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신동아 로고

통합검색 전체메뉴열기

영화 속 술 이야기 ⑦

007의 첫 연인 베스퍼, 그리고 마티니

  • 김원곤│서울대 흉부외과 교수│

007의 첫 연인 베스퍼, 그리고 마티니

1/3
  • 오늘밤 007과 베스퍼의 사랑을 떠올리면서 바텐더에게 “보드카 마티니, 젓지 말고 흔들어서”라고 외쳐보는 건 어떨까? ‘베스퍼 마티니’엔 한 남자의 열정, 사랑이 오롯이 담겨 있다.
007의 첫 연인 베스퍼,        그리고 마티니
영화 ‘007’은 1962년 첫 편인 ‘살인번호’가 개봉된 이래 50년 가까이 이어진 전설적 첩보 스릴러다. 007시리즈는 작품에 따라 흥행에 기복이 있었지만 세계적으로 많은 고정 팬을 확보한 블록버스터 중 하나다. 007시리즈는 2009년 현재 공식적으로 22편이 나왔는데, 이런 기록은 앞으로 영화사에서 찾아보기 어려울 것이다.

영국 정보국의 M국(해외특수공작 담당)에서 일하는 007을 창조해낸 이는 이안 플레밍(1908~1964). 해군정보대 중령을 비롯해 기자 은행가 증권브로커로 일한 그는 1953년 제임스 본드를 주인공으로 한 ‘카지노 로얄’이라는 제목의 소설을 발표한다. 생전에 12편의 작품을 내놓았는데 사후에 공개된 작품 1편과 미완성 작품 1편을 포함하면 모두 14편의 007시리즈를 썼다. 그의 추종자들은 지금도 제임스 본드를 주인공으로 한 007소설을 발표한다.

첫 작품은 1962년작 ‘살인번호’

플레밍의 소설에 근거해 지금까지 제작된 007시리즈를 살펴보자. 우선 007의 대명사로 불리는 숀 코너리가 주연한 ‘살인번호’(1편, 1962), ‘위기일발’(2편, 1963), ‘골드핑거’(3편, 1964), ‘썬더볼’(4편, 1965), ‘두번 산다’(5편, 1967), ‘다이아몬드는 영원히’(7편, 1971)가 있다. 1969년 개봉한 6편 ‘여왕폐하 대작전’에선 조지 레전비가 007역을 맡았다. 코너리는 1983년 다른 제작자가 만든 ‘네버세이 네버어게인’이라는 비공식 007물에 출연해 공식 007시리즈인 ‘옥토퍼시’(13편, 1983)와 흥행 대결을 벌였다.

007의 첫 연인 베스퍼,        그리고 마티니

007시리즈 ‘카지노 로얄’

레전비 다음으로 007을 품에 안은 배우는 로저 무어다. 무어는 ‘죽느냐 사느냐’(8편, 1973)를 시작으로 ‘황금총을 가진 사나이’(9편, 1974), ‘나를 사랑한 스파이’(10편, 1977), ‘문레이커’(11편, 1979), ‘포 유어 아이즈 온리’(12편, 1981), ‘옥토퍼시’, ‘뷰 투 어 킬’(14편, 1985) 등 7편에서 본드 역을 맡았다. 무어에 이어 티모시 달턴이 ‘리빙 데이라이트’(15편, 1987), ‘살인면허’(16편, 1989)에서 주연을 맡았지만 큰 인기를 끌지는 못했다. 달턴의 뒤를 이은 피어스 브로스넌은 007로서 비교적 선전했다. 그는 ‘골든아이’(17편, 1995)를 시작으로 ‘네버다이’(18편, 1997), ‘언리미티드’(19편, 1999), ‘어나더데이’(20편, 2000) 등 4편에서 활약했다. 최근엔 본드의 전통적 이미지와는 조금 다른 대니얼 크레이그가 007의 옷을 입었다. 그는 ‘카지노 로얄’(21편, 2006), ‘퀀텀 오브 솔라스’(22편, 2008)를 통해 ‘새로운 본드’의 이미지를 구축했다.

007시리즈가 세계를 무대로 활약하는 첩보원의 모습을 그린 만큼 세계 각국을 배경으로 한 술자리가 영화에 등장한다. 본드는 영화 속 대사를 통해 술에 관한 해박한 지식을 자랑한다. 그런데 007시리즈가 소품으로 활용한 갖가지 술 가운데 007시리즈에 등장하는 술이라고 누구나 쉽게 떠올리는 유명한 칵테일이 있다. 칵테일의 황제라고도 불리는 마티니가 그것이다

헤밍웨이의 마티니

마티니는 얼음에 진과 드라이 버무스(dry Vermouth)를 섞은 뒤 올리브로 장식한 칵테일. 이 술은 그 유명세만큼이나 탄생과 관련해 많은 설이 존재한다. 몇 가지를 소개하면 1911년 미국 뉴욕의 한 호텔 바에서 수석바텐더로 근무하던 마티니(Martini di Arma Taggia)가 처음 만들었다는 얘기가 술과 사람 이름의 연관성을 들어 회자된다. 이 설에 따르면 올리브를 얹는 것은 그가 마티니를 개발한 뒤 단골손님들이 올리브를 칵테일에 넣어서 마신 데서 유래했다고 한다.

다른 설로는 마티니를 만들 때 진과 함께 넣는 드라이 버무스로 이탈리아 회사인 마티니 앤드 로시(Martini & Rossi)의 제품을 사용한 데서 이름이 유래했다고 한다. 이밖에도 미국 캘리포니아주에 있는 마티네스(Martinez)라는 도시 이름에서 비롯했다는 설과 영국군이 쓰던 소총 마티니-헨리(Martini & Henry)에서 유래했다는 설도 있다.

마티니를 만들 때 사용하는 버무스는 식물을 첨가한 강화와인이다. 알코올 농도만 높인 강화와인이 아니라 각종 식물을 첨가해 특유의 향을 강조한 것. 그래서 버무스를 방향성 와인(aromatic wine)이라고도 한다. 버무스는 백포도주를 기본으로 해서 제품에 따라 허브, 꽃, 식물뿌리, 향신료를 넣고 설탕으로 단맛을 낸다. 브랜디로 알코올 함유량을 높이기 때문에 도수가 18~19%까지 올라간다. 버무스는 드라이 버무스와 스위트 버무스로 나뉘는데, 맑은 색깔의 드라이 버무스는 19세기 초 프랑스가 처음 개발했다.

마티니를 만들 때 진과 버무스의 비율은 보통 3대 1인데, 취향에 따라 버무스의 양을 줄일 수 있다. 최근엔 버무스의 양을 최대한 줄여 만든 드라이한 마티니를 마시는 게 일종의 유행으로 떠올랐다. 이는 버무스를 첨가해 복합미를 느끼면서도 되도록 진의 순수한 맛을 즐기겠다는 뜻이다. 그러나 너무 드라이한 마티니는 칵테일이라고 부르기에 뭣한 단독제품이 될 수도 있다. 어쨌거나 초드라이 마티니 애호가는 술맛의 단순성에 방점을 찍는다.

초드라이 마티니에 대한 여러 에피소드가 애주가들 사이에서 회자된다. 헤밍웨이의 소설 ‘강을 건너서 숲 속으로’엔 주인공이 드라이 마티니를 주문하면서 진과 버무스의 비율을 15대 1로 요구하는 장면이 나온다. 헤밍웨이도 쓴맛의 드라이 마티니를 좋아했던 것 같다.

어떤 애주가는 진만을 글라스에 넣고 저은 뒤 옆에 버무스병을 놓고 쳐다보면서 마셨다고 한다. 뉴욕의 한 애주가는 바에서 마티니를 주문하면서 진을 넣은 글라스 위로 버무스병을 지나가게 하는 방식으로 향기만 옮겨달라고 부탁했다고 한다. 바텐더가 주문대로 내놓은 마티니를 한 모금 들이켠 뒤 그 애주가는 술이 충분히 드라이하지 않다고 평하면서 두 번째 칵테일을 만들 때는 진 글라스에 입술을 대고 ‘버무스’라고 속삭여달라고 부탁했다. 바텐더가 다시 내놓은 마티니를 맛본 애주가는 한탄하면서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당신 목소리가 너무 컸던 모양이네요. 버무스향이 여전히 강해요.”
1/3
김원곤│서울대 흉부외과 교수│
목록 닫기

007의 첫 연인 베스퍼, 그리고 마티니

댓글 창 닫기

2018/12Opinion Leader Magazine

오피니언 리더 매거진 표지

오피니언 리더를 위한
시사월간지. 분석, 정보,
교양, 재미의 보물창고

목차보기구독신청이번 호 구입하기

지면보기 서비스는 유료 서비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