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 11월호

윤미진의 최면법 VS 강초현의 명상법

  • 육성철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ixman@donga.com

    입력2006-08-02 13:5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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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윤미진과 강초현은 시드니 올림픽을 통해 깜짝스타로 떠올랐다. 그들이 어려운 집안환경을 이겨내고 메달을 따냈기에 감동의 깊이는 더했다. ‘비실이’ 윤미진과 ‘깜찍이’ 강초현. 두 선수는 오랜 정신집중 훈련으로 오늘의 영광을 안았다. 윤미진은 자기 최면과 반복훈련을 통해 자동화된 몸을 만들었고, 강초현은 명상으로 마음상태를 조절하게 됐다.
    양 궁 선수 윤미진(17·경기체고2)과 사격 선수 강초현(18·유성여고3)은 여러 모로 닮았다. 두 사람 모두 여고생이며 얼마 전 끝난 제27회 시드니올림픽에서 발군의 기량을 선보였다. 윤미진은 여자 양궁 개인전과 단체전을 휩쓸었고, 강초현은 여자 공기소총에서 은메달을 따냈다. 올림픽이 끝난 뒤에도 두 사람의 인기는 시들지 않고 있다. CF가 밀려드는가 하면 인터넷에서는 팬카페가 줄줄이 문을 열었다.

    두 선수의 종목이 갖는 연관성도 빼놓을 수 없다. 사격과 양궁은 똑같이 도구를 활용해 목표물을 맞히는 기록 경기다. 점수로 우열을 가리지만, 내용상으로는 ‘자신과의 싸움’으로 볼 수 있다. 차이가 있다면 공기소총은 실내, 양궁은 실외 경기라는 점이다. 사격과 양궁은 선수의 집중력이 승부를 가른다는 점에서도 유사하다. 이런 까닭에 두 종목은 올림픽에서 가장 상품화가 덜 된 종목으로 꼽힌다.

    ■ 겁없는 10대 궁사 윤미진

    9월19일 오후 시드니 올림픽파크 양궁장. 한국이 자랑하는 최고의 여궁사들이 첫 번째 금메달에 도전하고 있었다. 가장 강력한 우승후보였던 김수녕의 준결승 상대는 10대 소녀 윤미진. 잘 알려진 것처럼 김수녕은 위기에 더욱 강한 승부사다. 반면 윤미진은 도무지 속셈을 알아차릴 수 없는 ‘포커페이스의 달인’. 불꽃튀는 레이스는 김수녕의 우세로 굳어지는 듯했다. 마지막 2발을 남겨놓고 108 대 107. 김수녕이 앞섰다.

    하지만 이 순간 윤미진의 11번째 화살이 골드 과녁을 꿰뚫었다. 김수녕이 움찔하면서 8점을 쏴 117 대 116으로 역전. 윤미진은 틈을 놓치지 않고 마지막 화살을 10점으로 장식했다. ‘신궁’ 김수녕은 역전의 기회조차 잡지 못하고 결승 문턱에서 물러섰다. 윤미진은 상승세를 몰아 김남순과의 결승에서도 1점차 리드를 끝까지 지켜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했을까. 양궁인들은 윤미진의 포커페이스를 지적한다. 불과 1년 전 명함도 내밀지 못하던 윤미진이 세계선수권보다 더 어렵다는 국내선발전을 당당히 통과할 수 있었던 것도 타고난 ‘포커페이스’ 덕분이다.

    양궁은 고도의 정신집중을 필요로 한다. 양궁 경기는 야외에서 열리기 때문에 바람의 영향도 많이 받는다. 잘 나가던 선수도 허공을 향해 화살을 날리고 주저앉는 일이 흔하다. 그래서 양궁 선수는 최후의 한 발까지 모든 신경을 집중해야 한다.

    윤미진의 일과는 빈틈이 없다. 아침부터 밤까지 자투리 시간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다. 체력훈련과 휴식, 독서와 이미지트레이닝이 계속된다. 이 가운데 이미지트레이닝은 윤미진이 가장 신경을 쓰는 훈련. 이미지트레이닝의 감이 좋으냐에 따라 그날의 컨디션이 결정된다고 한다.

    “다른 모든 생각을 버리고 오로지 활쏘는 것만 생각하는 거예요. 내일이 시합이라고 생각하고 시작해요. 그냥 상상하는 거예요. ‘나는 선수 대기석에 앉아 있다. 내 이름이 나오고 활을 들고 나간다. 발자국 소리가 들린다. 멀리 과녁이 보인다. 노란색이 크게 보인다. 활을 들고 시위를 당긴다. 지금이다 싶은 순간 화살을 날린다. 10점에 명중했다. 과녁을 보고 다음 화살을 준비한다.’ 보통 사람들은 잘 모르겠지만, 저는 눈만 감으면 경기장에 서 있는 것 같은 느낌이 와요.”

    일반적으로 양궁 선수들은 조용한 분위기를 좋아한다. 활 시위를 당길 때는 관중들도 침묵을 지키는 것이 예의로 돼 있다. 하지만 윤미진은 정반대다. TV 카메라가 비치고 전광판에 점수가 올라가고 관중석에서 환호성이 터져나오면 더 신이 난다는 것. 그래서 관중도 없이 수개월간 펼쳐졌던 국내평가전이 올림픽보다도 힘들었다고 한다.

    포커페이스가 최고의 장점

    하지만 윤미진은 역시 감수성이 예민한 사춘기 소녀다. 처음에 쏜 몇발의 화살이 중심에서 빗나가면 바로잡기가 무척 힘들단다. 그래서 초반 분위기를 잡는 데 애를 쓴다고. 일단 사선에 서면 입을 다무는 것이 윤미진의 철칙. 말문을 닫으면 저절로 표정이 무거워지고 행동도 얌전해진다는 것이다. 이게 바로 선배들을 물리친 ‘포커페이스’의 바탕이었던 모양이다.

    윤미진은 자신을 지도해준 선생님에게 많은 것을 의지하는 스타일이다. 초등학교 6학년 때부터 인연을 맺은 조은신 코치와 현재 경기체고 감독을 맡고 있는 임인택 감독의 말이라면 어떻게든 지키려고 애를 쓴다. 임감독은 윤미진의 이러한 성격을 감안해 생활패턴을 조절하고 있다.

    “아무리 뛰어난 선수도 1주일 정도 풀어주면 마음이 틀어져버려요. 그래서 하루도 빼놓지 않고 평상심을 잃지 않도록 잔소리를 하게 되죠. ‘활을 잡으면 말을 해서는 안 된다. 거울 앞에서 얼굴을 고치지 마라. 외출해서 PC방에 가지 말아라’ 내가 그렇게 말한다고 그대로 완벽하게 따라줄 아이들이 아니지만, 감독은 그렇게라도 해서 선수들의 마음을 잡을 수밖에 없어요. 한 1주일쯤 지나버리면 평상심을 되찾기가 아주 힘들어요. 그래서 하루도 쉬지 않고 훈련을 시키는 거죠.”

    윤미진 선수는 사생활도 없이 훈련에만 매달리는 걸까. 그렇지는 않은 것 같다. 윤미진은 “외출하면 언니들과 옷도 고르고 액세서리도 사모은다”고 말했다. 하지만 시합이 가까이 오면 그마저도 중단한다고. 임감독의 말처럼 양궁만을 생각하고 다른 것은 철저하게 잊어버린다고 한다. 실제로 윤미진은 시드니에서 귀국한 뒤 집에도 들르지 않고 전국체전 준비에 들어갔다.

    시드니 올림픽이 열리는 동안 호주의 언론들은 한국 양궁을 시샘하는 기사를 연이어 내보냈다. 한국의 여자 선수들은 로봇과 같다는 비판이었다. 실제로 한국 선수들이 올림픽을 준비하는 모습을 보면 그런 측면도 있다. 국가대표 선수들은 담력을 기르기 위해 공동묘지를 찾고 새벽에 일어나 잠실에서 여의도까지 무작정 걷기도 한다. 하루에 쏘는 화살만도 800발에서 1000발. 대부분 클럽에서 취미로 양궁을 즐기는 서양 사람들의 눈으로는 이상하게 보일 만도 하다.

    “항상 똑같은 위치에서 똑같이 쏘려고 노력해요. 그렇게 해야 한다고 최면을 걸어요. 자세가 달라지면 안 되거든요. 내 몸이 기계처럼 자동화되는 거예요. 오랫동안 꾸준히 연습하면 그렇게 돼요. 하지만 저도 아직까지 완벽하게 조절하지는 못해요. 흔들릴 때도 있거든요.”

    윤미진은 목표의식이 강한 선수다. 누구에게도 지지 않겠다는 강한 승부욕을 보여왔다. 이미지트레이닝을 마치고 나면 “나는 할 수 있다”는 말로 최면을 건다. 윤미진은 지나간 일을 잊어버리는 속도도 대단히 빠르다. 이런 자세는 국가대표 선발전이나 올림픽 같은 큰 경기에서 ‘보이지 않는 힘’으로 작용했다.

    “솔직히 아무런 부담이 없잖아요. 저는 대표팀에서 막내예요. 주변에 금메달을 따야 한다고 말하는 사람도 없었어요. 그냥 내 실력대로 열심히 쏘면 됐어요.”

    수원 송정초등학교 4학년때 “양궁부 친구와 함께 하교하고 싶다”며 처음 활을 잡았던 윤미진. 그는 지금껏 딱 한번 양궁을 그만두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중학교 2학년때 양궁부 분위기가 어수선해지자 후배들과 팀을 떠났던 것. 그는 이때 삶의 목표를 잃고 방황했다고 한다.

    “자세가 흐트러지면서 슬럼프가 왔어요. 후보로 밀리고 보니까 만사가 다 귀찮아졌어요. 팀에 복귀해서 모든 것을 잊고 연습에만 매달리다 보니까 극복이 되더라구요. 중3때 소년체전을 우승하면서 ‘하면 되겠구나’ 하는 느낌이 왔어요.”

    운동선수들의 영원한 고민 중의 하나가 공부와 친구에 대한 미련이다. 윤미진 역시 친구들과 어울리지 못하는 것이 아쉽다고 한다. 하지만 양궁 선수로서 아직 가야 할 길이 멀기에 학업은 대학생이 된 이후에 생각하기로 했다. 대학에서 가장 하고 싶은 공부는 영어. 멋진 옷을 입고 쇼핑을 즐기고 싶은 욕심도 그때까지 접어둘 작정이다.

    윤미진은 벌써 올림픽 금메달의 환희를 잊은 듯했다. 그의 관심은 올림픽이 아니라 코앞으로 다가선 전국체전이었다. 올림픽 챔피언의 자존심보다는 모교의 우승을 위해 기여하고 싶단다. 마지막으로 그에게 “여자로서 멋을 부리고 싶은 생각이 들 때는 없어요?”라고 물었다. 그의 대답이 걸작이다. “꾹 참고 있어요. 대학에 가면 저도 꾸미고 다닐 거예요. 지금은 자제하고 있어요.” 윤미진 선수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임감독이 거들었다. “얼굴을 꾸미고 다니면 어디 양궁이 되나요? 생각이 많아지면 기록이 나올 수가 없어요.”

    9월 16일 오전 시드니 세실파크 올림픽 사격경기장. 한국의 강초현이 예선 1위로 여자 공기소총 결승에 진출했다. 아침 일찍부터 경기장에 몰려든 교민들은 태극기를 흔들며 92년 바르셀로나올림픽의 ‘여갑순 신화’를 예감하고 있었다. 2위 낸시 존슨(미국)과는 2점차. 강초현이 실수만 하지 않는다면 우승은 무난해보였다.

    하지만 낸시 존슨이 무섭게 따라붙었다. 한 발을 남겨놓고 동점. 마지막 한 발로 메달 색깔이 결정되는 순간이었다. 존슨이 먼저 쐈다. 전광판에 9.9가 찍혔다. 강초현이 10점(결승은 10.9 만점으로 진행된다)만 맞히면 금메달이었다. 하지만 강초현은 흔들리는 기색이 뚜렷했다. 조준을 하다가 총을 내리고 만 것이다. 마침내 강초현이 방아쇠를 당겼다. 9.7이었다. 다 잡았던 금메달이 날아간 것이다.

    사격 선수들은 대개 타이밍을 놓치거나 정조준이 안 됐을 경우 총을 거둔다. 이렇게 되면 75초 제한시간에 몰리고 호흡도 불안해진다. 강초현이 마지막에 쏜 9.7은 결승 10발 중 두 번째로 낮은 점수였다.

    사격 선수에게는 정신집중력, 결단력, 담력 등이 요구된다. 전방의 표적을 응시한 채 숨을 멈추고 몸의 미세한 리듬을 느끼면서 격발 순간을 기다린다. 몸의 흐름이 완전한 상태에 이른 순간 방아쇠를 당겨야만 적중률이 높아진다. 하지만 이러한 경지에 오르기 위해서는 고도의 수련이 필요하다. 사격을 테크닉으로만 볼 수 없는 이유가 여기 있다. 아무리 기술이 뛰어나더라도 몸의 기운을 한곳에 집중시키지 못하면 명사수가 될 수 없는 것이다.

    [윤미진이 말하는 정신집중법]

    “목표를 정하고 최면을 걸어라”

    윤미진은 목표를 설정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말한다. 목표가 정해져야만 최면을 걸 수 있기 때문이다. 자기 최면은 자신감에서 출발한다. 다른 문제는 생각하지 않고 하나의 목표에만 매달린다. 몸이 따라주지 않을 때는 쉬는 것이 상책이다. 사우나를 하면서 몸을 추스리는 것도 좋다. 훈련은 기분이 좋은 상태에서 해야 한다.

    ●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한다.

    ● 연습할 때는 항상 긴장하고 시합에 들어가면 푹 빠진다.

    ● 사선에 들어가면 절대로 말을 하지 않는다.

    ● 잘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잃지 않는다.

    ● 꾸준한 연습으로 몸이 기계처럼 움직여야 한다.

    ● 일을 시작하기 전에 확실한 목표를 세운다.

    ● 목표가 정해지면 끊임없이 ‘할 수 있다’는 최면을 건다.

    ● 시합 때는 최상의 컨디션을 만들어야 한다.

    ● 훈련은 하루도 거르지 않는다. 명절 날도 훈련은 계속된다.

    ● 시합이 끝나면 빨리 잊어버리고 다음 시합을 준비한다.


    사격 선수들은 정신집중을 위해 이미지 트레이닝을 자주 한다. 사격장에 가보면 총을 들지 않은 상태에서 손으로만 조준과 격발 동작을 반복하는 선수들을 볼 수 있는데 이것도 이미지 트레이닝의 일종이다. 마음 속으로 사격을 생각하면서 자세를 익히는 것이다. 일부 선수들은 집중력을 높이기 위해 캄캄한 밤중에 촛불 앞에서 자세를 연습하는 경우도 있다. 또 어떤 선수들은 자신의 심장 소리를 들으면서 격발 타이밍을 조절한다.

    강초현도 예외는 아니다. 그에게 정신 집중의 노하우를 물었더니 “특별한 게 없다”고 했다. 원래 집중을 잘하는 성격이 아니었는데, 사격을 시작하면서 매사에 자제할 줄 알게 되었다고 한다.

    강초현은 유성여중 1학년때 왠지 사격이 멋져 보여서 사격부에 들었다. 그때부터 강초현을 지도해온 8촌 오빠 강재규 감독은 한사코 만류했지만, 강초현의 고집을 꺾지 못했다. 무슨 일이든 시작하면 끝장을 보고야 마는 강초현. 그는 책을 붙잡으면 밤을 새서라도 다 읽고 나서야 잠자리에 들었다. 이 바람에 다음날 졸면서 훈련에 참가한 일도 있었다고 한다.

    “사격을 시작하면 집중은 기본이예요. 집중하지 않으면 사격이 이루어질 수가 없어요. 집중하지 않고 100발을 쏴봐야 소용없어요. 집중해서 10발 쏘는 사람을 당할 수가 없어요. 공부도 그렇잖아요. 딴 생각하면서 3시간 앉아 있는 것보다 30분 집중해서 공부하는 게 낫잖아요. 사격은 ‘자기와의 싸움’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혼자 생각하는 시간이 많아요. 그래서 사격을 오래 하면 한번 더 생각하고 자제하는 태도가 저절로 생기는 거죠.”

    기자가 강초현을 만나는 동안 유성여고 학생들이 사인 공세를 퍼부었다. 유리창에서 환호하는 후배들에게 강초현은 손을 흔들었다. 같은 반 친구들을 만났을 때는 쉴새없이 수다를 떨었다. 그러나 유니폼을 입고 사격장으로 들어섰을 때는 완전히 다른 모습이었다. 생글생글 웃던 얼굴은 간데 없고 차분히 표적을 응시하는 총잡이가 그곳에 있었다.

    “모든 생활에서 마음을 가라앉히는 거죠. 그날의 훈련 목표를 생각하고 자꾸 되뇌이는 거예요. 저도 처음에는 잘 안됐어요. 자꾸 연습하니까 나중에는 자연스럽게 되더라구요. 집중을 해야 한다고 자꾸 마음 속으로 강조하는 거예요. 그러면 어느 순간 자기도 모르게 집중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되는 거예요.”

    강초현은 상황에 따라 자신의 심리상태를 조절할 수 있다고 한다. ‘이제부터 침착하게 행동해야겠다’고 마음 먹으면 저절로 차분해지고, 그 반대로 ‘활발하게 어울려야겠다’고 생각하면 웃음이 자연스럽게 나온다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자신은 운동에 열중하면서도 많은 친구들을 사귈 수 있었다는 것이다.

    “심리상태를 조절하는 것은 그렇게 어려운 일이 아니라고 생각해요. 저에게는 명상이 가장 큰 도움이 됐어요. 사격장에서 조용히 생각에 잠기거나 음악을 틀어놓고 마음을 가라앉히는 거죠. 저는 워낙 산만한 성격이라서 침착해지는 게 쉽지 않았어요. 그런데 지금은 할 수 있잖아요. 노력하면 됩니다. 이건 확실해요.”

    강재규 감독에 따르면 강초현의 심리상태 조절 능력은 어릴 때부터 형성됐다고 한다. 강초현은 집안 어른들의 얘기를 항상 귀담아 들으면서 자신이 어떻게 해야 할 것인지를 생각했다고 한다. 작은 일에도 끝까지 몰입하는 아버지와 아무리 힘들어도 웃음을 잃지 않았다는 어머니 밑에서 강초현의 해맑은 미소가 만들어진 모양이다.

    명상법을 공부에도 활용했다

    강초현의 명상법은 다른 분야에서도 도움이 될 수 있을까. 강초현은 고2때 갑자기 공부가 하고 싶어졌다고 한다. 그래서 자신의 명상법을 공부에 활용한 적이 있다. 고된 훈련을 마치고 집에 들어와 새벽까지 책과 씨름한 것이다. 중학교 때부터 정상적인 수업을 받지 못했던 그였지만, 명상훈련의 효과는 충분히 보았다고 한다. 강초현은 비록 합숙 훈련에 따른 체력부담이 가중돼 공부를 포기했지만, 암기과목 시험에서는 노력한 보람을 찾았다고 한다.

    “총을 쏘는 것과 책을 읽는 건 분명히 달라요. 감각적으로 다른 분야잖아요. 하지만 무언가에 몰입한다는 점에서는 같아요. 목표를 정해놓고 ‘이것을 잘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달라붙는 것도 비슷하구요. 하지만 영어나 수학은 워낙 기초가 부족해서 노력해도 안 되더라구요.”

    강초현은 책을 좋아한다. 소설과 자서전을 주로 읽는다. 이런 영향으로 체육 다음으로 좋아하는 과목이 국어란다. 그가 가장 인상깊게 읽은 책은 ‘아버지’. 지난해 세상을 떠난 아버지의 영향 때문인지도 모른다. 월남전에서 두 다리를 다친 아버지를 생각할 때마다 더 열심히 훈련해야겠다는 목표를 되새겼다는 강초현. 그는 아버지로부터 무언가에 몰입하는 성격을 물려받은 것이 사격 선수가 되는 데 큰 도움이 됐다고 말한다.

    “연습을 통해 사격에 몰입하는 것은 어느 정도 한계가 있다고 생각해요. 사격 선수는 정조준이 됐을 때 방아쇠를 당기는 것이 아니거든요. 목표물이 들어올 것 같다고 느껴지는 순간에 당겨야 돼요. 일종의 무아지경에서 쏘는 거죠. 이런 느낌은 노력만으로 얻을 수 있는 게 아니라고 생각해요.”

    사격도 스포츠다. 그런 점에서 승부근성도 필요할 것 같다. 금메달에 대한 도전정신과 기록에 대한 욕심. 하지만 이것이 지나치면 경기를 망치기 쉽다. 특히 사격처럼 정적인 운동에서는 더욱 그렇다. 이에 대한 강초현의 해법이 궁금해졌다.

    “어느 정도까지는 승부근성이 필요해요. 하지만 그 이상으로 가면 욕심보다는 마음을 비우는 게 중요해요. 연습할 때나 초창기 때는 승부근성이 중요해요. 하지만 중요한 경기에서는 메달이나 기록에 대한 욕심을 버리고 그냥 맡겨야 돼요. 그런 데 신경을 쓰다 보면 마음이 흐트러지기 쉬워요. 특히 누군가를 이기겠다는 생각은 금물이에요. 몸의 흐름에 맞춰 자연스럽게 쏘는 거예요.”

    강초현은 중학교 1학년 때부터 사격장에서 살았다. 한창 친구들과 어울릴 나이에 많은 것을 포기하고 살았다. 소풍이나 학교 행사가 있을 때 누구보다도 활달한 모습을 보여주었던 그가 숲과 맞닿은 어둠침침한 사격장에서 총만 쏘아댄 것이다.

    “친구들처럼 평범하게 지내고 싶은 생각이 들 때도 많았어요. 저는 원래 억압받는 걸 좋아하지 않거든요. 솔직히 말해서 지금도 그래요. 사격이 워낙 생각을 많이 필요로 하는 운동이다 보니 더 그런 것 같아요. 하지만 지금껏 달려온 세월이 아깝잖아요. 사실 대학에 가려면 사격을 열심히 하는 방법밖에 없구요….”

    ―대학에 가면 가장 먼저 무엇을 하고 싶어요?

    “공부하고 싶어요. 어렵겠지만 처음부터 시작해서 한번 도전해보고 싶어요.”

    강초현은 올림픽이 끝난 뒤 더 바쁜 듯했다. 그를 스카우트하기 위해 3개 대학이 치열한 경쟁을 펼쳤다. 강초현은 각종 TV 오락프로그램에도 모습을 보였다. 그러자 주변에서 연예계로 나가는 것이 아니냐는 비아냥도 들렸다. 그렇게 분주한 틈에 이루어진 인터뷰였지만, 강초현은 시종 차분하게 질문에 답했다. 열여덟살 여고생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 논리정연한 말솜씨를 선보였다. 올림픽이 인생을 걸 만큼 대단한 것은 아니었다고 말하는 강초현. 그는 그저 최선을 다하며 살아갈 뿐이라고 말했다. 지금은 사격 선수로서, 내년엔 대학생으로, 그리고 미래엔 체육선생으로 자신의 꿈을 이루고 싶단다.

    [강초현이 말하는 정신집중법]

    “놀 땐 놀고 쉴 땐 쉬세요”

    강초현은 마음이 움직이지 않으면 아무리 노력해도 안 된다는 말을 수차례 강조했다. 피곤하면 쉬고, 졸리면 자야 한다는 생각이다. 하고 싶은 마음이 간절할 때 정신을 집중하면 효과가 몇배로 커진다는 것이다. 강초현은 “정신집중은 노력한 만큼 성과가 나타나며 수개월 이상의 꾸준한 훈련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 시간이 나는 대로 생각에 잠긴다.

    ● 지난 일은 잊으려고 노력한다.

    ● 지금부터 시작이라고 생각한다.

    ● 항상 침착하게 행동하겠다고 다짐한다.

    ● 일이 잘 안 돼도 ‘잘 할 수 있다’고 마음먹는다.

    ● 한번 시작하면 끝을 봐야 한다.

    ● 집중이 잘 되는 순간의 느낌을 자주 떠올린다.

    ● 집중이 잘 안 되면 명상음악을 틀어놓고 마음을 가라앉힌다.

    ● 향을 피워놓고 가장 편안한 자세를 취한다.

    ● 눈을 감고 앉아서 아랫배에 공기를 모으는 기분으로 숨을 들이마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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