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10월호

“조국 장관은 문재인 대통령의 퇴임 후 안전판이었다”

  • 이종훈 정치평론가

    rheehoon@naver.com

    입력2019-09-18 14: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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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권 재창출해도 퇴임 후 당한다!

    • 曺는 文 배신하지 않을 유일 대권 주자

    • 인간관계, 구도, 사상 측면 ‘文의 적자(嫡子)’

    • ‘정치권의 황우석 사태’ 같은 쇼크

    • 曺, 대통령과 여권의 부담으로 전락

    [박영대 동아일보 기자, 양회성 동아일보 기자]

    [박영대 동아일보 기자, 양회성 동아일보 기자]

    지금 이 순간 조국 사태로 가장 당황하고 있을 사람은 당사자 빼고 아마도 양정철 더불어민주당 민주연구원 원장이 아닐까 한다. 양 원장은 조국 법무부 장관을 차기 여권 주자로 공개리에 점찍었다. 그러나 양 원장이 문재인 대통령 만들기에 성공했는지 몰라도 그의 이번 큰 그림은 망가졌다. 

    양정철의 그림은 아마 ‘조국으로 황교안을 누른다. 내년 총선을 압승한다. 조국의 몸집을 더 키워 차기 대선도 이긴다. 정권 재창출에 성공하면 문재인 대통령의 퇴임 이후는 평안하다. 조국이 대통령이 되면 내 미래도 탄탄하다’ 정도일 것이다.

    ‘총선-대선 카드’ 가치 급락

    여권은 조국 의혹이 이 정도일 줄은 예상하지 못했던 것 같다. 몇몇은 조국의 이중성에 혀를 내두를지 모른다. 어떻게 해야 할까? 끝까지 안고 가기엔 버겁다. 내년 총선 카드로서, 차기 대선 카드로서 가치도 급락했다. 이 정도면 거의 ‘정치권의 황우석 사태’라 할 만하다. 

    출구를 어떻게 찾을 것인가? 그것도 빨리 찾아야 한다. 거의 진퇴양난에 빠진 셈인데, 특단의 카드가 필요하다. 여론몰이를 할 만한 이슈로는 개혁에 저항하는 검찰과의 전면전, 한일갈등 극적 타결, 한미동맹 위기, 김정은 답방, 조국 가족 비리 엄단 등이 일단 고려될 수 있다. 호재가 아닌 악재로 돌변한 조국을 대신할 다른 인물은 누굴까. 완벽한 대체는 아니더라도 비슷한 급이 되는 구원투수는 있을까. 

    혹시 윤석열 검찰총장? 판관 ‘포청천’ 이미지를 가진 윤석열이라면 구원투수 역할은 충분히 수행할 수 있지 않을까. 그렇다면 윤석열이 조국을 잡게 놔둔다? 진보 세력 안에서도 찬반양론이 격렬할 것이다. 어쨌든 윤석열은 문 대통령이 임명한 사람이고 조국 정국 출구전략의 핵심이다. 다만 외양적으로 보기에, 윤석열의 검찰은 문 대통령과 청와대의 뜻과 다르게 조국 가족을 기습적으로 쳤다. 문 대통령과 윤 총장 간 신뢰에 금이 간 것인지 모른다. 그런 사람을 후계자로 앉힌다? 상식적으로 그렇게 될 가능성이 그리 커 보이지 않는다. 



    조국을 궁지로 내몬 검찰에 대한 여권의 조건반사적 반응은 ‘분노’였다.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8월 28일 검찰이 조국 법무부 장관 후보자 의혹과 관련해 압수수색을 진행한 것에 대해 맹공을 하고 나섰다. 

    “언론에는 취재를 시키며 관계기관과는 전혀 합의를 안 하는 전례 없는 행위가 벌어졌다. 이 점이 훨씬 더 나라를 어지럽게 하는 행위라 아니 할 수 없다.” 

    이 대표가 노무현재단 이사장으로 불러온 유시민 이사장도 다음 날 나섰다. 

    “조국 후보자가 직접 책임을 져야 할 만한 상황이 한 개도 없다, 지금. 그 조건에서 광범위한 압수수색을 했다.” “충정은 이해하나 심한 오버였다. 아주 부적절하고 심각한 오버였다.” 

    윤석열 총장의 오버를 준열히 꾸짖고 나선 것이다. 이즈음 문 대통령 지지 세력도 움직였다. 포털 실시간 검색어 장악에 나선 것이다. 이 캠페인은 “조국 힘내세요”로 시작해 “가짜 뉴스 아웃”을 거쳐 “한국 언론 사망” “정치검찰 아웃” “검찰 쿠데타”로 이어졌다. 누가 기획이라도 한 듯, 일사불란하게 윤석열 검찰을 겨냥하는 모양새였다. 

    우연의 일치일까, 아니면 보이지 않는 손의 작용일까. 사람들은 국가정보원 댓글 사건과 드루킹 일당의 댓글 공작 사건을 경험했다. 그러다 보니 이런 일이 우연의 일치로만 보이지 않는다. 지지층 결집 효과까지 일부 나타났다. 조국이 만신창이가 돼가고 있음에도 여권 내에선 윤석열 검찰을 제압할 인물은 조국밖에 없다는 내부 여론이 형성됐다.

    여권 전체가 조국 한 명에 절절맨 까닭

    조국 법무부 장관이 9월 9일 서울 서초구 방배동 자택을 나서고 있다. [뉴스1]

    조국 법무부 장관이 9월 9일 서울 서초구 방배동 자택을 나서고 있다. [뉴스1]

    그렇다면 왜 여권 전체가 조국 한 명 때문에 이렇게 절절매는 것일까. 일부 여권 인사들은 ‘문 대통령과 조국 전 수석의 특수관계’를 가장 큰 이유로 꼽는다. 이들은 이를 구도, 정책, 사상, 인간관계 측면에서 설명한다. 

    “구도 측면에서, 조국은 법무부 장관이 되고 내년 총선 때 부산에 출마해 당선되면 대선주자로서 확장성이 높다고 판단됐을 것이다. ‘호남+PK(부산·경남) 후보’라는 필승 구도에 들어맞는다. 

    정책 측면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이 검찰 수사를 받다 자살한 이후 그 친구 문 대통령이 가장 중시해온 정책이 검찰개혁이다. 조국은 이 검찰개혁을 이룰 최적임자로 여겨졌다. 우선 조국은 검찰을 불신하고 증오하므로 검찰에 칼을 댈 수 있다. 또 민정수석 업무의 연속선이라는 측면도 있다. 

    사상 측면에서, 조국은 사노맹 경력으로 인해 문 대통령 및 청와대 386운동권 참모와 어떤 정서적 유대감을 공유한다. 조국이 사회주의를 아직 버리지 않았다고 공개적으로 말하는 것도 이들에겐 ‘소신’으로 비칠 수 있다. 

    인간관계 측면에서, 조국은 문 대통령의 부산 후배에다 지난 수년간 문 대통령의 정치 행보를 정당화하는 이론을 충실하게 제공해왔다. 문-조 두 사람 사이에 신뢰감이 형성됐다. ‘모두가 배신하더라도 저 사람은 절대 배신하지 않을 것’이라는 신뢰감이다. 이것은 퇴임 이후를 생각해야 하는 문 대통령으로선 중요한 문제다. 게다가 조국은 ‘거의 유일한 친(親)문재인계 차기 주자’다. 반면, 이낙연 국무총리와 유시민 이사장은 노무현에게 등을 돌린 전력이 있고 박원순 서울시장과 이재명 경기지사는 지난 대선 때 문 대통령을 심하게 몰아붙였다. 취임 후 문 대통령 내외는 민정수석 조국에게 자신의 자녀 문제 관리를 일임했다. 

    이런 구도, 정책, 사상, 인간관계 측면에서 조국은 문재인 정권의 적자(嫡子)이자 문 대통령의 퇴임 후 안전판이었다. 이렇게 문-조 특수관계가 형성됐다고 할 수 있다.” 

    문 대통령도 조국 사태를 보면서 양정철 원장 못지않게 놀랐을 것이다. 그 또한 조국이 이럴 줄은 몰랐을 것이다. 순간 배신감도 느꼈을 것이다. 조국을 버릴 것인가, 말 것인가. 처음 그를 청와대로 불러들여 민정수석이라는 중책을 맡겼을 때, 문 대통령은 어떤 생각이었을까. 노무현 옆 문재인을 연상했을 것이다. 실제로 조국 전 수석은 문 대통령이 그랬듯 긴 기간 대통령 곁을 지켰다. 아직 임기가 끝난 것이 아니기에 다시 불러 중책을 맡길 여지도 있다. 과거 자신이 노무현 정부 시절 민정수석을 거쳐 비서실장을 한 것처럼 말이다.

    검찰 개혁해 퇴임 후 굴욕 안 겪겠다?

    2003년 4월 29일 청와대에서 열린 국무회의를 마치고 나온 노무현 대통령이 문재인 민정수석과 대화하고 있다. [김경제 동아일보 기자]

    2003년 4월 29일 청와대에서 열린 국무회의를 마치고 나온 노무현 대통령이 문재인 민정수석과 대화하고 있다. [김경제 동아일보 기자]

    이쯤에서 문 대통령의 마음속 트라우마에 관해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다. 그것은 친구 노무현을 끝까지 지켜주지 못했다는 회한이다. 문 대통령은 노 전 대통령의 죽음 이면에 이명박 정부 시절 정치검찰이 있다고 생각할 것이다. 검찰개혁에 열중하는 이유 가운데 하나가 바로 여기에 있는 것으로 보인다. 대통령이 된 이후 이런 결심도 했을 것이다. 

    ‘나는 절대 정치검찰에 의해 속수무책으로 당하지 않을 것이다!’ ‘재임 중 검찰개혁을 완성해 퇴임 이후 굴욕을 겪는 일을 막을 것이다!’ 

    돌이켜보면 역대 대통령 모두 불행한 말년을 보냈다. 평안한 은퇴 생활을 누린 이가 없다. 재임 중 대통합을 기치로 내걸고 보수 세력과 화해를 시도한 김대중 전 대통령도 대북송금 사건으로 고초를 겪었다. 김 전 대통령도 퇴임 이후에 대한 걱정이 많았던 것으로 전해진다. 그래서 박근혜 전 대통령과 화해를 시도했고 전두환 전 대통령에게도 호의를 베풀었다. 차기 정권을 재창출하려고 애를 많이 썼다. 

    이런 노력에 힘입어 노무현 정부가 들어섰음에도 결과는 크게 다르지 않았다. 겨우 본인만 형사처분을 면했다. 흥미로운 점은, 문 대통령은 당시 민정수석으로서 한나라당이 요구한 대북송금 특검의 수용 여부 결정에 참여한 당사자라는 점이다. 나아가 수사 과정을 면밀하게 지켜보면서 상황 관리까지 했다. 집권 초기 노 대통령과 문 수석은 전 정부인 김대중 정부와 차별화를 원했던 것으로 보인다. 들끓는 여론을 조기에 잠재울 필요성도 느꼈을 것이다. 그래서 일단 특검 요구를 수용한 뒤, 수사 범위를 통제하려 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수사는 어느 순간 통제를 벗어났고 김 전 대통령의 측근들이 줄줄이 구속됐다. 문 대통령에게 당시 경험은 잊히지 않을 기억으로 남아 있을 것이다. 퇴임 이후 같은 편에게도 버림받을 수 있다는 교훈을 줬을 것이다. 

    문 대통령은 촛불에 힘입어 대통령직에 올랐고 적폐청산을 시작했다. 당하는 사람들에게는 부당한 보복으로 여겨질 수밖에 없다. 부득이 적이 많아졌다. 이들의 조직적 저항이 점차 거세지고 있다. 실정이 더해지고 정권에 대한 피로감이 심해지면 어느 순간 레임덕이 발생한다. 그런 틈을 타서 문재인 단죄론도 등장할 것이다. 아니 이미 등장했다.

    흠집 난 조국도 나쁘지 않다?

    황교안 대표 선출 이후 자유한국당은 전면전을 선포하고 나섰다. 우리공화당과 태극기 집회 세력도 몸집을 키우고 있다. 이런 흐름이면 퇴임 이후 안전을 확신하기 어렵다. 8월 29일 박근혜 전 대통령의 국정농단 사건에 대한 대법원 상고심 선고가 나왔다. 자유한국당은 이렇게 논평했다. 

    “문재인 정권은 무엇보다 역사는 반드시 되풀이된다는 사실을 기억하라.” 

    복수를 암시한 것이다. 임기 말이 다가올수록 문 대통령의 머릿속은 퇴임 이후에 대한 생각으로 가득할 것이다. 과거 트라우마까지 되살아나면, 우려와 공포는 상상 이상으로 커질 가능성도 없지 않다. 누가 나를 지켜줄 것인가. 조국 정도면 나를 지켜주지 않을까. 아니, 지켜낼 수 있지 않을까. 

    조국만이 자신을 지켜주리라고 생각하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조국에게 과거 자신이 수행했던 역할을 맡긴 뒤 가능성을 타진해본 것은 분명해 보인다. 결과도 물론 만족스러웠을 것이다. 그래서 법무부 장관으로 임명해 더 키워볼 생각을 했을 법하다. 

    그러나 인사청문회에서 사달이 났다. 그렇다고 조국을 버릴 것인가. 흠집이 없는 것보다는 아쉽다고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문 대통령은 흠집이 난 조국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는지 모른다. 검찰의 압수수색을 받은 조국으로서는 이제 물러설 곳이 없다. 자신이 살기 위해서라도 사생결단으로 검찰과 맞서야 한다. 그가 검찰개혁에 성공한다면, 문 대통령으로서는 더 바랄 바가 없다. 검찰 인력을 진보 성향 인사로 대거 대체하면, 퇴임 후 10년 정도는 수사받을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된다. 10년이 지난 뒤에는 ‘절대 안전 구간’으로 접어든다. 누가 퇴임한 지 10년이나 지난 전직 대통령을 해코지할 것인가. 

    그러나 조국 법무부 장관 임명 반대 여론이 절반을 넘었다. 몇몇 비리 혐의가 너무 고약하고 국민 감성을 자극한다는 게 문제였다. 20대, 서울, PK, 충청, 중도가 돌아서는 건 예삿일이 아니다. 비용 대비 수익이 마이너스로 역전될 수 있다. 무엇보다 조국의 총선-대선 카드로서의 활용 가치가 급락했다. 이 점이 문 대통령을 끝없는 장고에 들어가게 했다.

    조국은 ‘과거의 문재인’

    조국 전 수석은 이 모든 소동을 예상하지 못했을까. 아닐 것이다. 치밀한 그가 놓쳤을 리 없다. 문제가 될 것을 알았고 그 경우에 내놓을 반박 논리까지 개발해둔 것으로 보인다. 각종 의혹이 봇물 터지듯 나오고 비난 여론이 거세지자 그는 준비한 논리를 설파하기 시작했다. ‘모든 절차는 적법하게 이뤄졌다.’ 

    본인이 법률 전문가인데 설마 법 위반을 했겠느냐는 주장이다. 이후 편법을 활용한 것은 문제가 아니냐는 지적이 이어졌다. 국민 정서와 동떨어진다는 지적도 나왔다. 이때도 준비된 형용 문구가 등장했다. ‘국민 정서와 괴리가 있는 것은 인정하지만….’ 

    그 결과, ‘국민 정서와 괴리가 있지만, 불법행위는 없었다’라는 완성체 논리가 만들어졌다. 

    조국 전 수석의 법무부 장관 임명을 지지한 진보 지지층은 예외 없이 이 논리를 내세운다. ‘그래서 조국이 어떤 불법을 저질렀는데?’라고 되묻는다. 작전 성공이다. 

    조 전 수석은 문 대통령이 가족 비리 의혹을 안 뒤에 어떤 선택을 할지도 생각했을 것이다. 자기를 버리기 어려울 것이라는 계산을 마쳤을 것이다. 대체재를 찾기 어려울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다. 

    진보 진영에 대권 주자가 없어서가 아니다. 다른 주자는 퇴임 후 안전 보장에 대한 확신을 문 대통령에게 주기 어렵다는 이유다. 이낙연 국무총리가 만약에 대통령이 되면, 전임자인 문 대통령을 무슨 일이 있어도 끝까지 지켜줄까. 그러기에는 인연이 너무 짧다. 유시민 이사장과 더불어민주당 주력 386 정치인들은 어떨까. 대다수는 노 전 대통령 비난 대열에 합류한 전력이 있다. 이런 과거를 아는 문 대통령이 그들을 전적으로 신뢰할 것으로 보기는 어렵다. 

    조국은 오랜 기간 민정수석으로 재임하면서 문재인 대통령을 속속들이 다 알게 됐는지 모른다. 두 사람은 민감한 주제들을 놓고 내밀한 말을 많이 했을 수 있다. 이런 점 때문에라도 조국 전 수석은 문 대통령이 자기를 버리기 쉽지 않으리라고 확신했는지 모른다. 

    재임 시절 노 대통령은 친구인 문재인 비서실장-민정수석에게 민감한 일을 많이 맡겼을 것이다. 이런 점에서, 문 대통령에게 조국 전 수석은 ‘과거의 문재인’이나 다름없다. 

    문 대통령은 가끔 이런 생각도 할 것이다. ‘친구 노무현이 나를 후임 대통령에 앉혔더라면 죽음에 이르렀을까?’ 조국 전 수석도 같은 생각을 할지 모른다. ‘퇴임 이후가 편안하길 원한다면, 바로 나를 선택해야 합니다.’ 조국의 눈길 속에서 배어 나오는 은근한 자신감의 근원은 여기에 있는지 모른다. 다만, 한 가지 분명히 짚고 넘어갈 것은, 보수 야당은 “문 대통령과 조 전 수석이 말하는 검찰개혁이 진정한 의미의 개혁이 아니라 집권세력에 의한 검찰 장악”이라고 주장한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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