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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최강 경쟁력의 문화산업 현장 탐방|<3>LA 4대 영화 명문학교

철저한 현장주의로 할리우드 거장을 키운다

  • 박성원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swpark@donga.com

철저한 현장주의로 할리우드 거장을 키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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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 다운타운에서 자동차로 30분쯤 웨스트우드 쪽으로 가다 보면 오른쪽으로 안온(安穩)한 분위기의 UCLA 건물들이 나타난다. 뒤쪽으로는 베벌리힐스의 고급 주택단지가 자리잡고 있다. UCLA(University of California, Los Angeles)는 캘리포니아에서 USC와 쌍벽을 이루는 명문학교지만 주립이라는 점이 다른 영화명문들과 다르다. 주립이라는 특성에 맞게 학비가 저렴, 영화학 공부에서 자칫 소외되기 쉬운 서민층 학생에게도 배움의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UCLA가 다양한 계층의 학생들에게 문호를 제공한다고 해서 입학하기가 쉽다고 생각하면 천만의 말씀. 교육의 외형적 확대보다는 내실을 중시하겠다는 학교방침에 따라 정원수는 오히려 적은 편이어서 입학경쟁이 뜨겁다. 특히 유학생들은 저렴한 학비혜택을 쉽게 받지 못한다. 유학생을 비롯한 다른 주 학생들에게 적용되는 차별적인 등록금제 때문에 유학생에게 UCLA 영화학교의 등록금은 사립대보다 별로 싸지도 않다.

UCLA 영화학교는 대학의 명칭부터 ‘School of Theatre, Film and Television at UCLA’인 데서 알 수 있듯 종합적인 공연예술인 양성을 추구하고 있다. 이 영화학교에 속한 영화학과 명칭도 ‘영화와 TV 학과(Department of Film · Television)’다. 영화·TV학과는 1955년 연극학과에서 분리독립됐다. 이들 예술은 근접한 영역으로 서로 유기적 연관 속에 성장할 수 있다는 게 UCLA의 교육관이다. 예컨대 시나리오 작가가 무대공연을 맡을 수도 있고 감독이 작가가 될 수도 있게 키운다는 것이다.

UCLA 영화학교의 로버트 로젠(Robert Rosen) 학장은 “창조하고 만드는 것은 자신의 몫이지만 우리는 방법론에 관한 모든 것을 가르치려 한다”면서 “따라서 학생들은 관심 있는 분야뿐만 아니라 상호연계돼 있는(interactive) 과들의 모든 것을 묶어서 배워야 한다”고 말했다. 로젠 학장은 “중요한 것은 테크니컬 또는 기술적 트레이닝이 아니라 영화를 만드는 능력과 방법”이라면서 “우리 학교에서 애니메이션을 전공한 호이게튼이 현장에 나가서 ‘아마겟돈’ 등의 특수효과 책임자로 활약할 수 있었던 것도 이런 능력을 길렀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단순히 촬영기사나 편집맨을 키우는 게 아니라 영화와 관련된 만능(cross over)맨을 키워낸다는 것이다.

이론 강하고 유명극작가 다수



USC가 비즈니스 측면의 교육, 실기가 강하다면, UCLA는 전통적으로 이론 분야에 강하다는 평이다. UCLA 영화학과 설립 초기에는 영화산업이 요구하는 기능인 양성보다는 예술적 표현을 강조하는 경향이 강했다. 그래서 진보적이고 실험적인 학풍이 많았다. 이러한 분위기는 소수민족의 영화운동으로 이어져 찰스 버닛, 하릴레 제리마, 래리 클라크 등이 중심이 된 70년대 흑인영화운동을 낳았다.

하지만 이런 성향은 주류 영화산업의 요구에 부응하지 못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을 듣기도 했다. 그래서 학교측도 현실에 부응하는 방향으로 궤도를 점차 수정했다. 공립영화학교 나름의 실험적 전통과 주류 영화산업의 현실적 요구를 효과적으로 접목시키기 위한 UCLA 영화학교의 노력은 오늘도 계속되고 있다. USC와 마찬가지로 할리우드에서 명성을 날리며 세계 영화흐름을 주도하는 선배들이 자주 특강 등의 형태로 교습을 도와주고 학교건물도 동문들이 세워준 게 많다. 특히 영화학과는 강의보다는 토론과 참여 위주의 쌍방향(interactive) 방식으로 수업이 이뤄진다.

UCLA 출신으로는 극작 분야의 인재들이 많다. ‘스타트랙’ Ⅱ, Ⅲ, Ⅳ,Ⅴ의 극작가이자 감독, 제작자인 하브 베네트(Harve Bennett), ‘심프슨(The Simpsons)’의 여배우 낸시 카트라이트(Nancy Cartwright), ‘이유없는 반항’ ‘자이언트’ ‘에덴의 동쪽’으로 유명한 제임스 딘, ‘미녀와 야수’의 여배우 수전 에건(Susan Egan), ‘포레스트 검프’의 극작가인 에릭 로스(Eric Roth), ‘해리가 샐리를 만날 때’ ‘어퓨 굿 맨’ 등을 감독 제작한 로브 라이너(Rob Reiner), ‘스팅’ 등을 극작, 감독한 데이비드 워드(David Ward), ‘탑건’ ‘흐르는 강물처럼(A River Runs Through)’ 등의 배우 톰 스커리트(Tom Skerritt), ‘캐스퍼’를 감독한 브래드 실버링(Brad Silberling), ‘마스크’의 각본을 쓴 마이클 웨브(Michael Werb), ‘쥐라기 공원’ ‘캐스퍼’ ‘백 투더 퓨처’ ‘아폴로 13’ ‘후크선장’ 등을 촬영한 딘 컨디(Dean Cundey), ‘The Long Kiss Goodnight’을 쓴 셰인 블랙(Shane Black) 등이 UCLA 출신이다. ‘대부’의 프란시스 코플라 감독도 마찬가지다. 국내에는 하길종 감독과 ‘아름다운 시절’의 이광모 감독, 김세훈 세종대교수, 소재영 서울예전교수 등이 UCLA 졸업생이다. 재학중인 한국인 유학생은 4~5명 정도.

실기 위주의 팀워크 강조하는 AFI

LA 중심가에서 할리우드를 관통하여 그 끝자락에 이르면 가톨릭 교회풍의 아담한 AFI 건물들이 눈에 들어온다. 이따금씩 사슴이 머리를 힐끔 내밀며 낯선 손님의 침입에 가슴을 콩당거리고 있고, 캠퍼스 뒤편에는 니콜라스 케이지가 살던 집을 비롯해서 근처에 유명배우들이 사는 집이 많다. AFI는 처음에는 할리우드 한복판에 건물 하나로 시작했으나 워너브라더스 유니버설 등 유명회사들의 재정 기증에 힘입어 10년 만에 이곳으로 터를 넓혀 이주해왔다.

워싱턴에 본부를 두고 있는 미국 영화연구소(AFI·American Film Institute)는 1967년 존슨 대통령의 국가예술장려법에 의해 정부기금으로 설립된 이래 영화정책개발, 영화인에 대한 교육훈련, 영화와 관련된 신기술 전파의 견인차 구실을 해왔다. 우리의 영화진흥위원회에 가까우며 초대 이사장은 할리우드의 톱스타 그레고리 펙이다.

교육기관으로서의 AFI는, 정확히 표현하자면, 이 AFI 산하에 있는 ‘Center for Advanced Film· Television Studies’(CAFTS)를 가리킨다. 할리우드에 있는 AFI가 바로 이것으로 이 영화학교를 통칭해 AFI라고 부르기도 한다.

이 AFI는 당초 대학이라기보다는 MGM 소니 파라마운트 등 유수의 영화사들이 재정을 기부, 필요한 전문인력을 조달하기 위한 방편으로 출발시킨 할리우드 영화인들의 재교육기관이다. 따라서 학부가 없이 대학원만 있다. 물론 학위를 주니까 학교는 학교이되 학력(學歷)에 관계없이 수학능력만 인정되면 누구든지 입학해 교육받을 수 있다.

그러나 입학을 위해서는 해당 분야에서 3년 이상 일한 경력이 있어야 하고 에세이와 함께 자기가 만든 16㎜나 35㎜ 작품을 포트폴리오(시연작품)로 제출해야 한다. 학사학위 없이 입학한 학생은 졸업할 때 석사학위는 받지 못하고 수료증만 받을 수 있다.

1학년은 짧은 길이의 영상작품 3편을 만드는 데 참여해야 하고 2학년은 16㎜ 필름으로 졸업작품을 만들어야 한다. 실제 할리우드 영화제작처럼 다른 분야 전공자들이 하나의 작품을 위해 팀을 이뤄 작업(수업)하게 한다. 할리우드에 나가서 쉽게 적응할 수 있도록 팀워크를 이루며 일을 해나가는 경험을 쌓게 해주려는 것이다. AFI의 조 페트리카(Joe Petricca) 학장보는 “연출을 전공하는 사람도 카메라를 모른다면 현장에서 좋은 작품을 만들 수 없다”면서 “팀을 이뤄 다른 분야 전공자와 함께 실습을 해보는 것은 현장에 가서 필요한 팀워크를 키우는 데 아주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실기 분야 최고의 학위인 MFA 취득 여부는 졸업논문이 아닌 작품심사로 결정된다. 학생들의 졸업작품은 3차례로 나뉘어 교내극장에서 상영되며 이때 할리우드의 각 전문가들이 초청돼 유능한 인재를 눈여겨 봐둔다. 실력이 안 되면 학기마다 제적이라는 벼랑으로 떨어질 수밖에 없으며 휴학도 허용되지 않는다. 졸업 후 현장에서 바로 써먹을 수 있는 인력을 배출하기 위해 강도 높은 제작·실습 교육을 시키는 것이다. 시험이나 논문은 없다. 이론공부는 입학하기 전에 30여 권의 필독서적을 학교측이 제시, 미리 다 읽고 들어오게 한다.

교수진은 영화 및 텔레비전 프로그램 제작과 관련해 각 분야의 풍부한 현장경력을 가진 베테랑들로 구성된다. AFI에서는 교수들이 학생들에게 ‘학생(student)’이라는 호칭을 잘 쓰지 않는다. 그냥 ‘동료(fellow)’라고 부른다. 교수-학생의 수직적 관계보다는 동등한 관계로 자유롭게 토론한다. 교육의 수요자와 공급자라는 두 주체로 만났다는 인식 때문이다. 1·2학년 전원을 다 합쳐도 학생수가 200여 명에 불과해 오붓한 분위기다. 캠퍼스도 여학교 건물을 개조해 만든 고딕양식의 스페인풍 건물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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