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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교자’작가 김은국의 행적을 찾아서

매사추세츠 시골마을서 암 투병중… 그러나 불꽃처럼 타오르는 예술혼

  • 김욱동 서강대 교수·영어영문학, 문학비평가

‘순교자’작가 김은국의 행적을 찾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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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순교자’로 노벨문학상 후보에 오르며 세계적인 작가로 자리매김했던 재미작가 김은국. 1990년대 초반 이래 완전히 자취를 감춰 ‘문단의 수수께끼’가 된 그가 미국 매사추세츠주의 한 시골마을에서 암 투병중이라는 사실이 확인됐다. 병 때문에 외부와의 접촉을 완전히 끊고 은둔했던 것. 그의 행방을 수소문해온 서강대 김욱동 교수가 그간의 ‘추적기’와 노작가의 근황, 그의 ‘세계인적 문학관’과 드라마틱한 삶을 정리해 ‘신동아’에 보내왔다. [편집자]
‘순교자’작가 김은국의 행적을 찾아서

1970년대 후반 미국에서 작가로서 명성을 누리던 무렵의 김은국.

어느 날갑자기, 그가 사라졌다. 1960년대 미국과 우리나라는 말할 것도 없고 전세계적으로 이름을 떨친 한국인 작가이던 그가, 1990년대 초반부터 갑자기 모습을 찾을 수 없게 되었다. 공적인 자리에 거의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을 뿐더러 아예 자취조차 확인할 수 없었다. 그의 근황을 궁금해하는 사람은 많았지만 정작 그와 접촉하는 데 성공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신비에 싸인, 미스터리에 가까운 ‘실종’이었다.

재미작가 김은국(金恩國, 미국명 Richard E. Kim·73). 40대 이상의 세대로 책을 즐겨 읽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그 이름을 기억할 것이다. 1964년 미국에서 처음 출간된 그의 처녀작 ‘순교자(The Martyred)’는 그야말로 ‘낙양의 지가’를 올린 작품이었다. 미국 전역에서 20주 연속 베스트셀러 자리를 지켰을 뿐 아니라 10여개 언어로 번역되어 지구촌 곳곳에서 읽혔다. 우리나라도 예외가 아니어서 이 무렵 최초의 소년가장이라고 할 이윤복의 수기 ‘저 하늘에도 슬픔이’와 함께 나란히 베스트셀러 목록에 올랐다. 서울에서는 같은 이름의 영화와 연극, 오페라 등이 제작되기도 했다.

‘순교자’ 한 권으로 김은국은 1967년 한국 작가 혹은 한국계 미국 작가로서는 처음으로 노벨문학상 후보에 오르는 영예를 안았다. 한국 현대문학사에 굵직한 획을 그은 문인들이 노벨문학상 후보에 오르기 시작한 것이 그로부터 10여년 뒤인 1970년대 중반 이후임을 감안하면 이 무렵 그가 얻은 문학적 명성이 얼마나 대단한지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처녀 장편 ‘순교자’처럼 큰 인기를 끌지는 못했어도 1968년에 출간된 두 번째 장편소설 ‘죄 없는 사람(The Innocent)’이나 1970년 출간된 논픽션 소설 ‘잃어버린 이름(Lost Names)’도 적잖은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사람들이 기억하는 그의 마지막 행적은 1980년대 말에서 1990년대 초 TV와 라디오 전파를 타고 방영된 커피 광고다. ‘가슴이 따뜻한 사람, 그 깊은 인생을 듣는다’ ‘가슴이 따뜻한 사람과 만나고 싶다’는 카피로 크게 유행한 이 광고에 김은국은 첫 광고모델로 출연해 문학 애호가들의 마음속 깊이 파고들었다. 외모에서 풍기는 인간적인 이미지와 고향을 떠나 태평양 건너 미국 땅에서 인간정신을 탐구하는 작가야말로 광고카피에 더할 나위 없이 잘 어울리는 모델이었다. 아련한 추억 속의 고향을 그리며 지나온 세월을 되새기고 ‘가슴 따뜻한 사람’을 그리워하는 이미지였다.

그 후 그의 행방을 아는 사람은 없었다. 학계와 문단을 통틀어 그의 이후 소식을 들었다는 사람을 만날 수 없었다. 이러저러한 소문만이 그 자리를 대신했다. 작가와 비슷한 연배로 한때 그를 만난 적이 있는 김용권 서강대 명예교수는 필자에게 “어쩌면 그는 미국인 아내와 이혼한 뒤 한국에 돌아와 외부세계와 인연을 끊고 혼자 살고 있는지도 모른다”고 귀띔해준 적이 있다. 그러나 확인된 소식은 아니었다.

무수한 소문, 잘못 알려진 사실들

몇 년 전부터 한국계 미국문학에 관심을 기울여온 필자는 그 일환으로 김은국에 관한 단행본 출간을 준비하고 있었다. 한국 사람으로 미국 문단에 데뷔해 관심을 받은 첫 번째 작가는 김은국보다 한 세대 앞선 1930년대의 강용흘(姜鏞訖·1903∼72)이었다. 그는 ‘초당(The Grass Roof)’과 ‘동양사람 서양에 가다(East Goes West)’ 같은 장편소설로 미국 문단에서 큰 관심을 모았다(‘신동아’ 2004년 12월호 624쪽 ‘재미문학가 초당 강용흘의 롱아일랜드 변주곡’ 참조). ‘초당’의 경우 10여개 언어로 번역되어 세계적인 명성을 얻었고, 비록 실행되지는 않았지만 할리우드에서 영화로 만들 계획도 있었다.

김은국은 그 바통을 이어받은 한국계 미국 작가 제2세대라고 할 수 있을 터. 김은국에 이르러 싹튼 한국계 미국문학은 1980년대 이후 캐시 송(Cathy Song)이나 이창래(Chang-rae Lee), 돈 리(Don Lee) 같은 젊은 작가들에 의해 활짝 꽃을 피운다. 현재 미국문단에서 한국계 작가들의 활약은 가히 백화제방의 시대를 맞고 있다.

학계의 다른 이들에게 김은국의 행방은 지적인 궁금증, 혹은 후일담에 불과했겠지만 한국계 미국문학을 연구하기로 마음먹은 필자에게는 꼭 밝혀내야 할 과제에 가까웠다. 특히 필자가 준비하던 책이 작가론과 작품론을 겸하는 것이었기에 작가의 전기부분에서 본인으로부터 직접 확인해야 할 사항이 많았다. 아직 생존하는 작가치고는 내용이 불확실하거나 틀린 곳이 적지 않았기 때문이다.

가령 출생에 관한 부분만 해도 국내에서 출간된 백과사전에는 그가 황해도 황주에서 태어난 것으로 기재되어 있다. 어떠한 과정을 거쳐 이렇게 표기되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이는 분명 사실과 다르다. 황해도 황주는 그의 부친이 태어난 곳이고, 그는 함경남도 함흥에서 태어났다. 김은국이 주로 황해도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기 때문에 잘못 전해진 듯하다.

잘못된 내용이 확인될수록 본인의 행방을 찾는 일은 작가론을 쓰는 학자로서 점점 피할 수 없는 숙제가 되어갔다. 그는 과연 어디로 사라진 것일까. 어디서부터 그의 흔적을 찾아야 하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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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욱동 서강대 교수·영어영문학, 문학비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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