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사회 ‘주류’의 언저리를 맴돌던 이 충격파는 시간이 지날수록 자장이 커졌고 마침내 학계 출판계 언론계 등 이른바 지식인사회의 몸통 한가운데를 꿰뚫는 데까지 이르렀다. 그가 고발하는 ‘지식인의 위선’이 시대의 중요한 화두로 사람들의 머릿속을 점령해버린 것이다.
올 들어 ‘당대비평’ ‘문화과학’ ‘문예중앙’ ‘문학과 사회’ ‘emerge 새천년’ 등 각종 계간지와 월간지들이 앞다퉈 ‘강준만 현상’을 분석하고 지식인들 사이에 ‘강준만식 글쓰기’의 미덕과 해악을 두고 불꽃 튀는 논쟁이 이는 것은 그가 10년 동안 벌여온 작업의 사회적 의미와 폭발성을 감안하면 뒤늦은 느낌마저 있다.
그가 일찍이 언론을 ‘카멜레온과 하이에나’로 규정하고 맹렬히 비난하지만 않았더라도 ‘강준만 현상’은 진작에 뒷골목에서 빠져나와 광장으로 나아갔을 것이다. 강교수는 그 동안 인터뷰 사절 방침을 철저하게 지켜왔다. 숱한 인터뷰 요청을 뿌리치는 대신 꾸준한 글쓰기를 통해 자신의 생각을 내 비쳐 왔을 뿐이다. 그런 점에서 이번 ‘신동아’ 인터뷰는 그의 첫 공식 인터뷰인 셈이다. ‘고립된 성채’에서 나와 눈부신 햇살이 쏟아지는 광장 한가운데 선 그는 가슴을 활짝 펴고 사람들을 향해 외치기 시작했다. “당신들은 왜 분노를 잃었습니까!” 》
< 1부: 전사(戰士) 강준만 >
“아니, 진짜로 쳐들어오면 어떡합니까.” 기자가 신분을 밝히자 강준만 교수는 화들짝 놀란 표정이었다. 잠시 망연히 바라보기만 했다. 10월4일 오후 3시20분. 전북 전주시 덕진동 전북대학교 신문방송학과 강준만 교수 연구실. 강교수는 2시부터 시작한 한 시간 짜리 강의(국제커뮤니케이션)를 끝내고 연구실로 돌아와 한 학생과 상담을 막 마쳤다. 애초 인터뷰가 성사되리라는 기대를 품고 찾아간 것은 아니었다. 평소 기자들에게 그 흔한 ‘전화 멘트’조차 허용하지 않을 정도로 언론 기피증을 보여온 강교수다. 신문방송학과 사무실에서 전화 받는 학생에 따르면 바로 얼마 전에도 일부 언론이 인터뷰를 시도했으나 뜻을 이루지 못했다는 것이다.
기자는 전주로 내려가기 며칠 전 그에게 팩스를 보냈다. ‘이번에도 (인터뷰에) 응하지 않으면 쳐들어갈 테니 가부간에 답을 달라’는 요청이었다. 그러나 아무런 답장이 없었다. 슬그머니 오기가 일었다. 무작정 찾아갈 결심을 한 데는 그런 이유도 있었다.
“참 미치겠네요”
그에겐 놀랄 일이 한 가지 더 기다리고 있었다. 기자가 조금 전에 끝난 강의를 몰래 들었다고 하자 그의 큰 눈이 더욱 커졌다(그는 강의시간에 국내 시사월간지들의 문제점을 비판했다).
강의 시작 10분 전 수강생으로 꾸미고 강의실 뒤쪽에 자리잡았던 기자는 하마터면 강교수를 몰라볼 뻔했다. 2시 정각이 되자 티셔츠 차림의 누군가가 들어와 교단에 섰는데, 그가 출석을 부르며 유인물을 나눠주지 않았다면 교수가 아닌 줄 알았을 것이다.
그는 내키지 않지만 어쩔 수 없다는 듯 불청객을 연구실 안으로 들였다. 잠시 어색한 침묵이 흘렀다. 기자는 강의 내용을 화제 삼아 그의 말문을 열려 했다. 그는 “강의를 듣고 있는 줄 알았다면 그런 얘기(시사월간지 비판)는 안 했을 것”이라며 겸연쩍게 웃었다. 얼마 후 밖에 나가 자판기 커피를 뽑아온 그는 담배를 물었다. 흐늘거리는 담배연기처럼 그가 흔들리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20분 가까이 고민하던 그는 “참 미치겠네요”라는 말로 인터뷰에 응했다.
먼저 9월28일 방영된 MBC ‘100분 토론’에 대해 얘기하다가 몇 년 전 강교수가 모 방송사의 ‘인물초대’ 프로그램에 출연했던 일이 화제에 올랐다.
―‘100분 토론’이 끝난 후 그 프로그램 홈페이지의 ‘토론의 장’에 들어가 보니 하룻밤 새 1000건이 넘는 글이 올라와 있던데, ‘강준만 나와라’는 의견도 많더라고요. 예전에 TV에 한번 나가신 적이 있지요?
“그때 받은 항의가 ‘너 다시는 나가지 말라’였습니다. 그때 항의했던 독자들이 지금 제 발목을 잡는 거죠.”
―어떤 항의였어요?
“촌스럽고 우악스럽고. TV에는 전혀 적합지 않으니까 TV에 얼씬거릴 생각은 하지 말라는 거예요. 역효과가 난다는 거죠.”
―특별히 사투리를 쓰시는 건 아닌데.
“전라도 억양보다는, 제가 봐도 말할 때 차분하지 못하고 얼굴 근육이 움직이면서….”
―녹화해서 보셨어요?
“몇 번 봤죠. 그 전에도 TV에 여러 번 나간 적 있었거든요. 보면 전혀 안 어울려요. 예를 들어 ‘100분 토론’ 같은 경우에는 자신이 없어서 안 나가는 거죠. 역효과 난다고 그러고. 활자 매체 체질로 갈 수밖에 없는 핑계가 되죠. 그게 얼마나 비극인데요.”
―‘100분 토론’을 보면서 저도 새삼 느꼈는데, 글 잘 쓰는 것과 토론 잘 하는 것은 별개 문제인 듯싶습니다.
“기대 수준이 높아서 그렇지 제가 보기엔 잘한 것 같던데요. 그리고 토론의 룰을 안 지켰다고 하는데, 룰이라는 건 상대적인 겁니다. 수준 이하의 발언이 나오는데 (룰을 지키는 게) 쉽지 않지요. 그런 모습이 오히려 자연스럽게 보였어요. 오히려 진지해 보이잖아요? 능수능란하게 너스레 떨어가며 말발로 제압해달라는 이야기인데, 그건 엔터테인먼트죠.”
―사회자가 ‘왜 안티조선을 하는지에 대해 말해 달라’고 주문했는데, 그걸 차분하게 설명하지 못하던데요.
“그런 점도 있고, 또 많은 분들이 TV에서 그 문제를 거론한 것 자체가 대단한 일이라고 말씀하시는데, 저는 양면성이 있다고 봐요. 조선일보 홍보해주는 효과도 있거든요.”
배낭 메고 자전거 출퇴근
우리 나이로 올해 45세인 그가 교수가 된 것은 1989년이다. 그로부터 11년 동안 그는 단행본 ‘인물과 사상’ 시리즈를 비롯해 모두 75종(편역·공저 포함)의 책을 펴냈다. 1998년 5월 창간호가 나온 월간 ‘인물과 사상’ 시리즈(2000년 10월 현재 통권 30호)를 합하면 지난 11년 동안 연평균 10권의 책을 세상에 내보낸 셈이다. 1998년 이후 월간 ‘인물과 사상’에 실은 글들을 재편집해 단행본으로 묶어낸 경우가 많다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그의 저술 활동이 국내 출판계에서 하나의 신화를 만들고 있음은 분명하다.
그의 독서량 또한 일반의 상상을 뛰어넘는다. 그의 글들을 보면 그가 국내에서 출간되는 웬만한 단행본과 각종 정기간행물을 샅샅이 훑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강준만 교수를 떠올릴 때 사람들이 갖게 되는 궁금증은 어떻게 그렇게 많이 읽고 많이 쓸 수 있느냐는 점입니다. 강의 준비는 언제 하고… 게다가 강연회도 많이 다니지 않습니까?
“그러니까 질이 떨어지죠. 요즘엔 강연은 안 해요.”
―하루에 몇 시간이나 주무시는지?
“잠은 원없이 자요. 다만 자는 시간을 뺀 나머지 시간은 모두 그쪽 활동에 바치지요. 서울에 있으면 사실 이렇게 못 하죠. 만날 사람도 많고 참여해야 될 자리도 많을 테고. 서울에 있으면서 이렇게 미친 척할 수 있겠습니까. 지방에 있으니까 가능한 거죠.?p> ―주말에는 좀 쉬시나요?
“쉬지 못하죠.”
―취미생활은 거의 못하실 것 같은데요?
“등산하고 자전거를 타는데, 출퇴근을 자전거로 합니다. 아내는 자기 차를 가지고 있어요. 저는 배낭 메고 자전거 타고 다니고.”
―건강은 어떻게 유지합니까?
“일주일에 산에 두 번씩 다녀요.”
―한 달에 원고를 얼마나 쓰세요?
“세어 보질 않아서 모르겠어요.”
―책 내는 속도나 양으로 보면 몇백 장은 쓰실 것 같은데.
“그 정도는 쓰죠.”
―상당히 많은 책을 읽으시는 것 같은데 비결이라도 있습니까?
“책을 많이 읽다 보면 속독을 하게 되죠. 가벼운 책은 하루에 몇 권씩 읽을 수 있고. 요즘 파시즘과 관련된 책을 원서로 보는데 그건 한 이틀 걸리겠더라고요. 어저께도 그 책을 보다가 새벽 4, 5시경에 잤나….”
‘강준만식 글쓰기’에 대한 논쟁은 언론 매체와 각종 잡지를 통해 찬반 양론이 뜨겁게 맞서는 가운데 최근 언론에도 소개된 홍윤기 교수(동국대 철학과)의 ‘원고망명 사건’으로 절정에 달했다. 이 사건은 계간 ‘당대비평’(주간 문부식)의 편집위원인 홍교수가 ‘강준만식 글쓰기’를 분석한 자신의 글(‘우리 시대의 권력 비판과 권력 감수성’)이 다른 편집위원과의 의견 차이로 ‘당대비평’ 가을호에 실리지 못한 데서 비롯됐다. 홍교수는 그 원고를 강교수가 발간하는 월간 ‘인물과 사상’ 10월호에 싣는 한편 ‘당대비평’의 편집위원직을 그만두었다.
― ‘강준만식 글쓰기’에 대한 논쟁이 최근 부쩍 잦아지는 양상인데요. 홍윤기 교수의 ‘원고망명 사건’을 비롯해 여기저기서 논쟁이 벌어지고 있지요. 공공연하게 ‘강준만 현상’이라는 말도 나오고. 한국 지성사 또는 비평사의 흐름에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는 찬사가 있는 반면 도덕적 기반이 결여된 인신공격이라는 등 비판론도 만만찮습니다. 글쓰기의 목표·전략·전술이 있다면 어떤 것입니까?
“그렇게 체계적이지는 않은 것 같아요. 가만히 생각해보니까, 지금 언론개혁운동하는 것도 그래요. 서울에 있는 교수들은 지방대 교수들이 자꾸 나선다고 그런단 말이에요. 지방대 교수들이 서울에 올라오지 못한 것에 한이 맺혀서 그런다고 사석에서 그래요. 그리고 그 정서가 의외로 널리 퍼져 있습니다.
제 이야기는 그 말이 맞다는 거예요. 왜 그러냐, 서울에선 유혹을 너무 많이 받다 보니까 기존 언론구조에 편입돼 버리는 겁니다. 저는 한국언론학회가 한국의 언론 발전에 기여하지 못한다고 봐요. 오히려 언론을 정당화해주고 유착체제로 가고 있는 게 한국 언론학자들의 큰 흐름이 아닌가 봐요. 그러나 지방에 있으면 중앙의 그러한 흐름에 대해 문제 의식을 가지고 볼 수 있다는 거죠.
저 같은 경우 학부 전공과 대학원 전공이 다른 게 큰 요인인 것 같아요. 학부에서 경영학을 한 탓에 학연이 없어요. 저도 만약 학연 덕을 보고 학연에 안주할 상황이라면 잘못된 줄은 알지만 세상이 다 그런 거지, 하고 그냥 그대로 갔을 거란 말이죠. 저는 한국의 지식인들이 다 알고 있을 거라고 봐요. 왜 몰라요. 세상이 다 그런 건데 네가 문제 삼는 게 이상하다는 거죠. 문제 삼는 것 자체가 자신의 욕구 불만에서 비롯된 개인 한풀이 차원이 아니냐는 시각이 강하다는 겁니다.
그런데 제 얘기는 개인 한풀이가 뭐가 나쁘냐는 겁니다. 모든 문제의식이라는 것이 그렇죠. 한국 지식계에서 노른자위를 차지한 사람들에 대해 노른자위에 들어가지 못한 사람들이 갖는 문제의식을 배가 아파서 그런다고 매도해버리면 새로운 비판이 어떻게 나올 수 있느냐는 겁니다. 저 같은 경우 문제의식이 분명히 제 개인적인 입장에서 출발했을 거다, 그렇게 보죠. 동기유발도 그렇고. 저라는 사람이 그렇게 순수하진 않아요.”
‘콜럼버스의 달걀’
“한풀이는 중요하고 정당하다”는 강교수의 독특한 ‘한풀이론’은 호남인들의 정치적 정서에도 적용된다.
“과거에 호남 사람들이 김대중한테 몰표 주면서 한풀이한다고 그랬잖아요. 저는 그걸 정당한 한풀이로 보죠. 한풀이라고 욕하지 말라는 겁니다. 다만 오늘날에 와서 밥그릇 싸움의 양상으로 변질되는 것에 대해서 혹독하게 비판하긴 하지만 한풀이라는 것이 무조건 매도되어야 할 것은 아니라는 거죠.”
―‘강준만식 글쓰기’의 특징을 말하자면, 실명 비판, 독설, 메타 비판―곧 비판에 대한 비판이 많다는 점이죠. 교수님 자신은 어떻게 생각하세요?
“저는 제 글쓰기를 ‘콜럼버스의 달걀’로 보거든요. 제 작업은 대단한 지적 능력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에요. 누가 먼저 (달걀을) 깨 가지고 세우냐의 문제일 뿐이라는 거죠. 무슨 말이냐 하면 한국 지식계가 언론계보다 ‘침묵의 카르텔’이 더 강해요. 마땅히 내부 비판이 있어야 할 곳에 내부 비판이 없는 것을 ‘썩었다’고 표현한다면 언론계보다는 지식계가 훨씬 더 썩었다는 거예요. 직무유기 차원이죠.
과거에 군사독재정권을 예찬하고 참여했던 교수들이 지식계 내부에서 비판의 형식으로나마 응징을 받아본 적이 있느냐는 거예요. 없어요. 그때 그들이 차지하고 있던 대학 내의 위상 덕분에 제자들 가운데 진보적이고 개혁적인 지식인들이 많아도 갈등이 별로 없어요. 과거 청산이 있습니까, 비판이 있습니까. 아무것도 없어요. 제가 어떤 존경받는 지식인을 탐구하기 위해서 그 사람에 관해 나온 글을 다 확인해보면 비판과 반론이 거의 없어요.
한국 사회에서 지식계의 논쟁이라는 건 백낙청(서울대 영문학과 교수·계간 ‘창작과 비평’ 편집위원)과 손호철(서강대 정치학과 교수)의 분단체제에 대한 논쟁처럼 자기들은 빼놓은 공리공론에 관한 논쟁이에요. 특정인을 논할 때 그 사람의 사상이나 주장에 대한 비판까지 안 들어간다는 거죠. 그런 풍토가 지배적이기 때문에 제가 하는 실명 비판을 인신공격으로 보는 건 기존 풍토에 비춰보면 정당하다는 거예요. 저는 그 풍토를 바꾸자는 거죠. 언제까지 ‘침묵의 카르텔’을 유지하면서 내부 상호비판은 안 하고 사회를 향해서만 비판할 거냐는 거죠.”
강교수의 실명비판 방식을 비난하는 사람들이 가장 문제 삼는 것 중 하나는 그것이 비판의 정도를 넘어 대상자에게 모욕감을 준다는 점이다. 이와 관련, 홍윤기 교수는 ‘인물과 사상’ 2000년 10월호에서 “강준만은 타도나 응징이나 적발이 아니라 모욕에 너무나 많은 지면과 정력을 소모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홍교수 주장의 타당성 여부와는 별개로 지난 10년 동안 강교수가 써온 글에서 비판 대상자가 ‘모욕적으로 여길 만한’ 표현을 찾는 것은 그다지 어려운 일이 아니다. 몇 가지 예만 들어보자.
“그렇다. 바로 교활함이다. 나는 이문열씨를 표현할 마땅한 단어를 찾지 못해 고민했는데 (이씨를 교활하다고 한) 김명숙씨의 글을 보고 손뼉쳤다.”
“이인화는 홧김에 오입하나…. 그에겐 영웅 콤플렉스뿐만 아니라 촌놈 콤플렉스도 있다. 그는 촌놈 출신으로 어린 나이에 크게 출세했다.”
“잡글에 대해 그리 자학하지 마십시오. 손교수님의 글은 논문도 잡글 식이던데 뭘 그러십니까(손호철 교수에 대해).”
“참 큰일 낼 사람이다. 더 큰일 내기 전에 따끔하게 손을 봐야겠다(한양대 사학과 임지현 교수에 대해).”
한국 지식계의 ‘침묵의 카르텔’
이런 지적에 대해 강교수는 “한국 지식계가 정상이 아니기 때문에 그런 방식으로 비판할 수밖에 없다”고 강변한다.
“저는 홍선생님(홍윤기 교수)께 한국 지식계에 ‘침묵의 카르텔’이 있다는 것을 인정하시냐, 그게 바람직하다고 보시냐, 묻고 싶어요. 그분은 기존 풍토에 비춰 내 비판방식이 모욕적이고 인신공격적이고 상처를 주는 것이라고 말씀하시는 겁니다. 제 주장은 모욕받아 마땅한 짓을 했으면 모욕당해야 하고, 상처 받아 마땅한 짓을 했으면 상처 받아야 한다는 거죠. 그건 정당한 응징이라는 겁니다.
모욕이란 건 주관적인 감정이기 때문에 정당한 비판도 모욕으로 받아들인다면 그건 어쩔 수 없죠. 주관적인 느낌까지 어떻게 책임을 지겠습니까. 이런 얘기가 나오는 건 한마디로 말해 한국 지식계에 내부 비판이 없었다는 거죠, 여태까지. ‘콜럼버스의 달걀’이라고 표현한 건 제가 인사이더로서 큰 흐름에 속해 있었더라면 저도 그렇게 못했을 거라는 의미예요. 한국의 지식계 문화는 누구든지 이래선 안 되겠다 싶어 흠집을 내려고 들면 쉽게 할 수 있습니다. 너무 엉망진창이니까.
제가 글을 양산할 수 있는 것도, 너무 쉬우니까, 그 사람의 말이나 글을 인용해놓고 몇 마디 툭 던지고 넘어가면 되기 때문이에요. 말하자면 방이 너무 어질러졌으니까 치우고 정리하는 게 급하지 인테리어는 나중 문제라는 거죠. 그러니까 저의 글쓰기는 아직 인테리어로 들어갈 단계가 아니라는 겁니다. 너무 거칠고 양산에 따른 질의 문제는 인정하죠. 조금 더 뜸들이고 손질하면 훨씬 매끄럽고 좋은 글이 되지 않겠어요?
그러나 열불 터지게 하는 사건들이 너무 많이 벌어지니까 그럴 여유가 없습니다. 특히 제가 열 받는 게 YS정권에 참여했던 지식인들의 행태입니다. 정말 나빠요. 한국 지식계는 정말 반성해야 합니다. YS가 저렇게 깽판 치는데 어떻게 입을 봉하고 있어요? 거기에 대해선 입을 다물고 있으면서 언론매체에 한국 사회를 개탄하고 비판하는 글을 써댑니다. 이게 마피아 집단이지 뭐냐 이거예요. 자기가 충성했던, 자기에게 한자리 줬던 전직 대통령에 대해서는 말 한마디 못하면서… 이건 의리의 문화가 아니에요, 깡패 문화지. 친DJ 지식인들도 마찬가지죠.
김아무개인가, YS 정권에서 청와대 수석하던 사람이 김대중 대통령에게 보내는 고언을 언론에 기고했던데, 한대 때려주고 싶더라고요. 말은 다 옳아요. 김대통령도 반성해야죠. 그런데 지금 김영삼씨가 지역주의로 나라를 갈가리 찢고 있는데, 거기에 대해 여태까지 말 한마디 한 적 있어요? 당시 재야 세력을 YS 문중으로 끌고 들어간 사람이. 그러고선 ‘생활성서’(월간)에는 매달 자기가 민주화투쟁한 것을 자랑하고 있더라고요. 그런 걸 보면 정말 화가 나서 글을 안 쓸 수가 없습니다.”
문제는 좌파·진보지식인
―말하자면 분노가 글쓰기의 원동력이군요.
“분노죠. 그나마 언론계는 일부 신문이 나름대로 내부 비판을 하잖아요. 그런데 학계에는 그런 게 없어요. 조금만 실명으로 비판하면 10대 소녀들처럼 상처를 받아요. 온실에서 과보호 받아서 그래요.”
―객관적으로 심하다 싶은 표현이 여러 번 있었던 것 같아요. 예를 들면 임지현 교수의 경우만 하더라도 큰일 낼 사람이라느니, 손 좀 봐야겠다느니 하는 표현은 자존심 상할 만하지 않습니까?
“사람들이 제 글을 다 읽지 않아 그러는데, 제 글은 상대편이 한 발언의 어이없는 정도에 따라서 비판의 정도가 달라집니다. 가령 언론개혁에 동의하지만 방법에 대한 의견 차이가 있을 수 있죠. 그 경우 어떻게 감히 독설을 합니까. 어림도 없는 이야기죠. 임교수님에게 제가 화가 나는 이유는 좌파라는 분이 말이 안 되는 행태를 보이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분은 자꾸 왜 네 생각만이 옳다고 그러냐, 다른 방법이 있을 수 있지 않으냐고 묻는데 저는 그게 이 길로도 갈 수 있고 저 길로도 갈 수 있는 문제라고 볼 수 없다는 거죠. ‘당대비평’에 쓴 글을 읽어보면, 표현은 안 했지만, 총선연대의 낙천·낙선 운동도 일상적 파시즘적인 방법이라고 보는 분이에요. 말도 안 되는 얘기죠. 좌파적 담론을 깔면서 그런 얘기를 하니까, 나는 그분이 정말 큰일 낼 사람이라고 보는 거예요.”
좌파 지식인으로 분류되는 임지현 교수와의 논쟁은 ‘인물과 사상’ 2000년 2월호에 강교수가 ‘임지현, 당신의 조선일보관이 일상적 파시즘이다’라는 제목의 글로 임교수를 먼저 공격하면서 시작됐다. 강교수는 그 글에서 임교수가 조선일보에 체 게바라(쿠바 혁명가)에 대한 글을 기고하고 조선일보 편집국에서 강연한 것을 두고, “조선일보의 극우 이데올로기와 양립할 수 있는 주제로 글을 기고해 조선일보의 상품성을 높여줘도 괜찮다고 보는 생각”이라며 맹렬히 비난했다.
이에 임교수는 3월호 ‘인물과 사상’에 반론을 실었다. 곳곳에 ‘노여움’이 서려 있는 이 글의 제목은 ‘두더지의 슬픈 초상’. 두더지는 물론 강교수를 비아냥거린 표현이다. 그는 강교수의 조선일보관을 ‘조잡한 지면 결정론’으로 깎아내리는 한편 “글쓰기를 통해 조선일보 독자의 일부라도 전유하는 것은 지식인으로서의 사회적 책무를 짊어지는 것이라 생각한다”고 반박했다.
강교수는 같은 잡지의 4월호에 실린 재반론을 통해 좌파 지식인의 조선일보 기고를, 유신 또는 5공 정권 참여에 비유했다. 한편 임교수가 편집위원으로 있는 ‘당대비평’은 가을호에서 ‘조선일보의 극우 냉전적 논리와 갈등하고 대립하는 논리를 전파할 수 있다면 기고를 굳이 마다하지 않겠다는 개인의 선택을, 매명주의나 보신주의라는 딱지를 붙여 일거에 매도해선 안 된다’고 강교수에 대한 공격을 재개했다.
―일부러 독설을 퍼붓는 건 아닙니까? 말하자면 효과를 높이기 위해서….
“그러면 모든 글을 그렇게 써야 되는데, 어떤 글은 너무 공손하다고 욕먹잖아요. ‘야, 어쩌면 이런 생각을 할 수 있는가’ 하고 생각되는 사람에게만 독설을 퍼붓는 거죠.”
―교수님을 싫어하거나 비난하는 사람들 중 상당수는 교수님이 김대중주의자로서 모든 비판에 그 잣대를 들이댄다고 생각합니다. 지역주의나 조선일보, 진보적 지식인에 대한 비판도 결국 김대중이라는 잣대와 연결된다고 보는 것이죠.
“정권교체 후 한국의 지식인 가운데 김대중 정권을 가장 혹독히 비판한 사람이 누구인지 따져보죠. 저예요. 제가 다 확인해봐서 압니다. 저를 김대중주의자로 보는 사람은 제가 김대중을 비판한 글을 읽지 않습니다. ‘김대중 죽이기’(1995년 출간)라는 이미지 하나로 저를 때려잡거든요. 책 한 권 분량이 되지 않을까 싶어요. 그 동안 김대중 정권을 비판한 글들이.”
강교수의 ‘해명’은, 속마음이야 어떻든 적어도 글만 봐서는 사실에 가깝다. ‘인물과 사상’ 단행본 시리즈와 월간 ‘인물과 사상’을 꾸준히 읽은 사람이라면 그가 ‘누명’을 쓰고 있다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실제로 그는 1997년 대선 전까지는 정권교체의 당위성을 역설하는 데 정열을 바쳤지만 김대중 정권이 들어선 후로는 비판을 그치지 않았다. 심지어 올 1월에 출간한 ‘인물과 사상’ 13권에선 ‘김대중 정권의 몰락’을 선언하기도 했다. 그는 이 글에서 “언론과 전라도 사람들, 개혁세력이 김대중 정권을 망친다”며 김대중 대통령에 대해서는 이렇게 비판했다.
“그는 정권을 잡기 위한 권모술수에는 탁월한 재능을 보였는지 몰라도 사방이 적으로 둘러싸인 상황에서 정권을 잡은 다음 어떻게 성공적인 국정운영을 할 수 있을 것인가 하는 점에선 너무나도 ‘평범한’ 모습을 보여왔다.”
―교수님의 ‘김대중 비판’은 애정이 있는 비판이지요?
“한국 사회에서 ‘김대중 죽이기’만큼 야비한 짓이 또 있었습니까. 그야말로 관민합동 차원에서 특정한 편견을 갖고 죽이려 든 사람 가운데 김대중보다 심한 경우가 있었습니까. 그런데 거기에 대해 ‘너무했다’라고 문제 제기한 사람을 김대중주의자라고 몰아붙인다면 도대체 남아날 사람이 누가 있습니까. 그 동안 한국 지식인들이 정치를 대해온 태도가 맞다면 저는 김대중주의자가 맞죠. 그러나 지금 한국 지식인들의 정치담론이 크게 잘못됐다고 본다면―이를테면 보신주의, 어용 콤플렉스 같은 것 말이죠―제가 옳은 거죠. 저는 지식인들이 정치적 편향성을 드러내지 않는 것이 더 나쁘다고 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세상을 사는 체념의 지혜를 터득하고 있죠. 저도 터득했던 사람이에요.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글쓰기에 가속도가 붙더라고요. 처음에는 이렇게까지는 아니었어요. 그런데 계속 하다 보니까 분노도 더욱 강해지고 관심을 갖고 지켜볼수록 부정적인 모습이 더 눈에 들어와요. 그래서 가끔 가다 머리를 식힐 필요가 있겠구나, 하는 생각을 합니다.”
정치적 편향성 드러내야
―어쨌든 정치 성향을 드러내는 게 당당하다는 건데, 정치적 편향을 공공연히 드러낸다면 비판의 공정성에 시비가 일지 않을까요?
“공정성의 잣대를 들이대면 이런 문제가 생기죠. 과연 이데올로기가 공정성의 문제냐는 겁니다. 저는 편향성의 문제라고 봅니다. 조선일보도 편견이 있고 한겨레도 편견이 있고 누구나 편향성이 있다는 거죠. 가령 조선일보 김대중 주필의 글에 대해선 분통을 터트리면서 한겨레신문 논설위원의 글에 호감을 표시한다면 조선 쪽에서 보면 분명 편향된 겁니다. 공정하지 않은 거죠. 그건 제 이데올로기죠.
그러니까 극우적인 생각을 갖고 있는 사람이 저에게 너 공정하지 않다, 편향돼 있다, 편견에 가득 차 있다고 한다면 그건 맞는 말이죠. 그런데 자기가 좌파이거나 진보적인 척하거나 개혁지향적인 척하면서 저한테 편향됐다고 한다면 말이 안 된다는 거죠. 저는 김대중 대통령을 지지하느냐 안 하느냐, 민주당을 지지하느냐 안하느냐로 누구를 비판한 적은 없습니다. 그 사람의 정치적 행위를 가지고 이야기했을 뿐이죠. 지금 말씀하신 공정성은, 이념적인 정치적 성향의 문제는 그 잣대로 따질 수 없는 것이므로, 다르게 적용해야겠죠. 제 글이 객관적 저널리즘은 아니잖아요. 일종의 주관을 드러내는 글쓰기니까.”
―‘인물과 사상’ 2000년 5월호에 정권교체의 의미를 다섯 가지로 설명하셨더군요. ▲남북문제에 대한 김대중의 탁견과 용기 ▲김대중의 지도자적 자질 ▲역사에 대한 보상 ▲이지메에 대한 보상 ▲지역주의 문제 해결, 이 다섯 가지지요. 김대중 대통령의 지도자적 자질을 여전히 높게 평가하십니까?
“실망스럽죠. 가장 큰 문제는 이분이 기존 정치 패러다임을 바꾸지 않고 가려 했던 데 있어요. 현실 정치인으로서 기존 패러다임을 바꿀 때 비용이 크게 들 것이라는 계산을 했겠죠.”
―그런 점에서 정권교체의 당위성이나 역사적 의미가 많이 퇴색한 것 같은데요.
“100을 기준으로 봤을 때 실망스러운 점은 20 정도라고 봅니다. 그런데 20을 90인 양 말들 하죠. 왜냐하면 이 정권은 국민 40%의 지지를 받고 태어났거든요. 다시 말해 이 정권의 탄생을 원치 않았던 사람이 훨씬 더 많다는 거죠. 만약 정권교체가 안 됐더라면 제가 볼 때 호남인들이 느꼈을 좌절은, 이 나라가 영원히 찢어지는 아픔 같은 것입니다. 왜 그 생각은 안 하냐는 거예요. 그건 엄청난 거죠. 그리고 남북 문제에 대해 어느 정도 상식을 갖고 판단한다면 이 정권의 장점이 분명히 있죠. 게다가 요즘은 야당이 공작정치를 하고 있잖아요. 얼마나 민주화가 된 겁니까. 대통령 비판이 얼마나 자유롭습니까.”
정권 조져야 신문 팔려
―김대중 대통령도 결국 정치 지도자 중 한 명이고 권력의 속성이란 건 어느 정권에서나 마찬가지 아닐까요. 그런 점에서 보면 교수님이 정권교체의 당위성을 지나치게 강조한 것 아니냐는 생각도 드는데요.
“저는 두 가지 측면을 혼동한다고 보는데요. 임지현 교수님이 말한 일상적 파시즘과 통하는 문제이기도 합니다. 행태는 같다는 거예요, 진보나 극우나. 한겨레신문 기자들과 조선일보 기자들의 일상적인 행태는 다를 게 없어요. 그걸 깨야 한다는 임교수의 선의를 이해합니다. 마찬가지로 행태로 보면 여당이나 야당이나, 군사독재정권에 몸담았던 사람이나 민주화투쟁하던 사람이나 똑같다는 거죠. 정권교체의 의미가 없다, 김대중 정권에 실망했다고 말하는 것은 바로 그 행태에 초점을 맞춘 겁니다. 뭐가 달라진 게 있냐. 예전의 그놈이나 지금의 이놈이나 똑같다는 얘기거든요. 그런데 조선일보 기자와 한겨레신문 기자의 일상적인 행태가 같다고 해서 어떻게 두 신문이 같다고 이야기할 수 있겠어요.
권력을 향한 질주, 권력에 대한 욕심, 권력을 잡기 위한 권모술수, 그건 똑같다는 거죠. 그런데 이데올로기는 별개로 존재하는 거라고요. 장원(전 녹색연합 사무총장)이 아무리 깽판치고 못된 짓하고 일상적인 삶에선 다른 모습을 보였어도 그가 가진 이데올로기에 대한 평가는 별개로 해줘야죠. 실망스러운 점이 드러났다고 모든 걸 부정하려 들면 한국사회에서 개혁은 100년, 200년이 가도 안 됩니다.
(정권 교체의) 의미 퇴색은 당연하다고 보는데, 솔직한 얘기로 당장 저부터라도 김대중 정권에 대해 분통을 터트릴 때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달라집니다. 그런데 지금 영남 시장이 훨씬 더 크고 민심의 대세가 지역주의로 가니까 (정권을) 조져야 신문이 팔리지 않겠어요. 현 정권이 실망스러운 건 분명하지만 국민들이 느끼는 체감도는 사회의 여론을 좌지우지하는 신문 논조에 따라 달라지거든요. TV의 정권홍보, 그건 별 효과도 없어요. 아주 미련한 수법을 쓰고 있죠. 뭐 하러 노조 반대를 무릅쓰고 해요. 무슨 효과가 있다고.”
―김대중 정권이 가진 개혁성보다는 지역주의 문제와 맞물린 역사의 보상 측면에 더 의미를 부여한 건 아닌가요?
“역사에 대한 보상이 문제가 아니고요. 김대중을 포함해서 과거에 민주화투쟁했던 사람들이 강도질하다가 감옥 가서 시련을 겪은 건 아니잖습니까. 제가 말하는 보상은 그쪽이 도덕성 면에서 우위에 있다는 것을 전제로 한 거죠. 당했으니까 보상해줘야 된다, 그런 식으로 격하하면 안 되죠.?p>? ―현 정권이 도덕적 우월성을 갖고 있다는 거죠?
“있죠. 민주화투쟁한 사람들이 내부적으로 개판 치고 과거에 야당할 때 불미스러운 모습을 보이긴 했어도, 군사독재 정권의 도덕성보다는 낫지 않습니까?
신문 논조가 여론 좌지우지
―그런 측면에서 보면 YS 정권과 공통분모가 있네요.
“있죠. YS 정권 초기 제가 (정권을) 옹호하는 글을 얼마나 많이 썼는데요.?p>? 그의 정치적 성향 또는 정치관을 이처럼 단순명쾌하게 드러내는 말도 없을 것이다. 이 얘기에 비춰보면 그의 주장이 특정 정파나 특정 이념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일부의 평은 오해거나 왜곡되었을 가능성이 크다. 그는 그 정권이 얼마나 도덕적이냐 개혁적이냐, 이런 상식적인 잣대를 들이댈 뿐이다. 이런 점에서 그에게 김대중주의자라는 꼬리표를 붙인 것은 그의 자존심을 상하게 하는 것인지 모른다.
“저는 이회창도 정권을 잡고 나면 달라질 수 있다고 봐요. 그럴 때는 이회창 정권을 편들어줘야 한다는 거죠. 전두환·박정희 정권과는 다른 정권 아니겠습니까. 한국 사회의 민주화가 그만큼 진전된 것이죠.
저는 권력이 다원화됐다고 봅니다. 제가 이번에 낸 책에 ‘권력 변환’이라는 제목을 붙인 것도 그런 이유에서입니다. 권력의 성격이 바뀌었다는 거죠. 힘의 무게중심이 정치권력에서 언론으로 옮겨갔는데, 지식인들은 정치권력 비판이 가장 정의로운 것인 양 포장한단 말이에요.”
그는 “김대중 정권에 대해 비판하는 얘기를 두 번 하고, 지지하는 얘기를 한 번 해도 지지자로 분류한다”며 쓴웃음을 지었다.
―오해일까요? 고의일까요?
“고의적이죠. 물론 그렇게 말하는 사람은 절대 고의라고 생각지 않겠지만.”
화제를, 그가 가장 심혈을 기울여 연구해온 지역주의 문제로 돌렸다.
―지역주의에 대한 비판을 많이 해오셨는데, 정권이 바뀌면 어느 정도 해소될 거라는 기대와는 달리 별로 나아진 게 없지요?
“손호철 교수 같은 사람은 지역주의가 더 악화됐다고 신이 나서 얘기한단 말이에요. 저는 다른 이야기는 하고 싶지 않고, 정권교체가 안 됐을 경우의 호남을 생각해보자, 이 말만 하고 싶어요. 그 얘기 하나로 끝나는 겁니다. 정권이 교체된 후 호남 지역주의의 추악한 면이 드러난 것도 사실입니다. 그런데 지역주의가 심화된 것은 영남이 정권을 되찾기 위해 예전보다 더 뭉치고 있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영남 지역주의를 부추기는 것을 보면 해도해도 너무 한다는 생각이 들지 않습니까. 모든 지식인이 거기에 대해서 침묵하고 있어요. 그것을 비판하면 호남 지역주의라고 하고. 신문 시장에서 작용하는 지역주의가 고스란히 영향을 끼치고 있는 거죠.”
―한편으로 생각하면 지역주의를 극복하는 것이 요원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제 생각엔 그래도 과거에 비해 나아지고 있어요. 그야말로 밥그릇 싸움의 형태, 이지메 당하고 일방적으로 깨지던 상태에 비해서는 진일보했다는 거죠. 비록 싸움의 목소리가 더 커지고 싸움의 모습이 더 추악해 보일 망정 왕따 당하던 단계보다는 멱살잡고 싸우는 단계가 더 나은 것이죠.”
강교수는 ‘인물과 사상’ 2000년 1월호에서 “새 천년을 맞아 우리 시민사회의 가장 중요한 화두가 조선일보가 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조선일보에 한국 사회의 모든 모순이 집약돼 있다”고 선언한 바 있다. 조선일보에 대한 그의 진단은 얼마나 타당한 것일까.
―‘조선일보 제몫 찾아주기’라는 표현을 처음 쓰셨는데, 어떤 뜻입니까?
“차별화 전략에서 나온 겁니다. 과거 조선일보에 가서 항의시위하던 분들이 대부분 재야 운동권이에요. 그것과 차별화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어요. 물론 그 분들도 진심이라기보다는 구호로서 이야기하는 것이겠지만 (조선일보가) 사라져야 한다, 제거해야 한다고 했는데 저는 생각을 달리하는 거죠. 조선일보도 자신의 주장을 펼 권리가 있지, 왜 없어요. 존중해줘야죠, 그 주장은.
문제는 과연 대북관이나 재벌에 대한 시각 등 조선일보의 정치·경제적인 주의나 주장이, 이 신문이 지금 한국 신문시장에서 누리는 몫만큼 대표성을 띠고 있느냐는 겁니다. 저는 아니라고 보는 거죠. 분명히 괴리가 있다는 거예요. 그래서 거품을 걷어내고 제대로 된 몫을 찾아주려는 겁니다. 그런데 일반 대중을 대상으로는 참 힘들어요. 정말 절벽이에요. 지식인들은 더 한심해요.”
―그 동안 조선일보를 잣대로 숱한 지식인들을 공격해왔는데요. 심지어 김수환 추기경까지 비판하셨는데, 그분들은 교수님만큼 언론에 대한 비판의식이 투철하지 못한 걸로 보시는 겁니까?
“투철하지 못할뿐더러 다른 게 또 있죠. 물론 김수환 추기경님을 존경해요. 지금 가장 문제가 되는 건 지식인들을 포함해서 원로급이나 지도급 인사들이 무난하게 모나지 않게 둥글둥글 원만하게 행동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진보적 행위를 실천하면서 그렇지 않은 사람들을 전혀 건드리지 않는다면 보기에 아름답기야 하겠지만, 제가 보기엔 한국 사회에서 개혁을 하려면 그런 방식으로는 안 된다는 거예요.
저는 기본적으로 한국 사회의 지식엘리트층, 사회운동하는 엘리트층이 가진 언론관에 문제가 있다고 봅니다. 정치인들의 언론관과 너무 비슷합니다. 언론이라는 걸 좋은 목적을 위해 이용해야 하는 도구로만 보는 거예요. 과거 박정희·전두환식 언론관과 본질적인 면에서 차이가 없습니다. 저는 신문을 도구로 보면 안 되고 정당과 비슷한 조직으로 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건 제가 세계 최초로 주장하는 것도 아니고 다른 나라에서는 이미 그런 언론관이 정착돼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 나라에선 도구적 언론관이 국민들에게 널리 퍼져 있고 그것이 언론문화가 돼버리니까 신문을 정치적·이념적 가치관에 의해 선택하지 않죠.”
―조선일보에 대한 현실론도 존중돼야 하지 않을까요. 말하자면 그 신문이 엄연한 실체로서 한국 사회에 영향력을 끼치는 점을 인정해야 한다는 거죠.
“그래서 제가 쓴 말이 주류 콤플렉스라는 거예요. 제가 주로 문제 삼는 건 좌파 진보적 지식인들입니다. 좌파 진보적 지식인이 ‘현실적으로 영향력 있는 주류 신문이니까 이 신문을 이용해야 되겠다’는 태도를 취한다는 게 말이 됩니까. 한국 사회에서 좌파 진보적 지식인이 어떻게 주류가 될 수 있습니까. 그 모순을 제가 지적한 거예요. 주류가 아니어야 마땅하죠. 그런데 거기에 대한 반론은 안 하고 다들 일상적 지식인론만 역설해요.”
시민단체의 오만
―이런 문제 제기가 가능할 것 같습니다. 예컨대 환경 문제 같은 것은 언론의 도움이 없으면 캠페인이 쉽지 않지요. 환경운동단체들이 영향력 있는 언론을 활용해 운동의 효과를 크게 봤을 때 ‘당신들은 어떤 신문을 상대했으니까 나쁘다’라고 비난하는 것이 온당한 일인지. 이건 가치의 우선순위 문제와도 연결된다고 보는데요.
“제가 빅3 신문을 다 상대하지 말자고 주장했다면 말이 안 되죠. 전국지 시장의 60∼70%를 장악하고 있다는데 어떻게 막습니까. 하나의 신문만 이야기한 거예요.
환경운동에 대해선 저도 그런 점을 생각했어요. 환경운동하면서 이데올로기가 무슨 상관이냐. 언젠가 최열 장원씨가 토론회에 나와 멋있는 말을 하더라고요. 정치환경도 환경이라고. 자기들이 그 논리를 만든 거예요. 이번에 최열씨가 사외이사 건으로 문제가 됐습니다만 우리 나라 시민운동단체들은 내부 비판이 없어요. 언론을 두려워하는 점도 있지요. 게다가 수많은 영남인사들이 이름을 걸어두고 있는데 특정 신문과 적대적인 관계로 돌아선다고 하면 다 나갈 겁니다.”
―교수님께서 참여연대 사무처장인 박원순 변호사에게 “시민단체들이 언론에 너무 비굴하게 군다”고 비판하자 박변호사가 “운동의 현장에 나가 다른 사람들 얘기도 들어보라”(‘참여사회’ 2000년 6월호)고 반박하지 않았습니까. 현장에서 운동하는 사람들의 고충을 말한 것 같은데요.
“카메라 플래시가 터지는 현장에서 냉정한 태도를 취하기는 어려울 겁니다. 제가 언론비판을 하는데, 전혀 언론비판을 하지 않는 사람이 저에 대해 문제제기를 한다고 ‘너 언론비판 해본 적 있어, 없어’라고 묻는 건 예의가 아니죠. ‘현장에 있냐 없냐’는 기준으로 이의를 제기하는 건 온당치 않다는 거예요. 그건 비판을 경청하지 않겠다는 오만한 자세죠. 가령 내가 열심히 시민운동하는데 시민운동을 하지도 않는 사람이 비판한단 말이에요. 그래도 시민운동하는 사람은 그 비판에 귀를 기울여야지, ‘너 시민운동 해봤어’ 이렇게 말하면 안 된다는 겁니다. 그 오만은 ‘우리가 현장에서 이렇게 뛰는데’라는 엄청난 도덕적 우월감에서 비롯된 거죠.”
―결국은 언론관의 문제로 귀착하는 것 같은데요.
“그것 더하기, 제가 이래서 욕먹는 건데, 인정 욕구가 있다고 보는 거예요.”
―말하자면 매명주의라는 건데, 세상을 보는 가치관의 문제일 수도 있고 자기 나름대로의 이유가 있을 수 있지 않겠습니까. 그걸 모두 매명주의로 몰아붙이는 게 타당한 것일까요?
“그게 아니라면 더 모욕적인 발언이 나와요. 무지라는 거죠. 적어도 좌파 진보적 지식인에겐 이론의 문제가 아닙니다. ‘이런 나쁜 새끼들이 있나’ 하고 분통이 터지지 않느냐는 거예요, 사설 같은 것을 보면. 배알의 문제죠, 배알. 저는 좌파 진보성이 희석된 것이라고 보지는 않습니다. 이 신문은 이런 시각을 갖고 있구나, 라고 담담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그 심리가 이해가 안 된다는 거죠. 그런데 그렇게 순화돼 있어요, 한국의 진보적 지식인이라는 사람들이.”
―매명주의라는 말은 무척 자존심을 상하게 하는 표현이죠.
“자존심 상해야 마땅하죠.”
―좌파 지식인들은 그걸 논쟁의 대상으로 삼지 못하겠다는 태도 같아요. 논쟁의 문제가 아니라는 거죠. 자존심의 문제, 감정의 문제가 돼버린 느낌입니다.
“겉으론 그렇게 하고 있지만, 사실은 논쟁에 응하고 있는 거예요. 글들을 보면 전부 저를 겨냥하고 있는데 그게 얼마나 우스워요. 제가 고맙죠. 저에 대한 과대평가죠. 제 비판 방식을 문제삼는 데 머릿글 전체를 할애하다니 저한테 너무 집착하는 거죠(‘당대비평’ 2000년 가을호). 그러니까 제가 우쭐해진다니까요, 너무 과대평가해주셔서. 그건 아닌데….”
‘강준만식 글쓰기’는 그 동안 두 건의 ‘사고’를 당했다. ‘최장집 사건’과 관련해 조선일보 이한우 기자로부터 명예훼손 소송을 당해 1심에서 700만 원을 선고받은 일과 언론학자 정진석 교수(한국외국어대 신문방송학과)를 비판하는 글을 썼다가 ‘인물과 사상’에 사과문을 실은 일이다.
―이한우 기자로부터 소송을 당한 직후인 지난해 1월호 ‘인물과 사상’에서 “앞으론 독설에서 호소로 바꾸겠다”며 글쓰기 방식을 바꿀 뜻을 비추셨습니다. 또 정진석 교수에 대한 사과문이 실린 지난해 7월호 ‘인물과 사상’에선 “앞으로는 정중하고 차분하게 비판하겠다”고 하셨는데, 별로 바뀐 점이 없는 것 같은데요.
“(웃음) 저는 엄청 자제하는데요.”
분노에 의한 글쓰기
―어느 시점부터 교수님의 글쓰기에 관성이 생기지 않았나 싶습니다. 굳이 심한 표현을 쓰지 않아도 얼마든지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는데도 그런 표현을 즐긴단 말이죠. 그건 관성의 문제가 아닐까요?
“관성의 문제도 있는 것 같고요. 사실 고민스러운 일인데, 제 글쓰기에 이런 딜레마가 있죠. 분노에 의한 글쓰기를 하다 보니까 냉정한 상태에서는 글이 잘 안 돼요. 글을 써놓고 며칠 있다 읽어보면 맘에 들지 않을 때가 많아요. 그러면 분노를 자제하고 냉정하고 차분하게 쓰면 되지 않겠느냐. 그게 안 돼요. 분노가 이끌어주지 않으면…. 그렇다고 제가 ‘또라이’는 아니에요. 차라리 그렇게 별난 사람이라면 평소 심리가 그러니까 그렇다고 볼 수도 있을 테지만 저는 조직에서는 너무 점잖은 편이거든요.”
―과격한 표현이나 조롱조 표현을 분노로 정당화할 수는 없지 않을까요?
“그런 식의 글쓰기에 대해 비판한다면 제가 감수해야죠. 그런데 그게 쉽지 않아요. 비판의 대상이 되는 사람들에게 ‘이 사람, 나쁜 사람이네’ 하면서 화기애애하고 정중한 표현으로 비판할 수 있겠어요? 성질이 나니까 막 써대는 거죠.”
―글쓰기의 효과를 따질 때 오히려 손해 보는 측면도 있지 않습니까. 당사자들의 강한 반발을 일으킨다는 점에서.
“그렇죠. 권성우 교수(동덕여대 국문과)가 김정란 교수(상지대 불문과)의 비판방식을 문제 삼으면서 ‘비판의 목적은 대화’라고 했는데, 저는 대화가 목적이 아닌 비판도 있다고 봅니다. 독설 풍자 격문 대자보… 이런 양식의 커뮤니케이션은 대화가 목적이 아니라는 거죠. 그러면 비판의 목적이 대화가 아니라고 해서 무가치하다고 할 수 있습니까. 저는 그렇게 보지 않거든요. 제가 하는 비판이 아무리 격하더라도 실정법에 의해 규제를 받는 거예요.
저한테 ‘그렇게 하지 않았더라면 더 좋았겠다’고 주문할 수 있고 비판도 할 수 있겠죠. 그런데 제가 지나칠 경우에는 그만한 응징이 따르기 때문에 결국 제가 책임질 일이죠. 두 사건으로 제가 치르고 있는 비용과 희생이 얼마나 큰데요. 이해관계가 개입되지 않은 사안의 경우 대화를 목적으로 비판하는 것이 가능하겠지만, 정말 나쁜 사람이다, 라고 판단할 경우, 가령 ‘100분 토론’에 나왔던 김용서 교수님(이화여대 행정학과) 같은 분의 과거 행태에 대해 글을 쓴다면 그분이 그 글을 읽고 기분 나빠하지 않을 정도의 정중한 비판이 가능하겠습니까?
그분은 ‘한국논단’(월간)에 가면 재미있는 말씀을 많이 하실 분이에요. 제가 글을 쓴다면 그분의 말을 인용해가면서 ‘약 드셨나’라고 조롱할 수 있겠죠. 그러면 ‘야 이 자식이 정말 조롱하네. 이거 나쁜 놈이네’ 그럴 수도 있겠죠. 그렇지만 내가 달리 어떻게 말하겠어요. 조롱해야 마땅하다면 조롱조 표현이 들어가야죠. 그건 독자와의 호흡이기도 합니다. 가령 ‘김정일과 김대중 두 사람이 합의만 하면 이 나라를 마음대로 끌고 갈 수 있다’는 김용서 교수의 주장에 대해 제가 ‘그건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국민 수준을 과소평가한 겁니다’라고 말하는 게 옳겠어요? ‘김교수님, 약 드셨나요?’라는 표현이 더 어울리지 않겠습니까.?
상황에 따라 얼마든지 조소나 조롱이 들어갈 수 있다고 봅니다. 나는 그래서 분노도 확산돼야 한다고 봅니다. 어찌 됐건 저를 지지하는 사람들로부터도 그런 식의 반박이 많이 나왔기 때문에 제 딴에는 엄청 자제하고 있는데, 그렇지 않다고 하시니까 약간 섭섭하기도 하네요.”
―주변에서 그런 지적을 하니까 마지못해 시인하겠다는 말씀입니까?
“공감하는 부분도 있고, 어떻게 내가 느끼는 분노를 저 사람도 똑같이 느끼기를 바라느냐고 체념하는 부분도 있고.”
―이진우 교수(계명대 철학과)가 ‘emerge 새천년’ 2월호에 ‘강준만식 글쓰기’에 대해 비판한 글이 있지요. “비판적 반성의 계기보다 싸움 구경의 흥미만 유발한다”고요.
“흥미만 가질까요? 그리고 흥미를 가지는 게 나쁜가요?”
―나쁘다고 볼 순 없겠죠.
“‘100분 토론’을 예로 들면 저는 그 정도면 안티조선측이 잘했다고 보거든요. 그런데 실망했다고 말하는 사람들은 흥미 차원에서 토론을 지켜봤기 때문이라고 봐요. 그게 위험한 것이지, 흥미를 유발하기 위해서 쓴 글은 아니지만 결과적으로 흥미를 유발했다면 아주 좋은 거죠.”
―‘100분 토론’ 홈페이지에 올라온 의견들을 보니까 안티조선측의 논리에 대한 비판이 많던데요.
“저는 앞으로 그런 종류의 토론이 또 벌어지더라도 안티조선 쪽이 불리하다고 봅니다. 가령 극단적인 예로 광주시민과 신군부 쪽 사람이 TV 토론을 하면 신군부쪽이 이겨요. 왜냐. 이쪽은 정의감에 의해 심적으로 격앙되기 마련이고, 저쪽은 가진 것을 지키려는 상태이기 때문에 심리전에서부터 불리한 거죠. 저 역시 TV 토론에 나간다면 흥분하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어요.”
―실명비판의 형식을 빌려 인격비판을 하고 있다는 비판이 적지 않습니다.
“저는 실명비판을 할 때 무한대의 반론권을 주지 않습니까. ‘인물과 사상’에서 반론을 다 받아줘요. 대등한 게임이라는 거죠. 그런데 그 게임에 거부감을 느끼는 건 한국 지식인들의 자존심이 너무 강하기 때문입니다. 자신들을 너무 대단하게 생각하는 거죠. 그 동안 비판을 받아보지 않아서 그래요. 그리고 인격과 연결해야 마땅한 경우가 있어요. 예컨대 어떤 교수에 대해선 제가 사실 명예훼손 소송 걸릴까 봐 심하게 쓰질 못해서 그렇지 문민정부 때부터 지금까지 쓴 글을 보면 인격을 문제 삼지 않을 수 없어요. 세계화라는 단어를 막 쓰던 분이 막상 세계화가 되니 딴소리를 하고. 어떻게 지식인이 그럴 수 있어요.”
―사람을 제도와 동일시하고 사람 쪽에 비판의 초점을 맞추는 탓에 정작 개선돼야 할 제도나 구조의 문제점을 불투명하게 만든다는 비판도 있습니다.
“그거 이진우 교수 말인가요? 제도를 누가 운용해요, 사람이 하지. 누가 사장으로 앉아 있느냐에 따라 KBS 문제가 달라지는데 사장을 비판하지 않고 KBS의 제도를 어떻게 비판합니까? 제도를 바꾸는 건 바로 사람인데.”
―사람에 대한 비판이 제도에 대한 비판보다 중요하다는 말씀이네요.
“균형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우리 지식계 문화에서는 사람 비판이 없었어요. 비평도 없구요. ‘신동아’에 ‘남성 탐구’를 쓰시는 정혜신 선생님, 나중에 한번 보세요. 나는 그분이 선구적인 일을 한다고 봐요. 그런 작업을 하는 분들이 자꾸 늘어야 합니다. 우리 지식계에선 사람에 대한 찬양만 있지 비판이 정말 없어요. ‘침묵의 카르텔’ 구조에 대한 문제의식을 갖고 있다면, 지금 제가 하는 작업에 대해 거부감이 느껴지더라도 조금은 달리 봐줘야죠.”
한국 지식계는 ‘쓰레기’
―교수님의 글쓰기가 현대사회의 다원성, 다양한 가치를 간과하고 있다는 비판도 있는데요.
“그게 바로 요즘 제가 관심을 갖고 있는 부드러운 파시즘 체제의 특성이라고 봅니다. 전선이 다양해지고 다원화된 사회에서 도덕적 우위에 의해 누군가를 비판하는 것이 합당하냐는 것이죠. 그런 정서에 비춰보면 저는 대단히 무식하고 시대착오적인 일을 벌이고 있는 거죠. 저는 거꾸로 이렇게 말씀드리고 싶어요. 자유민주주의 사회가 뭐냐, 이거죠. 진정으로 다원주의가 실현된 사회라면 갖가지 주장들이 나올 수 있는 것 아니에요? 그렇다면 내 목소리도 거기에 끼워달라는 거죠. 다원화된 사회라면 극좌에서부터 극우까지 모든 주장이 용납되고 허용돼야 하지 않습니까. 그렇게 보면 제 주장이 문제가 될 건 없다는 겁니다.”
―어쨌든 다원성 측면에서 보면 교수님의 판단도 자의적이고 상대적인 것일 수 있죠.
“다원화·다양화되었으니까 획일적인 잣대로 재긴 어렵다는 거죠? 적어도 개혁에 이바지하겠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빠지기 쉬운 함정이 바로 그거라고 봐요. 사회가 달라졌다고 보는데 과연 그럴까요. 정권교체로 바뀐 건 정권뿐입니다. 예전부터 보여온 구태의연한 행태는 그대로 남아 있어요. 한국 시민사회 영역에서 뭐가 달라졌습니까. 신세대 문화만 달라졌죠. 언론이 변화됐습니까. 종교가 변화됐나요. 달라진 게 없어요. 달라진 게 없는데도 달라졌다고 환상을 심어주면서 왜 거기에 따르지 않느냐고 욕한다면 동의할 수 없죠.”
―계몽주의와 연관시킨 비판도 있습니다. 이진우 교수가 ‘emerge 새천년’ 9월호에서 계몽주의의 함정을 지적했더군요. 자신만 옳다는 일종의 신화를 만들어간다는 지적인데, 교수님의 글쓰기에 계몽주의적인 측면이 있다는 데 동의하십니까?
“계몽주의라는 말은 안 쓰고 싶은데요. 계몽이라는 말 자체가 시대착오적인 말이 돼버린 세상이거든요. 계몽이라기보다는 표현의 자유입니다. 당신(좌파 지식인)이 알아서 표현해라. 다만 당신이 그런 일을 하는 데 대해 나는 동의를 못하기 때문에 언행일치를 시켜주겠다는 거죠. 하루아침에 한국 사회를 좌파 세계로 바꿀 수 있다고 믿는 거예요? 아니잖아요. 어차피 길게 보는 것 아닙니까. 뭐가 그렇게 급해 자기 메시지를 전파하겠다고 비판받는 신문에까지 글을 쓰냐 이겁니다.”
비판에 예민한 사람들
―글쓰기 문제를 조금 더 얘기하지요. 홍윤기 교수는 ‘인물과 사상’ 2000년 10월호에서 실명비판에 따르는 인격훼손을 파시즘의 고문방식에 비유했는데요.
“저는 홍교수님이 고민을 해야 한다고 봅니다. 그렇게 엄청난 과장을 해도 되는 건지. 제가 누누이 얘기했지만 왜 그렇게 10대 소녀들처럼 예민하냐는 거예요. 사회참여하면서 남을 비판하겠다는 사람들이 그 정도의 비판에 왜 그렇게 호들갑을 떠는지 모르겠어요.”
―거기에 간극이 있는 것 같습니다. 선생님은 ‘그 정도’라고 하지만, 비판당하는 쪽에서는 ‘그 정도’가 아니라 ‘그렇게까지’가 되는 거죠.
“심각하게 느끼는 것도 이해할 수는 있어요. 그런데 그분들이 심각하게 느끼는 건 기존 한국 지식계 정서에 근거한 거죠. 먼저 이분들이 저에 대해 그런 비판을 하기 전에 한국 지식계의 비판문화는 어떤 것이며, 제가 제기한 ‘침묵의 카르텔’이 어느 정도인지, 상호비판이 있었는지, 인물을 배제한 주의나 주장, 이론에 대해서만 비판해야 하는 건지, 그런 논의부터 먼저 해야 한다는 겁니다.
예를 들어 서강대 임상우 교수(서양현대사)가 쓴 ‘끼리끼리 뜯어먹는 한국 지식사회’라는 글을 보면 한국 지식계는 쓰레기예요, 쓰레기. 비판이라는 것도 전부 ‘짜고 치는 고스톱’이고, 넘어서는 안 될 선을 그어놓고 거기까지만 가고. 그렇게 독설을 퍼부어대는 분이 저말고도 여러분 있어요. 그러나 그게 문제가 안 되는 건 실명을 거론하지 않기 때문이에요. 그런데 각개격파, 실명비판으로 들어가면 가만있지 않는다는 거죠. 지식인들만 면책특권을 누리겠다는 생각이 뻔히 보이는데 제가 어떻게 거기에 동조합니까. 문화를 바꾸자는 거죠.”
그는 자신의 글쓰기에 대한 비판에 불만이 많은 듯했다. “인터뷰 기사가 공정하게 나가려면 한국 지식인의 비판문화에 대한 분석기사가 곁들여져야 한다”고 했다.
남의 밥그릇 건드리기
―홍윤기 교수가 이런 문제제기를 했더군요. “진보적 인사들이 조선일보와 인연을 끊고 대항한다면 조선일보의 자본과 독자층에 어떤 중대한 변화가 올지 근거를 대라”고요.
“저는 홍교수님에게 사회운동이라는 것이 비전과 확신을 주는 게임이라고 생각하느냐고 묻고 싶어요. 제 생각엔 그런 건 종교가 할 일이고 허풍 떠는 권력이 맡을 일이지, 사회운동이란 건 그런 게 아니라는 거죠. 운동관의 차이죠. 오랫동안 내가 언론 문제를 겪어본 바로는 언론개혁운동에 거대하고 멋있는 프로젝트는 없어요. 지금 너무 감정적이고 소모적인 논쟁으로 흐르고 있어요. 저라고 좋겠어요? 솔직한 심정을 이야기하면, 조선일보 비판하는 것 지겨워요, 저도.”
―교수님이야 언론학을 전공했으니 그렇겠지만, 언론학을 전공하지 않은 다른 지식인들에겐 언론보다 더 중요하게 여기는 문제들이 있지 않을까요. 인생관 또는 역사인식의 차이일 수도 있겠고.
“저는 그렇게까지 보지는 않아요. 다만 내 직업적 전문성에서 비롯된 착각이나 편견은 없을까, 그런 경계심은 갖고 있죠. 사람들은 누구나 자기가 전공하는 걸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경향이 있죠. 그런데 스스로 검증해보면, 그건 아니라는 결론을 내리게 됩니다. 한국의 정치학자들 가운데 언론을 비판하는 사람의 이름을 하나라도 댈 수 있습니까? 언론의 정치 보도와 관련해.
그러면 그것이 신문방송학과 교수들의 영역이라고 생각해 정치 보도에 대해 비판하지 않는 걸까요? 아니면 한국 언론의 정치 보도가 정치에 끼치는 영향이 없다고 생각해서일까요. 그리고 경제학자들 가운데 한국 언론의 경제 보도에 대해 비판하는 사람을 본 적 있어요? 김윤자 교수(한신대 경제학과)가 한겨레신문을 통해 가끔 하시더군요. 정말 그런 분은 희귀한 분이에요. 이렇듯 언론 보도에 대한 비판을 꺼리는 이유를 따져보자는 거죠, 솔직하게.”
―가치관의 문제가 아니라는 거지요?
“가치관보다 더 근본적인 문제라고 보면 됩니다. 가만히 살펴보니 신통해서 그래요. 전혀 다루어지지 않은 영역이 있더란 말이죠. 제가 볼 때는 무척 중요한 일인데, 왜들 거기에 대해선 얘기하지 않을까. 정치학과 교수들한테 물어보니 ‘남의 밥그릇 건드렸다가 큰일나려고’, 농담 삼아 그렇게 이야기합디다. 제가 보기엔, 많은 정치학자들이 신문에 정치에 대한 칼럼도 쓰고 싶고 여기저기 참여도 하고 싶은데, 언론 비판해서 득 될 게 없다는 거예요. 제 문제점은 제가 언론 비판을 업으로 삼다시피하니까 남들이 언론비판을 꺼리는 마음을 너그럽게 이해해주지 못하는 점이죠. 전문화에 따른 제 편견 같은 게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하면서도 너무 답답하니까….”
―그 얘기는 ‘당대비평’에서 지적한 도덕의 문제와 관련되는 것 같습니다. 자신의 인식을 절대화해 ‘성채’ 안에서 자신의 도덕 기준만을 내세우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죠.
“도덕이라고 볼 수도 있겠지만 더 정확한 표현은 언행일치, 명실상부죠. ‘당대비평’에서 주장하는 ‘일상적 파시즘’론에 저는 100% 동의합니다. 문제는 좌파들이 수구 기득권 세력에 의한 정치·경제적인 파시즘도 문제로 삼아야 하는데, 그것을 제쳐놓고 일상적 파시즘만 표적으로 삼는다는 거죠. 그건 의도야 어찌 됐든 지금의 한국 사회에서는 우파와 극우파를 도와주는 결과를 낳는다는 거예요.”
―교수님 시각에 따르면 좌파의 정체성 문제를 떠나, 사람들이 옳은 건 옳다고 얘기하고 옳지 않은 건 옳지 않다고 분명히 얘기해야 하는데 그렇지 않다는 것 아닙니까. 바로 그런 점에서 도덕성 운동이 아니냐는 거지요.
“도덕성이라는 말은 과대평가예요. 그렇게까지 높게 봐주시나.”
―과대평가의 문제는 아닌 듯싶은데요.
“그 말에 부정적인 의미가 담긴 것 아니에요, 사실은. 예를 들면 미국에 있는 극우 근본주의자들은 작은 도덕적 잣대 하나를 갖고 모든 걸 쳐버리는데, 그런 일과 제가 하는 일은 의미가 다르지 않습니까. 도덕은 도덕이지요. 다만 그쪽에서 얘기하는 도덕의 의미가 얼마나 편협한 것인지 알기 때문에 제가 과대평가라고 이야기하면서 그 표현을 꺼리는 겁니다.”
―어쨌든 ‘이게 옳은 일인데, 왜 너는 그렇게 하지 않느냐’고 나무라는 것은 도덕성을 따지는 것 아닙니까?
“제가 도덕을 꺼리는 데는 이런 이유도 있어요. 제가 만일 도덕을 주장하면 어떤 문제에 봉착하게 되냐 하면, ‘너 그러면 유신 때나 전두환 때는 뭐했냐’는 비판이 나오지요. 왜 이제 와서 세상 좋아지니까 도덕 타령하느냐는 겁니다. 그러니까 제가 하는 일을 도덕운동으로 보는 건 과대평가라는 겁니다. 제가 거기까지 갈 수는 없기 때문이죠.”
그는 도덕이라는 말에 대해 예민하게 반응했다. 한마디로 부담스럽다는 것이다. 대신 그는 ‘위선에 대한 혐오’라는 표현을 썼다. 도덕과는 다르다는 것이다.
―‘순교자 정신’이라는 딱지도 붙었는데요.
“과대평가죠. 저는 하기 싫은 일은 안 하거든요. 그러니까 순교자는 아니죠. 제가 교수가 아니라면 이런 일을 뭐 하러 하겠어요. 교수랍시고 국민 세금 축내면서, 전공이 언론인데, 어떻게 언론과 관련된 문제를 모른 척할 수 있냐는 겁니다.”
“여자 나오는 술집, 안 가겠다.”
―다수의 인정을 받지 못하는 길을 혼자 걸어간다는 점에서 순교자 의식을 가진 것 아니냐는 거지요.
“그건 아니에요. 오히려 혼자 외롭게 하기 때문에 인정욕망을 더 충족시키는 면이 있죠. 저도 인정 욕구가 대단히 강하단 말이에요. 내가 옳다고 믿는 바를 실천함으로써 충족되는 인정욕구, 옳은 방향으로 가고 있다고 확신할 때 갖는 만족감이 있잖아요. 솔직히 저한테 그런 것까지 없는 건 아니죠. 그러니까 이해득실의 게임인데 저를 순교자로 보는 건 좀…. 저도 그런 계산은 나름대로 하고 있다는 거죠. 내가 느낄 수 있는 만족이란 게 뭐겠어요. 지금은 ‘저 자식, 천하에 나쁜 놈’이라는 욕을 듣지만, 저는 지식인 문화가 반드시 바뀔 거라고 봅니다. 오래 걸릴망정.”
기자가 도덕성 또는 도덕운동을 거론한 데는 그가 최근 “여자 나오는 술집에 가지 않겠다”고 선언한 일을 ‘예사롭지 않게’ 본 이유도 있다. 그는 ‘인물과 사상’ 10월호에서 신문 칼럼을 자주 쓰는 정신과의사 이시형씨가 술집 호스티스의 ‘직업윤리’를 거론한 데 대해 분개하며 이런 고백과 결심을 밝혔다.
“나는 젊은 아가씨가 있는 술집에 가서 못된 짓도 많이 한 쓰레기 같은 인간이다. 이후 여성의 성적 접대가 제공되는 곳엔 절대로 가지 않겠다. 젊은 아가씨들이 있는 술집에 가서 아가씨의 허벅지를 주무르는 행동과 진보와 개혁을 부르짖는 행동 사이에 아무런 갈등과 모순을 못 느꼈던 나의 과거를 참회한다.”
―‘여자 나오는 술집에 가지 않겠다’는 선언은 분명 도덕적인 선언이지요?
“그 얘기하고 나서 무지하게 후회했어요. 그때는 마음이 풀어져 그런 얘기를 했어요. 이시형을 비판해야겠는데 비판을 하기 전 ‘나는 떳떳한가’ 검증해보니 어쩔 수 없더라고요. 그런 것도 안 하면서 이시형을 비판하면 내가 나쁜 놈이 되죠.”
―자신의 도덕성을 좀더 강화하겠다는 의지가 있는 것이죠?
“당연히 그래야죠. 그런데 그 얘기했다가 얼마나 욕먹었는데요. 당신이 어떻게 교수냐고. 게다가 그게 뉴스에 나왔어요. 강준만 실망했다, (술집에) 안 가려면 조용히 안 갈 것이지 굳이 그렇게 떠들 필요 있냐, 뭘 그렇게 잘난 척하냐. 별별 얘기가 다 나왔어요. 그래서 제가 인터뷰 같은 것 안 하려는 거예요. 진의가 왜곡되기 때문에.”
―의도와는 전혀 다른 결과를 낳았다는 얘기네요?
“욕 먹어 싸죠.”
―자격 없는 놈은 비판하면 안 된다는 논리인가요? 마치 “너희 중 죄 없는 자가 이 여자를 돌로 쳐라”는 예수의 말씀처럼. 그러면 사람들의 비판의지가 위축되지 않을까요?
“모든 사람이 그래야 한다는 게 아니라 적어도 사회를 향해서 발언하는 사람들만큼은 그래야 한다는 거죠. 아니면 차라리 입 닫고 있거나.”
그는 자신이 운동가가 아니라고 했다. 그 이유라는 게 어찌 보면 참 단순하다.
“제가 인터뷰를 하지 않으려는 데는 몇 가지 이유가 있는데, 운동의 전망에 대해 물으면 답변이 곤란한 것도 그중 하나입니다. 글 쓸 때와 달리 인터뷰를 하게 되면 전망에 대해 얘기해야 하거든요. 나는 거짓말은 하기 싫어요. 그런데 운동가는 거짓말도 해야 돼요. 비관적으로 보이더라도 희망 섞인 관측을 해야 한다는 거죠. 저는 그런 면에서 운동가는 아니에요. 전에 세미나 같은 데 가서 결론에 이르러 희망적인 이야기를 안 하면 청중이 항의하더라고요. 교수라는 사람이 그렇게 비관적으로 얘기하면 어떡하느냐고. 그렇지만 거짓말을 할 순 없죠.”
그는 “핏대가 나고 성질이 난다”는 말로 ‘어두운 전망’에 대한 답답한 심경을 드러냈다. 그런데 그는 정말 비관적으로만 보고 있는 걸까. 운동에 대한 지속적인 열정과 추진력은 최소한의 희망에서 비롯되는 게 아닌가.
“죽을 때까지 이 운동하겠다”
―운동의 전망을 비관적으로 보고 계시는데, 교수님의 운동이 이렇게 가다간, 거창하게 표현하자면, 일종의 종교적 신화로 남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드는군요.
“신화까지야 되겠어요. 그건 너무 과대평가해 주시는 겁니다. 사실 낙관하는 점도 있거든요. 제가 즐겨 하는 얘기입니다만 한국 민주주의의 역사가 몇 년이냐, 이거죠. YS 정권 때부터 잡아야 하지 않겠어요? 10년도 안 됐다는 거죠. 한 가지 웃기는 것은 과거에 전두환·박정희를 예찬하던 사람들이 서구 민주주의의 잣대를 가지고 YS·DJ 정권을 두들겨 패는 현상입니다. 코미디죠.
제가 부르짖는 주장이 당장 큰 효과는 없더라도 문제를 일단 공론화한 점에서, 긴 호흡을 갖고 본다면 제가 불치병 걸려서 죽거나, 오다가다 죽지 않는다면 죽을 때까지 이 일을 할 거니까, 앞으로 20년 더 산다고 보면 그때쯤엔 뭔가 달라지지 않겠냐는 거죠. 그렇게 멀리 보면 낙관적인 측면이 있는 거죠.”
―악역을 맡았다고 자주 말씀하시는데 그 역할에서 벗어나고 싶은 생각은 없습니까?
”지금 단계에서는 의지로 하기보다는, 심하게 얘기하면 ‘이왕 버린 몸인데’ 하는 심보가 강해요. 내가 여기서 어떻게 더 버리겠는가. 저는 안 망가지나요. 이건 경계해야 할 부분이지만, 관성에 의해 끌려가 버리는 측면도 있어요. 그렇지만 아무리 혹독한 비판이라도 저를 되짚어볼 기회를 주는 거니까 저로선 어떤 독설이든 즐거운 마음으로 대환영이죠. 제가 수긍할 수 있는 대목은 받아들이죠. 그리고 상대편 논리의 허점을 발견하는 것도 기쁨이고.”
지식인 생명은 독립성
―어느 글에선가 교수님이 하는 일의 최종 목표는 지식인의 복원이라고 말씀하셨더군요. 그 의미를 설명하신다면.
“제가 보기엔 지식계가 언론계에 먹혔어요. 지식계가 독립적인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영역에 머물러야 되는데, 신문에 칼럼 쓰고 TV 출연하는 것말고 지식인이 대중을 만날 수 있는 길이 없다는 게 문제입니다. 스스로 개발도 안 했고요. 기껏해야 캠퍼스 안에서 연구회나 강연회를 갖는 건데 그런 건 요즘 시장에서 통하지도 않지요.
그러니까 대중은 언론이라는 매개체를 통해서만 지식인을 만날 수 있는데, 문제는 어떤 지식인이 언제 어떤 이슈를 가지고 이야기할 수 있는지에 대한 주도권을 언론이 쥐고 있다는 거죠. 심한 표현으로 지식인은 언론의 용병일 뿐이지 독자적인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세력이 아니라는 겁니다. 지식인은 언론의 이해관계와 무관하게, 그야말로 언론을 주체적으로 이용해야 합니다.
그리고 지금 신문의 칼럼니스트 시장을 보면 대학교수가 너무 설쳐요. 자유기고가 시장이 넓어져야 해요. 또 교수들은 연고나 정실로부터 독립해야 하는데, 지금 보세요. 대학들이 모교 출신을 교수로 채용하는 비율이 얼마나 높은지. 교육부가 겁주기는 했습니다만, 제가 볼 때 마이동풍이에요. 점점 학연주의가 강화되고 있어요. 무섭다고요. 학연주의에 빠진 지식인은 지식인이 아니죠. 지식인의 생명은 독립성인데. 이런 모든 일이 제가 말하는 지식인의 복원이죠.”
―이상주의자라는 평가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세요?
“전 이상주의자면서도 현실주의자지요. 현실이 이상에 근접할 수 있도록 비판할 건 비판하고 부정할 건 부정하는 방향으로 나아가는 거죠. 현실에 발을 딛고 있는데 어떻게 합니까. 더디게 조금씩 조금씩 갈 수밖에 없는 거죠.”
애초 ‘2시간만 딱’ 하기로 했던 인터뷰는 오후 7시가 넘어 끝났다. 예정시간보다 한 시간 반 가량 더한 것이다. 인터뷰 도중 몇 차례 전화가 걸려왔으나 그는 한 번도 받지 않았다. 기자와 나란히 화장실에 갔다올 때를 빼곤 단 한 차례도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았다. 그토록 많은 얘기를 했는데도 지친 기색이라곤 없었다.
가방을 챙기는 기자에게 그가 말했다. “서울에 올라가도 어차피 저녁은 먹고 가야 할 것 아닙니까?” 그는 중·고생들이 메고 다닐 법한 ‘어깨가방’을 둘러메고 앞장섰다. 자전거는 학교에 두고 갔다. 2회전의 공이 울린 것이다.
사 석에서의 모습과 발언은 그 사람의 됨됨이나 속마음을 헤아리는 데 종종 유용한 단서가 된다. 고민 끝에 강준만 교수와 사석에서 나눈 얘기도 일정 부분 기사화하기로 결정했다. ‘인간 강준만’을 이해하는 데 그보다 좋은 ‘자료’가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그에게 이메일을 통해, 그런 뜻을 전하는 한편 몇 가지 보충질문을 던졌다. 그러나 그는 아무런 응답을 하지 않았다. 그다운 행동이었다. 인터뷰와 기고, 강연 요청을 ‘원천봉쇄’하기 위해 전화조차 끊고 사는 그가 아닌가. 아마도 그는 하룻밤 지나고 나서 인터뷰에 응한 것을 곧바로 후회했거나 지금쯤 인터뷰한 사실을 깡그리 잊고 있을는지 모른다.
그날 그가 안내한 횟집에 도착한 것은 오후 8시쯤이었다. 그의 표현대로라면 “싸면서 맛도 좋고 서비스도 좋은” 식당이다. 주인이 환한 웃음으로 맞아주는 것으로 봐 그가 단골이라는 것을 짐작할 수 있었다. 그는 인터뷰에서 할 말을 다 못하기라도 한 듯 많은 얘기를 쏟아냈다. ‘지식인사회의 위선’에 대한 분노를 좀더 강도 높게 표출하는가 하면 자신의 내면세계를 스스럼없이 드러냈다.
술은 처음에 맥주 3병을 시켰다가 몇 차례 추가 주문을 했다. 그는 “딱 한 병만 더”를 즐기는 편이었다. 담배도 많이 피웠다. 특유의 독설은 한층 빛을 발했고 인터뷰 때는 선보일 기회가 없었던 유머감각이 돋보였다. 그는 옆방에 든 단체손님들이 식당이 떠나갈 듯 시끄럽게 떠들자 ‘자리를 잘못 잡은 데’ 대해 몹시 미안해했다. 그러다 나중엔 도저히 못 참겠는지 칸막이 문을 열고 옆방 사람들에게 한소리 했는데, 효과가 없진 않았다.
밤 11시가 넘어 식당에서 나왔다. 그 길로 그의 작업실로 갔다. 외부인에게 공개하기는 처음이라고 한다. 건물 2층에 자리잡은 작업실 출입문에는 ‘인물과 사상’이라는 팻말이 붙어 있다. 그 악명 높은 ‘강준만식 글쓰기’의 산실인 셈이다. 30평 남짓한 작업실은 두 개의 공간으로 나뉘어 있다. 작은 방은 그가 원고를 쓰거나 편집하는 곳으로 PC가 몇 대 놓여 있다. 탤런트 심은하의 대형사진이 벽 한가운데 걸려 있다. 그에 따르면 같이 일하는 직원(전북대 졸업생)이 ‘환경미화’ 차원에서 걸어놓았다는 것이다.
“오늘, 완전히 망가졌다”
전체 공간의 3분의 2 이상을 차지하는 큰 방은 서고다. 책과 인물파일이 빼곡히 들어차 있다. 왕성한 독서량을 과시하는 그는 특히 정치인 언론인 등 사회적 공인들이 펴낸 책은 빼놓지 않고 사들인다. 인물파일들은 가나다 순으로 서가에 꽂혀 있어 찾기에 편리해보인다. 인물파일에는 해당 인물에 대한 스크랩 자료가 잔뜩 채워져 있다. 그는 1996년에 펴낸 ‘고독한 대중’이라는 책 후기에서 인물파일이 1000여 개에 이른다고 밝힌 바 있다.
그는 “필요할 때 끄집어내기만 하면 된다. 손으로 분류해놓은 자료를 찾는 것이 인터넷에서 관련 자료를 뽑아내는 것보다 빠르고 편하다”며 인물파일의 장점을 설명했다. 그런가 하면 이런 얘기도 했다.
“나한테는 너무 소중한 것들이지만 다른 사람들한테는 휴짓조각에 지나지 않는다. 언젠가 내가 이 작업을 더 못하게 되면 다 내다버려야 할지 모른다. 그때가 되면 어떻게 처분하는 것이 좋을지 고민이다.”
그의 표정이 쓸쓸해보였다. ‘고독한 대중’에서 밝힌 대로라면 그의 행동반경은 집과 학교를 벗어나지 않는다. 학교 도서관과 기숙사를 오가며 ‘죽어라 공부만 했던’ 미국 유학시절 몸에 밴 ‘라이프 스타일’이라고 한다. 그전까지 그의 작업은 주로 집에서 이뤄졌다. 하지만 외부에 따로 작업실을 마련한 후로는 학교에서 퇴근하면 곧장 그곳으로 가 특별한 일이 없는 한 새벽 1∼2시까지 책을 읽거나 글쓰기에 몰입한다.
작업실에서 나온 후 그의 제의로 한잔 더 하러 인근 술집으로 갔다. 역시 맥주를 시켰다. 그는 꽤 많이 마신 편인데도 자세가 흐트러지거나 말실수를 하지 않았다. 등산을 꾸준히 하고 매일 자전거를 타는 덕분인지 체력이 좋은 듯싶었다. 여전히 열변을 토했고 잠시도 쉬지 않고 분노를 술잔에 쏟아부었다. 새벽 2시 반. 헤어질 때 그가 유쾌한 표정으로 말했다.
“하 참 오늘 할 일이 많았는데… 완전히 망가졌네요.”
다음은 그가 사석에서 한 얘기 중 일부를 요점만 정리한 것이다. 편의상 주제별로 나눴다.
●DJ정권
DJ의 최측근들이 나라를 다 말아먹는다. 지방자치단체장의 행태는 오만방자 그 자체다. 저마다 이권 챙기기에 급급하고 있다. 그 동안 굶주렸으니 많이 챙기기나 하자는 심보다. 정권교체 후 많이 실망했다.
인사를 그렇게 하면 안 된다. 보상인사가 판친다. 어떡하든지 과거에 신세 진 사람에게 한자리 주려고 애쓴다. 호남 인사들의 중용을 자제했으면 좋겠다. 영남권이라고 옳은 생각과 능력 있는 사람들이 왜 없겠나. 그런 사람들을 찾아 기용했더라면 욕 안 먹고 평가받을 텐데. 한풀이 차원에서 그런 인사를 했다면 할 말이 없다. 이번에 못 해먹으면 언제 또 하겠냐고 인사를 그런 식으로 하면 의리를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깡패 조직과 다를 바 없지 않은가?
그렇지만 DJ 인사를 비판하는 쪽에도 문제는 있다. 호남인들이 지금까지 소외 돼온 게 사실 아니냐. 좀 해먹으면 어떠냐. 하면 얼마나 한다고. 이때까지 수십 년 동안 경상도 사람들이 해먹은 건 생각도 안하고 일방적인 비판만 한다. 내게 ‘DJ 죽이기’로 돈 벌고선 DJ를 비판할 수 있냐고 혹자는 말하지만 잘못한 것에 대해선 비판하는 게 옳지 않은가?
●전라도
나는 전라도 사람이 아닌데도 호남 입장에서 얘기하는데 나를 가장 욕하는 사람들이 호남 사람들이다. 내 부모는 이북 황해도 출신이다. 그래서 제3자 입장에서 호남을 바라볼 수 있다. 차별과 멸시를 받고 있음에도 호남에 사는 사람들은 잘 모르고 있다.
오히려 호남 출신으로 타지에 가 살고 있는 사람들이 호남 차별을 뼈저리게 느낀다. 초등학교를 졸업한 후 서울에 있는 숭실중학교에 진학했는데 전라도 억양이 있다고 깽깽이라고 놀리더라. 양귀자 신경숙 은희경 등 전라도 출신 문인들, 문제가 많다. 조선일보의 정치적 성향을 알면서 어떻게 조선일보에 글을 쓸 수 있나.
●안티조선일보운동
조선일보기 자들이 뭔 죄가 있나. 이한우 기자한테 정말 미안하다. 그러나 1억원을 내놓으라는 건 말이 안 된다. 항소심 계류중인데 대법원에 상고까지 하겠다.
김동민(한일장신대 신문방송학과 교수·안티조선일보운동 지식인선언 대표)은 낙관주의자다. 그러나 나는 안티조선운동을 비관적으로 본다. 지는 게임이다. 지금 와 생각하면 운동방법을 잘못 선택한 것 같다. 도덕성을 내세우는 정공법으로는 도저히 이길 수 없다.
나도 힘들다. 나라고 왜 편하게 살고 싶지 않겠나. 뭐가 좋다고 남들한테 욕먹는 피곤한 짓을 계속 하겠는가. 그렇지만 누군가는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한다. 교수가 돼 가만히 보니 아무도 건드리지 않는 영역이 있더라.
내가 보기엔 너무나 어처구니없는 현상인데 다들 아무 말 않고 있다. 우리 사회의 개혁을 부르짖으면서 어떻게 언론문제를 건드리지 않을 수 있나. 어떻게 분노하지 않을 수 있나. 나는 그 모순을 견딜 수 없다.
●지식계·교수들
대 한민국에서 가장 썩은 집단이 지식계, 교수 집단이다. 교수들이 가장 좋아하는 게 뭔지 아나. 돈이다. 기자가 교수 인터뷰하면 누가 돈 내는 줄 아는가. 유일하게 기자 등쳐먹는 게 교수다. 언론을 개혁하려면 일단 신문방송학과 교수들부터 잡아야 한다. 지식계는 쓰레기라고 기사 부제로 붙여달라.
서울 교수들이 지방에서 열리는 세미나 같은 데에 왜 자주 내려오는지 아는가. 재미있거든. 끝나면 술집으로 모시고 가니까. 교수 집단의 문제점을 파헤치려면 각종 학회장 선거과정을 취재해보라. 대선이나 총선과 똑같다. 단 남들 눈이 있으니 돈을 받지는 않고 술 접대를 받는다. 그게 얼마인 줄 아는가.
한국 사회 교수집단은 철저하게 학연에 의해 움직인다. 상호비판할 수 있는 여건이 전혀 안 된다. 다행히 나는 학연에 얽매이지 않는 조건을 가졌다. 그런 점에서 행운이다. 김우창 교수(고려대 영문과)에 대한 비판을 본 적 있는가. 학연에 얽매인 교수들은 절대 서로 공격할 수 없다.
내가 이런 작업을 하니 사람들과 잘 어울리지도 않고 대인관계가 원만하지 않다고 생각하겠지만 그렇지 않다. 난 교수들과도 잘 지내고 사람도 잘 사귄다. 그러나 사적인 것과 공적인 것은 분명히 구분해야 한다. 우리 사회에선 학연이나 지연 등 사적으로 연결되면 잘못한 것을 알고도 아무 말 못한다.
나는 70년대 대학 다닐 때 운동권이 아니었다. 뒤에서 돌 던지는 정도였다. 대학 때 나보고 운동에 적극 참여하길 권유하던 친척이 강제징집당한 후 의문사 비슷한 죽음을 당했다. 나보고 ‘학교 다닐 때는 운동도 안하고 조용히 있다가 외국 가 편하게 공부하고 돌아온 놈이 지금 세상 좋아지니까 떠드냐’라고 비판한다면 할 말 없다. 그런데 내가 비판하는 내용에 대해 시비를 건다면 수긍 못한다. 나를 이해시킬 만한, 내 주장이 틀렸다는 걸 알게 해줄 만한 주장을 아직 못 봤다. 내가 틀렸다는 걸 입증해준다면 바로 그 순간부터 지금 하는 일을 그만두겠다.
내가 운동권이 될 수 없었던 이유는 내가 가진 모든 것을 포기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시골에 있는 부모가 자식만 바라보며 고생고생해 대학에 보냈는데 운동권이 돼 그 집안이 결딴나는 경우를 주변에서 많이 봤다. 그게 뭐냐. 나는 그렇게는 못산다고 생각했다. 그게 개인한테 무슨 의미가 있냐고. 소수가 다수를 위해 희생하는 게 내게는 무의미하게 느껴졌다.
나는 절대 운동가가 아니다. 운동가로 바라보는 데 대해 부담을 느낀다. 강연을 중단한 것도 그런 기대가 부담스러워서다. 나는 다만 문제 제기를 하고 비판할 뿐이다. 운동가라고 하면 허름한 집에서 살며 뭔가 희생적인 모습을 보여주길 기대하지 않나. 나는 그렇게 살고 싶진 않다. 나한테는 가족을 편하게 해주고 행복하게 하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지는 게임인데도 이 작업을 계속하는 건 비판 자체에 의미를 두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언젠가는 이 작업이 빛을 볼 것이라 믿는다. 지금은 욕을 먹고 있지만 죽은 후엔 분명히 나에 대한 평가가 달라질 것이라 확신한다. 난 죽을 때까지 이 일을 계속 할 것이다.
●교수직
강의시간으로만 따지면 노동시간이 9시간밖에 안 된다. 그런 점에서 교수란 직업은 혜택 받은 직업이다. 내가 이런 일을 하는 건 강의 외에 교수라는 직업이 내게 부여한 다른 뭔가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건 바로 이 사회의 지식인으로서 갖는 책임감이고 나는 그 의무에 충실할 뿐이다. 내가 만약 삼성에 들어갔다면 그 조직의 룰에 충실했을 것이다. 삼성의 직원으로서 사회 경제에 이바지할 것이다.
(기자가 힘들지 않느냐고 묻자) 생각을 해보라. 재미있는 일 아니냐. 잘못되고 썩은 사회현상을 비판하고 비판의 이론을 만들어가는 것은 너무 즐거운 일이다. 여러 현상들을 분석해 이론을 정립하는 것이 너무 재미있다. 갈수록 재미있다.
●아내와 아이들
나는 7년 연하인 아내한테 존대말을 쓴다. 처음부터 그런 것은 아닌데, 아내에게 반말하는 것도 일상적 파시즘이라는 생각이 든 후부터 고쳤다. 존대말을 쓰면 부부싸움을 할 때 화가 나도 “왜 그래”가 아니라 “왜 그랬어요”가 되니까 싸움이 더 커지지 않더라.
나는 집안에서 남녀차별 받고 산다. 딸 둘 아들 하나인데, 애들이 엄마가 훨씬 능력 있는 줄 알고 더 존경한다. 돈은 내가 벌어다주는데 폼은 아내가 잡는다. 아내는 자가용 타고 다니고 나는 자전거로 출퇴근한다(강교수는 운전면허증이 없다). 내가 아내에게 “이것 좀 먹어봐”라고 하는 경우는 있어도 아내가 내게 그런 말을 하는 법은 없다. ‘인물과 사상’을 통해 “이제부터 여자 나오는 술집에 안 가겠다”고 선언한 것을 아내가 무척 기뻐할 줄 알았다. 그런데 당연한 걸 갖고 뭘 그러냐는 표정으로 “진작에 그럴 것이지” 하고 한마디 던지는 게 고작이었다.
소개팅으로 만나 결혼했는데, 소개팅을 주선한 대학원 조교가 아내의 친구였다. 연애할 때는 자기가 나를 적극적으로 쫓아다녔는데, 요즘은 자신이 데리고 살아주는 것을 고맙게 여기라는 식이다. 나는 공처가다. 아내에 대해 늘 고마운 마음을 갖고 있다. 매일같이 작업실에서 새벽 늦게까지 일하다 들어가도 잔소리 한번 안한다. 그러니까 내가 이런 일을 할 수 있는 것이다.
아내는 교회 집사다. 나는 교회엔 안 나가지만 중·고등학교 때 미션스쿨을 다녀서 기독교에 친숙하다. 이론적으로는 내가 아내보다 더 많이 안다. 학교 다닐 때 신약과 구약을 몇 번이나 읽었다. 처음엔 아내를 즐겁게 해주기 위해 교회에 나가다가 지금은 안 나간다. 내가 운동을 전면적으로 못하는 것도 평생 15평 아파트에 살며 운동하는 사람들처럼 살 자신이 없기 때문이다. 나는 처자식을 고생시키고 싶지 않다. 그런 점에서 나는 평범한 소시민일 뿐이다.
*강교수는 아내에 대한 얘기를 할 때 무척 즐거워 보였다.
●책 읽기와 글 쓰기
교수 월급만으론 보고 싶은 책을 다 살 수 없다. 교수라면 누구나 많은 책을 구하고 싶어한다. 나는 내가 쓰는 글과 책을 판 돈으로 보고 싶은 책을 원없이 사는 행복을 누리고 있다. 한 달에 자료 수집비(책 구입비)가 200만 원 가량 든다.
요즘은 (작업실에서) 일 도와주는 사람이 하나 생겨 편하다. 전북대 졸업생인데, 신문 자료 스크랩과 인터넷에서 자료 뽑는 일은 그 친구한테 맡긴다. 덕분에 예전에 비해 시간을 배 이상 벌고 있다. 그래서 요즘 가장 왕성하게 글을 쓴다.
지금 나와 논쟁을 하는 사람들의 상당수는 나보다 나이가 어린 사람들이다. 그러나 그것이 뭐 어떠냐. 지켜보라. 나는 나이 60이 돼서도 20대, 30대와 논쟁할 것이다.
내 글쓰기에 다작에 따른 질적인 문제가 있다는 걸 인정한다. 그러나 많이 쓰지 않을 수 없는 건 그만큼 내가 보기에 분노할 일들이 자꾸 생기기 때문이다.
●‘인물과 사상’
계속 부수가 떨어지고 있다. 한때 정기독자 수가 1만 명을 넘기도 했으나 지금은 그 이하로 떨어져 더 늘지 않는다. (기자가 대책이 뭐냐고 묻자) 하는 데까지 해보는 수밖에 없다. 1000부로 떨어지더라도 계속 책을 낼 것이다. ‘조선일보 얘기 좀 그만 하라’는 독자들의 항의도 많다. 지겹다는 것이다. 참 죽겠다. 나도 안하면 편하다. 그런데 ‘이건 아닌데’ 싶은 현상들이 내 눈에 자꾸 비치니 어떡하겠나. 그러다 보니 같은 문제를 또 짚고 비판할 수밖에. 이걸로 내가 돈 버는 줄 알고 상업주의라고 비난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이거 돈 안 된다. 기고만 하는 것이 돈은 더 된다.
*월간 ‘인물과 사상’의 정기구독자 수는 9월10일 현재 8750명. 8월호 서점 판매부수는 1750부다.
●콤플렉스
지방 차별이나 지역주의를 얘기하면 서울에 못 올라오는 지방대 교수라서 그런다고 쑤군거린다. 그래 맞다. 그렇지만 서울대 출신이 서울대 비판하는 것 봤는가. 서울대 못 간 놈이 서울대 비판하지. 지방대 교수이기 때문에 지역주의를 피부로 느끼고 문제점을 인식할 수 있다. 피해의식·한풀이라고 말하는데, 그래 맞다. 그런데 그게 뭐 어떠냐.
나는 학력 콤플렉스는 없다. 내가 다니던 고등학교에서 성균관대 들어갔다면 잘 한 것이다. 남들은 나보고 웃긴다고 했지만 나는 성균관대 들어간 것이 자랑스러웠다. 그런데 친구들을 보니 은근히 서울대 못 간 데 대해 상처받고 있더라. 내 제자들도 평상시엔 아무렇지도 않은 것처럼 보이지만 개인적으로 진지하게 얘기해보면 서울대 콤플렉스가 상당하다. 인생은 평생 경쟁하며 살아가는 건데 어떻게 10대 때 잠깐 경쟁한 것으로 20대, 30대, 40대, 50대를 결정할 수 있나. 이건 분명히 잘못된 것 아닌가. 서울대 들어간 애들은 소수인데 그 소수로 인해 나머지 다수가 상처를 받는 세상이라면 뭔가 문제가 있는 것 아닌가.
성균관대 출신이라 그런지 취직하기가 쉽지 않았다. 미국 유학에서 돌아와 보니, 경영학과 출신이라 줄 댈 곳이 없었다. 전북대 교수가 된 것도 운이 좋아서였다.
본격적으로 운동을 하기엔 지방이 불편하다. 모든 일이 서울에서 이뤄지기 때문이다. 내가 서울에 있다면 많은 게 달라졌을 것이다. 운동이라는 것도 결국 사람 사업인데 지방에선 사람 만나는 게 쉽지 않다.
*강교수는 1980년 성균관대 경영학과를 졸업한 뒤 미국 유학길에 올랐다. 전공을 신문방송학으로 바꿔 1984년 조지아대에서 석사를, 4년 뒤엔 위스콘신대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실명비판과 독설
(기자가 독설과 모욕적 표현이 갖는 부정적 측면을 거론하자) 나라고 왜 그러고 싶겠나. 하지만 그렇게 하지 않으면 효과가 없으니까. 그런데 나를 보고 독선이니 과격하다느니 오만하다느니, 하도 그러니까 앞으로 자제하겠다. 앞으론 사람에 대한 직접적인 공격 대신 이론적으로 격파해나갈 것이다. 자신 있다. 사실 지금도 많이 자제해서 쓰는 것이다. 진짜 내가 알고 있는 대로 쓰면 난리날 것이다. 그래도 많이 순화해서 쓰는 것이다. 그렇지만 다 알고 있어도, 사생활 비판은 하지 않는다. 다만 공인으로서 올바르지 못한 행위를 발견할 경우엔 앞으로도 여지없이 비판할 것이다.
인터뷰 도중 내 글쓰기와 관련해 관성 문제를 지적해주셨는데, 가끔 내가 관성에 빠진 것 아니냐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사석에서 진지하게 그 문제에 대한 의견을 구하면 “무조건 옳다. 잘하고 있다. 계속 해라”고 말한다. 그런데 등뒤에서 꼭 독설이니 인격모독이니 하는 얘기가 들려온다. 참 미치겠다.
●이문열(소설가)
나는 이문열에게 감사한 마음을 갖고 있다. 첫째, 나는 예전에 이문열의 소설을 읽고 크게 감명받았다. 글이라는 게 사람에게 이토록 감동을 줄 수도 있구나, 하는 점을 알게 해준 데 대해 감사했다. 둘째, 그가 쓰는 신문 칼럼을 읽고 감사했다. 글쓰기 분야에 따라 글의 질이 저렇게 달라질 수도 있구나, 하는 안도의 감사였다.
●강의
(‘강의가 재미있다’는 기자의 평에 대해) 교수를 하기 전 MBC 라디오국에서 코미디 프로의 PD를 맡은 적이 있다.
*강교수는 시종 차분하게 강의를 진행했는데, 몇 차례 우스갯소리로 학생들의 폭소를 자아냈다.
●제사
모교수가 신문에 제사의 의미를 강조하고 그 제도를 더욱 발전시켜야 한다는 글을 썼더라. 제사라는 건 남자들을 위한 제도다. 그것을 준비하는 여자들의 고통을 조금이라도 안다면 어떻게 그런 시대착오적인 소리를 할 수 있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