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남북관계가 급변하면서 두 사람은 ‘대척점’에 서 있다. 김전대통령은 남북정상이 주도하는 화해무드에 비판적이다. ‘김정일 위원장은 적화야욕을 버리지 못하고 있으며 김대중 대통령은 일방적으로 북한에 끌려다니고 있다’는 것이 그의 견해다. 그래서 내년 봄으로 예정된 김위원장의 답방을 저지하기 위한 범국민 서명운동에 착수했다. 반면 노태우 전대통령은 자신이 북방정책을 처음 추진했으며, 그것이 남북관계 진전에 중요한 구실을 했다는 데 자부심을 느끼고 있는 듯하다. 노전대통령은 현 정부의 통일정책에 대해서도 기본적으로 동의하고 있다.
우여곡절 끝에 성사된 인터뷰
‘신동아’가 노태우 전대통령측에 인터뷰를 요청한 것은 수개월 전이다. 남북관계가 전환기를 맞는 시점에 6공화국의 북방정책을 새롭게 조명하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노전대통령측은 완곡하게 거절했다. ‘전직 대통령이 현 정부가 추진하는 정책을 평가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는 것이 주된 이유였다.
이 때문에 노전대통령 인터뷰는 비공식적으로 이루어졌다. 전직 대통령에 대한 통상적인 예우도 갖추지 않은 채 기습적으로 진행됐다. 일단 노전대통령측에 ‘올림픽과 체육계 문제에 대해서 묻고 싶다’는 의사를 전달하고 인터뷰를 약속했다. 인터뷰 하루 전. ‘신동아’는 연희동 비서진에 성격이 조금 바뀐 인터뷰 요청서를 전달했다. ‘인터뷰에 남북관계에 관한 질문을 곁들이고 싶다’는 내용이었다. 이에 대해 노전대통령측의 답변은 없었다.
우여곡절 끝에 1차 인터뷰가 이루어졌다. 노전대통령은 기자가 갑작스럽게 화제를 바꿀 때마다 당황해하면서도 자신의 견해를 담담하게 밝혔다. 하지만 곤란한 질문이 나오면 의식적으로 답변을 피했다. 그때마다 기자는 체육계 얘기로 분위기를 반전시켜야 했다.
2차 인터뷰는 서면으로 진행됐다. 수차례의 요청에도, 노전대통령측은 “현 정부의 정책과 관련된 부분은 답변할 수 없다”는 의견을 보내왔다. 결국 노전대통령은 남북기본합의서 조인 과정을 포함, 6개의 질문에만 답했다. 한편 노전대통령측의 한 관계자는 “서면 인터뷰 답변 내용은 현재 집필중인 회고록의 일부”라고 밝혀왔다.
노전대통령은 스포츠광이다. 육사 시절 럭비 선수로 활약했고 군대에서는 테니스와 골프를 즐겼다. 노전대통령은 스포츠 상식도 해박하다. 국내외 스포츠계의 흐름도 꿰뚫고 있다. 그래서 스포츠에 관한 질문을 던지면 흔쾌하게 받는다.
“골프보다는 테니스가 좋아”
98년 6월이었다. 기자는 서울 양재동 테니스클럽에서 노전대통령을 인터뷰한 일이 있다. 화제는 98프랑스 월드컵과 국내 체육계의 동향이었다. 한창 분위기가 무르익을 즈음 기자는 슬그머니 김대중 대통령에 대한 의견을 물었다. 그는 ”테니스장에서 뭐 그런 것을 묻냐”면서도 소견을 밝혔다. ”김대중 대통령은 ‘한국의 만델라‘가 돼야 합니다. 지역통합을 이룩해야 합니다.”
2년이 지났다. 노전대통령은 변함없이 1주일에 두 번씩 부인 김옥숙씨와 함께 양재 테니스클럽을 찾고 있었다. 운동시간은 평균 3시간. 건강한 젊은이도 지칠만한 운동량이지만 두 사람은 거뜬히 소화해낸다. 두두 사람이 60대 후반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대단한 체력이 아닐 수 없다.
8월 28일 오후 1시 30분. 기자는 양재동 테니스클럽으로 갔다. 2년 전 경호원들은 보이지 않았다. 지난 2월 경호 책임이 청와대에서 경찰로 이관됐기 때문이다. 1시40분쯤 경호원들이 무전기를 들고 바삐 움직이는가 싶더니 검은색 세단 승용차가 눈에 들어왔다. 연분홍과 연보라색 줄무늬 남방에 선글라스까지 쓴 노전대통령이 차에서 내렸다. 기자가 인사하자 웃으면서 반겼다. “뭐 하러 또 왔어?” 노전대통령은 나름대로 인터뷰를 예상하고 있는 듯했다.
테니스 클럽까지 걸어가면서 건강에 관한 질문을 던졌다. 노전대통령은 스스로 ‘건강박사’라고 말한다. 건강에 관한 책을 읽으면서 나름대로 정리해둔 철학도 있다고 한다. 그래서 기자를 만나면 “무슨 운동 할 줄 알아?” 하고 묻는 버릇이 있다. 노전대통령은 “이젠 테니스를 좀 배웠나?”라고 물었다. 2년 전에도 그렇게 물으면서 테니스를 치자고 제안했다. 하지만 인터뷰가 급한 마당에 한가롭게 테니스를 칠 수는 없는 일. 그냥 눙치며 넘어갔다. “요즘 수영을 배우고 있습니다.”
―골프와 테니스 중 어느 쪽을 더 즐기십니까.
“테니스가 좋지. 골프는 테니스 못 하는 사람들과 가끔씩 할 뿐이야.”
―골프 실력은 어느 정도입니까.
“핸디가 18 정도 됩니다.”
―‘보기플레이어’시네요.
“그렇지. 조금 하는 거지 뭐.”
“건강만큼 중요한 게 없어”
노전대통령 부부가 라커룸으로 들어갔다. 이 순간 수행비서가 기자에게 다가와 “무엇을 질문할 거냐”고 물었다. 기자가 “어제 팩스로 보낸 것처럼 체육계 얘기를 하다가 남북관계에 관한 부분을 덧붙이고 싶다”고 답했다. 그러자 수행비서는 “시간이 얼마나 필요하냐?”고 물었고 기자는 “길수록 좋다. 쉬는 틈을 이용해 인터뷰를 하겠다”고 말했다. 수행비서는 이와 같은 내용을 경호원들에게 전달했고 기자는 그들과 눈맞춤으로 동의를 구했다.
노전대통령 내외가 코트로 들어섰다. 노전대통령은 흰색 반바지에 노란색 티셔츠를 입고 있었다. 김옥숙씨가 먼저 게임을 시작했고 노전대통령은 벤치에 앉았다. 얼굴색은 2년 전보다 좋아 보였다.
―연세가 예순아홉인데 무척 건강해 보입니다. 건강관리는 어떻게 하십니까.
“건강만큼 중요한 게 없잖아. 어릴 때부터 운동을 좋아했어. 사관학교 때는 럭비선수로 뛰었어. 그때는 육사가 정말 잘했어. 테니스는 군생활을 하면서 배웠어. 1960년대 육군대학에서 시작해 거의 그치지 않고 쳤으니까 벌써 35년쯤 됐어. 그런데 팔꿈치에 엘보가 오고 야구를 하다가 손가락이 부러지는 바람에 오른손을 제대로 못써. 할 수 없이 두 손으로 라켓을 잡고 쳤지.”
―두 손으로 스트로크를 하려면 무척 힘드실 텐데요.
“그렇지. 행동반경이 좁아지잖아. 이쪽으로 쳤다가 공이 저쪽으로 오면 움직이는 것도 힘들고…. 하지만 장점도 있어. 공을 정확하게 받아서 넘길 수 있거든. 또 두 손으로 공을 치면 골프를 쉽게 배울 수 있어. 치는 폼이 골프 스윙과 같거든. 내가 골프를 비교적 빨리 배운 것도 테니스를 오래 친 덕분이지.”
―요즘엔 테니스보다 골프가 더 인기 있는 것 같습니다.
“나하고 테니스 같이 치던 친구들도 다 골프로 떨어져나갔어. 이젠 우리 같은 사람이나 테니스를 즐기고 있지.”
―모 골프잡지에 보니까 노전대통령이 청와대 경호실에 근무하던 시절 차지철 경호실장이 골프를 싫어해서 노전대통령도 골프를 멀리했다는 얘기가 있던데요.
“그때는 잠시도 쉴 여유가 없었어. 골프든 테니스든 칠 시간이 없을 정도로 바빴어. 좋아하는 테니스도 제대로 못 쳤는데, 골프를 어떻게 해. 그리고 차지철 실장이 골프를 싫어했다는 것도 사실과 틀려. 차실장도 골프를 쳤는데 뭐.”
―최근 체육계에서는 박세직 월드컵조직위원장이 중도 퇴진한 것을 아쉬워하는 목소리가 있습니다. 월드컵 준비에 차질이 생겼다는 얘기도 있구요.
“나도 아쉽게 생각해. 서울올림픽조직위원장을 지낸 노하우를 잘 살려서 월드컵에 이바지하길 기대했는데…. 나름대로 사정이야 있겠지만, 아까워. 그 사람 영어도 잘하고 유능해. 그래서 내가 많이 인계했다구. 체육부 장관도 물려줬고 올림픽조직위원장 자리도 넘겨줬잖아. 그 사람이 맡아서 일도 잘 처리했어.”
노전대통령은 특유의 느릿느릿한 말투로 88서울올림픽의 성과를 설명했다. 올림픽을 통해서 한국이 세계에 알려졌고, 그 힘으로 경제도 발전시켰다는 주장이었다. 노전대통령이 올림픽 얘기를 할 때마다 빠트리지 않는 말이 있다. 바로 ‘화합’과 ‘번영’이다. 이것은 서울올림픽의 모토다. 그는 ‘올림픽을 성공적으로 치른 대통령’이라는 점을 은근히 강조하기도 했다.
테니스 라켓을 만지며 김옥숙씨의 스트로크를 주시하고 있는 노전대통령에게 본격적인 질문을 던지기로 했다. 이 순간 김옥숙씨가 날카로운 패싱을 성공시켰다. 노전대통령의 입에서 ‘그렇지’라는 음성이 흘러나왔다.
―2년 전 ‘국민의 정부’가 출범했을 무렵 “김대중 대통령은 ‘한국의 만델라’가 돼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2년 반이 지난 지금 어떻게 평가하십니까.
“다른 얘기는 하지 말자고…. 테니스 치는 데 와서 무슨 정치 얘기야.”
―당시 김대통령에게 상당한 기대를 거는 듯한 느낌을 받았는데요.
“지금도 그 생각은 변함이 없어. 우리 나라에서 가장 중요한 게 뭐야. 화합 아닙니까. 이게 이루어지지 않으면 앞으로 나아갈 수가 없어. 그래서 김대통령이 무엇보다 먼저 화합을 이루어야 한다고 말했던 거지. 그 동안 적대시했던 사람들이 신뢰를 쌓아서 함께 나가야 통일이 되는 거 아니야. 화합은 국가간에만 하는 게 아니고 개인과 단체도 다 화합해야 돼.”
―김대중 정부는 남북 화해 시대를 열었습니다. 어떻게 평가하십니까.
“화합이라는 차원에서 좋은 일 아닙니까. 정상회담이 열리고 이산가족이 만나는 것도 크게 볼 때 우리 민족이 화합하는 하나의 ‘시범’이라고 봅니다.”
―이산가족 상봉을 지켜보면서 너무 늦었다고 아쉬워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그런 측면도 있지. 남북 이산가족을 전부 합하면 1000만쯤 될 겁니다. 생사도 모르고 반세기를 살았으니 얼마나 뼈아픈 일입니까. 이번에 100명이 만났는데, 더 늘려서 이산가족이 모두 만날 수 있도록 해줘야지요. 김대통령이 잘하고 있으니까 국민 모두가 화합한다면 머지 않아 큰 것을 성취할 수 있을 거라고 봅니다.”
―남북관계를 매우 긍정적으로 보시는 것 같습니다.
“좋은 방향으로 가고 있다고 생각해. 하지만 한 가지 걱정스러운 점도 있어. 남북관계를 머리로만 풀어서도 안 되지만, 가슴으로만 느껴서도 곤란해. 가슴과 머리가 균형을 이뤄야만 현명하게 일을 처리할 수 있어. 현재 진행되고 있는 남북교류는 너무 격해. 지성과 감성이 잘 조화돼야 하는데 감성이 너무 앞서고 있어. 그게 좀 아쉬워.”
―구체적으로 어떤 점을 지적할 수 있습니까.
“너무 급히 문제를 풀려고 하면 일이 안 돼. 자칫 구멍이 뚫릴까 걱정돼. 가슴도 중요하지만 지성도 중요해. 지금은 너무 빠르고 격해서 지나치는 것이 많은 것 같아. 시간이 지나면 그게 문제가 될 수도 있어. 지성과 감성을 조화시키고, 머리와 가슴으로 문제를 풀어야 돼. 양보할 때는 양보하되 좀더 실리를 챙겼으면 하는 바람이야.”
― 꽁꽁 얼어붙었던 남북관계가 물꼬를 튼 계기는 1988년 7·7선언이었던 것 같습니다. 요즘 상황을 지켜보면서 감회가 새로울 것 같습니다.
“이번에 6·15 선언은 아주 중요한 역사적 계기야. 91년 12월13일 발표된 남북기본합의서에 다 나와 있는 걸 지금 실천하고 있는 거야. 거기에 남북이 어떻게 하기로 다 명시돼 있어. 지금 남북정상이 합의하지 못한 내용도 거기에는 다 들어 있어. 남과 북이 기본합의서를 잘 활용하지 못하고 소홀히 해서 지금껏 늦춰진 거야. 그 당시 합의할 때 남북은 이의가 없었어. 여론도 충분히 수렴했어. 이제라도 기본합의서의 중요성을 충분히 인식하면 남북관계는 잘 풀어지게 돼 있어. 지난번 청와대에서 김대중대통령을 만났을 때 그 얘기를 했더니 김대통령도 기본합의서의 내용 그대로 해나갈 생각이라고 말했어.”
첫번째 게임이 끝났다. 노전대통령은 라켓을 몇 번 휘둘러보고 코트로 나섰다. 김옥숙씨와는 서로 편이 갈렸다. 6게임을 먼저 따는 1세트 복식경기였다. 김옥숙씨는 두 번째 게임인데도 힘이 넘쳤다. 반면 노전대통령의 스트로크는 자주 네트에 걸렸다. 0 대 4. 노전대통령팀이 몰리고 있었다. 그런데 이때부터 노전대통령의 플레이가 살아났다. 4 대 4까지 따라붙으며 접전을 펼친 것. 결국 승부는 4 대 6. 김옥숙씨 팀이 이겼다. 노전대통령은 땀을 닦으며 벤치로 돌아왔고, 김옥숙씨는 숨을 고른 뒤 세 번째 게임을 준비하고 있었다.
감격스러웠던 정상회담
―젊은 시절부터 승부욕이 대단하다고 들었습니다. 오늘도 0 대 4로 뒤지다가 동점까지 따라붙으셨습니다.
“당당하게 시합을 벌이되 지는 것보다는 이기는 것이 낫지 않습니까. 스포츠에서 패하는 것은 전쟁에서 패하는 것과 비슷해. 그런 기질을 젊었을 때 경험하다 보면 소위 불굴의 투지가 양성되는 거지.”
노전대통령은 숨을 거칠게 몰아쉬고 있었다. 기자가 “남북관계와 관련해 몇 가지 추가 질문을 드리겠다”고 하자 노전대통령은 “별로 할 얘기가 없다”고 말했다. 시큰둥한 반응이었지만, 그냥 강행하기로 했다.
―최근 남북관계가 감성에 치우치고 있다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구체적으로 어떤 부분을 지적하신 건지요.
“한쪽으로 치우칠 수가 있다는 얘기지. 지도급에 있는 사람들, 특히 언론이 국민들에게 가장 큰 영향을 주거든. 언론이 자꾸 감성적으로 보도하면 국민이 감정에 치우칠 수 있다는 거야. 그러면 일이 잘되기 힘들어. 국민들이 이성적으로 생각할 수 있도록 지도해주는 것이 중요해.”
―김대중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평양 순안비행장에서 만나는 장면을 보고 무슨 생각을 하셨습니까.
“그 동안 몇십 차례에 걸쳐 정상회담을 희망해왔지만, 실제로 이루어진 건 처음이잖아. 그 동안의 모든 노력이 이룩되는 순간이었지. 정말 감격스러운 장면이었어. 한반도에 사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그런 생각을 하지 않았을까 생각해.”
―남북기본합의서가 잘 지켜졌으면 정상회담이 훨씬 일찍 열릴 수도 있었다는 것이 남북문제 전문가들의 공통된 견해인 것 같습니다.
“사람의 욕심이라는 것이 더 빨리 열렸으면 좋았겠다는 생각을 하도록 만들지. 하지만 정상회담이라는 것이 갑작스럽게 일석일조에 이루어지는 건 아니야. 남북간에 꾸준한 노력이 만들어낸 산물이지. 내가 대통령으로 있을 때 총리회담을 여덟 번 했고, 남북기본합의서를 만들고 해서 정상회담도 금방 성사될 것 같았어. 그렇지만 여러 일들이 생겨서 못 했어. 김영삼 대통령 때 못한 아쉬움은 있어. 조금 늦었다고 보지만 지금이라도 만났다는 게 중요해. 그런 점에 보람도 느껴.”
노전대통령은 또다시 재임 시절을 떠올렸다. 88년 7·7선언과 91년 남북기본합의서의 의미를 강조했다. 노전대통령은 특히 이산가족의 상봉에 상당한 비중을 두었다. 노전대통령은 “김대중 대통령이 잘하고 있으니 앞으로 좋은 일이 많이 생길 것으로 생각한다”는 말도 했다.
―최근 남북관계에서 쟁점이 되고 있는 것이 바로 상호주의입니다. 남쪽이 비전향 장기수를 보내는데 북쪽은 납북자와 국군포로 문제에 소극적인 것이 사실입니다. 이 문제를 어떻게 보십니까.
“함께 노력해야죠. 일방적으로 하는 것은 국민이 바라는 바가 아닙니다. 남북관계에는 양보가 있을 수 있어요. 하지만 계속 일방적으로 양보만 하는 것은 있을 수 없습니다. 이젠 정상회담을 열었고 신뢰의 물꼬가 터졌으니까 북쪽에서도 뭔가 응분의 조치가 있지 않겠습니까.”
―하지만 현재 북측은 내부에 큰 변화를 보이지 않는 반면, 남측에서는 국가보안법 개폐논쟁, 주한미군 철수논쟁 등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하나 주고 하나 받는 게 원칙입니다. 하지만 이북이 아직 그 단계에 못 들어가고 있어요. 같은 수준에 올라왔을 때는 하나 주고 하나 받는 상호주의 원칙이 바람직해. 하지만 북쪽은 아직 그런 수준이 못 되는 것 같아. 북쪽이 남쪽 수준으로 올라올 때까지는 둘 주고 하나 받거나, 셋 주고 하나 받아야지 어떻게 하겠어? 국민들이 그런 것도 이해해야 합니다.”
노전대통령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김정일 위원장은 얼마 전 방북한 남측 언론사 사장단 앞에서 “노태우 대통령과 김영삼 대통령은 나라를 망친 사람”이라고 말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에 대한 견해를 밝혀주십시오.
“김대통령이 정상회담을 하기 위해 평양으로 가기 전에 전직 대통령들을 청와대로 초청했습니다. 김대통령이 그 동안의 경과를 설명하고 자문을 구하는 자리였습니다. 나는 과거에 남북관계를 다루면서 김정일이라는 인물을 나름대로 정리해두고 있었는데, 현재의 상황을 김정일이 어떻게 보고 있을 것인가에 대해 김대통령에게 얘기했습니다. ‘첫째, 김정일은 북한을 자기 체제로 완전히 구축했다.’ ‘둘째, 김정일은 어떠한 외부의 영향도 수용할 수 있는 자신감을 갖고 있다.’ ‘셋째, 김정일은 실용주의 노선을 택했다.’ 그때 김대통령 옆에는 북한문제를 다루는 사람들이 여럿 있었는데 나는 그 사람들 앞에서 ‘김정일은 자기 체제를 확고히 하고 외부의 변화를 받아들이는 실용주의적 인물’이라고 말했어. 그랬더니 그 사람들도 나하고 비슷한 말을 하더라구.”
“김정일은 실용주의적 인물”
―이번에 TV를 통해 김위원장을 직접 보신 소감은 어떻습니까.
“예전에는 김정일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이 많았잖아. 성격이 포악하다, 사생활이 문란하다…. 그것이 전혀 근거 없는 얘기는 아니지만, 실제와 다르게 알려진 부분도 있었거든. 이번에 정상회담을 지켜보고 김대통령이 나중에 설명한 것을 참고하면 결과적으로 내가 판단한 것이 맞았다는 생각이 들어.”
―김정일 위원장은 최근 ‘노태우 대통령과 김영삼 대통령은 나라를 망친 사람’이라고 평가했다는데….
(이 대목에서 노대통령은 기자의 질문을 잘못 이해한 듯 놀라는 모습이었다.)
“김대통령이 뭐라 했다고?”
―김정일 위원장이 노태우, 김영삼 두 전직 대통령을 ‘나라를 망친 사람’이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몰라. 그런 얘기는 처음 들었어.”
노전대통령의 얼굴색이 바뀌었다. 의식적으로 기자의 시선을 피해 테니스 경기에 집중했다. 옆에 앉아 있던 테니스 코치와 US오픈에 대한 얘기를 나누었다. 노전대통령은 데이븐 포트와 윌리엄스 자매의 스타일을 비교하기도 했다. 더 이상 정치적인 질문을 던지기는 어려운 분위기였다. 그래서 잠시 샛길로 돌아가기로 했다.
―이번 올림픽에서 한국이 금메달을 몇 개나 딸 것으로 보십니까.
“한 열 개쯤 따지 않을까. 태권도, 양궁이 강하고, 레슬링, 배드민턴, 유도도 따지 않겠어?”
―가장 관심있게 지켜보실 종목은 무엇입니까.
“아무래도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따면 국민들 사기가 올라가잖아. 나는 그런 종목에 관심이 많아. 옛날엔 권투가 강해서 재미있게 보았는데, 요즘엔 잘 못하니까 안 보게 돼.”
―얼마 전 중국에 다녀오셨는데, 중국측이 갑자기 장쩌민 주석과의 면담 일정을 취소했습니다. 전례가 없는 일인데….
“내가 출국하기 전에 중국 쪽에서 양해를 구한 사항이야. 애초에 내가 요청한 게 아니라 중국 쪽에서 만나자고 한 거야. 특별한 일이 있어서 약속했던 것도 아니고 과거 한·중수교 당사자의 인연으로 만나기로 했던 거야. 일정이 맞지 않으면 취소할 수도 있는 거지 뭐. 사실 나는 한중포럼 기조연설도 있었고, 여러 스케줄 중에서 장쩌민 주석과의 면담이 들어 있었을 뿐이야.”
―중국 산둥성에 있는 노씨 시조묘에도 참배하셨다면서요.
“중국에 사는 노씨들이 내가 간다는 걸 알고 일정을 잡아달라고 부탁해왔어. 예전에 내가 국가원수로서 중국을 방문했을 때 양상쿤 당시 국가주석한테 ‘우리 노씨의 뿌리가 산둥성에 있다. 현직에 있을 때는 어려울 것 같고 퇴임한 뒤에 가보고 싶다’는 얘기를 했는데 중국 사람들이 그걸 흘려 듣지 않고 묘를 다 찾고 비석까지 만들어줬어. 이번에 내가 가겠다고 하니까 그곳에서 중국 노씨들이 모여 ‘세계 노씨대회’를 열었어. 노씨가 중국 외에 남북한, 대만, 필리핀,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등에 총 3200만명이 산다는 거야. 이번에 각국 대표들이 참여했는데, 그곳에서 내가 격려사를 했어.”
―노씨 문중에서 왕위나 대통령직에 오른 사람은 노전대통령이 처음인가요.
“아냐. 황제의 반열에 오른 사람이 8명이나 된다구. 노씨는 중국 신봉씨가 시조이고 강씨의 11대 자손인 강태공에서 노씨 성이 떨어져 나왔거든. 그때 나라와 토지를 받고 노씨가 별도로 생긴 거지. 시조부터 강태공까지 7명의 황제가 나왔으니까 내가 8번째인 셈이지.”
다시 분위기가 잡혔다. 노전대통령은 중국에서 보낸 일정을 흥미진진하게 털어놓았다. 그는 한중포럼에서 연설한 것을 뿌듯하게 생각하는 모습이었다. 기자는 이 순간 전직 대통령으로서 그가 무엇을 꿈꾸고 있는지를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었다. 그래서 또다시 2년 전 인터뷰 때의 질문을 떠올렸다.
―2년 전 인터뷰에서 나중에라도 나라를 위해서 할 일이 있으면 돕고 싶다’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지금도 그런 생각을 갖고 계십니까.
“그럴 때가 오겠나? 지금은 전직 대통령들이 가만히 있는 게 도와주는 거 같아. 우리 국민성이 그래. 전직 대통령이 뭐라 얘기하면 좋아하지 않아.”
―97년 대통령선거 때부터 지난 총선까지 전직 대통령들을 ‘가마솥’에 빗대어 표현한 유머가 유행했습니다. ‘가마솥’ 얘기를 아십니까. 그에 따르면 노전대통령은 누룽지를….
“몰라, 몰라. 난 아무것도 몰라.”
(IMF 직후부터 떠돌았던 우스갯 소리다. ‘박정희 대통령이 가마솥에 밥을 짓고, 전두환 대통령이 밥을 다 먹고, 노태우 대통령이 누룽지를 긁어먹고, 김영삼 대통령은 가마솥을 잃어버리고, 김대중 대통령이 그 솥을 찾아다닌다’는 얘기다.)
노전대통령은 테니스 코트에 시선을 박아놓고 있었다. 때마침 김옥숙씨가 멋진 플레이를 연달아 성공시켰다. 백핸드 발리가 정확하게 상대 코트에 꽂히는 순간 노전대통령은 ‘좋아’라고 소리쳤다.
―골프는 6공 때부터 대중화된 것 같습니다. 재임 시절 많은 골프장을 허가해주셨지요?
“골프 대중화는 중요하다고 생각했지. 골프장에 다녀온 사람은 알아. 마음이 편안해지거든. 나는 재임 시절 교통부가 관장하고 있던 골프장 관련 업무를 체육부로 넘겨서 적극적으로 육성했어.”
―하지만 아직도 국민들 사이에는 골프에 대한 반감이 있습니다. 상류층의 운동이고, 환경을 파괴한다는 지적도 많습니다.
“그런 말들이 많았지. 전혀 일리가 없는 건 아니야. 하지만 박세리 때문에 완전히 대중 스포츠가 됐어. 일반인이 즐기기엔 아직 좀 힘든 게 사실이지. 돈도 많이 들고…. 앞으로 퍼블릭 코스를 많이 개발하면 나아지겠지.”
“북은 과도기 체제로 간다”
노전대통령은 정말 스포츠를 좋아하는 사람이다. 방금 전의 썰렁한 분위기가 가시고 금세 웃는 얼굴로 돌아왔다.
테니스 코트의 게임 스코어가 인터뷰의 종착역을 알리고 있었다. 수행비서도 ‘빨리 끝내라’는 눈치를 보내고 있었다.
―88년 7·7선언이 북한을 변화시키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지만, 남북한이 그 효과를 충분히 살리지 못했다는 평가가 지배적입니다.
“사람들이 7·7선언의 중요성을 가끔씩 잊어버리는 것 같은데, 그건 역사적으로 대단히 중요한 사건이야. 그때부터 북한과의 교류를 민족 내부의 거래로 인정한 거잖아. 남북한이 그렇게 똑바로 나가기로 했는데…. 그러다가 뜻하지 않은 일들이 터졌잖아. 돌이켜보면 그렇게 안타까울 수가 없어. 사건이 벌어지면 냉각기가 오고 그러다가 잘해보자고 만났다가 다시 깨지고 그런 일을 수없이 되풀이해왔잖아.”
―아주 근원적인 질문이 될 것 같은데, 북한이 변화하게 된 원인이 무엇이라고 보십니까.
“북한도 이젠 믿고 기댈 곳이 없는 거야. 배경이 다 없어지고 말았잖아. 동구권이 망하고 소련, 중국도 다 무너져버렸잖아. 소련은 여러 가지 문제로 벌써 붕괴됐고, 중국도 사회주의라고 하지만 이념만 그렇고 경제체제는 자본주의로 변했거든. 그러니까 북한은 이제 뒷받침이 되는 게 아무것도 없어. 북한이 당분간은 체제를 바꿀 수는 없겠지만, 과도기 체제로 갈 수밖에 없어. 이건 남북관계에서 대단히 중요한 부분이야. 지금 잘못 판단해서 방향을 잡지 못하면 일을 그르치는 거야. 그래서 양보하고 이해하는 끈질긴 노력이 필요한 거지.”
―6·15 합의문에는 91년 남북기본합의서에 들어가 있던 ‘불가침 조항’이 빠졌습니다. 이에 대해 비판적인 사람들도 있습니다.
“나도 그 문제를 김대통령에게 따졌어. 그런데 여러 가지 상황을 종합적으로 판단해보면 그 문제가 정상회담에서 논의된 것 같아. 마지막에 합의문을 만드는 과정에 빠졌을 뿐이지 정상끼리는 다 얘기했어. 정상회담을 한다면 그게 제일 중요한 거잖아. 평화보다 우선하는 문제가 어딨어? 그것을 구축하지 않고 무엇을 할 수 있겠어? 그래서 91년 기본합의서에서도 그 문제를 중요하게 다룬 거야. 이번엔 이북에서 여러 문제로 그것을 성문화하고 싶지 않은 뜻을 내비친 것 같아. 그런 냄새가 풍겨.”
노전대통령은 “이제 그만 하자”면서 비서진에게 “기자 양반 전송해드려”라고 말했다. 그러나 아직 코트에서는 게임이 진행중이다. 기자는 비서진에게 “빨리 끝내겠다”고 말한 뒤 다시 노전대통령에게 질문을 던졌다. 노전대통령은 어이없다는 웃음을 짓고 다시 인터뷰에 응했다.
―정치인들은 골프장에서 협상을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노전대통령도 골프장에서 많은 정치인을 만나셨는데….
“골프를 통해서 몸과 마음이 ‘릴랙스’되거든. 그런 데서 창의력이 나오고 머리 회전에 도움이 돼. 미국의 유명한 기업의 신입사원 모집요강을 보니까 ‘골프를 칠 수 있어야 한다’는 말이 있더군. 골프를 못 하면 취직도 못 하는 거야.”
“정치 기사는 안보려고 해”
―90년 3당합당 때도 골프가 도움이 됐습니까.
“릴랙스하는 데 도움이 됐지.”
―요즘 신문은 자주 읽으십니까.
“대충은 다 봐. 주로 보는 기사가 예전과는 틀리지만…. 이젠 국민 생활과 직결되는 부분을 열심히 읽어. 정치는 가능하면 보지 않으려고 해. 스포츠는 많이 봐. 재미있잖아.”
―정치기사를 읽지 않는 이유는 단순히 재미가 없기 때문입니까.
“글쎄, 그런 이유도 있겠지.”
코트에서 게임이 끝났다. 김옥숙씨가 땀을 흘리고 벤치로 돌아오고 있었다. 노전대통령은 라켓을 들고 일어나 어깨를 돌렸다. 그러자 수행비서가 다가와 “그만 인터뷰를 끝내시죠”라고 말했다. 기자가 “마지막으로 한마디만 더 묻겠다”고 하자 노전대통령이 다시 의자에 앉았다.
―남북화해 무드가 조성된 뒤 군의 사기를 걱정하는 목소리도 심심찮게 나오고 있습니다. 통일 분위기가 무르익는 시점에 군은 어떻게 해야 한다고 보십니까.
“군대, 문제가 있지. 군대는…. 이제 그만하자구. 내가 이런저런 얘기해봐야 국민들이 좋아하지도 않아. 그런데 뭐하려고 자꾸 나한테 물어. 이제 테니스나 쳐야겠어. 테니스장에 왔으면 체육 얘기나 물어야지. 엉뚱한 얘기를 하고 그래. 오늘은 그만하고 다른 얘기는 나중에 조용한 자리에서 하자구.”
노전대통령은 ‘군대’ 얘기를 시작하려는 순간 말문을 닫았다. 그는 기자의 취재수첩을 잠시 바라보고는 자리에서 일어나 코트로 걸어갔다.
노전대통령은 라켓으로 공을 두어 번 튀겨본 뒤 수행비서를 불렀다. “기자 양반 전송해드려.” 그리고는 기자에게 작별 인사를 건넸다. “테니스 배우도록 해.” 기자가 답할 틈도 없이 노전대통령은 게임을 시작했다.
마지막으로 사진기자가 노전대통령 부부에게 포즈를 요청했다. 그러자 김옥숙씨는 ‘옷이 땀에 젖어서 찍을 수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사진기자가 거듭 청하자 김옥숙씨는 옷을 갈아입고 나와 촬영에 응했다. 노전대통령과의 인터뷰는 그렇게 끝났다.
며칠 뒤 노전대통령측 관계자로부터 연락이 왔다. ‘신동아’가 비공식 인터뷰를 기사화한다는 얘기를 듣고 노전대통령은 ‘젊은 기자에게 유도당했다’며 화를 냈다는 것이다. 한편 노전대통령측은 2차 서면 인터뷰 내용을 보내온 뒤 “취재가 비공식적으로 이루어졌다는 점을 꼭 밝혀달라”고 요청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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