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신동아 로고

통합검색 전체메뉴열기

심층취재

인디 뮤지션의 세계

목표 연봉 1000만원 레슨과 행사로 밥벌이하며 ‘나만의 음악’ 꿈꾸다

  • 김작가│대중음악평론가 noisepop@hanmail.net

인디 뮤지션의 세계

1/4
  • 지난해 11월 원맨 밴드 ‘달빛요정역전만루홈런’의 이진원이 뇌출혈로 세상을 떠나며 인디 뮤지션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 적지 않은 히트곡을 내고서도 생활고에 시달렸던 그는 사회안전망 바깥에 내몰린 젊은 문화예술인의 안타까운 초상이다. 아이돌에 편중된 한국 음반시장에서 인디 뮤지션은 음악 창작의 다양성을 지탱하고 있다. ‘자아실현’과 ‘생계유지’ 의 경계에 선 한국의 인디 뮤지션은 무엇으로 사는가.
인디 뮤지션의 세계

지난해 뇌출혈로 세상을 뜬 원맨 밴드 ‘달빛요정역전만루홈런’의 이진원.

1월27일, 26개에 달하는 홍대 클럽에서 100여 팀의 뮤지션이 무대에 섰다. 그들은 오후 7시부터 11시까지 하나의 주제로 공연을 펼쳤다. 지난해 11월 초 세상을 떠나 많은 이를 안타깝게 했던 원맨 밴드 달빛요정역전만루홈런의 이진원을 추모하는 자리였다. 4500장의 티켓은 순식간에 팔려나갔다. 평일 저녁 홍대 앞에 몰린 인파는 남은 티켓을 구하기 위해 이 공연장, 저 공연장을 돌아다니며 발을 동동 굴렀다. 1990년대 중반, 한국 대중문화계의 화두로 떠올랐던 인디 음악에 대한 열기가 실로 오랜만에 재현되는 순간이었다. 한국 인디의 역사에 길이 남을 만한 순간이었다.

인디란 무엇인가

여기서 묻고 싶다. 이슈가 있을 때마다, 혹은 여러 페스티벌이 열릴 때마다 인디에 대한 얘기를 한다. 이런 식이다. “… 등등의 인디 밴드가 참가한다.” 그런데 과연, 인디란 무엇일까. 여러 가지 정의가 있을 수 있다. 원론적으로는 독립 유통 음반을 의미한다. 미국, 영국 등 유니버설, 소니BMG, 워너, EMI 같은 메이저 레이블이 사실상 모든 음악 유통을 장악하는 국가에서 이런 메이저 레이블에 종속되지 않고 독자적인 제작·유통 시스템을 갖춘 레이블을 인디 레이블이라 불렀다. 그리고 여기에 소속해 활동하는 뮤지션들을 인디 뮤지션이라 했다. 그게 시작이었다. 그들에게는 판매와 활동의 열악함 대신 음악 창작의 자유가 주어졌다. 그 때문에 메인스트림에서는 할 수 없는 온갖 실험을 할 수 있었다.

대중음악 미학의 발전사는 일정 부분 인디 레이블과 인디 뮤지션의 몫이었다. 그 개념이 1990년대 중반, 한국에 이식됐다. 마침 홍대 앞을 중심으로 헤비메탈이 아닌 펑크와 얼터너티브 등을 연주하는 밴드가 등장하고, 그들이 공연하는 클럽이 각광받기 시작하면서였다. 하지만 한국에 메이저는 없었다. 음반 산업은 주먹구구식이었고 영세 기획사들이 난립하는 형국이었다. 삼성, LG 등의 대기업이 뛰어들긴 했지만 복마전 같은 음반 시장에서 그들의 영향력은 지극히 미미했다. 인디가 메이저의 반대 지점에서 출발했음을 상기한다면, 애당초 본래의 의미를 유지한 채 이식되기는 힘든 개념이었다.

당시 인디 담론을 주도했던 측은 과거의 운동권 내지는 진보 진영이었다. 그들은 인디에 정치적 함의를 부여했다. ‘문화 게릴라’라는 프레임이 설정됐다. 언론엔 스토리가 필요했다. 그들의 음악보다는 가난한 현실에 포커스가 맞춰졌다. 그래서 한국의 초기 인디에는 ‘지하실에서 라면을 먹지만 우리 자신의 음악이 있기에 행복하다’는 스토리가 입혀졌다. ‘획일화된 대중음악에 저항하는 진짜 음악’이라는 포장지도 씌워졌다. 물론 틀린 말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게 전부도 아니었다. 그런 인식이 조금씩 바뀐 건 그 안에서 스타가 등장하면서다. 크라잉넛, 노브레인, 언니네이발관, 델리스파이스 같은 밴드들은 지상파에도 진출했고 음반 판매고도 꽤 올렸다.

그 후 인디 음악의 개념을 대체한 건 실력파 뮤지션이라는 거다. 2000년대 이후 메이저 가수들의 자질논란이 극심해지면서부터다. 신인 가수가 데뷔하고, 그들이 실력이 있음을 증명하는 수사로 ‘홍대 인디 밴드 출신’이라는 문구가 보도자료에 등장하기 시작했다. 체리필터처럼 사실인 경우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사실이 아니었다. 씨엔블루의 캐치프레이즈가 인디 밴드인 것과 마찬가지다. 당시의 인디 신이 스스로를 규정하려 하지 않았기 때문에 일어났던 해프닝이다. 홍대 음악=인디 음악. 즉 로컬 음악을 의미하던 시절이었다.

장르는 다양해지고 밴드의 색깔은 더욱 다양해졌다. 일원화된 묶음이 불가능해졌다. ‘홍대를 중심으로 활동하고 TV 출연보다는 라이브에 역점을 두는 음악’이라는 포괄적 합의가 부지불식간에 이뤄졌다. 그렇기 때문에 실력이 있는 것으로 여겨지기도 했다. 주류 기획자들이 홍보의 수단으로 삼았던 이유이기도 하다.
1/4
김작가│대중음악평론가 noisepop@hanmail.net
목록 닫기

인디 뮤지션의 세계

댓글 창 닫기

2018/12Opinion Leader Magazine

오피니언 리더 매거진 표지

오피니언 리더를 위한
시사월간지. 분석, 정보,
교양, 재미의 보물창고

목차보기구독신청이번 호 구입하기

지면보기 서비스는 유료 서비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