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 12월호

안보대화 없는 남북경협, 곧 한계에 부닥친다

美 MIT 개발 최첨단 정책결정기법으로 분석한 남북정상회담 이후 남북관계 10년 전망

  • 송문홍songmh@donga.com 분석·곽상만(미 MIT연구소 연구원·공학박사) 이승태(21세기 국가발전연구원 사무국장·정치학박사)

    입력2006-07-24 14: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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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금까지 우리의 대북정책은 막연한 국민적 정서와 정치지도자의 ‘직관‘에 의해서 좌지우지돼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김영삼정부 시절의 대북정책이 온탕 냉탕을 오가며 갈팡질팡했던 것이나, 현 김대중 정부의 대북정책 역시 일각의 비판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것도 바로 그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대북정책 결정과정의 과학화‘는 시급하고도 긴요한 과제가 아닐 수 없다. ‘신동아‘는 국내에선 처음으로 미 MIT에서 개발된 첨단 정책결정 기법인 ‘시스템 다이내믹스‘를 토대로 대북정책 시뮬레이터를 제작, 향후 10년간의 남북관계를 전망한 곽상만 박사의 분석 결과를 소개한다.

    곽박사는 남북관계에 영향을 끼치는 사회적 변수 300여 가지를 인과(因果)관계로 연결, 다차원적인 논리구조를 가진 정책결정 지원도구 ‘평화 2001‘을 제작했다. 변수들 사이의 인과관계 설정과 해석작업에는 이승태 박사가 참여했다.

    ”우리도 이제 정부나 기업 차원의 주요 정책결정 과정이 보다 과학과·합리화돼야 한다는 뜻에서 시범적으로 이번에 ‘평화 2001‘을 제작했다”고 말하는 곽박사는 1996년 국내 처음으로 시스템 다이내믹스 기법을 상업화해 서비스하는 기업인 ‘시스테믹스‘(www.systemix.co.kr)를 설립, 운영에 참여해오고 있다. 지금까지 이 회사는 각종 경영전략 수립용 시뮬레이터 개발을 비롯해 ▲ 한국 거시경제 모델 ▲ R·D 전략모델 ▲ 전략분석용 워게임 등을 개발해왔고, 삼성증권 이랜드 한국전력 삼성경제연구원 현대경제연구원 등과 협조관계를 구축해왔다.

    ‘신동아‘는 이번 분석에 활용한 시뮬레이터 ‘평화 2001‘을 ‘신동아‘ 인터넷 홈페이지http://shindonga.donga.com에 올려놓아 독자들이 직접 몇 가지 변수를 손쉽게 조작함으로써 결과치를 살펴볼 수 있도록 했다. 사용방법은 인터넷 상에 소개돼 있으며, 인터넷 서비스는 11월24일 경부터 시작된다. 》

    분석의 배경과 목적





    지난 6월 남북 정상의 만남은 갈등과 긴장의 반세기를 뛰어넘는 감동이었다. 정상회담 이후 남과 북은 이산가족 교환방문, 적십자회담, 장관급회담, 경협과 대북 식량차관 제공, 경의선 기공 등 질(質)과 양(量) 면에서 접촉의 수위를 한 단계 높여왔다.

    그러나 남북 지도자의 단 한 차례 만남만으로 과거의 상흔이 봄철 눈 녹듯 사그라들기는 어렵다. 북에는 1인 지배체제가 여전히 강고하고, 남에서는 다양한 사회이익이 경쟁한다. 한 마디로, 남북교류가 화학적인 남북관계 개선으로 ‘진화’되리라고 낙관하기에 현실은 너무나 척박하다.

    최근 일각에서 제기되고 있는 ‘속도조절론’도 그런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김대중 정부의 대북정책이 너무 급격한 변화를 추구하고 있는 게 아니냐는 비판에서 제기된 속도조절론은, 구체적으로는 대북정책의 우선순위에 대한 논란으로 나타났다. 즉 남북 사이에 일단 합의에 도달하기가 상대적으로 쉬운 사안이라 할 경협이나 대북지원에 우리 역량을 집중할 것인지, 아니면 남북경협과 함께 구체적인 군사적 긴장완화 방안을 모색할 것인지, 혹은 비전향 장기수를 북한에 송환하면서 그 조건으로 납북자·국군포로 반환을 요구하는 등 ‘과거사’ 문제에 대한 해결을 도모할 것인지 등의 문제를 놓고 국내적으로 많은 논란이 빚어졌던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논란의 배경에는 상당 부분 ‘정서적 요인’이 깔려 있다는 사실을 부인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일각에선 과거 50년간 우리 사회의 기본 원리로 작용했던 ‘반공논리’가 아직도 그림자를 짙게 드리우고 있고, 다른 일각에선 ‘낭만적인 민족주의’의 기조 하에 북한을대하려는 태도가 감지되고 있다는 것이다. 어쨌든 둘 다 북한에 대한 정서적 요인이 강하게 작용하고 있음이 사실이다.

    결론적으로 말해, 현 단계의 북한과 남북관계에 대한 냉철하고 합리적인 분석, 그리고 그런 과학적인 분석에 입각한 정책논의는 지금까지 별로 찾아보기 어려웠다. 필자가 미국 매사추세츠 공과대학(MIT)을 중심으로 발전되어온 첨단학문인 ‘시스템 다이내믹스(System Dynamics)’를 활용해 남북정상회담 이후의 남북관계 10년을 전망하고자 하는 것은, 우리의 대북정책에서 이런 정서적 한계를 극복하고자 하는 나름의 충정에서 비롯됐다.

    이번 연구는 남북정상회담 이후 대북정책결정의 준거틀, 궁극적으로는 가장 적절한 정책 선택의 방법론을 제시하기 위한 것이다. 대북정책에 대한 객관적이고 합리적인 준거틀이 마련된다면 정책 효율성을 극대화할 수 있을 뿐 아니라 국민적 합의 도출에도 크게 기여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번 연구는 일차적으로 최근 급격히 늘어난 남북접촉이 과연 올바른 방향을 지향하고 있는가를 검토하고, 이를 토대로 향후 남북관계 발전을 위해서 우리 정부가 어떠한 정책적 우선 순위에 입각해서 제한된 자원을 사용할 것인가를 살펴보기 위한 것이다.

    이번 연구에서 제시되는 준거틀은 현 단계의 남북관계만을 평가하는 게 아니라 현재의 정책이 초래하게 될 미래의 결과를 현 상황에 대한 핵심적인 평가지표로 삼고 있음을 밝혀 둔다. 다시 말하면 이번 연구는 현 상황을 기준으로 해서 향후 10년간 남북관계의 발전 방향을 검토하고 있다는 것이다.

    분석틀의 객관성을 확보하려면 남북관계에 영향을 끼치는 모든 변수를 객관화, 계량화해야 한다. 또, 분석틀이 합리성을 가지려면 정책변수마다 그 효율성을 검증할 수 있는 설명모델이 제시돼야 한다.

    남북관계처럼 복잡한 시스템을 분석하려면 시스템적 사고(systems thinking)와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고려가 매우 중요하다. 상호 긴밀하게 연결돼 있는 사안들에 대한 해답을 극소수 정치지도자의 직관과 경험에만 의존할 수 없으며, 더욱이 모든 사안에 대한 만병통치약이 있는 것도 아니다. 그런 점에서 남북관계를 구성하는 모든 행위자의 지식과 정보를 효과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시스템 다이내믹스(System Dynamics) 기법은 합리적인 정책결정에 적절한 방법론이 될 수 있다.



    분석의 틀, 시스템 다이내믹스



    시스템 다이내믹스는 다층적이고 상호복합적인 사회적 변수들을 논리적으로 재구성해서 현실 사회와 거의 유사한 형태로 사이버상에 구현함으로써 생각할 수 있는 모든 가설에 대한 결론을 도출할 수 있다.

    1959년 미 매사추세츠공과대학(MIT)의 포레스터(J. Forrester) 교수에 의해 개발된 시스템 다이내믹스는 그후 40여년간 컴퓨터 기술의 놀라운 발전에 힘입어 독보적인 기술체계를 발전시켜왔다. 대부분 다차원적인 전략개발 분야에서 이 기법이 채용되고 있기 때문에 실제 적용사례가 공표되지는 않고 있지만 컴덱, 마스터카드를 비롯한 여러 다국적 기업이 경영전략 수립에 핵심적 도구로 활용하고 있고, 국가의 각종 정책, 외교·안보정책, 사회집단간의 갈등해소 방안, 새 제도와 정책의 채택에 따른 영향분석 등에 많이 활용되고 있다.

    일례로 미국 정부는 시스템 다이내믹스 전문가들의 도움을 얻어 북미관계를 개선하는 것이 좋은가 나쁜가에서부터, 개선한다면 어떤 절차를 밟을 것인지, 구체적으로는 클린턴 대통령의 평양 방문이 끼칠 국내외적 영향 등에 대해서 정밀한 사전 분석을 해오고 있다.

    연구자는 이 기법을 남북관계에 적용해서 시뮬레이터(simulator) ‘평화 2001’을 제작했다. 평화 2001은 향후 10년간의 남북협상이라는 단일 사안을 대상으로 개발됐다. 사전에 밝혀둘 것은 이 시뮬레이터가 구체적인 수치를 보여주지도 않거니와(예컨대 2005년의 남북관계를 몇%로 계량화해 보여주지는 않는다) 그것이 중요하지도 않다는 점이다. 이번 분석에서는 주요 변수의 변화에 따른 남북관계의 향후 변화 추이만을 살펴보고자 했기 때문이다.

    평화 2001은 6·15 이후의 남북교류를 크게 ▲ 경협관련 협상 ▲ 안보관련 협상 ▲ 남북간 인프라 구축 및 식량지원 관련 협상 ▲ 문화교류 협상(예 : 축구단일팀 구성, 문화예술단체 교환) ▲ 과거사를 다루는 협상(이산가족 상봉, 국군포로·납북자 송환, 아웅산테러·대한항공기 폭파사건 사과, 6·25 등) 등 5가지 분야로 나누었다. 이 5가지 분야를 중심으로 남북관계에 영향을 끼치는 상위 주요 변수 300여개를 설정, 각 변수 사이의 인과관계를 세밀하게 연결함으로써 ‘평화 2001’을 구성했다. 변수들간의 인과관계 설정에는 몇몇 남북문제 전문가들의 조언을 받았다.

    실제로 남북관계에 영향을 끼치는 변수는 3만 개 이상인 것으로 추정된다. 정책결정에 활용될 수 있는 본격적인 시뮬레이터를 개발하려면 그 모든 변수를 시뮬레이터에 입력해야 하고, 이럴 경우 특정 상황과 사건에 대한 좀더 명료한 예측이 가능하다. 그러나 향후 남북관계의 전반적인 추세만을 보기 위해 제작된 ‘평화 2001’은 상위 변수 300여 개의 인과관계를 설정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신뢰성있는 결과를 산출할 수 있다(지면 한계로 ‘평화 2001’에 설정된 300여 가지 변수에 대한 소개는 생략한다).



    평화2001의 기본 가정

    분석의 목표와 범위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시뮬레이터 제작의 기본 가정이 필요하다. ‘평화 2001’을 구상하면서 고려한 기본 가정은 다음과 같다.

    ① 남한과 북한은 우호적이지는 않지만 비적대적인 관계를 유지한다.

    ② 남한과 북한에 급격한 변화요인, 예컨대 유전 발견이나 지진발생 등처럼 남북의 경제상황을 돌발적으로 변화시키는 사건은 발생하지 않는다.

    ③ 남한과 북한에 쿠데타, 혁명 등 돌발적이고 급진적인 정치체제 변화가 발생하지 않는다.

    ④ 남한 및 북한과 주변국의 관계에서 전쟁과 같은 돌발적인 변화가 발생하지 않는다.



    변수의 선정 및 정량화



    앞에서 제시한 5가지 범주는 300여개의 변수들로 이루어져 있다. 이들은 다음의 기준에 따라 선정됐다.

    ① 교류관련 변수 : 분야별 우선순위.

    ② 교류 및 협상 결과와 관련된 변수 : 경제교류 합의, 안보문제 해결 정도, 대북 식량차관, 남북간 인프라 구축, 문화교류 합의, 과거사문제 해결 정도 등.

    ③ 교류 및 협상의 능률성 관련 변수 : 교류 노력의 유효성, 합의의 용이성, 합의 이행에 대한 신뢰성 등.

    ④ 남한 내부 변수 : 국민적 합의, 경제성장률, 경제규모 등.

    ⑤ 북한 내부 변수 : 북한경제의 외부의존도, 경제성장률, 체제위기의식, 외부 정보의 유입 정도 등.

    ⑥ 주변 국가와의 변수 : 주변국가와 북한의 경제지원 및 교류 합의, 외유한 북한인의 수, 북한 내부의 외부인 수 등.

    사실상 이들 변수 중 상당수는 관련 정보의 미비 때문에 계량화가 불가능하다. 그러나 어떤 변수가 어떤 변수에 영향을 끼치는가, 즉 변수들간의 인과관계는 논리적으로 설정할 수 있고, 이에 따라 변수의 조작에 따른 향후 남북관계의 큰 흐름을 유추해낼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이와 같은 변수들간의 상관관계를 가장 단순화한 형태로 보여주는 평화2001의 개념도는 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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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화2001’에는 여러 순환고리(Feedback Loops)들이 포함돼 있다. 간단한 예를 들면, 현재 남북문제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순환고리로서 남북 경제교류가 활발해져서 그 성과가 나타나고, 이에 따라 북한 내부에 남북교류를 지지하는 세력이 늘어나면, 이들 지지세력의 영향으로 남북 경제교류는 더욱 활발해지는 아주 강력한 순환고리를 형성하게 된다( 참조).

    와 같은 순환고리는 다시 다른 변수들로 구성되는 순환고리들이 연결되는데, 그 하나로서 과 같은 안보 관련 변수와의 연결 순환고리를 들 수 있다. 즉 경제교류가 활성화돼 북한 내에 남북교류를 지지하는 세력이 형성되면, 북한에서도 경제를 더욱 활성화시키기 위해 남북 긴장을 완화하여 군사비를 줄이고 경제개발을 추진해야겠다는 의지가 부분적으로 형성되고, 이것은 남북간 안보문제에 대한 해결 의지로 연결된다.

    이 의지가 안보문제의 해결을 통해서 경제교류 안전성의 증가로 연결되고, 증가된 경제교류의 안전성은 다시 남북간 경제교류를 활성화시킨다는 논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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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처럼 평화 2001은 에 나타난 변수들이 분화에 분화를 거듭해 전체로는 약 300여 개의 변수들이 인과관계로 연결되는 구조를 갖고 있다. 그 구체적인 내용을 제한된 지면에 소개하기는 불가능하므로 여기서는 핵심 구조만 간략하게 설명한다.

    모든 교류나 협상과정은 ‘협상 → 합의 → 실행 → 성과의 4단계로 구분할 수 있다. 그러나 조금 더 자세히 생각해보면 이 과정은 처럼 협상과정에 누적되는 양(상자 안의 변수. 레벨 또는 스톡)과 그 누적된 양을 조절하는 양(변동률. rate)으로 나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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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협상이 어떤 성과를 도출하려면 사전에 많은 준비를 해야 한다. 준비된 정도에 따라서 어느 정도 합의를 이룰 수 있는지가 달라질 것이다. 이러한 협상 노력은 변화하는 상황에 따라 달라지기 때문에, 시간이 지나면서 사장되는 부분이 생기고(협상노력 감소), 이를 보충하기 위해서 또 다른 준비가 필요해진다. 합의된 사항이라도 상황에 따라 변할 수 있지만, 평화 2001에서는 일단 합의된 사항은 모두 이행되는 것으로 가정했다.

    이렇게 변수를 스톡, 변동률 및 보조변수로 구분하는 작업이 변수의 정량화를 위한 시초이고, 시스템다이내믹스 기법에 근간이 된다. 이렇게 변수를 구분하고 나면, 다시 어떤 변동률을 또 다른 시스템의 변수로 나타낼 수 있는지를 생각해볼 수 있다. 남북협상에서 반드시 고려해야 할 사항으로는 에서 보여주는 유효성 또는 용이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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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즉 우리 정부가 대북협상 노력을 투입하는 시점의 상황에 따라서 그 유효성이 다를 수 있고, 합의과정이나 합의된 사항을 이행하는 과정에도 그 유효성 또는 용이성이 상황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는 평화 2001을 구성하는 각 변수들의 흐름도(Stock Flow Diagram)다. 사회적 현상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순환고리(Feedback Loops), 지연(Delay), 증폭(Amplification) 등 모든 동적(Dynamic) 현상은 스톡을 중심으로 나타나기 때문에 평화 2001에도 그러한 스톡이 주요 구조를 형성하고 있다.

    에 나타난 노력의 유효성, 지속기간, 합의의 용이성, 실행의 용이성 등의 변수는 상위, 하위의 여러 상황변수에 영향을 끼친다. 은 이들이 하부 상황변수와 연결돼 있는 일례를 보여준다.

    안보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상태에서의 남북경협 협상은 일정 수준 이상 진전을 기대하기 어려울 뿐만 아니라 협상을 위한 준비도 효율적이지 못하다. 거의 모든 사안을 군사적 적대관계라는 틀 안에서 구상해야 하므로 검토해야 할 사항이 자연히 많아지고, 따라서 경제교류 협상 노력의 유효성도 떨어진다. 일단 협상 준비가 됐다고 해도 남북간 안보문제 및 국제 관계의 변화에 종속되는 정도가 커지고, 따라서 계속 새로운 준비를 해야 한다(경제교류 노력의 지속기간).

    일단 준비가 된 다음에는 합의를 이끌어냄에 있어서 남측의 안보에 관한 걱정보다는 북측의 상황이 문제가 될 수 있다. 즉 안보문제의 해결 정도는 경제교류 합의의 용이성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주지 못하지만 북한 내부의 안전성이라는 변수를 통해서 영향을 주게 되고, 또한 남한의 국민적 화합 수준이라는 변수를 통해서 간접적인 영향을 주게 된다.

    실행 과정에는 안보문제가 큰 영향을 끼치지 않는다. 다만, 남북간 인프라 구축 정도에 따라서 경제교류 실행의 용이성이 영향을 받게 되고, 이 또한 다른 많은 변수의 영향을 받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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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렇게 변수들간의 인과관계를 이어나가다 보면 교류 및 협상 분야의 변수들이 복잡다단한 피드백으로 상호 연결돼 있음을 알게 된다. 가령 안보문제 합의의 용이성이라는 변수는 과 같이 경제교류 정도에 영향을 받고, 이 경제교류 정도는 경제교류 협상의 성과에 영향을 받는다. 결국 모든 변수가 다른 모든 변수에 영향을 끼치게 된다는 것인데, 영향을 끼치는 방법과 정도, 특히 방법에 따라서 피드백(Feedback)·지연(Delay)·증폭(Amplification) 등의 동적 현상이 다르게 나타나고, 최종적으로는 남북관계라는 거대한 시스템에서 동적 현상의 차이를 가져오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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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편, 변수간의 상관관계는 단순한 선형관계가 아닌 경우가 더 많다. 예컨대 에서 보여 주듯이 안보문제 합의의 용이성은 남북간 경제교류의 영향을 받는데, 평화 2001에서는 와 같은 함수를 적용하고 있다. 즉 경제교류가 활발해질수록 안보문제 합의의 용이성은 증대하지만, 한계효용체감의 법칙이 적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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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화 2001에서는 계량화된 수치 자료보다는 모델에 내재된 논리에 더 크게 의존하는 시스템다이내믹스 기법을 사용했지만, 변수의 수가 적지 않은만큼 자료의 중요성을 무시할 수 없다. 그래서 시뮬레이터를 만든 뒤에 주요 계수의 범위를 주고, 난수를 이용하여 시뮬레이션을 수행하는 몬테카를로 시뮬레이션 기법을 이용해서 모델에 사용된 자료의 타당성을 검증했다.

    그 결과 모델에 사용된 변수들은 시간과 정도에 영향을 끼치지만, 전반적인 추세는 변함이 없다는 결론을 얻었다. 다시 말해, 평화 2001을 작동하면 어떤 조건 하에서 장래 어느 시점의 남북관계가 어떠하리라는 것을 정확한 시점과 정도까지 분석하기는 어려워도 남북관계가 그런 방향으로 간다는 추세만큼은 분명하게 알 수 있다는 것이다. 는 몬테카를로 시뮬레이션 결과의 일례다(아래에 소개할 5가지 시나리오별로 시행한 몬테카를로 시뮬레이션의 결과는 지면 사정상 생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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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나리오의 구성



    평화 2001에서는 앞서 제시한 5가지 남북교류 분야를 중심으로 매우 다양한 선택안을 만들어 볼 수 있다. 다시 말해서 우리 정부가 남북관계 개선에 투입할 수 있는 역량을 100이라고 가정할 때, 그 100을 5 분야에 어떻게 배분하느냐에 따라서 서로 다른 결론, 즉 향후 10년간 남북관계의 추세가 도출된다는 것이다. 여기서는 대표적인 시나리오 5가지를 선택해서 검토했다.

    일반론으로 보면 경제협력이나 식량지원 및 인프라 건설 관련 협상, 문화교류 등의 분야는 남북 양측이 공히 가시적인 이득을 얻을 수 있고, 체제문제와도 무관하기 때문에 협상이 상대적으로 용이할 것이다. 그러나 안보문제와 과거사 문제는 남북 양측의 체제문제와 직결되므로 협상을 시작하기조차 쉽지 않을 것이다.

    1. 기능적 접근방식

    남북협상에서 가장 손쉬운 출발은 협상이 가능한 부분부터 협상해간다는, 이른바 ‘기능적 접근방식’이다. 북측이 기피하거나 협상이 어려운 안보 문제나 과거사 문제는 협상 의제에서 제외하고, 양측이 실질적인 이득을 기대할 수 있고 원하는 부분만 중심으로 하는 남북협상 전략이다. 현재 우리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대북정책이 여기에 비교적 가까운 접근방식이라고 할 수 있다.

    여기서 한 가지 밝혀둘 것은, 최근 이뤄진 대북 식량차관을 기능적 접근방식의 변수에 포함시킬 것인가 하는 점을 놓고서 분석자들 사이에 논란이 있었다. 결론은 차관, 즉 교류의 형태를 띠고 있지만 대북 경수로 지원처럼 향후 10년 이내에는 상환 가능성이 매우 낮다는 점에서 일종의 대가를 담보한 지원으로 보고 기능적 접근방식의 변수에서 제외했다.

    2. 조건적 접근방식

    두 번째로 생각해볼 수 있는 방식은, 먼저 남북교류의 장애 요인을 제거함으로써 다른 모든 분야의 협상이 용이하도록 하는 ‘조건적 접근방식’이다. 현재 미국이 북한에 취하고 있는 포괄적 접근방식이 이와 유사하며, 그런 점에서 강자가 약자에게 취할 수 있는 방법이라고 할 수 있다. 미국은 미사일 문제, 핵문제 등을 다른 협상의 전제 조건으로 내걸고 북한과 대화하고 있다.

    남북교류 및 협상에 이런 접근방식을 적용한다면, 향후 빠른 시일내에 안보문제 및 과거사 문제를 제기해서 어느 정도 성과를 얻고, 그 다음에 다른 분야로 비중을 옮겨가는 협상 전략이라고 할 수 있다.

    3. 균형적 접근방식

    협상의 난이도를 논외로 하고, 모든 사안을 동일한 비중으로 동시에 시도하는 ‘균형적 접근방식’도 상정해볼 수 있다. 안보·경협·인프라·문화·과거사 등에 대한 협상을 동시에 같은 비중으로 진행하는 전략이다.

    4. 상황적 접근방식

    일단 기능적 접근방식으로 시작한 뒤 상황 변화에 따라서 남북 협상의 우선순위를 계속 변화시켜가는 ‘상황적 접근 전략’도 생각해볼 수 있다. 단기적으로는 상호간에 체제부담이 없고 이득을 볼 수 있는 손쉬운 경제교류와 문화교류(북측의 입장에서는 이것 역시 외화 조달을 위한 경제교류의 연장이다) 등을 중심으로 교류를 시작해서, 상황 변화에 따라서 점차 안보문제 및 과거사 문제의 비중을 가감해가는 전략이다.

    5. 전략적 접근 방식

    마지막으로는 향후 예상되는 변화를 미리 고려하여 현재의 전략을 최적화해나가는 ‘전략적 접근방식’을 들 수 있다. 이는 일견 상황적 접근방식과 유사해 보이지만, 그때 그때 주어진 상황에 따라서 남북교류 및 협상의 우선순위를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사전에 상황 변화를 예상하여 능동적으로 남북 협상의 우선순위를 먼저 변화시켜가는 전략이다.

    평화2001은 누구나 사용할 수 있도록 입출력창( 참조)을 프로그램화했다.

    안보대화 없는 남북경협, 곧 한계에 부닥친다
    평화 2001의 입출력창에서는 과 같은 사항을 입력할 수 있도록 되어 있다. 특히 협상 우선순위의 경우는 상수로 입력할 수도 있고, 시간 함수로 입력할 수도 있도록 했다.

    이와 같은 입출력창을 이용하여 전술한 다섯 가지 시나리오에 대하여 및 과 같은 시나리오를 실행했다.

    안보대화 없는 남북경협, 곧 한계에 부닥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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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나리오별 평가



    평화2001은 시뮬레이터를 구성하는 300여 개의 모든 변수에 대한 시뮬레이션 결과를 그래프 및 표로 출력할 수 있다. 그러나 경우에 따라서는 이것이 독자들에게 혼동을 줄 수 있다. 그래서 여기서는 남북간 경제교류의 안전성이라는 설명지표를 선정했는데, 이는 이 지표가 남북 양측이 현재 가장 역점을 두고 있는 사항이며, 남북관계의 미래지향적 지수로도 적절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1. 기능적 접근 방식의 결과

    는 우리 정부가 기능적 접근방식을 택했을 경우의 남북간 경제교류 안전성에 관한 결과다(선 1). 남북간 경제교류의 안전성은 초기에는 급격한 성장세를 보이지만, 일정한 한계 이상을 넘어가지 못하고 있다.

    평화 2001에 내재된 원인추적(causal tracing) 기능으로 기능적 접근방식에서 이러한 상한선이 나타나는 이유를 분석한 결과, 이는 안보문제의 미해결에서 기인하는 것으로 밝혀졌다. 다시 말해, 안보문제 해결을 도모하지 않고서 성취할 수 있는 경제교류의 안전성에는 명백한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기능적 접근방식의 최대 장점은 단기간에 가장 확실한 이득을 얻을 수 있다는 점이다. 그러나 장기적으로는 많은 문제에 부딪힐 수밖에 없는 미봉책이기 때문에 현실적으로 어느 순간 새 전략으로 전환해야 할 임시 전략이다.

    안보대화 없는 남북경협, 곧 한계에 부닥친다
    2. 조건적 접근방식의 결과

    은 조건적 접근방식의 단순 시뮬레이션 결과를 보여준다(선 2). 조건적 접근방법은 안보문제가 해결된 후에는 약간의 노력만으로도 모든 분야에서 큰 성과를 낼 수 있는 게 사실이지만, 불확실성이 클 뿐만 아니라 남북 모두에 즉각적이며 현실적인 이득이 매우 미약하기 때문에 오래 지속되기는 어려운 시나리오로 보인다.

    안보대화 없는 남북경협, 곧 한계에 부닥친다
    3. 균형적 접근방식의 결과

    는 균형적 접근방식을 택했을 경우의 결과를 보여준다(선 3). 균형적 접근방식은 기능적 접근방식에 비해 처음에는 속도가 느리지만 시간이 경과할수록 바람직한 성과를 얻게 된다.

    안보대화 없는 남북경협, 곧 한계에 부닥친다
    4. 상황적 접근방식의 결과

    는 상황적 접근방식을 택했을 경우의 결과를 보여 준다(선 4). 상황적 접근방식은 처음에는 기능적 접근방식을 취하다가 문제가 발생했을 때 원인을 찾아 보완해나가는 방식이다. 이 경우에는 2003년을 전후해서 안보문제 및 과거사 문제의 협상을 시작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에서 보듯이 상황적 접근방법은 기능적 접근방법(선 1)에 비해서 전략을 수정하는 과정에서 일부 부작용이 나타나지만, 문제를 해결한 뒤에는 더 나은 결과를 가져온다. 그러나 균형적 접근방법에 비하면 장기적으로는 열등한 결과를 가져온다. 원인을 추적한 결과 이런 현상은 안보문제의 제기 시기와 그 부수적 영향 때문인 것으로 밝혀졌고, 결국 안보문제 논의의 제기 시기가 매우 중요하다는 점을 말해준다.

    안보대화 없는 남북경협, 곧 한계에 부닥친다
    5. 전략적 접근방식의 결과

    이상 4가지 시나리오를 분석해 얻은 결론을 바탕으로 최종적으로 더 이상 좋은 결과나 나올 수 없을 때까지 전략을 수정해나갔다. 그 결과 나온 것이 에서와 같은 전략적 접근방식이다(선 5). 이는 새로운 요소와 비용의 추가 지출이 없이 기존 자원과 우선순위 조정, 즉 전략적 자원배분만으로 남북관계를 획기적으로 진전시킬 수 있음을 말해준다.

    안보대화 없는 남북경협, 곧 한계에 부닥친다


    기능적 접근방식과 조건적 접근방식은 ‘미래와 현재 중 어느 쪽을 더 중시할 것인가’라는 문제에 대한 서로 다른 결론에서 비롯된 전략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실제로 시뮬레이션을 해본 결과 조건적 접근방식은 미래에도 협상의 성과를 기대하기 힘들다는 결론이 나왔다. 현재를 희생시키기에는 미래가 너무 불확실하고, 현재의 이득 실현이 너무 약소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기능적 접근방식이 최선인 것도 아니다. 몇 년 뒤에는 뚜렷한 한계가 나타날 것이기 때문이다.

    현실적으로는 균형적 접근방식과 상황적 접근방식의 절충이 바람직하다고 볼 수 있다. 시뮬레이션 결과에서 보듯 장기적인 관점에서 균형적 접근전략이 상황적 접근전략보다 더 나은 성과를 얻을 수 있다고 하지만, 몬테카를로 시뮬레이션의 결과 그 우열은 오차 범위 안에 있었다.

    전략적 접근방식이 장단기적으로 균형적 접근방식이나 상황적 접근방식보다 우월한 결과를 보여준다는 사실은 많은 점을 시사해준다.

    그러나 전략적 접근방식은 정치지도자의 직관이나 주관적 판단만으로는 실천이 불가능하며, 대북정책 결정을 위한 과학적인 분석틀이 있어야만 가능한 방법이다. 교류분야의 우선순위 조정만으로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다는 발상은 매우 획기적인 것이며, 이번 연구의 큰 성과라고 자부한다.



    결론과 제언



    앞서 제시한 5가지 시나리오에서 나온 결론들은 실제 현실에서 대북정책에 영향을 끼치는 모든 변수를 논리적으로 최대한 조합해 나온 것들이다. 또, 시나리오별로 몬테카를로 시뮬레이션 결과를 분석한 결과 시뮬레이터에 입력된 변수들이 시간 및 정도의 면에서는 편차가 있을 수 있지만 전반적인 추세는 일관성있는 결과를 보여준다는 점은 앞에서 설명했다. 이런 점들을 종합해볼 때 다음 결론을 도출할 수 있다.

    ① 경제교류는 남북 양측이 동시에 이득을 취할 수 있다는 점에서, 또한 다른 분야에 비해 비교적 쉽게 성과를 낼 수 있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하다.

    ② 안보문제는 직접적인 이득을 가져다 주지는 않지만, 다른 모든 협상 의제에 직접적 또는 간접적으로 영향을 끼치기 때문에 역시 중요한 협상 분야다. 따라서 북측의 반발을 무릅쓰고라도 남측이 안보문제를 제기하는 것은 남북관계의 장기적 발전을 위해 매우 긴요하다. 안보문제를 제기하는 데 있어서 고려해야 할 점은 그 내용이 아니라 시점이다.

    ③ 6·25, 아웅산 테러사건, 대한항공 폭파사건 등의 과거사 문제 역시 직접적인 이득을 주지는 않지만, 다른 협상에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준다는 점에서 안보교류 문제와 유사하다. 사실 남북간에 정치적인 교류가 일단 시작된 현 상황에서 가장 다루기 어려운 부분이 과거사 문제다. 그러나 일단 남북관계가 정상 궤도에 오르게 되면 과거사 문제는 다시 거론하기 어렵다. 과거사 문제는 남북간에 돌발적이고 사소한 충돌로 남북이 적대관계로 회귀하는 것을 막기 위해서라도 필요하다.

    ④ 최적의 대북협상 전략은 절대적인 것이 아니라 국내외의 경제상황 및 정치상황에 따라서 수시로 변한다.

    이런 결론에 따라서 연구자들은 다음 몇 가지를 제안한다.

    ① 경제교류가 안보를 비롯한 여타 부문의 교류기회를 넓혀주는 것은 사실이지만, 경제교류의 증대가 곧바로 안보교류의 증대로 이어지지는 않는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 따라서 경협 증대가 북한경제의 대남 의존도를 증대시키고, 이것이 자연스럽게 남북 긴장완화와 통일기반 조성으로 이어질 것이라는 일각의 주장은 근거없는 낙관론일 뿐이다.

    ② 경제지원의 경우 남측의 경제지원으로 북한 경제가 복구됐을 때를 상정해야 한다. 북한이 현재의 경제난을 향후 10년 이내에 복구할 수 있는가라는 문제와는 별도로, 북측이 웬만큼 경제난을 해소한 뒤에도 남북 경협에 적극적일 것인지 지금부터 고려해야 한다.

    ③ 안보문제 및 과거사 문제는 초기 단계부터 합의 과정에 이르기까지가 매우 힘든 사안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문제 제기조차 하지 않는 것은 매우 잘못된 전략이다. 처음부터 조금이나마 이런 문제들을 제기하고, 시간이 흐르면서 차츰 무게중심을 더해 나가는 전략이 바람직하다. 특히 장기적 관점에서 보면 안보문제를 제기하는 시기는 이를수록 좋지만, 그 강도는 다른 부문의 협상에 크게 영향을 끼치지 않는 범위에서 이뤄져야 한다.

    마지막으로 연구자가 강조하고 싶은 것은 남북문제처럼 복합적인 변수가 다차원적으로 작용하는 분야에서는 평화 2001과 같은 전략 시뮬레이터의 개발이 매우 시급하다는 점이다. 특히, 대남정책 담당자가 오랫동안 바뀌지 않는 북한에 비해 수시로 대북정책 담당자가 바뀌는 우리의 상황에 과학적이고 객관적인 정책의 준거틀을 마련하는 일은 정책결정 도구로서 뿐만 아니라 국민적 합의 도출에도 유용하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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