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의 평범성, 본질은 ‘잔혹한 의도’ 아닌 ‘무사유’
주주 외면한 韓 기업, 피해 줄 의도는 없었지만…
저성장 장기화가 촉발한 국면 전환…밸류업 움직임
관성 깨뜨린 기업들, 한국 증시 변화 조건 갖춰

한국 기업이 자본과 주주의 의미를 다시 묻기 시작했다는 것은 한국 시장이 마침내 오래된 구조적 저평가의 경계를 넘어설 수 있는 조건을 갖추기 시작했다는 의미다. Gettyimage
1961년 4월 11일 이스라엘 예루살렘에서 아돌프 아이히만의 재판이 열렸다. 정치철학자 한나 아렌트는 재판 기록을 신문에 연재했고, 1965년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이란 책으로도 발간했다. 거대한 악의 본질이 ‘극단의 사악함’이 아닌 ‘무사유’에 있다는 아렌트의 주장은 낯설었고, 강한 비판마저 받았다. 하지만 우리는 일상에서 매번 이를 확인한다. 성실한 악인, 즉 “명령은 무조건 따라야 한다”는 관성에 머물러 있는 사람을 주변에서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주주 외면한 韓 기업, 피해 줄 의도는 없었지만…
많은 직장인은 일을 잘하고 싶어 하고, 나아가 자신의 성과를 인정받길 원한다. 하루하루 상사의 지시를 따라 주어진 일을 성실히 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그러나 아렌트는 바로 이 지점에서 위험을 감지한다. ‘생각 없이 따르는 성실함’, 즉 스스로 판단하지 않은 채 지시를 그대로 이행하는 태도가 사람을 ‘악인’으로 만들 수 있다고 지적한 것이다. 아이히만은 홀로코스트의 핵심 실무자였음에도 법정에서 줄곧 “상부 지시를 따랐을 뿐”이라고 해명했다. 아렌트는 성실하게 근무하던 아이히만이 악인이 된 이유 역시 무사유에 있음을 간파했다. 아렌트의 문제의식은 ‘악의 평범성’이라는 개념으로 요약된다.아렌트의 글은 언제 읽어도 새롭다. 그녀는 악의 본질을 ‘잔혹한 의도’에서 찾지 않았다. 대신 인간이 ‘생각하는 능력을 멈출 때’ 일어나는 위험으로 바라봤다.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은 단순한 무지나 가벼움이 아니다. 스스로에게 질문을 멈추고, 오래 굳어진 관행을 더는 의심하지 않는 상태다. 악의 평범성이 가리키는 지점이다. 자신의 성취를 위해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생각이 악이고, 이 과정에서 타인에 대해 생각하지 않은 것도 악이다.

홀로코스트 집행 핵심 관계자인 아돌프 아이히만(가운데)이 1961년 이스라엘 법원에서 재판을 받고 있다. Gettyimage
애당초 한국 기업은 주주를 중심에 둘 수 있는 환경에서 출발하지 않았다. 산업화 초기 기업의 역할은 명확했다. 수출을 늘리고, 고용을 만들고, 국가 산업을 키우는 것이다. 자연스럽게 기업의 시선은 정부와 은행을 향해 있었다. 자본시장은 아직 작았고, 기업이 주식을 발행해 성장 자금을 조달하는 시대도 아니었다. 주주는 경영의 핵심이 아니라 주변부였다. 기업이 주주를 바라봐야 할 이유가 애초부터 존재하지 않았던 것이다.
1997년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는 이러한 구조적 배경을 강화했다. 위기를 겪은 기업은 “현금을 쌓아야 산다”는 생존 원칙을 내면화했다. 반복될 수 있는 위기에 대한 두려움 속에서 배당은 사치처럼 인식됐다. 주주에게 이익을 돌려주는 것보다 유보금을 늘리는 것이 ‘건전한 경영’으로 여겨졌고, 많은 기업은 이 철학을 20년 넘게 유지해 왔다.
재무 이론에 따르면 기업가치는 자본을 얼마나 효율적으로 사용하는지에 따라 결정된다. 그러나 한국 기업은 효율성보다 안전성을 중시했다. 현금을 활용하기보다 보유하는 것, 자본을 움직이는 것보다 지키는 것이 당연한 선택처럼 굳어졌다. 주주 이익보다 기업의 내일, 그리고 다가올지 모르는 위기가 더 중요한 시대였다.
여기에 후진적 거버넌스 구조의 문제도 있었다. 한국 기업은 소유와 경영이 강하게 결합된 독특한 구조를 갖고 있었다. 오너 중심 체제는 빠른 성장과 의사결정에는 유리했지만 주주의 참여를 자연스럽게 배제하는 결과를 낳았다. 이사회와 감시 기능이 성숙하기까지도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 기업이 주주를 경영의 파트너로 바라보지 않았던 것은 단순한 무지나 태만이 아니라, 오랜 기간에 걸쳐 형성된 환경과 관행의 결과였다.
기업이 일부러 주주를 해치려 한 것은 아니었을 테다. 그러나 주주를 전혀 생각하지 않은 기업의 관행은 결국 주주에게 ‘악한 행동’이 됐다. 아렌트의 말처럼 생각하지 않는 것이 곧 악이 된다면, 한국 기업의 오랜 관성은 주주에게 ‘악’으로 이어진 셈이다. 그래서 한국 기업은 종종 “악한 기업”이라 불릴 수밖에 없었다.
저성장 장기화가 촉발한 국면 전환…밸류업 움직임
문제는 시대가 바뀌었다는 점이다. 저성장 국면이 길어지고, 자본의 활용 능력이 기업가치를 결정하는 기준으로 자리 잡으면서, 과거처럼 현금을 쌓아두는 방식만으로는 시장의 신뢰를 얻기 어려워졌다. 이 변화된 환경 속에서 ‘밸류업’이라는 논의가 등장했다. 흥미로운 것은 이 흐름이 한국에서 처음 시작된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10여 년 전 일본은 거의 비슷한 문제를 먼저 마주했고 해법을 모색해 왔다.일본 기업은 오랫동안 낮은 성장, 보수적인 재무 운영, 과도한 내부 유보라는 문제를 안고 있었다. 자기자본이익률(ROE)은 선진국 대비 낮았고, 자본은 장부 안에 머물렀으며, 기업은 주주환원에 인색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한국 기업이 받아온 비판과 놀랍도록 닮아 있었다. 결국 일본은 이를 더는 방치할 수 없다는 판단 아래 2013년 ‘스튜어드십 코드’를 도입했다. 기업이 자본을 어떻게 쓰는지, 경영진이 어떤 기준으로 의사결정을 하는지, 주주의 권리가 어떻게 반영되는지를 공개적으로 설명하도록 요구한 것이다.
결정적 전환은 2023년에 나왔다. 도쿄증권거래소는 상장기업에 주가순자산비율(PBR) 1배 미만이면 사업전략과 자본 정책을 개선할 것을 요구했다. 이 조치는 일본 기업의 장부 속에 고여 있던 자본을 움직이게 만들었다. 기업은 자사주를 소각했고 배당을 늘렸으며, 사업 포트폴리오를 정리하는 등 효율성 기준을 명확히 하기 시작했다. 그 결과 닛케이225지수는 30년 만에 최고점을 돌파했고, 일본 기업의 시장가치 또한 구조적으로 재평가받기 시작했다. 일본이 갑자기 혁신적으로 변해서가 아니라, 오랫동안 하지 않던 질문을 드디어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한국의 밸류업 정책은 일본의 흐름과 닮아 있으면서도, 우리 경제가 가진 특수성을 반영해 조정되고 있다. 우선 금융위원회와 기획재정부는 기업의 자본 활용에 대한 공시를 강화하고, 장기간 낮은 PBR을 유지한 기업에 개선 계획 제시를 요구하도록 방향을 잡고 있다. 동시에 상법 개정이 추진되고 있으며, 이사회 독립성 강화 및 집중투표제 실효성 제고, 소액주주 권리 확대 등의 방식으로 기업의 내부 의사결정 구조가 변화하고 있다. 이는 과거와 같은 오너 중심, 내부자 중심의 구조를 점진적으로 완화하려는 시도다.
여기에 세법 개정이 결합하면서 자사주 소각 시 세제 혜택을 부여하거나, 장기투자자에 대한 배당소득세 부담을 완화하는 논의가 진행되고 있다. 기업이 주주환원을 선택할 이유를 만들어주는 동시에, 시장이 기업에 요구할 수 있는 근거를 마련하는 것이다. 또한 자본시장법 개정을 통해 자사주 활용 규제를 정비하고, 지배력 유지 수단으로 사용되던 자사주 보유 관행을 줄이며, 소각 중심으로 전환하려는 움직임도 나타나고 있다. 국민연금을 포함한 기관투자자의 스튜어드십 코드 적용 범위 역시 넓어지고 있다. 시장의 감시와 기업의 책임이 동시에 강화되는 구조가 만들어지고 있는 셈이다.
관성 깨뜨린 기업들, 한국 증시 변화 조건 갖춰
과거 한국 기업이 주주에게 ‘악한 기업’처럼 보인 이유는 나쁜 의도가 있었기 때문이 아니라 관련 생각이 부재한 데 있었다. 기업은 주주를 중심에 둬야 한다는 질문을 해본 적이 거의 없고, 그 질문을 던지는 사람도 없었다. 주주는 투자해도 얻는 것이 없다는 회의감 속에서 시장을 떠나기 일쑤였고, 한국 시장은 구조적 저평가라는 오명을 안았다. 이른바 ‘코리안 디스카운트’는 기업이 주주를 생각하지 않은 시간만큼 길게 이어졌다.이제는 다르다. 거버넌스 개혁이라는 이름 아래 기업들은 처음으로 자본을 어떻게 쓰고 있는지, 주주에게 무엇을 돌려주고 있는지, 기업가치를 어떻게 높일 수 있는지 질문을 받기 시작했다. 투자자들도 잉여현금흐름(FCF)를 한층 중시하며 가치판단에 나서고 있다. 벌어들인 돈에서 추가 수익을 얻기 위한 투자(CAPEX)를 뺀 나머지는 주주에게 나눠줘야 한다는 생각이 자리잡혀 가고 있다. 기업 스스로도 앞선 질문을 고민하기 시작했다. 오랫동안 굳어 있던 관성이 서서히 깨지고 있으며, 주주를 바라보는 시선도 조금씩 달라지고 있다. 생각하지 않던 기업이 생각하기 시작한 것이다.
기업이 오랜 시간 멈추고 있던 ‘생각’을 다시 시작한 지금, 시장 역시 변화를 준비하고 있다. 아렌트가 말했듯 악은 거대한 악의에서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질문을 멈추는 순간 모습을 드러낸다. 반대로 말하면 질문이 다시 시작되는 순간 변화도 뒤따른다. 한국 기업이 자본과 주주의 의미를 다시 묻기 시작했다는 것은 한국 시장이 마침내 오래된 구조적 저평가의 경계를 넘어설 수 있는 조건을 갖추기 시작했다는 의미다.
결국 아렌트가 말한 “생각하지 않는 것이 악이다”라는 문장은 한국 기업의 지난 시간을 설명하는 가장 단순한 규정이기도 하다. 주주를 중심에 두지 않은 것은 악의가 아니라 생각의 부재였다. 그런데 이제 질문한다. 기업이 그 질문을 다시 시작하고 있다면, 시장 역시 과거의 관성대로 머무르지 않을 것이다. 따라서 한국 증시 역시 더는 과거의 잣대로 바라봐서는 안 된다. 질문이 시작됐다. 투자자도 자신의 생각으로 답해야 할 때다.

● 1967년생
● 前 LS증권 리테일사업부 대표
● 저서: ‘한국형 탑다운 투자 전략’ ‘주식의 시대, 투자의 자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