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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숨은 인권운동가 ⑦

“안경 쓰는 것과 휠체어 타는 게 뭐가 다릅니까?”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 신용호 사무국장

  • 정호재 demian@donga.com

“안경 쓰는 것과 휠체어 타는 게 뭐가 다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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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400만명이 넘는 장애인들이 오늘날 미흡하게나마 누리고 있는 복지는 그저 주어진 게 아니라 쟁취한 것이다.
  • 그 ‘싸움판’의 핵심에 신용호라는 인물이 있다. 브레인이자 행동가로 장애인복지법 개정과 장애인고용촉진법 제정의 산파 노릇을 해온 그는 장애인 운동의 ‘젊은어른’이다.
“안경 쓰는 것과 휠체어 타는 게 뭐가 다릅니까?”

신용호 사무국장

태풍 ‘루사’가 한반도를 할퀴던 날,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 신용호(41) 사무국장은 잠을 이루지 못하고 뒤척였다. 이윽고 날아온 소식. 충남 서산의 ‘함께걸음농장’이 큰 수해를 입었다는 내용이다. 중증 장애인 30여 명이 손수 농장을 가꾸고 기러기와 닭 등을 키우며 홀로서기를 하고 있는 곳이다.

“이 농장과 부천에 있는 세차장, 그리고 광주의 재활용 공장에서 중증 장애인들이 취업해 일하고 있습니다. 정식으로 고용했기 때문에 월급도 주고 4대 보험 혜택도 제공합니다. 장애우들이 일을 통해 자립, 공동체생활을 복원하는 게 목적입니다. 경제성요? 능력에 따라 일하고 필요한 만큼 쓰면 부족하지 않습니다.”

서해안 고속도로를 타고 부리나케 달려가 보니 서산군 호서대 앞에 자리한 농장은 엉망이 되어 있었다. 밤새 몰아친 비바람에 오리새끼 3000마리가 저체온증에 떨다 죽었고, 정성스레 세운 비닐하우스와 울타리도 죄다 무너졌다. 감나무들은 뿌리째 뽑혀 여기저기에 나뒹굴었다. 몇몇 장애인들이 망치를 들고 울타리를 손보고 있었다. 팀장 김태웅씨는 신국장에게 담담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한 마리에 7000원씩 치면 2000만원쯤 피해가 났겠어요. 작년에는 배추값이 폭락해 헛농사를 지었나 싶더니 올해는 태풍이 속을 썩이네요. 어제 밤새도록 장애우들과 하우스 지붕을 붙잡고 있었는데 도저히 버틸 수가 없어 포기했어요.”

힘들게 가꿔온 삶의 터전이 하룻밤새 허물어졌으니 망연자실할 법도 한데, 일하는 이들의 낯빛은 그리 어둡지가 않았다. 왁자하게 이곳저곳을 함께 오가며 망치질을 하고, 간간이 시원스런 웃음까지 터뜨리며 점심을 먹는 정경은 자잘한 일상에 일희일비하며 사는 이에겐 충격적이기까지 했다.

기자의 그런 심정을 눈치챘는지, 신국장이 낮은 목소리로 상황설명을 한다.

“이 정도는 시련이라고 할 수도 없어요. 다시 일하면 되는 거니까. 중증 장애인도 얼마든지 열심히 일해서 사회에 설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해오지 않았습니까. 그러니 이번에도 우리 스스로 일어서는 모습을 보여줘야죠. ‘땅에서 넘어진 자, 땅을 짚고 일어서라’는 보조선사의 격언도 있잖아요.”

장애인 인권운동의 선봉

장애인에 대한 편견과 차별에 맞서 싸운 험한 여정에 밀알이 된 사람들의 희생은 헤아릴 수 없이 많지만, 1987년에 문을 연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의 역할을 빼놓을 수 없다. 장애인의 복지 향상을 위한 전문가들의 모임으로 출발한 이 연구소는 장애인에 대한 정책적 배려와 인권 수호를 위해 헌신해온 장애인운동의 중심축이다. 이곳의 살림을 꾸리는 이가 바로 신용호 국장이다.

“제가 가진 장애를 장애라고 하기엔 좀 쑥스럽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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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호재 demia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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