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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 9월 11일 그날 이후

기로에 선 부시 완승이냐 수렁이냐

  • 김민웅 < 정치평론가, 미국 뉴저지 길벗교회 목사 >

기로에 선 부시 완승이냐 수렁이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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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러리즘은 폭력이자 절규다. 테러리즘에 대한 응징과 예방도 중요하지만, 죽음을 무릅쓴 저항의 배경을 밝히는 것이야말로 테러를 근절하는 해결책이다.
“아예 국가의 존재 자체를 절멸시키겠다”. 2001년 9월11일 테러사건에 대해 보복 공격을 개시하겠다면서 부시 대통령의 입에서 나온 말이다. 미국에 테러를 가한 자와 관련된 나라의 숨통을 끊어놓겠다는 것이다.

뉴욕과 워싱턴이라는 심장부를 겨냥 당한 거인 미국이 과연 어떻게 나올 것인가를 숨죽이며 쳐다보던 나라들이 그만 기겁하고 말았다. 세계 최강의 무기체제와 최대최다의 폭탄을 소유한 미국이 격노하면서 토해낸 그 말에서 우리는 21세기 인류의 운명이 어떻게 될 것인지 직감할 수 있었다. 패권체제의 위기에 처한 제국의 대응 여하에 따라 지구촌이 전쟁의 소용돌이에 휩싸일 수 있는, 그래서 ‘광기의 시대’가 다시 연출될지 모른다는 공포가 모두에게 엄습해온 것이다. 테러의 야만성은 당연히 철저히 응징해야 하지만, 그렇다고 무고한 민간인의 희생을 요구할 전쟁을 그대로 인정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미국은 반 테러의 깃발을 들고 21세기의 새로운 패권 논리를 전세계가 받아들일 것을 요구하고 있다. 이로써 세계 인류는 지구촌의 운명과 관련해 미국의 총지휘권을 인정할 것인가 아닌가를 놓고 기로에 서게 된 셈이다.

미국의 이러한 군사적 패권논리는 그 강도에 차이가 있을 뿐, 조지 부시 정권에서 처음 등장한 것이 아니다. 이것은 미국의 오랜 대외팽창의 역사에서 되풀이돼 왔던 바며, 전임 클린턴 정권도 공격대상이 된 나라를 절멸시키려 했던 기록을 가지고 있다. 1999년 6월10일 클린턴 정권의 미국은 NATO 국가들과 함께 유고슬라비아에 2만3000톤의 폭격을 가했으며, 이날 단 하루에 여성과 어린이를 포함한 무고한 민간인 3000명이 죽음의 아비규환을 맞이했다.

반 테러와 미국의 패권주의

그 후 몇 달에 걸쳐 미국은 반 테러, 인권, 응징 등의 이유를 내세워 수단, 아프가니스탄, 이라크, 유고 등에 연이어 맹폭격을 가했다. 인명의 피해는 이루 말할 수 없었다.

당시 미국은 이번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오스마 빈 라덴을 지목해 수단을 공습했는데, 유럽의 언론인들에 의해 수단이 오스마 빈 라덴을 이미 1996년 국외로 추방했으며, 생화학 무기를 만든다고 알려진 제약회사는 공격 5개월 전 수단의 민간 기업인이 인수해 약을 생산하고 있던 사실이 확인되었다. 미 국무부 보고서도 수단의 제약회사 공습이 정당하지 않다고 밝혔으나 어찌된 셈인지 국무부 고위층은 이런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공습이 필요하다고 일단 결정한 이상 이를 뒷받침하는 증거만 필요했던 것이다.

미국의 비판적 지식인인 마이클 패런티(Michael Parenti)는 이와 같은 미국의 공습을 가리켜 ‘국가살해(To Kill A Nation)’라고 불렀다. 미국을 공격한 바 없고, 미국의 보복을 받아야 할 아무런 이유가 없는 무고한 민간인들이 이 과정에 무수히 죽어가고 국가 전체가 피폐하는 과정을 소상히 보고한 그는 미국의 이런 행동은 명백한 침략행위라고 질타했다.

미국의 양심적인 역사학자 하워드 진(Howard Zinn)은 마이클 패런티와 다를 바 없는 견해를 표명했다. 그는 “부시정권의 전쟁선포는 21세기를 폭력의 시대로 만들 것”이라면서 “진정 테러를 근절하는 길은 일부 민족의 열악한 현실을 개선하는 데 미국의 부를 사용하는 것”이라고 역설했다.

그러나 이러한 이성의 목소리를 들으려는 미국의 지도자는 없었다. 일단 보복과 응징의 이유가 명백해지자, 다른 논리는 고려하지 않은 것이다. 증거가 있는가 없는가는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런 혐의가 있다’ 하면 그것으로 충분한 것이었다. 강자의 말이 곧 꺾을 수 없는 논리이자 법이 되는 것이었다.

한편 미국은 일련의 공습과 국지전을 전개하며 승리를 자축했으나, 그 승리가 ‘반미성전(反美聖戰)의 기치’ 아래 목숨을 걸고 보복의 칼을 가는 사람을 양산한 사실을 깊이 주목하지 못했다. 팔레스타인에서 적지 않은 사람이 이스라엘의 미사일과 경찰의 공격으로 희생당하고 팔레스타인 정착촌이 폐허가 돼가고 있을 때도, 미국은 이스라엘의 손을 들어주었으며 팔레스타인의 비극을 철저하게 외면했다.

그리고 급기야 지난 9월 초 남아프리카에서 열린 인종차별철폐 유엔회의 도중 팔레스타인 문제가 거론되자 이스라엘과 함께 퇴장, 아랍권 전체의 반감을 사고 말았다. 반 세계화 운동의 과정에 미국은 지속적으로 비난의 표적이 돼 있는 상황이었으며, 유럽의 미국 영향권 이탈 가속화와 아랍권의 반감까지 겹치면서 미국의 제국주의 패권체제는 점차 위기에 몰리고 있다.

그리고 이 위기의 정점 2001년 9월11일, 뉴욕과 워싱턴의 참사가 발생했다. 그렇지 않아도 이 시기 미국에서는 세계적인 반미 연대의 움직임이 국가적 수준과 시민운동 차원에서 형성되고 있다는 우려의 소리가 나오기 시작했고, 부시정권이 등장한 후 국제적 합의나 협정 또는 국제법을 미국 자신에는 적용할 수 없다는 패권적 고립주의가 미국의 지도력을 도리어 위태롭게 만들고 있다는 비판이 높아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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