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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착 취재

온실 뛰쳐나온 30대 CEO들의 도전 인생

  • 이형삼 <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 hans@donga.com

온실 뛰쳐나온 30대 CEO들의 도전 인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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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른바 명문대학을 나와 한국 최고의 직장에서 탄탄대로를 걷던 30대들이 어느날 ‘마이 웨이’를 선언했다. 남부럽지 않은 보수, 보장된 출세, 든든한 ‘바람막이’를 포기하고 그들이 택한 곳은 어찌 보면 황량한 벌판, 한치 앞을 가늠할 수 없는 정글이다. 하지만 그들은 그곳에 보물이 묻혀 있다고 믿는다. 야심만만한 모험가만이 캐낼 수 있는 탐스런 보물상자가.
서울대 국제경제학과 졸업(82학번), 미국 시카고대 MBA, 대우증권·대우경제연구소 대리(24세), 자딘플레밍증권 서울지사 차장(27세), JP모건 홍콩법인 부장(29세), 동방페레그린증권 리서치 헤드(31세), 삼성증권 이사(34세), 삼성증권 상무(36세)….

6월8일 서울 여의도에 사무실을 낸 리 캐피탈 투자자문(Rhee Capital Advisors) 이남우(李南雨·38) 사장의 화려한 커리어다. 내로라하는 국내·외 대형 증권사를 2∼3년에 한번씩 옮겨다녔고, 옮길 때마다 직위는 수직상승을 거듭했다.

특히 30대 중반에 삼성그룹 계열사의 이사와 상무 자리에 앉은 것은 전문인력에 대한 파격적 인사가 종종 단행되는 삼성에서도 흔치 않은 사례다. 그런 그가 막강한 재량권과 억대 연봉, 내년 8월이면 행사할 수 있는 2만주의 스톡옵션(6월17일 현재 삼성증권 주가는 1주당 4만50원이다)을 마다하고 삼성증권을 떠났다. 역마살이 낀 것일까.

“시장이 미더워 나왔다”

“이 바닥에서 직장을 옮기는 계기는 두 가집니다. 돈과 권한이죠. 제 경우는 후자였습니다. 권한이 커질수록 많은 걸 배울 수 있거든요. 1991년 말에 대우에서 자딘플레밍으로 간 것은 그 이듬해 국내 증시의 대외 개방을 앞두고 외국 투자자들에 대한 연구가 필요했기 때문입니다. 그후 아시아 시장으로 시야를 넓히기 위해 JP모건에서 한국과 일본, 대만 리서치를 담당했습니다. 소니 등의 애널리스트를 하면서 좋은 공부를 많이 했어요. 페레그린으로 옮긴 것은 처음으로 관리자 역할-리서치 헤드-을 맡게 됐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다양한 경험을 쌓다가 40대가 되면 국내 회사로 옮길 계획이었는데, 예상보다 일찍 기회가 왔어요. 삼성에서 리서치와 국제영업 전권을 주겠다고 제의한 겁니다. 백지(白紙)에다 그림을 그려볼 수 있겠구나 싶어서 흔쾌히 받아들였죠.”

그가 이끈 삼성증권 리서치센터 애널리스트들은 여러 기관이 선정하는 분야별 베스트 애널리스트 랭킹에서 최상위권을 휩쓸며 성가를 높였다. 이사장 자신도 홍콩의 금융전문지 ‘아시아머니’, 미국의 기관투자가 모임 ‘인스티튜셔널 인베스터’ 등에서 ‘한국의 베스트 애널리스트’로 선정되는 등 외국인 투자자들로부터 가장 신뢰받는 애널리스트 가운데 한 사람으로 꼽혀 왔다. “시장에 대해 가장 건실하고 이론적인 코멘트를 한다”는 게 그 근거였다.

그런 그가 삼성이라는 튼튼한 울타리를 뛰어넘어 들판으로 나선 것은 ‘시장에 대한 확신’ 때문이었다.

“우리 기업들이 근본적으로 변하고 있어요. 최근 수년간 꾸준히 질적 개선을 이뤘고, 이게 가시화하면서 각종 지표가 빠른 속도로 호전되고 있습니다. 몇몇 우량기업은 경쟁력과 시장점유율에서 일본 기업들을 따돌렸어요. 외국 투자자들도 깜짝 놀랄 정돕니다. 우리 외평채의 가산금리는 일본의 국영기업체인 NTT도코모 수준까지 좁혀졌어요. 더욱이 이머징 마켓 중 동유럽과 중남미 시장의 유동성이 떨어지면서 아시아로 자금이 집중되고 있는데, 아시아에선 한국 외엔 대안이 없습니다. 국내 기관들도 신규자금 유입속도가 빨라지고 있어 주식편입비율을 높여갈 수밖에 없고요.

이렇게 역동적인 상황이라면 대기업 품안에 안주하기보다 직접 시장에 뛰어들어 리스크 테이킹(risk taking)을 해볼 만하다고 판단했습니다. 내년이면 제 나이가 우리 나이로 마흔이라 지금 저지르지 않으면 안될 것 같았어요.”

사정이 이런데도 주가가 시원스레 뻗어오르지 못하는 것은 정부의 과도한 규제, 기업의 투명성과 지배구조 문제 등에도 일부 원인이 있지만, 가장 큰 이유는 국내 투자자들이 국내 기업의 실력을 너무 과소평가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사장은 이를 ‘자학적인 자기평가’라고 비꼬았다.

리 캐피탈 투자자문의 자산운용 형태는 헤지펀드로 가는 중간단계로 볼 수 있다. 기관과 개인 자산을 가리지 않고 주식과 채권은 물론 부동산, 외환 등 상상할 수 있는 모든 기법을 동원해 고수익을 추구하는 본격적인 헤지펀드는 국내에서 아직 허용되지 않고 있다. 우리 자본시장의 기반이 취약해 헤지펀드가 시장을 교란할 우려가 있기 때문.

이사장은 저평가된 우량 주식 위주로만 투자하고, 리스크 헤징 수단으로는 주로 해외 선물이나 ADR, GDR 등 해외 주식예탁증서를 이용할 계획이다. 국내에선 헤징 수단에 대한 제약이 많기 때문이다. 투자종목 선별을 위해 대우증권 통신장비담당 애널리스트 출신의 허성일 상무, 모건스탠리 애널리스트 출신의 황기두 이사, 신영증권 반도체담당 애널리스트를 지낸 이승우 부장 등을 영입했고, 이사장과 대우투자자문 출신의 박진현 상무가 펀드매니저를 맡는다.

이사장이 잡은 목표수익률은 연 20∼25%. 이는 전세계 헤지펀드의 평균 수익률과 비슷한 수준이다. 이사장은 “향후 경제성장률과 물가상승률, 기업수익 증가율, 그리고 주가재평가 전망치 등을 감안하면 결코 무리한 목표가 아니다”라고 자신했다.

리 캐피탈 투자자문은 지분의 3분의 2 정도를 대표이사와 자산운용 전문인력이 보유하는 독특한 지배구조를 갖고 있다. 이는 주요 주주인 사장과 자산운용 인력이 파트너십 형태로 회사를 경영함으로써 고객의 장기적, 안정적인 수익이 회사의 발전과 직결되도록 하겠다는 의도에서 비롯됐다. 그래서 이사장의 명함에는 직함이 ‘Managing Partner’라고 찍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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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형삼 <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 han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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