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 12월호

“검찰을 도구로 삼는 최고권력자가 문제다”

“맹수가 병 깊으니, 검찰 떠났던 최병국의원”

  • 박성원swpark@donga.com

    입력2006-07-24 11:3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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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대중 대통령이 한국인으로는 최초로 노벨상 수상자로 중요한 것은 검찰을 정치적 도구로 삼지 않겠다는 최고권력자의 인식입니다. 통치권자가 이런 의식이 없으니까 검찰이 정치화됐다, 정치에 휘둘린다 소리를 듣는 겁니다.
    최병국의원(崔炳國·한나라당). 그는 전주지검장으로 있던 지난해 2월 대전법조비리사건에 휘말려 30년 정든 검찰을 떠나면서 “맹수가 병이 깊으니 제 살을 물어뜯어 동티가 난다”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 검찰수뇌부가 권력유지에 급급해 일선검사와 중견검사들을 마녀사냥 식으로 희생시키며 검찰조직을 뒤흔들고 있다는 정면비판이었다.

    그로부터 불과 1년 남짓 후에 있은 지난 4·13총선에서 금배지를 달고 국회에 들어온 그가 의정생활 6개월 여 만에 느끼는 정치판과 검찰의 또다른 실체는 무엇일까. 자력으로는 도저히 구제불능이라는 비판을 듣고 있는 구태의 정치판과 ‘정치검찰’의 오명을 벗지 못하고 있는 오늘의 검찰위기에 대해 그는 어떤 쓴소리를 던질까.

    ―지난해 2월 대전법조비리사건 당시 사표를 던지면서 검찰 수뇌부를 향해 일갈했는데 당시 어떤 심경이셨나요?

    “아마 의정부법조비리사건을 기억하실 거요. 사람들은 의정부법조비리사건이 난지 얼마 안됐는데 또 대전법조비리사건이라는 게 났다고 분노했죠. 그런데 사실은 의정부사건보다 훨씬 이전에, 거의 10년전부터 시작된 사건이었어요. 더욱이 이미 2년 전부터 문제의 이종기라는 변호사가 사무장과 분쟁을 일으켜서 사건이 죽 진행되고 있었어요. 그런데 왜 그 시점에 와서 이 문제가 터졌느냐. 거기에는 이유가 있어요.”

    ―그 이유가 뭐라고 보시는데요?



    “그 사건이 흘러나오기 시작한 날이 1월7일인데 그날은 바로 옷로비사건이 한창이던 때잖아요. 옷로비사건을 은폐할라꼬(은폐하려고) 꼼수 쓴 거라꼬. 그래서 현재 검찰에 남아있는 검사장 한사람이 정식으로 (법무부)장관에게 가서 항의했어요. 그랬더니 ‘쉿, 너는 가만있거라’ 이러는 거야. 그런 식으로 큰 사건의 문제점을 덮으려고 조그만 사건을 벌여서 관심을 다른 데로 돌리기 위한 거죠.”



    옷로비 은폐와 검찰 물갈이 계획

    ―당시 심재륜고검장까지 사건관련자로 거명되면서 차기 검찰총장 인선을 둘러싼 검찰내 ‘파워게임론’ ‘음모론’까지 돌았는데….

    “그런 건 아니라고 봐요. 다만 검찰을 인적청산하려는 시도는 애초부터 있었다고 봐요. 그건 어느 정권이든 마찬가지예요. 역사적으로 새로운 권력이 들어서면 기득권 세력을 물갈이하고 자기사람을 좀 만들어야 그 정권이 유지되는 거니까. 먼저 “안기부는 다른 행정기관에 비해 직급이 너무 높다. 직급을 낮춰야 한다”고 해서 전부 1급인 안기부 지부장들을 본부로 발령내고 2급 3급짜리들을 지방에 임명시켰다고요. 그런데 일을 시켜보니 ‘안기부는 역시 직급이 좀 높아야겠구나’고 해서 다시 슬그머니 직급을 높였어요.

    그 다음에 검찰을 물갈이하는 데 신분이 보장된 검사들을 손대기 위해 이용한 게 재야단체와 철거민 등이에요. 이들이 ‘검찰이 썩었느니’ ‘법원이 썩었느니’하고 막 나갔다고요. 이를 빌미로 전부 바꾸려고 했어요. 그런데 그때 심재륜이란 사람이 나와서 떠들어대고 젊은 검사들이 웅성웅성대니까 눈치가 보여서 몇 달 늦게 했다고.”

    ―정치권에 들어와서 6개월이 지났는데 어떻습니까? 민주당의 이원성의원은 “환멸을 느꼈다. 정치개혁은 요원하다는 느낌이 든다”고 피력했는데. 공감하시나요?

    “우리 법조인들은 사고가 이분법이에요. 옳은 거 아니면 그른 거라. 죄를 졌느냐, 안 졌느냐 선택이라고요. 그런데 우리 사회는 이분법적인 판단으로 안되는 경우가 대부분이에요. 정치를 하는 사람들이 이분법적인 사고를 갖고 있으면 정말 헷갈린다고. 되는 것도 없고 안되는 것도 없고, 옳은 것도 아니고 그른 것도 아니고, 줄이 여기섰다 저리로 가고 정말 ×판이란 생각이 들어요. 그래서 난 환멸을 느낀다든가 개혁을 해야 한다는 데는 동의를 해요.”

    ―내부적으로 안되면 검찰의 힘을 빌려서라도 개혁을 해야 한다는 주장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세요?

    “검찰을 동원해서 그런 걸 한다는 건 말도 안돼요. 정치란 게 다 민도(民度)와 관계있는 건데 특정한 상황을 가정해서 혁명을 하듯이 뭘 한다는 것은 가능치 않아요. 그런 것은 바로 쿠데타식 논리거든.”

    ―이의원은 “검찰재직시 몇몇 따르는 후배검사들에게 (정치개혁) 방안을 연구해보라”고 했다는데 실제 정권교체 이후 그런 ‘정치인 퇴출방안’이 기획됐다고 보시는지요.

    “뭐 그렇게는 안봐요. 다만 정권이 바뀌었을 때 정치권력자가 검찰을 소위 정치개혁이나 물갈이 인적청산의 도구로 사용할 가능성은 있다고 봐요. 총풍 세풍사건을 만들어갖고 얼마나 떠들었습니까? 그걸로 거의 8개월동안 국회를 사실상 문닫아놓고 얼마나 난리법석을 떨었습니까. 거기에다가 정치인 사정이다 뭐다 겁을 주어서는 한나라당 국회의원 30명 가까이 빼갔잖아요. 결국 국회의원 검찰이 그런 것을 기획까지는 하지 않았겠지만 결과적으로 그런데 이용당하는 경우가 많다는 거죠.

    ―실제 검찰이 정치적으로 이용당하는 예를 보셨나요?

    “한빛은행 사건으로 여권이 궁지에 몰리자 경남종금회장이 어쩌고 경부고속철에 관련해 구여권에 리베이트가 들어갔느니 어쩌느니 나오고, 지금 동방금고사건이 터진 후 뭐가 나올까 봤더니 아니나 다를까, 전방위 공직자 고강도사정(방침)이 나오는 거예요. 여권에 부담이 된다든가 검찰이 속시원히 국민들 박수를 못받을 거 같으면 정치인들이 쓰~윽 그걸 덮으려고 뭘 하는데 검찰이 거기에 이용당하는 거 같아요.”

    ―요즘 금융감독원간부와 청와대기능직의 부정비리 등 공직자의 총체적 부패문제가 심각한 수준인데요. 정치권과 공직 부패를 차단키 위해 시급히 필요한 일은 무엇이라고 보세요?

    “저는 우리사회 부패의 총체적 근원이 정치권이라고 봐요. 고비용 저효율 정치라는, 돈과 관계있는 정치를 하다 보니까 이런 일들이 생긴다고. YS도 정경유착 타파다 뭐다 꽤 노력했다고요. 그런데 옛날에는 보스가 돈을 받아서 밑에다가 ‘야, 먹고 살아’하고 던져줬는데 이게 없으니까 이제는 밑에서 직접 받아 써요. 옛날에는 (돈을 받는) 창구가 최고위선으로 단일화 됐는데 이제는 밑에서 다원화된다고.

    YS후반기에도 보면 여러사람이 문제를 일으켰는데 이 사람들은 이 거예요. (YS의)임기래봐야 5년밖에 안되는데 자기는 여태껏 (YS를) 따라다니다 이게 뭐냐 말이죠. 보스야 대통령도 하고 노벨상도 타고 부귀영화를 다 누리는데 나는 뭐냐 말이죠. 지금 정부에서도 마찬가지일 거라고. 그리고 정치 자체가 돈이 없으면 안되니까.”

    ―한빛은행사건이나 동방금고불법대출사건 등 정치적 의혹이 있는 사건들에서 검찰이 계속 심각한 수준으로 불신을 받고 있습니다. 검찰의 위기로까지 불리는데요. 정권교체 이후에도 변함없이 검찰의 정치적 중립성 여부, 이른바 ‘정치검찰’ 시비가 끊임없이 도마에 오르는 이유는 어디에 있다고 보시는지.

    “통치권자가 검찰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갖고 있고 어떤 철학을 갖고 있느냐에 따라 크게 달라집니다. 현 정부는 검찰이 말한 제대로를 인정하지 않는 거 같아요. 법적인 절차, 공권력 등에 대해서는 기본적으로 인정하지 않으려는 경향이 있어요. 왜냐면 대통령 자신이 검찰권력 때문에 구속도 되고 사형까지 선고받은 적이 있고, 야당을 오래해서 그런지 얘기하는 것도 상당히 프로파겐다식 정치를 해나가요.

    가령 국회는 문을 닫아버린 상태에서 법적 권한이 전혀 없는 노사정위원회라는 것을 만들어서 거기서 노사문제를 다루어버린다고. 국회가 할 수 있는 권한을 거기에 주어버려요. 그게 국가보위입법회의나 똑같은 거 아니오? 지난 총선 때도 시민단체라는 데서 선거법 테두리를 벗어나는 낙선운동을 마구 하는데도 대통령이 나서서 막기는커녕 ‘국민들의 정당한 욕구를 법으로 단속하지 말라’는 거예요. 4·19나 6·10항쟁도 다 그 당시에는 실정법위반이었다, 그러니까 법을 위반해도 괜찮다, 이게 그분(김대중대통령) 생각의 본질이에요. 진정 검찰을 바로세워갖고 뭘 해보겠다는 게 아니라 이 말이에요.



    한보사건 진짜 몸통은 노태우

    ―검찰수뇌부가 정치권력에 영합하는 수사를 하는 경우가 많다는 지적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검찰총장이 대통령의 뜻을 거스를 수는 없더라도 적어도 수사를 통해 모아진 올바른 의견을 적절히 대통령한테 보고, 설득할 수 있는 능력이 필요합니다. 더 중요한 것은 검찰을 정치적 도구로 삼지 않겠다는 최고권력자의 인식입니다. 통치권자에게 이런 의식이 없으니까 검찰이 정치화됐다, 정치에 휘둘린다 소리를 듣는 겁니다. 통치권자가 검찰을 이해하고 검찰 본래대로 놔두겠다는 생각을 가져야 합니다. 이승만대통령은 그래도 민주주의 의식이 좀 있어갖고 검찰에 대해 ‘저 놈이 나한테 좀 이렇게 해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있더라도 함부로 그렇게 주문하지 못했다고. 그런 마인드를 갖고 있어야 해요. 근데 박정희대통령은 위수령 내려서 불법적으로 사람을 막 체포하고 했어요.”

    ―최근 한나라당이 총선 편파수사 등을 이유로 검찰총장 및 차장에 대한 탄핵안을 제출하고 검찰이 이에 반발하는 등 한차례 홍역을 치렀는데요. 검찰간부 출신으로서 착잡하셨겠습니다.

    “99%의 검사는 참 열심히 하고 고생합니다. 그런데도 친정인 검찰이 ‘정치검찰’ 시비를 받고 비판을 받는 것은 정말 안타까워요. 반발하는 후배검사들의 심정이 이해가 됩니다. 하지만 검찰에 대해 우리가 중립성 독립성을 가지라는 말은 집권세력이나 정치권력에 의해 조작된 여론으로부터 독립하라는 얘기지 정당한 국민여론이나 국민의 바람을 무시하라는 것은 아닙니다. 그런 점에서 이번 탄핵안은 검찰이 자신을 되돌아보고 반성하는 계기로 삼으면 되는 겁니다. 실제 내가 알기로는 검사들 대부분은 탄핵안에 대해 요새 검찰수뇌부와는 다르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최의원은 97년 3월 대검 중수부장으로 한보대출비리사건 수사를 진두지휘하던 도중 현철씨 등에 대한 수사미흡 등을 이유로 중수부장 임명 두 달 만에 이례적으로 교체됐는데….

    “YS정권시절에 보니까 정권을 지탱하고 책임있게 일을 맡아나갈 만한 중심세력이 없더라고. 전부 옛날 야당시절에 YS를 형님―동생하고 따라다니던 사람들만 모여 있지 국가를 경영할 사람이 없더란 말이에요. 그래서 내가 ‘국가란 게 이래선 안되는데’ 생각도 했는데 YS도 한이 맺힌 게 있을 거요. 96년말 내가 대검 공안부장을 했는데 그때 YS가 노동법과 은행구조조정관련법을 국회에서 이른바 날치기 통과시켰어요. 난리가 났지요. 그래서 이를 무효화시켰어요. 정권이 얼마나 힘이 없었으면 그랬겠어요. 이런 와중에 한보사건이 터졌는데 책임있게 ‘이건 이렇게 해야 한다’고 말하는 사람이 없어요. 그 전까지는 정권이 좀 힘이 있을 때는 이러저러하게 눈치를 보다가 이제는 ‘나는 모르겠다’ 이런 식이야.

    이런 와중에 내가 중수부장 맡은 그날 바로 이 한보사건이 터진 거라. 우린 그때 정말 수사할 수 있는 대로 끝까지 수사했어요. 장관도 구속하고. 그때 내가 오늘날 여당의 거물인 권노갑씨도 구속해서 밉보였잖아요. 그런데 흔히 한보사건의 몸통이 뭐냐, 왜 당시 정권 최고실세를 구속 안했느냐고 날보고 얘기들 하는데 한보사건의 진짜 몸통은 노태우전대통령이에요. 노대통령이 재임시절 200만호 신도시건설을 추진했는데 하다보니까 자기도 포철 같은 것을 하나 만들고 싶은 거라. 이것을 뒷받침해준 게 정태수였죠.

    정태수가 YS한테 대선자금을 줬는지 소선자금을 줬는지는 몰라도 기본적으로 정태수는 노태우와 관계맺고 일을 해나간 거라고.”

    ―그럼 YS나 김현철씨는 기본적으로 한보사건과 관계가 없다는 말인가요?

    “내가 정태수한테 현철이 관련해서도 물었어요. 근데 정태수 말이 ‘내가 즈그 아부지하고 아는데 아들한테 뭘 부탁해서 할 거냐’는 거예요. 그런데 당시 야당에서 현철이 잡아넣으라고 난리야. 그래서 우리가 현철이 뒷조사를 다 했다고. 근데 사건 본질과 관계없는 대선자금 잔여금이 쬐금 남아있는 거야. 근데 이게 법적으로 무슨 죄가 되나. 굳이 시비건다면 증여세 위반인데, 생각해보라고, 대검 중수부가 현철이 잡아넣는데 ‘겨우’ 증여세 위반으로 처리했다면 ‘축소·왜곡했다’ ‘면죄부만 줬다’고 또 난리들 칠 거 아니야. 그래서 고심하면서 갖고 있었던 거예요. 나중에 결국 심재륜부장이 맡아서 김현철이 구속됐지만 그게 사실 내가 수사할 때 다 나와있던 거예요. 그래도 내가 ‘수사미진’이다 뭐다 욕 먹는 거 불평 한마디 안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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