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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병욱·박수룡의 화필기행 붓 따라 길 따라

가을, 속살 감춘 봉우리마다 타는 그리움 금강산

  • 글: 민병욱 그림:박수룡

가을, 속살 감춘 봉우리마다 타는 그리움 금강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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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일만이천 봉우리 중 천부의 일이나 보았을까.
  • 그런데도 마음이 이처럼 둥둥 뜨니 감춰진 속살 모두를 다 본다면 과연 또 무엇을 느낄런가.
가을, 속살 감춘 봉우리마다 타는 그리움 금강산

▲ 지난 여름 겪은 홍수로 지금 금강산은 온통 물이다. 구룡폭포 장관 앞에서 넋을 놓다

누가 물은 다투지 않는다고 했는가. 너럭바위를 타고 쏜살같이 내려가다, 떨어지지 않으려 바둥대는니 차라리 뛰어내려 산산이 부서지는 물보라를 보라. 다투어 쏟아지는 그 장렬함에도 산도 놀라 일곱 색깔 무지개를 걸어주지 않는가.

쿵쾅대고 내달리며 지축을 후려치다. 문득 흐름을 멈추고 돌확에 누운 물은 또 어떤가. 계곡을 태우는 붉은 단풍에 물들세라 안으로 안으로 깊이를 더해 비취를 빚어냈다. 흙 한줌 없는 바위틈을 비집고 나온 한 그루 소나무가 담소(潭沼)의 푸르름을 이기지 못해 고개를 숙였다.

구룡연, 물의 퍼포먼스

금강산 일만이천봉, 그중에서도 계곡경치가 으뜸인 외금강 구룡연코스는 요즘 아우성이다. 앙지다리를 건너자마자 헉-숨막히게 길을 막은 세존봉의 깎아지른 절벽과 마주보는 옥류봉 자락에 단풍이 붉게 타올랐다. 운보의 바보 산수화에서나 보았던 소나무들은 단풍 빛이 눈부신지 한 발씩 비켜 앉았다.

삐죽삐죽 솟거나, 웅크리고, 비틀리고, 포개지며 만 가지 형상으로 버텨선 봉우리들은 찍어누를 듯 나무와 사람을 굽어본다. 그런 산과 나무와 사람도 아랑곳없이 수정보다 맑은 물은 함성을 지르며 내달린다. 물은 계곡을 뒤흔들며 휘도는 웅장한 소리로 사람들의 넋을 빼앗고, 그것도 모자란지 곳곳에서 색깔과 빠르기와 깊이를 뽐내며 다툰다.

가을, 속살 감춘 봉우리마다 타는 그리움 금강산

▲ 구룡대에서 내려다본 상팔담. 여인의 가슴팍 같은 산을 여덟 개의 푸른 보석이 목걸이 처럼 둘러쳤다.

”아, 좋구나. 참 좋아.” 외마디 탄사를 연발하는 탐승객들에게 안내원 한성희씨는 ”아직 반의 반, 또 그 반의 반도 못 봤다”며 어깨를 으쓱한다. 아아 제 산도 아니요, 그 경치 저 혼자만 보는 것도 아닌데 으쓱거리긴ㆍㆍㆍ.공연히 흘겨보지만 그게 다 산수와 단풍에 취해 터질 듯한 감격 때문이란 걸 왜 모르겠는가.

사실 10월8일 금강산 탐승에 나설 때 기분은 썩 좋은 게 아니었다. 2박3일 짧은 여정이지만 남측 관광객에게 허용된 구룡연과 만물상,삼일포ㆍ해금강 코스는 지난 9월 몰아닥친 태풍 루사로 길과 다리가 대부분 유실돼 접근이 원천적으로 봉쇄됐다는 거였다.

바다에 떠있는 호텔 해금강을 나와 관광출발점인 온정리로 가는 길 곳곳에도 수마가 할퀸 상처가 여실했다.온정천을 가로지르는 다리는 폭삭 내려앉았고 둑길은 수십 미터가 유실돼 형태를 알아보기 어려웠다.

그런 물난리를 겪어서인가, 요즘 금강산 계곡에 넘처나는 건 물이다.`풍악(楓樂)'이란 가을 이름에 맞게 단풍이 익고, 거기에만 하늘은 흰 구름을 띄우는데, 그걸로 모자랐는지 차고 넘치는 물이 수천 수만의 퍼포먼스를 이루어낸다. `수정 같은 물이 누운 폭포를 이루며 구슬처럼 흘러내리는'옥류동에 이르면 산이 물인지 물이 산인지 그저 아득한 느낌에 빠져든다.

가을, 속살 감춘 봉우리마다 타는 그리움 금강산

▲ 평양 교예단의 몸놀림은 백조를 닮고 표범을 닮았다.

연주담과 비봉ㆍ무봉폭포를 거쳐 상팔담으로 오르는 길에 이르러서야 절경은 머릿속에서 지워진다. 땀을 뚝뚝 흘리며 가파른 등성이를 오르다보면 헉헉 가쁜 숨이 절로 나오고 `이제 다 왔나' 싶어 위를 올려보면 계속 나타나는 철사다리가 참으로 야속하다. 먼저 갔거나 뒤따르는 사람들의 소리가 웅얼웅얼 메아리지는 골에서 `이러다 수백리 아래로 떨어지는 것아니냐'는 무섬증이 버썩들기도 한다.

겨우 상팔담을 내려다보는 구룡대에 올라서야 숨을 고른다. 하지만 그도 잠시 이번엔 벌어진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다. 백길 낭떠러지 밑으로 펼쳐지는 기묘한 풍광ㆍㆍㆍ, 여인의 가슴팍 같은 산을 빙그르르 에워싸고 여덟 개의 푸른 보석이 목걸이처럼 둘러쳐졌다. 그냥 푸르다는 말로는 설명할 수 없는, 살을 벨 듯 시리게 보이는 여덟 개의 돌확 연못은 여인의 홍조처럼 빨간 뾰족산 단풍과 대비돼 가슴에 쿵쿵 부닥쳐온다.

구룡대 위로 바람이 분다. 땀이 식어 온몸에 한기가 드는데 상팔담의 시린 마력은 눈을 떼지 못하도록 내내 잡아끈다. 벌렁 바위 위에 누워 하늘을 올려보니 뭉게구름이 이불처럼 몰려든다. 집선봉, 천화대로 이어지는 병풍이 우뚝한 속에 매 한 마리가 여유롭게 날고 있다.

일만이천 봉우리 중 천분의 일이나 보았을까. 그런데도 마음이 이처럼 둥둥 뜨니 감춰진 속살 모두를 다 본다면 과연 또 무엇을 느낄런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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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민병욱 그림:박수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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