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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연구

‘DJ의 리베로’ 김한길 문화관광부 장관

  • 이형삼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hans@donga.com

‘DJ의 리베로’ 김한길 문화관광부 장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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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나는 이혼하고 보따리 싸서 나와 개포동 독신자 아파트에 처박혀 있었다. 젊은 여자와 바람나서 가정을 버린 놈이 됐기 때문에 2∼3년은 방송출연도 못하고 죽어 지낼 각오를 했다. 너무 무료해서 한길이에게 전화를 걸어 ‘심심해 죽겠다. 여기 와서 나랑 살자’고 했다. 그 무렵 한길이도 이혼을 한 데다가 미국생활에 지친 듯했다.

그러던 어느날 한길이가 정말로 돌아왔다. 더플백 하나 달랑 메고 슬리퍼 질질 끌면서. 그날부터 진짜 한심한 생활이 시작됐다. 둘 다 하도 할 일이 없어 벌건 대낮에 나란히 누워서 천장만 바라보다가 천장 벽지 무늬가 어떠니 저떠니 하면서 ‘토론’하던 생각이 난다.”

조씨의 ‘백수’ 생활은 오래 가지 않았다. 얼마 후에 방송출연 제의가 들어와 슬슬 방송국을 드나들기 시작했다. 김한길은 그때도 일이 없어 조씨를 따라 ‘슬리퍼 신고’ 방송국 주변을 어슬렁거렸다. 그랬는데, 어느 순간 김한길의 ‘고속 출세’에 불이 붙더라고 한다.

“언젠가 방송국에서 한길이가 대학동창인 PD를 우연히 만났는데, 그 친구더러 ‘야, 넌 무슨 시사 프로그램을 그 따위로 만드냐’고 했다. 그랬더니 그 PD가 ‘그럼 네가 와서 해봐’ 했다. 며칠 후 그 방송국 부장 PD가 한길이 원고를 받으러 우리집에 와서 한길이가 잠깰 때까지 기다리는 것이었다. 영문을 모를 일이었다. 또 얼마후엔 한길이가 ‘형, 나 어제 KBS 본부장하고 술 마셨어’라고 지나가듯 말했다. 처음엔 허풍치는 줄 알았다. 그런데 사실이었다. 또 좀 지나니 이번엔 방송위원회 사무총장으로 갈 것 같다기에 또 사기치는 걸로 알았는데, 정말 그 자리로 갔다.

옆에서 얼쩡거리고 있다가 잠시 안 보인다 싶어 눈을 돌려보면 그는 저만치 올라가 있었다. 신출귀몰, 그렇게 수직상승하는 사람은 처음 봤다. 국회의원 출마한다는 말도 안 믿었는데, 정말 나갔다. 선거에서 떨어지기에 이젠 좀 쉬겠지 싶었다. 그런데 한두 해쯤 지나서 ‘형, 나더러 청와대(YS)에서도 오라 하고, DJ쪽에서도 오래’ 했다. 그 말도 믿지 않았다. 하지만 그것도 진짜였다.”



96년 4·11 총선을 앞두고 김한길은 여와 야 양쪽으로부터 영입 제의를 받았다. 그는 청와대에서 김영삼 대통령에게 “지금의 여당 구성원 중에는 우리 아버지를 잡아다 고문하고 못살게 굴던 사람이 많은데, 어떻게 내가 그런 사람들과 정치를 같이 하며 동지라고 부를 수 있겠습니까”하고 물었다. 그러자 YS는 “그런 사람들은 다 물갈이 할 테니까 걱정말라”고 했다. 그러나 ‘물갈이’는 이뤄지지 않았고, 그는 야당인 국민회의를 택했다.

DJ 대통령 만들기

이듬해 대선에서 김한길 의원은 발군의 감각으로 DJ 대통령 만들기에 나섰다. 천하의 DJ도 TV 카메라 앞에서는 방송시스템의 생리를 꿰뚫고 있던 그의 지시에 고분고분 따랐다. 그는 유세방송이나 TV토론을 앞두면 DJ가 아무리 바빠도 옷자락을 잡아끌어 반드시 한번 이상 리허설을 한 다음에야 카메라 앞에 서는 것을 ‘허락’했다. 사투리와 발음교정, 메시지 전달, 표정 변화, 조크 구사 등을 하나하나 훈련시켰다. 대통령의 2분짜리 TV 멘트 문구를 다듬느라 호텔방에서 꼬박 밤을 지새기도 했다.

8월초 DJ는 주부대상 토크쇼 ‘임성훈입니다’에 출연했다. 이날 시청률은 30%가 넘어 이 프로그램 사상 최고를 기록했다. 주부 세 사람 가운데 한 사람이 봤다는 얘기다. 이날 DJ는 전처 차용애씨를 회상하는 대목에서 눈물을 글썽거렸는데, 이 모습이 절묘하게 클로즈업됐다. 물론 DJ가 일부러 눈물을 흘린 건 아니었지만, 김한길 방송대책팀장이 치밀한 ‘각본’과 사전조율로 자연스럽게 눈물을 유도한 결과였다.

이 장면이 전국의 주부를 울렸다고 한다. ‘DJ도 눈물이 있는 사람’이라는 연민의 정을 자아냈던 것. 그때까지만 해도 DJ에 대한 성별 지지율은 남성이 여성보다 10% 가량 높았다. 이 비율은 몇 년째 큰 변화가 없었다. 그런데 이 프로그램이 나가고 열흘 후에 성별 지지율을 조사한 결과 여성의 지지율이 남성의 그것을 미미하게 앞선 것으로 나타났다.

9월28일 도쿄에서 열린 월드컵 축구예선 한·일전에 선거캠프의 만류를 뿌리치고 DJ를 보낸 것도 김한길 팀장이었다. 당시 일본팀이 상승세를 보이고 있었기 때문에 주변에서는 한국팀이 질 경우 선거에 악영향을 끼친다며 DJ의 방일을 반대했다. 그러나 김팀장은 ‘한국이 져도 DJ에게 유리한 일곱 가지 이유’를 조목조목 들이대며 고집을 꺾지 않았다. 축구 한·일전이 진행되는 동안은 지역갈등을 떠나 온 국민이 하나가 되는 드문 기회이며, 설사 경기에 진다 해도 DJ가 풀죽은 우리 선수들을 힘차게 격려하는 광경이 TV에 비치면 DJ에게 플러스 효과를 가져온다는 주장이었다. 결국 한국팀은 통쾌한 역전승으로 DJ의 어깨를 가볍게 했고, 이 자리에서 김대중-박태준의 DJT회동이 이뤄지는 부수효과까지 얻어냈다.

DJ로서는 그런 김한길 장관에게 단단히 ‘빚’을 졌다고 생각했을 수도 있다. 선거를 앞둔 마지막 TV토론을 끝내고 방송국을 나오던 날 밤, DJ는 귀가하지 않고 차 안에서 10여 분을 기다렸다. “김한길 의원이 올 때까지 기다리자”며. DJ는 당선된 뒤에도 ‘국민과의 대화’, 취임 1주년 기념 회견, 8·15 경축사 등 미디어와 관련된 굵직굵직한 사안들은 대부분 김장관에게 맡겼다. DJ는 김장관의 부친인 고 김철씨와도 인연이 있다. 71년 대통령선거에 김대중 후보 등과 함께 입후보했던 김철씨는 야당 후보들이 난립하자 박정희 정권 독재를 종식시키기 위해 야당후보 단일화를 주장하며 맨먼저 후보에서 사퇴했다. DJ는 이를 매우 고맙게 여겼다고 한다.

‘어마어마한 설득력’

DJ가 김한길 장관을 신뢰하는 이유는 비단 동물적인 선거감각 때문만은 아니다. 그는 복잡한 사안을 한 눈에 파악해 명쾌하게 설명하고 대책을 제시하는 능력이 탁월하다고 한다. 정동영 민주당 의원은 “그는 매우 깊이있고 전략적인 사고를 하는 사람이다”며 “같은 사안도 뛰어난 분석력을 바탕으로 조각이 아닌 전체로 이해, 그 인과관계와 사회적 의미까지 입체적으로 밝혀내 ‘역시 작가 출신은 다르다’고 생각한 게 한두 번이 아니다”고 말한다. 복잡다단한 국정을 큰 틀에서 통할하는 대통령의 입장에선 이렇듯 신속한 판단과 결정, 집행능력을 지닌 참모가 지근거리에 있으면 그것처럼 편한 일이 없다. 김장관은 청와대 정책기획수석이던 지난해 7월, 대통령을 보좌하는 참모의 자세를 택시기사에 비유한 바 있다.

“유능한 택시기사는 손님이 서울역으로 가자고 하면 을지로로 갈 것인지, 퇴계로로 갈 것인지 묻지 않는다. 그러려면 평소 어느 길이 가까운지, 얼마나 막히는지 지도도 봐놓고 교통방송도 열심히 들어둬야 한다. 어떤 기사들은 길이 막혀도 책임지지 않으려고 손님에게 미리 길을 묻는데, 이건 손님을 모시는 자세가 아니다. 손님이 시청까지 30분 안에 가야 한다고 말하면 그 다음은 택시기사가 알아서 하듯이 우리도 대통령을 그렇게 모셔야 한다.”

이 대목에서 다시 조영남씨의 얘기를 들어보면 그런 분위기를 대강은 짐작할 수 있다.

“건달 노릇을 할 때 한길이가 단편소설을 청탁받은 적이 있다. 그는 ‘글 쓸 기분이 아니다’고 했다. 그래서 ‘할 일도 없는데 한번 써보지 그러느냐’고 했더니 갑자기 눈빛을 반짝이며 ‘그럼 형이 써볼래?’이랬다. 이게 무슨 뜬금없는 소린가 싶어 ‘내가 어떻게 소설을 쓰냐’고 되물었더니 ‘사흘 동안만 내가 시키는 대로 하면 형도 소설을 쓸 수 있어’라고 했다.

심심하던 차라 나도 흥미가 동했다. 그날부터 당장 한길이가 읽으라고 한 카뮈, 샐린저, 라자르의 단편소설 3편을 읽고 나서 한길이의 소설강의를 들었다. 그렇게 사흘이 지나니 정말 나도 소설을 쓸 수 있겠다는 자신감이 생겼다. 정확하게 사흘 후부터 소설을 쓰기 시작해서 보름만에 완성했다. 그의 강의와 요점정리, 다양한 화제는 기가 막히게 머리에 쏙쏙 들어왔다. 어떤 질문을 해도 막힘없이 ‘썰’을 풀었다. 누구라도 그의 강의를 듣고 나면 소설을 쓸 수 있을 것이다. 말은 어눌하지만 참으로 어마어마한 설득력과 전달력이었다.”

원만한 대인관계와 친화력도 그의 남다른 장점 중 하나. 호남 출신도 가신 출신도 아닌 영입파가 승승장구 요직을 돌아다니다 보면 발목 잡는 사람도 있을 법한데, 한 번도 이렇다 할 구설에 오른 적이 없다. 지난해 말 한강변 별장 탈법 건축의혹이 제기됐지만, 사실이 아닌 것으로 밝혀져 보도를 한 신문사가 정정보도를 실었다. 워낙 구설이 없다 보니 4~5년 전인 결혼 초기에 부인(탤런트 최명길씨)을 때려 입원케 했다는 루머가 아직껏 그를 따라다니고 있지만 확인되지 않은 사실이다. 김장관은 “결코 그런 일이 없다”고 잘라 말했다.

이렇듯 구설이 없고 그를 표적으로 삼는 이가 드문 것은 그가 지금껏 자신의 자리에서 ‘힘자랑’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그는 비동교동계 영입파인 정동영 신기남 천정배 추미애 의원 등과 절친하면서도 동교동계 가신들과도 사이가 좋다. 그러면서도 동교동계에 흡수되지 않았다.

김장관의 문학적 재능을 일찌감치 간파해 문단에 데뷔시켰고, 한때 그의 장인이었으며, ‘작가 출신의 문화부 장관’이라는 공통점을 지닌 이어령 새천년준비위원장은 김장관의 상상력을 원만한 조직생활의 ‘무기’로 여긴다.

“진정한 상상력은 창조적인 것이 아니다. 그것은 남들이 다 알고 있으면서 위선 때문에 하지 않는 말을 솔직하게 털어놓는 것이다. 길들여진 자세, 길들여진 언어 때문에 보지 못하던 것, 감추던 것을 솔직하게 드러내는 것이다. 김한길은 이런 상상력의 소유자다. 이런 솔직함과 참신함이 관료나 정치인에겐 결점이 될 수 있는데, 그는 이런 나이브한 면모로 오히려 사람들을 파고든다. 그래서 이 사람은 별수단이 없으면서도 작가에겐 보기 드문 현실적 포용력으로 조직사회에서 모나지 않게 살아간다.”

그는 명절 때 여기저기서 선물이 들어오면 일일이 답장을 써 보내준다. 그것도 인쇄된 카드에 서명만 덜렁 해서 보내는 게 아니라 선물을 보낸 사람에게 적절한 메시지를 만년필로 또박또박 써서 보낸다. 가령 책을 선물한 사람에겐 ‘소중한 마음의 양식으로 삼겠습니다’라고 써보내고, 김을 보낸 이에겐 ‘우리 아이가 김 좋아하는 걸 어떻게 아셨습니까. 정말 맛있게 먹겠습니다’, 와인을 보낸 이에겐 ‘보내주신 와인의 그윽한 향에 취했습니다’라고 쓴다. 보통 정성으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장점이자 결점

김한길 장관의 정치 커리어에서 또 하나 특기할 만한 것은 대변인이나 공보팀장처럼 글과 말을 만지는 자리를 잇따라 맡았으면서도 필화나 설화에 휘말린 적이 없다는 사실이다.

그는 정치에 입문할 때 “정치인의 말엔 향기가 있어야 한다”고 했다. 그가 얼마나 이 약속에 충실했는지는 모르지만, 그가 대변인을 맡았을 때는 저질발언 시비가 거의 없었다.

청와대에 들어가서도 말에 있어서는 극히 신중했다. 김태동 정책기획수석, 황원탁 외교안보수석 등이 외부에서 한 발언 때문에 설화를 입은 것과는 대조적으로 그는 입을 굳게 다물었다. 강연 요청도 다 물리쳤다. ‘비서가 밖에 나가서 대통령의 뜻을 적극적으로 전달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었지만 수용하지 않았다.

공·사석을 불문하고 기자들과 얘기할 때도 기자들의 질문 의도를 정확하게 파악, 말꼬리를 잡히겠다 싶으면 입을 다문다. 그래서 더러 ‘브리핑이 무성의하다’는 소리까지 듣는다.

김장관의 무난한 처신과 신중함은 장점이 될 수도 있고 단점이 될 수도 있다. ‘자기 목소리를 분명하게 내지 않고 정치권에서 지나치게 잘 적응한다’면서 그를 좋게 보지 않는 시각도 있다.

특히 자존심으로 먹고 사는 문학인 출신으로 칼럼 등에서 비판적인 논조의 글을 자주 썼던 그가 보스와 계파 중심의 낡은 정당시스템에 편입된 후에는 좀체 입바른 소리를 하지 않고 있는 데 대해 섭섭하게 여기는 이도 많다. 필화, 설화 겪을 것을 너무 두려워하면 직언, 직필할 자리에서도 몸을 사리게 되기 쉽다는 조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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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형삼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han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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