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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프 마니아들의 18홀 편력기

룰이 없으면 골프도 없다

유 협 SBS 아나운서 부장·골프전문 아나운서

  • 글: 유 협 / SBS 아나운서 부장·골프전문 아나운서

룰이 없으면 골프도 없다

룰이 없으면 골프도 없다
“골프는 ‘감성’이라는 이름의 야생마를 탄 ‘이성’이라는 기수가 야생마를 자기 방식으로 적절히 제어하며 18개의 장애물을 넘는 승마 경기와 같다.”

골프에 대한 수많은 촌철살인 가운데 내가 가장 아끼는 한마디다. 골프가 멘탈 스포츠라는 사실을 잘 표현한 비유라 생각된다. 설령 경기중에 야생마의 뒷발에 치여 상처투성이가 되더라도, 의연한 자세를 잃지 않고 웃음 띤 얼굴로 야생마에게 다가가 고삐를 바투 잡을 줄 아는 기수가 되어야 한다는 말인데….

최근 몇 년 사이에 골프 인구가 엄청나게 늘었다. 연령층도 많이 낮아졌다. 적어도 골프 인구의 양적 증가나 계층의 다양성만 놓고 보자면 ‘골프의 대중화’가 우리 곁에 와 있음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그러나 대중화에 걸맞은 골프문화는 제대로 성숙되어 있는지 자문하지 않을 수 없다. 오히려 골프가 부도덕한 요즘 사회의 축소판으로 인식되고 있지는 않은지 냉정하게 곱씹어 볼 일이다.

그렇다면 멘탈이 강조되는 골프의 올바른 문화는 과연 어떤 것일까? 그 요체는 다름아닌 투명한 도덕률과 남을 배려하는 마음, 한마디로 룰과 에티켓이다.

그런데 요즘 골퍼들 사이에는 ‘타수 줄이기’가 다른 어떤 가치보다 우선시되고 있어 안타깝다. 과정이야 어찌되었든, 선거에서 이긴 자만이 능력자로 평가받고 돈 많이 버는 기업가가 성공한 기업가로 대접받듯, 골프장에서는 스코어 낮은 골퍼가 뒤풀이를 주재한다.

골퍼라면 누구나 타수가 줄어들 때의 쾌감이 어떤 것인지를 잘 알고 있다. 그리고 “나의 스코어가 좋아야 남에게 베풀 수 있는 마음을 갖는 것이지, 내 정신이 혼미한데 남을 의식할 겨를이 있겠는가”라는 반문도 이해한다. 또 남들보다 곱절 이상 노력을 기울였는데도 제자리를 맴돌거나, 오히려 뒷걸음 칠 때의 참담함을 모르는 바도 아니다.

오뉴월에 고뿔 걸린 강아지처럼, 그까짓(?) 골프로 인해, 중요한 본업에서조차 ‘꿀꿀한’ 기분이 되는 것도 공감한다. “골프를 하면 할수록 지성이 말라버려, 자신에게 화를 내는 것도 부족해 적을 미워하는 것조차 잊는다”고 말한 미국 심리학자의 의중도 헤아릴 수 있다. 얼마나 감정이 복받치면 피아를 구별하지 못하는 상황에까지 이르는 걸까?

골프가 스코어 지상주의로 전락한 데는 전천후, 전방위적으로 횡행하는 내기 골프가 큰 기여를 했다. 요즘 내기에 선천성 과잉 거부반응 증세를 보이는 골퍼는 초청시 우선 제외 대상이다. 적당한 내기를 통해 게임의 긴장감을 높이고 신중함을 유지하는 것까지는 좋다. 그러나 정도를 벗어나는 것은 곤란하다.

스코어 지상주의와 그릇된 내기 골프가 정당화되는 한, 우리의 골프문화는 날이 갈수록 제 모습을 찾기가 어려워질 것이다. 골퍼 스스로 어림없는 야심, 얼룩진 용기, 교만을 갖고 있는 것까지 나무라고 싶지 않다. 그것은 누구나 갖고 있는 본능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속내를 드러내 제멋대로 행동하니 문제다.

필드에서 소란행위를 일삼는가 하면, 남이 플레이를 하건말건 휴대전화 통화를 해댄다. 그런 사람일수록 자기가 플레이할 때 휴대전화 벨 소리가 나면 화를 참지 못한다.

습관적으로 볼을 터치하는 사람도 의외로 많다. 아무리 좋은 라인에 볼이 놓여 있어도 작업을 진행한다. 볼을 만지지 않으면 숨지는 줄 아는 모양이다. 손과 발은 물론이고 움직일 수 있는 도구는 무엇이든 사용한다. 스코어를 속이는 사람도 가끔 볼 수 있다. 실수한 것은 연습이요, 성공한 것은 자기 스코어라는 것이다.

어디 이뿐이랴. 룰 적용을 제멋대로 하는 사람은 너무나 많다. ‘언플레이볼’만 선언하면 모든 특권을 부여받은 듯 행동한다. 마치 자기의 하녀 다루듯 캐디에게 반말을 해대고 자신이 잘못해놓고도 애꿎은 캐디만 나무란다. 상대를 꺾기 위해 온갖 정당치 못한 방법을 동원하면서 ‘재미있게 하기 위해…’라고 둘러대는 이들도 의외로 많다. 도대체 그게 무슨 재미가 있다는 것인지.

신중함이 지나쳐 다음 팀에 영향을 줄 정도로 늑장 플레이를 펼치는 것도 쉽게 볼 수 있다. 그 뿐인가? 목욕탕이나 클럽 하우스에서 행동하는 것을 보면, 매너나 에티켓 따위는 거추장스러운 것으로 여기는 사람들이 너무도 많음을 알 수 있다.

대중화의 길을 걷고 있다고는 하나, 아직도 우리나라 골퍼의 대다수는 사회 지도층이고 오피니언 리더들이다. 골퍼들이 골프장에서 도덕성과 매너를 종교처럼 지켜나가고, 본능을 이성으로 다스릴 수 있는 정기를 바로 세운다면 그만큼 우리 사회도 맑아지지 않을까?冬

신동아 2003년 4월 호

글: 유 협 / SBS 아나운서 부장·골프전문 아나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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