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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한 코뚜레 꿴 중국 느슨히 잡되 끊지 않는다

중국의 한반도 기미(羈靡)정책

  • 장량(張良) | 중국청년정치학원 객좌교수 · 정치학박사

남북한 코뚜레 꿴 중국 느슨히 잡되 끊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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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산당, 알파이자 오메가

남북한 코뚜레 꿴 중국 느슨히 잡되 끊지 않는다
중국의 급성장에 놀란 미국은 아시아 회귀(pivot to Asia) 정책을 통해 일본과 함께 중국의 서태평양 진출을 막기 시작했다. 그러자 중국은 ‘쉬운 것을 먼저, 어려운 것은 나중에 해결한다’는 선이후난(先易後難)으로 정책 방향을 바꿨다. 일대일로(一帶一路)를 내놓고 동쪽이 아닌 서쪽으로 방향을 튼 것이다.

중국은 중앙아시아, 동남아시아를 넘어 인도양, 중동, 동유럽으로 영향력을 확대하려 한다. ‘제3의 대륙’이자 천연자원의 보고인 아프리카 진출에도 적극적이다. 아프리카의 중요성은 18세기 제국주의 시대 이래 아프리카를 차지한 나라가 세계 패권국이 된 데서도 짐작할 수 있다. 20세기 전반기까지는 영국, 20세기 후반기에는 미국이 아프리카에서 가장 강한 영향력을 행사했다.

초(超)스피드 경제성장을 이끌어낸 데서 보듯 중국의 통치체제는 뛰어난 효율성을 지녔다. ‘민주집중제’라고 칭하는 중국공산당 독재 체제로 당·정·군(黨·政·軍)이 긴밀하게 연결돼 있다. 공산당은 민주주의의 원칙을 살리면서 조직을 견고하게 하고, 통일된 방침과 실행을 보증해 사회의 혁명적 변혁, 사회주의 건설, 공산주의 발전을 위해 민주집중제를 취한다고 주장한다. 당직이 결정되고 난 다음 국가직이 인선되며, 인민해방군이 국가가 아니라 공산당에 소속됐을 만큼 중국은 공산당 우위의 나라, 공산당이 통치하는 나라다. 공산당이 권력의 알파(α)요 오메가(ω)인 것이다.

중국은 ①마오쩌둥(毛澤東), 류사오치(劉少奇), 저우언라이(周恩來) 등의 창업기 ②덩샤오핑(鄧小平)이 주도한 발전기 ③장쩌민(江澤民)과 후진타오(胡錦濤)로 이어진 성숙기를 거쳐 ④시진핑(習近平) 주도하의 완숙기로 나아간다. 현재의 중국 지도부는 마오쩌둥이나 저우언라이, 덩샤오핑의 경우처럼 피비린내 나는 국공내전을 경험하거나 10년 넘게 계속된 문화혁명을 비롯한 살벌한 권력투쟁에서 살아남은 백전불굴의 용장들이 아니다. 대신 품성과 능력, 조직생활 측면에서 수없는 경쟁과 검증, 권력투쟁을 거쳐 살아남은 시진핑과 리커창(李克强), 왕치산(王岐山)을 포함한 기술 관료(technocrats)가 다수를 차지한다.



마오쩌둥과 덩샤오핑이 100만 대군을 지휘하는 장군이라면, 장쩌민과 후진타오는 고급 엔지니어이며, 시진핑은 엘리트 교수에 비유할 수 있다. 시진핑은 중국의 꿈(中國夢)을 실현해 당(唐)과 같은 세계제국 건설의 기초를 닦아 마오쩌둥, 덩샤오핑과 같은 위대한 지도자 반열에 들기를 바란다.

또 한 번의 문화혁명?

9월 말 시진핑 방미 때 드러났듯 중국은 최근 한층 조심스러운 외교정책을 펴고 있다. 되도록 미국에 맞서지 않으려는 태도를 보인다. 왜 그럴까.

무엇보다 경착륙(hard landing)이 회자될 정도로 경제 사정이 이전과 다르다. 베이징은 고도 경제성장 과정에서 파생된 사회갈등의 심각성을 우려한다. 지난해 1인당 GDP가 7600달러 수준에 이르렀으나 하루 1.5달러(10위안) 이하로 생활하는 사람의 수가 총인구의 약 15%인 2억 명을 넘는다. 2013년 현재 연 수입 360달러(2300위안) 이하의 빈곤 인구가 8250만 명이다. 사회 불평등이 극심한 일부 중남미 국가와 유사한 수준이다.

2011년 9월 샤오강 당시 중국은행 이사장은 ‘차이나데일리’ 기고를 통해 중국이 빈부차이가 극심한 라틴아메리카의 길을 걸을 수 있다고 경고하면서 덩샤오핑이 주창한 선부론(先富論)이 수정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 한 번의 문화혁명이 필요하다”는 주장도 나온다.

2012년 10월 광둥성 주장(珠江) 공업지대에서 발생한 노동자·농민 소요처럼 농민공(農民工)을 중심으로 대규모 소요가 일어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농민공 혹은 민공(民工)은 1978년 개혁·개방 이후 낙후한 내륙의 농촌지역을 떠나 연안의 발전된 지역으로 일자리를 찾아 이주한 노동자를 뜻한다.

중국 지도부는 중동-북아프리카의 재스민 혁명을 지켜보면서 직업이 없는 젊은이들의 분노가 체제를 위협할 수 있다는 점을 분명히 인식했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가 폭발적으로 성장하면서 언론 통제도 이전보다 어려워졌다.



동해로의 출구

2014년 이후 저우융캉(周永康) 전 상무위원, 쉬차이허우(徐才厚) 전 중앙군사위원회 부주석, 링후지화(令狐計劃) 전 통일전선부 부장 등 최고위급 인사를 부패 혐의로 처벌한 데는 반대파를 제거하면서 인민의 불만 또한 잠재우려는 의도가 담겨 있다. 중국 관료들의 부패는 상상을 초월한다. 중앙정부 부국장급 인사의 집에서 우리 돈 200억 원이 넘는 현금이 발견되기도 했다.

중국 외교정책의 우선 과제 중 하나는 안정적 내치(內治)에 바탕을 둔 주변국 포용이다. 서쪽의 파키스탄, 남쪽의 베트남, 동쪽의 한반도(특히 북한)는 외교정책에서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중국의 외교안보 전문가들에 따르면 한반도와 베트남은 북과 남에서 중국을 포위할 수 있는 2개의 날개(翼)다. 중국은 주변국 가운데 3강(强)인 러시아, 일본, 인도와 함께 3중(中)인 한반도(한국과 북한), 베트남, 파키스탄을 특히 중시한다.

북한은 국공내전 시기 인민해방군에게 투항한 장제스(蔣介石)의 국부군 2개 사단이 국부군의 추격을 받고 압록강 서안(西岸) 단둥까지 후퇴하자 입경(入境)을 허용했다. 이들은 북한 북부를 통과해 오늘날의 옌볜 자치주로 탈출했다. 북한은 인민해방군에 폭약, 뇌관, 군화 등의 군수물자도 지원했다. 연인원 수십만 명의 재(在)만주 조선인이 승패의 분수령이 된 랴오선(遼瀋) 및 쉬저우(徐州) 전투, 양쯔강 도하 작전을 포함한 다수 전투에 참전해 인민해방군이 승리하는 데 크게 기여했다.

△1960년대 이래 장기간 계속된 중소분쟁 △1992년 7월 한중 수교 △2014년 7월 시진핑의 선(先)방한 등 북중 관계를 악화시키는 사건이 잇달아 발생했는데도 북중 관계의 기본 틀은 변하지 않고 있다. 공산당 서열 제5위인 류윈산(劉雲山) 중앙정치국 상무위원이 10월 10일 북한 노동당 창건 70주년 행사에 참석할 정도다.

중국에 북한은 아직은 버려서는 안 되는 완충지대(buffer zone)다. 최근 중국 내에서는 한국까지 미국과 일본 세력에 대한 완충지대로 보는 시각이 늘고 있다. 중국에 북한은 숙적 일본의 도쿄-오사카축 등 전략종심(戰略縱深)을 직접 타격할 수 있는 곳이며, 북만주와 장강 델타, 주강 델타의 산업지대를 연결해주는 동해로의 출구이기도 하다.

중국은 한국을 포함한 제3국이 동해의 항구인 나선과 청진, 압록강 하구의 신의주 등 북·중 국경지역으로 진출하는 것을 바라지 않는다. 특히 나선 진출에 거부감이 강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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