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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식의 考古野談

석가탑 도굴 미수가 내린 축복

황룡사 목탑 사리장엄

  • 김태식|국토문화재연구원 연구위원·문화재 전문언론인

석가탑 도굴 미수가 내린 축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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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가탑  도굴 미수가  내린 축복

1978년 경주 황룡사지 발굴조사 때 들어 올려진 구층목탑의 심초석. 가운데 네모난 구멍이 사리공이다.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

“황룡사도 우리가 도굴했다.”
1966년 석가탑 도굴 사건은 비록 미수에 그치기는 했지만, 범행 대상이 국내 어느 문화재보다 상징성이 큰 데다, 그 수법이 대담했으며, 더구나 도굴단 뒤에는 삼성그룹 이병철 회장의 친형이 있었다는 점에서 그것이 미친 여파가 자못 컸다. 한데 경찰이 막상 도굴단을 붙잡아 여죄를 추궁하는 과정에서 이들의 마수가 문화재 현장 곳곳에 뻗쳤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당시 관련 언론보도를 종합하면 이들은 1964년 이후 경주와 주변 지역 석탑과 사찰, 그리고 고분을 범행 대상으로 삼았다. 이런 범행 대상에 뜻밖에도 경주 황룡사지 구층목탑 사리장엄이 들어 있었다.

이해 9월 24일자 동아일보 7면을 보면, 도굴단을 검거한 서울시경이 전날 도굴범들을 대동하고는 범행 현장검증을 실시했다는 기사가 관련 사진과 함께 실려 있다. 시경 수사과 제3계장 이억조 경감 지휘 아래 실시된 이날 검증에서 도굴범들은 덩그러니 터만 남은 목탑 현장에서 목탑 중심 나무기둥을 올려놓는 받침돌인 심초석(心礎石)을 어떻게 도굴했는지 재연했다. 목탑 바닥시설 한복판에 위치한 심초석은 동서 최장길이 435㎝, 남북 최장길이 300㎝, 두께 104~128㎝, 무게 30t으로 추정되는 불규칙한 타원형 거대한 화강암 덩어리였다.

심초석 위에는 위가 뾰족하고, 그 한복판에는 기둥 구멍을 마련한 또 다른 거대한 화강암 덩이 하나가 덮개돌처럼 놓인 상태였다. 범인들은 이 덮개돌을 자동차 타이어를 갈 때처럼 무거운 것을 들어 올릴 때 쓰는 기구인 잭(jack)을 이용해 밀어 올리는 장면을 재연했다. 덮개돌 아래 심초석 위쪽 중앙에는 한 변 길이 49㎝, 깊이 34.5㎝의 정사각형으로 움푹 파인 구멍이 드러났다. 이곳이 사리공(舍利孔)이라 해서 탑을 세울 때 부처님 진신사리와 함께 각종 귀중품을 안치하는 공간이다. 도굴단은 이곳을 턴 것이다. 그렇다면 이들은 어떻게 이곳을 도굴할 생각을 했으며, 그들이 턴 것들은 어떤 것이었을까. 이를 알기 위해서는 이보다 대략 21개월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1964년 12월 26일 자정 무렵, 훗날 석가탑 도굴 미수 사건의 주범이 되는 김모 씨는 인부 몇 명을 대동하고 황룡사 목탑 터 현장에 나타났다. 야음을 틈타 이들은 3t짜리 무거운 물건을 들어 올리는 오일 잭과 렌치를 이용해 심초석 덮개돌을 동쪽 부분에서 30㎝가량 들어 올리고는 사리공에서 각종 사리장엄 공양품을 걷어냈다. 범행이 알려지면 안 되므로, 덮개돌은 다시 제자리로 내려놓았다. 이들이 꺼낸 유물 목록을 당시 언론에서는 호박구슬 100점, 은제 밥그릇 3점, 동제(銅製) 도장 1점, 상자 1점, 각형 합(角形盒) 1점, 환봉(丸棒·둥근 막대기) 1점, 은술잔 1점, 기타 1점 등이라고 적었다. 이렇게 이들이 도굴한 물품은 공범 중 한 명인 윤모 씨를 거쳐 서울 인사동 K골동품상 주인 김모 씨에게 15만 원에 매각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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