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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치보는 군 수뇌부 겨냥한 한철용의 ‘쿠테타’

6·29 서해교전과 기막힌 군사정보 유출 배후

  • 글: 이정훈 hoon@donga.com

눈치보는 군 수뇌부 겨냥한 한철용의 ‘쿠테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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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두 번 직위진급한 권영재 중장과 한철용 소장 간의 갈등
  • ●이용호의 보물선 인양 둘러싼 한철용·김동신의 갈등
  • ●한소장, 국정원 국방보좌관 시절 군 수뇌부 약점 확보
  • ●정보위 열리지 않아 국방위에서 사실 폭로
  • ●윗분이 원하는 쪽으로 정보의 판단보고를 바꾸는 장교들
  • ●777부대와 정보사 통합하라
  • ●‘쟁이’들로 가득찬 777부대의 능력과 고집
  • ●미군에도 자료 제공하는 한국군 정보 수집 능력
  • ●6·25 전쟁, 9·11테러, 6·29 교전의 공통점
눈치보는 군 수뇌부 겨냥한 한철용의 ‘쿠테타’
10월4일 국방부 국정감사장에서 5679부대장인 한철용 육군 소장(韓哲鏞·제주 오현고-육사 26기 출신) 이 6월29일 일어난 서해교전(이하 6·29교전)과 관련해 “북한이 도발할 수 있다는 정확한 보고를 올렸으나, 김동신(金東信) 국방장관이 묵살했다. 그런데 김장관은 기무사를 동원해 5679부대를 표적수사했다”고 폭로해 큰 충격을 주었다. 한소장의 발언에는 현정부의 대북정책을 뒤흔드는 ‘쿠데타적인 성격’이 깔려 있는 것 같았다.

며칠 뒤 한소장의 폭로에는 진급에 대한 불만이 깔려 있다는 분석이 나왔다. 또 5679부대와 정보사령부가 40일간 정보 교류를 하지 않은 사실이 밝혀져 또 한번 국민들은 경악했다. 이래도 되는 것일까. 이러한 군대를 믿고 국민들은 생업에 종사해도 되는 것일까. ‘있을 수 없는’ 일들이 일어난 만큼 이 사건 발생 경위와 원인을 뿌리에서부터 추적해 보기로 한다.

정보사의 모태 777부대

5679부대는 대한민국군 부대 중에서 부대 이름이 없는 유일한 부대다. 지금은 5679지만 얼마전만 해도 9125부대, 한때는 7235부대로 불렸다. 이 부대는 도깨비처럼 이름을 자주 바꾸는데,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 부대명으로 나온 숫자를 더하면, 단(單) 단위는 항상 ‘7’이 된다는 사실이다. 5+6+7+9=27이고 9+1+2+5=17, 7+2+3+5=17이다. 왜 이 부대 이름의 숫자를 더하면 단 단위는 7이 되는가. 이 부대 통칭이 777부대기 때문이다.

777부대는 ‘스리 세븐 부대’로 불린다. ‘스리 세븐’이라는 명칭을 얻은 데는 사연이 있다. 이 부대는 한국군이 아니라 6·25전쟁 때 UN군 사령부 노릇을 하던 미국 극동군 사령부(사령관 맥아더 원수)가 만들었기 때문이다. 6·25전쟁중 미 극동군은 한국 민간인으로 구성된 KLO(Korea Liaison Office) 부대를 이용해 대북첩보를 수집했다. 그리고 전쟁이 끝나자 한국군으로 편성된 대북첩보부대 창설을 준비했다.

미 극동군은 북한 지역에서 가장 왕성하게 유격전을 펼친 구월산 부대(부대장 김종벽)를 백령도로 철수시켰다. 이 부대를 근간으로 1956년 서울시 용산구 보광동에 대북첩보부대를 창설했는데, 이것이 777부대의 시작이었다. 777부대는 미군 예산으로 미군 장교가 지휘권을 행사하며 한국군 첩보요원을 양성했다. 미군도 아니고 한국군도 아닌 연합부대적 성격이 강했기 때문에 777부대로 불리게 된 것이다.

777부대의 위세는 대단했다. 장교와 사병을 불문하고 부대원들은 권총을 소지했고 머리를 길렀으며 사복을 입고 다녔다. 당시 이러한 ‘위세’를 부릴 수 있던 부대는 이 부대와 CIC(지금의 기무사)뿐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CIC 요원은 국내에서 활동하는 바람에 종종 신분이 노출되는 경우가 있었다. 그러나 777부대원은 북한을 상대하므로, 국내에서는 요원들의 신분이 노출되는 경우가 거의 없었다. 때문에 상당기간 이 부대는 “그런 부대가 있다고 하더라”하는 ‘카더라’ 통신으로만 존재가 알려졌다.

‘천리안’과 ‘보이지 않는 손’

얼마 후 777부대에서 미군의 직접 지원 없이 한국군이 단독으로 할 수 있는 분야가 떨어져 나왔다. 이때 떨어져 나온 요원으로 창설한 것이 HID부대다. HID는 북파공작원을 양성해 북한군 지역으로 침투시키는 일을 주로 수행했다. HID는 국군정보사령부로 이름을 바꾸는데 전두환(全斗煥) 정부를 고비로 정보사는 북파공작원을 보내는 공작을 중단했다. 대신 과학 정보를 확대하는 쪽으로 주 임무를 바꾸었다.

오랫동안 미군은 U-2 고공정찰기와 KH-12 첩보위성 등으로 북한지역의 사진을 찍어왔는데, 이 사진 분석 임무가 정보사로 이관된 것이다. 정보병과 장교들은 전후방 각부대의 정보 참모로 나가는 경우가 많으므로, 사진 판독 임무는 주로 부사관들이 담당했다. 엄격한 심사과정을 거쳐 선발된 이들은 미국에서 교육을 받는데 돌아오면 대개 준위로 진급해, 장기간 복무하며 사진 판독 업무에 종사했다.

사진판독관의 실력이 높아지자 정보사는 독자적으로 사진을 찍는 사업을 추진한다. 금강산 이남의 북한 지역을 촬영할 수 있다고 해서 지난 2000년 ‘금강’이라는 코드네임이 붙은 정찰기를 도입한 것이다. 미군의 U-2 정찰기는 대공미사일이 닿지 못하는 고도까지 날 수 있어 이따금 적 영공으로 침투해 사진을 찍는다. 그러나 금강정찰기는 터보 프롭 비행기라 대공미사일의 사정권 안에서 비행하기에 북한 지역으로는 침투하지 못한다.

하지만 상대적으로 낮은 고도에서 사진을 찍다 보니 정보적인 면에서는 ‘가장 중요한’ 휴전선 바로 북쪽을 찍은 사진의 해상도가 U-2기 사진보다 뛰어나다고 한다. 따라서 최근에는 미군도 금강정찰기가 찍어온 사진을 얻어가고 있다.

이와 함께 북한에서 온 귀순자를 신문해 정보를 얻고, 중국이나 일본을 통해 북한으로 우회침투하는 공작도 활발하게 벌였다. 이로써 정보사는 명실상부한 한국군 최고의 정보부대로 발전했다. 한마디로 정보사는 멀리서 적진을 살펴보는 ‘천리안(千里眼)’과 ‘보이지 않는 손’으로 북한을 다루는 특수부대가 되었다.

그러는 사이 777부대는 상대적으로 축소되었다. 사실 정보사가 충분한 실력을 갖고 있다면 777부대는 존재할 이유가 없다. 주한미군은 독자적으로 501 정보단을 운영하므로, 정보를 교환할 필요가 있으면 한국군 정보사와 501정보단이 바로 교류하면 된다. 그러나 정보사의 출발점이 777부대에서 파생돼 나오는 형식이다 보니, 777부대도 ‘고유의 일감’을 확보하게 되었다. 신호정보 수집과 분석이 그것이다.

신호정보는 적지에서 나오는 방송이나 통신처럼 무선(無線)으로 나오는 모든 전파를 말한다. 가장 일반적인 신호정보인 공중파 방송은 TV 수신기와 라디오로 주파수만 맞추면 들을 수 있다. 그러나 중요한 정보는 공개되지 않는 주파수로 전파된다. 좋은 예가 휴대전화다. 휴대전화는 사적인 정보를 주고받는 도구라 통화내용의 비밀이 보장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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