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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김정은 동지 만세! 김정일 영원히 우리와 함께 계신다”

노수희의 방북 행적 & 이적단체 범민련 실체

  • 송홍근 기자| carrot@donga.com

“위대한 김정은 동지 만세! 김정일 영원히 우리와 함께 계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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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노수희, 방북 내내 북한 찬양 뒤 판문점 귀환
  • ●“통일방안 다른 문익환 목사를 안기부 프락치로 몰아”
  • ● 충격 받은 문 목사, 결국 화병으로 숨져
  • ● 범민련 남측본부는 골수 주사파만 남은 쇠락 조직
“위대한 김정은 동지 만세! 김정일 영원히 우리와 함께 계신다”

노수희 조국통일범민족연합 남측본부 부의장(왼쪽)이 6월 5일 판문점을 방문해 북한군 간부의 설명을 듣고 있다.

7월 12일 오전 11시 서울 영등포구 영등포동 조국통일범민족연합(범민련) 남측본부 앞 고가도로 밑. 남자 셋이 소주를 마시고 있었다. 범민련 사무실 근처에 사는 주민의 40%가량이 중국에서 건너온 이주노동자다. “범민련 사무실은 85m²(25평)로 보증금 2000만 원에 월세는 70만 원 정도”라고 한다. 아침부터 소주잔을 돌리던 이들은 “종북 놈들 탓에 동네가 한동안 소란스러웠다”고 말했다. 범민련 해체를 요구하는 보수단체가 이곳에서 시위를 벌였다.

노수희 범민련 남측본부 부의장(68·구속)은 104일간 북한에 체류하면서 김일성 일가(一家)를 찬양하다 7월 5일 판문점을 통해 돌아왔다. 군사분계선을 넘을 때 북쪽의 환송자들은 “리명박 역적 패당을 타도하라!”고 외쳤다. 북한 조국평화통일위원회는 이튿날 “역적 패당은 노 씨가 판문점 중앙분리선을 넘어서기 바쁘게 야수적으로 달려들어 짐짝처럼 끌고 갔고, 경기도 파주경찰서로 연행해 취조놀음을 벌이고 있다”고 비난했다. 노 부의장은 7월 7일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구속됐다.

기자가 찾아간 범민련 남측본부는 문이 굳게 닫혀 있었다. 김대중 전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만나는 장면이 담긴 대형 사진이 사무실 안에 걸려 있다고 이웃들은 말했다. 30, 40대 직원 5, 6명이 상근하고 있고 노인 열대여섯 명이 드나드는 것이 전부라고 한다. 한 이웃 주민의 설명이다.

“북한이랑 가까운 사람들이라는 것은 알고 있었어요. 7월 6일 당국이 압수수색할 때 경찰버스, 경찰차가 떼로 몰려와 북새통을 이뤘습니다. 재미난 게 그날 사무실에 있던 범민련 사람은 네댓 명밖에 안 됐다는 거예요. 노인네들은 그날은 안 나왔고요. 우파 할아버지들이 몰려와 ‘범민련 물러가라’고 시위를 했는데 그분들도 황당했을 거예요. 물러갈 사람이 몇 명 없었거든요.”

문익환 목사가 범민련 산파역

범민련 남측본부는 1991년 고(故) 문익환 목사 주도로 결성된 범민련 남측본부 결성준비위원회가 모태다. 초대 의장은 강희남 목사가 맡았다. 강희남 목사는 2009년 6월 7일 “이 목숨을 민족의 제단에 바친다”고 쓴 붓글씨와 “제2의 6월 민중항쟁으로 살인마 리명박을 내치자”라는 내용이 담긴 유서를 남기고 전북 전주시 자택에서 목을 매 자살했다. 강희남 목사 자살에 대해 당시 민주당은 “조국의 평화통일과 이 땅의 완성된 민주주의는 살아있는 죄스러운 우리들의 몫이 됐다. 우리는 당신이 못다 이룬 뜻을 이어갈 것”이라고 논평했다.

노수희는 올해 3월 13일 국회 귀빈식당에서 열린 야권연대 공동선언 행사에 참석했다. 민주통합당 한명숙 대표와 통합진보당 이정희·심상정·유시민 공동대표 등 당시 야권 지도부와 함께 기념사진도 찍었다. 노수희는 행사 참석 11일 뒤 중국 베이징을 통해 북한에 들어갔다. 민주당과 통진당은 노수희의 북한 체류 시 언행에 대한 논평을 지금껏 내놓지 않고 있다. 나이 지긋한 범민련 인사들은 이렇듯 진보진영에서 ‘원로’로 대접받고 있다. 범민련의 실체를 본격적으로 탐구해보기 전에 노수희가 북한에서 과연 어떤 발언과 행동을 했는지 살펴보자.

노점상연합서 출발한 노수희

공안당국에 따르면 노수희는 30대 후반인 1980년대 초부터 서울 종로구 세운상가에서 노점상을 했다. 1980년대 후반 민주노점상전국연합 간부를 맡으면서 노동운동에 뛰어들었다. 1993년부터 민주주의민족통일전국연합(전국연합) 산하 서울연합에서도 활동했다. 각종 시위 현장에서 물불 안 가리는 활약으로 유명했다. 1995년 범민련 남측본부 출범 때 참여하기 시작해 부의장까지 맡았고 남한에서도 친북 발언을 서슴지 않아 대표적인 종북세력이란 지적을 받아왔다.

노수희는 범민련 기관지 ‘민족의 진로’와의 인터뷰에서 “(1988년 노점상 생존권 수호대회를 계기로) 떼로 모여 싸우면 반드시 이긴다는 확신이 생겼다”고 말했다.

노수희가 3월 24일 중국을 통해 북한에 도착한 사실은 조선중앙통신을 통해 처음 알려졌다. 공안당국도 까맣게 몰랐다. 그는 도착하자마자 평양 만수대창작사 광장에 있는 김일성·김정일 동상에 참배·헌화했다. 이튿날엔 김일성광장의 김정일 초상화 앞에서 머리를 조아렸다. 헌화한 화환의 댕기에는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 동지는 영원히 우리와 함께 계신다’라는 문구가 씌어 있었다. 3월 26일엔 만경대·주체사상탑·개선문을 방문해 “(김정일) 국상 중에도 반(反)인륜적 만행을 자행한 이명박 정권을 대신해 조국 인민의 사과를 만경대에 정중히 사죄드립니다” “(개선문은) 하나하나가 과학적이고 구체적이고 체계적이고 역사적 의미까지 모든 게 얼마나 탁월하신 철학이십니까”라고 말했다. 김일성종합대를 방문해서는 전자칠판에 “주석님의 혼과 인민 사랑의 결정체 김일성대 민족의 산 교육장임을 영광으로 받아 안읍시다”라고 판서했다. 3월 29일 백두산 밀영(북한이 김정일 출생지로 선전하는 곳)에선 “인민을 위해 헌신하시던 김정일 장군님께서는 야전열차에서 순직하셨습니다. 그이와 같으신 분은 이 세상에 없습니다”라고 말했다.

북한 언론들은 노수희의 행각을 체제 선전 도구로 활용했다.

“로수희 부의장은 김정일 국방위원장님께서는 인민들의 먹는 문제에 이르기까지 깊은 관심을 돌리시였다고 하면서 그러한 령도자는 세상에 없다고 말하였다.”(3월30일자 민주조선)

“로수희 부의장은 북녘겨레가 동포애의 정으로 따뜻이 환영해주고 있는데 대하여 언급하였다. 그는 남북공동선언들의 리행을 위한 범민련 남과 북, 해외의 3자련대를 강화하여 자주통일의 새로운 국면을 열어나가는데 이바지할 것이라고 말하였다.”(4월5일자 노동신문)

“회의에서는 특히 동족의 최고 존엄과 체제를 심히 중상모독하면서 나라의 정세를 최악의 전쟁 접경에로 몰아가고 있는 리명박 보수세력의 악랄한 도발책동을 강력히 단죄 규탄하고 이를 반대하는 거족적인 투쟁에 해내외(국내외) 온 겨레가 한사람 같이 떨쳐나설 것을 열렬히 호소하였다.”(4월27일 조선중앙T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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