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터넷에 휘몰아치고 있는 ‘안티(anti)’ 바람. 정치인, 대기업, 애견센터에서 청와대까지.... 언어폭력인가? 네티즌의 정당한 권리주장인가.?
- ‘성역’없는 24시간 감시체계, 안티사이트의 위력.
인기를 반영하듯 사이버 스페이스도 온통 ‘권보아’ 일색이다. 어림잡아 70, 80개쯤 될까. 그런데 좀 이상하다. 관련 사이트 대부분이 ‘반(反) 보아’를 표방하고 있는 것이다.
‘권봐킬러’ ‘권보아 죽이기’ ‘살인! 보아’ ‘보아뱀사냥꾼’ ‘fuck you boa!’ ‘미친18보아’ ‘보아 저주’ ‘권보아를 죽입시다!’….
속내용은 더하다. 차마 글로 옮길 수 없을 만큼 심한 욕설, 성희롱, 기괴하게 변형된 사진들과 저주의 말. 요즘 유행하는 안티(anti) 사이트의 일종이다.
그러나 이런 연예인 대상 홈페이지들이 안티사이트의 전부는 아니다. 수적으로는 월등하지만 사회적 파급력은 미미한 편. 오히려 주목해야 할 것은 기업, 정치인, 단체, 기타 사회 체제를 대상으로 ‘반대’를 선언하고 나선 사이트들이다.
안티사이트의 대상이 되는 쪽은, 그것이 단체건 사람이건, 상당히 긴장할 수밖에 없다. 네티즌 전체가 감시자가 된 느낌. 익명성 뒤에 숨은 이들은 대상에 대해 거침없는 비판을 퍼붓고, 여기 인터넷 특유의 가공할 파급력이 더해져 ‘광속으로’ 여론을 형성해 간다. 오죽하면 ‘인터넷 염라대왕’이란 말이 다 쓰일까.
인터넷 염라대왕
현재 국내에서 눈에 띄는 활동을 벌이는 안티사이트는 150여 개. 종류는 대략 세 가지다. 첫째, 정치인 연예인 운동선수 등 특정 인물에 대한 비난·평가·비평을 담고 있는 것. 둘째는 기업이나 기관에 의한 피해, 제품에 대한 불만사항 신고 및 불매운동을 벌이는 사이트. 셋째가 특정 이슈에 대한 반대 캠페인을 벌인 뒤 사라지는 부류이다.
정치인 관련 안티사이트 중 가장 조회 수가 높은 것은 한나라당 이회창 총재를 겨냥한 ‘안티창(www.antichang.wo.po)’이다. 개설 4개월 만에 조회 수 5만회를 넘어섰다.
‘안티 대화방’ ‘이회창총재께’ ‘비판과 대안’ ‘안티자료실’ 등으로 꾸며진 이 사이트의 백미는 ‘이회창 평론-민주주의를 위해 십자가를 지겠다’.
1부 ‘참된 법관의 표상 이회창’, 2부 ‘97 대선과 허구의 실체’, 3부 ‘여당불패 신화의 종언’, 4부 ‘3김 아류와 노무현론’ 5부 ‘준비된 발목정치의 비애’ 등 5개 섹션에 총 50꼭지의 글이 빼곡히 들어차 있다. 정치소설 지망생으로 알려진 작가의 ID는 ‘절망의 강’. 방대한 자료를 체계적으로 정리, 나름의 논리로 이총재를 비판한다. ‘김대중 정권 비판 모음집’이란 부록을 덧붙여 평론에 ‘공정성’을 더했다. 김대통령을 비판한 신문 사설들을 모아놓은 것이다.
‘안티창’의 운영자는 대구 경북대생 김지훈(22) 씨다. 김씨는 “지난 6월, 남북 정상회담 후 이총재가 보인 언행에 실망해 사이트를 개설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더 근본적인 이유는 이총재가 ‘가장 유력한 대선 후보’이기 때문이라고. “제도권 언론이 제공하는 정보만으로는 충분치 않다. 이총재 공식 홈페이지에 들어가도 온통 자화자찬 아닌가. 국민들, 또는 네티즌에겐 더 많은 정보를 제공받고 자신의 의견을 자유롭게 분출할 기회가 필요하다.” 김씨는 또 “경북 지역에 살다 보면 지역감정이 얼마나 뿌리깊고 파괴적인 망국병인지 실감하게 된다”며 “그것을 자극해 이득을 보려는 정치세력이 있다면 당연히 비판해야 한다”고 말했다.
개인을 대상으로 한데다 성격상 과격한 글이 많이 올라와 관리하는 데 어려움이 많다고. 그 자신 고등학생 시절엔 ‘대쪽 법관 이회창’의 열렬한 팬이었기에 인간적 갈등도 적지 않았다고 한다. 그러나 “이총재는 공인이다. 특히 나라의 미래에 결정적인 영향을 끼치는 인물인 만큼 감시하고 비판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이 지금 김씨의 입장이다.
초기에는 게시판이나 전자우편을 통해 ‘사이트를 폐쇄하라’고 협박하거나 ‘전라도놈’ ‘민주당 프락치 아니냐’며 심한 욕설을 퍼붓는 경우도 많았지만 지금은 비교적 안정된 상태라고. 전화 인터뷰 중 기자가 “인적 사항을 밝혀도 되겠느냐”고 묻자 김씨는 조심스레 “과(科)만 적지 말아달라”고 했다. 자신의 견해에 반대하는 사람들의 보복이 “솔직히 겁난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10여 분 후, 기자의 휴대전화에 문자메시지가 들어왔다.
‘학과까지 다 밝혀도 상관없습니다! 제가 나쁜 일 하는 것도 아닌데요 뭐^^.’
김지훈 씨였다(그러나 과는 밝히지 않기로 한다. 이것은 물론, 기자의 판단이다).
“민주당 프락치 아냐?”
‘안티창’에 이어 두 번째로 개설된 정치인 안티사이트는 ‘안티권오을(user. chollian.net/~fsh3a/main.htm)’이다. 사이트 문이 열리면 큼직하게 쓰인 글귀가 한눈에 들어온다. ‘무심코 키운 통일의 걸림돌 권오을’. 두 번째 페이지의 머리글도 비슷하다. ‘통일! 권오을 하나면 충분히 막을 수 있습니다.‘
헤드 카피에서 알 수 있듯 이 사이트는 지난 7월13일 있었던 권의원의 “청와대가 친북세력이냐”는 발언에 자극 받아 만들어진 것이다. 운영자는 자신을 인터넷업체 기획팀장이라 밝힌 ‘안티맨’ 김상한 씨다. 김씨는 ‘운영자의 변’에서 “김영삼, 정형근, 이회창 씨 등의 안티사이트를 만드는 건 겁난다. 예전에 김영삼 씨에게 페인트 계란 던졌던 할아버지는 아직 감옥에 있지 않으냐”며 “권의원은 적어도 안티사이트를 포용할 만큼의 됨됨이는 되지 않겠느냐는 실낱 같은 희망을 품고 만들었다”고 적고 있다.
권의원 홈페이지를 패러디한 이 사이트는 ‘안티창’에 비해 운영자의 ‘반 권오을 정서’가 직접 드러나 있는데다 내용도 빈약한 편. 조회 수는 5만회에 육박하지만 9월 이후에는 거의 업그레이드되지 않고 있다. 사이트 개설 초기 권의원이 “정치적 음모가 의심된다”는 발언을 해 또 한 번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그러나 최근 통화에서 권의원 측은 “오해였던 것 같다”며 당시의 발언을 정정했다.
특기할 만한 점은 권의원의 보좌관 류대영 씨가 안티맨에게 공개토론을 제안한 것. 류씨는 게시판을 통해 “발언 하나만을 잣대로 한 정치인의 통일관을 단정하고 이를 근거로 반통일세력이라 몰아세우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며 “정치행위는 관점에 따라 다르게 평가할 수 있는 만큼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토론을 통해 오해를 불식시키자”는 글을 올렸다. 안티사이트가 정치인, 특히 소수의 유권자를 기반으로 한 지역구 출신 의원에게 끼치는 영향력이 적지 않음을 시사하는 대목이다.
‘이반사모(이인제를 반대하는 사람들의 모임, www.leeinje.com)’도 비슷한 분위기다. 8월21일 개설된 이 사이트도 이인제 의원에 대한 적대감을 분명하게 노출한다. ‘이인제는 철새 정치인이 아니라 박쥐 정치인’이라거나 ‘민주경선의 불복자, 기회주의자’라는 비난을 서슴지 않는다. 운영자는 재미교포라고 한다.
이의원 쪽에서는 이 사이트를 어떻게 보고 있을까. 박종강 보좌관은 “할 말이 참 많다”며 일련의 과정을 설명했다. “7월 초 의원실은 물론 당 전산국을 통해서까지 ‘leeinje.com’이라는 도메인을 사지 않겠느냐는 제안이 계속 들어왔다. 한마디로 이의원 도메인을 선점한 후 재판매를 시도한 것이었다. 그러나 이의원은 오래 전부터 영문 이름을 쓸 때 ‘lee’ 대신 ‘rhee’를 써왔다. 또 이미 ‘www.ijnet. or.kr’이란 주소로 홈페이지를 운영하고 있다. 굳이 그 도메인을 구입할 이유가 없었다. 요구 금액도 수천 달러로 지나치게 많았다. 우리가 거부하자 ‘반대 세력’에까지 구매 의사를 타진한 것으로 안다. 그래도 거래가 이루어지지 않으니 안티사이트를 만들어 버린 것이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간혹 외국에서 벌어지는 ‘도메인 판매를 위한 안티사이트 제작’의 한국판인 셈이다.
‘안티박정희(myhome.naver. com/red tiger7/parkjh/parkframe.htm)’는 박 전대통령과 관련된 자료들을 모아놓은 사이트. 물론 박 전대통령에 대한 비판적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그러나 클릭 수는 1만회 정도로 저조한 편.
그러나 개인 안티사이트를 가장 많이 갖고 있는 이들은 역시 연예인이다. 보아를 비롯 HOT, SES, 신화, 김희선, 조성모, 서태지, 베이비복스 등. 모두 최정상급 인기인이다. 이렇듯 안티사이트 수와 네티즌 참여 비율은 인물의 인기와 정비례하는 경향이 있다. 시드니올림픽 은메달리스트인 강초현 선수의 인기가 높아가자 기다렸다는 듯 포탈사이트 ‘다음(ww w.daum.com)’에 ‘안티강초현 클럽’이 생기는 식이다.
연예인 안티사이트의 특징은 소수를 제외하곤 일방적인 욕설과 섬뜩한 사진, 가차없는 인신공격으로 ‘도배’돼 있다는 사실이다. 특히 성적 모멸감을 불러일으키는 표현이 많은데, 심지어 한 10대 중반 여가수를 사칭, 매니저와 성관계를 맺는 과정을 적나라하게 묘사해 놓는 등 도에 넘는 표현들이 자주 눈에 띈다.
경쟁 관계에 있는 두 스타의 팬들이 서로 비방하기 위해 만드는 경우가 가장 많다. 개중에는 표절 문제, 상업적 스타 시스템에 대한 비판 등을 담고 있는 것도 있지만 미미한 수준. 안티사이트의 관건이 ‘운영자의 도덕성’이라면, 현재의 연예인 관련 사이트는 비난의 악순환을 불러오기 쉬운 구조다. ‘안티’라기보다 ‘이지메’에 가깝기 때문이다.
욕설, 극언, 금기 파괴
요즘 연예인 안티사이트에서 성행하는 트렌드 하나. 이른바 ‘행운의 편지’다. 대개 특정 연예인에 대한 욕설이나 인신공격 끝에 붙어 있다. 그중 하나를 인용해 보자.
‘…이 글을 읽은 사람들은 24시간 안에 다른 사이트 10개에 이 글을 올려야 합니다. 안 그러면 당신의 가족 중 한 명이 죽습니다. 그것도 처참하게 교통사고로…. 첨에는 잘살아 있어도 나중에는 점점 기력을 잃어가며 죽게 됩니다. 저도 이런 것을 잘 안 믿는데 정말… 저희 아버지가 돌아가셨어요….’
어쩌면 청소년들은 ‘익명’의 그늘에 숨어 욕설, 극언, 금기 파괴로 일상의 스트레스를 폭발시키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우리 나라에서 가장 활발한 ‘안티’그룹은 기업을 상대로 한 사이트다. 삼성, 현대, LG 등 재벌그룹은 물론 새롬, 이랜드 등 중소기업까지 그 대상이 되고 있다. 때로는 특정 제품이 도마 위에 오르기도 한다.
안티 기업 사이트의 목적은 대개 소비자운동이다. 특정 제품, 또는 기업으로 인해 피해를 입은 개인이 ‘여론 확산’의 도구로 홈페이지를 만들고, 여기 수많은 동조자들이 호응을 보냄으로써 일정한 세를 형성하는 것이다. 흔히 비슷한 피해를 입은 소비자들이 사례를 올리면 함께 해결책을 강구하거나 조언을 주고받고, 경우에 따라 사이버 시위, 항의전화 걸기, 항의 방문 등 직접적인 방법을 택하기도 한다. 일련의 과정을 통해 가시적인 성과를 거둔 사이트가 계속 늘어나고 있다. 인터넷이 없던 시대에는 불가능했던 일들이다. 골리앗을 무너뜨리는 사이버 다윗의 활약이라고나 할까?
대다수 사이트는 ‘건전한 비판으로 기업도 살고 소비자도 사는 상생(相生)의 길을 찾는 것’을 개설 목적으로 한다. 운영자들은 저마다 ‘지나친 욕설, 비방, 인신 공격은 삼가 달라’는 경고문을 내걸고 있다. 공공(公共)의 목표가 있는 만큼 사이트들은 비교적 깔끔하게 운영되는 편이다.
가장 많은 안티 사이트가 만들어진 분야는 초고속 통신망이다. ‘안티하나로’를 표방한 사이트만 ‘하나로운동본부(www. hades.interpia98.net/~hanarox)’ 등 10여 개에 이른다. 그 외에도 안티한국통신, 안티두루넷, 안티드림라인 등이 ‘성업’중이다. 지난 1월에는 공동으로 속도측정 실험까지 했다. 업계로선 긴장하지 않을 수 없는 노릇이다.
“날 물로 보지 마!”
성과 면에서는 자동차 관련 사이트가 단연 앞선다. 대표적인 예가 ‘안티트라제(www.antihyundai.pe.kr)’다. 아예 ‘소비자권리찾기운동본부’라는 별칭을 갖고 있는 이 사이트는 운영자 윤희성 씨 외에도 홍보부장, 조직부장까지 두고 활발한 활동을 펴고 있다.
인터넷업체를 운영하는 윤씨는 현대 트라제XG를 구입한 후 잦은 고장과 차체 결함, 담당 직원들의 불친절에 항의코자 이 사이트를 개설했다. 비슷한 불만을 갖고 있던 네티즌들은 사이트를 통해 점화코일과 2열 시트의 결함을 줄기차게 지적했고 건설교통부에 안전도 검사를 의뢰하기도 했다. 이들의 활약상은 언론을 통해 널리 알려졌고, 결국 현대자동차는 점화코일 교체, 냉각수 보조탱크 지급 등 일련의 리콜 조처를 취했다.
‘안티기아(antikia.systek.co.kr)’를 운영하는 이도 지난해 7월 기아 카니발을 구입한 소비자 이준규 씨다. 구입 당시부터 도색이 덜 돼 있고 주차 브레이크가 말을 듣지 않는 등 곤란을 겪다 결국 사고를 당한 뒤 이 사이트를 만들었다. 이씨는 “나도 예전에는 좀 손해보는 일이 있더라도 참고 넘어가는 평범한 사람이었다”며 “그러나 차체 결함으로 사고가 났는데도 책임을 회피하고 소비자를 우롱하는 등 횡포를 일삼는 대기업에 경종을 울리기 위해” 사이트를 개설했다고 말한다.
최근에는 국내 자동차 4사는 물론 해외 차종까지 대상으로 하는 종합 사이트 ‘안티카(www.anticar.co.kr)’도 생겼다. 자동차 회사 및 차종별로 피해 사례, 문제점 등 불만사항을 기재할 수 있으며 온라인 리콜 요구 진정서도 보낼 수 있다.
‘안티후지운동본부(antifuji.org)’도 유명한 사이트. 운영자는 학원을 경영하는 허인 씨다. 넷맹이었던 그가 사이트까지 개설한 이유는 비정품 토너와 드럼을 정품으로 속여 팔아 놓고도 나 몰라라 하는 후지제록스에 화가 났기 때문이었다. 제록스 측은 “대리점이 한 일이니 우리는 책임이 없다”며 복사기 수리도, 과지불된 요금의 환불 요구에도 응하지 않았다. 1년을 밀고당겨도 결론이 나지 않자 지난해 10월, 허씨는 ‘안티후지’를 개설했고 네티즌의 강력한 후원에 힘입어 영어, 일어, 중국어, 독일어, 프랑스어 사이트까지 만들었다.
지난 8월16일, 마침내 결론이 났다. 후지 측에서 허씨의 요구를 받아들여, 본사와 대리점의 계약 사항 중 대리점의 과실이 있을 경우 본사가 소비자에게 선배상한다는 조항을 추가한 것이다. 복사기 수리와 요금 환불도 이루어졌다. ‘목적’이 달성됨에 따라 운동본부의 활동은 자동 정지되었다.
특정 기업이 아닌 업종을 대상으로 한 안티 사이트도 적지 않다. 대표적인 것들이 ‘안티피라미드(antipyramid.org)’ ‘안티인슈(antiinsu.new21.org)’ ‘안티충무로(antichung.petlove.pe.kr)’ ‘노버스(www.nobus. co.kr)’ ‘안티관광에세이(myhome.netsgo. com/naked38/index2.htm)’ 등이다.
‘안티피라미드’는 피라미드 판매 피해자를 위한 사이트다. 지난 1월 오픈, 조회수 50여만 회의 인기 사이트가 됐다. 도움을 받았던 피해자가 다시 다른 피해자를 돕는 식으로, 회사 상대 고소 과정에 벌써 5000여 명이 사이트의 조력을 받았다. 운영자인 이택선(대학휴학생)씨는 이를 두고 ‘인터넷 피라미드 현상’이라는 표현을 썼다.
‘안티인슈’를 운영하는 이는 대구대 보험금융학과에 재학중인 김창수(26) 씨다. 9월 25일 생긴 이 사이트에는 벌써 1만여 명이 다녀갔다. 김씨는 “보험 가입자는 많으나 정보 부족으로 어려움을 겪는 경우가 적지 않다”며 “거대보험회사의 횡포에 맞서 소비자로서의 정당한 권리를 찾는 일에 힘을 보태고 싶다”고 밝혔다. 사이트 첫 페이지에는 ‘보험회사 운영 자산의 98%는 보험계약자의 돈이다’ ‘보험회사 경영자는 언제든 계약자에 의해 임명될 수 있다’는 등의 ‘보험소비자 주권 선언’이 실려 있다.
‘안티충무로’라는 이색적인 이름의 사이트는 서울 충무로와 퇴계로에 밀집해 있는 애견센터들을 타깃으로 삼고 있다. 이곳에서 장염, 홍역, 파보바이러스 등 치명적 질병을 앓거나 선천성 기형이 있는 애완동물을 유통해 소비자들에게 정신적·물질적 손해를 끼치고 있다는 것. 게시판에 속속 피해 사례가 접수되면서 ‘○○애견과 한판!’ ‘○○애견의 사기꾼들을 조심하세요!’ 등 구체적인 경고나 법적 해결 방법을 조언하는 메일들도 폭주 하고 있다.‘노버스’는 말 그대로 버스회사나 기사들의 횡포에 맞서는 소비자 모임. ‘안티관광’ 운영자는 관광학과 대학원생인 정관수 씨다. 잘못된 관광 풍토, 관광학을 비판하고 소비자들의 권익을 보호하기 위해 만들어진 사이트.
반면, 기업 안티사이트를 표방하되 소비자운동이 아닌 노동운동 차원에서 만들어진 것들이 있다.
‘안티배일도(lightning.prohosting. com/~baeildo)’는 지하철노조 배일도 위원장 이하 중앙집행부에 반대하는 노조원들이 개설한 홈페이지다. 운영자는 ‘배좆도’. 배위원장의 이름을 ‘빌려’ 자신들의 주장을 펴고 있다. 첫 화면에는 ‘안티 배일도 홈페이지는 배일도의 목숨이 붙어 있는 한 절대로 어용집행부에 대한 비판의 칼을 놓지 않을 것’이라는 요지의 글이 실려 있다.
‘이랜드에 상처 받은 사람들의 모임(www.noland.co.kr)’ ‘안티구몬(www.anti kumon.or.kr)’ 등은 각기 이랜드와 구몬학습 직원으로 일하다 피해를 본 사람들의 모임이다.
‘안티전경련(www.antofki.com)’은 전경련 퇴직자인 최현규(30) 씨와 그 가족들이 꾸려가는 홈페이지. 최씨 측은 “근무 중 과로로 공황장애라는 난치병을 얻었는데도 책임 회피에만 골몰하는 전경련에 항의하기 위해” 사이트를 만들었다고 한다. 사이트 제목 옆에는 ‘사랑해요 우리 재벌 함께 가요 해체의 길로’라는 슬로건이 걸려 있다. 내용 중 ‘전경련 소개’란에는 전경련 조직도가 그려져 있어 그중 특정 인물 이름을 클릭하면 최씨 사건에 대한 당사자의 ‘육성’을 들을 수 있다.
‘안티건설(plant.new21.org)’은 ‘땜쟁이’라는 ID의 운영자가 꾸려 가는 사이트. ‘노동자의 피를 빨아먹는 악덕 건설업주, 부실공사를 부추기는 건설업자와 보따리 장사꾼을 모든 건설현장에서 추방하고자 만들었다’고 한다. ‘인간답지 못한 이들을 이 시대의 건설현장에서 추방시키는 밑거름이 되겠다’는 것이 사이트의 취지다.
“도메인을 싹쓸이하라!”
기업들이라고 해서 확장일로에 있는 사이버 안티 운동을 보고만 있을 리 없다. 삼성물산과 포스코는 법적 대응을 강구하기도 했다.
삼성물산은 ‘안티삼성아파트(spat. ngokoria.org)’를 운영하는 이기봉(40) 씨를 상대로 ‘삼성아파트를 비난하는 홈페이지 게시물을 삭제해 달라’며 서울지법에 비방 등 금지 가처분신청을 냈다. 이씨는 1993년 삼성아파트를 분양받아 세를 줬지만 실내에 곰팡이가 피는 바람에 97년부터 지난해까지 해마다 보수공사를 받아야 했다. 시공업체인 삼성물산이 자신의 리콜 요구를 거부한 채 하자보수만 계속하자 화가 난 이씨가 안티사이트를 개설한 것. 사이트에는 이씨 집 천장과 벽에 심한 곰팡이가 피어 있는 장면을 찍은 사진은 물론 지금까지 진행된 분쟁 상황이 자세하게 기록돼 있다.
지난 6월 29일, 법원은 삼성물산의 가처분신청을 기각했다. 재판부는 “누구나 자신의 주장을 자유롭게 표현할 권리가 있는데다, 인터넷 홈페이지에 대기업의 영업활동에 대한 문제점을 지적하는 글을 올림으로써 네티즌 사이에 자유로운 토론의 장을 여는 것을 무조건 금지할 수는 없다”는 이유를 들었다. 삼성물산이란 거대기업을 상대로 한 싸움에서 한 이름없는 네티즌이 승리를 거둔 것이다.
반대 사례도 있다. 비슷한 시기, 삼미특수강 해고 노동자들이 만든 ‘안티포스코(antiposco.nodong.net)’ 홈페이지가 포스코 홈페이지의 디자인을 베낀 것이라는 원고 쪽 주장을 부분 인정하는 판결이 나왔다. 게시물 내용을 문제 삼은 것은 아니었으나, 기업 로고 등의 무단사용을 금지함으로써 안티사이트들의 반발을 불러일으켰다.
대기업들의 또 다른 대응책은 ‘도메인 싹쓸이’다. ‘antisamsunglife.co.kr’ ‘anti-lg.co.kr’ ‘antisktelecom.co.kr’ 등 자사 안티사이트의 주소가 될 수 있는 도메인들을 선점해 버린 것. 제일제당은 ‘anti-cj’ ‘anti-thecj’ 등 기업관련 외에 ‘antijaehyunlee’ ‘antileejeahyun’ 등 오너인 이재현 부회장 관련 도메인까지 미리 등록해 놓았다.
그러나 역시 ‘안티’를 뜻하는 접두어 ‘no’는 선점하지 못해 현재 ‘nohyundai. co.kr’ ‘nosamsung.co.kr’ ‘nolg.co.kr’ ‘nosk.co.kr’ 등의 안티사이트가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 삼성의 경우엔 ‘스톱삼성’ ‘아웃삼성’ 등의 사이트도 가동중이다.
외국 사정도 비슷해 요즘 미국에선 기업 이름에 ‘suck, kills, stinks’ 등 영어 욕설을 덧붙인 안티사이트의 폐쇄 문제를 놓고 다국적기업과 시민단체 사이에 연일 공방이 계속되고 있다. 우리나라에도 비슷한 논쟁이 벌어질 날이 머지 않은 듯하다.
‘개고기 반대운동본부’의 활약
언론사를 대상으로 한 안티사이트도 있다. ‘안티조선운동’을 표방하고 있는 ‘우리모두(www.urimodu.com)’가 대표적. ‘안티스포츠투데이(www.antistoo.net)’도 가동 중이다.
안티스포츠투데이는 청년대학생신문 ‘새벽이슬’이라는 기독교언론단체가 운영하는 홈페이지다. 그들은 ‘스포츠투데이바로알기운동 설립취지’라는 글에서 “우리는 그 동안 스포츠투데이의 비기독교, 비윤리, 비도덕성을 줄기차게 지적해 왔다”며 “창간 당시 교회 헌금 유용, 비민주적 회사 경영과 불투명성에 대한 사회·언론·시민단체의 문제제기가 있기 전 기독교계 스스로 문제 해결에 나서야 할 것”이라는 주장을 펴고 있다.
사이트 게시판에는 여의도순복음교회 신도들간의 설전이 어지러이 오가고, 혼란스런 심경을 토론하는 일반 기독교인의 글도 여럿 올라 있다. ‘사진으로 보는 스포츠투데이’란에는 스포츠투데이에 실렸던 선정적 기사 및 광고 사진들이 다수 수록돼 있다.
‘안티경실련(anticcej.com.ne.kr)’은 유일한 안티시민단체 사이트다. 운영자는 20대 중반의 대학생. 그는 전화 인터뷰에서 “의약분업과 관련, 경실련이 보여준 어정쩡한 모습에 실망해 사이트를 만들게 됐다”고 동기를 설명했다. 그러나 꼭 경실련을 타깃으로 한 것은 아니라고. “단체들이 비대해지면서 ‘시민’의 이름을 팔아 잇속을 챙기는 듯한 모습을 자주 보았다. 건전한 토론과 비판을 통해 시민단체에서조차 소외되고 있는 진짜 시민의 목소리를 되찾아주고 싶다.”
최근 두발 자유화 논쟁이 벌어지면서 주목받은 것이 ‘사이버 유스’ ‘채널텐’ ‘아이두’ ‘아이헤이트스쿨’ ‘하늘천사’ ‘엔시팔’ 등 이른바 ‘안티스쿨’ 사이트들이다. 이들 중 몇은 ‘두발제한반대서명운동사이트(www.idoo.net/nocut)’를 개설하고 명동·대학로에서 시위를 벌이는 등의 활동으로, 교육부로부터 ‘두발 규제 완화’라는 전리품을 얻어내는 데 성공했다.
‘아이헤이트스쿨(www.ihate school. co.kr)’ 운영자는 뜻밖에도 고등학생이 아닌 상담학 전공 여성 대학원생이었다. “애초 내가 생각한 것은 잘못된 현실에 대한 ‘대안’으로서의 사이트였지 제도권 교육에 대한 ‘안티’가 아니었다. 욕설이나 인신모독성 글이 올라오면 바로 삭제하는 등 엄격히 관리하고 있다. 또 그런 조치에 반발하는 학생들도 거의 없다. 앞으로 이 사이트가 학생들간에 건강한 커뮤니티를 형성하는 데 기여할 수 있었으면 한다.”
안티사이트 중에는 별난 주제를 담고 있는 것도 많다. ‘안티바나나TV운동본부(www.antibananatv.co.kr)’는 성인인터넷방송국인 바나나TV에 대한 ‘반대운동’을 표방한다. 이들은 머리글을 통해 바나나TV 측에 ‘온라인상에서 회원탈퇴가 가능하도록 메뉴를 구성할 것, 서버 용량을 확대할 것, 서비스에 불만이 있을 경우 환불 받을 수 있게 할 것’ 등을 요구하고 있다.
‘모교사랑죽이기(myhome.naver. com/riveruns/index.htm)’는 요즘 최고의 인기를 누리는 동창 찾기 사이트 ‘모교사랑’에 딴지를 건다. 그런데 이유가 엉뚱하다. ‘동창회란 곳이 불륜의 장이 되어가는 느낌’이라며 ‘모교사랑 때문에 사랑하는 이를 잃으신 소수의 분들을 위한 공간’임을 천명하고 나선 것. 다시 말해, 모교사랑 사이트를 매개 한 동창모임에서 ‘새 짝’을 만난 연인 또는 배우자로부터 실연당한 사람들의 사이트란 뜻이다. 그래서일까. 게시판에는 ‘모교사랑’ 성토, 이별의 회한 등이 담긴 글들이 많이 올라 있고, 조회수도 높은 편이다.
‘개고기반대운동본부(www.powow. com)’는 제목 그대로 ‘개고기를 먹지 말자’고 주장하는 사이트. ‘똥개들도 사람처럼 공포와 고통을 느낍니다. …소, 돼지도 불쌍합니다. 개까지 식탁에 올리지 마세요. 기억하세요. 매년 변기통으로 내려가는 개가 300만이라는 것을. …우리에게도, 개들에게도 행복추구권이 있습니다.’ 사이트 홈에 띄워져 있는 글이다.
일견 장난스럽게 보이는 이 사이트는, 그러나 열렬한 개고기반대론자들의 손에 의해 다채롭게 꾸며져 있다. ‘개도살갤러리’에는 개를 잡는 ‘처절한’ 현장이 여과 없이 실려 있다. ‘언론모니터’란에는 두 차례에 걸쳐 ‘개고기가 몸에 좋다’는 기사를 실은 모 신문 요리전문기자에 대한 통렬한 비난의 글이 올라 있다. 게시판에 “아셈회의장 앞에서 개고기반대 시위를 벌이자”는 글이 오르자 열띤 호응이 이어지기도 했다.
안티사이트 열기가 폭발하면서 ‘안티포탈’ 혹은 ‘안티연합체’를 지향하는 사이트도 속속 등장하고 있다. 일반 안티사이트에도 저마다 다른 사이트를 소개하고 링크시켜 놓은 난이 있어 안티 운동체 특유의 결속력을 보여주고 있다.
‘안티투데이(www.antitoday.com)’는 국내외 안티 관련 뉴스와 사이트를 소개하는 일종의 미디어 포탈이다. 국내외 안티사이트 200여 개를 각기 정치·기업·사회·환경·연예·기타·풍자 분야로 나누어 링크해 놓았다. 주요기관 여론마당이나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곳까지 연결시켜 놓아 상당히 유용하다. 매일 업그레이드되는 안티 뉴스도 볼거리.
사이트 운영자인 강상규(36) 씨는 인터넷 업종에 종사하는 프리랜서. 강씨는 “인터넷이 묶여 있던 시민의 발을 풀어줬다”며 “사이트를 발전시켜 한국의 대표적인 안티 포탈로 만들고 싶다”는 뜻을 밝혔다.
‘예잔티(www.yesanti.com)’는 안티사이트 연합체를 추구한다. ‘예잔티’라는 이름 하에 초고속통신망·이동통신·교육·자동차·미디어·NGO·건강 의료 등 각 분야 안티사이트 25개를 아우르고 있다.
예잔티 운영자는 웹디자인 프리랜서 추형진(27) 씨다. 대다수 다른 개설자들과 마찬가지로, 추씨도 학생운동 또는 시민운동에 몸담은 전력이 없는 ‘순수 사이버 안티맨’이다. “이 땅에 살면서 마음 다치는 일이 참 많았다. ‘꼭 이런 사이트까지 만들어야 하나’ 회의가 없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건전한 비판, 집중적인 관심만이 사회를 바꿀 수 있다는 생각에 사이트를 만들었다.”
추씨는 “연합체를 만들면 안티사이트 상호간 감시와 견제 기능이 살아나 사이트가 더욱 고급화되리라 본다”며 “사이버 안티운동체간 커뮤니티를 형성, ‘안티’가 필요없는 그날까지 열심히 활동하고 싶다”고 밝혔다.
‘안티100(www.anti-100.com)’은 100개의 안티사이트가 링크돼 있는 일종의 순위 사이트다. 수많은 안티사이트 중 ‘말 되는’ 곳만 찾아 소개한다는 취지. 이 곳에 가면 웬만한 안티사이트는 다 둘러볼 수 있다.
‘사이버행동네트워크(n119.org)’는 닉스 도메인 사건을 공론화시킨 ‘아이헤이트아이프리(ihateifree.com)’ 운영진이 ‘우리 권리를 스스로 지키는 인터넷 신문고’란 슬로건 아래 모인 안티사이트 운동체다. 닉스 도메인 사건은 상금 3억원을 걸고 도메인 공모에 나선 청바지 업체 닉스가 미리 정해 놓은 도메인을 당선작인양 발표해 빈축을 산 것. 닉스는 결국 네티즌의 격렬한 항의에 굴복해 사과하는 한편 보상금 3억원을 내놓았다. 네티즌은 이 돈을 북한동포돕기 성금으로 보냈다. 전력에서 알 수 있듯 사이버행동네트워크는 네티즌과 사이버상 소비자의 권리를 보호하고 기업 마케팅 활동을 감시하는 게 주목적이다.
‘사이비청와대’에선 무얼 먹나
패러디 사이트지만 사실상 안티사이트에 가깝게 인식되는 것들도 있다. 사이비청와대(www.bluehouse.co.kr)는 개인사업을 하는 김종영(40)씨가 운영하는 곳. 조회수가 150만회에 이를 정도로 인기가 높다. 종합쇼핑몰을 꾸미려 ‘bluehouse’란 도메인을 구입했다 그 일이 무산되자 재미 삼아 청와대 패러디 사이트를 만들었다. ‘오늘의 청와대 식당메뉴’란에 ‘아침:월성원자력 주꾸미회, 점심:새우쌈 등터진 고래, 저녁:중앙시장 본때 김밥’하는 내용을 올려놓는 식이다.
초기에는 청와대 쪽 인사가 전화를 걸어와 ‘그 도메인은 가져갈 수 없는 것 아니냐, 불순한 의도가 있지 않으냐’며 따지기도 했다고. 김씨는 “난 특별히 사회에 불만이 많거나 김대중대통령에게 반감을 갖고 있는 사람이 아니다. 그저 이 사이트가 사회에 ‘딱총’ 같은 구실을 하는, 그렇게 재미있고 속시원한 곳이 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분야에 상관없이 네티즌들의 각종 ‘불만’을 흡수하는 색다른 분위기의 안티사이트도 상당히 많다.
‘불만공화국(www.bullman.co.kr)’은 TOKinfo라는 인터넷 미디어 기획팀이 운영하는 사이트다. 말 그대로 학교·연인·보험·병원·정치·대중문화 등 온갖 것들에 대한 ‘불만’을 털어놓을 수 있도록 되어 있다. ‘투덜이(www.tooduri.co.kr)’ 역시 정부·국회·정치인·기업·법원·경제·기관·언론·외국 등 온갖 분야에 불만을 가진 사람들에게 ‘투덜댈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하는 것이 목적. 주식투자·실업·의약분쟁·선수협의회·재벌·인터넷통신사 등 ‘주요 불만대상’을 따로 정해놓고 있다. ‘울소모(울화통터진소비자들의모임, www.netoan.com/~ulsomo)’와 고자질(www.cozazil.com)’도 비슷한 사이트다. ‘소불알(www.vokorea.com)’은 ‘대한민국 자유게시판’을 표방한 홈페이지. ‘대한민국 구석구석 흩어져 있는 자유/공개 게시판 글을 체계적으로 관리, 게시하는 것’을 목적으로 삼는다.
자유의 마지노선은 어디?
안티사이트에 대한 일반의 시각은 긍정적인 편. 특히 시민단체에서는 “사회권력에 대한 새로운 감시·통제시스템 역할을 하고 있다”며 환영하는 분위기다. 기존 구도에선 소외될 수밖에 없었던 개인이나 단체가 인터넷이란 무한증식의 평등 공간을 통해 비로소 제 목소리를 찾게 된 까닭이다. 일반 대중이 정보의 생산자 역할까지 할 수 있게 됐다는 것은 분명 놀라운 변화다. 그런 면에서 안티사이트는 정보화를 통한 민주주의 진전의 상징으로 받아들여지기도 한다.
사이버문화연구실 양소연 연구원은 “욕설이 난무하는 연예인 관련 홈페이지라 해도 청소년들에게 ‘말할 계기’를 만들어준다는 것만으로 충분히 의미가 있다”며 “안티사이트는 인터넷이 사회 발전과 언로 획득을 위한 저항의 공간이 될 수 있음을 보여주는 긍정적인 사례”라고 말했다.
그러나 우려가 없는 것은 아니다. 문화평론가 정윤수 씨는 “안티의 자유는 한 사회의 정신적 성숙을 재는 잣대다. 그런 점에서 안티사이트 열기는 지지해 마땅하다”면서도 “자유를 위해서는 마지노선이 필요하다. 자신에 대한 안티의 자유마저 승인할 수 있을 때 참다운 논쟁과 비판 문화가 자리잡을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문화평론가 장은수 씨는 좀더 비판적이다. “안티사이트는 여러 긍정적인 면에도 불구하고 ‘인민재판’으로 비화될 위험성이 상존한다. 실명이 아닌 익명으로 특정 회사나 개인을 공격하는 것은 정당한 권리 행사라기보다 폭력에 가깝다.
안티사이트 운영자나 그를 통해 어떤 대상을 고발하려는 사람이라면 떳떳이 이름을 밝힐 수 있을 만큼의 도덕성을 갖추고 있어야 한다. 혹여 안티사이트가 무서워서 해야 할 말을 못하는 세상이 된다면 그 또한 문제 아닌가.”
그런 의미에서 숙명여대 언론정보학과 강미은 교수는 “네티즌이 정보 수용자 혹은 1차 생산자의 역할에서 한발 더 나아가 정보의 평가자가 돼야 한다”고 주장한다.
사이버 공간의 개방성과 익명성은 자율과 책임을 기반으로 할 때 비로소 진가를 발휘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