 가꾸고 운영하는 이가 개인이기 때문이다. ‘가게’에 지불할 비용을 문화 공간에서 사용하면, 상업시설 천지로 보이던 헤이리의 다른 매력이 당신 앞에 펼쳐질 것이다.
선사시대 동굴벽화부터 모네•르누아르•고흐 등 근현대 화가의 작품까지 두루 감상하며 다양한 체험 활동을 할 수 있는 노랑미술관. [홍중식 기자]
조선 후기부터 1950년대까지 제작·사용된 질그릇과 푸레독(유약이나 잿물 없이 구워낸 옹기) 등을 감상할 수 있는 한향림옹기박물관. [홍중식 기자]
근현대 한국의 정치, 문화, 사회상을 각종 설치물과 시청각 자료를 통해 접할 수 있는 한국근현대사박물관. [홍중식 기자]
1970~80년대 많은 가정에 있던 ‘못난이 인형’ 등 다양한 추억의 물건을 전시하는 옛날물건박물관. [홍중식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