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동아’의 취재 결과 지난 8월 문제가 된 중국산 납꽃게는 대부분 북한산이라는 충격적인 사실이 드러났다. 이는 당시 한국에 수입된 중국산 꽃게가 거의 중국 단동산이고, 단동의 꽃게는 대부분 북한 해역에서 들어온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꽃게가 북한산이라는 사실과, 범인이 누군가는 별개 문제다. ‘신동아’는 한·중 외교 당국, 검찰, 세관, 수산물 검역소, 꽃게 수입업자, 북한 수산물 전문가 등 관련자를 입체 취재했다. 그 결과 중국 어민이 범인일 가능성이 크다는 결론을 얻었다.
이처럼 양국 외교 당국이 이를 밝힐 의지가 없기 때문에 사건은 그야말로 기억 저편에 묻힐 가능성이 크다.
그러던 중 ‘신동아’는 중국 외교 소식통을 통해 사건 단서가 될 만한 중요한 정보를 접했다. 지난 추석날인 9월12일 주한중국대사관 우다웨이(武大僞) 대사는 주한 중국인들을 불러 위로 만찬을 베풀었다. 이 자리에서 그는 “내일 모레 내가 한국 외교부에 항의할 것이다. 그동안 한국이 중국을 납꽃게로 비난한 것은 부적절한 행위였다. 꽃게는 북한산으로 밝혀졌고, 우리 당국이 관련자를 체포했다. 관련자 10명 가운데 4명이 북한인이다. 납꽃게의 98%는 북한산이고, 납도 북한산이다. 그런데 전체적인 총괄 기획은 한국인이 했다”고 말했다.
우대사는 이보다 앞선 9월8일에도 국회의원 연구단체인 ‘아시아·태평양 정책연구회’ 초청강연회에서 납꽃게 사건과 관련해서 “꼭 중국 상인이 했다고 단정하기 어렵다. 한국인이 개입했을 가능성이 크다”고 말한 바 있다. 당시 한국 언론에 우대사의 발언에 항의하는 여론이 빗발쳤으나 우대사는 무슨 이유인지 더이상 해명하지 않았다.
또 다른 주한중국대사관 당국자도 ‘신동아’가 요청한 비공식 인터뷰에서 납꽃게가 북한산이었다는 사실을 확인해주었다. 이 당국자는 “8월21일 납꽃게 파동이 일어난 지, 1주일 안에 중국의 대외무역부·공안부·상품수출입검사국·세관 등 5개 부서로 구성된 조사단이 단동에 가서 조사했다. 조사한 결과 한국 시장에 팔리는 꽃게는 이미 중국 연근해에서는 자원이 사라져 잡히지 않는 것으로 드러났다. 문제가 된 그 꽃게는 모두 북한에서 들어온 것이다. 이것도 중국회사가 북한산 꽃게를 수출한 것이 아니라 한국사람이 직접 단동으로 와서 한국으로 들여가는 식이었다. 단동은 단순히 포장만 하는 장소였고 현장 활동가도 모두 한국인이었다”고 말했다.
이 당국자는 “중국이 모든 진상을 파악했고 이를 공개하려 했다. 그러나 지금 진상을 공개하면 남북관계에 좋지 않은 영향을 끼치기 때문에, 그냥 덮었다. 중국이 납꽃게가 북한산이라고 공개하면 경제적인 측면에서는 유리하지만, 한반도의 남북관계에 나쁜 영향을 끼친다. 중국은 이를 원하지 않는다. 한반도에 대한 중국의 제일 원칙은 남북관계 완화에 유리한가 하는 것이다. 한국의 일부 수산업자가 중국 수산물 인상을 나쁘게 하려고 북한 사람과 같이 꾸몄을 가능성도 있다. 다만 중국은 진상 조사 결과를 한국 외교 당국에는 통보하되, 대외적으로 공표하지는 않기로 했다. 현재도 납꽃게 문제를 조사하고 있지만, 결과가 나오더라도 남한과 북한, 중국의 외교관계를 고려해서 공개하지는 않을 방침이다”라고 덧붙였다. 중국 당국의 입장을 정리해보면 ‘납꽃게는 북한산이고, 범인은 북한인이나 한국인일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이 사건에 대한 우리 정부의 견해는 한마디로 ‘납꽃게는 중국산이고 중량을 늘리기 위해 중국 어민이 납을 넣었을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국내에서 이 사건을 맡았던 인천지방검찰청 반부패특별수사부는 사건 관련자로 수산물 수입업체 ‘이십일세기 상사’의 한국인 수입중개업자 양아무씨(43)를 식품위생법위반으로 구속 수사중이다. 그러나 양씨는 중국 현지(중국 동항: 단동의 위성도시)에 거주하며 꽃게 냉동공장에서 꽃게를 모아 국내 수입업체에 넘겨주는 수집상이었을 뿐 납을 직접 투입한 범인은 아니다.
인천지검 특수부 김광로 부장검사는 “양씨는 납을 넣은 범인이 아니라 현지 수집상이다. 그를 구속한 사유는 중국 현지에서 냉동꽃게를 수집할 당시, 납이 들었다는 사실을 알고도 국내 수입상에 이를 판매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양씨는 이 혐의도 강력하게 부인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 사건 현장은 중국 단동이다. 인천 지검은 직접 현지 수사를 하지 못했기 때문에, 진상을 밝혀내기는 어려울 전망이다.
이 사건에 대해 주무 부처인 외교부와 해양수산부는 주중한국대사관 관계관(참사관, 해양수산관, 관세관)을 8월21일∼9월1일 사이에 중국 현지인 단동, 위해 지역에 파견하여 실태를 조사했다. 해양수산부 어업정책국 관계자는 “당시 조사단이 중국의 수출업자, 현지 검역당국과 면담한 결과 납을 넣은 것은 중량을 늘리기 위한 현지 어민들의 행위일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중국산인가 북한산인가
주중한국대사관 조사에 따르면 납이 검출된 꽃게·복어·병어 선적지가 단동지역에서부터 산동성(위해), 절강성(하문) 등 중국 전역이라는 것이다. 신의주와 맞붙어 있는 단동 지역에서만 납이 나왔다면 북한산이라든지 북한어민 소행이라고 추정할 수 있지만, 중국 전역에서 수입된 수산물에서 납이 검출되었기 때문에 중국 어민 소행일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또 주중한국대사관 조사 결과 납복어의 경우 복어잡이 그물이 1회용이며 값이 싸서(한화 약 9000원), 어민이 중량을 늘리기 위해 폐어구 납추를 넣었을 가능성이 크며, 복어 한 마리당 250g을 넘으면 50위안이고 250g 이하는 30위안이므로 조금만 무게를 늘려도 높은 값을 받을 수 있다는 분석이다.
이처럼 한·중 외교 당국이 문제를 쉬쉬하고 있지만, 물밑 의견차는 분명하다. 중국은 납꽃게가 북한산이고, 범인이 한국 또는 북한 사람이라고 주장하고, 한국은 북한산이라는 주장은 어불성설이고 중국측 소행이 분명하다는 것이다.
진실은 무엇일까? 우선 납이 검출된 꽃게가 중국산인가 북한산인가 하는 문제를 따져보자. 이를 위해서는 꽃게의 서식지와 생태를 이해할 필요가 있다. 꽃게는 서해 바다에서 주로 서식한다. 동해바다는 영덕대게처럼 몸통에 견주어 다리가 상대적으로 긴 종류가 잡힌다. 동해에서 나는 게는 서해게보다 크기도 크고 껍데기도 부드러워 먹기가 훨씬 수월하다. 반면 서해에서 잡히는 게는 크기가 작고 껍데기도 단단하다. 당연히 상품 가치는 동해 것이 서해 것보다 높다. 서해에서 잡히는 게 중에서 가장 큰 것이 꽃게다. 중국 쪽에서 잡히는 꽃게는 한국 꽃게보다 크기가 작고 다리도 짧고, 껍데기도 딱딱해 상품 가치가 떨어진다. 이 게를 중국인들은 ‘팡세’라고 부르는데 그것도 요릿집에서는 매우 비싼 값을 받는다.
꽃게는 북위 31도 이북 서해 바다에서 잡히는 것이 상등품이다. 북위 31도 이북이면 중국 연안이든 한반도 연안이든 잡히는 종류가 같다. 황해 바다 중에서도 꽃게가 사는 곳은 수심 20∼25m의 대륙붕 바닥이고, 그것도 육지의 강물이 바다와 섞이는 곳에 집중적으로 서식한다. 민물과 바닷물이 섞이는 곳은 꽃게의 먹이가 되는 플랑크톤이 풍부하다. 더구나 육지에 홍수라도 나면 강을 통해 온갖 부유물이 바다로 흘러내려와 더할 나위없는 서식처가 된다.
이는 과거의 꽃게 어장을 살펴보면 잘 알 수 있다. 70년대 당시 한국에서 가장 품질 좋은 꽃게가 나는 곳은 목포 앞바다였다. 이는 영산강 때문이었다. 영산강의 민물이 진도까지 흘러갔기 때문에 이곳에서는 하루에 꽃게를 2만kg이나 잡았고, 전량 일본으로 수출했다. 그런데 영산강 하구에 둑을 쌓는 바람에 민물 공급이 끊겼다. 꽃게도 사라졌다. 군산 앞바다의 안마도, 고군산열도, 연도 부근도 좋은 꽃게 어장이었다. 이곳도 금강에서 흘러나온 민물 덕분에 형성됐던 것인데 금강 하구에 둑을 쌓는 바람에 없어졌다.
현재 백령도와 연평도 근해에서 꽃게 어장이 형성되는 것은 바로 한강과 임진강 하구를 막지 않아, 민물이 흘러내리기 때문이다. 해마다 봄철이면 이 바다에 엄청난 꽃게 어장이 형성된다. 현재 한국에서 소비되는 활꽃게는 대부분 백령도와 연평도 근해에서 잡는 것이다. 한국 꽃게잡이 어선들은 거개가 수족관 시설을 갖추고 있다. 그래서 꽃게를 잡는 즉시 수족관에 넣어 살아 있는 상태에서 인천항으로 가지고 들어온다. 백령도와 연평도 꽃게 어장은 남북한 경계선에 걸쳐 있다. 따라서 이 어장은 남북한이 양분하고 있다. 북한 어선들은 꽃게를 잡으면 모항인 해주항으로 귀항한다. 해주항은 북한의 주요 꽃게 산지다.
한반도 근해에서 꽃게 어장이 형성되는 또 다른 곳은 압록강 하구다. 더 정확히 말하면 북위 39∼40도, 동경 124∼125도 구역이다. 북한의 가장 큰 꽃게 어장이 바로 이 압록강 하구다. 특히 압록강 하구와 바다가 만나는 이 구역은 수심 20∼30m의 모래톱이 광범위하게 펼쳐지기 때문에 꽃게가 서식하기에는 안성맞춤이다.
꽃게를 주로 잡는 계절은 4∼6월. 이 시기가 되면 속이 꽉찬 암게가 알을 낳으려고 수심이 얕은 연안 쪽으로 몰려든다. 이 시기에 집중적으로 꽃게를 잡는 것이다. 이때는 꽃게가 얕은 바다로 몰려들기 때문에 잡기도 쉽고, 속이 꽉차 있어 값도 후하게 받을 수 있다.
7∼9월은 꽃게 금어 시기다. 꽃게가 비교적 깊은 바다에 머물기 때문에 잡기도 힘들고 새끼 꽃게들이 많은데다 품질도 떨어져 자원 보호를 위해서 어획을 삼간다. 이는 중국이든 북한이든, 남한이든 마찬가지다. 더욱이 겨울에는 잡을 수가 없다. 꽃게는 바깥 온도가 영하 10도 이하로 내려가면 뻘 속으로 들어가 월동한다. 북한 지역에서는 그래서 아예 겨울에는 꽃게를 구경할 수가 없다.
단동 꽃게는 북한산
꽃게 무역을 가장 먼저 시작해 한국 꽃게 무역의 대부라 할 수 있는 일화교역상사 한용철 대표는 “꽃게철인 올해 4∼6월, 북한의 압록강 하구에서 잡힌 꽃게는 대부분 단동으로 갔다”고 말한다. 그도 그럴 것이 북한은 주식인 쌀이 부족하기 때문에 꽃게 같은 해산물을 먹을 여유가 없다. 꽃게는 중국과 남한에서도 인기 있는 고급 해산물이기 때문에, 외국에 내다팔아 생필품을 사는 것이 당연지사다. 한용철씨는 그래서 올해 봄 단동에서 유통된 꽃게는 80% 이상이 북한산이라고 증언했다. 단동 근처에는 북한쪽 구역인 압록강 하구말고는 별다른 꽃게 어장이 없다는 사실이 이 주장을 뒷받침한다.
이는 단동의 꽃게가 북한산이라는 중국 외교 당국 주장과 일치하는 부분이다. 한씨는 “7∼9월 사이는 중국도, 북한도 꽃게를 거의 잡지 않기 때문에, 한국에서 8월에 문제가 된 납꽃게는 모두 4∼6월 사이에 잡아서 냉동해 놓은 북한산 꽃게다”라고 말했다.
압록강 하구의 북한 해역에서 잡은 꽃게가 중국으로 넘어가는 방법은 대부분 해상 물물교환이다. 북한 꽃게 어선들이 바다 위에서 중국배에 꽃게를 넘겨주고 즉석에서 쌀 같은 생필품을 받는 방식이다. 일종의 밀무역이다. 정식 거래로 하려면 잡은 꽃게를 북한 항구로 가져와서 수출입 계약을 맺고, 포장해서 검역을 통과한 뒤 중국으로 수출해야 한다. 이 경우는 정식 무역이기 때문에 북한에서 포장을 하고, 당연히 원산지가 ‘북한’이라고 표기된다. 수출입 서류도 남는다. 하지만 납꽃게 가운데 원산지가 ‘북한’이라고 적힌 것은 하나도 없었다. 생선보다 더 빨리 상하는 꽃게는 신선도가 생명이다. 북한 어선들은 대부분 냉동시설을 갖추지 못하고 있다. 즉석 선상 물물거래를 하는 이유 가운데 하나다. 이는 과거부터 조·중간에 이루어지던 관행이다.
북한산이 중국산으로 둔갑하는 또 다른 이유는 중국 어선들이 북한 구역에서 불법 조업을 하기 때문이다. 단동항에는 80마력 엔진을 단 어선 4000∼5000척이 넘쳐난다. 최근 중국은 경제개발로 연안 오염이 심해져 연근해 어업이 거의 불가능한 상황이다. 중국어선이 한반도 쪽으로 몰려드는 것도 이 때문이다.
더구나 최근 중국 당국은 80마력 어선이 나갈 수 있는 구역을 한정하는 법안을 새로 마련했다. 그러니 먼바다로 나가는 길도 막혀버렸다. 사실 이 80마력 어선들은 서해바다에서 조업하기에 딱 알맞은 배다. 과거에는 단동의 이 80마력 어선들이 대부분 북한 해역에서 불법 조업을 했다.
중국 어선이 북한 바다에 가서 어획할 때는 북·중간에 정식 어업협정을 맺은 상태여야 한다. 몇 톤짜리 배가 언제부터 언제까지 얼마를 잡겠다는 협정을 맺지 않고는 조업이 불가능하다. 중국측이 단동 꽃게를 북한산이라고 내놓고 말할 수 없는 이유가 여기 있다.
하지만 수산물이 돈이 된다는 것을 안 북한 군부의 단속이 심해지고부터는 이 배들이 갈 길이 막혔다. 북한에서는 군부가 수산업을 직접 운영한다. 더구나 지난 1996년 북한 해군 하전사 1명이 중국 어선을 단속하다가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이후 북한 군부의 통제가 더욱 엄격해졌다. 하지만 단동항의 중국 어민들은 북한 군부와 통할 수 있는 채널을 갖고 있다. 어느 정도 대가만 쥐어주면 북한 구역에서 꽃게를 잡을 수 있는 것이다.
물론 지난 8월 납이 발견된 꽃게는 단동에서만 선적된 것이 아니다. 단동 지역이 70%이고 나머지는 대련, 위해, 주산(舟山) 등 중국 전지역에서 선적한 것이다. 하지만 조사 결과 단동이 아닌 다른 지역에서 선적된 꽃게도 모두 단동산인 것으로 밝혀졌다. 따라서 답이 나온다. 문제의 납꽃게는 ‘서류상으로는 중국산, 실제 원산지는 북한’으로 보아야 한다.
꽃게는 북한산일 가능성이 크지만, 납을 넣은 범인이 누구인지는 여전히 의문이다. 이를 위해서는 납을 넣은 이유를 따져야 한다. 지금까지는 별문제 없다가 왜 갑자기 올해 납이 들어갔느냐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가장 큰 이유를 가격 폭등으로 꼽았다. 꽃게철인 지난해 봄과 올 봄에는 꽃게값이 예년에 견주어 거의 두 배 가까이 올랐다. 꽃게 값이 평소에는 비싸보았자 kg당 1만1000원 정도였는데, 지난해 봄부터는 이것이 kg당 2만원선까지 치솟았다.
지난해 꽃게값이 오른 것은 6월11일 터진 서해 교전 탓이다. 한국에서 꽃게가 가장 많이 잡히는 구역이 연평도와 백령도 근방이다. 서해 교전 전만 해도, 우리 어선이 잡은 꽃게는 인천항으로 들여왔다. 북한은 이 해역에서 잡은 꽃게를 모두 해주항으로 모았고, 이 꽃게 대부분을 남한 쪽 수입업자가 해주-인천 직항로를 통해 수입했다.
그러다 서해 교전이 터졌다. 남북한의 꽃게잡이 어선들은 눈앞에 꽃게떼를 보고 출어조차 할 수 없었다. 이 해전에서 30명 이상이 전사하고 함정이 침몰하고 파괴되는 수모를 겪은 북한 군부는 남북한 사이의 모든 직항로를 다 끊어버렸다. 해주뿐만 아니라, 남포 등 남북한 사이의 모든 항로가 막혔다. 당연히 해주-인천 직항로를 통해 들어오던 북한산 꽃게도 끊겼다. 북한에서 들어오는 물량도 없어지고, 군사 긴장 때문에 우리쪽 조업도 잘 안 되니 꽃게값은 폭등하기 시작했다.
올해 봄에도 꽃게값은 떨어지지 않았다. 이는 동중국해에 우리 어선들이 출어하지 못한 탓이다. 지금까지 한국에서 유통되는 냉동꽃게는 대부분 우리 어선들이 동중국해에서 잡아오던 것이다. 70∼80년대 영산강과 금강 하구에 둑을 쌓기 전 이곳 앞바다에서 꽃게를 잡던 배들은 거의 경남 통영 출신의 5∼10t 가량 되는 소형 어선이었다. 전국에서 수산업이 가장 발달하고 어선들이 집중하는 곳이 바로 경남 사천·통영, 부산이다.
목포와 군산 앞바다에서 꽃게가 사라지자 통영 지방 어민들이 눈을 돌린 곳이 바로 북위 31도, 동경 123도 부근 동중국해였다. 이곳은 양쯔강에서 흘러나오는 엄청난 민물이 바닷물에 섞여드는 곳이다. 양쯔강과 바다가 만나는 곳을 배를 타고 가보면, 육지에서 40km 정도 앞바다까지 온통 붉은 황토가 바다를 뒤덮고 있다. 통영지방의 100t 정도 되는 비교적 큰 어선들은 1990년 무렵부터 이 동중국해에서 꽃게를 잡아오기 시작했다.
동중국해의 꽃게는 비록 한국 연근해 꽃게보다 질은 떨어졌지만, 통영 배에는 냉동시설이 있어, 잡자마자 바로 얼려 신선도를 유지할 수 있었다. 보통 150척 정도가 선단을 이루어 나가는 이 배들은 한번 조업을 나가면 한 달 정도 바다 위에 떠서 꽃게를 잡았다. 한 달 동안 조업을 끝내고 돌아올 때면 한 배가 꽃게를 10kg짜리 상자로 5000~6000개까지 싣고 올 수 있었다.
지난해와 올해 봄에는 이 통영 배들이 조업을 나가지 못했다. 중국 연안이 전반적으로 흉어기였고, 중국 어선들의 조업 방해가 심했기 때문이다. 중국 어선들은 이곳에서 조업하는 한국 어선들의 통발을 끊고, 그물을 찢고, 심지어 여러 척이 달려들어 강도짓까지 했다. 조업을 나가보았자 기름값도 나오지 않는데 나갈 이유가 없었던 것이다. 이렇게 꽃게값이 오르니, 무게를 늘리기 위해서 납을 넣었을 가능성이 커지는 것이다.
꽃게값 폭등이 납주입 원인
수산 관계자들의 증언에 따르면 납은 어선에서 조업하는 어민들이 가장 손쉽게 구할 수 있는 물건이다. 왜냐하면 그물에 붙어 있는 것이 바로 납으로 만든 그물추이기 때문이다. 이는 서해 바다 현장에서 꽃게를 잡는 조업 현장을 살펴보면 잘 알 수 있다. 꽃게는 보통 자망, 삼중망, 통발 등으로 잡는데, 자망의 경우 윗부분에 물에 뜨는 부이가 달려 있고, 가장 아랫부분에 납추가 붙어 있다. 서해바다는 하루에 두 번씩 물이 들고 빠진다. 밀물과 썰물이 정확히 6시간을 주기로 들었다 빠지는 것이다. 꽃게잡이 배는 밀물이면 그물을 치고, 썰물이면 그물을 걷어, 그물에 꽂힌 꽃게를 빼고, 그물을 수선한다. 그물을 수선하는 이유는, 수심이 얕아 여기저기 해저 구조물에 그물이 찢어지는 일이 많고, 꽃게가 그물을 찢기 때문이다.
어쨌든 그물을 수선하려면 그물추를 새로 다는 일이 필수이다. 따라서 꽃게잡이 어선은 납그물추를 항상 갖추어야 한다. 어선들은 썰물 6시간은 내내 작업을 하고, 밀물 6시간은 그물을 치고 잠을 잔다. 꽃게가 많이 잡히는 봄철이 되면 이런 과정을 두세 달 동안, 바다 위에 떠서 계속한다.
이렇게 잡은 꽃게를 항구로 운반하는 일은 따로 냉동시설을 갖춘 운반선이 하는 경우가 많다. 어차피 꽃게는 한때가 대목이기 때문에 조업 어선들은 꽃게떼를 따라 바다 위에 계속 떠서 조업을 하고, 운반선이 오면 잡은 꽃게를 넘겨주는 일만 하는 경우가 많다.
여기서 범인이 누구인가 하는 문제가 떠오른다. 중국 당국은 은근히 북한이 넣었을 가능성이 있고, 한국인 업자가 중국인 어민을 배후조종해서 납을 넣었을 거라는 의혹도 제기하고 있다. 실제 원산지가 대부분 북한인 단동산 꽃게에서만 납이 나왔다면 이런 추측은 맞을 수도 있다. 하지만 납은 복어와 병어에서도 나왔다. (185쪽 표 참조) 꽃게보다 납 검출률이 더 높았던 복어는 연태, 위해 같은 산동지역에서 69% 선적되었다. 병어는 그보다 더 남쪽인 상해에서 수입되었다. 꽃게를 제외하고는 중국 전역에서 수입된 수산물에서 납이 검출된 것이다. 동일범, 특히 한국인 업자끼리 서로 시기해서 이런 일이 벌어졌다고 보기에는 주입 지역이 너무 광범위하고, 수산물 품목도 다양하다.
하지만 꽃게만은 대부분 북한 바다에서 잡은 것이므로 북한 어민들이 납을 넣었을 가능성도 있다. 납을 넣은 범인을 잡기 위해서는 꽃게를 잡아 분류하고 상자에 넣어 냉동하는 과정을 살펴야 한다. 여기서 납을 넣을 수 있는 틈이 생기기 때문이다. 냉동 꽃게 가공 과정에 납을 넣을 수 있는 시간은 꽃게를 잡아 분류하고 상자에 넣기 직전이다. 꽃게는 암게와 수게, 대소 유무에 따라 값이 다르기 때문에, 상자에 넣기 전 반드시 크기와 암수별로 나눈다.
현재 중국 당국은 꽃게를 북한에서 잡아서 포장하고 냉동해서 중국으로 팔았고, 북한 사람 소행이라는 추정도 한다. 이렇게 했다면 조·중간에 정식 수출입이 이루어진 것이다. 그렇다면 증명 서류가 있을 것이다. 그 꽃게는 당연히 원산지가 북한으로 표기되어서 중국이 책임을 면할 수 있다. 또 단동세관을 통과해야 한다. 북한은 냉동물을 운반하는 배가 없기 때문에 냉동물일 경우 차로 실어 와야 한다. 여기서 어떤 형태로든 납이 검색되었을 것이다. 문제가 된 납꽃게는 여기에 해당되는 사항이 없다.
밀무역은 중국의 냉동 운반선 및 냉동시설이 장착된 어선이 북한의 꽃게 어장에 가서 대기하고 있다가, 북한이 잡아서 넘기는 꽃게를 받아오는 것이다. 여기서 북한 어민들이 납이 든 꽃게를 넘겼을 수도 있다. 그러나 납이 검출된 꽃게를 보면 한 상자에 한 마리씩이었다. 이는 포장 직전 분류 단계에서 차곡차곡 넣었다는 말이다.
일단 게를 포장하면 부패 속도가 더 빨라지기 때문에 반드시 냉동·냉장해야 한다. 북한 어선에는 냉동·냉장 시설이 없어 북한 어선 위에서는 포장할 수가 없다. 또 선상 밀무역이어서 중국 쪽이 상품 상태를 눈으로 확인할 수 없는, 이미 포장된 게를 받을 리가 없다. 따라서 선상 밀무역의 경우, 어획한 게를 그대로 중국쪽에 넘길 수밖에 없는 것이다.
밀무역 당사자끼리 미리 합의가 되어, 중국 원산지가 표기된 상자를 북한 배들이 싣고 다니면서, 꽃게를 포장해 중국 배에 넘길 수도 있다. 하지만 중국 어선에는 정확한 무게를 잴 저울이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시설이 낙후한 중국 어선들은 선단 중에 한 척에만 항해에 필요한 최소 장비를 갖추고 거개가 나침반과 통신기, 위치확인시스템도 없이 먼 바다에 나가 조업한다. 이런 상황이니 물건 값을 더 받기 위해 북한 어민이 애써서 납을 넣을 이유가 없는 것이다. 선상 거래는 어떤 경우든 북한 쪽에서 납을 넣을 공간이 형성되지 않는다. 결국 단동산 납꽃게의 경우는 현지 어민이나 창고업자들이 납을 넣었을 가능성이 가장 크다고 볼 수밖에 없다.
중국 어민들은 정원이 5명인 꽃게잡이 배 한 척에 납 1kg을 투입하면 꽃게값을 약 100위안 더 받을 수 있다. 보통 1인당 2배의 소득을 올리는 것이 가능하다. 현재 단동의 꽃게잡이 어부 임금은 일당으로 보통 20위안(元·2440원)이므로 가볍게 1인당 20위안씩 불로소득을 올리게 된다.
남북한 수산물 직교역 활성화 필요
재미있는 사례가 있다. 1960년대 당시 한국이 일본에 수산물을 수출할 때도, 무게를 늘리기 위해 생선에 이물질을 넣은 적이 있다. 삼치를 예로 들면, 1마리당 1kg은 되어야 일본에서 제값을 받을 수 있었다. 900g일 경우 가격이 반으로 떨어졌다. 그래서 당시 한국 어민들이 100g짜리 쇳덩어리를 삼치 속에 집어넣었던 것이다.
납꽃게 사건을 바라보며 우리는 중요한 교훈을 얻을 수 있다. 한·중간 수산물 위생관리협정을 하루빨리 체결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협정에 따라 수출 가공공장을 등록하고 수산물 제품 포장에 가공공장 명칭과 등록번호를 표기해야 한다. 모든 수산물 수출품에 위생증명서를 첨부해야 한다. 또 위해 문제가 생기면 원인이 밝혀질 때까지 수입을 중단하겠다는 약속이 되어 있어야 한다. 위생관리협정에 이런 내용을 포함시키는 것만이 납꽃게 사건 재발을 막는 길이다.
또 꽃게뿐만 아니라 중국산 수산물에 대한 안전성을 확보하기 위해, 선적 현지에 우리 관계자들이 나가 그 상태를 점검할 필요가 있다. 일본의 경우는 이미 중국산 수산물을 수입할 때는 현지에 관계자를 파견해 전 과정을 철저히 자국인 손으로 점검한다. 일본은 이제 수산물을 거의 외국에서 수입하여 소비하는 형태로 변했다. 우리도 이렇게 변할 가능성이 크다. 국민 건강을 지키기 위해서는 우리가 직접 산지로 나가 상품을 관리하고 기술 지도를 할 수밖에 없다.
뿐만 아니라 남북한 수산물 직교역이 지금보다 더 활성화되어야 한다. 해주의 꽃게와 압록강 하구의 꽃게를 우리가 곧바로 수입할 수 있는 길이 열리면 납꽃게같은 사건은 사라질 것이다. 수산물은 신선도와 가공방법이 생명이기 때문에 우리 수산물 업자가 북한 현지에 나가 신선도 유지 기술을 지도하고, 이를 복잡한 절차 없이 남한으로 가져올 수 있는 방법을 찾아보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