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 11월호

조명록 북한 국방위원회 제1부위원장

  • 하태원 동아일보 정치부 기자 scooop@donga.com

    입력2006-07-31 14: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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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5 년에 걸쳐 적대관계를 유지해온 미국과 관계 개선에 나선 조명록(趙明祿·70) 북한 국방위원회 제1부위원장(차수)은 ‘노동당 창건기념일’인 10월 10일 클린턴 미국 대통령과의 회담에 군복 차림으로 등장했다. 10월8일 미국에 도착한 뒤 가졌던 모든 공식일정은 물론 클린턴 대통령 면담 1시간 전에 열렸던 올브라이트 국무장관과의 회담에서도 평상복을 입었던 그가 돌연 군복 차림으로 회담장에 나타난 것을 두고 여러 갈래 해석이 나왔다.

    40여 분간 이어진 조명록 차수와 클린턴 대통령 회담 직후 웬디 셔먼 대북정책 조정관은 “미국과 북한 주민 및 동북아 지역에 북한의 북·미 관계 개선의지를 보여주는 매우 중요한 메시지”라고 논평했다. 북·미 관계 개선을 위한 노력이 민간과 외교채널뿐만 아니라 군부도 함께하고 있다는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해 ‘일부러’ 군복으로 갈아입었다는 해석.

    하지만 조차수의 ‘군복회담’은 김일성(金日成) 사망 이후 북한체제를 지탱해온 ‘선군(先軍)혁명영도’라는 독특한 정치방식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조차수가 국방위원회 제1부위원장의 직책으로 ‘위대한 장군 김정일(金正日)’ 국방위원장의 특사자격으로 미국을 찾았다는 점에서 해답을 얻을 수 있다.

    즉 ‘선군정치’의 의지를 표명하면서 동시에 자신의 공식 파트너는 미국 대통령이라는 점을 부각시키려는 의도라고 볼 수 있다.

    조차수의 군복차림은 결국 고위급 회담 특사로 북한군 서열 2위인 조명록 국방위원회 제1부위원장 겸 인민무력부 총정치국장이 나선 점과도 맥을 같이한다. ▲핵문제 ▲미사일문제 ▲테러지원국 지위 등 북·미간 3대 현안이 사실상 모두 군사 문제이므로 군부 대표가 회담대표로 나섬으로써 협상에 효율성을 기하는 한편, 대미관계 개선에 군부가 직접 동참함으로써 그에 대한 책임도 진다는 의미를 갖는 것이다. 말하자면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위임에 따라 개방의 고삐를 군부가 쥔 셈이다.



    4박5일간의 미국 방문을 통해 북한이 변화하고 있다는 인상을 강하게 심어준 조명록 차수는 개인적으로도 화려하게 국제 외교무대에 등장했다. 그는 미국 조야의 인사들에게 점잖고 세련된 매너를 선보여 높은 평가를 받았다.

    북·미 공동성명을 조율한 조명록 차수가 우리에게 친근해진 것은 남북 정상회담의 피날레를 장식한 6월15일 오찬에서. 사복 차림으로 만찬장에 나와 오찬사를 한 조차수는 김정일 국방위원장 지시에 따라 김대중(金大中) 대통령“?술잔을 기울여 깊은 인상을 남겼다.

    조차수는 1930년 중국 옌지(延吉)에서 태어났다. 김일성 주석의 전령(傳令) 출신으로 해방 전부터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인연을 맺은 혁명 1세대다. 해방 전 소련 극동군사령부 88특별여단에 근무할 때 어린 김위원장을 직접 돌봤고, 1945년 11월 함경북도 웅기항을 통해 북한에 돌아왔다.

    항일 빨치산 출신으로는 드물게 소련 공군대학에서 조종 기술을 익혔다. 6·25당시 조종사로 참전했으며 1975년 ‘반(反)항공사령관’(우리 공군 개념으로는 방공포병사령관)이 되면서 우리의 정보망에 포착됐다. 1980년 ‘공군사령관’이 돼, 북한 공군 현대화에 큰공을 세운다.

    그해 조차수는 ‘조선노동당 중앙위원’과 ‘조선노동당 중앙군사위원회 위원’에 취임했고, 1982년에는 북한 헌법상 최고기구인 최고인민회의 제7기 대의원에 당선돼, 10기인 지금까지도 대의원을 겸하고 있다. 이어 1992년 대장, 1995년 차수로 승승장구하면서 군 총정치국장에 전격 발탁됐으며, 98년 9월 헌법 개정에 따라 북한 최고 권력기구로 개편된 국방위원회의 2인자인 제1부위원장으로 선출됐다.국방위원회에는 그보다 ‘군사칭호’(계급)가 높은 이을설(李乙雪·79·호위사령관) 원수와 계선상 그보다 높은 위치에 있는 인민무력부장 김일철(金鎰喆·67) 차수 등이 있으나, 조차수가 이들을 제치고 제1부위원장을 차지한 사실은 그에 대한 김정일의 신임 정도를 보여준다.

    조차수가 북한권력 실세로 부상할 수 있었던 것은 김위원장에 대한 충성심과 청렴결백한 도덕성이 크게 작용한 것으로 전해진다. 가족으로는 부인과 3남1녀를 두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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