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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홍규의 색깔 있는 문화 이야기 6

에라스무스, 평화를 사랑한 최초의 세계시민

  • 박홍규 < 영남대 법대 교수 > sky3203@donga.com

에라스무스, 평화를 사랑한 최초의 세계시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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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휴머니스트의 왕자’ 에라스무스. 편협함과 이데올로기를 증오한 그는 다양성으로 충만한 세계와 영혼의 자유를 사랑했다. 신부(神父)의 근친상간으로 태어나, 평생 집도 고향도 없는 방랑생활을 자청한 그. 천상천하유아독존(天上天下唯我獨存)의 우뚝한 지성을 만난다.
일본에선 ‘경제는 일류, 정치는 삼류’라는 말이 유행이다. 우리의 경우는 어떨까? ‘정치가 삼류’라는 말은 우리에게도 적용 가능할 듯한데, 그렇다면 경제는 일본처럼 일류일까? 경제인들은 그리 생각할지 모르지만 나는 쉽게 동의할 수 없다. 한편 문화는 어떨까?

독일의 경우 역사적으로 ‘문화는 위대하나 정치는 후진’이라는 평가가 일반적이다. 경제는 대단하다고 할 만하다. ‘영국병’이니 ‘프랑스병’이니 하는 말은 있지만 ‘독일병’이라는 말은 없으니 말이다. 그러나 독일에는 문화와 정치에 관한 ‘독일병’이 있다.

우리에게 독일은 문화의 나라로 보인다. 그중 대표 격은 역시 음악이다. 음악은 질서인 동시에 혼돈을 내포하는 비이성적, 신비적인 것이다. 현대 독일문학을 대표하는 토마스 만은 1945년에 쓴 ‘독일과 독일인’이라는 글에서 독일인이 자랑하는 내면성이란 곧 음악성이라고 했다.

정신적 귀족, 정치적 노예

그 글에 따르면 내면성의 존중이란, 인간의 힘을 정신적인 것과 정치적인 것으로 나누고 그중 전자를 우위에 두는 것이다. 이로 인해 대담한 사상서나 아름다운 시는 쓸 줄 알지만 정치적으로는 미성년처럼 조잡스러운 상태, 그러니까 정치적으로는 노예이면서 정신적으로는 귀족인 상황이 펼쳐진다. 토마스 만은 이러한 반정치성이야말로 음악성과 내면성의 산물이라고 말한다. 음악을 좋아하는 독자들은 화를 낼지 모르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내 얘기가 아니라 토마스 만의 주장이다.

그런데 만은 ‘정치성의 우위에 있는 내면성’의 대표자로 음악가가 아닌 루터(1483~1546)를 꼽는다. 루터는 종교개혁을 통해 신과 인간 간의 직접적 관계를 설정하고 스콜라철학의 속박으로부터 벗어나 연구 및 비판의 자유를 부흥시킨 반면, 종교의 자유 이외의 정치적 자유에 대해서는 이해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종교개혁 후 터져나온 농민반란이 성공했다면 독일도 정치적 자유를 확보했을 텐데, 루터가 이를 ‘정신적 해방사업의 모독’이라 매도하고 반동 제후에 굴복하는 바람에, 독일인들 사이에 권력에 복종하는 태도가 형성되었다는 것이 만의 분석이다.

즉 문화를 사랑하나 아무런 정치적 권리가 없는 독일 시민은 야만적이고 국수적인 권력에 복종하였으며, 문화인들도 비문명적이고 낭만적인 고도에서 현실과는 무관한 세상에 빠져 사는 상황이 전개됐다는 진단이다.

또한 만은 세계주의를 지향한 괴테가 나폴레옹 타도를 외친 독일 민족주의에 냉담했던 것은 그것이 야만적이고 국수적이었기 때문인데, 불행히도 괴테의 사상이 ‘정치에 관여해서는 안된다’는 식으로 오해되는 바람에 정신적 자유와 정치적 자유를 구분하는 루터의 이원론이 더욱 굳어졌다고 본다. 즉 독일인은 외국이나 국수적 이기주의를 제한하려는 경향에 늘 반항하며 이를 자유니 해방이니 하고 부른다는 것이다. 그 극단이 히틀러의 나치즘으로, 이는 자유를 향유해보지 못한 독일인이 세계를 정복하려 한 끝에 벌어진 일이었다고 만은 개탄한다.

독일의 ‘이데올로기 병’

만과 같은 시대를 산 막스 베버는 독일인의 반정치성을 이데올로기에 대한 병적 집착과 동일시한다. 그가 말하는 ‘이데올로기병’이야말로 ‘독일병’이라 부를 만하다. 베버는, 독일인은 정치를 현실로 보지 못하고 어떤 특정 이데올로기에 집어넣는다고 했다. 이를 긍정할 경우에는 무조건 미화하고, 부정할 경우에는 무조건 혐오한다는 것이다. 때문에 독일인은 냉소적인 권력 만능주의와 현실성을 결여한 추상적 이념 사이를 극단적으로 왔다갔다하느라 안정성을 상실하고 만다.

이 문제에 대한 해결책으로 베버는 마키아벨리적 정치관을 기본으로 하되 현실 정치와 윤리적 이데올로기의 균형적 관계를 수립할 수 있도록, 구체적 상황에 대한 주체적 겹눈의 사고를 배양할 것을 제안한다. 즉, 정치권력의 성격이나 현실 상황에 따라 유동적으로 대처할 수 있는 능력을 길러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1차 세계대전 이전의 광신적 국수주의 분위기에 대해서는 평화주의를 옹호하고, 전쟁 말기의 평화주의 무드에 대해서는 민족주의를 강조한다. 이데올로기를 선험적인 것으로 고정시키지 않고, 구체적 상황에 따라 끊임없이 유동화·상대화하는 유연한 사고방식과 주체적이고 강인한 정신을 강조하고 있다.

이를 변절 혹은 기회주의적 태도라고 욕하는 지조 높은 선비들이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절대주의자로서 하나의 이데올로기에 사로잡혀 자신을 인정하는 권력이면 복종하고 그렇지 않은 경우엔 죽음을 무릅쓰고 저항하는 우리 선비의 전형적 태도에는 의문이 간다. 어떤 권력이나 대세에 대해서도 비판적 자세를 견지하며 인간의 자유·평등·복지라는 보편성을 추구하는 지식인은, 그것이 가능하도록 현실을 언제나 상대적·실용적으로 볼 필요가 있다. 현실을 절대적인 기준에 의해 무조건 긍정하거나 무조건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적 기준에 따라 판단하고 실용적 필요에 따라 대처하는 유연한 사고와 행동이야말로 우리 시대에 필요한 미덕이 아닐까?

주체적 정신이란 어떤 특정 이데올로기에 골수까지 빠지는 것이 아니라, 그런 이데올로기에서 벗어나 그를 자유롭게, 그리고 유용하게 현실 개혁에 이용하는 것이다. 따라서 베버에게 극좌와 극우는 언제나 경계해야 할 대상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내면성에 뿌리 박은 반정치성이자 이데올로기라는 이름의 병이기 때문이다.

조금 다른 관점이기는 하나, 일찍이 신채호는 유교도, 불교도 한반도에서는 적절하게 변용되지 못한 채 ‘중국의 유교’ 혹은 ‘인도의 불교’ 모습 그대로 고착된다고 한 적이 있다. 더욱 정확하게는 중국의 수많은 유교 학파 중 주자학만이, 불교의 수많은 교파 중 대승 선불교만이 배타적으로 받아들여졌다고 봄이 옳을 것이다. 근대 이후의 기독교나 마르크스주의의 경우도 마찬가지라 할 수 있다.

주자학이나 대승 불교가 유교나 불교 중 가장 ‘교조적’이라 말할 수는 없으나, 기독교 주류나 마르크스주의 주류가 ‘교조적’인 것은 사실이다. 이러한 ‘교조성’은 정치권력과 결부되었을 때 더욱 강화된다. 그러나 그러한 ‘교조성’이 깊이 뿌리내린 배경에는 독일에서와 같은 정신성의 강조라는 측면 외에 어떤 ‘체질’의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닐까? 그리고 그 체질의 기저에는 불교가 ‘호국불교’로 권력화되었다는 좀더 근원적인 요소와 함께, 그것을 대체한 주자학마저도 본질적으로 권력적이었다는 측면이 강하게 작용한 것은 아닐까?

르네상스의 역사를 최초로 체계화한 부르크하르트는 그가 살았던 당시의 독일 역사(로 쓰여진 것)를 ‘승리사(勝利史)’라 비꼰 적이 있으나, 차라리 영웅사라고 하는 편이 옳을 것이다(부르크하르트의 ‘르네상스 천재사’ 역시 영웅사의 일종이다). 그 영웅사는 기원 직후 로마와 싸운 게르만민족 영웅의 이야기로 시작돼 루터를 거쳐 ‘철혈재상’ 비스마르크, 그리고 히틀러로 이어진다.

명치유신 이후 일본의 ‘근대화’란 것이 기본적으로 독일을 모델로 한 탓에 독일식 영웅사관은 일본을 거쳐 우리에게도 뿌리내렸다. 신채호의 영웅사관이나 민족사관도 그중 하나이리라. 2차 세계대전 후 독일에서는 영웅사관이 무너진다. 새롭게 쓰여진 독일 역사는 로마에서부터 이야기를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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