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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색방담|말로 망한 정치인들

“과음은 실언을 낳고 폭언은 정치를 죽이고”

  • 진행:박성원 기자 / 정리:육성철 기자

“과음은 실언을 낳고 폭언은 정치를 죽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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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치인에게 말은 생명과 같다. 말을 얼마나 잘하느냐에 따라 정치인의 운명이 결정된다.
  • 지난 97년 대통령선거 때는 TV토론이 부동표의 향배에 결정적인 영향을 끼쳤다. 그러나 말을 아무리 잘해도 실언이 많은 정치인은 성공할 수 없다. 정치적 파문을 몰고 왔던 발언을 통해 한국 정치에서 말이 갖는 의미를 살펴본다.
-요즘은 한나라당 김기배 의원, 엄호성 의원, 민주당 윤철상 의원 이렇게 세 사람이 대표 같아요. ―그 얘기가 무슨 얘기죠?

‘돌대가리’ 발언

―한나라당 김기배 사무총장은 민주당에 대한 불신이 극에 달한 것 같아요. 민주당이라면 아주 ‘무식한 ○들’이라는 생각이 배어 있어요. 그게 ‘돌대가리’ 발언과 ‘제주도 4·3반란’ 발언으로 터져나온 것 같아요. 돌대가리 발언은 민주당 고위인사를 겨냥해 사적인 자리에서 한 걸 기자들이 날 잡아서 한번 쓴 거고, 그런 감정의 연장선상에서 북한 사람들이 제주도만 고집하니까 “반란 사건 났던 곳 아니야”고 말했다가 나중에 사과하고, 당 차원에서도 공식 사과하게 됐죠.

―엄호성 의원의 경우는 실언인지 아닌지 불분명해요. 자기가 한빛은행 불법대출 사건에 관련된 이운영씨(전 신용보증기금 영동지점장, 박지원 전 문화관광부 장관으로부터 대출압력을 받았다고 주장함)의 뒤를 봐준 것처럼 얘기했는데 실제는 별로 안 봐줬다는 거예요. 이운영씨와 관련된 송영인씨가 그러는데 엄호성이라는 이름은 알지만 만난 일이 없대요. 한번 폼 잡으려고 한 얘기가 신문에 그대로 실리자 나중에 부인한 것 같아요. 실언으로 망했다기보다는 뜬 경우죠.

―윤철상 의원은 기소 대상 의원 수를 줄였다는 ‘선거수사’ 발언을 하기 전날 술자리에서 송영길 의원과 술을 마셨는데 바로 그 문제를 갖고 논쟁을 벌였대요.



―김기배 의원도 제주도 발언 전날 신라호텔에서 심야 국회대책을 협의하고 당 3역들끼리 술을 한잔 했다는 거예요. 어느 기자가 통화를 세 번 했는데 마지막에는 완전히 혀가 꼬부라졌대요. 그 자리에서 비주류에 대해 얘기했는데, 그때 바로 비주류들이 등원 주장을 하니까 성토한 거죠. 다음날 당직자 회의에 참석했는데 박근혜 의원이 보이니까 아무 생각 없이 불쾌하다고 말했고, 박의원이 발끈해가지고 총재단 회의에 불참하고 등원론을 거듭 주장하는 바람에 한나라당이 내부 분열로 비치게 된 거죠.

―윤철상 의원 발언은 선관위에서 무더기로 선거비용 실사 수사를 의뢰했는데 송영길 의원이 “당지도부가 해준 게 뭐 있냐, 이게 여당이냐, 나는 신문 보고서야 알았다, 사전에 귀띔이라도 해줬어야 되는 것 아니냐”고 하니까 윤의원이 의원총회에서 “뭘 그러냐. 지도부는 할 만큼 했다, 내가 절반으로 신고하라고 교육도 다 시켰지 않느냐. 당연히 고발돼야 할 사람이 10명이 넘는다”고 말해 선거비용 실사 개입 의혹이 제기됐어요. 윤의원과 송의원은 바로 전날 술을 먹었어요. 거기서도 송의원은 “도대체 지도부가 뭐하냐. 개판 아니냐”고 얘기해서 막말로 싸웠대요. 그걸 지켜본 모의원에 따르면 윤의원은 다음날 의총 석상에서 송의원이 똑같은 얘기를 하니까 술자리의 연장선상으로 잠시 착각하고 그냥 얘기했다는 거죠. 사적으로 하면 넘어갈 수도 있는 내용을 공개적으로 언급하니까 문제가 된 셈이죠.

―송영길 의원도 그 발언으로 피해를 봤어요. 386세대로서 깨끗한 이미지를 가진 송의원의 발언은 여당의 힘을 빌려서 보호받아야 한다는 얘기로 들렸고, 그 때문에 송의원도 궁지에 몰리는 상황이 전개됐어요. 재미있는 건 당시 비공개 의원총회를 열어서 기자들이 모두 나온 걸로 알았는데 예결위장 위층에 있는 기자들은 그 얘기를 모두 들었어요. 그런데 현장에 머물렀던 일부 기자들은 다른 정치인과 얘기하는 바람에 못 들었다는 거죠.

―비공개 의총인데도 문을 열어놨다면서요?

―아니에요. 문을 다 닫고 했어요.

―안에 들어간 기자들이 있었고 예결위 쪽 문도 열려 있었잖아요.

―지난번에 자민련 강창희 의원이 “이한동 총리는 당총재직하고 총리직 중 하나를 선택해 총재직에서 물러나는 게 좋겠다. 총리의 한마디 때문에 당론이 바뀐다면 당은 해체되는 것이 낫겠다”고 말했잖아요. 강의원은 그날 점심때 당직자들과 밥 먹다가 술을 마셨대요. 당직자들이 “한마디 하셔야 되는 것 아닙니까”라고 하니까 점심때 기자들을 갑자기 소집한 거예요. 사건이 터지고 나서 강의원은 “술에 취하지 않았다”고 말했는데 당직자들 얘기로는 “강의원이 술을 많이 마셨다”는 거예요. 그 사람 얘기로는 “강의원은 실언을 한 게 아니라 평소 하고 싶었던 얘기를 술기운에 했다”는 겁니다. 그런 차원에서 김기배 의원도 실언이 아니라고 생각돼요. 평소 민주당에 대한 감정이나 시각이 그대로 노출된 거죠.

―엄호성 의원은 개인은 떴을지 모르지만 한나라당은 부산 집회 이후 대여 공세 분위기가 완전히 꺾이는 결과를 가져왔어요.

―작년에 진형구 대검 공안부장이 파업유도 사건을 자기가 만들었다고 했는데 그때도 검찰총장하고 술을 먹었는데 그 자리에서 폭탄주가 서너 잔 돌았어요. 그러고 나서 자기 방에 와 있는데 기자 몇 명이 찾아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는데 너무도 ‘편안하게’ 그 얘기를 했어요. 그래서 기자들이 진짠지 아닌지 물었을 정도였대요.

―엄호성 의원과 진형구 전 대검 공안부장은 상당히 비슷하다고 봐요.

―자기 과시였지요.

―실언을 수습하기 위해서 나섰다가 또 실언을 하는 바람에 엎어진 경우가 있어요. 한나라당 정창화 총무의 ‘JP-이회창 밀약설’은 실언이 아니라 평소 자기 소신을 이야기한 건대 그게 당의 공식 입장과 달라서 결과적으로 실언이 됐어요. 이회창 총재가 JP하고 골프장에서 만났다가 점심만 먹고 끝났는데 그때 ‘교섭단체를 해주기로 서로 묵인 한 것 아니냐’ 내지 ‘밀약한 것 아니냐’는 설이 나돌던 차에 정총무가 당에 가서 ‘사실은 그게 아니다’는 취지로 얘기해놓고, 오후에 기자들을 만나서 교섭단체 얘기를 또 한 거예요. 정총무가 이회창 총재하고 그 얘기를 여러 번 얘기했다고 하는 바람에 또다시 밀약설이 퍼졌죠. 이건 야구경기로 보면 ‘보이지 않는 에러’라고 할 수 있어요. 기록에는 나타나지 않지만 승부에는 결정적인 영향을 끼치는 ‘실책’이죠. 한나라당 공천 파동이 났을 때 이기택씨는 전국구 비례대표를 희망했어요. 사실 이회창 총재와 이기택씨 사이에는 그런 공감이 있었어요. 공천 협의차 만난 자리에서 이회창 총재가 “지역구 나가서 당선될 수 있겠습니까”라고 말하는 바람에 말이 꼬이기 시작한 거예요. 만약 이총재가 “비례대표로 나가시죠”라고 했으면 이기택씨가 민국당 쪽으로 가는 돌발사태는 없었을 거예요. 두 사람이 상대의 뜻을 확인하기 위해 만났다가 감정만 뒤틀리고 만 거죠.

“푸줏간의 소대가리”

―정치인들의 실언 중에는 자신의 정치적 입지가 좁아질 때 나오는 경우가 많은데, 서석재 의원이 그런 경우예요. 그때 민주계에서는 최형우 의원, 김덕룡 의원이 잘 나가던 때예요. 서석재씨는 계속 물먹고 있었어요. 자기가 세고 정보가 많다는 걸 기자들한테 과시하고 싶어하는 욕심이 있었나봐요. 서석재 의원의 비자금 4000억 원 발언이 있고 얼마 있다가 박계동 의원이 국회에서 다시 거론하니까 파문이 확대된 거죠.

―박지원 전 장관의 녹음테이프 발언은 김옥두 사무총장과 권노갑 최고위원도 언급했다죠. 박 전 장관이 퇴임 기자회견에서 “대선자금 녹음테이프인지는 모르지만 들은 적은 있다”라고 얘기했는데 김옥두 사무총장, 권노갑 최고위원도 자기는 모른다는 걸 전제하면서, 뭔가 들어본 적은 있다고 말해 냄새를 풍겼죠.

―실수라기보다는 의도적으로 증폭시키기 위한 걸로 봐야겠네요.

―정치인들은 말해놓고 나중에 문제가 되면 실언이었다고 하는 경우가 많죠.

―술자리가 말 실수의 진원지가 되기도 하면서도 빠져나갈 때 핑계가 되기도 해요.

―민주당 이인제 의원이 자민련에 대해 “교도소 갔다 온 사람들이 줄줄이 배지 달고 있는 곳”이라는 얘기를 해서 파장이 커졌죠. 그러니까 “그런 말한 적 없다, 기자들이 잘못 들었다, 과장되게 썼다, 사실이 아니고 왜곡했다”고 했죠.

―한나라당 이한구 의원이 S일보 H기자한테 그랬다는 것 아닙니까. “TJ 말은 95% 믿을 수 있고, JP 말은 50% 정도밖에 믿을 수 없다.”고.

―좀 세게 나가는 경우가 이원범 전 의원인데 원체 입이 걸고 절묘하게 표현하는 재주가 있어요. TV 토론 도중 “푸줏간의 소대가리도 웃습니다”라고 말하기도 했어요.

―중선거구제 논란이 있을 때는 “중들이나 중선구제 하라”고 했죠.

―필요에 따라 말을 은근슬쩍 흘려서 정치적 효과를 보는 사람도 많죠.

―정치인과 말에서 빠질 수 없는 사람이 JP죠. 중요한 정치적 고비 때마다 고전을 인용해 자신의 심정이나 주장을 내비치고 적당한 거리를 두고 정국을 리드해나가는 데 탁월하죠.

―JP는 민자당에서 2인자일 때 연작간지홍복 ‘연작’(제비와 까치)이 감히 ‘홍복’(기러기와 고니)의 뜻을 알겠느냐며 YS를 높이 평가했죠.

―‘몽니’라는 표현도 유행시켰죠. DJ정권에 대해서 자민련의 입지를 정당화하는 표현으로 몽니를 썼죠.

―정치 인생을 명언과 함께 화려하게 마감한 사람도 있어요, 김재순 전 국회의장의 ‘토사구팽’이 대표적이죠. 예전에는 박희태 의원이 상대방을 끄는 단어를 많이 썼어요. 그런 유형의 정치인이 박희태 의원과 박준규 전 국회의장이죠. 민정당 때는 박준규씨 가십이 빠지지 않았어요. 아침에 나오기 전 고사성어집이나 속담집을 뒤져서 하고 싶은 적당한 고사성어를 한마디 던지는 거야. 그러면 기자들이 그걸 받아 적지 않을 수 없어요.

―박지원 전 장관은 속담이나 격언보다는 흔히 굴러다니는 말을 조합해내는 재주가 있었는데, 대표적인 게 “호박에 줄 친다고 수박 되느냐”죠. 95년 지자체 선거 때는 무소속 박찬종 후보를 ‘연탄가스’라고 말했어요. 당시 박후보가 민주당 조순 후보를 앞지르고 있었거든요.

―김윤환 전 의원은 말은 잘 하지 못하고 어눌한데 그것을 역으로 잘 활용해요. 특히 지역감정을 조장하는 발언은 허주가 단골이죠.

―92년 대선 때 민자당 김영삼 후보의 킹메이커로 나섰는데 경상북도에 가서 “경상남도지만 찍어줘야 된다, 같은 경상도 사람 아니냐” 그랬던 것이 대표적이죠.

―‘우리가 남이가’ 그건 김영삼 후보도 얘기했어요.

―허주는 어눌하면서 대중연설에 아주 약하지만 담소를 잘하고 ‘정치공학’에도 뛰어나죠.

―허주의 단골은 경상도 사투리 ‘그런 거 아니가’예요. 말을 확실하게 하지도 않는데 어떤 현상을 객관화시켜서 자연스럽게 해설해주는 재주가 있어요. 그러니까 허주한테 가서 얘기를 들으면 기자들은 대단한 정보를 얻은 것처럼 생각해요. 허주 주변에 기자들이 끊이지 않는 이유 중에는 그런 것도 있어요. 하지만 허주는 자기가 당장 써먹을 수 있는 건 절대 말하지 않는 스타일이지.

―YS, DJ, 이회창, 이인제의 말습관이나 말솜씨와 관련해서 이야기해보죠.

―DJ 성대모사는 유행이더군요. 대학가에서도 그렇고. DJ는 항상 논리정연하고 꼬투리 잡기가 어려울 정도로 말을 잘한다고 볼 수 있는데, 일단 연설을 시작하면 40분이에요. DJ는 완벽하게 얘기하니까 취재진으로는 그 사람이 하는 말을 한마디도 빼놓을 수가 없는 거예요. 모든 말을 받아 써야 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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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행:박성원 기자 / 정리:육성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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