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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등 코드’를 찾아서 <마지막 회>

대한민국 석공예 명장 백남정

최고 석공의 비결은? 돌을 볼 때 황금 보듯이 하라

  • 공종식│동아일보 산업부 기자 kong@donga.com│

대한민국 석공예 명장 백남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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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목재로 만든 문화재는 세월과 함께 사그라진다. 불에 타서 흔적도 없이 사라지기도 한다. 반면 돌로 만든 작품은 장구한 세월을 견뎌낸다.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석탑인 미륵사지석탑은 백제 말기 무왕 재위 때인 600~640년에 건립됐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름 모를 백제 석공의 땀방울이 1400년을 버틴 것이다. 지금도 우리 사회에는 돌을 쪼는 석공들이 있다. 지난해 대한민국 석공예 명장으로 지정된 백남정 미술석재 대표도 그중 한 명이다.
대한민국 석공예 명장 백남정
정부는 현재 명장(名匠)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명장제도는 해당분야에서 최고의 기능을 갖추고 산업현장에서 장기간 종사해 기술 발전에 크게 공헌하고 맡은 분야에서 부가가치를 창출해 생산성 향상에 기여한 기능인을 선정해 포상하는 제도다. 정부는 지난해의 경우 12명의 기능인을 ‘대한민국 명장’으로 선정해 발표했다.

백남정 미술석재 대표는 당시 석공예부문 명장으로 선정됐다. 그를 만난 것은 3월3일이었다. 장소는 경기도 포천에 있는 그의 작업실. 서울에서 자동차로 두 시간 걸리는 곳에 자리 잡은 그의 작업실은 개장을 준비 중이어서 아직 간판도 걸리지 않은 상태였다. 간판작업을 하고 있는 그를 만날 수 있었다.

석공예 명장이라면 나이는 60이 넘고, 전통의상을 입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기자의 편견은 그를 보는 순간 깨졌다. 그의 나이는 49세였다. 석공예 경력이 34년이 넘는다는데…. 그를 만나자마자 명장인데 왜 이렇게 나이가 젊은 편인지를 물었다.

“지금까지 배출된 석공예 명장 중에서 제가 가장 젊은 편입니다. 별다른 이유는 없어요. 다만 다른 사람보다 훨씬 일찍 석공예 일을 시작했고, 평생 한눈 팔지 않고 석공예 일만 해왔을 뿐입니다.”

충남 보령 출신인 그는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서울에서 석공예 일을 시작했다고 했다. 초등학교를 졸업한 나이에 힘든 석공예 일을 했다는 게 믿어지지 않았다. 요즘 제3세계에서 논란이 되고 있는 ‘아동 노동’을 한 셈이다.

“초등학교를 졸업한 뒤 상급학교에 진학을 해야 하는데 그때 저희 가정형편이 너무나 어려웠습니다. 1년을 집에서 쉬고 있었는데 집안 형님 중에서 두 분이나 돌질을 했어요. 그때만 해도 석공예 제품에 대해 국내 소비는 거의 없어서 대부분 일본 수출을 겨냥해서 석공예 제품을 만들었습니다. 저는 일본 수출용 석공예 제품을 만드는 회사에서 일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아무리 집안이 어렵다고 해도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돌 다루는 일을 한다는 것이 조금 이상한 것 아니냐”고 묻자, 그는 “당시는 특별한 일도 아니었어요. 저 같은 사람이 많았어요”라며 대수롭지 않다는 듯이 답했다.

▼ 일반인 중에는 석공예에 대해 잘 모르는 사람도 있습니다. 석공예는 정확히 어떤 일을 하는 것인가요.

“쉽게 말하면 전에는 석공예가 절구 다듬이돌 맷돌 등 집에서 쓰는, 돌로 된 제품을 가리켰어요. 그런데 지금은 범위가 넓어졌습니다. 돌을 다루고 돌로 조각하는 것을 모두 석공예라고 합니다. 요즘 들어 아파트 조형물에도 석공예를 많이 사용하는 추세입니다. 그리고 돌로 된 조각 제품도 석공예로 분류합니다.”

초등학교 졸업 후 시작한 석공예

그는 고향을 떠나 석공예 기술을 배운 날짜를 지금도 정확히 기억했다.

“제가 학교를 아홉 살에 들어가서 열여섯 살(만 나이로는 15세)이 되던 해 음력 2월16일이었습니다. 보름 다음날 올라왔어요. 당시 옷 한 벌을 가지고 버텼는데, 한 달이 되자 옷이 다 해어졌어요. 고생을 좀 하긴 했지요. 그래도 견딜 만했어요.”

백씨가 말하는 방식이 항상 이랬다. 남 보기에는 분명히 큰 고생을 하고, 어려움을 겪었어도, “어려운 시절, 다른 사람도 했던 일이며, 항상 만족하며, 행복해하고 있다”고 여러 차례 강조했다.

그래서 인터뷰 도중에 기자가 고생한 이야기를 자연스럽게 끌어내기가 쉽지 않았다. 그래서 아예 “기사에 필요하다, 고생한 이야기 좀 해달라”고 대놓고 요청했다.

“고생요? 그때는 모두가 힘들었어요. 저는 선생님 집에서 숙식을 하며 일을 배웠어요. 그런데 저에게 석공예를 가르쳐주던 선생님도 단칸방에 살고 있었는데 아이가 있었어요. 그래서 저는 다락방에서 잤어요. 얼마나 추웠던지, 밤마다 방 안에 성에가 끼었어요. 매일 12시간 이상씩 일을 했습니다. 한 달에 두 번 정도 쉬었는데 월급이 500원인가, 아니면 1000원쯤 됐을 겁니다. 그 돈을 가지고 영화 한 편 보고 목욕탕에 갔다 오면 100원 정도 남았습니다.”

그는 그런 생활을 2년 했다고 했다. 만 15세가 되던 시절부터.

▼ 집에 돈을 부쳐줄 형편은 되지 않았겠군요.

“그럴 생각도 못했습니다. 왜냐하면 2년 동안은 공부하는 기간이었거든요. 정질만 해도 하루아침에 되는 게 아니에요. 몇 개월을 해도 터득하지 못해 망치로 손을 잘못 쳐 피가 나는 일이 허다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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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종식│동아일보 산업부 기자 k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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