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 11월호

다목적기 라팔, 그 현란한 기술의 세계

프랑스 힘의 원천 첨단 방위산업 현장을 가다

  • 이정훈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hoon@donga.com

    입력2006-08-02 11:3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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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공대지 공대공 능력을 겸한 RBE-2 레이더, 600㎞ 바깥에 있는 목표물을 정확히 파괴할 수 있는 스칼프 크루즈 미사일, 자기 몸무게의 1.5배를 진 라팔을 이륙시키는 M88 엔진 등을 개발함으로써, 프랑스는 해군기와 공군기, 제공기와 전폭기로 모두 쓰일 수 있는 다목적기 라팔을 생산하는 데 성공했다. 이러한 첨단 기술력 덕분에 프랑스는 그들의 자주성을 고집할 수 있는 것이다.
    • 통일 개척 시대를 앞둔 한국은 이러한 프랑스를 벤치마킹해야 한다.
    지난 9월 19일 오후 1시 30분쯤 김포공항을 이륙한 대한항공기는 같은 날 오후 5시 30분쯤 프랑스 파리 근교의 샤를 드골 공항에 착륙했다. 11시간이나 걸린 긴 여행이었지만 해를 따라 서쪽으로 비행한 관계로, 시간상으로는 불과 4시간밖에 걸리지 않았다. 샤를 드골 공항에는 을씨년스러운 가을비가 뿌리고 있었다. 그 동안 다녀본 외국 취재 여행 경험을 고려하면 크게 주목할 바 없는 풍경이었다. 하지만 이 평범함을 벗겨내고 ‘프랑스의 힘’을 직시해야 한다.

    프랑스의 힘

    프랑스는 NATO 회원국이지만 전적으로 미국에 협조하지 않는다. 소련 붕괴로 ‘팍스 아메리카나(미국의 세계 지배)’가 더욱 공고해진 지금도, 미국의 결정이 국익에 어긋난다고 판단되면 언제든 다른 목소리를 낸다. 프랑스가 제 목소리를 낼 수 있는 것은 힘이 있기 때문이다. 그 힘은 입생로랑이나 샤넬 등의 고가 브랜드나, 루브르나 베르사유 같은 유적, 코냑과 와인 같은 문화 상품에서 나오는 것일 수도 있다. 그러나 진정한 힘은 첨단 과학기술, 그중에서도 방위산업에서 나온다. 그 방위산업을 만져보기 위해 기자는 파리에 들어간 것이다.

    프랑스 항공우주협회가 보여주기로 한 분야는 라팔(Rafale: 불어로 ‘돌풍’이라는 뜻) 전투기를 중심으로 한 방위산업이었다. 전투기 생산은 첨단기술이 집합된 최고의 방위산업 분야다. 한국은 전투기는 독자적으로 생산하지 못하고, 가장 초보적인 프로펠러 훈련기인 KT-1만을 독자 생산하고 있다. 한국에서 조립되는 전투기 KF-16은 미국에서 개발한 부품을 가져다 조립하는 것이어서 독자 생산과는 한참 거리가 멀다. 프로펠러 훈련기에 이어 제트 훈련기를 개발한 다음에야 비로소 초보적인 전투기를 독자 개발할 수 있는데, 일본이 현재 이 단계에 들어서 있다.

    라팔은 한국 공군이 추진하는 40억 달러 규모의 차기 전투기 도입(FX) 사업에 도전장을 내민 4대 기종 중 하나다. 라팔을 비롯한 4대 기종은 현존 전투기 중 가장 최신형으로, 이른바 ‘제4세대 전투기’다. 5세대 전투기는 미국의 F-22뿐인데, F-22는 아직 세상에 나오지 못했다. 한국은 제1세대 전투기도 생산하지 못하고 있는데 프랑스는 4세대 전투기를 생산하는 것이다.



    4세대 전투기 중에 가장 먼저 세상에 나온 것이 72년에 생산된 미국의 F-15이고, 두 번째가 러시아의 수호이 35(86년 생산 시작), 세 번째가 98년경에 나온 프랑스의 라팔과 영국·독일·이탈리아·스페인 4개국이 공동개발한 유러파이터 타이푼이다. 4세대 전투기의 생산 순위는 각 나라의 국가 서열을 보여주는 바로미터다. 기자가 세계 1위가 아니라 3위인 프랑스를 취재한 데는 이유가 있는데, 이는 뒤에 설명하기로 한다.

    프랑스 항공우주협회측은 라팔만을 홍보하기 위해 기자를 초청하려고 했다. 이에 대해 기자는 “이미 라팔은 충분히 알고 있다. 기자가 알고 싶은 것은 라팔이 아니라 라팔을 제작하는 프랑스의 과학기술력이다. 라팔을 제작하는 다쏘항공뿐만 아니라 라팔에 탑재되는 주요 장비와 무기를 제작하는 회사와 공장까지 함께 방문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프랑스 항공우주협회는 이 요구를 받아들이는 대신, “한국에서도 방산업체를 방문하면 기무사에 신원조회를 하지 않느냐”며, 기자에 대한 신원조회를 하자고 요구했다. 그들이 말하는 신원조회란 ‘기자가 미국이나 기타 주요 국가의 방위산업 스파이가 아닌가’에 대한 조사였다.

    첨단 방산 분야는 총성 없는 전쟁터다. 91년 실제로 프랑스의 미사일 제작사인 마트라는 미국 스파이로 활동한 직원을 찾아내 추방한 적이 있었다. 프랑스 항공우주협회가 신원조회를 해야겠다고 한 것은 이런 이유에서였다. 신원조회 때문에 닷새 정도 출발이 늦어졌다.

    유럽의 중심국가가 된 프랑스

    파리 도착 다음날 다쏘항공의 로빈 부사장을 만나 점심을 같이 했다. 로빈 부사장과는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그는 “남북 화해시대를 개척하는 지금 왜 한국은 제4세대 전투기를 도입하려고 하는가”라고 물었다. 기자는 이렇게 대답했다.

    “많은 사람들은 한반도가 재통일되면 정세가 안정돼 국방비가 크게 줄 것으로 보고 있다. 그러나 한국 식자층의 생각은 정반대다. 전쟁을 비롯한 위기는 언제나 평화의 빛이 비쳐오는 여명기에 일어났다. 한반도가 재통일되는 시기는 평화가 안착되는 시기가 아니라 오히려 평화가 위협받는 시기가 될 수 있다. 더구나 한반도는 미·일·중·러 등 4대 강국에 둘러싸여 있다. 이러한 구도 속에서 자주적으로 통일을 이룩하려면 한반도 내부는 물론이고 외부에서 재통일에 반대하는 세력을 제압할 수 있는 힘이 있어야 한다. 한국이 어려운 경제환경 속에서도 FX 사업을 펼치는 것은 그런 이유 때문이다.”

    내친 김에 기자는 프랑스의 첨단 방산 업체를 취재하게 된 동기까지 밝혔다.

    “한국이 6·25전쟁으로 폐허가 됐다면, 프랑스는 1·2차 세계 대전의 전쟁터였다. 한국이 섬나라 일본과 아웅다웅하듯, 프랑스와 영국은 오랜 숙적이다. 한국이 4강에 둘러싸여 있다면, 프랑스는 동쪽과 남쪽으로는 2차 대전 때 프랑스를 공격해 점령한 독일·이탈리아, 서쪽으로는 영원한 라이벌 영국, 서남쪽으로는 무시 못할 스페인과 접해 있다. 그 바깥으로는 다시 미국과 구소련에 둘러싸여 있다. 이렇게 방어선이 많은 나라인데도 프랑스는 유럽의 중심국가(hub country)로 발전하는 데 성공했다. 프랑스가 중심국가가 된 비결이 무엇인지 알고 싶어서 왔다.”

    프랑스에는 두 개의 고정익 항공기 제작사가 있다. 다쏘항공은 주로 군용기를 제작하고, 다른 하나인 ‘아에로스파시알’은 에어버스를 비롯한 민항기를 주로 제작한다. 프랑스에도 우리처럼 가계를 중심으로 경영권을 세습하는 재벌기업이 있다. 라팔을 제작하는 다쏘항공이 이러한 재벌 중 하나다. 그러나 프랑스 재벌은 여러 업종으로 문어발을 뻗지 않고, 한 분야만 파고드는 특성이 있다.

    다쏘항공의 레지스탕스 정신

    다쏘항공이 포함된 다쏘그룹의 창업자는 ‘마르셀 블로크(Marcel Bloch)’인데 그는 1차 대전 때부터 항공기 제작사를 운영했다. 1939년 2차 대전이 일어나자 그의 형 폴 블로크는 레지스탕스 지도자로 활동했는데, 이때 형이 쓴 가명이 ‘다쏘(Dassault)’였다. 이러한 형의 영향을 받아 마르셀 블로크도 레지스탕스 운동에 협조했다. 1940년 어느날 산책을 하던 마르셀 블로크는 네잎 클로버를 발견해 수첩에 꽂아두었다. 그 후 그는 독일군에게 붙잡혀 이 수첩을 압수당했는데, 1945년 전쟁이 끝나자 이 수첩이 신기하게도 되돌아왔다.

    드골 장군이 ‘위대한 프랑스’를 외치며 국가 재건에 나서자, 마르셀 블로크도 회사를 재건했다. 이때 마르셀 블로크는 형의 영웅적인 행동을 기려, 자신의 성과 회사 이름을 ‘다쏘’로 바꾸고, 레지스탕스 정신과 행운을 가져다준 네잎 클로버를 회사 로고로 결정했다. 1995년 이러한 마르셀 다쏘가 죽자 그의 아들 세르주 다쏘가 뒤를 이었다. 세습에 의해 경영권이 이양됐다지만, 다쏘그룹에는 레지스탕스의 정신이 깔려 있는 것이다. 항일 정신이 깔려 있는 우리 재벌 그룹은 몇이나 될까. 똑같이 자주성을 추구한다고 해도, 프랑스와 한국 기업은 창업 정신에서부터 이렇게 차이가 있다.

    다음날 라팔을 조립·제작하는 다쏘항공의 공장을 방문해 약 1시간 30분에 걸쳐 브리핑을 받았다. 브리핑 내용을 요약하면 ‘다쏘항공은 부품을 제작하고 최종 조립하는 데 그치지 않고, 부품을 제작하는 공작기계와 이 부품을 조립하는 로봇까지 생산한다’였다. 이는 매우 중요한 언급인데 이를 한국에 비교해 설명하면 이렇다.

    “한국은 자동차와 반도체를 생산해 수출한다. 그러나 부품을 생산하는 공작기계와 이를 조립하는 로봇은 아직까지 만들지 못한다. 때문에 자동차와 반도체의 생산량을 늘리려면 먼저 공작기계와 로봇부터 수입해와야 한다. 한국이 수입하는 것은 원자재만이 아닌 것이다. 이처럼 산업구조가 최종품 생산 위주로 돼 있다 보니, 한국은 최종품을 알리기 위한 광고비 지출이 많다. 광고가 많으니 수출이 많은 나라로 인식돼, 관련국들로부터 수입 규제도 받게 된다. 때문에 생산과 판매량을 늘리면 늘릴수록, 한국은 원자재와 공작기계 수입을 늘려야 하고, 덩달아 수입규제까지 더 받는 신세가 되는 것이다. 한국 경제가 외부 변화에 취약한 ‘빛 좋은 개살구’가 된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반면 프랑스는 외부 변화에 크게 휩쓸리지 않는다.”

    다쏘항공은 기술적인 면에서는 미국의 F-15보다는 영국 등 4개국이 개발한 유러파이터 타이푼(이하 타이푼)을 더 라이벌로 생각했다. 그도 그럴 것이 라팔과 타이푼(typhoon: 태풍)은 같은 뿌리에서 나왔기 때문이다. 미국이 4세대 전투기인 F-15의 대량 생산에 들어간 1970년대 말, 미국의 독주에 불안을 느낀 프랑스와 영국·서독(독일)·이탈리아·스페인은 유럽형 4세대 전투기(당시 이름은 유러 파이터)를 생산하기로 결정했다. 그러나 각국이 생각하는 전투기의 스타일이 달랐다. 영국은 순수 제공기를 생산하자고 주장했고, 프랑스는 다목적기를 고집했다.

    제공기와 다목적기는 어떻게 다를까? 전투기는 사용 목적에 따라 ‘제공기’와 ‘전폭기’로 나누어진다. 전투기는 원칙적으로 적진으로 날아가 지상에 있는 목표물을 폭격하기 위해 만든 것이다. 약간의 공중전 능력을 겸비한 채 적진을 폭격하러 들어가는 전투기를 전폭기라고 한다. 이러한 전폭기가 날아오면, 적군은 전투기를 띄워 이 전폭기를 요격하려고 할 것이다. 따라서 전폭기를 보낼 때는 아군 전폭기를 요격하려는 적 전투기부터 잡아야 한다. 공중전 끝에 적 전투기를 잡는 전투기가 ‘제공기’다.

    제공기와 전폭기 중 성능이 탁월한 것은 제공기다. 제공기는 움직이는 목표(적기)를 요격해야 하니, 지상에 고정된 목표물을 공격하는 전폭기보다 훨씬 더 정교한 레이더와 미사일을 갖추고 있어야 한다. 이런 이유로 제공기는 전투기의 대명사로 꼽히는데, 미 공군은 이러한 제공기로 F-15, 전폭기로는 F-16을 보유하고 있다.

    또 전투기는 지상 기지를 뜨고 내리는 ‘공군기’와 항공모함을 기지로 이용하는 ‘해군기’로 나누어진다. 항공모함의 활주로는 지상 기지의 활주로보다 더 짧다. 항공모함은 최고 시속 55㎞대로 움직이므로, 해군기는 이동하는 활주로(항모)에 이착함할 수 있어야 한다. 또 해군기는 소금기가 섞인 바닷바람을 맞는 관계로 부속품이 빨리 부식된다. 따라서 해군은 별도의 전투기를 채택해왔는데, 미 해군은 제공기로 F-14를, 전폭기로 FA-18을 운영해왔다(한국은 항모가 없는 관계로 아예 해군기가 없다).

    새 전투기가 상업적으로 성공하려면 최소 800대 이상 생산되어야 한다. 미국의 경우라면, 해군과 공군이 제공기와 전폭기로 최소 3200대를 보유해줘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미 해군과 공군이 보유할 수 있는 적정 전투기 수는 1200대 정도다. 이러니 미국의 항공기 제작업체들은 세계 각국에 전투기를 팔기 위해 필사적일 수밖에 없었다. 미국이 장악한 세계 전투기 시장에 뒤늦게 컨소시엄을 구성한 유럽 업체들이 뚫고 들어갈 수 있을 것인가? 1970년대 후반 유럽 5개국은 이런 문제에 봉착하게 되었다.

    영국은 유럽이 생산할 제4세대기는 공군용 제공기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프랑스의 생각은 달랐다. 프랑스는 ‘공군용 제공기부터 개발하면, 유럽은 장차 네 종류 전투기를 전부 만들어야 한다. 유럽은 과연 이렇게 많은 전투기를 팔 시장을 확보할 수 있을 것인가? 제공기·전폭기, 해군기·공군기는 역할만 다를 뿐이지, 기본적으로 똑같은 전투기다. 그러니 전투기는 하나로 만들고, 전투기에 탑재하는 레이더와 미사일 등을 제공기와 전폭기용, 해군기와 공군기용으로 개발하는 것이 훨씬 더 경제적’이라며 다목적기 개발을 주장했다.

    이러한 의견 차이로 인해 컨소시엄에서 탈퇴한 프랑스는 독자적으로 다목적기인 라팔 개발에 착수했다. 반면 유럽 4개국은 영국의 의견을 좇아 공군 제공기용인 타이푼 개발에 들어갔다. 20여 년이 흐른 지금 프랑스와 유럽 4개국은, 비슷한 시기에 FX 사업을 추진하는 한국과 그리스라는 시험장에 각자의 ‘답안지’(라팔과 타이푼)를 제출해놓고, 초조히 ‘채점’을 기다리고 있다.

    다목적기 개발 지향

    9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프랑스의 선택은 무모해 보였다. 타이푼은 공동개발에 참여한 4개국 모두 사줄 것이므로, 초장부터 큰 시장이 확보된다. 하지만 라팔의 최초 고객은 프랑스의 해·공군뿐이므로 초기 시장이 작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이를 입증이라도 하듯 타이푼이 개발되자 유럽 4개국은 620대 생산을 주문했다. 그러나 프랑스 해·공군은 295대밖에 발주하지 못했다. 전투기도 제품인 이상 시장을 확보하지 못하면 퇴출될 수밖에 없다. 그러나 프랑스는 예상밖으로 덤덤해했는데, 그 이유는 차차 설명하기로 한다.

    다목적기를 지향한 프랑스의 꿈이 실현되려면, 이 계획에 참여한 회사들이 필요한 부속과 레이더·미사일을 개발해줘야 한다. 프랑스는 과연 그 꿈을 실현했는가? 이 궁금증은 ‘톰슨-CSF 데테시스(Detexis)’라는 회사를 방문하면서 풀렸다. 톰슨-CSF 데테시스는 기자가 방문한 회사 중에 가장 복잡한 보안 시스템을 갖춘 회사였다. 이 회사 이사진을 만나기 위해, 신원을 확인해야만 열어주는 자동문을 두 개나 통과했다. 그리고 건물 안에서도 안내자가 키카드를 사용해 문을 열어줘야만 사무실로 들어갈 수 있었다.

    이 회사는 톰슨-CSF 그룹의 자회사다. 톰슨-CSF는 8개 소그룹으로 구성된 세계적인 전자 그룹인데, 이 그룹은 삼성전자와 공동으로 ‘삼성 톰슨-CSF’를 만들어, 한국이 독자개발한 육군용 단거리 방공 미사일 ‘천마’ 생산에 참여하고 있다. 90년대 초반 톰슨-CSF 그룹은 극도의 재정 위기에 봉착해, 부채 해결 차원에서 가전 소그룹을 단돈 1달러에 대우그룹에 넘기려 했다. 그러나 프랑스의 자존심을 내세운 근로자들이 극렬히 반대해 매각이 무산됐다. 7∼8년이 지난 지금 톰슨-CSF의 가전 소그룹은 흑자로 돌아섰고, 대우그룹은 공중 분해되었다.

    여기서 ‘톰슨(Thomson)’은 불어가 아니라 영어로 미국인 이름이다. 이 회사는 1893년 미국의 전기 기술자 톰슨이 자기 이름을 따서 세운 ‘톰슨 컴퍼니’에서 비롯되었다. 그런데 프랑스 정부가 이 회사를 매입해 ‘톰슨 무선(無線)회사’로 이름을 바꾸었는데, 톰슨 무선회사가 불어로는 ‘Thomson Communication Sans Fil’이어서, 톰슨-CSF가 되었다. 자주성이 강한 프랑스 정부는 미국의 사기업을 국영기업으로 사들였는데도, 미국식 이름을 그대로 유지한 것이다. 이러한 프랑스의 특성이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60m 초저공비행 가능

    톰슨-CSF 데테시스는 먼저 라팔 전투기가 지상 60∼70m(200피트)라는 초저공에서 마하 0.95로 비행하는 비디오를 보여주었다. 비행기가 지형 지물을 피해가며 초저공비행을 하려면 속도를 늦춰야 하는데, 속도를 늦추다 보면 ‘실속(失速)’으로 추락할 수도 있다. 저공비행을 위해 개발된 헬기일지라도 200피트 비행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닌데 라팔은 성공한 것이다. 비결은 93년 8월 이 회사가 개발한 RBE-2 레이더에 있었다. RBE-2 레이더는 사진에서처럼 라팔 전투기 맨 앞부분에 들어 있다.

    방산 분야는 매우 전문적이어서 기본 지식이 없으면 아무리 설명을 들어도 이해할 수가 없다. 더구나 톰슨-CSF 데테시스 직원이나 기자 모두 서투를 수밖에 없는 영어로 설명을 하니, 톰슨-CSF 데테시스측은 기자가 자신들의 설명을 제대로 이해하는지 무척 신경을 썼다. 그런데 기자가 라팔의 초저공비행에 깜짝 놀라며 관심을 보이자, 그들은 비로소 밝은 표정으로 신나게 설명을 이어 나갔다.

    지금까지 나온 기계식 레이더들은 대개 1초에 한 번 지형 지물을 탐색한다. 그러나 전자식인 RBE-2 레이더는 5마이크로초(micro-second : 100만 분의 1초)에 한번 탐색한다. 기계식 레이더에 비해 20만 배나 빨리 지형 지물을 읽어내기 때문에 라팔이 초저공비행을 할 수 있는 것이다. 초저공비행을 할 수 있다는 것은 라팔이 지상 목표물을 공격하는 전폭기 구실을 완벽히 수행할 수 있다는 뜻이다.

    라팔은 전폭기 구실을 수행하기에 앞서 자신을 요격하려는 적기와 대결해야 한다. 이때 조종사는 RBE-2 레이더를 공중전 모드로 바꿔, 라팔을 제공기로 변신시킨다. 지금까지 전투기에 탑재된 기계식 레이더는 대개 전투기 전방 60。 안에 들어온 적기만을 탐지해 왔다. 때문에 60。 안에 있던 적기 중 일부가 갑자기 60。 바깥으로 달아나면 이 전투기는, 60。 안에 더 많은 적기가 남아 있는 관계로 60。 바깥으로 달아난 적기에 대한 탐색은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다 60。 바깥으로 달아난 적기가 역습해오면 꼼짝못하고 당하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톰슨-CSF 데테시스는 이러한 위험성을 없애기 위해 RBE-2 레이더의 탐지각도를 140。로 확대했다. 컴퓨터에도 용량이 있듯이 레이더에도 용량이 있다. 탐지 각도 안에 너무 많은 적기가 들어오면, 레이더는 이를 다 읽지 못하거나 혼란을 일으키는 것이다. 그러나 RBE-2 레이더는 용량이 커서 최고 40대의 적기를 탐지할 수 있다. 이로써 라팔은 기존의 제공기보다 훨씬 탁월한 능력을 갖게 되었다. RBE-2 레이더는 라팔에게 제공기와 전폭기 능력을 주었을 뿐만 아니라 그 능력을 현저히 강화시켜준 ‘마법의 눈(眼)’이다.

    톰슨-CSF 데테시스 임원진은 “공대지는 물론이고 공대공 능력을 겸하면서 동시에 이렇게 능력을 증가시킨 레이더를 장착한 전투기는 라팔뿐이다. 미국 전투기들도 이러한 레이더를 장착하지 못했다. 미국은 현재 연구 개발중인 F-22기에서 이와 비슷한 성능을 가진 레이더를 장착할 예정인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이 회사가 내놓은 또 하나의 걸작은 라팔의 보조연료 탱크 자리에 장착하는 지상 정찰 카메라 ‘사리스(SARIS)’다. 보조연료 탱크와 흡사하게 생긴 사리스는, 150㎞ 떨어진 곳에 있는 물체를 1m 해상도로 찍을 수 있다. 미국이 자랑하는 세계 최고의 군사 첩보위성인 KH-12와 KH-14의 해상도가 20cm 내외고, 기타 국가가 보유한 군사 첩보위성의 최고 해상도가 대략 1m 내외다. 따라서 사리스를 장착한 라팔은 웬만한 군사 첩보위성 수준의 사진을 찍을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사리스는 군사 첩보위성보다 더 효과적이다. 군사 첩보위성은 일정한 궤도를 돌기 때문에, 천문학적 지식만 있다면, 이 위성이 접근하는 시간을 알아낼 수 있다. 적국이 군사 첩보위성이 접근하는 시간에 군사 행동을 중지한다면, 군사 첩보위성 운영국은 적국의 군사 행동을 까맣게 모를 수도 있다. 이러한 한계 때문에 미군은 그들이 원하는 시간에 불쑥 적 상공으로 날아가 사진을 찍을 수 있는 U-2 정찰기를 운용해오고 있다. U-2기는 지대공 미사일이 도달할 수 없는 고공에서 적국을 촬영한다.

    자유자재로 적국 영공에 들어가 정찰할 수 있는 U-2기 수준의 정찰기를 갖는 것은 세계 모든 나라의 꿈인데, 현재 한국은 U-2 수준의 첩보기를 도입하기 위해 린다김 사건으로 유명해진 백두/금강 사업을 펼치고 있다. 그러나 백두/금강 정찰기는 적의 지대공 미사일을 피할 수 있을 만큼의 고공비행이 불가능하다는 치명적인 약점이 있다. 사리스를 장착한 라팔도 U-2기처럼 고공비행을 하지는 못한다.

    그러나 라팔은 공중전을 펼치는 전투기이므로 유사시 적 미사일을 피할 수 있는 각종 전자전 장비를 갖추고 있다. ‘디코이’라는 허수아비를 떨어뜨려 적 미사일을 엉뚱한 곳으로 유인하고, 적 레이더에 전자파를 쏴 탐지를 방해할 수도 있다. 이러한 장비들을 ‘스펙트라(SPECTRA)’라고 하는데, 스펙트라 덕분에 사리스를 장착한 라팔은 비교적 안전하게 적진을 정찰할 수가 있다. 사리스 개발로 라팔은, 제공기를 넘어 정찰기로 쓰일 수 있는 ‘눈’까지 갖게 되었다.

    그렇다면 라팔은 제공기나 전투기처럼 싸울 수 있는 ‘주먹(미사일)’도 갖게 됐는가? 이에 대한 답변을 듣기 위해서는 ‘마트라 BAe 다이내믹스’사를 방문해야 했다. 이 회사의 보안 시스템도 톰슨-CSF 데테시스 못지않게 까다로웠다. 이 회사의 아라공 이사는 “한국 기자로서 당신이 처음 방문했다”는 말로 기자를 맞았다. 그래도 톰슨-CSF 데테시스는 두 군데 쇼룸을 공개했으나, 마트라 BAe 다이내믹스는 브리핑 룸에서 모든 것을 보여주려고 했다. 회사 관계자는 “특급 보안시설이라 그렇다”며 양해를 구했다.

    이 회사 이름에 BAe가 붙어 있는 것은 주목할 만하다. BAe는 라팔의 최대 라이벌인 타이푼 개발을 주도해오고 있는 영국의 항공기 제작회사 이름이다. BAe는 전세계 제트 훈련기 시장을 석권한 ‘호크’와 수직 이착륙기의 대명사인 ‘해리어’, 영국 공군의 전폭기로 명성을 날린 ‘토네이도’ 등을 제작해왔다. 이중에도 호크와 해리어는 세계적으로 호평을 받아, 세계 최강 미국도 동급 기종의 개발을 포기하고, 공동개발 형식으로 호크와 해리어를 구입, 사용해오고 있다.

    사거리 600㎞의 크루즈 미사일

    최근 BAe 시스템스로 이름을 바꾼 이 회사는 미국의 항공방산 그룹인 록히드 마틴의 자회사인 AES를 인수해, 세계 최대의 방산 그룹이 되었다. 이러한 회사의 로고가 프랑스의 대표적인 미사일 제작회사 이름에서 발견되니 그 이유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그 이유는 기업간 합병과 매수가 자유로운 서구 자본주의 특성에 있었다. 한 관계자는 이렇게 설명했다.

    “프랑스와 영국은 백년전쟁을 벌인 숙적이지만, 1·2차 대전 때는 한편이 되었다. 이처럼 경쟁과 협력이 반복되어온 것이 유럽의 역사다. 경쟁과 협력이 반복되는 것 자체가 또 인생이지 않은가? 중요한 것은 필요할 때는 적과도 적극적으로 동침하고, 반대로 맞서야 할 때는 친구일지라도 확실히 맞설 수 있는 ‘자주성’이다. 프랑스의 미사일 제작회사가 영국의 항공기 제작사와 합종연횡하는 것은 조금도 이상하지 않은 ‘현실’이다.”

    마트라(Matra)는 원래 프랑스의 미사일 제작사다. 그런데 새로운 시장을 창출하기 위해 영국의 BAe와 공동투자해 ‘마트라 BAe 다이내믹스’를 만들어 영국이라는 새로운 시장을 확보하게 되었다. 최근 마트라 그룹은 마트라 BAe 다이내믹스와 기타 유럽 국가의 미사일 제작사를 합병해 ‘뉴 MBD(NEW Matra BAe Dynamics)’를 만들려 하고 있다.

    마트라 BAe 다이내믹스의 생산품 중에 가장 주목할 것은 프랑스 공군에서는 ‘스칼프(SCALP) EG’, 영국 공군에서는 ‘스톰 섀도(Storm Shadow)’로 불리는 크루즈 미사일이었다. 공교롭게도 한국 공군의 FX 사업에 참여한 프랑스와 영국 등 유럽 4개국은 “한국이 우리 전투기를 선택해준다면 ‘스칼프 EG’ 혹은 ‘스톰 섀도’로 불리는 크루즈 미사일을 달 수 있게 해주겠다”고 밝힌 바 있다. 이러한 사실은 기자가 주간동아 250호(9월7일자)를 통해 처음 보도했는데, 스칼프 EG/스톰 섀도 크루즈 미사일의 최고 순항거리는 무려 600㎞다.

    스칼프의 개발이 완료된 것은 99년 5월이었다. 현재 한국은 미국과 교환한 ‘미사일 양해 서한’ 때문에 순항거리가 180㎞를 넘는 미사일은 보유하지 못한다. 따라서 FX 사업을 계기로 스칼프를 도입한다면, 이 서한은 무력화될 가능성이 크다. 이러한 점 때문에 기자는 “과연 마트라 BAe 다이내믹스가 한국에 스칼프 EG를 제공할 수 있겠는가?”부터 물었다. 아라공 이사는 실망스럽기는 하지만 매우 정확한 답변을 해주었다.

    “프랑스는 300㎞ 이상을 비행하는 미사일의 수출을 금지하는 미사일기술통제체제(MTCR) 가입 국가다. 따라서 600㎞를 비행하는 스칼프 EG는 공급하지 못할 것으로 보인다. 프랑스가 제공하는 것은 300㎞짜리 스칼프 EG가 될 전망이다.”

    라팔의 작전 반경은 1800㎞다. 1800㎞를 날아간 라팔이 다시 300㎞를 비행하는 크루즈 미사일을 발사한다면 라팔의 공격 반경은 무려 2100㎞로 넓어지는 셈이다. 작전 반경 2100㎞를 공격할 수 있는 공군력을 가진다면, 한국은 재통일을 방해하는 웬만한 위협은 억제할 수 있을 것이다. 타이푼은 스칼프 EG를 한 발 장착하는 데 비해, 라팔은 두 발을 장착할 수 있다. 이러한 사실은 라팔이 전폭기가 되는 데 필요한 ‘강력한 주먹’을 확보했다는 뜻이 된다.

    이어 살펴볼 것은 라팔이 제공기 구실을 할 수 있는 ‘주먹’을 가졌는가의 문제다. 이에 대해 마트라 BAe 다이내믹스측은 98년 6월 개발완료한 ‘미카(MICA)’ 공대공 미사일을 들고 나왔다. 지금까지 제공기는 세 종류의 공대공 무기를 장착했다. 원거리에 있는 적기를 요격하는 공대공 미사일, 중간거리까지 침투한 적기를 요격하는 공대공 미사일, 그리고 가장 가까운 거리에 파고든 적기를 요격하는 기관포가 그것이다.

    이 세 무기를 어떻게 조합하느냐에 따라 원거리를 공격하는 제공기가 되기도 하고, 근거리를 요격하는 제공기가 되기도 한다. 그런데 이 조합이 실전 상황에 맞지 않으면 아군기는 위험해진다. 즉 적기는 원거리 공격무기를 달고 나왔는데 아군기는 기관포만 탑재하고 있다든가, 반대로 적기는 최근접으로 접근했는데 아군기는 원거리 공격무기만 탑재하고 있다면 아군기는 적기의 밥이 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따라서 모든 공중전 상황에 대처하려면, 제공기에 탑재된 무기는 원·중·근거리 겸용이어야 한다. 이를 실현한 공대공 미사일이 ‘미카’다.

    원·중·근거리 겸용 무기를 개발했더라도 이를 많이 달 수 있어야 유리하다. 많이 달기 위해서는 미카의 크기가 작고 가벼워야 하는데, 마트라 BAe 다이내믹스는 이것도 현실화했다. 다쏘항공은 라팔 외부에 보조 연료탱크와 각종 미사일을 달 수 있는 포인트를 전투기로서는 경이적인 14군데나 설정했다. 라팔이 순수 제공기 구실을 할 때는 최대 14기의 미카를 장착할 수 있는 것이다.

    공중급유기능 추가

    전투에서 이기기 위해서는 세고 빠른 주먹만큼이나, 긴 ‘리치’가 있어야 한다. 리치를 늘리기 위해서는 미사일의 사거리뿐만 아니라 전투기의 작전 반경도 늘려야 한다. 라팔의 순수 무게는 10t이다. 여기에 연료와 각종 무기를 장착하면 그 무게가 24.5t으로 늘어난다. 10t짜리 전투기가 자기 몸무게의 1.45배나 되는 짐을 지고 이륙해, 시속 1200㎞대로 비행하기 위해서는 엄청난 양의 연료를 소비한다. 라팔의 경우 내부연료의 15% 정도가 소진된다. 아무리 우수한 전투기라도 연료가 부족하면 제 기능을 발휘할 수 없다.

    이러한 문제를 풀기 위해 주요 국가들은 공중급유기를 운용하는데 공중급유기는 매우 비싸, 세계 최고의 경제대국 중 하나인 일본조차 보유하지 못하고 있다. 그런데 다쏘항공은 전투기 사이에는 한번도 실현된 적이 없는 전투기끼리의 공중급유 능력을 개발했다. 보조 연료탱크만 단 라팔이 먼저 떠 있다가, 완전 무장한 라팔이 이륙해 항속비행에 들어가면 제 몸의 연료를 빼내 공중급유해 주는 것이다. 이렇게 함으로써 라팔의 리치는 현저히 길어졌다.

    셋째로 살펴볼 것은 과연 라팔이 공군기와 해군기의 기능을 겸하게 되었는가다. 해군기는 30노트(시속 55㎞ 정도)로 기동하는 항공모함에서 이착함한다. 달리는 활주로(항모)에 이착함하기 위해서는 고도의 정밀성이 필요하다. 항공모함의 활주로는 지상 활주로에 비해 훨씬 짧은데 짧은 활주로에서 이함하기 위해서는 전투기의 엔진이 매우 강력해야 한다. 그리고 짧은 활주로에서 착함하기 위해서는 착륙용 바퀴가 달린 랜딩기어 부분이 매우 견고해야 한다.

    해군기는 항모라는 좁은 공간에서 운용되므로 연료를 주입하거나, 무기를 달고 부품을 교체하는 데 걸리는 시간도 짧아야 한다. 요즘 한국 공군은 최우수 전투조종사를 선발해 ‘탑건(Top Gun)’이라는 칭호를 주고 있다. 그러나 탑건 제도를 처음 도입한 미국은, 공군기가 아니라 해군기 조종사에서 탑건을 선발한다. 이유는 해군기 조종사들이 훨씬 악조건에서 작전을 수행하기 때문이다.

    해군기가 갖고 있는 이러한 제약을 극복하는 것은 쉽지 않다. 라팔은 이러한 문제를 어떻게 극복했는가. 가장 중요한 것은 ‘심장’에 해당하는 엔진인데, 엔진의 추력이 작으면 해군기는 탄생할 수 없다. 앞에서도 설명했지만 현재 자기 몸무게 대비 1.45배나 되는 큰 비율의 짐을 지고 이륙할 수 있는 ‘에너자이저’ 전투기는 라팔뿐이다. 이러한 기적은 프랑스의 국영 엔진 제작사인 ‘스네크마(snecma)’가 90년 2월 M88 엔진을 개발함으로써 이루어졌다.

    스네크마는 프랑스가 자랑하는 아리안 로켓을 쏘아올린 로켓엔진도 제작하는 유럽 최대 엔진 제작사다. 파리에서 승용차로 2시간 정도 달려 도착한 스네크마 공장에는 여러 종류의 항공기 엔진이 제작되고 있었다. 여기에는 아에로스파시알이 생산하는 민항기 ‘에어버스’에 장착되는 엔진도 있었다.

    적잖은 사람들은 전투기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성능이라고 알고 있는데, 성능만큼이나 중요한 것이 ‘출격률’이다. 아무리 성능이 좋은 전투기라도 기지에 돌아온 후 연료를 주입하거나 새 무기를 장착하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린다면, 이는 실전에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 따라서 엔진과 주요 부속품은 교체하기 쉽게 만들어져야 한다. 스네크마는 “F-15가 엔진을 교체하는 데는 147분 걸리지만 라팔은 불과 60분 만에 교체할 수 있다”고 강조한다.

    스네크마는 엔진뿐만 아니라 라팔에 들어가는 랜딩기어와 브레이크 시스템도 만들고 있다. 스네크마는 랜딩기어도 교체하기 쉽게 제작했다. 이 회사의 데클레르크 이사는 “한 회사에서 가속기(엔진)와 제동기(랜딩기어 브레이크 시스템)를 만들었기 때문에, 라팔의 가속 및 제동 시스템은 유기적으로 결합되었다. 가속과 제동 시스템을 나눠 개발하지 않고 한 회사에 맡긴 것이 자기 몸무게의 1.45배를 지고 항모를 이함하는 라팔을 만든 근본 비결”이라고 강조했다.

    1999년 9월 해군용으로 생산된 라팔기는 프랑스의 핵추진 항공모함 ‘샤를 드골’함 이착함 실험을 완료함으로써, 해군기로도 손색없음을 증명했다. 프랑스 해·공군기에 장착되는 엔진은 M88-2다. 그런데 한국 공군의 FX 사업에 참여하는 다쏘항공과 스네크마는 M88-2보다 15% 정도 추력이 센 M88-3 엔진을 제공하겠다고 밝혔다.

    톰슨-CSF 데테시스가 발전시킨 ‘눈’, 마트라 BAe 다이내믹스의 ‘주먹’, 그리고 스네크마가 개발한 ‘심장’을 유기적으로 결합시키는 책임은 다쏘항공에 부과되었다. ‘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배’이듯 어떻게 꿰느냐에 따라 각각의 구슬이 갖고 있는 가치가 증가하기도 하고 떨어지기도 한다.

    컴퓨터로 문서를 작성할 때 ‘글’이나 ‘엑셀’ 프로그램을 사용하듯이, 컴퓨터로 전투기를 설계할 때도 설계 프로그램을 사용한다. 이러한 설계 프로그램의 대표작이 다쏘그룹 소속의 다쏘시스템이 개발한 ‘카티아(CATIA)’다.

    다쏘항공은 카티아 덕분에 새로 개발한 부속품을 유기적으로 결합할 수 있었다고 강조한다. 전투기로서는 경이적으로 14군데에 미사일과 보조 연료탱크를 달 수 있게끔 설계한 것도 카티아 덕분이라고 지적한다. 라팔이 가진 또 하나의 장점은 조종석이 아주 간단하다는 것이다. 모든 계기판이 디지털로 정리돼 조종석에는 불과 3개의 계기판만 있다. 계기판이 간단할수록 조종사는 전투에 집중할 수가 있다.

    전투기 출격률과 관련해 가장 중요한 것은 기지로 돌아온 전투기가 새로운 무장을 장착하는 데 걸리는 시간이다. 다쏘항공 관계자는 “기지로 돌아온 F-15가 무기를 탑재하는 데 25분 걸리지만, 라팔은 15분밖에 걸리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재빠른 무기 교체도 카티아 덕분에 가능했다. 이로써 프랑스는 ‘작지만 세고 재빠른 놈’을 개발하는 데 성공했다. 해군기와 공군기, 그리고 제공기와 전폭기로 쓰일 수 있는 차세대기 개발이라는 꿈을 실현한 것이다.

    이제는 다목적이 주류인 시대

    타이푼은 유럽 4개국이 공동개발했기 때문에, 4개국이 동의하지 않으면 제3국으로 기술을 이전할 수 없다. 설사 제3국으로 기술을 이전하는 데 동의한다고 해도, 타이푼 제작에 4개국에서 숱한 업체들이 참여하고 있으므로, 그 과정이 복잡하다. 하지만 라팔은 그리 어렵지 않을 전망이다. 프랑스 정부는 이미 프랑스 국회로부터 라팔을 해외에서 제작해도 좋다는 동의를 받아놓았다. 프랑스 국회가 라팔의 해외생산에 동의한 것은 라팔의 세계 진출에 도움을 줄 것으로 보인다.

    다목적기를 지향하는 프랑스의 방향 설정이 옳았다는 것은 다른 나라의 선택을 통해서도 확인된다. 제공기와 전폭기를 별도로 개발해오던 미 공군은 10여 년 전부터 제공기인 F-15기는 지상 공격능력을 강화하고, 전폭기인 F-16은 제공능력을 강화하는 쪽으로 개량해오고 있다. 2개 기종 운영에 따른 막대한 비용 부담이 원인이었다. 현재 미국은 해군기와 공군기용 전폭기의 통합을 준비하고 있는데, JSF가 그것이다.

    JSF는 공군 전폭기인 F-16과 해군 전폭기인 FA-18을 잇는 후속 기종인데, 미국은 하나로 개발하기로 결정했다. 그러나 제공기와 전폭기 통합까지는 이루지 못해, 미 공군은 F-15 후속 제공기로 F-22를 개발하고 있으나 미 해군은 후속 제공기 개발을 결정하지 못한 상태다. F-22와 JSF가 개발되면 미 공군은 제공기로 F-22, 전폭기로 JSF를 사용하고, 미 해군은 제공기로 F-14, 전폭기로 JSF를 사용할 전망이다.

    다목적성을 지향한 프랑스의 선택은 옳았다. 그러나 방향이 옳다고 해서, 라팔이 세계 최강의 전투기라고 단정지을 수는 없다. 라팔과 타이푼, 그리고 러시아의 수호이 35는 실전에 참여한 적이 없다. 실전에서는 시험비행에서는 나타나지 않는뜻밖의 결점이 발견되기도 하는데, 전투기는 이러한 결점을 고쳐가며 발전하는 것이다. 실전을 통해 결점을 고쳐온 전투기는 ‘올드 패션’인 F-15뿐이다. 실전 경험이 없다는 것은 라팔이 안고 있는 최대의 약점이다.

    다목적기를 지향한 팔방미인 라팔과 제공기를 지향해 얼굴만 예쁜 미인이 된 타이푼, F-15, 수호이 35가 미스코리아대회에서 경쟁한다면 누가 우승할 것인가. 신체적 아름다움만을 놓고 경쟁한다면 때에 따라서 팔방미인이 탈락할 수도 있다. FX 사업을 통해 한국 공군이 얻고자 하는 것은 제공기다. 따라서 라팔은 그 현란한 다목적성에도 불구하고 일단은 제공기 기능을 놓고 3개 기종과 경쟁해야 한다. 과연 팔방미인 라팔이 제공기 분야에서도 최고 미인으로 꼽힐 수 있을 것인가?

    프랑스를 벤치마킹하자

    기사 초입에서 기자는 전투기 생산 세계 3위 국가인 프랑스를 취재한 데는 이유가 있다고 밝혔다. 이제 그 이유를 설명하기로 한다. 국토와 인구가 적은 프랑스는 죽었다가 깨어나도 미국·러시아 혹은 중국과 같은 초강대국이 될 수 없다. 프랑스의 지정학적 조건은, 초강대국을 유기적으로 잇는 중심국가를 지향하라고 암시하고 있다. 프랑스는 열강의 각축장인 유럽을 무대로 중심국가를 실현하는 데 성공했다. 중심국가 프랑스를 실현시켜준 것은 카르티에나 랑콤 같은 명품이 아니라, 첨단무기를 생산하는 방위산업이다.

    프랑스의 면적은 통일 한반도(22만㎢)의 2.5배인 55만㎢지만, 인구는 통일 한반도(7000여만 명으로 추정)보다 약간 적은 6000여만 명이다. 이러한 프랑스의 국가 규모는 통일한국을 지향하는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2차 세계대전의 잿더미 위에서 프랑스가 유럽 중심국가로 변모했다면, 비슷한 규모의 한국도 통일을 쟁취하고 동북아의 중심국가로 발돋움 할 수 있을 것이다.

    외국인이 영어로 길을 물으면, 꼭 불어로 대답하는 프랑스인. 프랑스인이 외국인을 답답하게 하는 ‘영문불답(英問佛答)’을 마다하지 않는 것은, 그들이 미래 변화를 예측하고 그에 대한 준비를 착실히 해왔다는 자부심을 갖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이 자부심은 1·2차 대전 초기의 연속 패전이 가져다준 교훈을 잊지 않은 데서 나왔다.

    그러나 우리는 그 교훈을 잊어버렸다. 민족 자주성과 오기는 다른 것인데 오기를 자주성으로 잘못 인식한 것이다. 프랑스는 미국과 경쟁하면서도 필요하면 협조를 마다하지 않는다. 이러한 프랑스의 선택과 성공은 통일한국을 지향하는 우리에게 무엇을 시사하는가. 통일과 중심국가 지향이라는 두 가지 목표를 동시에 달성하기 위해서는 프랑스를 벤치마킹할 필요가 있다.

    [경의선과 TGV]한국에서 시작된 알스톰의 행운

    알스톰은 TGV로 불리는 경부고속철도 차량을 납품하는 프랑스 회사다. 알스톰그룹은 자동차그룹이 분할돼 나가기 전의 현대그룹과 비슷해서, 발전과 조선·철도 등 중후장대(重厚長大) 산업 위주로 편성돼 있다. 이 그룹에서 고속전철 차량이 차지하는 부분은 그리 크지 않다. 그런데도 우리는 알스톰을, 최만석이라는 로비스트를 통해 정치자금을 제공하고 고속철도 차량 제작을 수주한 회사 정도로만 보고 있다. 알스톰은 대서양 연안에 있는 한적한 도시 라 로셀르 공장에서 한국으로 갈 고속전철 차량을 제작하고 있다.

    이러한 알스톰은 철도문제를 중심으로 한국을 보고 있다. 알스톰은 지난 9월 말 시작된 우리의 경의선 연결사업을 관심있게 지켜보았다. 한 관계자의 말이다.

    “철도만 연결한다고 해서 기차가 마음놓고 달리는 것은 아니다. 철도 시스템이 통일되고 개선돼야만 효과적인 철도 운행이 가능하다. 영국은 철도의 발상지이고, 프랑스는 철도가 최고로 부흥한 나라다. 영국과 프랑스는 도버해협 밑을 뚫어 ‘유로스타’라는 철도를 연결했다. 그런데 프랑스 땅에서는 시속 300㎞대로 달리던 유로스타가 영국 땅으로 들어가면 시속 100㎞대밖에 달리지 못한다. 이유는 영국의 철도 운영 시스템이 낙후되었기 때문이다. 한국의 경의선도 마찬가지다. 경의선을 고속전철까지 달리게 할 통일철로로 만들려고 한다면 철로만 연결할 것이 아니라 운영 시스템까지도 통일하는 작업을 함께 수행해야 한다. 시스템은 통일하지 않고, 철도라는 하드웨어만 연결하는 것은 진정한 통일이 아니다.”

    70년대 중반의 경부고속도로 완공을 계기로 한국은 도로 건설에 매진하고, 철도는 등한시하는 ‘주도종철(主道從鐵)’의 교통 정책을 선택했다. 25년이 지난 지금 한국은 숱한 도로를 개설했음에도, 엄청난 도로 물동량으로 인해 고통을 받고 있다. 대표적인 경우가 부산인데, 부산 시내는 배에서 내린 컨테이너를 싣고 고속도로를 타려는 트럭과 부산 시민이 몰고 나온 자동차가 뒤엉켜 교통지옥이 따로 없다. 철도청과 부산시가 일찌감치 배에서 내린 컨테이너를 철도로 수송하는 체제를 선택했다면 이러한 교통지옥은 면했을지도 모른다.

    우리가 주도종철로 달리는 사이 프랑스는 ‘철도는 화물을, 도로는 사람을’ 수송하는 체제를 선택하는, ‘도철병행(道鐵竝行)’ 체제를 선택했다. 그리고 마침내 꿈의 열차인 TGV를 개발해 도로가 맡고 있던 사람 수송까지도 철도가 떠맡음으로써, ‘주철종도(主鐵從道)’ 시대를 열었다. 이런 이유로 프랑스 고속도로에서는 우리와 같은 교통지옥이 덜 만들어지게 되었다. 프랑스는 철도 르네상스를 여는 데 성공한 것이다.

    경의선의 복원을 계기로 통일이 이뤄지면 시베리아 철도를 통해 한국은 유럽과 이어질 것이다. 그때서야 교통정책을 ‘주철종도’로 바꾸면 너무 때가 늦다. 때로는 약간의 차이가 엄청난 결과를 낳기도 한다. 독일의 지멘스는 알스톰보다 한발 늦게 고속철도 ICE를 개발했다. 그러나 후발 주자인 관계로 한국·스페인·호주·미국 시장에서 연거푸 고배를 마셨다. 지멘스는 이제 알스톰에 합병될 처지가 돼버렸다. 철도를 발전시킨 알스톰의 성공은 쉽게 철도를 포기한 우리에게 시사하는 점이 적지 않다.

    알스톰은 TGV가 한국에 진출하면서부터 알스톰이 세계를 제패하는 행운이 시작된 것을 잘 알고 있다. 알스톰이 한국 진출을 계기로 르노 자동차가 한국에 진출했고, 르노 상륙을 계기로 외국 기업들의 리턴이 시작돼 IMF 경제위기에 빠져 있던 한국은 기사회생했다. 다쏘항공을 비롯한 라팔기 제작 참여사들은 알스톰이 창출한 행운이 한국에서 다시 한 번 일어나기를 바라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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