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 11월호

완월동 아름이의 노래

  • 신장현 소설가

    입력2006-08-02 14: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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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일전에 건설관련 기관의 사보에서 원고 청탁을 받아, 부산 광안리 앞바다를 가로지르는 광안대교 현장견학 팀에 동행한 적이 있다. 그 대교는 연장 7400여m에 이르며 가운데 웅장한 현수교와 강상판교를 배치한 복층 교량으로 우리 건설기술을 한껏 과시하는 역사로 과연 감탄을 자아내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나는 견학을 마친 뒤 일행과 헤어져 자갈치 시장 뒤쪽의 유명한 꼼장어 포장마차촌에 가서 술을 마시다가, 원양어선에서 잠시 내려 그곳을 배회하던 선원을 만났고, 어찌어찌하다가 완월동으로 빠져 들어갔다.
    그 래서 구상한 작품이 ‘바다로 난 다리’였다. 그때 ‘긴 밤‘을 청해 적잖은 돈을 주고 들은 이야기는, 내가 그즈음 가졌던 삶의 회의며 고민이 얼마나 사치스러운 것이며 부질없는 것인가를 깨닫게 한, 일종의 충격이었다. 그녀는 나와 헤어질 때 자신이 고이 간직했던 5부짜리 다이아몬드 반지를 전해줬다. 애잔한 사연과 영도 앞바다의 찬연한 아침 햇살이 깃들인 반지. 그녀가 굳이 내게 그것을 전한 이유란, 소설보다 더 소설적인….

    늘 내가 내세우는 현실의 소설적인 문맥이 아닌가. 더구나 나는 그녀가 나를 무슨 글쟁이라든가 신문기자쯤으로 알고 속속들이 알려준 그 세계의 아픔과 슬픔, 그리고 모순을 고발하지 않을 수 없다. 물론 두서없는 이야기의 순서를 바꾸고 말투를 가다듬긴 했어도 그녀가 말한 것 이외의 것을 꾸며넣으려고 하지는 않았다.

    이렇게 말해도 믿지 않을지 모르겠다. 나 역시 청화관에서 만난 아름이의 얘기가 진짜였는지 이제는 의심이 갈 정도고, 그녀의 존재도 아른아른하니까. 어차피 현실이 또 다른 의미의 소설이라는 이유는 그렇다. 다만 단 한번밖에 읽혀질 수 없다는 데서 현실이 소설과 다른 게 아닐까. 당신이 만약 이 얘기의 진위를 알고 싶다면 부산 완월동 그곳에 가보라고 할 수밖에 없다.

    [ 玩月 ]

    응! 오빠가 먼저 궁금하다는 게 그거였지. 어떻게 이 바닥에서 몇 년 만에 7000만원이라는 목돈을 마련하고, 머잖아 빠져나갈 꿈을 꾸고 있냐는. 항간에 나도는 얘기대로 이런 곳에 들어오면 돈은커녕 그저 몸 망치고 폐인이 되는 줄만 알았는데 그렇지 않다고? 그렇지만 생각해 봐. 이 청화관에서 최고 스타인 나 같은 경우, 한 달에 천만 원을 넘게 버는 데도 이제야 그만한 돈을 만들었다는 거. 그 동안 얼마나 고생을 했을까 상상이나 할 수 있을지. 그만큼 뜯기는 데가 많다는 얘기부터 해줘야겠군.



    오빠를 남기남과 함께 이곳까지 태워온 택시기사 있잖아? 길거리에 객지 손님이나 취객이 보인다 하면 무조건 여기 데려온다고. 그러면 와리라고 화대에서 얼마씩 떼 줘. 만약 10만 원짜리 손님이다, 그러면 2만원은 기사 몫이야. 그 집 와리 많이 준다, 하고 소문나면 기사들이 연신 손님을 물어다주니 누이 좋고 매부 좋은 것 같지만…. 사실은 아가씨들 피 빨아먹는 일이 아니고 뭐야. 와리를 많이 떼 주면 떼 줄수록 아가씨들에게 돌아오는 돈은 적으니까.

    그래서 그 돈 받아 일당 치는 정도가 아니라 아예 그걸 전업으로 하다시피 하는 기사도 많아. 물론 손님이 이곳 단골이고 어디 가자고 목적지를 정하면 와리를 뜯기 어렵지. 기사들은 그런 손님을 재수 없어해. 그러니까 오빠를 이곳에 데려온 남기남도 그런 축이지. 자, 그럼 8만원이 남았다고 가정해 봐. 그중 1할은 또 무조건 업소 앞에서 손님을 물어주는 히파리 몫이야.

    히파리라고 처음 듣는다고? 나까이라고도 하는 그 여자들을 우린 보통 이모라고 부르지만 진짜는 그런 인간 거머리도 없어. 단순히 손님만 잡아끄는 게 아니라 아가씨들 관리며 경비도 챙기는 이 바닥의 실제 총책이나 마찬가지지. 그 히파리 매상이 보통 월 600만 원에서 700만 원은 되는 거야. 죽자사자 하는 이유란, 제가 움직이면 움직이는 만큼 바로 돈이 되기 때문이지.

    이제, 그 히파리에게 또 10퍼센트를 떼니 7만2000원 남았지. 그걸 포주와 아가씨가 반탕이라는 룰에 따라, 반으로 나누는 거야. 그래서 숏타임 손님 받으면 3만 6000원이 아가씨 몫으로 떨어지지. 그거면 또 괜찮게. 그 돈 챙기기 무섭게 방세니 가구 대여비니 식대니 오만가지로 떼어지면, 맞아! 이 바닥에서 돈을 번다는 건 기적이지.

    만약 목표가 분명하지 않았다면 이런 거머리들한테 피를 빨려 나도 다른 아가씨들처럼 지금 내장을 까뒤집은 것 같은 허연 살만 남은 채 축 늘어져 있을지 몰라. 여기 같은 날 들어와 단짝이 됐던 언니와 난 적어도 두 가지 목표는 꼭 이루자고 약속했어. 어떻게 하든 돈을 많이 벌자. 그리고 이 일을 오래 하지 말고 5년 내에 떠난다. 언니와 만난 지 얼마 안 돼 포주 몰래 광안리 해수욕장에서 가서 다짐했던 거지.

    그 언니로 말하면, 제주도 출신으로 고등학교 때 가출을 해 목포로 가서 여수, 마산의 룸살롱이며 뽀뿌라마치라 불리는 방석집을 전전하다 빚만 지고 이곳에 팔려온 경우였어. 그때 빚이 3000만원을 넘었다던가. 거기 비하면 나는 다행인 편인 게 중학교 때 가출했지만 주로 다방이며 가요주점, 호텔 나이트를 뛰었고, 술집에서 일한 경우 마담을 잘 만나 빚이 없었다는 거. 체질적으로 마시지 못하는 술 때문에 정말정말 고통을 받다가 결국 몸만 팔면 되는 이곳에 자발적으로 기어들어온 처지라는 거지.

    아무튼 한 살 차이의 언니와 난 금방 서로에게 끌려 남몰래 서로 믿고 의지하며, 무엇보다 하루하루 꿈을 이뤄나가는 일을 응원하며 어떤 고통도 참아냈던 거고…. 물론 언니가 아니더라도 나는 기왕 몸을 팔기로 한 바에야 이 바닥에서 무시 못하게 해야겠다, 최고가 돼야겠다고 스스로 작정했던 터였어. 얼마나 악다구니였는지 들어봐.

    무엇보다 난 천성이 부지런하고 일 욕심이 많은 편이라고 할 수 있어. 감기 몸살로 온몸의 열이 40도를 오르내려도 드레스를 입은 채 미스방에 앉아 있고, 날 찾는다 싶으면 어떤 경우고 놓치기 싫은 거야. 밑이 찢어지고 금방 까부라질 지경인데 손님을 받으니. 그러다 이모의 강권도 있고 해서 할 수 없이 병원에 가면 그래. 무슨 강간을 당했냐. 경찰에 신고해주랴. 당장 얼굴이 화끈거리고 겁이나 도망치다시피 빠져나오곤 하지. 그리곤 치료를 받고 온 그날 밤에도 일을 하니 히파리가 ‘나보다 더 지독한 년’이라고, 손가락질할 정도였어.

    우리는 그런 게 있어. 정말 몸이 아프고 힘들어 하루를 쉬고 싶다, 그러면 화대를 걸어야 해. 자신이 쉬면 업소 매상이며 다른 아가씨들 분위기에 지장을 주니까. 그래서 히파리한테 ‘나, 그냥 30만원 걸어줘.’하지. 그러면 히파리가 그날 최소 벌이라 할 돈을 가라로 메워 줘. 위층 포주가 볼 땐 문제가 없는 것이 되지만 나중에 아가씨 계산에서 까는 거야. 난 정말 그렇게는 못 쉬겠더라고.

    물론 반탕이니까 30만원 걸면 거기서 10퍼센트 뗐다고 가정한 뒤 나눠 13만5000원이 나가는 셈이지만, 벌어도 시원찮을 판에 왜 그렇게 손해를 보냐 이거지. 그런데 한 달에도 두세 차례나 돈을 거는 애들 보면 너무 한심하고 안타까워. 대개 돈벌기를 포기하고 퍼질러 앉는 경우가 그래. 난 여기 온 이후 이날 이때까지 지각비를 내본 적이 없어.

    위층 각자의 방에서 1층 미스방에 출근하는 시간이 저녁 6시거든. 거기서 10분이 늦을 때마다 택시 미터기처럼 5000원씩 올라가. 6시반 이후는 10분에 1만원 단위로. 굉장히 센 편이지. 몸이 피곤하다며 아예 2, 3만원쯤 우습게 떼고 늑장을 부리는 경우도 더러 있는데 난 몸이 으스러지는 한이 있어도 그런 일이 용납 안돼. 물론 퇴근 시간인 다음날 아침 8시까지 화장을 지우거나 조퇴라든가 중간에 근무지 이탈이란 상상할 수 없는 일이고.

    내가 얼마나 열심히 일하는지 히파리의 매상 장부를 보면 대번에 알 거야.

    만약 뒷골이라고 불리는 단골손님이 찾아왔다, 그러면 동그라미 한 개. 둘이면 동그라미 두 개. 만약 손님이 목욕비 하라며 팁으로 5만원을 줬다, 그러면 그걸 입금시키는 데 별표 하나. 합이 10만원이면 별표 두 개. 이런 식으로 단골이 많이 찾아오고 팁도 많이 입금하고 하면 매달 계산일에 평가를 해서 포상을 내려.

    사실 팁이야 자기가 그냥 가져도 되는 거지만 공개적으로 충성 경쟁을 유발시키니 주인 눈에 들려고 다들 게워내게 마련이야. 나 같은 경우는 거의 매달 최고를 쳐 번번이 포상감이지만 사양하고, 대신 동그라미하고 별표로 금반지를 받을 때가 많아. 업계에서 포주라 불리는 주인언닌 반지를 줄 때마다 “아유, 우리 아름이는 이제 반지 낄 데가 더 없네” 하며 고양이 목소리지. 그럴 땐 징그럽고 뭐고, 그 돈이 결국 내 몸을 팔아 만든 거란 사실도 잊은 채, 그간의 보상을 인정받은 듯해서 흐뭇해지는 거야.

    주인언니가 날 이쁘게 봐서 업주들이 하는 계에 끼워놓은 건 아니란 건 나도 알아. 어떻게 하든 매상 많이 올리는 날 잡아두자, 애당초 그런 뜻이 있었겠지. 아무튼 2년 반짜리 그 계가 이제 끝나가는 거야. 광안리 해수욕장에서 언니와 함께가 아니라 결국은 내 스스로와 했던 맹세대로 이제, 떠날 때가 다가오는 거.

    아니, 한시도 잊지 않은 다짐이었어. 빨리 끝내야 한다는 거. 너무 많이 알아버리면 나도 이 바닥에 ‘웃기’가 될지 몰라. 나야말로 누구보다 지독한 히파리며 이무기가 될 소질도 다분하다는 걸 스스로 은근히 겁낼 정도니까. 때론 히파리들이 얼마나 대단하고 선망적으로 보이는지! 보통 아가씨 경력이 십 몇 년에서 이십 년은 넘어야 한다지만, 그거 아무나 하는 게 아니거든. 손님들 낚아채는 솜씨나 완력은 물론이고 계산도 빨라야지, 독심술도 이만저만 아니지, 일본어도 잘하고, 거의 사람 갖고 노는 귀신이나 다름없어.

    완월동의 간판스타

    우리집에 있는 히파리는 둘인데 하나는 낮파리, 하나는 밤파리야. 낮파리는 미스방 경력 10년 만에 왕언니의 총애를 받고 최근 승진했지. 히파리가 아가씨들 처지보다 뭐가 더 낫냐고? 일단 몸을 안 팔고도 엄청난 수입을 올릴 수 있으니까.

    그리고 더 중요한 점은, 이 집에서 나를 필요로 할 때 그만둬야 한다는 거. 그야말로 퇴물이 돼서 그만둔다면, 얼마나 비참하겠어. 아무리 몸 파는 데라도 주인이 나가라고 해서 쫓겨나나보다, 그런 눈총을 받으며 떠날 순 없는 거야. 뭐냐면 내가 이 집에서 한창 필요로 할 때, 내가 튕기며 그만둬야, ‘어유, 저 년 지독하게 돈을 벌더니 그만두는구나’할 게 아니냐 이거지. 그런 소리를 듣고 싶어. 왜 그런지 이해할까, 오빠?

    내가 가끔 이모라 부르는 히파리를 대고 왕언니한테 튕기는 이유는 그래. 이모가 내 위치는 아랑곳 않고 아무나 디밀었을 때지. “언니, 나 할 말 있어.” 그러면 주인언니는 은근히 두려워하는 눈치가 뻔해. 왜? 그만둔다고 할까봐서지. 내 경우는 이곳에 빚은커녕 오히려 돈을 쌓아두고 있으니 히파리처럼 언제든 제 발로 나갈 수 있어. 요즘은 더구나 경찰이 북새통을 치는 통에 함부로 아가씨들을 잡아놓지도 못하고.

    아무튼 난 그런 언니한테 일종의 으름장을 놓는 거지. “나는 네가 할 말이 있다면 최고 무섭더라.” 언니는 그런 식으로 일단 꼬리를 내린다. “나, 쉬고 싶어.” 그러면 두말 않고 “그래 요즘 무리했지?”하는 거야. 그만둔다는 얘긴 줄 알았더니 다행이라는 듯이. 그러면 한번 더 오금을 박아. “아니면, 내가 정말 저 놈 때문에 그만두든지 해야지.” 노골적으로 이모 욕을 못하니까 손님 핑계를 대는 거야. 그러면 언니가 이모를 불러 한마디 하겠지. 어떻게 저런 망나니를 아름이한테 붙이냐고. 천하의 히파리도 그땐 아름이 앞에서 비루먹은 개처럼 되고 말지.

    이모와 내가 벌이는 신경전이 요즘 들어 더 잦아지고 있다는 게 무얼 뜻하는지 나는 알아. 떠나야 할 때가 더 빨리 다가오고 있다는 것. 그렇게 언니에게 눈치를 받고도 다시 제 일에 열중하는 이모의 모습이 어찌 내 앞날이 아니라고 장담하겠어. 어쩌면 저 꼴을 보기 싫어 내 자신도 자꾸 이모에게 어깃장을 놓고 있는지도 몰라. 이모 수입이 보통 한 달에 600만~700만원씩 되지만 그걸로는 성이 안 차는 거야. 돈을 어디 쓰는 것도 아닐 텐데 인이 배겨서 가만 있질 못하는데….

    왕언니는 그래. “아름아, 넌 앞으로도 10년은 더 써먹을 수 있어.” 스물아홉이 적지 않은 나이지만 나도 알아. 아담한 체구에 동그스름한 이마며 오목조목한 이목구비에 웬만큼 정감이 우러나는 얼굴, 바로 나 같은 스타일이 이 바닥에서는 보증수표라는 걸. 더구나 언니는 애당초 날 여기 잡아올 때부터 아이녹꼬 발이라고 유난히도 좋아했지. 쪽발이들이 좋아할 타입이란 건데 그 덕분에 일찍부터 언니한테 일본말도 배우고 가끔은 그쪽 손님도 받는 거야.

    그렇게 제 비위에도 맞는데다 한 달에 1000만원이 넘는 수입을 올리지, 이런저런 알짜배기 꾀게 하지, 하니 왜 안 아깝겠어. 근데 요 며칠 날 다른 애들하고 똑같이 깔아뭉개는 일이 벌어졌으니 내가 가만있을 턱 있나. 아가씨 하나가 사고를 쳤거든. 외출을 시켰는데 빚도 많은 것이 이틀이 지나도록 돌아오지 않아 CPX가 걸린 거야. 모두 다 외출을 금지한다고, 마침 손님을 만나러 가려던 내 발목까지 잡질 않겠어. 얼마나 꼬라지가 나는지.

    ‘그래, 어디 두고 보자.’ 그래선 입술만 삐죽이며 아무 말도 않고 지냈지. 금방이라도 보따릴 쌀 것처럼 냉랭하게 굴었어. 그랬더니 별 수 있어? 오늘 아침에 닭죽이라고, 찹쌀에 녹두랑 인삼을 넣고 푹 고아 쑨 영양죽을 내놓으며 날 부르더라고. “아름아, 아름아아” 진짜 고양이 목소리야 그럴 땐. “아, 왜 불러?” “이, 죽 좀 먹어봐. 네 형부 건데 아름이도 몸보신해야지.” “내 비위엔 안 맞아.” 난 여전히 뒤틀린 목소리로 대꾸했지. “그래도 먹어봐. 먹다보면 괜찮을 테니.”

    어떻게 하든 내 기분을 풀어주려는 수작이었지. 그래, 못이기는 척 겨우 먹었지만 금방 올리고 말았어. 꿱꿱거리며 1층에 내려와 화장실에서 게워대고 있으니, 글쎄 거기까지 따라와서 등을 두드려주더라고. ‘이런 못된 년이. 아주 소가지가 개 발싸개 같아서는….’ 하고 속으론 얼마나 끓었을까.

    어때, 오빠! 이만하면 이 집에서 아름이가 얼마나 값이 나가는지, 지금 얼마나 끗발 날리고 있는지 알겠어? 그러니 처음 이곳에 왔다는 오빠가 지갑을 열다가 잘못해 수표 두 장을 덜렁 내주게 됐다는, 딴에는 많이 준 거 아니냐는 아까운 생각일랑 안 가져도 돼. 나중에 얘기하겠지만 그것도 오빠를 끌고 온 남기남이 밑에서 추가를 지불했으니까 여기 특실까지 들어온 줄 알라고.

    사실, 왕언니가 날 이뻐했어도 처음부터 그런 건 아니지. 서울 촌닭이 벌면 얼마나 벌겠냐. 너도 남들 하는 만큼이나 해서 잘 빠져나가면 다행이겠지. 뭐 그런 눈치가 빤했어. 그래서 내 나름대로 다짐한 건 뭐 딴 게 아니었어. 이 가게에서 없어서는 안 될 사람이 되겠다. 절대 실수를 하지 않겠고, 누구도 내게 찍자 붙지 못하게 만들겠다. 시쳇말로 내 자신에 대한 관리고, 내 자신과의 싸움이라고 말할 수 있겠지.

    그러고 보니 왕언니가 날 찍었던 때가 엊그제 같네. 아까, 내가 어떻게 여기까지 왔냐고 물었지? 내가 제일 싫어하는 얘기가 그거란 건 들어보면 알아.

    여기 들어오면서 봐서 알겠지만 우리집엔 별반 인물이 없어. 그보다 유별난 선수가 없기 때문에 그나마 내가 행세하게 됐는지도 모르지. 그런 내막은 사실 언니하고 형부하고 맞지 않기 때문이야. 뭐냐면 언니가 좋아하는 스타일하고 형부가 찍는 스타일은 영 딴판이란 거지. 형부는 아가씨를 데려올 때 어디 서산 갯마을에서 보리 꺾다 온 퉁퉁하고 수더분하게 생긴 타입을 고집해. 완전 강부자 팬이지.

    그런데 왕언니는 무조건 얄시럽고 발랑발랑 까져보이는 아가씨야. 히파리 생활을 20년 넘게 한 탓에 어느 게 먹힐지 너무 잘 아는 거야. 아, 이 아가씨 데려다 놓으면 얼마 벌겠다, 하는 통밥이 훤하지. 그러니까 미스방에도 두 줄이 만들어져 있어. 얄시러운 염색 머리들은 왼쪽, 서산 갯마을 애들은 오른쪽. 나도 원래는 언니 맞은편에 있었지만 어느덧 줄 가운데 앉게 됐고. 그러니 아가씨들을 두고 만날 위층에서는 싸움이라고. 만약 얄시러운 걸 데려왔는데 장사를 못한다면, 형부가 공격이고, 서산 갯마을이 죽쑤면 언니가 왈왈대는 거야. 여기 형부는 원래 칠성파 중간보스였다는데 언니한테 꼼짝 못할 때가 많아.

    처음 내가 여기 와서 언니를 만난 건 이 아래 산호다방이란 곳에서였어. 그때 난 아래에 흰색 쫄바지에 위에는 어울리지 않게 청색 재킷을 입었지. 언니는 날 보고 뒤로 돌아봐, 앉아봐, 일어나 걸어봐, 그리고 윗도리 좀 벗어봐, 하며 몸매며 가슴이며 요모조모 꼼꼼히 챙겨보더라고. 일종의 면접이라 할 수 있는데 그때야 난 이런 곳도 아무나 들어오는 데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았지. 그날 소개소를 통한 네 명 중 면접에 합격해 왕언니를 따라오게 된 또 하나가 먼저 얘기한 바로 그, 세라라는 언니였어.

    본명이 미자였지만 여기서는 다 만화 주인공이라든가 일본식 예명을 갖고 있지. 서산 갯마을은 아니더라도 언니는 나와는 좀 다른 토실토실한 스타일에다 무엇보다 얼굴이 하야말간 게 인상적이었지.

    그전에 여기 오기 전에 사연도 듣고 싶다고? 그건 안 듣는 게 나아. 찢어지게 가난한 달동네 어디서 태어나 고만고만한 때 친구와 함께 가출을 했고 술집이나 레스토랑, 보도방을 거쳐 결국 몸을 팔게 됐다는 얘기까지 돈 때문이 아닌 게 없으니까.

    굳이 내 얘길 듣고 싶다니 말이지만 역시 돈이 웬수야. 누가 이런 델 좋아서, 원해서 들어왔겠어. 그래도 왜 하필이면 완월동이냐고? 물론 나는 술집에서 새끼마담 얼굴마담을 거쳐 직접 애들 고용하며 장사도 해봤어. 문제는 체질적으로 술을 못 마시니 이빨 까는데도 한계가 있더라고. 오죽하면 ‘술 못 마시는 병신’으로 소문이 났을까. 거기다 일수를 땡겨 아가씨를 구하면 도망가고 도망가고 해서 돈이 안 모였지. 결국 술 안 마시고 돈 벌 수 있는 데가 여기란 걸 알고 들어오게 됐어.

    왕언닌 가끔 푸념조로 말해. “우리 아름이 정말 많이 컸다. 아무 것도 몰라서 남자 거기를 어떻게 만지냐고, 그게 엊그제 같은데… 지금은 쫄랑이가 돼갖곤….” 지금은 프로가 돼서 밤새 손님방을 들락날락한다고 붙인 별명이, 쫄랑이라는 거야.

    사실 나는 그렇게 쫄랑거리는 편이 아냐. 눈치챘겠지만 난 여기서 말하는 찍고빨 타입이 아니라 뒷골 때리는 쪽이야. 찍고빨이 뭐냐고? 어느 업소나 1층에 보면 미스방이라고 불리는 아가씨들 전시방이 있잖아. 거기 어느 곳에 앉아 있든 손님들한테 잘 찍혀 팔려가는 경우를 찍고빨이라고 그래. 무대에 서면 조명빨이 잘 받니 어쩌니 하는 얘기 들어봤지? 그런 식으로 유난히 인기가 좋은 애가 있어. 얼굴 하나는 끝내줘서 혹 하고 대드는 손님들이 많지만 속 빈 강정이 바로 그런 거야.

    방으로 올라가자마자 유난히 틱틱거리며 빨리 끝내라지. 서비스도 엉망이고 진짜 가관이라고. 당연히 손님 입장에서는 후회 막급해 다음엔 다른 아가씨를 찾게 마련이지. 그런 것도 모르고 연신 손님을 받아대며 콧대 높은 줄 모르는 게 걔들이야. 왜 그런 경우 있잖아. 대여섯 명이 우르르 사냥을 나오면 대개 어느 한 여자를 찍은 주동자가 분위기를 잡아서 떼거리를 하냐 아니냐 하는 때. 바로 그런 찍고빨 덕분에 호박이나 망치 같은 아가씨들도 모처럼 손님을 받을 때도 많으니 얼마나 고마워. 당연히 얼굴 하나로 먹고사는 걔들은 도도해질 수밖에.

    거기 비하면 뒷골이 많은 나 같은 경우야말로 실속파야. 뒷골이란 ‘어제도 오시더니 오늘도 왔군요? 하는 식으로 계속 이어져오는 단골손님을 뜻해. 한 번에 10만원 아래짝의 숏타임 거리가 아니라 대개 20만원이 넘는 긴밤 손님들. 뒷골이 많은 아가씨들은 자기보다 상대를 먼저 생각하는 마음씨도 마음씨지만 뭣보다 말을 참 이쁘게 한다. ‘어머 그랬어?’ ‘나라도 너처럼 그랬을 거야’ ‘너, 어제 아팠다며? 난 그것도 모르고….’ 이러니 은근히 끌리지. 손님을 무조건 남편이나 애인 대하듯 하니 어떻겠어.

    밖에서 얼마나 고생했겠냐며 말이라도 따뜻하게 해주지, 어디 상처 난 데 있으면 후시딘 발라주지, 양말이며 팬티까지 빨아서 드라이기로 말려주지, 아무 근심걱정 없이 곤히 자게 만들어 주기까지. 나는 주로 손님들 얘기를 잘 들어주는 편이야. 기분이 좋아서, 또는 기분이 나빠서, 뭐가 어때서 하며 속을 풀려는 게 남자란 걸 난 잘 알지. 섹스를 원해서 오는 남자가 70프로라면 30프로는 정말 대화란 걸 원하는 거야.

    내가 그렇게 좋아하던 세라 언니도 뒷골 때리는 스타일이었어. 이 집에 와서 제법 물이 오르면서는 서로 이 방에 눈독을 들이던 경쟁자이기도 했으니까. 감 잡았겠지만 이 방은 청화관의 30개가 넘는 방중에서 가장 크고, 창문에서 영도 앞바다가 그대로 내다보이는 특실 중 특실이야. 그전에 주인언니 부부가 쓰던 방이니 여부가 있겠어.

    이 집에서 가장 오랜 고참으로서 매상 역시 최고를 올려야 계속 쓸 수 있는 방인데, 빚이 많은 아가씨는 엄두도 못내. 왜냐면 침대며 가구들 사용료가 만만치 않거든. 언니가 어느 때는 나보다 더 많은 수입을 올리고도 발목에 끌려온 빚 때문에, 나중에는 노름으로 이 방 주인이 못 됐지만 난 가끔 언니에게 특별한 뒷골이 오면 이 방을 내주곤 했어. 언니는 그런 다음 날이면 감자며 고구마, 옥수수를 쪄주거나 부침을 해주곤 했고….

    과연 내가 성공을 한 것일까. 우습겠지만, 난 이 방을 차지하고 가장 최고로 있을 때 떠나기로 했으니까. 그런 날이 지금일 텐데…. 과연 목표한 것을 이루고 이제 떠날 날만 잡으면 되는 걸까. 그런 물음에 누군가 대답해줬으면…. 아, 왜 이렇게 가슴이 답답해올까.

    그래, 언니만 아니었으면, 그 세라 언니만 아니었으면…. 이렇게 답답하지 않을 거고, 자신 있게 스스로를 위로하고 떠날 수 있을 텐데. 오빠, 내가 왜 오빠에게 이런저런 얘기를 하고 싶어하는지 알겠어? 이곳에 와서 어떻게 하든 목표를 이루고 같이 나가자던, 그 날이 오면 같이 광안리 해수욕장에 가서 부둥켜안고 실컷 울어보자던 세라 언니가 지금 내 곁에 없기 때문이야.

    남기남과의 인연

    아, 맥주는 이제 그만 마신다고? 오빠. 참, 내일 그 쪽으로 무슨 현장 견학을 해야한다고 하지 않았어? 계속 얘기 들을 수 있어? 아니, 난 괜찮지만. 아, 인터폰? 1층에서 히파리가 밥 먹으라는 신호야. 손님이 많다는 사인을 그렇게 보내. 오늘은 신경 좀 끄겠지만…. 혹시 오빠, 내일 일이 늦게 끝나면 다시 와 줄 수 없어? 아니, 아니…. 뭐, 특별한 일은 아니고…. 광안리 바다가 어떤지 얘기 좀 해줄 수 있을는지.

    언니를 만나 사랑의 맹세 같은 맹세를 하고 보냈던 바다가 지금은 어떤 빛인지. 그때 언니와 돌아와서 발칵 뒤집힌 집에서 얼마나 치도곤을 당했는지. 여태 바닷가에 혼자 나가본 적이 없거든. 그저 지나가다 스쳐보는 바다는 있어도 내 가슴을 훌렁 뒤집어 씻겨내보낼 파도를 본 지 너무 오랜 거야. 아니, 다시는 그 바다에 가면 안 된다고 입술을 꼭 깨물을 때도 있어. 나를 배신한 건 언니며 세상이라고 고개를 내젓는 거지.

    언니는 내 분신과 같은 여자였어. 내가 본능적으로 일 욕심이 많은 편이었다면 언니는 아주 지독한 계산으로 목표를 달성하려는 노력파였지. 월말 계산이 끝나고 다시 한 달이 돌아오면 목표를 세우는데 보통 천 몇백만원씩 자기 능력에 부친다 싶을 정도를 계획하는 거야. 그러다 보니 중순까지 안달복달하고 예민한 상태로 거의 제정신이 아닌 여자로 바뀌지.

    그런 언니가 무서우면서도 나 자신에게 자극과 긴장이 됐어. 월말이 돼가며 목표를 채웠다 싶으면 다시 다정다감한 여자로 바뀌는 언니를 보며…. 둘은 멘스와 같은 이 고비 고비를 잘 넘기고 어느날엔가 훌쩍 세상 밖으로 나가리라 꿈꾸었던 거지. 수평선 너머로 날갯짓을 하던 새 같던 언니 그대로!

    언젠가 언니가 깨알 같은 글씨로 적은 장부를 엿본 적이 있었어. 그 달의 목표액은 1500이더라고. 나는 너무 놀랐어. 웬만큼 한대야 700~800이고 내가 용을 써서 최고로 올렸던 게 1300이던 때. 뒷골은 몇 명을 받고 숏타임 몇 건, 팁은 얼마 해서 한껏 부풀려 놓은 액수겠지만 그게 도대체 가능한 일일까. 그깟 200~300 차이가 뭐 그리 크냐고 생각할지 몰라도 한계를 넘어선 상황에서 또 열 명, 스무 명을 더 받는다는 건….

    몇 번 까무러치는 사태를 집어넣더라도 상상키 어려운 계산이지. 좁은 소견에 나는 언니가 약속을 깨고 이 바닥에서 먼저 나가려나보다 했어. 그러나 그 돈의 쓰임이란 게 또 얼마나 기막히던지. 1500만 원에서 150은 히파리 몫이고 나머지를 포주와 나누면 675만 원이고, 해서 매달 빚 갚는 데 150만 원, 곗돈 140만 원, 집에 90만 원…… 하니 약값이니 화장품대까지 친 용돈은 한 달 30만 원도 안 잡혀 있더라고.

    집에 부치는 돈에는 그 어머니가 당뇨병으로 매일 인슐린 주사를 맞아야 한다고 병원비도 포함돼 있는 모양이었어. 그러니까 월말에 목표액을 채우지 못하면 어딘가에 주름이 잡히게 마련인 건 뻔한 이치겠지. 언니가 내게 간식이라고 사주던 감자며 옥수수까지 이 계산 어딘가에 들어 있으리라 생각하니 코끝이 찡해지더라고.

    웬수는 역시 빚이었어. 한 달에 150만 원씩 빚을 갚아야 한다는 중압감은 아무 것도 아냐. 볼 거 없이 빚이 빚을 새끼쳐나가는 게 뻔할 테니. 빚! 많은 사람들이 잘 모르고 알아도 정말 이해 못하는 게 그 빚이야. 심지어 나는 그렇게 생각해. 이 세상에 여자는 두 종류가 있다. 창녀와 창녀가 아닌 여자. 그 속내를 보면 빚이 있는 여자와 없는 여자. 한 가지 더 하자면 빚을 져야 하는 여자, 그러니까 창녀적인 여자…. 이렇게 세 가지쯤 될까?

    빚이 어떻게 생기냐고? 집 나와서 돈 있어야 하니 고리의 일수 빚을 얻지. 소개소 가면 소개비라고 200~300 걸지. 이리저리 넘겨지다 보면 유통비 같은 게 또 붙지. 업소에선 오만떼만 명목의 빚이 얹혀지지. 예를 들면 이전의 레스토랑에 500만원의 빚이 있다, 그러면 다른 업소에서 이전 빚을 탕감해주며 곧 800~900만원으로 만들어놓는 거야. 게을러서 어영부영하다 보면 눈덩이처럼 늘어나게 마련이고.

    그래서 다른 곳에 가면 1000만원을 곧 갚을 줄 아나 어디. 놀던 김에 더 놀고 싶지, 아가씨들 텃세 부리는 거 참기 힘들지, 손님하고 싸우지, 하다보니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서 아가씨에 따라서는 빚이 3000~4000 되는 경우도 있어. 빚을 잔뜩 걸머지고 들어온 애들은 다른 곳에서 어떻게 생활했는지 금방 표가 나. 일단 짐이 크고 옷이 많고 홀복도 몇십만원짜리에 화장품도 고급만 쓰니까.

    그런 애들의 종착지가 흑산도 같은 섬이야. 들어갈 수는 있지만 나올 수는 없는 유배지지. 옴빡, 선술집, 니나노집, 완전 떡집으로 해서…. 빚을 갚기는커녕 늙어 병들어 죽을 때까지 몸을 팔아야 하는데 워낙 감시도 심해 꼼짝 못한대. 죽으면 개나 고양이 내다버리듯 한다나. 도저히 빚을 감당 못할 애가 돈도 못 벌고 주인 말도 안 듣고 하면 슬며시 그리로 팔아 넘겨지니 여기선 그쪽을 사고처리반이라고도 부르지.

    그런 데서는 꽁치 한 마리에 새우 한 봉지며, 혹은 멸치 한 포대에 몸을 준다는 게 과장이 아냐. 잘해야 생선 한 박스를 던져주면 그것 갖고 팔아 화장품도 사 쓰고. 그러니 여기 아가씨들은 ‘너 흑산도 가고 싶어’하면 제일 질겁을 해. 그런 유배지 아가씨에게 그래도 마지막 희망이 있다면 어쩌다 눈 먼 천사 같은 뱃사람을 만나 시집가는 거래. 일단 빚을 갚아주고 자유의 몸이 되니까. 물론 여기서도 그런 일은 신데렐라 꿈 같은 얘기고 특히 빚이 많은 아가씨들 중엔 눈에 쌍심지를 켜고 그런 봉을 찾으려는 경우도 있어.

    언니에게 그런 천 분의 일, 만 분의 일 기회가 오리라고 누가 예측했을까. 그러나 막상 언니에게 그런 남자가 나타났을 때 난 언니를 축하하거나 시샘하기보다 왠지 불안에 휩싸여 슬금슬금 눈치를 봐야 했어. 내 예감이 틀림없다면, 언니는 빚으로 꺼지기 전 활활 타오르던 촛불이었으니까.

    그런데 지랄 바람이 분 게 아니겠어. 오빠가 자갈치시장 꼼장어구이 집에서 만나 같이 술을 마시고 이끌려왔다는 그 남기남이 바로 그 주인공이야. 놀랐지? 얘기 들어서 알겠지만 그 남잔 원양어선을 타는 선원이야. 그 전엔 오랫동안 아프리카 남단 현지에서 고용된 기지선을 탔고 이태 전부터 베링해로 나가는 명태잡이선을 타기 시작했다나. 6~7개월에 한번씩 돌아와 한 달 정도 있다가 다시 바다로 돌아가곤 했는데 이번에는 꽤 오래 있더라고.

    러시아에서 어획 쿼터를 제대로 받지 못해 명태선단이 전부 감천항이며 영도항에 발이 묶여 있다는 거야. 비가 오면 우산장사가 웃듯이 여기야 그 덕 좀 보지만 그 사람들 몰골이 말이 아냐. 매일 술 퍼대고 밤이면 밤마다 그 짓일 테니 딱하지. 더구나 그 사람은 우리 형부였던 남자 아냐. 인생 다 산 것처럼, 이젠 다시 바다에 나가지 못할 것처럼 좌절해서 아무나 붙들고 주정에다 툭탁하면 객지 사람들을 이리 끌고 와 무슨 자선사업이라고 돈까지 보태주며 여잘 붙여주니 내가 어떻게 그 꼴을 보냐고. 벌써 오래 전에 떠난 언니를 찾겠다는 게 결국 나한테 감정을 부리려는 눈치란 걸 모를 바 아니지만, 그게 가당키나 한 일이야?

    언니가 형부를 처음 만났을 때가 바로 엊그제 같은데 벌써 3년이 지났어. 그때 언닌 하루하루 주어진 목표를 채우려 힘겨워하던 때였지. 우리가 너무 큰 욕심을 부린 게 아닌가, 아니면 내가 언니에게 괜히 부담이 되는 게 아닌가 나 자신도 슬그머니 뒷걸음질치고 싶었어. 사실 육체적인 노역이란 정신적인 스트레스에 비하면 별거 아닐 수 있어. 상대로부터 완전 짐승 취급을 받을 때라든가, 스스로 짐승이라는 자학에 빠지는 경우. 아마 언니가 형부를 만나기 전 받았던 충격도 그런 일 중 하나였겠지.

    언니를 찍어서 외출을 신청한 놈은 나중에야 알았지만 어디라고 하면 알 만한 재벌 회장의 손자였대. 외제 승용차에 기사가 딸려 언니를 데려갈 때, 우리는 기적을 보는 것 같아 모두 넋을 놓았어. 언니가 저런 행운의 주인공이 되다니. 히파리 말로는 외출에 대한 선불로 100만원짜리 수표 두 장을 턱 내줬다나. 나 역시 그때는 눈이 뒤집힐 정도였어. 뒷골들한테 전화질까지 했는데 통화도 안 되지, 하다하다 찍꼬빨까지 기다려도 새벽 세 시가 넘도록 똥개 하나 안 잡혔어.

    정말 부아가 치밀고 속에서 훨훨 천불이 나던데. 공연히 일어섰다 앉았다 화장실에 들락거리고 물을 마셨다가 커피를 마셨다가 루주도 빨강 칠했다가 파랑 칠했다가 온갖 쇼를 다 하는 거야. 마치 언니가 눈에 콩깍지 씌운 내 손님을 빼앗아 갔다는 생각까지 들더라고. 이런 되잖은 밥그릇 싸움도 스트레스라면 스트레슬까. 아무튼 우린 언니가 물씬 남자의 진을 빼고 어떤 표정으로 돌아올까 목이 빠지게 기다렸어. 그런데 나간 지 채 두 시간도 못 돼 경찰에서 들이닥쳐 주인을 찾고 난리였어.

    언니가 그 작자 이마를 맥주병으로 깠다는 거야. 들어보니 기가 막히더라고. 언니가 간 곳은 해운대 달맞이 고개에 있는 별장이었는데 정말 으리으리하고 호화스럽기 이를 데 없었대. 거기 거실로 가니 이상하게 헬렐레 하는 애송이 하나가 더 있었는데 다짜고짜 둘이 덤벼들어 미친개 수작을 벌이기 시작했다는 거지. 뽕을 한 게 틀림없을 거야. 세상에! 경찰서에서 본 언니 옷은 갈기갈기 찢겼고 온몸이 타박상과 피로 얼룩져 있었어. 나는 그때, 강간이란 게 뭔지 알았다고 할까?

    창녀에게 강간이라니? 입때껏 몰랐던 폭력이란 게 뭔지 알았다고 할까. 철장에 갇혀 나를 쳐다보던 언니의 눈이 뭘 말하는지…. 가슴 서늘했고, 나는 이 세상의 또 다른 구경꾼이라는 혐의를 떨쳐낼 수 없었어. 그런 사건으로 유치장에서 가까스로 풀려나온 뒤 언니는 한 달을 넘게 일을 못하고 넋을 놓은 채 실의에 잠겨 있었지. 대가리에 피도 안 마른 애송이들에게 받은 모욕이나 폭력이 문제가 아냐. 나도 어렴풋이 짐작하지만 그건, 실의란 거. 내가 일껏 고생고생 해봐야 세상엔 바랄 게 없다는….

    그러니 남기남이 구세주 같지 않겠어? 아니, 그때 남기남이 나타나지 않았다면 언니는 마지막 화려한 불꽃마저 피울 수 없었겠지. 뭐냐면, 남기남 그 남잔 정말 뱃사람의 순정을 가진 진국이었으니까.

    뱃사람들은 바다에서 오래 살아서 그런지 확실히 통이 크고 생각하는 게 단순해서 좋아. 여자에 굶주렸다고 해서 이런 데 여자를 막 대하진 않으니까. 내가 얘기 안 했어? 밑이 찢어지는 건 참아도 속이 찢어지는 아픔이 얼마나 처절한지. 적어도 이 바닥에선 배운 놈일수록 더하다는 게 틀림없는 얘기지. 아는 건 많아서 말 많지, 체면 때문에 사람들 앞에선 못 하는 오만가지 요구는 다 하지, 그러고도 돈 낼 땐 썩은 젓갈 냄새보다 더한 냄새가 풍기니까. 그런 데 비해 그때 남기남은 분명 퉁퉁한 명태 같은 남자였어.

    의지가지없던 몸이라서 그런지, 아니면 언니의 수완이 그랬는지 남기남은 언니와 한 달을 넘게 이곳에서 살다시피 하고 다시 배를 타러 나가며 덜컥 적금 통장을 맡겼어. 물론 다음에 올 때 이곳을 빠져나가 결혼을 하자는 묵계가 있었겠지. 놀랍게도 통장은 두 달 뒤에 만기가 되는 1억원짜리였어. 명태가 아닌 왕봉태가 아니라면 어떻게 그럴까. 그만큼 대단한 위인이었지만…. 그런 사실을 아는 사람은 그때까지도 없었지.

    나 역시 사고가 터질 때까지 전혀 알 수 없었던 일이야.

    언니는 그 남자가 떠난 한참 뒤 내게 5부짜리 다이아몬드를 보여주었어. 남기남이 다음에 돌아오면 여길 빠져나가 결혼하자고 했다는 비밀을…. 도저히 혼자 간직하기 어려웠겠지. 세상에, 그 엄청나게 비싼 반지를 언니가 샀다니. 다이아몬드가 그렇게 탐나는 보석이란 건 또 몰랐지. 언니 얼굴은 모처럼 보름달덩이처럼 보였고 자신에 차 있는 듯 했어. 남몰래 뒷골을 엮어넣었을 때, 누가 빼앗을까 경계하는 듯 표독한 모습이랄까. 나는 언니가 부질없는 꿈을 꾸고 있구나, 생각하며 그 다이아몬드가 깨지지 않길 진정으로 바랐지. 그리고 그 남자가 불현듯 돌아와 언니와 함께 이곳을 떠난다 해도 서운치 않겠다고…. 비록 같이 나가자는 약속을 어긴다 하더라도 진정 언니의 행복을 기원할 일 아닌가.

    남기남? 우리 형부, 참 좋은 사람이지. 불쌍하고. 웃기고.

    실은 그 사람, 언니 애인이었던 남자였어. 처음 언니한테 왔을 때 사각 팬티를 입었는데 글쎄, 물건이 얼마나 큰지 성기가 밖으로 나온 상태였대. 그래서 언니가 물었대. “어머, 아찌, 그거 다 넣으려고?” 하니까 대답이 “그럼, 남기남?” 하드래. 그래서 남기남이 된 거야. 형부는 섹스할 때 그게 다 안 들어가는 걸 알고 손수건으로 반을 딱 묶어. 그러면 거기 걸려서 다 안 들어가지. 나도 그 사람이 언니와 눈이 맞기 전에 어쩌다 한 번 받았는데 힘은 없지만 물에 띵띵 불은 개불이 꿈틀거리는 거 같았어.

    듣고 있어, 오빠? 아까 하던 얘기 마저 해달라고? 언니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냐고? 바로 그 형부가 맡기고 간 통장이 화근이었지. 사람도 싫지 않은데다 그만큼 큰돈을 생전에 어떻게 만져보겠어. 질 나쁜 애라면 아마 그 돈으로 제 빚도 탕감하고 어쩌면 당장이라도 여길 빠져나갈 궁리를 했겠지. 하지만 언니는 만기로 찾을 수 있는 돈을 그대로 은행에 놔두고 전전긍긍했던 거야.

    모든 꿈을 날린 노름판

    오히려 멀쩡한 통장에서 돈이 샐까, 누가 건드리진 않을까, 기다리던 주인은 잊고 있지나 않을까, 돌아와선 돈을 불려놓지 않았다고 욕이나 먹지 않을까, 자신과 같은 여자가 과연 결혼을 할 수 있을까…. 별별 걱정으로 노이로제에 걸리다시피 하고 이윽고 입맛까지 잃기까지 우습더라고. 나는 언니가 어느 때부턴가 손님 받는 일조차 심드렁해하며 손톱을 물어뜯거나 눈썹을 뗐다 붙였다 하는 걸 훔쳐보며 같이 불안에 떨었어.

    아니나 다를까. 계산 날이면 주인언니며 이모한테 그렇게 칭찬을 듣고 나랑 매상 경쟁을 하던 언니가 한 달 600도 못 올려 바가지로 욕지거릴 먹으며 아등바등거리는 처지가 되대. 미스방에 앉아 있는 언닌 서리맞은 고사리 모양 온몸에서 힘이 다 빠져보였어. 결국 이 집에서 아름이가 정상에 오르며 주인언니 방을 차지하게 된 게 그 즈음이었지. 이러단 나까지 시들하고 같이 결딴날지 모른다는 위기감 때문에 한동안 난 언니의 행태를 못 본 척하고 쌀쌀하게 굴기도 했지.

    그렇게 남남이 되나보다 하던, 몇 달 동안 글쎄 사건이 벌어지고 있었지 뭐야. 어떻게 돈 냄새를 맡았는지 포주들이 언니를 꾀어 노름판에 끌어들였고, 슬금슬금 놓았다 댕겼다 톱질을 하다 대번에 목을 따버린 거야. 정말 피도 눈물도 없는 개잡것들이지. 그 판이 어떤 덴 줄 알아? 10억 20억은 우습게 돌아가는 데야. 아가씨 하나가 하루 50만원씩 번다고 하고 10명씩만 해도 포주는 못해도 200만원, 한 달이면 6000만원을 그냥 받아먹는 판 아냐.

    오죽하면 부산에서도 요 아래 충무동 은행에 돈이 제일 많다고 할까. 그런데 언니가 끼여들었다니…. 언니가 눈이 뒤집혀서 미스방에 나타나지 않는 걸 알았을 땐 이미 게임이 끝나갈 때였어. 사람이 아니라 한여름에 썩어 문드러지는 송장덩이 같더라고.

    그리고 완월동이 뒤집어져라 무슨 난리가 있었는지, 그래도 모진 게 목숨이라고 언니가 어떻게 밥벌이를 시작했는지 떠올리기도 싫어. 내가 그 뒷수습을 하며 수발을 다 들어줬대서가 아냐. 언니와 세웠던 목표가 물거품이 됐다거나 혼자 이뤄나가야 할 무엇이 두려워서도 아냐. 어쩌면 언니가 이겨내지 못한 그 마지막 정점의 한 순간의 모순이 주삿바늘처럼 바로 내 정수리 위에서 대롱거리고 있다는 불쾌감. 더러운, 수치스러운, 정말 개떡 같은 팔자를 알았기 때문이랄까. 이 바닥 년들의 숙명이란 거.휴∼힘드네. 언니 얘기를 하자니 속에 가스가 가득 차는 것 같아서. 남기남은 차라리 바다에서 죽었어야 했던 거야. 아마 언니란 년은 그렇게 빌고 빌었을지도 모르지. 남기남이 몇 달 뒤 돌아와서 언니에게 당한 일은, 너무 끔찍하고, 정말 그랬을까 지금도 의심나는 대목이니까.

    언니는 술에 취해 들어온 남기남에게 화대를 요구했던 거지. 사연을 모르는, 아니, 알면서 모른 척한 건지 히파리는 언니의 그런 짓거릴 당연하게 생각하고 남기남을 대구 내쫓았고, 행패를 부리고 길길이 날뛰던 남기남과 한바탕 붙기까지 했지. 그리고 칼부림까지 나고, 삼촌들이 나서고…. 이 바닥에선 닳고닳은 레퍼토리가 펼쳐졌던 셈이지.

    그게 어떻게 수습됐는지는 또 그렇고 그런 얘기야. 다 뻔한 인생들이니까. 남자는 다시 배를 타겠다고 떠났다, 그러고 몇 달 안 돼 돌아와선 여자에게 목돈을 건네주고, 또 떠나고, 그러다 나중엔 진짜 화대까지 주면서 매달리더라는. 그런 한 해 전에 먼바다로 아주 떠나는 줄 알았지. 영영 안 돌아올 거라고들 믿었어. 나는 그 점에서 형부를 진짜 남자라고 생각하고, 그래… 만약 언니와 먼저 만난 처지가 아니었다면, 내가 거둬주고 싶은. 애고…오빠, 자는 거야? 역시 이런 추월색 얘길 하는 게 아닌데….

    이게 무슨 일이래! 오빠가 여기 다시 찾아오리라곤 정말 꿈에도 생각지 못했으니까. 오빠가 긴가민가하며 이곳 청화관 앞을 기웃거릴 때, 난 있지도 않은 오빠가 정말 나를 찾아온 듯이 가슴이 쿵쾅거리더라고. 왜 그랬을까? 다른 때 같으면 뒷골이 생겼다고 얼씨구나 손을 흔들어 반겼을 텐데 같잖게 고개까지 돌리고…. 그래, 여기선 고향 사람 만나는 게 제일 무섭다니까. 서울도 고향이냐고? 그럼. 사금파리 부대끼는 사투리만 듣다보니 서울말은 진짜 비단결 스치는 소리야.

    내 얘기 계속 듣고 싶다고? 내 얘기가 무슨 연속극이라도 되는 줄 아나. 그래도 줄거리가 있었다고? 악착같이 해서 돈 벌겠다는 거말고 뭐, 다 시시껄렁한 얘기야. 뭐라고? 여기 골목 입구마다 웬 거적때기들이 펄럭이냐고? 봐서 알잖아. ‘우리 업소는 미성년자를 고용하지 않는다’ ‘청소년을 보호하겠다’고 세상에 광고하는 거. 누가 아니래. 서울 미아리 텍사스촌에서 벌어졌다는 전쟁 불똥이 여기까지 튀어서 그런 거야. 서울 어디 경찰서에 새로 부임했다는 여자 서장이 미성년 윤락을 근절하겠다고 벌집 쑤시듯 난리치는 행사 있잖아.

    신문이고 방송이고 북치고 장구치고 신났지. 사실, 그 여자 나발부는 취지는 좋아. 미성년자 보호니 윤락방지니 하는 거. 그런데 사람들이 목소리만 높이지 걔들이 정말 왜 그런지, 집에 왜 못 들어가는지 모르고 떠드는 거야. 미성년자를 찾아내서 넘기는 곳이 어딘데? 말이 좋아 보호소지 실은 감옥이나 다름없는 곳이거든. 마이신처럼 결국 애들 못된 성질만 키워놓는다니까. 그리고 요즘 애들이 얼마나 약은데 이런 델 기어들어와. 시내 한복판에서 버젓이 보도방 차려놓고 영업하는 삐끼들 널렸지, 맘만 먹으면 제멋대로 놀고 돈 벌 수 있는 단란주점 천지지. 요즘은 폰팅이니 사이버 원조교제니 돈버는 것도 첨단을 달리는데 그런 거나 단속할 일 아냐?

    어쨌든 청소년이라면 이런 막장에 쓸려 들어오지 못하게 막는 거야 당연하지만.

    그럼 어떡하냐고? 이 동네는 그냥 내버려뒀으면 좋겠어. 떡 파는 여자들이 민가에서 나대는 거 보고 싶지 않으면 말야. 호호호호…. 너무 심한 말 아니냐고? 천만에! 복날 잡아먹는 개고기가 어떻게 도살돼서 나오는지 알지? 불법이지만 어딘가에서 쏟아져나오고 정력 강장식품이라고 게걸스레 먹는 대한민국 남자들을 보라고. 이 떡집이, 개 도살공장처럼 제법 인정된 업소란 건 공공연한 사실이야.

    여기 오는 아가씨들은 일단 조합이란 곳을 거치게 돼 있어. 완월동 업주들이라든가, 종업원 명단으로 해서 그런 거 관리하는 사무소지. 거기서 컴퓨터 조회해서 문제가 없어야 하고 건강 체크도 하게 돼 있어. 또 지속적인 관리도 받지. 만약 아가씨가 임질에 걸렸다. 그러면 한 3일 동안 일을 못하게 돼 있어. 약을 먹고 항생제 주사를 맞고 쉬라 이건데…. 3일 동안 꼭 나아야지. 안 그러면 본인한테도 타격이 크니까. 조합에서는 그 아가씨가 일 하나 안 하나 체크를 해. 만약 걸리면 벌금 300만 원에 1주일 구류거나, 경찰에 넘겨버리거든. 또 아가씨가 에이즈 걸렸나 안 걸렸나, 체크해서 보사부에 넘기고. 공창이 아니면 이런 일이 어떻게 가능할까?

    1주일에 한 번씩 하는 보건소 검진을 가보면 가관이지. 여기 업소는 대개 가로로 늘어진 골목에 따라 A라인, B라인, C라인 따위로 구분되거든. A라인은 한참 젊고 상품 가치가 높은 아가씨들이 앉아 있고, B라인은 좀 떨어진 애들, C라인은 40이 넘는 아줌마들, 하는 식으로 층층이고 손님 질도 달라지고 입장료도 다르지. 보건소에선 알기 쉽게 검진 날짜를 라인별로 구분해 아가씨들을 불러. 만약 내가 보건소에서 지정한 화요일에 검진을 못 받았다, 그러면 이모라도 출두해 사유서를 써야 해. 그리고 다음날 B라인 검진 받을 때 같이 받아야지.

    나도 한 번은 외출 때문에 뒤늦게 C 라인의 아줌마들 틈에 껴서 검진을 받은 적이 있는데 기분 정말 더럽더라고. 몇십 명씩 되는 아줌마들이 죽 줄을 서서 차례를 기다리는 걸 생각해봐. 검사래야 뭐 대단한 줄 알아? 진찰대에 누워 있으면 15센티 가량의 면봉을 꾹 찔렀다 빼서 현미경으로 살피고 이튿날 통보해주는 게 고작인데. 그래도 보건증이라고 만들어주는 나라에 고마운 건 뭐냐, ‘니들도 있다는 걸 안다’고 인정받는 듯한 느낌.

    내가 히파리 얘기해준다고 했지? 그 족속은 보통 사람들이 아냐. 보통 우리 같이 미스방에서 손님 받아먹는 아가씨들을 앉은뱅이라고도 하는데, 어떻게 보면 앉은뱅이들은 돈벌어 남좋은 일 하는 자판기 같은 신세인지도 모르지. 간혹 손님 잡느라고 성난 불독처럼 헐떡거리는 히파리에 비해 우리 앉은뱅이신세가 그래도 낫다고 말하는 애도 있어. 그런데 히파리를 하던 아가씨는 대개 나이도 많지만, 다시 앉은뱅이를 할 수 없어. 유리문 밖을 보고 있노라면 답답하니까.

    ‘어유, 저 손님 내 껀데 놓치고 있네’ ‘저거 내가 얼마든지 꼬실 수 있는데….’ 환장하는 거야. ‘저 여자 왜 저것밖에 못하지. 속 터지게’ 하며 엉덩이가 들썩거리는 거지. 보통 그 여자들이 장부를 관리하는데 십원 하나 안 틀리는 컴퓨터야. 하루에 육칠백씩 만져도 누가 몇 번 숏타임을 한 거까지 다 기억하는 정도야. 그게 뭐 대단하냐고? 손님에게 받는 아가씨들 돈을 금방금방 장부에 적는 게 아니라 사타구니께 전대에 딱 넣어두고 머릿속에서 기억한다는 거야.

    원래 히파리들은 메모 같은 거 남기질 않아. 증거가 남으면 세금추적이라든가, 법적인 문제가 생길 수도 있다는 거야. 여기 떡집들의 공식 영업종목이 뭔지 알아? 숙박이야. 손님이래야 뜨내기 몇이 오간 걸로 처리되는 모양이야. 결국은 세금 없는 기가 막힌 장사인 셈이지.

    가당찮게 들릴지 모르지만, 난 노동을 한다고 생각해. 공사장에서 곡괭이며 삽질을 하며 살아가는 막노동꾼이나, 벽돌을 나르는 지게꾼이나, 땡볕에 김을 매는 농부라든가 동상 걸린 손으로 그물을 걷어올리는 어부라든가, 용광로에서 펄펄 끓는 쇳물을 받아내는 화부나, 마르고 닳도록 아스팔트를 쓸어대는 청소부나, 공동묘지에서 매일 송장을 묻어주는 산역꾼이나, 머리라고는 당최 쓸 필요 없는 몸 파는 일들이 아니고 뭐야. 그런데 왜 여기 여자들만 손가락질 당해야 하냐 이거야. 무슨 까닭으로? 오빠한테 그걸 묻고 싶어. 세상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나, 아름이가 더러운 년인가 하고. 정말 구제 받지 못할 일을 하는 거고 돈이나 챙겨 속절없이 이곳을 떠나야 하는 건지.

    그렇지. 매춘이란 결국 쉽게 돈 벌려고 하는 짓이란 혐의. 그렇게 쉽게 버는 돈은 아니라는 건 어제도 얘기했지만 오빠 같은 상식이 있는 사람이라면 잘 알 거야.

    밤새 손님을 받고 기진맥진해 마지막 안간힘을 쓸 때, 그런 생각이 들어. 내가 지금 뭘 하고 있는 거지? 마치 시체에서 나온 진물을 핥는 섬뜩한 기분까지 들지. 어느 때는 내 입안이 고추로 가득 채워지고 심지어 이빨 사이에도 고추가 잔뜩 끼어 있는 느낌, 그런 노이로제로 시달릴 때도 많아. 그렇게 내 몸을 팔고 영혼을 파는 것이니 아름이는 더러운 년이고, 더러운 일을 하고 있다고 욕하면 사실 할 말이 없어.

    그러나 내가 해야 하는 노동이란 이 세상 누군가에게 서비스하는 일이란 걸, 분명히 그 서비스를 원하는 상대가 있었다는 걸 말해야겠군.

    재작년 이맘때쯤 이 근처 무슨 재활원이란 곳에서 단체 손님이 온 적이 있어. 시장이나 전철역 모퉁이에 보면 왜 긴 장화를 늘어뜨리고 좌판을 끄는 장애인이라든가, 팔이 없는 이들, 뇌성마비자 같은 사람들 말야. 재활원에서 정책적으로 그랬는지 아무튼 희한한 악대가 출연한 것 같았어. 문제는, 쳐다보는 것도 고통스러운데 누가 받겠느냔 말야. 결국 골목 여기저기를 뺑뺑 돌다 C라인 쪽 아줌마 부대로 갔지만, 난 그 사람들을 보내고 나서 영 기분이 좋지 않았어. 몸을 파는 내가 저 사람들보다 나은 게 뭐 있다고 외면을 했단 말인지….

    그런 며칠 후엔 나를 시험하려는 모양, 재활원 악대가 머리를 써서 각개 전투로 오더라고. 나는 기꺼이 손님 하나를 받았어. 한쪽에 의족을 한 그 사람은 선원인데 뱃일을 하다 와이어에 다리를 잘렸대. 방에 뉘어보니 세상에! 의족을 뗀 곳이 곪아터져 고름이 질질 흐르는 게 아니겠어. 그래 소독약 바르고 치료를 하고 다리 이쪽 저쪽 찜질을 해줬지. 그 뒤에도 몇 번을 왔는데…. 뭐, 그것도 했느냐고? 어떻게 했냐고? 원, 고약스럽게 꼭 물어야 해? 오빠도.

    또 다른 아주 기억에 남는 일이 있어. 초여름인데 웬 아저씨가 계절에 어울리지 않게 두꺼운 옷을 입고 들어왔어. 계산도 괜찮고 해서 느긋한 기분으로 샤워를 하고 나오는 손님을 기다렸는데, 아니, 온몸에 벌건 반점이며 수포성 물집이 보이더라고. 잘못 봤나 했어. 슬며시 보니 손톱이며 발톱도 뭉그러져 있지 뭐야. 처음엔 뱃사람인 줄 알았어. 뱃사람들은 손톱 발톱이 짓이겨진 경우가 많거든. 그런데 뱃사람치곤 살결이 너무 고왔어. 그러다 화들짝 놀라 물러섰지. 말로만 들었던 에이즈 환자가 아닐까. 난 슬며시 방에서 나와 인터폰으로 이모한테 연락을 했어.

    “이모, 이 남자 암만 해도 이상해. 내 짐작엔 에이즈 같아.” 그랬더니 이모는 태연히 답하더라고. “에이즈가 그런 증세까지 갔으면 걸어다니지도 못해. 걱정말고 장화나 신으라고 해.” 그래, 에이즈는 아닐 거야, 강단을 갖고 잠깐 일을 시작했어. 그런데 그 남자 물건이 도통 발기가 안 됐어. 난 초조하고 다시 겁이 슬슬 나기 시작해 몸에서 펄쩍 떨어졌겠지. 그리고 말했어. “아찌, 사실 아찌 몸에 난 물집들 징그럽다.” 연애할 맘이 없다는 뜻이었어. 솔직히 아무리 돈이 좋고, 서비스가 업이지만 에이즈까지 걸리고 싶진 않았던 거야.

    마음 같아선 당장 이모를 불러 끌어내리고 정히 뭣하면 다른 집에 가보라고 하고 싶었지만 어떡해. 숨만 잔뜩 죽이고 있는데 낌새를 눈치챈 남자가 바로 앉으며 묻더라고. “왜, 너 옮길까봐 그래?” 난 가만히 있었어. 그랬더니 묘하게 웃으며 말하더라고. “너, 문딩이라고 들어봤지? 난 나병 환자야.” 나병 환자란 거. 그 사람 하는 말이 그 병은 옮는 게 아니라는 거야. 맨몸으로는 옮지 않으니 걱정 말라고. 그래도 금방 벌건 물집이 터져 병이 옮을 것 같은데, 정말 진땀이 났어.

    그 사람은 한동안 내 얼굴을 쳐다보더니 그러더군. “그냥, 하룻밤만 재워줄 수 없겠어?” 그 말이 왜 그렇게 처량하게 들리던지…. 저 남자도 본능 때문에 여기 왔을 텐데, 결국 내가 저 사람을 만족시켜주지 못하고 마는구나 하는 답답함이기도 하고. 난 그 남자가 자는 동안 내내 사람의 처지란 게 과연 뭔가 골이 지끈거릴 때까지 생각했지.

    이만하면 여기 있는 아가씨들의 구실이 바닷가 모래알 정도라도 동정을 받을까. 우리가 하는 일이 꼭 노예 같다는 생각은 이 바닥 구조를 보면 더 쉽게 이해할 수 있지. 반땅이란 거 있잖아. 화대 중 10프로는 히파리를 떼주고 남은 돈을 포주와 반씩 나눠갖는 방식, 이게 얼마나 골 죽이는 거냐고. 일껏 돈을 벌어야 여기 재벌들 배에 기름기만 불려주는 일이라니까. 만약 정부에서 이런 곳을 단속하려면 무식한 경찰만 동원할 게 아니라 세무서라든가, 이게 가당한 일인지 몰라도 공정거래위원회 따위를 움직여 그거나 똑바로 고쳐줬으면 좋겠어.

    여기 텍사스 목화농장 같은 곳에서 한가지 더 웃기는 게, 주인이 ‘너 꼴도 보기 싫으니 나가’해서 짐 싸게 하면, 그 아가씨는 딴 데 가서 일할 수 있어. 근데 ‘언니, 저 여기서 나갈게요’하고 나가면, 절대로 다른 집에서 일을 못한다는 사실. 이전 집주인 허락이 없으면 다른 곳에 가서 일을 못한다. 만약에 나 그만둘래요, 하고 나간 아가씨가 슬며시 다른 곳에서 고액의 매상을 올린다면 그거 눈꼴사나워 참겠냐고.

    만약 이 집에서 일하던 아가씨 같은데 얼쩡거린다면 당장 ‘이런 이런 아가씨 여기서 써도 되냐’고 연락이 온다. ‘안 돼’, 그러면 그 아가씨는 완월동에서 끝장이다.

    사랑의 눈동자

    물론 목화를 잘 따는 아가씨에게 주는 시혜도 있긴 하지. 업주만 보는 아주 고액의 계란 거. 나도 잘 나가니까 그걸 들어주더라고. 몇천만 원에서 몇억에 이르는 계로 워낙 고액이라서 조합에서 관리를 해. 우리 주인언니가 나를 워낙 잘 봐서 끼워줬다지만, 날 붙들어두려는 술책인 걸 왜 모르겠어. 그래도 난 2년 반에 5000만원짜리를 들고 손가락을 세며 계 탈 날을 꼽아온 거야.

    첫 달엔 200만 원이었고, 그 다음달부터는 150씩, 해서 지난달까지 사고 없이 불입했으니 스스로도 얼마나 대견하게 여겨지는지 몰라. 그 나머지는 적금 들고 해서 7000만 원쯤 만든 셈인데…. 오빤, 그게 많은 양 놀랐지? 그렇지만 내가 이 바닥을 벗어나 받게 될 또 다른 고통이며 위험에 비하면 별것 아닌 보험료일지 몰라. 무슨 일을 해도 창녀였단 소릴 들을 텐데.

    아, 저 인터폰 벨 소리? 내가 그렇게 당부했는데도 저 지랄이라니까. 오빠, 미안해. 이모가 밑에서 밥 먹으라는 모양이니 잠깐 내려갔다 올게….

    아, 오밤중에 무슨 밥이냐고? 히파리가 아가씨들한테 하는 싸인이야. 아가씨가 숏타임 손님과 너무 오래 시간을 끈다거나 정말 피곤해서 눈을 붙인다 싶으면 아래층 이모한테서 인터폰으로 연락이 와. ‘자냐’ 그러면 무조건 아니라고 대답해. 짠돈 내고 손님이 추근거리면 그걸 구실로 어깃장을 놓기도 하고. “빨리 내려와, 밥 먹어라.” 이 말은 다시 손님 받으라는 얘기야. 재촉하는 만큼 손님이 많다는 뜻이기도 하지. 그러고도 미적거리는 것 같다, 그러면 다시 벨이 울려.

    이제야 어젯밤에 잠자다가 내가 슬며시 밥 먹으로 나갔다 온 거 눈치챘다고? 잠 든 줄 알았는데…. 저런! 미안해라. 기왕 순진한 오빠가 알았으니 말이지만 난 긴밤이나 뒷골이라고 밤새 같이 자진 않아. 여기 방이 삼십 개가 넘어. 최고 손님만 이 방으로 따로 대접하고 나머지 몇 다블을 더 뛰는 거야. 그러지 않으면 매상이 다른 애들처럼 칠팔백 넘기도 힘들어. 긴밤도 긴밤 나름이어서 다른 방에 따로따로 받아 넣으면 되니까. 일을 보고 잠깐 누웠다가 손님이 잠든 틈에 빠져나오고 나오고 해서…. 어젠 더구나 칙칙이라고, 물건에 약바르는 뒷골이 오랜만에 와서 힘들었어.

    그런 게 있어. 아다리가 착착 잘 맞을 때. 하룻밤에 뒷골이 네다섯 명 차례로 찾아온다. 일단 물건 챙겨놓듯 방에다 집어넣어. 그러면 여기서 한 번, 저기서 한 번, 그렇게 돌아가면서 하는 거. 그 마지막 사람은 희한하게도 어느 결에 자고 있으면서도 날 기다리고 있지 뭐야. ‘왔어?’ 하며 그래도 반기는 걸 보면 얼마나 신통한지, 고맙기까지 해. 다른 애들은 신기한가봐. 어떻게 하기에 손님들이 기다려서까지 연애를 하려는지. 그게 여간 독한 맘 먹지 않고, 어디 하루이틀에 될 일인가.

    뒷골들한텐 요일을 돌려가며 전화 예약을 받아둬. 일주일 내내 손님이 떨어지지 않게. 그러면 히파리 장부에 나는 줄창 동그라미만 올라가지. 연휴나 명절 때는 손님이 많아서 정말 힘들어. 그만큼 초스피드로 일을 하면 수입도 꽤 올릴 수 있어. 그런데 어영부영하다보면 손님 모실 방이 없어 땡 치고 말아. 방 30개가 연신 꽉 차서 돌아간다고 생각해봐.

    그런 아침 손님을 깨워서 보내야 할 시간은 더 바쁘고 더 힘들어. 어디 한두 번 흔들어서야 일어나나. 다음 손님도 깨워서 보내야 하는데 속에선 안달이 나지. 뺨을 살짝살짝 때리기도 하고 꼬집기도 하고 찬 수건으로 얼굴을 문질러주고 온갖 쇼를 벌이며 뒷골 기분 상하지 않게 하는 거. 왜 그것까지 책임지냐고? 예의도 예의지만 그러지 않으면 단골이 안 돼. 아침까지 신경 쓰고 마치 옆에서 잔 것처럼 해주지 않으면. “오빠 어제 술 너무 많이 마셨더라. 다음엔 그렇게 많이 먹지 마.” 이렇게 말 한마디 해주는 게 참 고맙잖아.

    언니가 들려준 얘기였어. 사랑하는 누군가를 가지면 사람의 까만 눈동자엔 영롱한 빛이 깃들인다고. 사랑하면 사랑하는 만큼. 많으면 많을수록, 더 초롱초롱 빛나는 거. 그러다가 사랑하는 사람을 잃게 되면 검은자위에 나는 까만 상처는, 새가 날아간 발자국이라나. 믿거나 말거나지만 그 얘길 듣고 난 사람들의 눈을 유심히 쳐다보곤 했어.

    언닌 어땠냐고? 나와 같이 이곳에 들어와 열심히 일한 2년 동안 그리고 남기남을 만났을 즈음, 과연 최고였어. 그러나 노름에 빠져들고 패가망신했을 때 눈동자는 빛을 잃은 채 꺼져가는 그것이었어. 잠을 못 자기도 했겠지만 희망이 없어진 탓이고, 무엇보다 자신을 믿지 못하게 돼서였겠지. 언니 손버릇이 나빠진 것도 그때였어.

    사실 1, 2만원이 없어지거나, 심지어 손님이 아가씨 지갑을 훔쳐가는 건 여기서 가끔 일어나는 일이야. 그런데 어느 때부턴가 액수가 커지고 수군대는 소리가 심상찮았지. 누군가 고의적으로 빈방을 뒤져 돈을 빼간다는 소문이야. 어떻게든 도둑을 잡아야겠더라고. 그래 이 집의 고참인 내가 1만원짜리 세종대왕 귀에다 실례를 무릅쓰고 콕콕콕 점을 찍어놓았어. 그리고 일부러 허술하게 서랍에 두었겠지. 그랬더니 역시 그날 밤 20만원 중에서 3만원이 비더라고. 다 가져가면 표가 날까봐 그런 거겠지.

    이튿날 이모의 도움을 받아 난 아가씨들을 한방에 몰아놓고 방방 돌아다니며 센터를 시작했어. 그랬더니 그 돈이 바로 언니 방에서 다른 세종대왕에 끼여 나온 거야. 화들짝 놀라자 이모가 다그쳤어. 그 년 소행 아니냐고. 그래도 난 시침을 떼고 따로 언니를 만났어. “언니, 이거 내 돈이야.” 난 언니가 스스로 잘못을 뉘우치고 새롭게 각오를 다지길 바랐어.

    그런데 잡아떼는 건 물론 나를 표독하게 흘겨보며 말하더라고. “무슨 소리야. 이거 손님한테 팁으로 받은 건데.” 나는 고개를 내저었어. “언니, 그러면 안 돼.” 그랬더니 다시 말하더라고. “이젠 너까지 날 얕잡아보기 시작했구나. 도대체 무슨 근거로 이걸 네 돈이라고 그래?” 할 수 없이 난 그간의 자초지종을 얘기하고 내 지갑에 있는 돈을 꺼내 세종대왕의 귀에 찍은 점을 보여주고 언니 돈과 맞춰봤어. 그러니까 꼼짝 못하지.

    난 그때 언니의 까만 눈동자가 일그러지며 더욱 까무레해지는 걸 똑똑히 봤어. 내가 그 여잘 진정 언니라고 부른 마지막 순간은 그랬지. 이제부턴 나 혼자서, 여기 처음 오며 한 약속을 지켜나가야 한다고, 마음을 다잡았던 거야. 정신 똑바로 차리지 않으면 정말 언제 중독자가 되거나 언니처럼 될지 몰라.

    여기엔 아파트 몇 채에 자기 손안에 몇 억씩 갖고 다니는 아가씨도 많아. 그러면 그만둬야 하지 않냐고? 천만에! 몸 속이며 뼛속에 인이 박이는 거야. 이곳을 나가서는 도저히 사회 적응을 못해. 나가면 도로 들어오니까. 이 세계가 그렇게 돼 있어. 왜? 낮과 밤이 거꾸로 된 생활을 하다보니 밤에는 눈이 말똥말똥하고 낮에는 세상 분간을 못하는 거야. 체질이 완전히 야행성으로 바뀌어버리지.

    두 번째는 세상 사람들이 자기를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생각, 또는 누군가에게 자신의 과거가 발각될지 모른다는, 그런 강박관념으로 다른 사람을 쳐다보기 힘들어. 세 번째는 돈이 이만큼 벌리지 않는 다는 것. 한번 이런 곳에 발을 들여놓으면 영원히 빠져나가기 힘든 이유가 그래. 나도 가끔은 과연 여길 빠져나갈 수 있을까하는 불안에 휩싸이곤 해. 여태까지 번 돈으로 조그만 장사를 시작할 거야. 무슨 장사를 할 건진 생각해보지 않았지만.

    여기서는 살인이나 자살사건도 많이 일어나. 이태 전엔 여기보다 좀 떨어진 저 위쪽 라인에서 정말 말하기도 끔찍한 변사사건이 있었어. 분명 긴밤이라고 둘이 들어갔는데 아침까지 아무도 보이지 않았대. 그래서 아가씨가 손님과 줄행랑을 친 줄만 알았는데 글쎄 여자 시체가 침대 밑에서 발견된 거지 뭐야. 가슴이 오려진 채 음부에는 담배 수십 개비가 끼워져…. 변태살인범 짓일 텐데 경찰에선 제대로 손도 못 대고 있는 모양이라고. 잡기도 어렵지만 아가씨 쪽 누구도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기 때문이겠지.

    결혼하자고 약속한 남자와 돈 때문에 싸움을 하다가 5층 창 밖으로 내던져져 죽은 애도 있고, 여기저기서 빚 독촉을 받다가 동맥을 끊은 애도 있고, 어제까지 방실방실 웃으며 손님을 받더니 영문도 모르게 급사한 경우도 있고, 아무튼 가지가지야. 더러는 손님이 죽어나가는 웃기는 경우도 있어. 작년 추석 땐데 예순여덟살 난 노인이 글쎄 비아그라를 먹고 들어와 그 짓을 하다가 쇼크로 죽었대. 나도 그 늙은이가 이불에 둘둘 말려 손자들에게 들려나가는 걸 봤는데 가관이더라고.

    언니 말야? 오빠가 짐작한 대로 그렇게 여길 떠난 지 오래야. 남기남이 맡긴 거액의 통장을 노름으로 날린 후, 먼바다에서 돌아온 그 남자와 싸움질을 하고 악다구니로 다시 사는가 싶었던 한때, 정상이 아니었지. 사실 형부는 그러고도 먹이를 물어다주는 제비처럼 바다에 나가 돈을 물어다주곤 하며 언니와 또 다른 장래를 꿈꾸었을 거야. 우린 숨을 죽이고 언니와 형부가 어떻게 되는지 지켜보자고 했고…. 더구나 나는 뭐야. 목돈을 만들어 함께 이곳을 떠나자던 약속이 틀어졌는데, 그나마 남기남이 부디 언니를 구제해주길 학수고대할 수밖에.

    그런데 언닌 역시 제 팔자를 거역하지 못한 거야. 여기 407호가 바로 그 여자가 전깃줄로 목매 죽은 방이거든. 그래서 비워놓았지만, 방이 모자랄 땐 가릴 게 없지. 유나라는 애가 거기서 한번 손님을 받은 적이 있는데 일을 마치고 막 나오려는데 잘못해 벽거울을 건드려 깨뜨렸어. 그런데 깨진 유리 조각 사이에서 피가 뚝뚝 떨어지더래.

    한가지 재미있는 건, 그 거울 뒤쪽 합판에 엄지손가락만한 구멍이 있었는데 500원짜리 동전으로만 거울의 반 이상이 찬 상태였어. 그러니까 언닌 알뜰살뜰 돈을 모으려고 갖은 애를 썼던 게 틀림없어. 아니면 그 돈을 어디다 쓰려고 했던지. 그리고 언니가 내게 보여줬던 5부짜리 다이아 반지도 나왔는데 여기 청화관에서 가장 친하게 지낸 나한테 전해졌지.

    가끔 그런 생각도 해봐. 이 건물을 큰 작두 같은 걸로 딱 잘라 보는 거야. 그러면 밤에는 방방이 다 연애를 하는 희한한 광경이겠지. 아니, 무지무지 징그럽겠지. 그런데 낮이면 어떻겠어. 딱 잘라서 안을 들여다보면 다들 죽은 시체들만 있는 거야. 낮에는 자는 시간이라 모두 쥐죽은 듯이 자는 때니까. 얼마나 소름끼치는 일이냐고. 오빠, 내 얘기 들어? 이런 끔찍한 얘길 들으면서 태연히 잠들다니….

    완월동 동화

    아유, 잠꾸러기. 일어나요. 일어나. 오라버니. 저기, 창 밖을 봐요. 동해의 떠오르는 금빛 햇살을 담은 영도 앞바다를! 오늘은 여태 본 어떤 해보다 더 둥그렇고 실한 게 세상천지 그 난리바가지일 때도 못 본 엊그제 새 천년 아침 인사 같네. 어마, 오빠 눈에도 금빛이 가득 들어 있어. 어때? 정말 여기서 저런 황금 연못을 보는 기분이! 생전 처음 저런 광경을 본다고? 고맙다니 원. 고마운 건 난데…. 오빠랑 이렇게 깨끗한 맘으로, 창가에 서서 새 아침을 맞다니 놀랍지 뭐야. 실은 이곳에서 잔 아무도 아침 바다를 보려고 하지 않거든. 그보다… 내가 보여주려고 하지도 않았지만….

    이 방 손님까지 보내고 겨우 일을 마쳤다 싶은 때면 어느덧 창가에 햇살이 밝게 물들어오지. 그러면 나는 음악을 틀고 조용히 창가로 다가가 커튼을 젖혀. 그리고 원두커피 한 잔을 마시며 외쳐. 아, 이젠 끝났다. 전쟁은 끝났어. 나만의 시간이다. 그제야 안도감과 만족감이 들어. 밤새 목표한 얼마를 벌었다. 그나마 다행이다, 하는. 그렇지만 매상도 별로 없고, 연이어 찍고빨에 힘든 손님 만나 녹초가 됐을 땐 그런 생각도 없어. 빨리 자자. 그리고 고꾸라지는 거지.

    누군 비가 오거나 눈이 오면 쓸쓸하거나 집 생각 나지 않냐고 물어. 비오고 날 궂으면 삭신이 쑤시지 무슨 감상이겠어? 골병이 들어 뼈마디가 욱신거리는데. 그리고 이 완월동에선 이상하게 눈을 볼 수가 없더라. 언제 서울 가면 겨울에 눈을 맞으며 걷고 싶은 생각은 들더만. 그런 건 있어. 바람이 갑자기 황야처럼 불어오는 경우. 베란다 화분이 넘어지고, 재떨이가 딸랑딸랑 굴러가고…. 그럴 때는 아, 오늘 손님 구경하기 힘들겠네 하는 생각 말야.

    참, 오늘 내 전과는 어땠냐고? 오빠까지 다섯 명 받은 셈이야. 처음에는 치과의사인 뒷골이고, 두 번째는 친구들하고 술 마시고 왔다가 긴밤을 한 샐러리맨이고, 세 번째는 출장을 온 듯한 사내로 혼자 와선 무슨 세상 근심이 그렇게 많은지 한숨만 푹푹 쉬고…. 네 번째 온 사람은 술이 완전히 떡이 된 남잔데, 그런 사람 처음 봤어. 인사불성인데도 그건 엄청나더라고. 그 정도면 왜 남자들 발기가 안 되잖아. 나인 분명히 사십대 중반이다 싶은데 웬걸 크기도 엄청 나고 피스톤 운동도 겁나대.

    그리곤 순식간에 폭발을 한 뒤 뭔가 얻어냈다는 듯, 쟁취를 했다는 듯이 쌔근쌔근 잠드는 걸 보니 완전 어린애 같더라. 보통 세 명으로 쇼부치는 경우가 많은데, 오늘은 오빠까지 받아서 130만원 벌었어. 이모가 입을 헤죽이며 “어유, 오늘도 우리 아름이가 일등 했네!” 그러더라고. 오늘 25일이지? 이제 한 달 목표가 거진 다 채워져서 마음이 놓이기 시작하는 거야. 오빠, 미안해. 오빠 잠들었을 때 그냥 옆에 누워 있으려고 했는데… 오만 생각이 자꾸 떠올라서…. 오빠랑 하던 얘기가 정말 정신 사납게 하더라고.

    하지만 오빠! 오늘 아침은 다른 때보단 그래도 좀 나아. 과연 내가 이제는 이곳에서 더 바랄 것이 없다는 만족감에다… 좀 아까 돼지저금통 뜯었더니 11만3000원이나 나오더라고. 손님들이 아무렇지도 않게 흘리고 가는 그 돈으로 매달 이맘때면 이 아래 성당에서 하는 결식아동 돕기에 써왔거든. 그보다 더 기분 좋은 일은 오빠가 이제껏 기다려온 내 소망 하나를 들어줬다는 거.

    그렇게, 언니 얘기를 하고 싶었던 거야. 언니를 화장했을 때, 난 이모를 졸라 그예 광안리 앞바다로 나갔어. 동백부두에서 배를 타고 두 시간쯤 나갔을까. 그쯤이면 언니가 바닷가에서 멀리 헤엄쳐 사라지던 수평선 어디겠지 하며…. 이젠 한줌 재가 된 언니의 영혼을 날려주었지. 결국 우리가 처음 백사장에서 만나 다짐했던 일이란 그렇게 우스꽝스러운 이별로 끝나도록 예정돼 있질 않았을까?

    어쩌면 언닌 그렇게 해서라도 날아가버리고 싶었던 것일까. 내가 뱃전에 앉아 눈물을 찔끔거릴 때 이모가 그러더군. “야 이년아, 정신 차려. 깜빡하단 너도 황천길일 테니.” 그리고 술잔을 따르며 말하더라고. “완월동 귀신이 되지 않으려면 말야….” 절대 달을 보지 말라는 거였어. 달에 비친 애들을 보라고, 그건 벌써 다 죽은 저승 귀신들인 거라고…. 그리고 또 귀띔이라며 말했어. 여길 나가려면 아무도 몰래 아침마다 떠오르는 해를 보고 빌고 빌라고….

    오빠, 여기 여자들은 밑은 다 썩어가도 그렇게 미신 같은 동화를 갖고 산다. 미자 언니가 사랑하는 누군가를 갖고 싶어했듯이…. 그 눈 가득 영롱한 빛을 머금고 싶었듯이…. 나도 돈을 많이 벌어 떠난다는 목표말고 또 다른 꿈이 있었지. 나를 그저 아무렇지 않게 대하는 세상 사람을 만나 밤새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는 생각…. 오빠가 연 이틀이나 와서 나랑 연애도 안 하고 간대서 하는 입바른 소리가 아냐. 이제 이곳을 떠나면 영영 잊혀질 이야기를 들어줄 사람은 없을까 기다린 거.

    남기남 말야? 물론 좋은 사람이야. 어제 저녁 다시 바다로 떠나며 다음에 돌아올 땐 같이 살자고 했지만…. 우리가 그럴 수 없는 여자란 건 너무 잘 알 거야. 그 사람도 그냥 그렇게 말하고 떠나는 거겠지. 아주 영영 떠날 수는 없어서, 뭔가 이곳에 돌아올 구실을 붙들어 매는. 오빠, 왜 내가 이 다이아몬드 반지를 오빠한테 주는지 이제 알겠어? 언니가 가질 수 없었던 것을 세상에 돌려주고 싶은…. 아아, 왜 이렇게 가슴이 미어질까?

    **********

    아름이에 대한 이야기를 정리하면서 나는 그 전에 인상 깊게 읽었던 송기원의 ‘늙은 창녀의 노래’를 다시 떠들처보았다. 어쩌면 그 늙은 창녀와 다른 모습이 ‘아직은 젊은 아름이’ 아닐까?

    글의 마무리를 위해 서울에서 최근, 아름이가 가르쳐 준 휴대폰 번호를 눌러봤다. 그녀가 그곳을 떠나기로 한 7월이 지나서, 분명 일전에 통화가 됐던 전화는 폐지된 상태였다. 결국 그녀의 꿈은 이뤄졌으리라 믿는다. 그리고 그녀는 바로 당신 옆을 스쳐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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