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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훈의 남자 옷 이야기 ⑦

핸드메이드 슈트의 자존심, 나폴리

  • 남훈│‘란스미어’ 브랜드매니저 alann@naver.com│

핸드메이드 슈트의 자존심, 나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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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피자와 휴양지로 이름 높은 나폴리는 세계 남성복의 세계에서 개성 강한 터줏대감이기도 하다. 나폴리의 아름다운 풍광에 매료돼 흘러들어온 영국 귀족의 복식 전통과 나폴리 장인의 바느질솜씨가 어우러져 세계 최고의 맞춤 슈트가 완성됐다. 나폴리의 고집스러운 슈트 철학은 좋은 슈트의 기준을 제시한다.
핸드메이드 슈트의 자존심, 나폴리

나폴리의 슈트 장인들은 이탈리아에서 가장 높은 수준을 보이면서 상당히 섹시한 핸드메이드 슈트를 만든다.

세계 패션의 흐름을 주도하는 나라는 비교적 명확하다. 여성복을 중심으로 한 럭셔리 패션 분야에서는 프랑스의 영향력이 절대적이고, 남성복에서는 역사적 자산이 풍부하고 사람들의 감성이 발달한 이탈리아가 강세다. 유럽 역사상 가장 강력했던 동시에 사치스러웠던 절대군주 루이 14세는 오늘날 프랑스 패션산업의 기반을 닦은 선구자다. 후손들이 오직 선조들의 역사만으로도 경제적 풍요로움을 누릴 수 있도록 만들어놓았다.

남성복의 발상지는 영국 런던의 유서 깊은 맞춤복 거리 새빌로다. 근대 영국 귀족의 다양한 라이프스타일을 표현한 옷들이 현대적인 남성복의 기준이자 모델이 됐다. 예술에 대한 감각이 남다르고 일상 속에서 스타일과 엘레강스를 즐기는 이탈리아인들은 남성복의 기초를 세운 영국식 문화에서 진일보해서 전세계 상류사회 남성들을 매료시키는 남성복의 새로운 기준을 제시하기에 이른다. 이탈리아는 본래 여러 도시국가가 독립적으로 존재해온 터라 거기서 비롯된 다양성이 밀라노, 피렌체, 베네치아, 나폴리 등 도시별로 독자적인 복식을 창조했다. 이 때문에 스타일 선택의 폭도 아주 넓어졌다.

한국 시장에서는 단순히 ‘메이드 인 이탈리아(Made in Italy)’의 가치만 두드러져, 이탈리아 브랜드라면 특성을 따지지 않고 선호하는 현상까지 있었다. 그러나 한국 시장도 이제 성숙 단계에 접어들었다. 이탈리아가 배출한 다양한 브랜드 각각의 구체적인 콘셉트를 구별하는 안목이 생겼다. 유럽의 도시마다 서로 다른 특성을 가진 남성복이 있음도 알게 됐다. 이를테면 르네상스 발상지 피렌체의 남성복 스타일은 중세부터 이어진 귀족문화의 원형을 비교적 온전하게 보존하고 있다. 과거 이탈리아 귀족들이 입었던 권위적이고 보수적인 양식을 오늘날까지 이어오는 일관성을 보여준다.

미국식 문화와 밀접하게 맞닿아 있던 로마식 남성복은 넉넉하고 편안한 실루엣이 특징이다. 무역업으로 번성한 베니스식 남성복은 정통 테일러링 슈트 제조기법을 유지하면서도 새로운 트렌드 수용에 매우 적극적이어서 디테일이 항상 변화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나폴리는 이탈리아에서도 가장 높은 수준을 보이면서 상당히 섹시한 핸드메이드 슈트를 만드는 곳이다. 나폴리 슈트는 영국적인 전통과 이탈리아 고유의 감성이 멋지게 결합돼 가치가 높다. 모든 종류의 옷을 늘 차려입던 영국의 지적 상류계급이 특별히 손재주가 좋고 경관이 빼어난 나폴리를 사랑했기에, 체사레 아톨리니(Cesare Attolini)나 키톤(Kiton) 같은 세계 최고 수준의 기성복이 그곳에서 탄생했다.

슈트, 하나의 예술품

최고 수준의 고급 슈트를 제작하는 나폴리만의 비밀은 무엇이었을까? 세계 3대 미항 중 하나인 나폴리는 이탈리아 남부에 있다. 날씨가 평균 8℃ 이하로 내려가지 않는 쾌적한 지중해성 기후로 ‘나폴리를 보지 않고서는 죽지마라’는 말까지 있을 정도의 세계적인 휴양도시다. 고급 음식과 의류 문화가 발달했으나 이탈리아 남부에서 흘러들어오는 인구 때문에 사회문제도 상당하다. 한국에서는 나폴리 하면 피자를 우선 떠올린다. 사이즈가 크고 바닥이 두꺼운 미국식 피자에 비해 얇고 가벼운 나폴리 피자는 한국에서 꽤 인기가 높다. 여름 휴가철이 되면 폼페이, 소렌토와 한데 묶여 이탈리아 여행에서 꼭 들러보아야 할 관광코스로 어김없이 등장하는데, 이는 유럽에 대한 동경이 강한 아시아만의 현상이 아니다.

슈트라는 가장 남성적인 주제로 돌아가 이 도시를 생각해보자. 나폴리는 영국으로부터 이어진 남성복의 유산을 철저하게 지키면서 거기에 부가가치를 더해 현재의 슈트 문화가 미래에도 변함없이 이어지도록 만든 역사적인 도시다. 1990년대 이후 조르지오 아르마니(Giorgio Armani)나 지아니 베르사체(Gianni Versace) 같은 세계적인 디자이너를 여럿 배출한 이탈리아식 화려한 패션 흐름이 남성 브랜드에도 영향을 주면서, 슈트의 퀄리티 자체보다 브랜드네임이나 이슈를 만드는 마케팅에 힘을 쏟는 경향이 강해졌다. 그러나 나폴리는 슈트가 브랜드나 자기 과시를 위한 수단이 아니라 품질을 기반으로 한 예술품과도 같은 존재이며, 비즈니스에 해가 될 만한 부적절한 행동을 하지 못하도록 점잖은 프라이버시를 제공하는 것이라는 최초의 슈트 철학을 일관성 있게 지켜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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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훈│‘란스미어’ 브랜드매니저 alann@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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