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신동아 로고

통합검색 전체메뉴열기

밀착취재

“가장 먼저 진입하고 제일 늦게 철수한다”

소방관 24시

  • 박은경 | 객원기자 siren52@hanmail.net

“가장 먼저 진입하고 제일 늦게 철수한다”

1/2
  • ● 출동 골든타임 4분…“밥 먹을 때 말 걸지 말라”
  • ● 수중 시신 수색, 화염 고립…PTSD 일반인 10배
  • ● 일부 신고자 욕설, 반말 ‘갑질’…“우리도 감정노동자”
  • ● 경쟁률 11대 1…특전사, 외국계 기업 출신 등 경력 다양
“가장 먼저 진입하고   제일 늦게 철수한다”

셔트스톡

지난해 12월 5일 오전 8시 22분경, 서울 성내동 강동소방서에 비상이 걸렸다. 야간근무조 소방관들이 퇴근 전 구내식당에서 아침식사를 하며 한숨을 돌리던 순간, 서울종합방재센터 종합상황실로부터 날아든 출동지령 비상벨이 건물 전체에 울려 퍼졌다.
“화재출동! 화재출동!”
샤워실, 화장실, 출동대기실 가릴 것 없이 일제히 문이 열리고, 총알처럼 튀어나온 소방관들이 1층에 줄지어 선 소방차를 향해 냅다 뛰었다. 화재 현장을 지휘할 지휘팀장을 필두로 통신·안전·화재감식·화재조사·운전담당 대원 6명을 태운 지휘차량이 시동을 걸고 출발했다. 고가(사다리)차, 펌프차, 탱크차, 구조차, 구급차 등이 줄줄이 뒤를 따라 사이렌을 울리며 전속력으로 도로를 내달렸다.



애완견 냄새 없애려 켜둔 촛불

화재 현장으로 향하는 지휘차는 시시각각 현장 상황이 무전으로 날아드는 데다 지휘팀장이 모든 출동 소방관에게 무전으로 지시를 내리기 때문에 늘 시끄럽고 긴박한 분위기다. 어수선한 차 안에서 방화복과 헬멧을 착용하던 화재조사담당 김종석 대원(28년차 소방위)은 지금 펼쳐지는 상황이 모의훈련이거나 허위 신고 때문이기를 바랐다. 퇴근시간 10분을 남겨두고 출동했기에 몸은 천근만근이다.
그러나 현장 도착 50m를 앞두고 김 대원의 간절한 바람은 ‘물거품’이 됐다. 화재 현장과 가까워 선착대로 도착한 강동소방서 고덕119안전센터 대원들을 통해 “불꽃이 보인다” “2명의 요(要)구조자가 위태롭게 창턱에 매달려 있다”는 다급한 무전이 연달아 날아들었기 때문. 김 대원은 본능적으로 찌릿한 느낌에 휩싸이며 사태가 심상치 않음을 직감했다. 지휘팀장이 전 대원에게 무전으로 “준비를 단단히 하라”는 지시를 내리자 차 안은 순식간에 팽팽한 긴장으로 달아올랐다.
고요한 주말 아침 도심을 깨운 불은 5층 높이의 강동구 고덕동 모 아파트 4○○호에서 시작됐고, 아파트 내부 절반과 가재도구들을 태워 1170만 원의 재산 피해를 냈다. 화재 원인은 홀로 살던 30대 후반 여성이 집 안에 밴 애완견 냄새를 없애기 위해 켜놓은 촛불. 받침대도 없이 안방 창가 서랍장 위에 켜둔 3개의 초가 끝까지 타면서 불이 났고, 불꽃이 서랍장으로 옮겨 붙으면서 걷잡을 수 없이 커졌다.
‘펑’ 하는 소리에 잠에서 깬 여성이 실내복 차림으로 애완견을 안고 황급히 집을 빠져나왔고, 그 시각 현장에 도착한 소방관들이 초기 진화에 나서 불은 다행히 외부로 번지지 않았다. 강동소방서 대원들이 현장에 도착한 지 10여 분 만에 불은 완전 진화됐고 소방관들은 출동 1시간 50여 분 만에 지친 몸을 이끌고 소방서로 돌아왔다. 김종석 대원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큰 화재였지만 선착대가 초기에 불길을 잡았고, 불이 난 아파트 바로 위층에서 연기를 피해 창밖으로 상체를 내밀고 있던 모자(‘2명의 요구조자’)도 무사히 구조됐다. 야근으로 피로에 젖어 있던 대원들이 고생을 많이 했다. 오래된 저층 아파트라 엘리베이터가 없어 불이 난 4층까지 수관(소방호스)을 직접 끌고 11차례나 오르내렸다. 자칫 큰불과 인명사고로 이어질 수 있던 화재라 정말 아찔했다.”



출동하다 아킬레스건 절단

“가장 먼저 진입하고   제일 늦게 철수한다”

현장에 도착하기 전 화재진압 대원은 차 안에서 ‘완전무장’을 한다. 장비 무게가 20kg을 넘는다. 조영철 기자

강동소방서의 하루는 매일 오전 8시 반경, 전날 야간근무조와 당일 주간근무조의 교대·점검으로 시작된다. 교대근무를 할 주간조 20여 명의 대원이 방화복, 헬멧, 안전장갑, 산소호흡기, 손전등 등 개인안전장비를 착용하고 소방차가 줄지어 선 1층에 집합하면 지휘팀장이 “점검 실시!”를 외치고 10여 분 동안 일사불란하게 장비를 점검한다. 산소통의 압력을 체크하고, 화재진압과 인명구조, 응급환자 구급에 사용될 동력절단기, 체인톱 등 각종 소방장비들이 정상적으로 작동하는지 시운전을 한다. 소방차도 이상이 없는지 일일이 시동을 걸어 체크한다. 20분에 걸친 교대·점검은 매일 오전, 오후 두 차례 실시된다.
교대·점검이 끝나면 대원들은 각자 흩어져 오전 10시까지 업무를 보거나 체력단련실을 찾아 몸풀기 스트레칭, 체력단련운동을 하고 심신안정 프로그램에 참여한다. 몸풀기는 소방관들에게 매우 중요한 일과다. 언제 비상벨이 울리고 출동지령이 떨어질지 모르는 긴장 상태로 하루 종일 생활하기에 몸이 굳어 있으면 부상 위험이 크다. 김정용 지휘팀장(28년차 소방경)은 “밤 10시가 넘어 출동대기실 침상에 누워 있다가 비상벨이 울려 갑자기 몸을 일으키면 심장에 무리가 가고 허리나 다리 등 근육이 삐끗할 수 있다”며 “긴장으로 굳은 몸을 자주 풀어줘야 부상을 방지할 수 있다”고 했다.
8년차 소방관 이모 대원은 4년 전 응급환자 발생을 알리는 구급 출동지령이 떨어지자 2층 사무실에서 계단을 2~3칸씩 뛰어내려오다 아킬레스건이 끊어지는 사고를 당했다. 그의 말을 들어보니 대원들이 매일 체력단련실에서 운동하는 이유를 짐작할 수 있었다.
“급한 나머지 발을 세게 디뎠는데 순간 발목에서 ‘띵’ 소리가 났고 그 소리가 뇌까지 울렸다. 오른쪽 발목을 만져보니 아킬레스건이 잡히지 않았다. 구급차에 실려가 아킬레스건을 3cm 잘라내고 연결하는 수술을 받았다. 1년 반 동안 입원과 통원 치료를 받았는데, 지금은 활동에 지장이 없다. 다른 소방서 대원은 계단에서 발을 헛디뎌 발목이 복합 골절된 적이 있다. 방화복 등 개인안전장비를 착용하면 그 무게가 20kg이 넘는다. 화재현장에 도착해 급한 마음에 무거운 장비를 메고 갑자기 차에서 내리면 발목 부상을 입기 쉽다.”
하루 종일 부슬비가 오락가락하던 지난해 12월 10일 오후 4시. 강동소방서 뒤쪽 주차장 한편의 2층 건물 체력단련실에서 3명의 대원이 뜨거운 열기를 내뿜으며 러닝머신 위를 달리고 있었다. 20여 가지 운동기구와 당구대가 갖춰진 실내 한편에서 한 대원은 벤치프레스에 누워 무거운 역기를 가뿐하게 들어 올렸다.
같은 날 오후 5시 50분경, 저녁식사를 하기 위해 지하 구내식당으로 삼삼오오 모여든 대원들이 식판을 들고 자리를 잡았다. 그로부터 채 10분이 지나지 않아 비상벨과 함께 “구급출동! 구급출동!” 방송이 식당 안에 울려 퍼졌다. 테이블에서 함께 식사하던 3명의 대원이 숟가락을 놓고 쏜살같이 식당을 빠져나갔다. 기자와 함께 밥을 먹던 안전교육담당 김윤수 대원(19년차 소방위)은 “구조·구급대원은 (화재)진압대원보다 출동 횟수가 훨씬 많다. 고드름 제거, 출입문 개방 같은 생활안전 관련 신고가 빈번하고, 응급환자가 수시로 발생하기 때문이다. 소방관들 사이엔 ‘구조·구급 대원이 밥을 절반 이상 먹기 전에 절대로 말을 걸지 말라’는 불문율까지 생겼다”고 말했다.



구조·구급대원의 ‘침묵 식사’

심신안정 프로그램은 별도로 짠 계획 없이 대원들끼리 둘러앉아 편안하게 대화를 나누는 시간이다. 화재와 재난 현장의 인명사고 등 경험을 나누고 개인적인 고민이나 속내를 동병상련의 동료들한테 털어놓으면 스트레스를 덜 수 있다. 김재현 지휘팀장(26년차 소방경)은 이렇게 설명했다.

“소방대원들은 현장에서 소사(燒死, 불에 타서 사망)한 시신을 발견할 수도 있고, 교통사고나 투신으로 심하게 다치거나 훼손된 시신을 수습하기도 한다. 그런 끔찍한 경험은 좀처럼 얘기하지 않으려 한다. 힘든 걸 당연하게 여기고 드러내는 걸 싫어한다. 그래서 겉보기엔 멀쩡해도 외상후스트레스장애(PTSD)에 시달리는 대원이 많다. 동병상련 처지의 동료들끼리 서로 나쁜 기억들을 풀어내면 마음이 다소나마 편안해지고 괴로움을 잊을 수 있다.”



1/2
박은경 | 객원기자 siren52@hanmail.net
목록 닫기

“가장 먼저 진입하고 제일 늦게 철수한다”

댓글 창 닫기

2018/11Opinion Leader Magazine

오피니언 리더 매거진 표지

오피니언 리더를 위한
시사월간지. 분석, 정보,
교양, 재미의 보물창고

목차보기구독신청이번 호 구입하기

지면보기 서비스는 유료 서비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