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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변혁의 교육현장 ⑥

디지털로 중무장한 IT교육의 신흥메카

동명정보대학교

  • 김기영<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 hades@donga.com

디지털로 중무장한 IT교육의 신흥메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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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교생과 교직원이 ‘컴도사’인 곳, 대한민국 최고 성능의 슈퍼컴퓨터가 버티고 있는 막강 디지털 파워. 동명정보대학교가 바람을 일으키고 있다. 취업률 전국최고, 전국대학평가 3부문 1위. 지방의 신생대학이라는 한계를 극복한 동명정보대가 지닌 경쟁력의 비밀은 무엇일까.
디지털로 중무장한 IT교육의 신흥메카
‘동명정보대학교’. 교명(校名)부터 미래지향적인 이 대학의 캠퍼스에 들어서면 뜻밖에도 토속적 조형물들을 만나게 된다. 천하대장군(天下大將軍)과 지하여장군(地下女將軍) 두 장승이 그것. 옛날 마을 어귀에 버티고 서서 재앙을 물리치는 수호신 노릇을 했다는 장승을 IT분야 전문 인력을 양성하는 정보화 특성 대학의 정문에서 만나는 순간, 방문객들은 잠시 어리둥절해진다. 그뿐 아니다. 학교 진입로 좌우에는 경주의 신라 고분에서나 볼 법한 12지신 석상이 버티고 있다. 학교측은 이 길을 ‘십이지신(十二支神)거리’라고 이름지었다.

부산시 남구 용당동 용마산 자락에 자리잡은 9만3135㎡의 그리 넓지 않은 교정이지만 토속적 분위기를 느낄 만한 곳이 이 밖에도 여러 곳 있다. 복합강의동 앞에 자리잡은 ‘애두름공원’과 그 앞의 ‘선비골약수’는 규모는 작지만 아기자기한 정취를 느끼게 한다. 1996년 3월 개교한 신생대학답게 현대식 건물이 우뚝 솟아 있지만 구석구석 자리잡은 이런 문화공간들은 정보와 기술의 주인이 사람이며, 곧은 심성의 사람을 키우는 것이 대학교육의 목적임을 다시 한 번 깨닫게 해준다.

커뮤니케이션이 잘되는 학교

그러나 십이지신거리와 애두름공원, 정문의 장승 등을 놓고 동명정보대 내부에서는 논란이 있었다고 한다. 십이지신상에 대해 학생들 가운데는 “미신이다” “밤길에 그 앞을 지날 때 무섭다”는 의견을 교내 인터넷 게시판에 올리기도 했다. 애두름공원이나 장승에 대해서도 ‘예산낭비’라는 불만이 있었다고 한다. 그런데 이에 대한 학교측의 대응이 흥미롭다. 일부의 의견이라며 묵살하는 것이 아니라 인터넷 게시판을 활용해 적극적으로 이를 해명하고 오해를 풀어나가는 방식으로 학생들을 설득했던 것이다.

학생들의 불만에 학교측이 즉각 답하고, 고칠 것은 고치고 학생들을 설득할 필요가 있으면 적극 설득하는 민주적 학풍이 자리잡고 있는 대학, 동명정보대는 내부 구성원끼리의 커뮤니케이션에 관한 한 막힌 곳이 없다. 이런 남다른 교풍은 어디서 비롯된 것일까.

동명정보대를 이해하려면 건학의 모태인 학교재단을 알아야 한다. 학교재단이 어떤 마음가짐으로 대학을 설립하고 꾸려가는지를 파악하는 것이 그 대학을 제대로 이해하는 지름길이다.

1980년까지 부산 경제를 이끈 동명목재그룹의 회장인 고(故) 강석진 회장이 사재를 출연해 설립한 동명문화학원은 1970년대 말 이미 동원공업고등학교(현 동명정보공업고등학교)와 동원공업전문대학(현 동명대학)을 세워 부산의 대표적 사학재단으로 자리잡았다.

1984년 작고한 강석진 동명문화학원 초대 이사장은 생전에 4년제 대학을 설립하는 것이 꿈이었다. 1978년 동원공고를, 이듬해인 1979년 동원공전을 설립한 데 이어 강이사장은 지역 상공인들의 요구를 받아들여 4년제 대학인 부산외국어대학 설립을 구상하고 이를 추진해 나갔다.

그러나 뜻하지 않은 일로 4년제 대학 설립의 꿈을 잠시 접어야 했는데 1980년 7월 동명목재의 도산이 그것이다. 동명문화학원이 발간한 ‘동명문화학원 20년사’에는 동명목재상사 부도 당시를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동명목재의 도산

“1980년 5월, 5·17, 5·18사태로 계엄령이 선포되면서 동빙(凍氷)의 계절로 되돌아가는 형국이었다. 이러한 정치적 격변은 신군부가 새로운 국가목표와 정치적인 지도이념을 내세워 이 목표와 이념 아래 정치적인 신질서 수립이라는 명분으로 국가보위비상대책위원회(국보위)라는 초헌법적 기구를 설치하고, 이 국보위가 국정 전반을 전단하는 형세였다.

국보위에서는 6월 초 정계의 숙정작업을 일단 마무리한 다음 우리 사회 일각에서 지탄받고 원성이 높았던 ‘기업은 망해도 기업인은 산다’는 정경유착적 모리정상배의 비리와 부조리를 바로잡고 반사회적 악덕기업인을 척결한다는 명분하에 그 대상의 하나로 동명목재상사 사주 가족의 재산을 조사하기로 결정했다. 이에 따라 강석진 사장, 부인 고고화씨, 아들인 강정남 사장 세 사람을 보안사 부산지부로 연행 구금한 후 가택수색과 함께 동명목재상사 임직원을 연일 연행해 신문했다.

6월21일 보안사는 강석진 사장 일가족 세 사람의 보유주식과 주식 판매대금 중 사용잔액 18억원을 압류 처분하였다. 이로 인해 회사의 만기어음과 수표결제자금이 고갈되어 6월26일 주거래은행인 제일은행이 동명목재상사를 부도처리하였다. 너무나 전격적이고 부당한 처사라 망연자실하면서도 7월16일, 강석진 사장과 강정남 동명산업 대표이사의 연명으로 기필코 자력으로 회사를 살려 정상적으로 운영하겠다는 진정서를 국보위 상임위원장 전두환 장군 앞으로 보냈다. 그러나 국보위에서는 이를 아랑곳하지 않고 7월26일 동명목재 및 계열사에 대한 최종 부도처리 대책을 일방적으로 발표했다.”

당시 동명목재의 부도처리를 둘러싸고 구구한 소문이 나돌기도 했다. “강직한 성격의 소유자인 강석진 이사장의 외고집이 신군부의 비위에 거슬렸다”는 풍문이 그 대표적인 예. 강이사장의 아들인 강정남씨는 1988년 청와대와 국회 5공비리 청문회에 제출한 청원서와 동명처리 전말서에서 “강석진 회장이 악덕기업가로 지목되어 표적조사를 받게 된 이유는 당시 부실기업의 하나로 정부에서 골머리를 앓고 있던 경상남도 거제의 옥포조선소와 서울 명문사학의 하나인 성균관대학교의 부실한 재단을 동명목재가 인수, 경영하라는 정부고위기관의 요청을 받아들이지 않은 것이 가장 큰 빌미였다”고 진술했다.

4년제 대학 설립을 눈앞에 두고 외부요인으로 좌절된 고 강석진 이사장의 꿈은 후진들에게 이어졌다. 강이사장이 사망한 후 동명문화학원은 장상문 2대 이사장에 이어 3대 강기수 이사장, 4대 배명인 이사장으로 이어져 오늘에 이르고 있다. 그리고 1993년에는 1980년 이후 동명문화학원의 숙원사업인 4년제 대학 설립을 인가받았고 3년여의 치밀한 준비 끝에 1996년 동명정보대학교를 설립하고 첫 입학생을 맞아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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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영<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 hade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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