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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재현의 심心중中일一언言

군사도시 원주를 춤바람 나게 만든 사내

이재원 원주다이내믹댄싱카니발 예술감독

  • 글 권재현 기자|confetti@donga.com| 사진 지호영 기자|f3young@donga.com|원주문화재단

군사도시 원주를 춤바람 나게 만든 사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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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사도시 원주를 춤바람 나게 만든 사내

원주다이내믹댄싱페스티벌의 메인 무대인 따뚜공연장에 선 이재원 예술감독

강원도 원주는 ‘군사도시’로 통했다. 육군 1군사령부와 36사단의 주둔지이자 주한미군기지 캠프롱이 위치한 도시. 주변의 군부대는 또 얼마나 많은가. 그래서 지역 대표축제도 군악대 축제인 ‘원주국제따뚜’였다.

네덜란드어에서 파생한 따뚜(tattoo)는 군대에서 귀영을 알리는 나팔소리를 뜻하는데 여기서 군악연주란 의미도 파생됐다. 6·25전쟁 발발 50주년 되는 2000년 참전국 군악대를 모아 공연한 것이 계기가 돼 탄생한 원주국제따뚜는 이 지역의 대표 공연축제로 떠올랐다. 영국 스코틀랜드 에든버러 성에서 매년 8월 한 달간 매일 밤 펼쳐지는 ‘로열 밀리터리 타투’의 아시아판을 꿈꾸며 2006년에는 4300석 규모의 전용 야외공연장까지 세웠다. 하지만 콘텐츠의 다각화에 어려움을 겪으면서 결국 2010년을 마지막으로 사라졌다.

이를 대신하기 위해 생겨난 축제가 ‘원주다이내믹댄싱카니발’이다. 올해 9월로 7회를 맞는 이 축제는 기적에 가까운 성공을 거두며 전국 지자체의 부러움을 한 몸에 받고 있다.  화려한 수상 경력부터 보자. 2014년 강원도 우수지역축제 선정, 2015년 한국축제박람회 ‘최우수 축제 브랜드 상’ 수상, 2016년 ‘문화관광축제-유망축제’ 선정, 2017년 ‘문화관광축제-우수축제’ 선정…. 특히 문체부 유망축제로 선정된 뒤 불과 1년 만에 우수축제로 선정된 경우는 원주댄싱카니발이 최초라고 한다.

이번엔 숫자로 이를 검증해보자. 지난해 9월 20~24일 닷새간 이어진 이 축제를 찾은 방문객 추산 숫자는 47만5000명. 현재 강원도 최다 인구를 자랑하는 원주 인구 34만을 훌쩍 뛰어넘는 수치다. 원주국제따뚜 시절 방문객 숫자가 5만 명 안팎이던 것과 비교하면 상전벽해(桑田碧海)가 따로 없다. 그로 인한 경제유발 효과는 지난해만 344억 원으로 추산됐다. 따뚜 시절 예산이 연간 20억 원이었던 반면 댄싱카니발로 전환한 뒤 지난해 예산이 12억 원에 불과했다는 점에서 이는 더욱 고무적이다.

군사도시 원주를 춤바람 나게 만든 사내

국민연극 ‘라이어’의 어머니

불과 5년 사이에 이뤄진 이 변화로 인해 원주 시내 곳곳에선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춤 연습이 펼쳐지고 있다. 한때 근엄하던 군사도시가 춤바람 도시가 됐다는 말까지 들린다. 그 춤바람 뒤에는 한 파란만장한 사내의 사연이 숨어 있다. 원주문화재단의 이재원 축제감독(47)이다.

사실 그는 일반인에겐 낯선 존재다. 하지만 2000년대 이후 대학로 공연계에서 그의 이름을 모르면 ‘간첩’이었다. 이재원은 2000년대 대학로 흥행 돌풍의 핵이던 ‘라이어’ 1~3편을 제작한 파파프로덕션의 2인자였다. 2001년부터 지금까지 16년째 대학로에서 공연되는 라이어 시리즈는 한때 대학로 3개 공연장에 서울 강남의 전용 공연장까지 마련하고 200만 이상의 관객몰이에 성공한 블록버스터급 연극이다. 파파프로덕션의 이현규 대표가 이를 발굴하고 한국적 공연으로 다듬어낸 ‘아버지’였다면 동갑내기 친구이던 이재원 이사는 그 성공가도를 보장한 인프라를 구축한 ‘어머니’였다.

이재원은 배우 출신으로 대학로 밑바닥에서부터 잔뼈가 굵어 셈이 빨랐고 술은 못 마셔도 친화력이 좋았다. 그래서 ‘라이어’의 대학로 안착에 1등 공신이라는 소리를 들었다. 대학로 돈 돌아가는 시스템에 정통했기에 20명의 전속배우를 포함해 80여 명에게 매달 일정 금액을 지급하는 월급 시스템을 구축할 수 있었다. 또 전국 공연 유통 관계자들과 돈독한 인맥을 구축해 ‘라이어’ 공연 깃발이 대학로를 넘어 전국 곳곳에서 나부낄 수 있게 했다.

그렇게 파파프로덕션의 안방마님이 된 그는 ‘대학로의 현금지급기’라는 별명도 얻었다. 대학로 기획자들이 자금난에 몰릴 때마다 S.O.S.를 치면 숨통이 트일 수 있을 정도의 자금을 융통해주는 선심을 베풀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2010년경 돈 문제로 이 대표와 이 이사 관계에 금이 갔다는 소문이 들리더니 결국 대학로에서 모습을 감췄다. 공연계에선 익숙한 ‘화무십일홍 권불십년’ 에피소드의 하나인가 했는데 지난해부터 원주발(發) 공연축제 회오리바람의 주역이 바로 이재원이란 소리가 들려왔다.

기나긴 봄 가뭄을 달래주는 봄비가 하루 종일 내리던 4월 5일 식목일 초저녁 그를 만나기 위해 원주행 기차에 몸을 실었다. 그리고 대학로에서 자취를 감춘 뒤 7년의 세월을 보낸 이 파란만장한 사내의 사연을 1박 2일에 걸쳐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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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권재현 기자|confetti@donga.com| 사진 지호영 기자|f3young@donga.com|원주문화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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