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신동아 로고

통합검색 전체메뉴열기

서거 100주년 마크 트웨인 재조명

영원히 되살아나는 미국 문단의 핼리 혜성

마크 트웨인

  • 조성규│연세대 명예교수· 전 한국 마크 트웨인 학회장 lykeion@hotmail.com│

영원히 되살아나는 미국 문단의 핼리 혜성

1/6
  • 작가가 쓴 작품은 독자를 바로 변화시키지 못한다. 독자의 중심에 들어가 변화를 바로 가져오지 못하고 독자의 주변부터 조금씩 변화시킬 뿐이다. 미국의 인종차별을 현재 수준으로 변화시키는 데 남북전쟁 이후 130년이 걸렸다.
  • 오바마가 미국 대통령에 당선된 배경에 마크 트웨인이 있다고 한다면 무리한 해석일까.
영원히 되살아나는 미국 문단의 핼리 혜성
2008년 7월14일자 미국의 시사주간지 ‘타임’(미국판)은 19세기 미국 작가 마크 트웨인을 커버스토리로 실었다. 연례 기획으로 미국을 만들어낸 역사적 인물을 매년 한 사람씩 선정해온 타임이 이 특집의 7번째 인물로 마크 트웨인을 선정한 것이다. 이에 앞서 정치가이자 발명가인 벤저민 프랭클린, 제3대 대통령 제퍼슨, 제16대 대통령 링컨, 제35대 대통령 케네디, 제26대 대통령 루스벨트 그리고 탐험가 루이스와 클라크 등이 표지에 올랐다.

타임은 마크 트웨인 선정 이유를 세 가지로 요약했다. 첫째, 사람들의 정치관을 바꾸어 놓았다. 둘째, 인종문제에 있어 선견지명을 갖고 있었다. 셋째, 작품을 통해 오늘의 미국 독자들에게 가르침을 주었다. 그러면서 특집호 편집인인 리처드 스텐겔은 이같이 부연 설명했다.

“그는 미국의 정치, 문화의 역동적인 전통을 이해하도록 해주었고, 점잖은 비평가 중 상당수가 논평하기 싫어하고 말하기 껄끄러운 진실을 발언할 수 있는 우리의 집단 무의식과 같은 별난 사람이었다. 또한 그는 작품 ‘허클베리 핀’으로 지난 세기 동안 인종관계를 형성하는 데 도움이 된 문학적 저술가의 DNA를 창시해낸 작가다.”

필자는 때마침 1910년 4월21일에 세상을 떠났지만, 영원히 죽지 않는 이 대작가의 서거 100주년을 맞이해 그의 인간성과 작품을 되살펴보고자 이 글을 썼다.

방대한 작품을 남긴 트웨인

마크 트웨인(1835~1910·본명 새뮤얼 랭혼 클레먼스)의 실상은 국내 독자에게 잘 알려져 있지 않다. 평소 외국문학에 친숙한 친구에게 톰이나 헉(허클베리)이 나오는 소설 외에 트웨인의 작품을 알고 있느냐고 물었더니 “트웨인이 다른 작품을 쓴 게 있나”라고 되물었던 적도 있었다. 트웨인은 그의 작품에 등장하는 톰이나 헉보다 덜 친숙한 이름인 건 분명하다.

트웨인은 자신이 편집한 25권 전집을 포함해 40권이 넘는 방대한 작품을 남겼다. 지난해 11월 ‘동물의 이야기’(The Book of Animals)가 출간되었고 미출간 유고를 미국 버클리대학교의 마크 트웨인 전문 연구기관에서 정리 중이어서 더 많은 작품이 나올 전망이다.

트웨인은 1835년 미주리 주의 플로리다라는 조그만 마을에서 태어났다. 그의 전기 작가인 앨버트 페인에 따르면 트웨인은 죽기 얼마 전인 1909년 “나는 1835년에 핼리 혜성과 같이 태어났으니 1910년에 핼리 혜성(주기가 75년)과 함께 지구를 떠나지 않으면 내 생애 가장 큰 실망거리가 될 것이다”라고 말했다. 그런데 그가 세상을 떠나던 4월21일 하루 전 핼리 혜성이 나타났고, 이 우연의 일치에 천문학자들뿐만 아니라 프레드 휘플 같은 회의적인 과학자조차 놀랐다고 한다.

트웨인은 11세 때 아버지가 숨지는 바람에 집안이 어려워져 겨우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미주리 주 하니발에서 견습인쇄공이 되었다. 이후 동부 몇 개 도시에서 인쇄공 노릇을 한 뒤 고향에 돌아와 증기선 파일럿 면허를 취득한다. ‘백경’ 저자인 허먼 멜빌이 그가 탄 포경선이 자기의 하버드나 예일대학이라고 말한 것처럼 트웨인에게도 미시시피 강은 하버드이며 예일대학이었다.

그는 어린 시절부터 흑인들의 노래와 사투리, 그들의 대화 뉘앙스에 주의를 기울였고 미시시피 강의 배에서 만나는 사람을 세심하게 관찰했다. 이 뛰어난 관찰력으로 그는 사람들의 깊은 내면의 정서나 위선적 가면을 꿰뚫어볼 수 있었다.

1861년 남북전쟁으로 미시시피 강을 오가던 1200척이 넘는 증기선이 발이 묶이자 그는 공화당원인 형을 따라 네바다주로 갔다. 네바다의 버지니아시티에는 수많은 광부가 광산에서 일을 하며 부자가 되리라는 꿈을 꾸고 있었는데 그도 처음에는 이 꿈을 좇다 곧 그 꿈을 버리고 ‘테리토리얼 엔터프라이즈’라는 신문사에 들어가 기자로 2년 동안 일했다.
1/6
조성규│연세대 명예교수· 전 한국 마크 트웨인 학회장 lykeion@hotmail.com│
목록 닫기

영원히 되살아나는 미국 문단의 핼리 혜성

댓글 창 닫기

2018/12Opinion Leader Magazine

오피니언 리더 매거진 표지

오피니언 리더를 위한
시사월간지. 분석, 정보,
교양, 재미의 보물창고

목차보기구독신청이번 호 구입하기

지면보기 서비스는 유료 서비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