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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발기

“생사람 잡는 장기 기증 남이 한다면 말립니다”

어느 뇌사자 가족이 겪은 ‘분노의 7일’

  • 정호재 <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 demian@donga.com

“생사람 잡는 장기 기증 남이 한다면 말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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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스물다섯 생때같은 젊은이가 사고를 당해 소생불능 상태에 빠졌다. 가족은 슬픔을 억누르고 장기 기증 의사를 밝혔다. 바로 그날부터 가족들의 고통이 시작됐다. 장기 기증자 가족이 “제발 장기를 기증할 수 있게 해달라”고 애원하는 현실, 장기 기증자를 한없이 지치고 무기력하게 만드는 현실 앞에서 가족들은 할말을 잃었다. 도대체 왜 이런 일이 일어나는가.
지난 4월16일, 공주대학교 특수교육학과에 재학중이던 김한별(25)씨는 친구들과 술을 마시고 귀가하다 담벼락 모서리에 머리를 부딪혔다. 친구들은 쓰러진 김씨가 술에 취해 잠든 것으로 알고 자취방으로 데려가 눕혔다. 다음날 아침, 의식을 회복하지 못한 김씨는 공주 근처의 한 병원으로 옮겨졌고 상태가 심각해 대전 을지대학병원으로 다시 이송됐다.

뇌출혈이었다. 뇌 속엔 이미 상당한 양의 피가 차 있었다. 골 절제술과 혈종제거술을 받았지만 급격하게 소생불능 상태로 접어들었다.

인천이 고향인 김씨는 장애아들을 돌보는 데 평생을 바치기로 결심하고 공주까지 가서 특수교육학을 공부하던 건강한 젊은이였다. 가족들은 큰 충격을 받았지만, 언제까지 슬퍼하고 있을 수만은 없었다. 그래서 김씨가 사회봉사에 헌신하고자 했던 뜻을 살리기 위해 가족회의 끝에 장기기증을 결심했다. 아직도 숨을 쉬고 있는 사람을 너무 쉽게 떠나보내는 것 같아 마음이 아팠지만, “이런 상태의 환자는 뇌사로 진행될 뿐 살아날 가망이 없다”는 의사의 판단에 따라 마음을 다잡았다.

‘뇌사’란 말 그대로 뇌의 기능이 정지한 것. 이때 뇌기능은 단계적으로 상태가 나빠지기 때문에 뇌는 의학적으로 죽었지만 기계를 사용해 신체의 호흡은 가능하게 만들 수 있다. 물론 기계의 작동을 멈추면 호흡도 멈춘다.

이에 비해 ‘혼수상태’는 일시적인 뇌기능 장애로 신체활동을 잠시 멈춘 단계며, 식물인간 상태란 대뇌는 정지했지만 호흡을 담당하는 간뇌가 살아있어 스스로 호흡이 가능한 단계다. 따라서 이런 상태에서는 뇌사로 진행될 수도 있고 깨어날 수도 있다.

김씨의 경우 뇌 전체에 심각한 장애가 있었고 사고 직후 신속한 치료를 받지 못해 회복시기를 놓쳤다. 그래서 뇌가 심각하게 손상되어 회복가능성이 거의 전무한 소생불능판정을 받은 것이다. 소생불능 상태에서 뇌사에 이르는 데는 짧게는 몇 시간에서 길게는 일주일 이상이 걸린다. 따라서 뇌사자 장기기증의 성공여부는 뇌사판정 전후에 관련 전문가들의 판단과 의료진의 대응에 달려 있다.

장기, 주고 싶어도 못 준다?

김씨의 매형이 가족 대표로 나섰다. 직계가족은 이런 상황에서 평상심을 유지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는 우선 코노스(국립장기이식관리센터, KONOS·Korean Network for Organ Sharing)에 전화를 걸어 필요한 절차와 준비사항을 챙기기 시작했다.

뇌사자는 심장이 멈춘 상태가 아니므로 ‘객관적 죽음’의 상태가 아니다. 그래서 뇌사자의 장기를 기증하려면 전문가의 판단이 개입돼야 하며, 의사결정을 본인이 아닌 가족이 대신하므로 행정적인 절차도 매우 까다롭다. 우선 뇌사자 직계가족 2명의 동의가 없으면 장기이식은 불가능하다. 가족을 잃은 마당에 신원확인을 위해 호적등본을 떼러 들락거려야 하는 것이다.

이런 사실을 미리 알고 있던 김씨의 매형은 소생불능판정이 나기 전에 신속하게 서류를 준비해 주치의에게 장기기증 의사를 밝혔다. 하지만 서류만 갖췄다고 일이 끝난 것은 아니었다. 주치의는 이렇게 답했다.

“저희 병원에선 뇌사판정만 할 수 있지, 장기적출수술은 불가능합니다. 코노스와 상의해서 수술이 가능한 근처 병원으로 옮기도록 하겠습니다.”

코노스는 장기의 ‘공정한 배분’을 원칙으로 한다. 1990년대 한때 장기이식수술이 특정 대형병원에 몰려 그 절차가 투명하게 관리되지 않자 전국을 3권역으로 나눠 코노스가 당직병원 순번 대로 뇌사자의 수술을 맡기도록 한 것이다. 이는 의료계의 균형있는 발전과 장기이식 대기자를 통합 관리하기 위한 방법이다. 이에 따라 서울과 경기지역을 제 1권역, 충청남·북도와 전라남·북도를 2권역, 강원도와 경상남·북도를 3권역으로 나눴고, 장기적출 의료기관(HOPO·Hospital-based Organ Procurement Organization)으로 지정된 일정 기준 이상의 병원에서만 장기적출수술을 할 수 있도록 규정했다.

김씨가 누워 있는 병원은 대전이고 고향은 인천이었다. 그런데 코노스는 순번에 따라 전북 익산의 원광대학병원에서 수술을 받으라고 통보했다. 가족들은 “연고도 없는 곳에 가서 수술을 받는 게 말이 되냐”고 항의하며 “차라리 인천으로 보내달라”고 호소했다. 하지만 코노스는 “인천지역에는 준비된 병원이 없다”고 했다. 인천지역 병원에 순번이 돌아오려면 멀었기 때문이다.

HOPO로는 1권역에 13개, 2권역에 4개, 3권역에 5개 등 모두 22개의 종합병원이 선정돼 있다. 대전·충청지역에서는 충남대학병원이 HOPO로 지정돼 있었으나 지난해 의약분업관련 파업 때 이 병원이 제기능을 못했다는 이유로 지정병원에서 제외됐다. 그래서 대전·충청지역에는 장기적출수술을 할 수 있는 병원이 한 곳도 없었다.

병원 처지에선 이런 조치가 아쉬울 게 없다. 장기적출수술은 그리 달가운 일이 아니다. 그 병원 환자에게 줄 장기를 적출하는 것도 아니고 단지 코노스에서 순번을 정해주는 대로 수술만 할 뿐이기 때문. 게다가 여러 명의 의사가 뇌사자 옆을 떠나지 않고 모니터링해야 하는 등 병원으로선 한마디로 수지 맞지 않는 장사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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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호재 <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 demia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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