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3월호

집중분석 | ‘직장갑질119’로 본 직장갑질 백태 |

“해고할지 감봉할지 너희가 정해라…‘죄 없다’ 하면 전 직원 임금 삭감”

  • | 최호열 기자 honeypapa@donga.com

    입력2018-03-01 09: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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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을’인 내 삶 안 바뀌면 대통령 탄핵이 뭔 의미”

    • 김장, 결혼식 뒤치다꺼리…직원인지 하인인지

    • 노동부, 국가인권위원회에 갑질 제보자는 귀찮은 존재?

    • 회식 후 노래방 성추행…문제 제기하면 인사 불이익

    “그만두겠다니까 그동안 휴가 쓴 거 돈으로 내고 나가래요.” 

    “센터장이 대학에 강의를 나가는데, 강의 수업 준비부터 시험 채점, 성적 입력까지 직원들에게 다 시켜요. 근무 시간엔 센터 업무 보느라 퇴근 후 이 일을 해야 합니다. 비정규직이라 싫다는 말도 못 하고….” 

    “5년 전 희망퇴직을 권유받고 이를 거부하자 징계위원회에 회부해 해고했습니다. 소송을 거쳐 복직했지만 회사는 기획 파트에서 일하던 저를 공장 엔지니어링 부서로 전출시킨 후 아무 일도 주지 않고 있습니다. 스트레스로 몸무게가 20kg이나 빠졌습니다.” 

    ‘직장갑질119’에 접수된 사연들이다. 간호사들에게 선정적인 의상과 춤을 강요한 한림성심병원의 ‘갑질’을 폭로해 우리 사회에 직장 갑질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워준 ‘직장갑질119’엔 카카오톡 오픈채팅방(gabjil119.com), e메일(gabjil119@gmail.com), 페이스북, 밴드 등으로 하루 평균 100건이 넘는 제보가 쏟아지고 있다. 

    ‘직장갑질119’는 우리 사회에 만연한 직장 갑질 문제를 해결해보자며 ‘비정규직 없는 세상 만들기’ 등 시민단체와 변호사, 노무사 등 241명이 참여해 만든 조직이다. 박점규 직장갑질119 운영위원은 “지난 촛불 정국 때 한 청년이 ‘나는 최저임금을 받는 전기공이다. 내 삶이 바뀌지 않는다면 박근혜 정권이 탄핵된다고 해서 무슨 의미가 있는지 모르겠다’고 말하는 것을 보며 이 일을 구상했다”고 말한다.



    ‘을’들의 해방구

    직장 갑질에 고통받는 직장인 ‘을’들의 자화상. [직장갑질119 제공]

    직장 갑질에 고통받는 직장인 ‘을’들의 자화상. [직장갑질119 제공]

    1987년 노동자대투쟁 당시 현대자동차 노조가 내건 요구가 ‘두발자율화’와 ‘출근시간에 지각했다고 조인트까지 마라’였다. 같은 해 대통령 직선제를 쟁취한 후 우리 사회는 대통령 탄핵이 이뤄질 정도로 ‘민주주의’가 성숙했는데, 직장은 왜 그대로일까. 

    박점규 운영위원은 “어용노조라도 있는 곳은 갑질이 쉽지 않다. 우리나라는 노조 조직률이 100명 이상 300명 이하 사업장은 15%, 30명 이상 100명 미만 사업장은 3.5%, 30명 미만 사업장은 0.2%에 불과하다”고 말한다. 노조가 없는 직장에 다니거나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갑질을 당해도 호소할 곳이 마땅치 않다. 이런 상황에서 직장갑질119는 갑질에 시달리는 ‘을’들의 해방구가 되고 있다. 이곳에 제보된 갑질 백태를 살펴보았다.
     
    직장갑질119에 들어오는 ‘을’들은 닉네임부터 다르다. ‘당한 자’ ‘을도 사람’ ‘부장살의’ ‘회사쭈구리’ ‘돈떼먹지마라’ ‘디자인 노비’ ‘을오브을’ 등 자신들이 처한 상황에 대한 분노를 반영한 ‘웃픈’ 이름이 많다. 

    시간이 지나면서 제보 열기가 식지 않았을까 했는데,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공개 카톡방은 새로 입장하는 게 불가능할 정도로 수용인원 1000명이 꽉 찼다. e메일, 밴드 등을 통한 제보도 늘고 있다. 

    처음부터 갑질 제보가 활발했던 것은 아니다. 현직에 있으면서 자신을 드러내고 제보하는 게 쉽지 않기 때문이다. 직장 갑질 실태를 처음으로 사회 이슈화한 한림성심병원 간호사들도 처음엔 갑질을 토로할 뿐 나서기를 꺼렸다. 하지만 운영위원들 설득으로 하나둘 용기를 내면서 놀라운 결과로 이어졌다. 한림성심병원의 갑질은 단순히 선정적인 춤 강요만이 아니었다. 새벽 출근 강요는 물론 시간 외 수당을 미지급하기 일쑤였다. 비번인 날에도 출근을 강요하고, 캠페인 참여라는 미명으로 병원 영업까지 강요했다는 제보가 이어졌다. 

    다른 병원에서도 비슷한 제보가 이어졌다. A병원에서는 부서별로 주차 관리를 시킨다, 병동에서 체온계 같은 의료기구가 분실되면 간호사가 개인 돈으로 채워 넣어야 했다는 제보가 올라왔다. B병원에서는 직원들에게 특정 물품을 강매한다는 제보도 올라왔다. 

    과거 문제가 되었던, 간호사들이 동시에 임신하지 않도록 순번을 정해서 한다는 이른바 ‘임신순번제’도 여전하다는 글이 여럿 올라왔다. 한 간호사는 “동시에 두 명이 임신하면 부서 분위기는 살얼음판이 된다”며 “육아휴직은 있을 수 없는 일이고, 임신을 확인하면 가장 먼저 할 일이 ‘임신을 해도 나이트(야간) 근무를 하겠다’는 각서에 사인하는 것이었다”고 토로했다.

    “회사에 불만 있느냐”

    대기업 계열사인 한 버스회사는 서류-면접-인성검사에 합격한 사람들에 대해 7주간 합숙교육을 하는데, 이게 신입교육이 아니다. 여기서도 탈락을 시킨다.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합숙교육에 온 합격자들로서는 황당할 따름이다. 더 황당한 건 합숙훈련이 사실상 군대식이라는 점이다. 운동장에 집합시킨 후 교관들이 반말을 하며 ‘앞으로 굴러’ ‘뒤로 굴러’를 시키는가 하면 폭행을 가하기도 했다. 제보자는 맞아서 병원 치료까지 받았다고 한다. 영화 ‘1987’에서나 나올 법한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한 생활가전 회사는 수도권지국 직원 210여 명 가운데 70% 이상이 마라톤 동호회 회원이다. 매년 5회 이상 마라톤대회에 참가하고, 자비로 참가비와 동계훈련 합숙비를 해결했다. 가입하지 않은 직원은 압박을 받기 때문에 억지로 가입할 수밖에 없고, 본사 임원들이 SNS 단톡방에 들어와 연습 상황을 감시했기 때문에 영하 12도 강추위에도, 장맛비와 천둥이 몰아쳐도 야외로 연습을 나가야 했다. 

    직원을 하인 부리듯 하는 갑질 사례도 다양하다. 한 병원 직원은 “병원장 아들 결혼식에 직원을 조직적으로 동원해 안내·주차 관리·화환 관리·VIP 안내·축하금 명부 작성을 시켰다”며 “심지어 결혼식이 끝난 후 비용을 정산해서 엑셀로 출력, 신혼집에 갖다 주라고 했다”고 폭로했다. 당연히 별도 수당을 주지 않았다. 

    김장을 강요한다는 제보도 많다. 한 병원은 해마다 배추 1만 포기를 김장하는데 언제나 비번인 간호사들 몫이라고 한다. 대전에서 캐디로 일한다는 C씨는 “겨울철만 되면 추가 업무가 발생한다. 회장님 지시로 김장을 해야 하는 것은 물론 눈이 많이 내리는 날이면 제설 작업에도 투입된다”고 했다. “사무실 안에 화장실이 있는데도 냄새가 난다며 건물 지하 화장실로 가라고 하고, 화장실을 이용할 때마다 문자로 보고하게 한다”는 제보도 있었다. 

    중소기업에서 근무하는 D씨는 회장이 가족여행을 가니 별장을 관리하라며, 닭 모이와 개 사료를 챙기라는 황당한 지시를 받았다. 이를 거부하자 “회사에 불만 있느냐”는 회장 아들의 전화까지 받았다고 한다. “사무실에서 먹을 물을 약수터에 가서 떠오라고 한다” “호텔에서 일하는데 사장 아버지가 운영하는 식당에 가서 숯불 올리는 일을 직원들이 돌아가면서 하라고 한다”는 제보도 있었다.

    인간에 대한 예의와 존중

    직장 갑질에 대한 공분을 일으킨 한림성심병원 간호사 장기자랑 모습.

    직장 갑질에 대한 공분을 일으킨 한림성심병원 간호사 장기자랑 모습.

    가장 심각한 갑질은 반복되는 폭언과 인격 모독이었다. 인천의 한 중소기업은 직원 4명을 징계하면서 전 사원을 소집했다. 사장은 사원들 앞에 징계받을 직원들을 세워놓고는 사원들에게 이들을 권고사직을 시킬지 감봉으로 할지 결정할 것을 강요했다. 단, 무죄로 결정할 경우 전 직원의 임금을 삭감하겠다고 했다. 결국 직원들은 이들에게 6개월 감봉 결정을 내렸다. 일부는 정신적 충격을 받고 자진 퇴사했다고 한다. 

    성희롱, 성추행, 성폭행은 36건(2.2%)으로 예상보다는 적었지만 사안은 심각하다고 한다. 박점규 운영위원은 “안 좋은 회사일수록 갑질 사례가 종합적으로 일어난다. 월급도 제대로 안 주면서 욕설이나 인격 모독을 하고, 여성에게는 성희롱을 하는 식”이라고 말했다. 

    “성희롱 제보를 보면 공통된 패턴이 있다. 회식을 빌미로 억지로 술집에 데려가고, 예쁜 순서대로 사장이나 간부 옆자리에 앉도록 강요하고, 노래방에 데려가 추행하고, 문제를 제기하면 인사상의 불이익을 주는 식이다.” 

    그동안 국가는 이들의 고통을 외면해왔다. 노동부나 국가인권위원회는 제보자를 귀찮은 사람 취급해왔다는 게 직장갑질119의 이야기다. 

    한 대기업이 만든 사회공헌기관에서 비정규직으로 일하던 A씨는 관장으로부터 “다리가 튼튼해서 레깅스가 어울려” 같은 성희롱을 비롯해 “비인격적인 모욕을 당했다”며 노동부에 신고했지만 “우리는 임금체불 사건만 처리한다”는 얘기를, 경찰서에선 “갑질에 해당하더라도 해결은 어렵다”는 말만 들어야 했다고 올렸다. 

    몇 달째 임금을 받지 못한 제주도 한 호텔 직원이 고용노동부에 진정을 제기했다. 그가 수집한 자료에 따르면 이 호텔에서 임금을 떼였다고 진정을 넣은 사람만 80명이 넘었다. 그런데도 고용노동부 근로감독관은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한 동네에서 80건 넘게 소매치기 신고가 들어오면 모든 경찰력을 동원하는 게 당연하다. 그런데 그 많은 사람이 돈을 떼였다고 신고했는데도 우리가 제보를 받고 노동부와 면담하면서 문제 제기를 할 때까지 현장 점검을 한 번도 가지 않았다.”

    ‘을’의 편이 아닌 정부

    박 운영위원은 “조사를 해도 문제다. 제보자의 익명성을 보장해주는 게 아니라 사업주에게 누가 이런 제보를 했다고 통보한다. 그리고 불시에 근로감독을 해야 진상을 알 수 있는데 언제 근로감독을 갈지 미리 알려준다. 그나마 확인된 범죄행위에 대해서도 솜방망이 처벌에 그친다. 시정 조치를 하면 그냥 그걸로 끝이다. 그러니 사업주가 법을 두려워하지 않는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1월 들어 임금과 관련한 제보가 많아졌다. 최저임금제 때문이다. 경기도의 한 병원 간호사는 “최저임금 기준으로 기본급이 27만 원 올라야 하는데, 실제 오른 금액은 10만 원에 불과하다”고 격분했다. 상여금 일부를 기본급에 포함하는 것으로 임금체계를 바꿨기 때문이다. 법적으로 상여금과 복리후생수당(식대, 교통비 등)은 최저임금에 포함할 수 없도록 되어 있지만, 직원 과반수 동의를 얻어 임금체계를 바꾸면 불법이 아니다. 노조 없는 회사에서 바뀐 근로계약서에 서명하라는데 이를 거부할 간 큰 직장인은 많지 않다. 아무래도 정부는 여전히 ‘을’의 편이 아닌 모양이다.

    박점규 직장갑질119 운영위원
    “직장 갑질 없애려면 ‘을’부터 용기 내야”

    [지호영 기자]

    [지호영 기자]

    상담을 받아보니 어떤가. 

    “10~20년 동안 노동 상담을 해온 노무사와 변호사들도 사연을 보며 큰 충격을 받고 있다. 나도 오랫동안 비정규직 운동을 하며 많은 사람을 만났지만 생각하지 못한 수준이었다. 거의 재난 수준이었다.” 

    그동안의 성과를 꼽는다면. 

    “가장 큰 성과는 성심병원 직원들이 스스로 노조를 만든 게 아닐까 한다. 그분들의 용기 덕분에 다른 병원에서도 비슷하게 이뤄지던 갑질이 많이 사라졌다. 또한 갑질 피해자가 ‘직장갑질119’와 상담했다는 이야기만 해도 회사가 해결에 적극 나서는 경우가 생겨나고 있다.” 

    그분들이 여기에 모이는 이유가 뭐라고 보나. 

    “노조가 없는 직장인, 비정규직 노동자는 호소할 곳이 마땅치 않고, 문제 제기를 했다 불이익을 당할까 속앓이만 해왔다. 들어주는 곳도 없었다. 이야기를 들어주고 함께 해결 방안을 찾으려 손을 내민 곳은 우리가 처음이라고 말한다. 그래서 나는 이곳을 직장에서 당한 설움을 공감하는 공감학교이자, 학교에서 가르쳐주지 않는 노동법을 가르치는 노동교실이라고 한다.” 

    직장 갑질이 왜 일어난다고 보나. 

    “유교 문화, 군대 문화, 반말 문화의 영향이 크다고 본다. 반말에서 갑질이 시작된다. 사장도 손님도 종업원에게 반말하지 않는 ‘존중일터 캠페인’을 벌였으면 좋겠다. 또 하나는 비정규직의 양산이다. 인사권을 쥔 상사에게 잘 보여야 정규직이 될 수 있으니까 상사가 갑질을 해도 참다 보니 갑질이 당연시되고 확산되는 결과를 가져왔다.” 

    어디까지 갑질로 볼지 불명확하다는 주장이 있다. 

    “위계를 이용해 부당한 행위를 하는 것을 갑질이라고 하는데, 우리가 아는 갑질 대부분은 근로기준법 위반이다. 직원에게 김장을 시키면서 ‘내 돈 주는데 왜 못 시켜’라고 말하는 고용주가 있는데, 근로기준법에는 계약서에 지정된 업무 외에 다른 업무는 시킬 수 없게 되어 있다. 그런데 5인 미만 사업장은 근로기준법이 적용 안 되는 사항이 많긴 하다.” 

    가장 심각한 갑질을 꼽는다면. 

    “상습적인 폭언 등 인격 모독이다. 상담할 때 월급을 떼였다며 죽고 싶다고 하는 경우는 없지만 상사로부터 폭언, 인격 모독을 당했다며 죽고 싶다고 하는 경우가 많다. 정신적 내상이 피해가 훨씬 큰 것 같다. 문제는 처벌 조항이 애매하다는 것이다. 직장 내 폭행은 ‘위계에 의한 폭력’으로 일반 폭행보다 훨씬 엄하게 처벌하고 있으며, 지속적인 폭언은 폭행에 준한다는 판례가 있는데도, 노동부는 상습적 폭언으로는 처벌이 어렵다고 말한다. 프랑스 등 유럽은 노동자의 인격권과 존엄성, 정신건강을 해칠 정도로 반복적인 괴롭힘은 불법으로 명시하고 있다.” 

    직장 갑질 해결 방법이 있다면. 

    “근로기준법 위반 처벌이 더 강화되어야 한다. 교통법규를 위반할 때마다 과태료를 물리듯 근로기준법 위반 건수마다 처벌하면 갑질이 줄어들 것이다. 또한 임금을 떼어먹는 사업자에 대해 현 규정은 5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되어 있는데, 실제로는 몇십만 원 벌금으로 끝난다. 그러니 임금을 체불하는 사례가 끊이지 않는 것이다. 처벌 조항을 강화해 구속시키면 사용자도 긴장하게 될 것이다.” 

    앞으로 계획과 활동 방향은. 

    “직종별 온라인 모임을 활성화하려고 한다. 현재 병원 모임, 보육교사 모임과 방송업계, 시화단지노동자 방이 운영 중이다. 요리사 모임, 헤어디자이너 모임 등 다양하게 넓혀나갔으면 좋겠다. 거기서 해당 직종 노동자들이 뭉쳐 갑질을 없애도록 노력하는 걸 도울 생각이다.” 

    세상의 ‘을’들에게 조언한다면. 

    “갑질 없애는 법을 만드는 것도 중요하지만 노동자가 바뀌지 않으면 안 된다. 자기 권리를 찾기 위해 용기를 내야 한다. ‘직장갑질119’가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었던 것도 제보자들이 용기를 냈기 때문이다. 부당한 갑질을 당했다면 주저 없이 제보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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