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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획|경제전문가 8인 집중인터뷰

이필상 고려대 경영대학장 “한국경제, ‘혈색’ 좋지만 癌 위험 상존”

  • 이형삼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hans@donga.com

이필상 고려대 경영대학장 “한국경제, ‘혈색’ 좋지만 癌 위험 상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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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거시지표는 개선됐지만, 이는 경제의 구조나 체질을 바꿔 얻은 자생적 경제회복이 아니다. 외국자본을 들여오고 공적자금을 푼 데 따른 일시적 현상이다.
이 필상(李弼商·53) 고려대 경영대학장은 “거시지표가 개선되긴 했으나, 경제가 구조적으로 여전히 불안하기 때문에 언제 주저앉을지 모른다는 위기감이 확산되고 있다”고 우리 경제의 현주소를 진단한다.

IMF 사태 이후 전 경제주체들의 노력에 힘입어 외환보유고가 900억 달러를 넘어서고 경제성장률도 10%대에 올라서는 등 가시적인 성과가 있었지만, 이는 경제의 구조나 체질을 바꿔 얻은 자생적 회복이라기보다는 경제를 개방해 외국자본을 들여오고 정부가 막대한 공적자금을 푼 데 따른 일시적 현상으로 봐야 한다는 것이다.

밥을 많이 먹고 보약을 달여 마시면 당장 혈색은 좋아 보일지 몰라도 장기(臟器)의 심각한 질환을 방치하다가 어느날 갑자기 암으로 쓰러질 수 있는 것과 같은 이치라는 설명이다.

―그래도 97년 말의 긴박한 상황과는 비교하기 어려울 만큼 좋아지지 않았습니까. ‘제2 위기론’은 좀 성급한 전망이 아닐까요?

“정부는 자꾸 거시지표를 들이대면서 그런 주장을 펴는데, 설득력이 떨어져요. 외환보유고가 900억 달러를 넘는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증권시장 개방에 따라 증시에 들어온 외국자본이 700억 달러이고, 단기 외채가 460억 달러입니다. 장기 외채 중 만기가 다가오는 외채까지 합한 유동외채는 600억 달러나 돼요. 1년 안에 언제든지 빠져나갈 수 있는 돈이 1300억 달러라는 얘긴데, 외환보유고가 900억 달러라고 어떻게 안심할 수 있습니까.



설령 증시에서 외국자본이 유출되지 않고 외채의 일시상환 압력이 없다 해도 금융기관이 제 기능을 못해 돈이 안 돌면 외환 900억 달러를 안고 쓰러질 수도 있어요. 종합주가지수가 연초 1000에서 500대로 떨어지고 280까지 치솟던 코스닥지수가 80대로 추락했다는 것은 증시의 기능이 마비된 것으로 봐야 합니다. 증시는 투자자본을 끌어들여 산업자본화 함으로써 경제를 기름지게 하는 젖줄인데, 이게 끊겨버린 겁니다. 그래서 기업들이 주식이나 회사채를 발행하기도 어렵게 됐으니 멀쩡한 회사가 흑자도산할 가능성이 높아졌어요.”

위기요인 상존

이학장은 “여러 상황이 97년과 너무 비슷해 겁이 난다”고 말한다. 가령 94년에서 96년까지 우리 경제가 호황을 누렸던 것은 반도체 자동차 조선 석유화학 분야의 수출 호조에 힘입은 것이었다. 그러다 이들 업종이 위축되면서 외환위기를 맞았다. 그런데 지난해부터 경제가 살아난 것도 반도체 자동차 조선 분야의 호황이 주요인이었다. 이렇듯 특정 업종의 주기적 호황에 따라 경제가 회복된 것이라면 마음을 놓을 수가 없다는 것이다.

지난 9월의 수출실적이 사상 최대의 흑자를 기록했다고 하지만, 수출을 이끈 것은 반도체 자동차 컴퓨터 등 몇몇 업종에 지나지 않았다. 건설 섬유 음식료품 신발 같은 전통산업은 붕괴되다시피 하면서 극심한 경기 양극화 현상을 보였다. 대다수 근로자들의 생활기반인 전통산업이 무너진 상황에서 일부 대기업에만 숨통이 틔였다고 해서 경제가 회복됐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는 게 이학장의 해석.

또한 97년 7월에 기아자동차가 무너지면서 증시가 대폭락하고 대외신인도가 추락해 외국자본이 순식간에 빠져나간 것을 생각하면, 최근 대우자동차 매각이 철회된 이후 구조조정에 대한 불신이 증폭되면서 외국자본이 조금씩 빠져나가고 있는 상황을 예사롭게 봐 넘기기 어렵다.

97년 외환위기 직전의 상황과 더욱 흡사한 것은 그때나 지금이나 정부가 “펀더멘털이 좋으니 걱정할 것 없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는 사실. 그래서 똑같은 실수를 반복하는 게 아닐까 하는 불안감을 떨쳐버릴 수 없다는 것이다.

―같은 실수를 거듭하지 않을까 우려되는 게 또 있습니다. 공적자금입니다. 금융권을 정상화시키기 위해 110조 원을 투입했는데도 부실채권은 크게 줄지 않았습니다. 이번에 또 40조 원을 넣겠다는데, 재경부 장관의 약속대로 이번이 정말 ‘마지막’이 될 수 있을까요?

“문제는 부실채권의 실상을 제대로 밝히지 않은 데 있습니다. 어느 은행이 부도날 것 같다, 어느 기업에 구제금융이 필요하다고 문제가 터질 때마다 땜질하듯 찔끔찔끔 공적자금을 투입했어요. 암세포는 그대로 남겨둔 채 말입니다. 관료들이야 어떻게든 부실규모를 적게 발표하고, 적은 공적자금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해야 책임을 면할 것 아닙니까. 그러니 공적자금 규모가 계속 늘어났죠.

공적자금은 타이밍이 가장 중요합니다. 지나간 일이지만, 기아나 대우사태가 터졌을 때 그 속사정을 낱낱히 밝히고 조기에 암세포를 떼냈으면 훨씬 적은 돈으로 문제를 해결했을 겁니다. 그런데 이번에도 40조 원을 더 투입하겠다고 하면서 부실채권의 실상은 공개하지 않았어요. 공적자금이 지금까지 어떻게 사용됐고, 지금은 왜 또 40조 원이 필요한지 명확하게 설명하지 않고 있습니다. 그러니 이것도 밑빠진 독에 물붓는 꼴 되지 않겠느냐는 얘기가 나올 수밖에요.

지금이라도 실상을 투명하게 밝히고 분명한 대책을 내놓아야 합니다. 책임을 물을 것은 묻고, 고통이 필요하다면 감내하자고 호소해야죠. 캄캄한 밤에 아이들이 무서워하는 건 어둡기 때문이예요. 불을 켜주면 무서워하지 않아요. 밝히고 설명하면 대응하고 준비합니다.

경제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심리입니다. 사람들이 다 불안해 하면서 아무것도 안 된다고 생각하면 멀쩡하다가도 정말 그렇게 됩니다. 반대로 뭔가 될 것 같다 싶으면 다들 한번 해보자는 분위기로 변하죠. 이렇게만 되면 증시로 돈이 다시 몰립니다. 시중에 돈이 넘쳐 국민은행 주택은행으로 들어온 돈이 350조 원이고, 부동자금도 200조 원이나 된다는데, 비전이 보이면 이 돈들은 증시로 오게 돼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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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형삼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han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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