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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재현의 심心중中일一언言

군사도시 원주를 춤바람 나게 만든 사내

이재원 원주다이내믹댄싱카니발 예술감독

  • 글 권재현 기자|confetti@donga.com| 사진 지호영 기자|f3young@donga.com|원주문화재단

군사도시 원주를 춤바람 나게 만든 사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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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은 감자탕집에서 시작됐다

추락하는 것은 날개가 있다고 누가 말했던가. 한때 대학로에서 제일 잘나갔던 공연기획자는 그렇게 쫓겨나다시피 원주시 외곽에 내려와 허름한 감자탕집을 열었다. 공연 일은 거들떠보지도 않으리라 결심했지만 입에 풀칠을 해야겠다 싶어 음식 솜씨 좋은 여동생을 꼬드겨 같이 시작한 일이었다.

“손님은 대부분 인근에서 농사짓는 어르신들이었어요. 순박한 분들인데 밥값을 계산 안 하고 가시는 경우가 있어 의아했는데 알고 보니 밥그릇 안에 돈이 들어 있더라고요. 소주값 깜빡하고 가셔도 얼마 뒤 들러꼭 계산해주고 그렇게 정이 쌓이면서 가족 단위 단골도 생기고 저도 매일 한 끼는 감자탕으로 먹다 보니 살이 10㎏나 찌더군요. 몸도 맘도 편했지만 서울에서 함께 내려온 가족은 못 견뎌했고 결국 저 홀로 남았습니다.”

그렇게 1년여가 지났을까. 2011년 6월 원주에서 전국연극제가 열리게 됐다. 그런데 개막 두 달을 앞두고 원주시 관계자들이 그의 감자탕집에 들이닥쳤다. 10억 원이 넘는 예산을 받아 홍보하는 데 다 썼는데도 공연장이 텅텅 비게 생겨 발을 동동 구르다 서울에서 제법 유명한 공연기획자가 내려와 칩거하고 있다는 정보를 입수하고 찾아온 것이었다.

공연 일은 이제 진저리가 난다며 손사래쳤다. 하지만 딱 한 번만 도와달라는 절박한 요구를 마냥 외면할 순 없었다. 그래서 조건을 걸었다. 원래 3만2000석 전석 무료인 티켓 중 불요불급한 좌석을 빼고 2만8000석을 유료화하고 그 수익의 절반을 자신과 직원들에게 공평하게 나눠달라고. 발등에 불이 떨어진 원주시 조직위에서 이를 수용하자 그는 불과 두 달 만에 2만8000석 전석을 매진시켰다. 29년 된 전국연극제 사상 처음이었다. 아니 도대체 무슨 비법으로?

“아시잖아요, 공연기획이 뭐예요? 사기잖아요(웃음). 티켓이 한 30%쯤 팔렸을 때 ‘완판됐다’며 일체의 티켓예매를 중단했어요. 그러곤 ‘얼마 안 남은 잔여 티켓은 사무실로 직접 찾아오는 경우에 한해 살 수 있다’고 입소문을 냈죠. 그러자 ‘도대체 뭐길래’ 하고 궁금해하는 사람들이 아침 9시부터 사무실 앞에 길게 줄을 서기 시작하더니 결국 다 팔렸어요. 660석 극장 티켓을 보조석까지 860장이나 팔았으니까 말 다했죠.”

그러자 전국연극제 내내 관심을 보이지 않던 원창묵 원주시장이 갑자기 공연을 보러 오겠다고 연락을 해왔다. 티켓이 동이 난 상황이라 유료관객 한 명의 티켓을 환불해주고 간신히 맨 뒷좌석 하나를 마련했다.

“도대체 당신 정체가 뭐야?”

“하필이면 그날 그 작품이 가장 재미없는 연극이었어요. 연극을 보고 나온 시장님이 붉으락푸르락한 표정으로 ‘내일 사무실로 좀 와달라’고 하더군요. 그래서 시장실로 찾아갔더니 ‘도대체 당신 뭐하는 사람이냐. 어떻게 이렇게 재미없는 공연을 유료로, 그것도 전석 매진시킬 수 있느냐’고 다그치더라고요. 그래서 제 이력을 설명하면서 ‘원주 시민이 이런 공연을 오랫동안 기다려오셨기에 가능하지 않았나 싶다’는 설명을 드렸어요. 그랬더니 그날 이후 매일 공연을 보러 오시는 거예요. 매번 볼 때마다 재미는 없는데 객석은 꽉꽉 차고(웃음)….”

당시 원주는 따뚜축제를 대신할 ‘원주다이내믹페스티벌’을 준비 중이었다. 따뚜 야외공연장에서 군부대의 탱크 쇼와 이러저러한 초청 공연을 결부한 동네 축제였다. 원 시장은 그에게 이 축제 준비를 도와달라고 했다. 축제기획안을 훑어본 이 감독은 바로 고사했다. 콘텐츠를 외부 초청공연으로 채우고 시민은 들러리로 세우는 축제라면 하나마나라는 신념 때문이었다. 

그리고 다시 감자탕집으로 돌아왔다. 그런데 다시 원 시장의 메신저들이 찾아들기 시작했다. 당시 예술감독이 찾아와 축제의 기본 개념까지 바꿀 수 있다고 설득해 다시 나섰다. 하지만 출근 첫날 시장 참석 프레젠테이션 때 기획안이 그대로인 것을 보고 폭발했다.

“차라리 그 돈 갖고 싸이 콘서트를 하세요. 그럼 최소한 돈은 벌 수 있을 겁니다.”
기존 축제 준비팀은 노발대발했고 그렇게 출근 첫날이 마지막 날이 됐다. 몇 개월 뒤 축제가 열렸는데 공연 도중 무대가 날아가 27명이 다치는 불상사가 발생했고 15억 예산을 들인 축제는 시민의 외면을 받은 채 끝났다.

그러자 이번엔 원창묵 시장이 직접 감자탕집으로 찾아왔다. 그래도 고개를 가로젓자 관련 국장과 과장이 계속 찾아오기 시작했다. 다시 전제조건을 내걸었다. “적어도 3년은 제가 무슨 짓을 해도 버텨주겠다 약속하면 해보겠다.” 이는 수용됐고 그는 축제를 주관하는 원주문화재단 사무국장을 맡게 됐다. 이후 그는 원주시 문화사업협력관을 거쳐 현재는 원주문화재단 축제감독 겸 댄싱카니발 예술감독을 겸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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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권재현 기자|confetti@donga.com| 사진 지호영 기자|f3young@donga.com|원주문화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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