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무 피하려 재산 처분하는 ‘사해행위’
채권자취소권으로 원상복귀 가능하지만
은닉 재산 찾아야 하고 사해 의사도 증명해야
사해행위 대표적 사례가 친족·지인에게 부동산 팔기
급전 만들려 일면식 없는 사람에게 부동산 내놓기도
집주인 채무 확인 않으면 채권자취소권 소송으로 낭패 볼 수도

채무를 피하기 위해 자산을 숨기려는 사람의 모습. AI 이미지 생성
그런데 여기서 채무자가 돈을 갚을 능력이 없는 ‘무자력’의 경우에 문제가 발생한다. 무자력이란 채무자가 현재 가진 재산보다 갚아야 할 빚이 더 많은 채무초과 상태를 의미한다. 가진 재산보다 빚이 많으니 채권자가 승소 판결을 얻어 강제집행을 하려고 해도 처분할 재산을 찾기가 쉽지 않다. 채권을 변제받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이와 달리 채무자가 재산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채권자의 채권추심 또는 강제집행을 피하기 위해 일부러 재산을 빼돌리는 일도 있다. 돈을 갚지 않을 목적으로 재산을 은닉하는 사례다. 법적 용어로 다시 적자면 스스로 자력이 없는 상태를 야기하는 경우라 할 수 있다. 이를 법률 용어로 ‘사해행위’라고 한다. 가장 대표적인 경우가 바로 채무자가 부동산을 가족이나 지인에게 무상으로 양도(증여)하거나 부당하게 염가로 매각해 재산을 없애버리는 행위이다.
채권자취소권 발동 위한 네 가지 조건
앞서 설명한 것과 같은 부동산 처분행위가 사해행위로 인정되는 경우 채권자는 채무자의 부동산 처분행위를 취소하고 원상으로 회복할 수 있는 권리가 있다. 이것이 바로 ‘사해행위에 대한 채권자취소권’이다. 채권자취소권은 채무자가 악의적으로 채권자에 대한 변제를 회피하고 자신의 재산을 은닉하는 것을 방지하고자 우리 법이 마련한 채권자의 권리라고 할 수 있다. 최근 들어 경기침체, 불황으로 인해 채무불이행 사태가 빈번해지고 부도 및 파산이 증가하는 추세다. 그만큼 채권자취소권의 활용도도 높아지고 있다. 따라서 이번에는 채권자취소권을 행사할 수 있는 요건은 무엇이며, 실제 빈번하게 발생하는 관련 소송 사례와 그 대응 방안에 대해서 알기 쉽고 간략하게 설명하고자 한다.채권자취소권을 행사하기 위한 요건으로 첫째, 채권자의 채무자에 대한 채권이 존재해야 한다. 이를 ‘피보전채권’이라고 하는데, 알기 쉽게 설명하자면 채무자에게 받을 돈이 있으면 된다는 것이다. 빌려준 돈을 돌려받아야 하는 경우, 공사를 완공했는데도 공사대금을 못 받은 경우, 이혼에 따른 재산분할로 받을 돈이 있는 경우, 전세보증금을 돌려받아야 하는 경우 등 금전으로 돌려받아야 하는 경우라면 모두 이에 해당한다.
둘째, 객관적 요건으로서 사해행위가 있어야 한다. 사해행위란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채무자 스스로 자신의 재산을 감소시키는 행위로 인해 무자력 상태를 야기하거나 채무초과 상태를 심화시킨 경우를 말한다. 실제로는 그 형태가 굉장히 다양한데, 가장 일반적 사해행위 형태는 채무자 본인이 소유하고 있는 부동산을 자신의 가족이나 지인 등의 제3자(이를 ‘수익자’라고 한다) 명의로 이전해 은닉하거나, 고의로 그들을 채권자 명의로 해 근저당권을 설정하는 방법으로 재산적 가치를 하락시키는 경우다.
셋째, ‘채무자’ 및 채무자로부터 재산을 취득한 ‘수익자’의 사해 의사가 있어야 한다. ‘사해 의사’는 채무자가 자신의 행위가 채권자에게 손해를 끼칠 수 있음을 아는 일이다. 즉 재산을 숨겨서 채권자가 손해를 볼 수 있다는 사실을 안 것만으로도 사해 의사가 있다고 볼 수 있다. ‘채무자’의 사해 의사가 인정된다면 채무자로부터 재산을 취득한 ‘수익자’도 같은 사해 의사가 있었다고 본다.
넷째, 채권자취소권은 반드시 사해행위 사실을 알게 된 날로부터 1년, 실제 처분행위가 있은 날로부터 5년 내에 소송을 제기해야 한다. 위 기간을 준수하지 못했다면 채권자취소권의 요건 사실을 모두 입증했다고 하더라도 채권자는 권리를 구제받을 수 없게 되므로 유의해야 한다.
이와 같이 네 가지 요건을 모두 충족한 경우라고 한다면, 채권자는 자신의 권리를 보전하기 위해 채무자의 재산 처분행위에 대해 채권자취소권을 행사할 수 있다. 채권자취소권의 행사로 제3자 명의로 빼돌렸던 재산을 다시 원상회복시킬 수 있다. 회복된 재산은 채권자의 채권에 대한 변제로 활용할 수 있다.

채무를 피하려고 부동산을 자신의 가족이나 지인에게 무상으로 양도하거나 부당하게 염가로 매각하는 일도 있다. 사진은 서울 용산구의 한 공인중개사무소. 뉴스1
채무 피하려 일면식 없는 제3자에게 부동산 팔기도

경기 안산시 시화국가산업단지 한 골목에 채권 추심업체의 전단지가 붙어 있다. 일부 채무자는 채권추심을 피하기 위해 자신의 재산을 숨기기도 한다. 동아DB
사례 중 하나는 의뢰인이 전문 대부업체를 운영하는 사람이었다. 대부업체 광고를 보고 찾아온 사람에게 아무런 의심 없이 부동산을 담보로 근저당권을 설정하고 금전을 대여해 줬다. 대부업자인 의뢰인은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부동산의 담보가치를 꼼꼼히 살핀 후 이상이 없음을 확인하고 돈을 빌려줬다. 동시에 그 부동산을 담보로 해 근저당권을 설정했다.
그런데 나중에 알고 보니 그를 찾아온 그 부동산의 소유자가 이미 과다한 채무를 부담하고 있었다. 채무가 재산을 넘는 상황이었다. 자금 조달을 위해 대부업체를 운영하는 의뢰인을 급하게 찾아왔던 것이고, 의뢰인은 아무것도 모른 채 의심 없이 돈을 빌려주고 근저당권을 설정해 준 것이었다. 결국 그 부동산 소유자의 다른 채권자들이 이를 알고 의뢰인을 상대로 해 근저당권 설정행위가 사해행위라는 이유로 채권자취소 소송을 제기했다. 채권자의 존재조차 몰랐던 의뢰인이 위 소송에서 패소했다면 대여해 준 금전을 다시 돌려받기 어렵게 된다. 억울하고 곤란한 상황이었다. 이때 앞서 설명한 세 번째 요건인 사해 의사가 의뢰인에게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제반 사정을 통해 명확히 입증해 승소 판결을 이끌어낼 수 있었다.
부동산 살 때 원주인 부채도 신경 써야
또 다른 사례는 채무초과 상태인 오피스텔 소유자로부터 아무런 의심 없이 오피스텔을 매수하고 잔금까지 치른 의뢰인의 사건이다. 이 사건 역시 위 사례와 마찬가지로 의뢰인은 오피스텔 소유자와 일면식도 없는 생판 남이었다. 의뢰인은 오피스텔 매물을 알아보던 차에 저렴하게 나온 매물을 발견했다. 사해 의도를 전혀 파악하지 못한 채 오피스텔 매매계약을 체결한 뒤 매수 대금을 지급하고 등기까지 모두 완료했다. 그런데 갑자기 오피스텔 매도인의 일반채권자들로부터 오피스텔 매매가 사해행위라는 이유로 채권자취소 소송을 당하게 됐다. 그제야 오피스텔 매도인이 채무초과 상태라는 것을 알게 됐다. 이 매도인은 오피스텔을 팔아치워 당장 쓰기 쉬운 돈을 손에 넣으려 했던 것이다. 결국 위 소송에서 의뢰인은 오피스텔을 매수할 당시 상대방의 의도를 전혀 알 수 없었고, 따라서 사해 의사가 존재하지 않았다는 점을 집요하게 부각해 승소 판결을 이끌어낼 수 있었다.경기침체, 불황의 여파로 인해 채무불이행 사건이 늘고 있다. 채권자취소소송도 과거에 비해 현저히 늘었다. 따라서 채권자취소권의 요건이 무엇인지를 파악하는 것은 과거에 비해 훨씬 더 중요해졌다. 채권자취소권을 행사하려는 채권자뿐만 아니라 채무자 및 수익자 모두가 채권자취소소송에 대해 알아야 한다. 특히 수익자가 사해 의사가 전혀 없는 억울한 제3자라면 더욱 그러하다. 그런데 법률전문가가 아닌 일반인으로서는 사해행위로 인한 채권자취소권 행사 요건을 완전히 이해하는 것이 대단히 어려운 게 사실이다. 다만 이 글을 통해 개념 정도만이라도 충분히 숙지한다면 실생활에 유사한 상황이 발생한 경우 용이하게 대처할 수 있을 것이다.

● 1978년 출생
● 성균관대 법학과 졸업
● 서울남부지방법원 민사조정위원
● 국세심사위원회 전문위원
● 국토교통부 한국토지주택공사 건설공제조합 법률자문
● 現 HS법률사무소 대표변호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