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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목적기 라팔, 그 현란한 기술의 세계

프랑스 힘의 원천 첨단 방위산업 현장을 가다

  • 이정훈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hoon@donga.com

다목적기 라팔, 그 현란한 기술의 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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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공기와 다목적기는 어떻게 다를까? 전투기는 사용 목적에 따라 ‘제공기’와 ‘전폭기’로 나누어진다. 전투기는 원칙적으로 적진으로 날아가 지상에 있는 목표물을 폭격하기 위해 만든 것이다. 약간의 공중전 능력을 겸비한 채 적진을 폭격하러 들어가는 전투기를 전폭기라고 한다. 이러한 전폭기가 날아오면, 적군은 전투기를 띄워 이 전폭기를 요격하려고 할 것이다. 따라서 전폭기를 보낼 때는 아군 전폭기를 요격하려는 적 전투기부터 잡아야 한다. 공중전 끝에 적 전투기를 잡는 전투기가 ‘제공기’다.

제공기와 전폭기 중 성능이 탁월한 것은 제공기다. 제공기는 움직이는 목표(적기)를 요격해야 하니, 지상에 고정된 목표물을 공격하는 전폭기보다 훨씬 더 정교한 레이더와 미사일을 갖추고 있어야 한다. 이런 이유로 제공기는 전투기의 대명사로 꼽히는데, 미 공군은 이러한 제공기로 F-15, 전폭기로는 F-16을 보유하고 있다.

또 전투기는 지상 기지를 뜨고 내리는 ‘공군기’와 항공모함을 기지로 이용하는 ‘해군기’로 나누어진다. 항공모함의 활주로는 지상 기지의 활주로보다 더 짧다. 항공모함은 최고 시속 55㎞대로 움직이므로, 해군기는 이동하는 활주로(항모)에 이착함할 수 있어야 한다. 또 해군기는 소금기가 섞인 바닷바람을 맞는 관계로 부속품이 빨리 부식된다. 따라서 해군은 별도의 전투기를 채택해왔는데, 미 해군은 제공기로 F-14를, 전폭기로 FA-18을 운영해왔다(한국은 항모가 없는 관계로 아예 해군기가 없다).

새 전투기가 상업적으로 성공하려면 최소 800대 이상 생산되어야 한다. 미국의 경우라면, 해군과 공군이 제공기와 전폭기로 최소 3200대를 보유해줘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미 해군과 공군이 보유할 수 있는 적정 전투기 수는 1200대 정도다. 이러니 미국의 항공기 제작업체들은 세계 각국에 전투기를 팔기 위해 필사적일 수밖에 없었다. 미국이 장악한 세계 전투기 시장에 뒤늦게 컨소시엄을 구성한 유럽 업체들이 뚫고 들어갈 수 있을 것인가? 1970년대 후반 유럽 5개국은 이런 문제에 봉착하게 되었다.

영국은 유럽이 생산할 제4세대기는 공군용 제공기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프랑스의 생각은 달랐다. 프랑스는 ‘공군용 제공기부터 개발하면, 유럽은 장차 네 종류 전투기를 전부 만들어야 한다. 유럽은 과연 이렇게 많은 전투기를 팔 시장을 확보할 수 있을 것인가? 제공기·전폭기, 해군기·공군기는 역할만 다를 뿐이지, 기본적으로 똑같은 전투기다. 그러니 전투기는 하나로 만들고, 전투기에 탑재하는 레이더와 미사일 등을 제공기와 전폭기용, 해군기와 공군기용으로 개발하는 것이 훨씬 더 경제적’이라며 다목적기 개발을 주장했다.



이러한 의견 차이로 인해 컨소시엄에서 탈퇴한 프랑스는 독자적으로 다목적기인 라팔 개발에 착수했다. 반면 유럽 4개국은 영국의 의견을 좇아 공군 제공기용인 타이푼 개발에 들어갔다. 20여 년이 흐른 지금 프랑스와 유럽 4개국은, 비슷한 시기에 FX 사업을 추진하는 한국과 그리스라는 시험장에 각자의 ‘답안지’(라팔과 타이푼)를 제출해놓고, 초조히 ‘채점’을 기다리고 있다.

다목적기 개발 지향

9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프랑스의 선택은 무모해 보였다. 타이푼은 공동개발에 참여한 4개국 모두 사줄 것이므로, 초장부터 큰 시장이 확보된다. 하지만 라팔의 최초 고객은 프랑스의 해·공군뿐이므로 초기 시장이 작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이를 입증이라도 하듯 타이푼이 개발되자 유럽 4개국은 620대 생산을 주문했다. 그러나 프랑스 해·공군은 295대밖에 발주하지 못했다. 전투기도 제품인 이상 시장을 확보하지 못하면 퇴출될 수밖에 없다. 그러나 프랑스는 예상밖으로 덤덤해했는데, 그 이유는 차차 설명하기로 한다.

다목적기를 지향한 프랑스의 꿈이 실현되려면, 이 계획에 참여한 회사들이 필요한 부속과 레이더·미사일을 개발해줘야 한다. 프랑스는 과연 그 꿈을 실현했는가? 이 궁금증은 ‘톰슨-CSF 데테시스(Detexis)’라는 회사를 방문하면서 풀렸다. 톰슨-CSF 데테시스는 기자가 방문한 회사 중에 가장 복잡한 보안 시스템을 갖춘 회사였다. 이 회사 이사진을 만나기 위해, 신원을 확인해야만 열어주는 자동문을 두 개나 통과했다. 그리고 건물 안에서도 안내자가 키카드를 사용해 문을 열어줘야만 사무실로 들어갈 수 있었다.

이 회사는 톰슨-CSF 그룹의 자회사다. 톰슨-CSF는 8개 소그룹으로 구성된 세계적인 전자 그룹인데, 이 그룹은 삼성전자와 공동으로 ‘삼성 톰슨-CSF’를 만들어, 한국이 독자개발한 육군용 단거리 방공 미사일 ‘천마’ 생산에 참여하고 있다. 90년대 초반 톰슨-CSF 그룹은 극도의 재정 위기에 봉착해, 부채 해결 차원에서 가전 소그룹을 단돈 1달러에 대우그룹에 넘기려 했다. 그러나 프랑스의 자존심을 내세운 근로자들이 극렬히 반대해 매각이 무산됐다. 7∼8년이 지난 지금 톰슨-CSF의 가전 소그룹은 흑자로 돌아섰고, 대우그룹은 공중 분해되었다.

여기서 ‘톰슨(Thomson)’은 불어가 아니라 영어로 미국인 이름이다. 이 회사는 1893년 미국의 전기 기술자 톰슨이 자기 이름을 따서 세운 ‘톰슨 컴퍼니’에서 비롯되었다. 그런데 프랑스 정부가 이 회사를 매입해 ‘톰슨 무선(無線)회사’로 이름을 바꾸었는데, 톰슨 무선회사가 불어로는 ‘Thomson Communication Sans Fil’이어서, 톰슨-CSF가 되었다. 자주성이 강한 프랑스 정부는 미국의 사기업을 국영기업으로 사들였는데도, 미국식 이름을 그대로 유지한 것이다. 이러한 프랑스의 특성이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60m 초저공비행 가능

톰슨-CSF 데테시스는 먼저 라팔 전투기가 지상 60∼70m(200피트)라는 초저공에서 마하 0.95로 비행하는 비디오를 보여주었다. 비행기가 지형 지물을 피해가며 초저공비행을 하려면 속도를 늦춰야 하는데, 속도를 늦추다 보면 ‘실속(失速)’으로 추락할 수도 있다. 저공비행을 위해 개발된 헬기일지라도 200피트 비행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닌데 라팔은 성공한 것이다. 비결은 93년 8월 이 회사가 개발한 RBE-2 레이더에 있었다. RBE-2 레이더는 사진에서처럼 라팔 전투기 맨 앞부분에 들어 있다.

방산 분야는 매우 전문적이어서 기본 지식이 없으면 아무리 설명을 들어도 이해할 수가 없다. 더구나 톰슨-CSF 데테시스 직원이나 기자 모두 서투를 수밖에 없는 영어로 설명을 하니, 톰슨-CSF 데테시스측은 기자가 자신들의 설명을 제대로 이해하는지 무척 신경을 썼다. 그런데 기자가 라팔의 초저공비행에 깜짝 놀라며 관심을 보이자, 그들은 비로소 밝은 표정으로 신나게 설명을 이어 나갔다.

지금까지 나온 기계식 레이더들은 대개 1초에 한 번 지형 지물을 탐색한다. 그러나 전자식인 RBE-2 레이더는 5마이크로초(micro-second : 100만 분의 1초)에 한번 탐색한다. 기계식 레이더에 비해 20만 배나 빨리 지형 지물을 읽어내기 때문에 라팔이 초저공비행을 할 수 있는 것이다. 초저공비행을 할 수 있다는 것은 라팔이 지상 목표물을 공격하는 전폭기 구실을 완벽히 수행할 수 있다는 뜻이다.

라팔은 전폭기 구실을 수행하기에 앞서 자신을 요격하려는 적기와 대결해야 한다. 이때 조종사는 RBE-2 레이더를 공중전 모드로 바꿔, 라팔을 제공기로 변신시킨다. 지금까지 전투기에 탑재된 기계식 레이더는 대개 전투기 전방 60。 안에 들어온 적기만을 탐지해 왔다. 때문에 60。 안에 있던 적기 중 일부가 갑자기 60。 바깥으로 달아나면 이 전투기는, 60。 안에 더 많은 적기가 남아 있는 관계로 60。 바깥으로 달아난 적기에 대한 탐색은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다 60。 바깥으로 달아난 적기가 역습해오면 꼼짝못하고 당하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톰슨-CSF 데테시스는 이러한 위험성을 없애기 위해 RBE-2 레이더의 탐지각도를 140。로 확대했다. 컴퓨터에도 용량이 있듯이 레이더에도 용량이 있다. 탐지 각도 안에 너무 많은 적기가 들어오면, 레이더는 이를 다 읽지 못하거나 혼란을 일으키는 것이다. 그러나 RBE-2 레이더는 용량이 커서 최고 40대의 적기를 탐지할 수 있다. 이로써 라팔은 기존의 제공기보다 훨씬 탁월한 능력을 갖게 되었다. RBE-2 레이더는 라팔에게 제공기와 전폭기 능력을 주었을 뿐만 아니라 그 능력을 현저히 강화시켜준 ‘마법의 눈(眼)’이다.

톰슨-CSF 데테시스 임원진은 “공대지는 물론이고 공대공 능력을 겸하면서 동시에 이렇게 능력을 증가시킨 레이더를 장착한 전투기는 라팔뿐이다. 미국 전투기들도 이러한 레이더를 장착하지 못했다. 미국은 현재 연구 개발중인 F-22기에서 이와 비슷한 성능을 가진 레이더를 장착할 예정인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이 회사가 내놓은 또 하나의 걸작은 라팔의 보조연료 탱크 자리에 장착하는 지상 정찰 카메라 ‘사리스(SARIS)’다. 보조연료 탱크와 흡사하게 생긴 사리스는, 150㎞ 떨어진 곳에 있는 물체를 1m 해상도로 찍을 수 있다. 미국이 자랑하는 세계 최고의 군사 첩보위성인 KH-12와 KH-14의 해상도가 20cm 내외고, 기타 국가가 보유한 군사 첩보위성의 최고 해상도가 대략 1m 내외다. 따라서 사리스를 장착한 라팔은 웬만한 군사 첩보위성 수준의 사진을 찍을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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