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야당도, 주변인사들도 DJ에게 못하는 얘기를 YS가 해주니까 이건 일종의 보약을 주는 기라. 약값 내라, 설의원” “대통령까지 지낸 분을 저렇게 망가지게 놔두는 것은 잘못이야, 박의원”
박종웅의원(朴鍾雄·한나라당)과 설훈의원(薛勳·새천년민주당). 동갑내기(47)인 두 의원은 79년과 80년 각각 YS, DJ와 인연을 맺은 이래 상도동과 동교동 비서로 정치생활을 시작했다. 연금과 투옥 등으로 YS와 DJ의 운신이 자유롭지 못하고 양가(兩家)가 군사정권의 감시 아래 통제되던 시절 두 의원은 양가 비서실의 막내격으로 허물없는 우애를 나누던 사이다.
‘신동아’는 두 의원을 동시에 초청, 두 전·현직 대통령간에 벌어지는 작금의 불화문제에 대해 양측의 기탄없는 속얘기를 들어보았다.
기자: 두 분이 동갑이죠?
박종웅의원: 동갑은 동갑이죠. 근데 정치판에서 나이 따지나.
설훈의원: 내가 뱀띠고 자기는 (한살 아래인) 말띠 아닌가?
박종웅의원: 정치판에서는 선수(選數)가 중요하지 나이가 중요한가.
(박의원은 3선, 설의원은 2선으로 박의원이 정치선배인 셈이다)
설의원: 뭘, 이회창(李會昌)의원도 재선인데 당총재도 하고 다 하잖아.
기자: 또 싸운다. 두 분 보스들께서도 참을 수 없는 경쟁의식을 갖고 있다고들 하는데 두 의원께서 그런 것까지 닮은 건 아니겠죠?
설의원: 내가 지금까지 모시면서 지켜본 바로는, 우리 (김대중)대통령께서는 아무와도 앙숙이 되거나 적대적 관계를 갖고 세상을 사시는 분이 아니에요. 서로 전쟁을 치르고 극악한 관계에 있던 남북관계도 화해하고 협력하는 판인데 그 동안 동지였고 말 그대로 미운 정 고운 정 다 든 분들인데 왜 협력이 안 되겠습니까? 왜 화해가 안 되겠습니까? 우리 대통령을 비롯해서 동교동 식구들은 다 마음을 풀고 있어요. 화해하자 그런 생각이에요.
기자: 그런데 이렇게 화해를 못 하고 앙숙이 된 데에는 뭔가 원인이 있지 않겠어요?
이게 훈수냐? 재 뿌리는 거지
박의원: 그게 제일 중요하죠. 김영삼 전 대통령께서도 처음에 김대중 대통령이 (당선)됐을 때는, 어떤 의미에서 ‘더 잘 됐다’ ‘그 동안에 내가 해왔던 민주화나 개혁을 한 단계 더 진전시켜 나갈 수 있겠다’고 생각하시고 “도와줘야 된다”고 말씀하셨어요. 그런데 이 양반(김대통령)이 하시는 걸 보니까 이래 가지고는 도저히 나라가 안 되겠다, (생각했던 것과는) 완전히 다른 방향으로 가고 있다는 생각이 드니까 “(김대중은) 독재자”라는 말씀도 하신 것 아닙니까? 걱정스러워서 한 말씀입니다. 인간적으로 과거에 오랜 동지였다 하더라도 잘못하는 것은 지적할 수 있는 것 아닙니까?
설의원: 그런데, 일방적이라는 느낌을 갖게 된다고. 우리 대통령이나 우리 당 쪽에서는 김영삼 전 대통령께서 하신 말씀에 대해서 일절 일언반구도 안 하시거든요. 우리는 우리대로 할 말이 분명 있지만 그냥 못 들은 체하고 넘어간다는 말이야. 왜 그러냐 하면 그 밑바탕에 김영삼 전 대통령에 대해서 미워하거나 싫어하는 감정이 없다는 거예요.
대통령 생각은 ‘저게 왜 저럴까, 답답하네, 내가 자기한테 뭘 잘못했다고, 왜 나한테 일방적으로 독재자라고 하고 온갖 소리를 다하면서 공격하나, 참 답답하다’ 이런 심정이세요. 그렇다고 똑같이 흥분해 가지고 YS에게 욕을 하거나 하는 것은 전혀 없고 ‘왜 저럴까, 참 답답하다’ 이런 거라고.
박의원: YS도 대통령을 5년 동안 해보신 분이고 또 김대중 대통령 하는 것을 보면 잘한다, 못한다 판단이 있지 않겠나. 정치를 하는 걸 보니까 이런 것은 잘못하고 있다, 그런 부분을 지적한 거지.
설의원: 답답하면 훈수도 해주고, ‘이것은 이런 것 아니오’ ‘아무리 봐도 이것은 후광(後廣·김대중대통령의 아호)이 잘못된 것 같소’ ‘이렇게 하는 것이 좋을 것 같소’, 이렇게 훈수를 하면 오죽 좋으냐 말야. 그것은 제쳐놓고 막 떠벌리고 이러니 훈수가 아니라 이것은 완전히 재 뿌리는 거지.
박의원: 그런 일을 하려면 신뢰가 중요하거든. 김대통령이 당선된 뒤에 ‘우리 힘을 합쳐서 잘해보자’ ‘미국대사가 이야기하던데 두 사람이 서로 협력하는 게 앞으로 한국 발전에 매우 중요하다고 하더라’는 이야기를 하면서 ‘앞으로 잘 좀 도와주세요’ 하기에 YS도 ‘좋다. 나라가 잘 되어야 할 것 아닌가. 나도 힘 닿는 데까지 열심히 도와주겠다’, 그렇게 이야기했단 말이야. 그런데 하는 것을 가만히 보니까 그게 아니더라. 신뢰를 저해하는 쪽으로 간다 말이야.
국민이 호응해주니까 말하는 거야
기자: 구체적으로 어떤 점이 신뢰를 저해했다는 얘기죠?
박의원: YS주변에 있던 사람들 다 조사하고, YS 재임 시절 비자금이라든지 그것을 집중적으로 조사하더란 말이죠. (YS와) 가까운 사람을 구속하고. 그때 구속됐던 사람 가운데 경남고등학교 출신으로 해병대사령관을 했던 전도봉 장군이 있는데, 진급과 관련해서 돈을 받았다고 구속됐어요. 그런데 이번에 무죄(판결) 났다고.
또 IMF와 관련해서 검찰에 감사원에 청문회에 나오라고 하는 거야. YS 생각에 ‘이렇게 하는 것은 대통령의 재가 없이는 안 된다’는 기라. 또 야당의원 빼내가기라든가 보궐선거 때 부정선거 하는 것을 보니까, ‘이거 독재가 아니냐. 저런 식으로 하다가는 진짜 큰일나겠다’ 싶으니까 잘못한다고 지적한 거지. 아무리 YS가 ‘독재자’라고 말했더라도 국민이 호응을 안 해주면 말한 사람만 우습게 되는 것 아닙니까? 그런데 일부 국민이 호응하고 있잖아요.
(‘국민 호응’ 대목에 이르러 설의원이 어이없다는 듯 빙긋 웃어 보이는 사이 박의원은 드디어 ‘항복’을 받아냈다는 듯 의기양양하게 속도를 높였다)
박의원: 남북문제도 마찬가지지. 일방적으로 북한에 끌려가고 YS가 볼 때는 이러다가는 나라 망치겠다는 생각이 드니까 그런 지적을 한 것이고. YS가 현 정권에 대해서 비판하는 게 무슨 반사이익을 얻겠다든지 그런 게 아니잖아요. 앞으로 다시 대통령 나올 것도 아니고 총재 할 것도 아니고, 정말 DJ와 과거에 동지였기 때문에 그러는 거지. 그렇게 비판하는 것도 애정이 있으니까 그러는 것 아니겠나.
설의원: 아이고! 박의원, 옛날엔 안 그랬는데 이제 보니 순 헛똑똑이야.
이거 보라고. 전도봉(全道奉)장군을 이야기하는데 전도봉이 누군지는 모르지만 YS를 도와준 사람이 그 사람 하나겠습니까? 수많은 사람이 YS를 도와주었다고.
그중에 전도봉이 됐든 김두봉이 됐든 누가 됐든 간에 YS를 도와준 것과 상관없이 비리가 있을 수 있다는 말이에요. 그 사람이 비리혐의가 있으니까 구속이 됐겠지, 그 사람이 YS를 도왔기 때문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오해예요. 우리 대통령이 YS와 무슨 억하심정이 있다고, 이제 물러나신 분인데, 그 YS를 도와주었다고 해서 뒷조사하라고 시키겠느냐 말이에요. 우리가 그렇게 할 이유가 없어. 그렇게 해서 득 될 일이 뭐가 있느냐 말이에요. YS를 자극해서 우리가 얻을 게 뭐가 있다고.
박의원: 김대중대통령이 취임하면서 YS대통령과 인수인계할 때 여러 번 만났잖아요. 앞으로 자주 연락도 하고 조언도 받겠다고 말했지. 그런데 실제론 연락도 안 하고 있다가 기껏 한다는 것이 전두환(全斗煥) 노태우(盧泰愚)하고 같이 만찬하자는 거야. 사실 YS는 전두환 노태우 구속시킨 사람입니다. 그런 자리를 같이한다는 것도 그렇고, 불가피하게 전직 대통령들을 모셨다면 따로 조용히 이야기할 기회도 있고 해야 하는데 그런 시간은 한 번도 안 만듭디다. 그러면서 일방적으로 우리 쪽에 대해서 조사나 하고 흠집내기를 하잖아요. 또 DJ대통령이 정치를 잘한다든지 하면 YS가 비난할 여지가 없는 거지.
어떤 면에서는 YS가 독재자라든지 지역감정이라든지 남북문제에 대해서 지적을 했기 때문에 DJ에게 도움이 되는 측면도 있지. 왜냐고? 주변에서 그렇게 강력하게 얘기를 못하는 부분도 YS가 해주니까 김대중대통령한테 보약이 됐다는 거죠.
설의원: 보약도 좋고 뭐도 좋은데 그것을 어떤 방법으로 얘기하느냐에 따라서 그것이 약이 되기도 하고 독이 되기도 한다고. 지금 김영삼대통령이 우리한테 하는 이런 얘기들은 약이 아니고, 이것은 우리가 아무리 봐도 독으로밖에 안 보인단 말이야.
박의원: 아니, 약 중에서도 이것은 보약이야. 지금 어설프게 DJ대통령한테 뭘 하는 것은 면역성만 높여 주고 오히려 병을 악화시키는 것이라고. YS처럼 정곡을 한마디로 찔러주는 것이 진짜 보약이에요. (손을 벌리며) 그러니 설의원, 약값 내야 한다고. 약값 내라, 빨리(웃음).
설의원: 이제는 YS가 할 만큼 다 했잖아. 솔직히 말해서 온갖 것 다해봤으니까 이제는 정리를 하고 과거의 정신으로 다시 돌아가셔야 한다고. 우리가 민추협을 같이할 때 얼마나 좋았냐 말이야. 지금은 독재도 없고 그리고 두 분이 연세도 연세고, 우리 대통령도 은퇴를 하시면 이제 정치에서 떠나실 것이니까 두 분이 같은 조건이다 말이야. 그러니 두 분이 다툴 이유가 아무리 생각해도 없어요. 손잡고 같이 가셔야지 뭣땜에 다투느냐 말이야. 다투는 것은 여기에서 끝내고 과거에 동지였듯이 그 관계로 돌아가는 것이 두 분을 위해서도 좋고 민족을 위해서도 좋고 모든 사람을 위해서 좋은 거예요. 모든 국민이 그것을 바라고 있고.
험악한 소리만 해대는데 어떻게 만나
박의원: 이번에 6월15일 남북정상회담을 하고 난 뒤에 두 분이 한 번 만났잖아. 그때 여러 가지 얘기를 많이 했지만 YS대통령이 볼 때는 (DJ가) 너무 급하게 한다는 거야. (YS도) 대통령 5년 하면서 남북문제 많이 해봤거든. 쌀도 줘봤고 많이 해보았어요. 그래서 YS는 저쪽 김정일의 전략이나 정치에 대해서 아는 게 있다고. “이런 식으로 가다가는 큰 낭패가 날 수도 있다. 그러니까 속도조절을 해라” 하는 이야기를 하니까 김대중 대통령이 “앞으로 자주 연락하겠다. 전화로 하든지 만나든지 하겠다”고 해놓고 지금 넉 달이 지나 다섯 달이 돼 가는데도 아직까지 연락 한번 안 한기라.
설의원: 연락을 할 수 있겠느냐고. (YS가) 그 온갖 소리를 다하고 있는데. 남녀간에 연애를 하더라도 사인이 있어야 얘기가 되는 것인데 계속 공격해대니 만나서 어떻게 해. 그러니까 상도동 쪽에서 뭔가 넌지시라도 “우리 만나서 얘기를 하자”라든가 이런 신호를 주고받고, “DJ 잘한다” 소리를 왜 못 하는 거냐고.
설사 DJ가 못 하는 게 있더라도 “이런 것은 잘못하지만 이런 것은 잘한다” 하고 던져 놓으면 우리가 ‘아, YS가 생각을 달리하고 있구나. 우리 김대중 대통령과 무엇을 해보자는 신호구나’ 이러면 우리 대통령도 YS대통령에게 “오소, 얘기 한번 합시다” 이렇게 될 것 아닌가. 지금까지 YS가 언제 우리한테 “잘했다”고 한 적이 있느냐 말이야. 계속 험악한 소리만 했지.
박의원: 만나 가지고 단도직입적으로 “이런 것은 잘못했다”고 지적도 했지. 그런데 (DJ가) 그런 것을 고칠 생각은 안 하고 계속 본인 생각대로 나가면서 YS쪽 얘기는 아예 들으려고 하지도 않는다 말이야. YS가 볼 때는 정말 이러다가는 나라가 걱정이다 싶으니까, 그리고 직접 만나 이야기할 기회도 없으니까, 국민에게 대고 얘기해야지.
YS가 한번씩 나와서 그렇게 해야 김대중대통령 잘못하는 데 대해 강력하게 견제가 된다,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도 많거든. 그리고 DJ 대통령 주변에는 직언할 사람이 별로 없잖아. 설훈 의원만 빼고 말야. 만약 야당이 야당 노릇을 잘하고 정부 여당 안에서도 그런 잘못된 점을 지적해서 빨리 개선될 것 같으면 YS대통령이 나설 일도 없고 나설 여지도 없을 거라고.
그럼 클린턴도 독재자냐?
설의원: ‘지적’ 얘기를 하니까 말인데 박의원이 지금 상도동의 대변인 노릇을 하고 있지만 안타깝고 답답한 것은, 솔직히 말해서 김영삼 대통령이 하고 있는 지금까지의 행보에 대해서 잘했다는 사람보다 못했다는 사람이 훨씬 많단 말이야.
박의원: 설의원이 지금 YS의 언행에 대해 “지지하는 사람보다 비판하는 사람이 훨씬 많다”고 얘기했는데, 그것은 관점에 따라서 다를 수 있어. 지금 이 시점과 1년 2년 뒤는 또 다를 수 있는 거라고. 예를 들어 ‘(DJ는) 독재자’(라고) 발언 한 것이 1년 반이 지나고 있는데 YS가 처음 그 발언했을 때는 정말 많은 사람들이 비판을 했지. 언론도 비판하고 사람들이 전부 다 “치매다. 완전히 정신 나갔다”고 했거든. 그런데 지금 와 가지고는, 지내놓고 보니까 “YS말이 맞네” 하는 사람도 많다고. 이번 총선에서 드러났잖아요. 여당이 소수당이 되어버렸잖아요. 만약에 이회창 총재가 공천만 잘했으면 내가 볼 때 야당이 과반수도 쉽게 먹었을 거야.
설의원: 어째서 우리 대통령이 독재자란 말이냐고. 독재자란 개념이 헷갈리네.
일반적으로 독재자는 히틀러나 스탈린이나 전두환 노태우나 이승만독재 이런 경우를 두고 하는 얘기인데, 우리 김대중대통령이 독재자라는 것은 어떤 분류로 해서, 어떤 식으로 일을 했기 때문에 독재자라고 하는 거지?
박의원: 처음에 YS가 독재자라고 하니까 한나라당 사람들도 전부 다 설훈 의원 이야기처럼 “대통령이 독재자란 이야기는 심하지 않으냐” 이런 이야기를 했어요. 그러다가 이번 총선 때 되니까 전부 유세장 올라가서 독재자 이야기도 하고 또 ‘독재냐 민주냐’는 플래카드를 벽에 붙이는 기라. 자기들이 판단할 때 이것이 먹혀 들어간다 생각하니까 그렇게 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설의원: 올해 총선을 치렀는데 이 총선결과를 가지고 독재자다 아니다 이런 얘기를 한다면 이 세상에 독재자 아닌 사람이 없어요. 클린턴도 독재자가 되는 거지. 그렇게 따지면 독재자 아닌 지도자가 어디 있어?
YS대통령이 우리 김대중대통령을 독재자라고 했지만 국민은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이 없어요. 우리 대통령을 두고 ‘김대중 독재자’라고 하면 그것은 결국 YS 이미지만 계속 깎이게 되고, 막말로 YS만 나쁜 사람이 된다는 말야. 그러니 박의원 같은 사람이 모시고 있으면서 “각하 이런 말씀을 하시면 우리 손해봅니다. 안 됩니다. 그런 말씀을 하지 마십시오. 오히려 치켜주십시오.” 이렇게 왜 말 못하느냐 말이야. 아이구 답답해.
박의원: 김대중 대통령이 집권한 지 2년 반 밖에 안 되는데 지금 언론에서 총체적 위기라고 하거든. 우리 사회가 총체적인 위기라고 해요. 정치도 꼬이고 경제는 말할 것도 없고 남북문제에 대해서도 처음에 기대했던 것과 달리 우려하고 있고.
설의원: 총체적인 위기라는 표현은 안 하는 때가 없어. 해마다 총체적 위기라고 하고 있어.
박의원: 그것이 뭐냐 하면 김대중대통령이 정치를 잘못하고 있기 때문에 그렇다고 본다 말이야. 그러니까 YS대통령이 그런 잘못에 대해서 그때그때 적절하게 지적을 하는 것은 필요한 일이야. 그리고 YS대통령이 기자들 앞에서 그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작년에 독재자란 이야기를 하면서 무슨 이야기를 했느냐 하면 “나도 이런 이야기를 하기 싫다” 이거야. 이런 이야기를 하면 사람들이 그 자리에서는 박수 치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YS도) 잘알고 있어요. 그러면서 “내가 왜 이런 이야기를 하느냐. 내가 가만히 있으면 편한데, 지금 야당도 제대로 말 못하고 언론도 말 제대로 못하니까 나마저 침묵한다면 역사와 국민 앞에 죄악이다. 이렇게 생각하기 때문에 피곤하고 하기 싫지만 내가 한다” 이런 이야기를 하셨어요.
설의원: 야당과 언론이 할 말을 못 한다고 했는데 지금 대한민국 언론이, 동아 조선 중앙 등등, 이런 언론들이 정부여당과 대통령을 마음놓고 욕하고 비판하고 있어요. 이건 비판 정도가 아니라 비난이지. 지금이야말로 언론의 자유를 최대한 구가하고 있는 시점인데 왜 언론이 얘기를 못한다고 하냐고. 하물며 야당은 우리 대통령 알기를 우습게 아는 정도까지 얘기하고 있는데.
박의원: 우리 국민을 무시하지 말라고. YS대통령이 사실도 아닌 일로 김대중대통령을 비난했을 경우에 사람들이 그 말을 믿겠나? 사람들이 가만히 생각해 보니 YS대통령 말이 맞으니까 거기에 동조하는 것이지. 그것이 틀렸다면 동조하겠나.
설의원: 좌우지간 우리는 아까 처음에 얘기했듯이 화해하고 서로 손을 맞잡고 가자는 취지에서 앞으로도 YS가 욕을 하든 무엇을 하든 그냥 넘어간다고. 아까도 얘기했듯 북한과 손을 잡고 얘기하는 판인데 왜 YS대통령과 얘기 못할 게 있느냐 이거야.
박의원: 그런데 지금 (얘기를) 안 하잖아.
설의원: 지금은 못 하지. (우릴 보고) 독재자라고 하는 판인데 무슨 대화를 해.
박의원: 김대중대통령이 지금이라도 YS에게 ‘야, 만나서 이야기 좀 하자’ 이럴 것 같으면 우리가 하지, 안 만나나? 김대중대통령은 “만나자”고 해놓고, “연락하겠습니다” 해놓고 연락을 안 해버리는 기라.
기자: 세간에는 YS가 정치적으로 영향력을 확대하려는 계산 아래 ‘영남정서’를 자극하는 ‘DJ 때리기’를 하고 있다는 분석도 있는데 어떻게들 생각하세요?
박의원이 “아니되옵니다” 했어야해
박의원: 지금 YS는 DJ만 욕하는 게 아니라 이회창도 욕하거든. 이회창 총재에 대해서도 “저거는 대통령감이 아니다” 이렇게 이야기하잖아요. 만약 DJ를 욕하면서 이회창을 가만히 놔둔다면, 그래서 이회창이 반사적으로 이익을 얻는다면 YS한테 무슨 정치적인 목적이 있다고 하겠지만 “DJ도 잘못하고 이회창도 저러다가는 대통령 못 된다”고 분명히 이야기하지 않습니까?
또 YS더러 지역감정을 조장한다고들 하는데, 아무리 YS가 이야기해도 말이 틀렸다면 “웃기지 마라. 우리 영남사람들을 갖다가 완전히 병신 만들지 마라. 괜히 쓸데없이 당신이 나서서 그러지 마라” 이런 이야기를 할 것 아닙니까? YS가 지적하는 것이 나름대로 논리가 있고 또 사람들이 생각할 때 편중인사 편중예산 편중투자 편중개발 이런 것이 다 맞다고 느끼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영남권 사람들이 더 적극적으로 호응하는 것이지, YS대통령이 영남권 사람들을 선동해서 그러는 것은 아니잖아요.
기자: 김대통령의 노벨상 수상소식이 전해지던 10월13일 고려대 교문 앞에서 학생들에게 가로막혀 있던 김영삼 전대통령의 모습이 대비되면서 두 분 생각이 퍽 복잡하셨을 것 같은데요.
박의원: 그때 (김영삼) 대통령께서는 식사도 못 하시고 학생들에게 에워싸여 밖에도 못 나가고, 추운 날이니까 히터를 틀어놔서 차 안이 건조해서 영 컨디션이 안 좋았어요. 그때 6시 정각이 되니까 우리 비서한테 DJ의 노벨상 수상이 결정됐다는 휴대폰 연락이 왔어요. 그걸 (YS에게) 보고하고 나니 기자들이 ‘어떻습니까?’ 하고 물어요. 그래서 “노벨평화상은 세계평화에 기여하고 인권에 기여한 사람이 받는 것인데, 여러 가지 잘못하고 있는 부분이 많은 사람한테 준다는 것은 안 맞다고 생각한다. 노벨상 가치가 땅에 떨어지는 것 아니냐” 그렇게 말씀하신 거예요.
북한에는 주민들의 인권보장이 안 되고 있는데 거기에 대해서 전혀 말도 안 하고 오히려 김정일 위상을 세워주면 기세등등해 가지고 (북한의) 국내정치는 탄압 일변도로 가는 것이 뻔하다는 게 이 양반 생각이라.
기자: 그렇다 하더라도 일단 ‘축하할 일이다’는 빈말 한마디조차 없다는 데 대해 김대중대통령 쪽에서는 인간적으로 섭섭하지 않았겠어요?
설의원: 섭섭한 것을 떠나 도대체 이해가 안 되는 것이, 전세계 시민이 축하하고 “당연한 일이다” 이렇게 얘기하는데 가장 잘 알고 가장 가까이서 누구보다 진심으로 축하를 해줘야 할 분이 한다는 말씀이 “노벨상이 땅에 떨어졌다”고 공격을 하고 나서니, 이것을 우리가 어떻게 해석해야 하느냐고.
그때 박의원이 정말 “이것은 아니오” “아니되옵니다”라고 얘기했어야 하는데 박의원마저 뭘 했느냐는 거지. 적어도 그 부분만큼은 “각하, 이것은 말씀을 그렇게 하시는 것이 아니고 축하해주십시다. 그리고 다음에 공격할 것은 공격합시다” 이렇게 얘기했어야 맞는 것인데 그것은 박의원이 잘못한 거야.
박의원: (웃으며) 그것은 내가 고쳐야 되겠네.
설의원: 그래, 당신이 잘못한 거야.
노벨상은 마더 테레사나 받는 거지
박의원: 하지만 보라고. 정부가 6·15 남북정상회담을 한다고 총선 3일 전에 발표했지. 그때 “이것은 상당히 정략적이다”는 비판이 많았어요. 그런데 그 결정적인 시기에 YS가 “정상회담하는 것을 축하한다”고 했거든. 사람들이 의아해했어요. 총선을 앞두고 정략적으로 이용해먹는 것이라고, 그렇게 얘기가 나올 것으로 생각했는데 축하한다고 했단 말이야. 그렇게 민감하고 총선을 3일 앞둔 시점에도 YS는 “어쨌든 남북정상회담을 해서 남북문제에 물꼬를 튼다면 그것은 좋은 일 아니냐” 해서 축하한다고 했어요. 축하해야 할 때는 했다고. 정말 잘해보라고 했잖아. 뒷바라지 많이 해 준거지.
설의원: 축하한다고 해서 (정상회담을) 했는데 왜 시비야?
박의원: 그런데 그 뒤에 일련의 과정을 보니까 영 딴판이라는 거지.
일방적으로 끌려갈 뿐만 아니라 뭔가 사심이 있는 것 같더란 말이야. 사심이 뭐냐하면, 노벨평화상 때문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았잖아요. 솔직히 말해서 노벨평화상 받기 위해서 로비한다는 말이 얼마나 퍼졌습니까? 노벨평화상이라는 건 자기가 상 받으려고 해서 상 받는 게 아니고 마더 테레사처럼 일생을 고생한 결과로 받는 것이어야 돼. 그런데 이건 정상회담을 해서 북한의 열악한 인권문제라든가 그런 것은 다 덮어두고 일방적으로 퍼주기만 하고, 일방적으로 끌려만 간다고. 그러니까 정상회담이 노벨평화상을 의식한 것이고 노벨평화상 받기 위해서 엄청난 로비를 했고 그 결과 상을 받았으니까 노벨평화상의 가치가 떨어졌다는 거지.
설의원: 이것 봐, 박의원. (노벨위원회가) 로비를 받아 가지고 노벨평화상을 주었다면 심각한 문제가 생겨. 노벨위원회에 얼마나 모독적인 이야기야. 그런 근거도 없는 이야기를 어떻게 막 하냐. 정말 간도 크네.
박의원: 노르웨이 전 총리가 한국 와서 신라호텔에서 난리치고.
설의원: 전 총리가 왔든 전 총리가 갔든 그것과 노벨위원회와 무슨 상관이야.
박의원: 전 총리가 오니까 대통령이 만나고.
설의원: 만났다고 해서, 그것이 로비의 증거라고 얘기하면 세상사람이 웃을 걸.
박의원: 노벨평화상이 설의원 얘기처럼 지고지선하다고 하자. 그것은 아무도 시비 못 걸 정도로 존엄하고 가치가 있다면 왜 노벨평화상 수상자는 한국에 못 들어오게 하나. 달라이라마 같은 사람도 노벨평화상 수상자인데 (한국에) 들어오게는 해야지.
설의원: 그것은 다른 문제지. 노벨평화상 받은 것과 달라이라마와 무슨 ……, 달라이라마는 중국과의 외교관계 때문에 당장 방한을 허가할 수 없는 거잖아. (방한을 허가하면) 중국의 우다웨이(武大偉) 대사가 단교한다고까지 말할 정도로 신경을 쓰고 있다고. 그것을 가지고 우리가 정면도전하는 식으로, 중국과 한판 붙어보자는 식으로 해야 옳으냐 이거야. 인권 얘기도 좋지만 국익과 첨예하게 대립하는 상황이 생기면 인권은 잠깐 접어둘 수 있는 것이지. 그러니까 올해 허가하지 말고 내년에 하자는 것인데 왜 그것을 노벨평화상과….
기자: 박의원은 YS와 생각이 다를 때가 없나요?
박의원: 있죠. (김영삼) 대통령께서 고대 앞 사건 이후 기자들과 식사를 함께 하며 간담회를 하는데 한 기자가 농담삼아 “용변은 어떻게 해결했습니까” 하니까 대통령이 “해결하는 방법이 있다” 이렇게 말씀하시더라고. 그리고 한 말씀 더하시려고 해서 내가 그 자리에서 “각하, 그만 하십시다” 했다고. 보통 때는 예의상 내가 브레이크를 걸면 안 되지만 이건 아무리 (김영삼)대통령이 선의로 얘기해도 악의적으로 왜곡될 수 있겠더라고.
그러나 그분은 잠시 주춤하시더니 “내가 우유통에” 하면서 우스개로 이야기하시는 기라. 대통령은 그 얘기를 했을 때 보도가 안 될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나는 보도될 것이라고 생각했어요.
설의원은 내가 대통령한테 이야기를 안 한다고 하는데 내가 대통령한테 할 이야기는 합니다. ‘(DJ는) 독재자’ 이야기가 나왔을 때도 대통령한테 이랬습니다. 저녁식사하면서 이야기를 했는데 ‘독재자’ 이야기는 이번에 하지 말고 조금 뜸을 들여서 했으면 좋겠습니다, 라고 했더니 “알았다” 하더니만 그냥 해버리시더라고. “김정일이 회장이고 김대중은 전무다”는 말씀도 내가 “공개석상에서 이야기하기는 조금 그렇지 않습니까” 했는데 공개석상에서 이야기하더라고.
기자: 역시 YS는 아무도 못 말린다는 말이 맞네요.
박의원: 그런데 (김영삼) 대통령은 그냥 막 나오는 게 아니라 여러 가지 생각을 하시고 하는 이야기예요. 내가 이분을 야당총재 시절이나 대통령 시절이나 대통령을 그만두고도 쭉 모시면서 뵙기로는 지금 그 어느 때보다 건강도 좋으시고 또 돌아가는 상황을 많이 아시는 거예요. 기억력도 좋으시고 판단력도 내가 볼 때는 과거와 다르지 않다고. 대통령이 그렇게 말씀하실 때는 그냥 질러버리는 말씀이 아니라니까.
나름대로 다 계산이 있어서 하시는 기라. (김정일)회장 (김대중)전무 얘기도, 약간 표현이 거칠었다는 지적은 있겠지만 본질을 이야기한 거잖아요. 지금 남북문제에 대해서 비판하는 사람들에게 그것이 화두가 되었다고. 다른 이야기할 필요도 없이 ‘회장, 전무’ 하면 무슨 말인지 다 알아듣거든.
설의원: 사람의 의식이 행동을 규정하는 것인데, YS가 계속 말도 안 되는 소리를 막 하다 보니까 행동이 어디까지 나가느냐? 고대앞 사태 같은 일 나온단 말이야. 일국의 대통령까지 지낸 분이 어떻게…. 그런 상황까지 안 가도록 해야지. 결국 본인에게 모든 것이 마이너스로 간다고. 그렇게 안 되도록 주위 사람들이 잘 모셔야 되는 것 아닌가. YS는 참 귀한 분이야. 대통령까지 하셨던 분이고, 왜 그분이 망가지도록 계속 저렇게 놔두느냐 이거야. 나는 그것이 안타까워. 판단을 저렇게 할 때는 도와주는 사람이 아무도 없어요. 유일하게 박종웅이 모시고 있는 거야.
그 많던 가신들, 비서들, 전부 나쁜 사람들이라고 생각해. 사람이 잘못할 수도 있다고. 감정에 의해서 판단을 잘못할 수 있는데 적어도 자기가 모셨고 대통령으로 모시던 분이라면 달려가서 “이러면 안 됩니다” 하고 “내 목을 치시오” 왜 이렇게 못 하느냐고.
나 같으면 우유통에 오줌은 안 눈다
박의원: 고대사건을 얘기하는데, 이건 분명히 초청을 받아서 갔던 거야. 그쪽에서 일부 100여 명의 학생들이 거부한다고 해서 돌아오면 우리는 편하지. 왜 우리가 그때 고심을 안 했겠습니까? 돌아가는 것이 맞는지 고심했지.
“지금 오래 있다가는 스타일 구긴다”면서 돌아가야 한다는 사람이 거의 대부분이었지. 일반적으로 그렇게 어드바이스 안 하겠습니까? 근데 대통령 생각은 그것이 아니었어요. 막으려는 학생들이라고 해야 극소수인데, 또 그들 성향이 뻔한 것인데, 대통령까지 했던 사람이 이런 식으로 애들 몇 명이 반대한다고 돌아가는 일은 있을 수 없다는 거야. 그래서 그 추운 날 식사도 못하고 용변도 못 보면서 차 안에서 13시간을 버텼다고.
설의원: 나 같으면 그렇게 안 하고 일단 돌아가고 그 다음에 (담당) 교수를 불러서 다시 하겠다고 그러겠다.
박의원: 그러면 또 막는데?
설의원: 그러면 또 가지, 최소한 그렇게 하면서 우유통에 오줌은 안 누겠어.
기자: 전직 대통령으로서 품위를 지킨다?
설의원: (YS는) 뭐가 딱 막혀 가지고 품위를 지켜야 한다는 그 판단을 못 해.
기자: (박의원에게) 김영삼대통령이 추진하는 ‘김정일 방한 저지’ 이천만 서명운동은 어떻게 돼가고 있어요? 몇 명이나 서명을 받았어요?
박의원: (웃으며) 1900만 넘게 받았어요. 사람들이 직접 서명도 해주지만 마음속의 서명도 있잖아요(일동 웃음).
기자: 일종의 복심술이네. 마음속의 서명을 받는다…. YS는 개혁작업 추진할 때도 ‘국민과의 대화’보다는 ‘역사와의 대화’를 중시했는데 이번에도 그런 건가요? YS의 개혁 중에는 사실 역사적으로 평가받을 만한 것도 있죠?설의원: 나는 두 가지 점을 아주 높이 쳐요. 첫째는 금융실명제를 채택한 거예요. 물론 디테일하게 보면 수술을 더 정교하게 했으면 좋았을 거라는 생각도 들지만 어쨌거나 금융실명제는 참 잘한 거예요. 한국의 부패구조를 근본부터 수술하겠다고 나선 것은 역시 YS다운 데가 있다, 그 점은 평가받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다음으로 5·16 이후 한국 정치·경제·사회 모든 분야에 군사독재 군부세력에 찌들어 있던 구조를 한번에 정리해준 것이에요. 그것은 YS가 아니면 할 수 없는 거죠. 군인세력이 사회에 뿌리를 내리고 있었는데 명맥을 잘라준 것, 앞으로 군이 절대 정치에 관여하지 못하게끔, 군이 본연의 임무에 충실하게끔 한 조치는 잘했다고 생각합니다.
박의원: 평가해줘서 고맙구먼. 그런데 현재의 개혁은 뭐냐, 김대중대통령이 취임하고 난 뒤에 개혁조치를 한 것이 뭐가 있느냐는 생각이 들어요. 솔직한 이야기로 “이런 개혁조치를 했다”고 내놓을 만한 것이 없다 말이야. 물론 “YS가 다 해버려가지고 할 것이 없다”고 말할 수 있겠지만.
역사바로세우기 해놨는데 왜 뒤집나
설의원: 우리가 한 것은 인권조치라고. 구정권은 전교조니 민주노총이니 이런 부분들은 인정을 안 했어요. 그래서 계속해서 싸움을 벌였잖아요. 우리는 그 조치를 했어요. 말하자면 민주장치를 우리 사회 전체에 완벽하게 박아놓은 거지. 그 다음에 누가 뭐라고 하더라도 우리는 IMF를 극복해냈잖아. 그것은 작은 부분이 아니라고 생각해. 그런데 “한 것이 없다”고 한다면 말이 안 되는 거지.
박의원: 개혁이라는 차원에서, 과거의 어떤 잘못된 부분을 개혁했는데?
설의원: 총체적으로, 경제 문제에서 공공부문 개혁과 기업부문 개혁과 노동부문 개혁과 금융부문 개혁, 이 4대 부문을 개혁하고 있잖아. 이 부분이 정리되면 IMF를 완전히 극복하고 한국경제가 세계경쟁력을 갖추면서 갈 수 있는 길이 마련된다고.
박의원: DJ 대통령이 정말 개혁조치를 잘 취해주기를 바랐는데 타이밍을 놓친 것 같아. 재벌개혁도 타이밍을 놓쳐버린 것이라고. 그리고 중요한 것은 YS가 역사바로세우기 해놓은 것을 왜 뒤집어엎느냐 말이야. 예를 들어서 전두환 노태우와 손잡고 같이 한다, 박정희기념관 짓는다, 그게 할 일이냐고. YS가 5·16, 5·17쿠데타에 대해서 역사적으로 정리하고 거기에 따른 조치까지 다 해놨는데 지금 와서 다 뒤집어 엎어가지고 박정희기념관 만든다, 전·노와 손잡는다, 그런 식으로 해놓으니까 이것은 반개혁이라고.
설의원: 우리(김대중정부)는 민주와 인권과 화해, 특히 화해작업을 하고 있는 거라고. 화해는 민족의 화해이기도 하고 우리 나라 내에서의 화해이기도 하고. 우리는 YS와도 화해하겠다는 거예요. 그러니까 우리 대통령은 과거에 당신을 죽이려고 했던 사람들, 사형선고를 내리게 했던 사람들을 다 포용하겠다 이거야. 그렇다면 박정희도 받아들이고 전두환도 받아들이고 노태우도 받아들이고 김일성 김정일까지 받아들인다 말이야. 우리의 일관된 주제는 화해야. 모든 사람에 대한 화해.
박의원: 그런 식으로 하니까 YS와 DJ대통령은 철학이 틀린 거라. YS대통령은 “역사적으로 분명히 단죄할 것은 단죄해야 한다”, 그래서 전직대통령들을 구속까지 안 시켰습니까? 구속시키는 게 어디 쉬운 일입니까? 안 하면 편한데 그래도 역시 우리나라 정체성을 바로잡고 민족정기를 바로잡기 위해서 역사바로세우기를 한 거 아니오? 화해하는 것과 기념관을 세우는 게 무슨 상관이 있냐고. 박정희기념관을 서울시내 복판에다가 세울 이유가 뭐가 있느냐 이 말이야.
설의원: 박대통령에 대한 평가는 다 달라요. 나도 그분에 대해서는 견해를 달리하고 여러 가지 설명을 할 수 있지만 박대통령 기념관을 만들고 안 만들고 하는 것은 그들대로 할 일이야. 가족들이 할 수 있고 박정희 친척들이 할 수 있는 일이고 상당한 숫자가 있다고. 그러면 정부 입장에서 그것을 안 도와줄 이유가 뭐가 있어.
박의원: 거기에 왜 대통령이 명예회장을 맡고 국고를 지원하노?
설의원: 상당수 국민이 원한다면 지원할 수 있는 것이지. 그 국민이 정상적이고 바르게 살아가는 국민이라면, 그분들이 하겠다고 하는데 굳이 우리가 안 할 이유가 뭐가 있느냐 말이야. 우리 대통령이 갖고 있는 생각은 과거에 원수라도 용서할….
박의원: 박정희대통령기념관에 대해서 죽자 사자 반대하는 사람이 더 많은데 그 사람들은 그럼 비정상적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인가? 반대하는 사람이 더 많으면 안 해야지. 설훈 의원은 나더러 YS대통령한테 바른말 하라고 했는데 설의원도 김대중대통령한테 바른말 하라고. “그렇게 하면 안 됩니다” 이렇게 얘기하라고.
설의원: 그것은 내 개인의견이야. 이 부분에 대해서는 대통령도 의견을 달리할 수 있고 박의원도 의견을 달리할 수 있어. 박정희는 역사적 사람이야, 역사적 인물에 대한 역사적 평가란 말이야. 그 역사적 평가는 보는 시각에 따라서, 가치관에 따라서, 역사관에 따라서 다를 수 있는 거잖아.
박의원: 그러면 전두환기념관도 만들어져야겠네?
설의원: NO! 절대 많은 사람, 훨씬 더 많은 사람들이 전두환기념관 만드는 데 반대할 거니까.
기자: 김영삼 대통령은 지금 거제에 기념관 건립을 추진 중이죠? 잘 되어가고 있나요?
박의원: 지금 저기(박정희기념관)는 700억 들여서 짓는다는 것이고, 우리는 지금 서예전을 12월에 부산에서 해서 그 수익금으로, 기념관이 아니라 기록관을 지을 거예요. 상도동 자택에는 자료 같은 것을 모아놓을 수 없거든. 그래서 거제에 조그마한 건물 하나 지어가지고….
설의원: 자세가 됐네.
박의원: 그런 식으로 해야지. 예를 들어서 원하는 사람들이 박정희 기록을 보존키 위한 건물을 고향에다가 짓는 것은 관계없어요. 하지만 서울시내 한복판에, 그것도 정부가 지원하고 대통령이 명예회장직까지 맡는다는 것은 잘못됐다는 것입니다.
설의원: 김영삼 전 대통령도 서울시내 한 복판에 짓겠다고 하면 정부가 안 도와줄 이유가 어디 있어? 내가 앞장서서 도와주라고 할게. 그러나 돌아가신 후에 하는 것이 좋지. 살아 계실 때 하는 것은 별로 모양새가 안 좋아.
기자: YS 기록관 준공 때 김대중대통령이 축하해주러 참석하거나 기록관 건립을 직접 나서서 도와줄 생각은 없을까요?
설의원: 백번 도와드리고 싶죠. 그런데 독재자라고 저러고 있으니 우리가 어떻게 도와주느냐 말이야.
박의원: 독재 안 하면 되지. 독재를 안 하면 독재자라고 안 하지.
설의원: 설혹 독재를 한다고 해도 독재자에게 독재자라고 하면 좋아하겠어?
기자: 김대중대통령이 동교동 사저를 허물고 아태재단 건물을 짓는데 이것은 왜 그러는 겁니까? 이것도 기념관이나 기록관이 될 건가요?
설의원: 카터 전 대통령이 지금 카터센터를 운영하고 있는데, 가보지는 않았지만 얘기를 들어보니까 굉장한 규모로 되어 있고 세계평화에 기여하는 바가 많다고 그래요. 전직 대통령이 하실 일이 많이 있을 거라고. 잘하면 참 좋잖아요. 그런데 우리 전직 대통령들은 잘했다는 소리 못 들으니까 안타깝고. 우리 김대중대통령은 아마 그런 것을 거울 삼아 외국의 예도 보시고 퇴임 후를 준비하시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요.
박의원: 그 부분이 상당히 잘못된 거라고. 전두환대통령이 퇴임 전에 일해재단을 만들겠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그것처럼 재임중에 아태재단을 하면, 현직 대통령의 재단이라고 해서 뭔가 계산을 하고 다 돈을 갖다 바치는 것이고. 대통령이 그것을 제지하고 아태재단을 해체하든지 아니면 “내 재임중에는 아태재단 자본금이든 기부금이든 더 늘리지 않겠다”고 엄격히 해야 하는 거라고. 그런데 동교동 사저에다가 아태재단 건물을 짓는다니까 사람들이 생각할 때는 일해재단 비슷하게 되어서 원하든 원치 않든 기부금도 내고 하지 않겠습니까? 그것이 전체적으로 분위기를 흐린단 말이야. 대통령재단에다 돈 갖다 바치고, 주변에서 ‘그렇게 해도 되는가 보다’라고 생각하게 되면 ‘그러면 나도 챙겨도 되는가 보다’ 이런 식으로 되거든.
카터, 라모스, 대처도 정치를 하데
설의원: 자라 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 놀란다는 말이 있듯이 일해재단 보고 아태재단도 그럴 것이라고 하는데 이건 전혀 다른 문제야. 아태재단은 대통령 되기 이전부터 존재하던 재단이라고. 존재하던 재단을 대통령이 됐다고 없애버려? 아태재단은 원래 대통령이 당신의 돈을 내서 만든 재단입니다. 그 재단은 어느 개인이 가져갈 수가 없어요. 이미 대통령도 못 가지고 가. 사모님도 못 가지고 가. 오히려 자기 전재산을 사회에 환원한 형태가 되었다고. 재단을 지금 해산하면 전부 국고로 들어간다고.
박의원: 퇴임 후에 정치적 영향력을 계속 유지해 나가기 위해서 짓는 거잖아.
설의원: 대통령이 임기 끝내면 연세가 몇인데, 80이 넘는데 무엇을 또 한다는 거야?
박의원: 하더라도 끝나고 하시면 되지, 재임중에 그런 식으로 하면 오해의 소지가 있어요.
기자: YS처럼 정치를 하려면 퇴임 후에 하시라?
박의원: 자꾸들 YS에게 ‘전직대통령이 왜 정치적 행보를 하느냐’ 그러는데, 카터도 현직 대통령이 잘못하면 지적합니다. 코소보사태 때 “왜 공습했느냐” 하고 지적하데. 내가 두 달 전에 마닐라에 갔다 왔는데 지금 라모스 전대통령도 적극적으로 하더라고. 에스트라대통령이 저래선 안 된다고 말이지.
영국의 대처 전총리도 자기가 메이저를 총리 시켜놓고 메이저가 잘못하니까 얼마나 욕했습니까? 다 그렇게 할 수 있는 거잖아요. 게다가 YS는 지금 정치할 돈도 없고 조직도 없어요. 그래서 정당을 하겠다는 것도 아니고 나라가 잘못되는 것을 비판만 하는 수준에 머물고 있다는 말이야. 그런데 김대중대통령이 아태재단 만드는 것을 보면 일해재단 비슷한 구상을 하고 있지 않으냐 하는 의구심이 든다고. 퇴임하면서 현실정치에 바로 직접적인 영향력을 행사하려고….
기자: 지금 YS의 행보는 순수하게 나라에 대한 고언 차원에서….
설의원: (웃으며) 순수한 고언이지, 아무런 정치적인 뜻이 없겠지.
기자: 차기대선에서 영향력을 행사하기 위한….
설의원: 영향력이라고요? 그러면 거꾸로 되지. YS가 누굴 지지한다고 하면 그 사람이 ‘아이구, 그 말 하지 말라고. 나는 상관없다고’ 그럴 걸?
기자: 전혀 영향력이 없다?
박의원: (웃으며) 이번에 모 월간지에 YS가 ‘현재 누가 가능성이 높고 누구는 절대 안 된다’고 하니까, 안 된다는 사람은 팔딱팔딱 뛰고 된다는 사람은 흐뭇해 하고 그러대.
기자: 이제 끝으로 두 의원께서 상대방이 모시는 대통령의 명예로운 앞날을 위해 충고 한마디씩 해주실 수 있겠어요?
박의원 : 저는 김대중대통령을 아주 젊을 때부터 가까이서 뵈었고 민추협 공동의장으로서 모셨어요. 그때 우리가 30대 초반쯤 됐을 거예요. 나도 물론 김대중대통령을 존경했고 두 어른은 상대방 비서진을 서로 아껴주고 했거든. 그리고 서로 협력하는 모습이 아주 좋지 않았습니까? 결국 시간이 지나 역사 속에서 볼 때 양김은, ‘한 김은 잘 했는데 한 김은 잘못했다’ 이런 평가가 나오기는 힘들다고 봐요. 잘하면 다 잘했다, 잘못하면 다 잘못했다, 일정시간이 지나면 같은 평가를 받을 것이라고. DJ대통령이 성공한 대통령이 되기 바라므로, 그런 관점에서 YS대통령의 고언을 경청해주기 바랍니다.
YS도 특정인이 미워서 그런다기보다는 역사와 국민을 생각하기에 하는 이야기라는 것을 명심해서, 그분이 지적하는 부분들은 겸허하게 받아들여서 ‘양김시대에 민주화와 개혁을 뿌리내렸다’는 평가를 받게 되길 바랍니다.
옛날의 YS가 그리워요
설의원 : 박 의원 얘기를 듣고 보니까 김영삼대통령께서 처음에 상당히 오해를 하셨던 것 같군요. 두 분 사이에 대화가 자주 있기를 기대했는데 대화가 없으니까 상당히 섭섭하셨던 것 같고, 그러다 보니까, 사람이라는 것이 바깥나들이도 잘 안 하고 외롭게 계시다 보니까 화도 나고 그런 것 같아요. 하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김영삼대통령께서는 앞으로는 말씀이라든지 이런 부분에서 포용력을 보였으면 좋겠어요.
그런 자세가 되면 여러 사람으로부터 존경받을 수 있지 않겠느냐, 인간적으로 그런 생각을 해봐요. 원래 김영삼대통령은 푸근한 분이고 모든 사람으로부터 ‘저 사람 참 좋다’ 이런 평을 받던 분이라고. 그런데 청와대 가신 뒤부터는 그런 면이 없어져 버렸다고요. 참 안타까워요. 과거의 YS가 그리워요. 과거 야당 시절 YS의 열린 자세, 자기얘기를 많이 안 하고 남의 얘기를 들어주고 누구에게나 따뜻한 마음을 가지고, 물론 독재자에게는 강한 저항을 했지만, 그 옛날모습이 그립다 이거야. 백년 천년 사는 것도 아니고 두 분 다 연세가 많으시고 그런 처지기 때문에 이제는 주변에 있는 우리들이 그러시도록 얘기를 해야 한다고. 특히 박의원이 하는 일이 중요해.
박의원 : YS는 과거에는 물론이고 지금 어떻게 보면 옛날보다 훨씬 더 여유있고 인간적이라고. 김대중대통령이야말로 과거에 민주화투쟁할 때는 민주적으로 사람들의 이야기도 잘 듣고 했는데, 대통령 되고 나서는 굉장히 독선적으로 되고 주위 이야기도 제대로 안 들으려고 하는 것 같아요. 결론적으로 설의원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우리 정치사에 민주화투쟁의 주역으로 우뚝 솟은 두 분이 민주와 개혁을 뿌리내리고 마무리지었다는 평가를 받으려면 설의원 같은 사람이 잘해야 돼. 전직보다도 현직이 더 중요하다고. 현직대통령을 제발 잘 좀 모셔달라, 이 말을 하고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