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7월호

부천 신앙촌 재개발사건의 전모

돈과 권력, 소송과 로비가 어우러진 난장판

  • 김기영 <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 hades@donga.com

    입력2004-09-07 13:3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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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국이 월드컵 열기로 떠들썩했던 지난 6월 초·중순, 월드컵 관련기사로 도배가 되다시피 한 일간지들의 사회면 한 구석에 중년 이상 독자들의 귀에 익은 지명이 거론된 사건 기사 하나가 조심스럽게 또아리를 틀고 있었다.

    ‘부천 신앙촌 재개발 시행사 정관계 거액로비 수사’, ‘신앙촌 재개발 사업 정관계 로비수사 착수-이형택 수뢰의혹’, ‘신앙촌 개발업체 검경 뇌물수사 착수 검찰 곧 관련자 소환키로’, ‘신앙촌 재개발 건설업체 수사관에 2억원대 뇌물’….

    시간이 지날수록 기사는 몸집을 키우더니 13일자 한 일간지에서는 ‘신앙촌 재개발도 검은 의혹’이라는 제목으로까지 커졌다.

    기사의 비중이 커져가는 만큼 검찰의 수사속도도 빨라졌다. 사건을 맡은 서울지검 특수3부(부장 서우정)는 이번 사건을 제보한 진정인들과 뇌물수수 의혹을 사고 있는 공무원들에 대한 기초조사를 벌이고 있다.

    속도 붙은 검찰수사



    이어서 6월17일부터는 신앙촌 재개발 시행사측으로부터 거액의 금품을 받은 의혹을 받고 있는 이형택 전 예금보험공사 전무와 검찰 경찰 공무원을 차례로 소환, 조사를 벌이고 있다. 검찰주변에서는 신앙촌 개발시행사와 이들 공무원들 사이에 오간 돈의 규모가 수십억원에 이른다는 소문이 나돌면서, 자칫 또 다른 게이트 사건으로 비화하는 것 아니냐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도대체 이 사건의 내용이 무엇이기에 월드컵 열기 속에서도 꾸준히 언론의 조명을 받고 있는 것일까?

    이 사건은 사람들의 관심을 모을 만한 요건을 두루 갖추고 있다. 갈등의 발생지이자 사건의 배경이 된 경기도 부천의 신앙촌 부지에는 현재 10만여 평 대지 위에 6개 단지 5500세대의 아파트 단지와 상가가 들어서는 재개발 공사가 한창이다.

    이는 단일규모 아파트로는 현재 국내에서 진행 중인 공사 가운데 최대 규모로, 총 건축비만 1조원에 이를 것으로 예상된다. 건설 후 시공사와 시행사 몫으로 떨어지는 이익금만도 각각 1000억원에 이를 것으로 추정된다. 재개발 공사의 시공사는 국내 최대의 건설회사인 현대건설이고, 시행사는 기양건설산업이라는 중소기업이다.

    이번 사건에 등장하는 인물들도 만만치 않다. 심재륜 조승형 이종왕 이상수 변호사 등 양측의 법률상담을 맡은 전현직 변호인들도 막강하다. 분쟁의 당사자는 그리 유명하지 않지만 의혹의 배후로 거론되는 인물 가운데는 유명 정치인들의 이름도 나온다. 재개발 사업을 둘러싼 이권 다툼이라고 하기엔 등장인물도 많고 거론되는 자금의 규모도 대단하다.

    40년 역사의 신앙촌

    부천시 범박동 재개발지역, 세칭 신앙촌은 천부교 신도들의 집단 거주지역이었다. 1960~70년대 천부교 신자들이 속속 이곳으로 모여들면서 특정 종교 신앙인들의 거대한 집단 거주지역을 형성했다.

    가장 최근에 신앙촌이 사람들이 관심을 끈 것은 1997년에 4월25일에 있었던 한보사건관련 국정조사청문회였다. 이날 오전 사람들의 관심은 국회청문회장에 쏠렸는데 이날의 증인은 김현철씨였다. 심문에 나선 사람은 김경재 국민회의 의원. 이런 저런 질문을 하던 김의원은 돌연 현철씨의 자서전을 거론하고 나섰다.

    “증인의 책 ‘하고싶은 이야기 듣고 싶은 이야기’ 26페이지에 신앙촌 할머니 이야기가 나오는데 그 할머니 지금도 살아계시지요?”

    느닷없는 질문에 현철씨는 잠시 말을 멈춘 뒤 “예, 살아계십니다”라고 답했다.

    “그것을 인용하자면 ‘신앙촌 할머니는 친할머니를 대신하여 그런 그늘을 드리워 주신 분이다’라고 했는데, ‘그런 그늘’이란 건 ‘포근한 그늘’, 뭐 그런 뜻이겠지요? ‘내가 듣기론 그분은 한때 박태선 장로의 신앙촌에 가족과 함께 들어가 사셨다’는 귀절도 있네요. 그런데 그 양반이 아직 신앙촌에 사십니까?”

    “거기에 살지 않으시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대선 당시 증인의 어머님이 신앙촌에 한 세 번쯤 가신 적이 있다던데요?”

    “신앙촌에 가신 적은 없고요. 가셨다면 그 할머님을 뵈러 가셨겠지요.”

    “그때는 할머님이 신앙촌에 사셨군요?”

    “예.”

    “시온종단이라는 것을 아십니까?”

    “모릅니다.”

    “그러면 시온종단의 박윤명이라는 종단대표도 모르시고요?”

    “모릅니다.”

    “제가 가지고 있는 정보에 의하면 이 종단이 서석재씨나 증인을 통해서 1992년 대선 당시 나사본에 수십, 수백억원의 대선자금을 지원했다는 주장이 있습니다. 모르신다는 말씀이지요?”

    “예, 모릅니다.”

    “만일 그렇다면 큰일이지요? 그렇지 않습니까? 기성교단의 고매한 장로님과 장로님의 아들들이 이런 종단에서 돈을 받았다는 것은 큰 문제가 되는 것 아니겠습니까?”

    아슬아슬한 질문과 대답이 오갔지만 이날 청문회를 계기로 사람들은 특정 종교를 믿는 사람들이 모여 사는 신앙촌을 새삼 기억에 떠올리게 됐다. 초기 정착 이후 40여년 세월이 흐르면서 신앙촌에는 무허가 주택들이 밀집해 들어서기 시작했고, 5000여 명의 영세주민들이 거주하면서 슬럼화의 길을 걷기 시작해 재개발이 시급한 지역으로 거론돼 왔다. 1990년대 들어 주민들의 재개발 요구는 집단행동 양상을 띠기 시작했는데 주민들의 단체도 주민협의회(90년), 통합주민회의(92년), 주민회의(94년) 등으로 바뀌거나 분화되면서 요구사항도 다양해지기 시작했다.

    두 개의 시행사 등장

    마침내 1995년부터 신앙촌 재개발 사업이 시작됐다. 재개발 사업이 시작되면서 주민들 사이의 갈등도 본격화된다. 1996년에는 토지 소유권 문제로 종단과 주민회의 간에 다툼이 격해지더니 마침내 민사소송이 제기되는 등 종단과 주민들 간 갈등은 최고조에 이르게 된다. 법률상 범박동에 대한 토지소유권은 종단 산하 시온학원 앞으로 돼 있지만, 종단에 전재산을 헌금하고 신앙촌에 들어와 수십 년간 살아온 신도들은 사실상 이 땅의 소유권이 자신들에게 있다며 소유권 이전을 요구하고 나선 것이다.

    이처럼 주민과 종단이 대립하면서 재개발공사를 맡을 시행사도 둘로 나뉘게 됐다. 종단측은 기양건설이라는 회사를 시행사로 선정했고 주민회의측은 세경진흥이라는 회사를 시행사로 선정하는 등 한 사업단지 안에 두 개의 시행사가 들어서는 진풍경이 벌어졌다.

    대립해 다투던 두 회사의 갈등은 일단 외환위기가 해결해줬다. 1997년 신앙촌 재개발 공사 시공사였던 극동건설이 자금난에 빠져 부도가 났다. 그러자 극동건설이 지급보증한 어음으로 사업을 진행 중이던 기양건설, 세경진흥 등 시행사들도 잇따라 부도가 났고 신앙촌 재개발 사업 역시 중단되는 위기에 처하게 된다.

    1999년 12월16일 그동안 세경진흥이 발행한 어음채무 450억원 상당을 기양건설의 후신인 기양건설산업(이후 기양)이 인수하여 어음에 대한 지급보증을 섰던 극동건설의 보증채무를 면책해주는 조건으로 세경진흥은 재개발 시행권을 기양 측에 넘겨주게 된다.

    오랜 갈등 끝에 부천 신앙촌 재개발사업의 단독 시행사가 된 기양은 극동건설을 대신할 새로운 시공사를 찾아 각방으로 뛰어다녔다. 그리고 마침내 2000년 4월 현대건설이 새로운 시공사로 선정돼 계약을 체결했다.

    현대건설과 시공계약을 맺을 당시 기양의 대표이사는 김병량 회장(47)이었고 이교식(47)씨는 상무 직함으로 현대건설과 기양의 업무 연결을 맡았다. 훗날 원수지간으로 갈라서 법정다툼을 벌이게 되는 김병량씨와 이교식씨가 처음 만난 것은 1990년대 초반, 대전 동학사 부근 온천을 함께 개발하면서부터다. 그후 두 사람은 1994년 남양주군에 있는 덕소신앙촌재건축 사업에도 함께 참여했으나, 자금이 부족해 별다른 성과 없이 물러나고 말았다. 그러니까 부천 신앙촌 재개발 사업은 김병량씨와 이교식씨가 함께 일을 벌인 세 번째 사업이었다.

    재미동포 사업가의 등장

    부천 신앙촌 시행사가 된 기양이 사업을 성사시키기 위해 당장 할 일은 세경진흥과 기양의 전신인 기양건설이 발행한 부도어음 589억여 원 상당을 회수하는 일이었다. 589억여 원의 어음 채무금은, 세경진흥으로부터 사업권을 인수하는 조건으로 세경이 발행했다가 부도가 난 어음 450억여 원어치와, 기양건설산업의 전신 기양건설이 발행했다 부도가 난 어음 138억여 원을 합한 금액.

    기양은, 사업시행을 위해 세경이 이미 매수한 신앙촌 내 토지를 물려받아 아파트를 건설하기 위해 세경이 발행하고 극동건설이 지급보증을 섰던 약속어음 450억원을 책임지고 회수하기로 약정했기 때문이다.

    이처럼 부도어음 회수라는 중대한 문제를 두고 김병량 회장과 이교식씨가 고민에 빠져 있을 때 또 다른 사건의 주인공이 등장한다. 재미동포 언론인으로 알려진 연훈(50)씨였다.

    연씨는 부천 신앙촌 개발사업에 참여하기 전에 상도동 재개발사업의 시행사를 운영하면서, 상도동 공사의 시공사이기도 했던 극동건설 관계자를 통해 김병량씨를 소개받았다. 연씨는 기양이 부도어음 회수라는 골칫거리를 안고 있는 것을 보고 자신이 이를 해결해 보겠다고 나섰고 이렇게 해서 기양과 인연을 맺게 된다.

    연씨 주도로 기양은 BHIC라는 별도 법인을 설립한다. 자본금 5000만원의 이 회사는 기양이 주금을 가장납입하는 방식으로 설립됐는데 목적은 세경과 기양건설이 발행한 부도어음만을 회수하는 것이었다. 명목상의 대표이사는 이교식씨가 맡았다.

    현대건설과 시공계약을 맺은 2000년 4월부터 신한종금이 보유한 마지막 세경발행 어음을 회수한 2001년 5월까지, 연씨는 BHIC 명의로 세경과 기양건설이 발행한 액면금액 589억여 원의 부도어음을 액면금액보다 현저하게 할인된 가격에 사들이게 된다. 세경과 기양의 부도어음을 갖고 있는 서울투자신탁운용과 동서팩토링, 동화파이낸스, 신한종금으로부터 총 148억여 원을 지급한 뒤 부도어음을 전부 회수했는데 이는 액면금액의 25%밖에 안되는 낮은 가격이었다.

    이렇게 인수한 부도어음을 BHIC가 기양에 되팔 때는 액면가격의 60%인 381억여원으로 거래한 것으로 돼 있는데, 이 금액은 기양과 BHIC사이에 작성된 계약서에 나와 있는 수치일 뿐 실제 두 회사 사이에 자금이 오간 것은 아니다. 기양이 BHIC에 381억원을 지급하고 부도어음을 회수한 것이 아니라 서류상 이 가격에 거래가 이뤄진 것으로 꾸며졌다는 것이다. 이같은 방법을 계획하고 지휘한 사람은 연훈씨였다.

    이처럼 부도어음을 싼값에 되사 부도업체가 보유하고 있던 사업권을 따내는 방식은 연훈씨의 독창적 작품이었다. 지난해 11월 검찰조사 당시 연씨는 “유령회사를 통해 우회적으로 부도어음을 회수하는 방법을 어떻게 알게 됐느냐”는 검사의 질문에 “나름대로 연구하여 알아낸 방법”이라고 답했다.

    부도어음의 회수에 필요한 돈은 현대건설이 관리하고 있는 분양금에서 지급됐다. 현대건설은 기양과 시공계약을 하면서 총 300억원을 기양에 지급하는 대신, 기양은 이 돈으로 전 시행사의 부도어음 589억여원을 회수하기로 계약을 맺었다. 이 계약에 따라 기양은 금융기관별로 부도어음의 회수가 성사될 때마다 현대건설로부터 자금지원을 요청했고 부도어음 회수작업이 진행된 2000~2001년에 실제 270억원의 돈이 현대건설에서 기양으로 건너갔다.

    이렇게 어음 전부가 회수되면서 신앙촌 아파트 단지도 속속 그 웅장한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모두 6단지로 구성된 아파트 단지 가운데 1, 2단지는 신앙촌에 거주하던 1600가구의 신도들로 구성된 조합아파트로 건설됐고 나머지는 일반에 분양됐다.

    하지만 시행사 내부 구성원들 사이에 문제가 생기면서 범박동 아파트단지 재개발을 둘러싼 잡음이 하나 둘 외부에 알려지게 됐다.

    2001년 11월, BHIC의 대표인 이교식씨가 서울지검을 찾았다. 서울지검 특수3부에서 이씨는 기양이 범박동 재개발 사업을 벌이면서 거액의 공적자금을 횡령했다며 관련자료 등을 제출하고 진술서를 썼다.

    며칠 뒤 기양건설산업에 검찰 수사관들이 압수수색영장을 갖고 찾아왔다. 김병량 회장과 연훈씨 등 기양의 핵심인사들도 속속 검찰조사를 받았다. 이들이 검찰조사를 받은 뒤 20여 일이 지난 2001년 12월11일 일간지 사회면에 눈길을 끄는 기사가 등장한다. ‘공적자금 투입 금융기관 채권 헐값매각 10억 챙겨’(문화일보), ‘사업권 딸린 부실채권 사례금 받고 싸게 팔아’(중앙일보), ‘뇌물받고 부실채권 헐값에 팔아’(조선일보) 등 앞서의 기양건설산업 김회장과 연씨 등에 대한 검찰의 수사 진행을 알리는 기사였다.

    방송들도 이 사건을 대대적으로 보도했다. 공적자금의 누수에 대한 사회적 지탄 여론이 비등하던 시점이라 이 사건은 적지않은 관심을 모았다. 당시 신문은 이 사건을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공적자금이 투입된 일부 금융기관 임직원 등이 5000만~8억원대의 뇌물을 받고 부실채권을 헐값에 팔아 넘긴 혐의로 검찰에 적발됐다. 서울지검 특수3부(부장 차동민)는 10일(2001년 12월) 이같은 혐의로 D팩토링 전 청산인 S모(54)씨 등 3개 금융기관 전·현직 임직원 3명을 구속 기소했다. 검찰은 또 이들에게 부도어음을 싸게 사는 대가로 뇌물을 건넨 혐의로 K건설 대표 김모(46)씨와 금융 브로커 서모(50)씨 등 5명을 구속기소하고 K건설 부회장 Y모(49)씨를 불구속 기소하는 한편 브로커 김모씨를 수배했다. S씨는 공적자금이 투입된 D팩토링 청산인으로 있던 작년(2000년) 4~9월 K건설 부회장 Y씨로부터 “부도난 S사 어음 등 액면가 282억원의 어음을 싼 값에 사게 해달라”는 부탁을 받고 어음을 92억원에 산 뒤 사례비 명목으로 8억원을 받은 혐의를 받고 있다.(중략) 적발된 금융기관 중 D파이낸스는 공적자금 2조5000억원이 투입된 D은행이 전액 출자한 회사이며, 91억원짜리 부도어음을 20억원에 판 S종금도 공적자금 2조3700억원이 투입됐다고 검찰은 밝혔다.’(조선일보)

    전례가 없는 사건

    유령회사를 동원해 부도어음을 헐값에 매수하고, 그 과정에 금융기관의 담당 임직원을 돈으로 매수했다는 것이 이 사건의 줄거리다. 이 기사에 등장하는 D팩토링은 동서팩토링을 가리키고 D파이낸스는 동화파이낸스를 말한다. 또 K건설은 기양건설산업을 뜻한다.

    이교식 상무의 고발에서 시작된 이 사건은 기양의 핵심인물인 김회장의 구속으로 막을 내리는 듯했다. 하지만 김회장이 지난 2월 1심에서 집행유예 판결을 받고 풀려나면서 상황은 돌변했다. 이번에는 이교식씨가 서울지검 강력부로부터 쫓기는 신세가 됐다. 혐의는 공갈 협박. 이씨가 현대건설의 현장 관리인 박아무개씨와 함께 기양 김회장을 협박해 17억원을 갈취했다는 혐의였다.

    단번에 고발인과 피고발인이 바뀌면서 상황은 역전됐다. 이교식씨는 검찰의 수배를 받고 도피하는 신세가 됐고, 김회장은 일간신문에 이교식씨를 수배하는 광고까지 내고 당당하게 추적하는 자리에 섰다.

    그러던 지난 6월초, 상황은 다시 뒤집혔다. 재개발사업 진행과정에서 기양과 번번이 대립하던 범박지역 주택조합 주민회의(조합장 정용기)가 주민 600여 명 연명으로 김회장과 연훈씨 등의 공적자금 횡령 등 비리의혹과 공무원들에 대한 뇌물수수 등에 대해 다시 수사해 달라며 대검찰청과 부패방지위원회에 각각 진정서를 제출한 것이다.

    대검찰청에 접수된 진정서는 지난 연말 이 사건을 수사했던 서울지검 특수3부에 재배당됐다. 특수3부는 다시 사건의 관련자들을 조사하기 시작했다. 또 새롭게 추가된 공무원들에 대한 뇌물수수 혐의에 대해서도 조사하고 있다.

    지난 15일에는 서울 포이동 기양건설산업 본사에 대한 검찰의 압수수색이 진행됐다. 피진정인들과 뇌물수수 의혹을 받는 공무원들에 대한 출국금지 조치가 내려졌다. 최근 들어 신문 지면을 장식한 부천 신앙촌 재개발사업 관련 기사들은 바로 이런 복잡한 과정을 거쳐 터져나온 것들이다. 하루아침에 추격자와 도망자의 위치가 뒤바뀌는 복잡한 싸움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이다.

    그러면 도대체 부천 신앙촌 재개발 사업에는 무슨 문제가 있는 것일까. 한때 동료였던 사람들이 극한 대립을 벌이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공적자금 횡령이라는 비도덕적 범죄행위는 정말 벌어졌을까? 이 사건 관련자로 거명되고 있는 이형택 전예금보험공사 전무는 무슨 이유로 이름이 오르내리는 걸까? 공무원 뇌물수수 의혹은 또 뭘까?

    아울러 이번 사건에도 빠짐없이 등장하는 유명 정치인들은 무슨 사연으로 신앙촌 재개발사건에 연이 닿아 있을까? 실제 이들 정치권은 신앙촌 재개발사건과 관련이 있을까?

    복잡한 대결구도

    이번 사건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사건 당사자들의 현재 대립구도를 이해해야 한다. 먼저 이번 사건의 핵심에는 부천 범박동 재개발사업의 시행사인 기양건설산업이 자리 잡고 있다. 기양건설산업은 김병량 회장과 연훈씨를 중심으로 운영되고 있다. 한때 이들과 함께 일하던 이교식씨는 지난해 가을 두 사람을 고발하면서 적대적 관계로 돌아선 상태. 이씨와 함께 기양에서 일하던 장아무개씨 등 일부 직원도 이교식씨와 한편이 돼 김회장의 기양과 맞서고 있다.

    김병량, 연훈씨 진영과 이교식씨 사이의 적대감은 대단하다. 한때 한솥밥을 먹던 사이였지만 지금은 서로 상대를 검찰에 고발하면서 원수지간이 되고 말았다. 두 사람 사이의 반목이 이번 사건을 이해하는 열쇠와 같다.

    이교식씨는 자신이 기양과 현대건설을 이어줌으로써 오늘날 범박동 재개발공사가 가능하게 한 실질적인 공로자라고 주장한다. 자신이 현대건설을 끌어들이지 않았으면 기양도 쓰러졌을 것이고, 재개발사업의 양상도 달라졌을 것이라는 얘기다. 이씨는 김병량 회장이 현대와 관계를 맺어준데 대한 공로금으로 16억원을 줬다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김회장은 이씨를 공로자로 인정하지 않는다. 오히려 이씨가 시공사인 현대건설의 박아무개 부장과 모의 해 “돈을 주지 않으면 사업진행을 방해하겠다”며 16억원을 갈취해 간 협박범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한걸음 더 나아가 현대건설을 시행사로 끌어들인 것도 김회장 자신과 연훈 씨이며 이교식씨는 기여한 바가 없다고 주장한다. 이익치 현대증권 회장 등 현대그룹의 고위층 인사를 김회장과 연부회장이 직접 설득해 공사에 참여하도록 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기양의 총무담당 이사였던 배아무개씨는, 지난 연말 검찰 진술에서 이교식씨에게 지불된 16억원의 자금 성격에 대해 “정확한 내막은 모르겠지만, 말 그대로 열심히 일한 대가로 주었다고 들었다”고 진술해 김회장의 주장과는 다른 목소리를 냈다.

    기양의 김회장과 연훈씨는 범박지역 주택조합 주민회의와도 대립하고 있다. 주민회의의 핵심인사들은 정용기 조합장과 김범수, 서덕원씨 등 신앙촌 2세대 출신이 이끌고 있는데, 이들은 1996년 기양과 김회장이 범박동 재개발사업에 발을 들여놓은 뒤 끊임없이 대립해왔다. 주민회의 측은 당초 세경진흥을 시행대행사로 선정해 재개발 사업을 추진해왔는데, 기양을 또 다른 시행사로 끌어들인 시온학원과 갈등을 빚으면서 자연스럽게 기양과도 마찰을 빚어왔다.

    세경진흥도 기양과는 대립관계에 놓여 있다. 이 두 회사는 범박동 재개발 시행권을 놓고 한판 대결을 펼쳤는데 서울의 마지막 남은 황금 땅덩어리인 단국대 부지 재개발사업권을 두고도 얼마 전까지 갈등을 빚어왔다. 그러니까 기양건설산업과 시온학원이 중심이 되어 진행하고 있는 범박동 재개발사업에 대해 이교식씨 등 기양출신 인사들과 주민회의 인사들, 세경진흥이 한편이 돼서 맞서고 있는 것이 대략적인 대결구도이다.

    그렇다면 무엇이 문제인가. 구체적인 비리 의혹들을 짚어보자. 가장 관심을 끄는 것은 공적자금 횡령 의혹이다. 이교식씨 등은 “연훈씨가 아이디어를 냈고 예금보험공사와 극동건설의 전직 간부가 개입된 치밀한 범죄행위”라고 주장하고 있다. 이씨 등이 제기하는 공적자금횡령 루트와 방식은 다음과 같다.

    기양건설산업이 회수해야할 세경진흥과 기양의 전신인 기양건설이 발행한 어음의 액면가는 총 589억원이다. 기양이 범박동에서 공사를 하려면 전 시행사가 발행한 부도어음을 전액 회수해야 했다. 이들 어음을 소지하고 있는 금융기관 가운데 상당수는 IMF외환관리 사태 이후 자금난에 빠져 공적자금이 투입된 금융기관들이었다. 세경진흥이 발행한 어음은 동서팩토링(144억5000여만원), 동화파이낸스(100억여원), 서울신탁운용(115억5000여만원), 신한종금(90억9300만원) 등에 흩어져 있었다. 기양건설이 발행한 어음은 동서팩토링(138억여원)에서 소지하고 있었다.

    이들 금융기관에 흩어져 있는 어음 채권을 싼값에 매수하기 위해 기양은 BHIC라는 회사를 설립했다. 기양이 직접 이들 금융기관을 상대로 어음을 매수하지 않은 것은 시행당사자가 직접 나설 경우 금융기관들이 높은 값을 요구할 것을 우려해서였다. 연훈씨는 검찰조사에서 “전 시행자였던 세경진흥이 어떻게든 방해를 놓을까 싶어 그랬다”고 말했다. 이어지는 연씨의 진술요지.

    “기양이 범박동 프로젝트라고 불리우는 아파트 재개발사업을 진행하게 되면 상당한 이익이 예상되고, 그렇게 되면 부도난 세경진흥이나 기양건설의 어음을 갖고 있는 금융기관에서는 좋은 조건으로 부도어음을 매도할 수 있게 되는데, 우리 회사로서는 기대이익은 있으나 자금력이 충분하지 못한 상태에서 금융기관이 액면대비 높은 비율로 부도어음 결제를 당장 요구하면 제대로 사업을 진행할 수 없게 된다. 그래서 기양이 다른 회사를 설립해 어음을 매수한다는 사실을 모르도록 함으로써 부도난 어음을 가급적 저가에 회수하고자 BHIC를 설립했으며 BHIC가 금융기관으로부터 부도어음을 매수하고 기양이 이를 재매수하는 형식을 취하게 된 것이다.”

    푸른상호신용금고의 발빠른 방어

    유령회사를 내세워 어음을 싸게 사들이고 기양은 이를 되파는 007작전을 방불케 한 거래를 주도한 사람은 연훈씨였다.

    이교식씨는 “이런 식으로 어음을 회수함으로써 기양은 액면가의 25%정도의 가격으로 어음을 회수할 수 있었으며 이 과정에서 기양은 사실상 440억원에 가까운 차액을 남겼고 그만큼 공적자금에 피해를 입혔다”고 주장한다. 이씨는 “범박동 재개발 사업 자체가 이익이 남는 사업이어서 금융기관들 입장에서는 어음을 보유하고만 있어도 가까운 시일 안에 정상 가격으로 어음을 팔 수 있었음에도 연훈씨 등의 로비로 헐값에 어음을 팔아치웠다”고 말했다.이씨는 연훈씨의 로비에도 불구, 실제 어음의 액면가대로 매도한 금융회사도 있었다며 푸른상호신용금고의 예를 들고 있다.

    푸른금고의 경우 BHIC라는 회사가 어음을 사겠다고 했을 때 현장을 찾아와 확인한 결과 실제 어음 구입자가 기양임을 확인한 뒤 건설현장 부지에 신속하게 담보를 설정해 액면가 전액을 받아낼 수 있었다고 한다. 이처럼 금융기관 쪽에서 제대로 알아보고 신속하게 일처리만 했어도 헐값에 어음을 처분하는 일은 없었을 것이라는 게 이씨 등의 주장이다.

    이씨 등은 김병량 회장이 현대로부터 어음 매입 대금 270억원을 포함, 340억원을 받은 뒤 실제 어음 구입 대금으로는 148억원만을 지출함으로써 여기서도 190억 여원의 차익을 남겨 고스란히 착복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연훈씨도 적지 않은 자금을 횡령했다는 게 이씨 등의 주장이다.

    이교식씨는 “내가 대표이사로 있었던 BHIC 명의로 어음을 회수한 뒤, 이를 기양에 381억원에 되판 것으로 돼 있는데 아무리 장부상의 거래라 해도 차익을 남기고 되판 것으로 처리된 이상 세금추징을 피할 수 없는 것 아니냐”며 “기양 김회장에게 세금상의 불이익이 없도록 해달라고 요청했으나 번번이 거절당해 어쩔 수 없이 자구책으로 검찰에 이 사실을 알리게 됐다”고 말했다.

    이형택 관련설도 떠돌아

    이에 대해 김병량 회장은 “터무니없는 주장”이라고 반발했다. 연훈 부회장은 “우리가 공적자금을 횡령했다고 하는데 이는 말도 안되는 조작”이라고 흥분했다. 연씨는 “당시 부도난 어음들은 회수 가능성이 없어 결손처리를 해야할 처지였다. 삼일회계법인의 심사에 따르면 4개 금융기관이 갖고 있는 극동건설 지급보증 어음의 평가가치가 액면가의 5%에 지나지 않았다. 그걸 우리는 20~30% 가치로 쳐주고 매입했다. 뭐가 잘못됐는가”라고 반문했다.

    연씨는 “세경과 기양건설 어음을 갖고 있던 금융기관 가운데 실제 공적자금이 투입된 금융기관은 신한종금 하나 뿐이다. 나머지 금융기관은 사금융 기관들로 공적자금과는 전혀 무관한 회사들이다. 금융회사들이 자금난에 빠져 공적자금이 투입됐다고 하는데 4개 금융회사 가운데 서울투신금융은 멀쩡하게 살아있다. 공적자금이 투입된 회사는 신한종금이 유일하며 신한종금이 갖고 있던 세경어음의 액면가는 90억9300여만원인데 이를 회수하느라 20억원을 썼다”고 말했다.

    연씨는 신한종금의 경우에도 자신이 직접 로비에 나서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김아무개라는 브로커에게 4억원을 주고 신한종금이 보유하고 있는 세경어음을 되사는 일을 부탁했을 뿐 자신은 신한종금 관계자를 만난 적이 없다고 주장했다.

    신한종금은 파산 후 예금보험공사에 의해 정리절차가 진행 중인 금융기관. 신한종금이 세경 어음을 BHIC에 매각한 시점은 지난해 5월23일이다. 당시는 예금보험 공사의 감독 하에 있었으므로 어음을 헐값에 매도하는 과정에 예보의 고위관계자가 관련이 돼 있을 것이라는 게 진정인 측의 주장이다. 이형택 전 예보전무의 이름이 오르내리는 것도 이 때문이다.

    진정인 측의 한 관계자는 “연씨가 사석에서 무수히 자신과 현정권 고위층과의 개인적 인연을 강조하곤 했는데 그가 예보를 움직이는 과정에 영향력을 행사하지 않았겠느냐”며 의혹의 눈초리를 보내고 있다. 이에 대해 연씨는 “절대 그렇지 않다. 나를 대신해 신한종금 로비를 한 김아무개씨가 예보쪽 사람 누구를 만났는지는 몰라도 나는 신한종금은 물론, 예보쪽 어느 누구와도 만난 적이 없다”고 말했다.

    김병량 회장은 “어음을 헐값에 샀다고 하지만 나도 피해자”라고 말했다. 그는 “어음 회수 전만 해도 과연 몇%에 회수를 할지 가늠하지 못했다. 그런데 연훈씨가 어음 회수에 나선 뒤 동서팩토링이 보관중인 어음을 액면가의 35~40%에 회수할 수 있다고 해 얼른 하라고 했다. 그런데 그 뒤 다른 사람이 나선 동화파이낸스와 서울투신운용이 보관한 어음은 이보다 싼 가격인 액면가의 30%에 살수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현재 9억7000만원의 공금을 횡령한 혐의로 형을 선고받았는데 그 돈의 대부분은 연훈씨에게 빌려준 것으로 돼 있고 실제 빌려준 돈”이라며 자신의 억울함을 강조했다.

    여기서 한가지 짚고 넘어갈 점은 현대건설은 과연 이런 불법을 몰랐는가 하는 점이다. 기양이 유령회사를 내세워 어음을 회수하는 과정에서 결정적 역할을 한 것은 현대가 건네준 270억원의 자금이기 때문이다. 자본금 3억원인 기양이 589억원어치의 어음을 매수한다는 것은 꿈도 꿀 수 없는 일이었지만 현대건설이 지급한 자금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현대건설의 한 관계자는 “우리는 약정에 따라 돈을 지급했을 뿐 구체적인 진행과정은 알 수가 없었다”는 입장이다. 현대건설 역시 기양의 편법에 속은 피해자라는 얘기다.

    신앙촌 재개발사건에서 눈길을 끄는 것은 기양과 김회장 등이 공무원들에 거액의 뇌물을 지급했다는 의혹이다.

    이교식씨 등은 기양의 경리담당자인 홍아무개씨의 검찰 진술서를 근거로 “김회장이 부천지역 공무원들을 상대로 적지 않은 금액의 금품을 살포해왔다”고 주장했다.

    홍아무개씨의 진술서에는 공무원으로 짐작되는 인물에게 돈이 건네졌음을 의심할 만한 진술이 몇 군데 있다. 예를 들면 이런 대목이다.

    ‘10/12 현금전달(김기사 편에 차에 실어드림) 5,000,000 남부서(단대 가신날)’

    ‘10/18 현금인출 주택은행 장 계좌에서 50,000,000을 인출하여 연회장 드림(부천지라고 표기하라 하였음)’

    ‘10/24 현금 일천만원 인출해서 700, 300으로 나누어 연회장님께 전달(부천지로 기재하라 하셨음)’

    ‘11/13 호성주택은행 계좌에서 30,000,000을 인출하여 한남동에서 연회장님께 전달 서울지 조라고 표기하라 하였음’

    ‘11/14 주택은행 장 계좌에서 삼천만원을 인출하여 김기사 편에 전달 남부김이라 표시해 놓으라 하였음’

    이 진술에 나오는 ‘남부서’나 ‘부천지’는 각각 ‘부천남부경찰서’와 ‘인천지검 부천지청’을 의미한다는 게 이씨측의 주장이다. 또 ‘서울지 조’란 서울지검에 근무하는 조아무개 수사관을 가리킨다는 것이 이씨측이 주장이다. 또 ‘남부 김’이란 부천남부경찰서에 근무하는 김아무개 수사관을 의미한다는 것이다. 이처럼 뇌물 수수의혹을 받고 있는 경찰과 검찰공무원들에 대해서도 조사도 진행중이다.

    그런데 이들 공무원들이 뇌물수수 의혹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이유는 김회장 등이 자신의 반대파들을 무수히 고발했고, 그 과정에서 부천지청과 부천지역의 경찰서를 무수히 출입했기 때문이다. 서울지검 강력부 역시 김회장이 이교식씨와 장아무개씨 등을 고발했던 곳이다.

    사건의 한 관계자는 “신앙촌 재개발 사업 추진과정에서 김회장과 기양의 비리에 문제를 제기하는 사람들은 김회장측의 고발로 숱하게 부천지청에 소환돼 조사를 받고 구속이 됐었다”며 “이렇게 김병량 회장의 고발로 구속된 신앙촌 관련자들은 기양이 시행사로 들어온 이후 18명에 이른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반대로 우리가 김회장을 고발하면 일처리가 더디지만 김회장이 우리 중 누구를 고발하면 소환 즉시 구속처리 됐다”며 “이런 상황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느냐”고 말했다. 결국 평소부터 김회장측이 부천지청의 수사관 등을 금품으로 치밀하게 관리해왔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는 것이 이들의 주장이다.

    게이트로 확대될 가능성도

    실제 금품을 수수한 의혹을 받고 있는 부천지청과 부천남부서 등에 근무하는 경찰관들은 최근 한 주간지와의 인터뷰에서 한결같이 금품수수 혐의는 부인하면서도 김회장과 안면이 있었음을 인정하고 있어 기양 경리담당자가 작성한 진술서가 상당한 신빙성을 갖추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하지만 이런 의혹에 대해서도 김회장은 철저히 부인하고 있다. 그는 “‘부천지’니 ‘남부서’니 하는 것은 단순히 연훈씨에게 돈을 줬다는 표식정도일 뿐 다른 의미는 없다”는 것이다. 김회장은 “물론 몇백만원씩 공무원들에게 돈을 빌려주고 받은 적은 있지만 수천만원씩 뇌물을 준 적은 없다”고 말했다.

    이교식씨를 비롯한 진정인들은 김회장과 기양이 이밖에도 건설도급계약서를 변조하거나 부동산 매매계약서를 변조하는 방식으로 수십억원대의 비자금을 조성하고 이를 횡령했다는 주장도 펴고 있다.

    그 대표적 사례가 2001년 5월에 기양과 호영환경개발 사이에 작성된 건설공사 도급계약서다. 기양은 범박동 재개발단지 내에 들어설 소새중학교와 소새초등학교의 부지조성 토목공사를 발주하면서 당초 호영환경과 9억9000만원(소새중학교), 7억7000만원(소새초등학교)에 계약을 했다. 그후 기양은 45억2700만원(소새중학교)과 19억6130만원(소새초등학교)의 계약금액이 적시된 또다른 계약서를 작성해 이를 근거로 시공사인 현대건설로부터 68억여 원을 받아낸 뒤 호영환경에는 원계약서대로 17억여 원만 지급하고 나머지 50억원은 비자금으로 횡령했다는 의혹도 제기되고 있다.

    이밖에도 신앙촌 재개발을 둘러싼 소송은 한 두가지가 아니다. 재개발 철거과정에 조직폭력배가 동원됐다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고, 주민회의 쪽에서는 기양이 관련 서류를 위조해 조합에 있는 시행권을 가로챘다는 주장도 펼치고 있다.

    이에 반해 기양측은 “사실상 범박동에 자신들 명의의 땅 한 평 없는 주민들을 위해 아파트를 지어주고 있는데도 일부 세력이 주민들을 선동해 더 많은 것으로 빼앗으려 하고 있다”며 반발하고 있다.

    잡음이 그치지 않고 공무원들마저 이 사건의 피의자로 떠오르면서 이 사건이 또 다른 비리게이트로 번질 가능성도 있어 보인다. 양측 모두 사생결단의 자세로 맞서고 있고 상대방의 비리의혹을 무차별적으로 폭로하고 있어 자칫 문제가 정치권으로 번질 가능성도 높아가고 있다.

    부천 신앙촌 재개발 사업에 정치권이 관여하고 있다는 소문은 일단 기양 쪽에서 흘러나고 있다. 기양의 한 관계자는 “부천이 지역구였던 여권의 한 고위 인사가 주민회의와 세경진흥의 배후에서 우리를 죽이려 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그 여권 인사는 부천 뿐 아니라 단국대 재개발사업에도 영향력을 행사하려 한다는 의혹이 있다”고 말했다.

    이 인사는 “원래부터 이 정치인은 주민회의 쪽 사람들과 가까웠다. 주민회의 사람들이 이 정치인의 선거운동을 도왔는데 그 인연으로 주민회의 쪽 입장에 서서 우리를 몰아내려고 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같은 기양측의 주장에 대해 진정인 측의 한 관계자는 “잘못 알려진 것”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그 정치인이 부천에서 출마했을 때 신앙촌 문제에 각별히 신경을 써준 것은 사실”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의 전언.

    “1998년이었던 것 같은데, 시공사와 시행사가 부도나 범박동 재개발사업이 지지부진해져서 국민회의에서 당시 청와대에 근무하던 이 정치인을 찾아간 적이 있었다. 그는 우리 얘기를 한참 듣더니 어떻게든 돕고 싶다며 사업계획서 5부를 만들어 오라고 했다. 그래서 만들어주니 그걸 5대그룹 산하 건설회사에 돌렸다. 그 후 5대그룹 건설회사에서 사람들이 찾아와 우리를 만나고 사업성을 검토했다. 하지만 두달 이상 진행된 조사 결과 타당성이 없다며 다들 물러났다. 당시 한 재벌계열 건설회사는 ‘우리가 하기 싫어서 안하는 것이 아니라 자금사정이 정말 좋지 않다. 그러니 청와대의 그분에게 말씀을 좀 잘 드려달라’고 부탁까지 했다. 그리고 상황은 종료됐다. 5대 재벌계열 건설사 가운데 LG건설이 관심을 갖다가 중도에 그만뒀다. 그 후로는 별다른 진행상황이 없다가 나중에 현대건설이 참여하게 된 것이다.”

    진정인 측도 기양의 배후에 정치권이 있다는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한 관계자는 “이번 사건의 진정서를 제출하기 위해 청와대와 민주당의 민원 관련 부서를 찾아갔지만 진정서 접수자체를 거절당하거나, 보는 앞에서 기양 측 사람에게 전화를 걸어 진정서가 접수됐다고 알려주는 모습도 봤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누구라고 찍어서 얘기할 수는 없지만 검찰을 움직이는 힘이 기양의 배후에 있다는 느낌”이라고 말했다. 진정인들 가운데는 구체적으로 연훈씨를 정치권 로비스트로 지목하는 사람도 있다. 또 다른 관계자는 “평소 연씨가 사석에서 대통령의 아들들은 물론, 현 정권 인사들과 친분이 있다는 얘기를 자주 했다. 그렇다고 그가 실제 정치권 인사들과 접촉하는 것 같지는 않지만 연씨의 말이 전부 허튼 소리 같지만은 않았다”고 말했다.

    연씨가 정치권 인사와 교류가 있다는 말은 그의 동료인 김병량 회장의 입에서도 나왔다. 김회장은 “야당의 L전 의원과 형님 동생하며 친하게 지내는 것으로 안다. 최근에는 여당의 K전의원과도 만난다는 얘기를 들었다”고 말했다.

    연훈씨 DJ와도 알고 지내

    김회장은 “연씨가 미국에서 살 때 야당인사이던 김대중 대통령, 김영삼 전대통령 등과도 잘 알고 지냈다고 하더라. 특히 DJ와는 인연이 깊었다고 하는데 무슨 일이 있고나서는 연락을 안하고 지낸다는 얘기를 들었다”고 덧붙였다.

    연씨의 정치권 인맥과 관련한 소문은 이밖에도 적지 않다. 그를 아는 한 재미교포는 “연씨가 LA현지 한인언론인들을 통해 김홍일씨쪽 사람들과도 교분을 갖고 지내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그러면 과연 연씨는 어떤 사람인가. 소문처럼 기양의 정치권 로비를 담당한 정가 마당발일까.

    연씨는 자기 스스로를 “LA에서 언론인 생활을 20년 이상 한 사람”이라고 소개한다. 실제 그는 LA 한인교포들을 상대로 주간지 ‘선데이 저널’이라는 무가지를 발행하기도 했다. ‘선데이 저널’은 교포들의 근황은 물론, 국내 정치인과 정치상황에 관한 기사도 적지않게 다루는 매체였다. ‘선데이저널’을 발행할 당시 연씨는 미국에 있으면서도 국내 정치상황에 대해 적지않은 정보를 갖고 있었다. 특히 한국 정치인들의 비리소문 수집에 탁월한 재주가 있는 인물이었다는 평가다. 그를 잘 아는 한 언론인은 연씨에 대해 “딱히 물증은 없지만 한참 얘기를 듣다보면 ‘정말 그렇겠구나’하는 개연성을 느낄 정도로 실감나는 정보를 전해주곤 했다”고 말했다.

    연씨는 1952년생으로 서울 경복고를 졸업했는데 경복고 동창인 원혜영 부천시장과도 가까운 것으로 알려졌다. 단국대 물리학과를 다니다 그만둔 뒤 1981년 미국으로 건너가 1995년경까지 LA에서 줄곧 거주해왔다. 대부분의 미국교포들처럼 연씨는 골프를 즐겼는데 실력이 싱글 수준에 이른다고 한다. 세경진흥과 기양건설 명의의 어음을 회수하기 위해 금융권 인사들과 만나면서 탁월한 골프 실력을 발휘했다고 한다.

    1996년 귀국한 연씨는 신동아그룹 최순영 회장을 비방한 혐의로 구속돼 실형을 살았는데 수감 중 감옥에서 역시 복역 중이던 아파트 시행사 사장을 만나 재건축사업에 대해 배웠다고 한다. 출소 후에는 상도동 재개발사업을 하다가 실패하고 그무렵 기양의 김병량 회장을 만나 범박동 재개발사업에 뛰어들게 됐다.

    연씨는 외부적으로 기양건설산업의 부회장 직함을 사용하고 있다. 그의 명함에도 부회장 직함이 적혀 있다. 하지만 연씨는 지난 연말 검찰 조사에서 “직접적으로 (기양건설산업에) 관여하지는 않았으나 김병량의 부탁에 따라 필요한 일들을 하곤 했다”고 진술했다.

    양측의 변호사도 막강하다. 정식 선임을 하지는 않았지만 김병량 회장 쪽에서는 조승형 변호사와 이종왕 변호사, 이상수 변호사 등이 변론을 돕고 있다. 이 가운데 조승형 변호사는 시온학원 이청환 이사장의 주선으로 김회장 측을 돕고 있다. 차정일 특검의 특검보로 유명한 이상수 변호사는 김회장과는 이전 사건으로 인연을 맺었는데 이번 사건 초기 김회장을 돕다가 특검보로 차출되면서 사임했다. 대검 중수부 수사기획관을 지낸 이종왕 변호사는 김회장 진영에 무게를 더해주는 인물이다.

    반대로 이교식씨 등 진정인들 쪽에는 심재륜 변호사가 버티고 있다. 1997년 대검 중수부장 시절 김영삼 대통령의 아들 현철씨를 구속시킨 배짱두둑한 법조인으로 평가받는다.

    거물급 변호사들이 법률자문으로 나선 양측의 다툼이 어떻게 결론이 나든 이번 사건은 여러가지 상처를 남길 것 같다. 가장 큰 피해자는 범박동에 오랫동안 터잡고 살아온 서민들이라는 지적이다. 시행사와 주민회의 사이의 갈등과 반목으로 공사가 늦어졌고, 뒤늦게 건설된 조합아파트마저 일반분양 아파트에 비해 단지 배치나 인테리어 등에서 뒤처진다는 소문이 나면서 불만의 목소리가 조금씩 흘러나오고 있다고 한다.

    하지만 무엇보다 주민들을 괴롭히는 것은 7년을 끌어온 내분의 와중에 40년동안 한곳을 지켜온 주민들마저 분열돼 버렸다는 점이다. 이제는 고령이 돼 버린 1세대 신앙촌 이주자들에게 이보다 괴로운 일이 또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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