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 12월호

항공기 조종사의 生과 死

  • 이정훈hoon@donga.com

    입력2006-07-24 14:3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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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민항기 기장들이 파업을 벌였다. 하늘에서는 그 누구보다 막강한 ‘창공의 대통령’이 지상에 내려와 ‘노동자’임을 선언한 것이다. 이들은 왜 노조를 만들었는가. 밤 하늘을 가르는 민항기 조종실에는 어떠한 일이 벌어지고 있을까. 조종실의 분위기는 사고에 어떤 영향을 끼치는가. 조종사들의 세계를 벗겨본다.
    기자는 이런저런 출장으로 비행기를 자주 탄다. 민항기는 물론이고 헬기와 군 수송기를 타는 경우도 적지 않다. 그래서인지 항공기와 조종사에 대한 관심이 많다. 민항기 조종실에는 뒤에서 봤을 때 왼쪽에 기장석, 오른쪽에 부기장석이 있다. 그리고 그 뒤로 빈 의자가 하나 있는데, 과거 항법사가 앉던 자리다. 지금은 자동항법장치가 그 일을 대신해 빈 자리로 남아 있다. 몇 년 전 기자는 이 자리에 앉아 서울-제주를 왕복한 적이 있었다. 지난 9월에는 지중해 연안 이스트르에 있는 프랑스 공군 기지에서 파리 외곽의 오를리 공항으로 오는 다쏘항공의 팰컨항공기 조종실에도 탑승하였다.



    황홀한 스펙터클



    조종실에서는, 가끔 조그만 객실창으로는 도저히 볼 수 없는 시원한 스펙터클이 펼쳐진다. 조종실에서 바라본 풍광 중 기억나는 것은, 제주에서 서울로 올 때 본 것이다. 아직 달이 뜨지 않은 아주 맑은 밤이었다. 달빛이 없으니 하늘에서는 별들이 마음껏 빛을 뿜어대고 있었다. 산이나 논밭으로 추정되는 지상에서는 불빛이 올라오지 않았다. 반면 대도시 위를 지날 때는 별빛보다 더 크고 황홀한 빛이 올라왔다.



    그러다 한 도시 상공을 지날 때 레이저 쇼처럼 아주 크고 밝고 화려한 빛이 올라오는 것을 목격했다. 비행 시간으로 따져보니 대략 대전쯤인 것 같았다. 야구장이나 축구장에서 야간 경기가 열린 모양이었다. 야간 경기를 보러온 관중들은, ‘철석같이’ 라이트가 운동장을 비춘다고 믿겠지만, 조종실에서 본 경기장은 하늘로 빛을 내쏘는 거대한 화등잔이다. UFO를 타고 처음 지구로 접근하는 우주인이 있다면, 이것을 ‘아름다운 지구의 눈’ 혹은 지구인이 지구를 지키기 위해 우주로 내쏘는 ‘탐조등’으로 판단할지도 모른다. 때마침 여승무원이 커피를 갖고 조종실에 들어왔다. 그녀도 이 빛덩어리를 봤는지, “어머-. 정말 멋있다!”며 탄성을 질렀다. 그러나 기자는 황홀함에 도취돼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객실 승무원들은 여간해선 이러한 광경을 보지 못한다. 오직 조종실에 탑승하는 기장과 부기장만이 이 장관을 즐길 수 있다. 이들은 10㎞ 상공에서 일출을 바라보고, 지는 해를 따라 서녘 하늘로 ‘선 셋 크루즈(sun set cruise·일몰 비행)’를 한다. 구름 위에서 바라보는 태양 빛이 얼마나 찬란할 것인가. 그래서 조종사들은 시력을 보호하기 위해 태양 빛(Ray)을 차단(Ban)하는 ‘레이밴(Ray Ban)’을 쓴다. 이 레이밴을 일본인들이 ‘라이방’으로 읽었고, 이것이 한국에 들어와 선글라스를 ‘라이방’으로 부르게 되었다. 조종사들은 결코 폼으로 레이밴을 쓰는 것이 아니다.

    전투기를 조종하는 사람을 조종사라고 하는데 비해, 민항기를 조종하는 사람은 기장 또는 부기장이라고 한다. 항공법 제50조는 기장을 항공기 비행에 대해 책임지는 자로 항공기 안의 모든 승무원을 지휘 감독할 권한을 가진 사람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그래서 조종사는 영어로 ‘파일럿(pilot)’으로 불러도, 기장은 대장이라는 뜻을 가진 ‘캡틴(captain)’으로 부르는 것이다. 태극기를 단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의 기장은 항공기의 문이 닫히고 다시 열릴 때까지, 대한민국 대통령을 대신해 항공기 안에서의 질서를 유지할 권한과 책임을 갖는 ‘창공의 대통령’이다.

    기장과 부기장은 항공사에 따라 색깔과 모양이 약간씩 다른 제복을 입는다. 그러나 제복 소매와 어깨 위 견장에 금줄을 치는 것은 세계 공통이다. 금줄이 네 개면 기장이고, 세 개면 부기장이다. 기장·부기장들은 하나같이 바퀴 달린 가방을 끌고 다닌다. 이 가방 속에 무엇이 들어 있을까. 담배를 좋아하는 기장이라면 담배를, 외국으로 나가는 국제선 기장이라면 양말도 집어넣겠지만, 그 안에는 공통적으로 항공기 매뉴얼이 들어 있다. 자주 사용하지 않는 조종술을 사용해야 하는 비상 상황에 대비해, 기장·부기장은 어디를 가든 반드시 매뉴얼을 갖고 다닌다.



    아찔한 수막 현상



    기장·부기장의 세계에 대해 가장 잘 아는 것은 아무래도 객실 여승무원들이다. 기장을 보좌하는 부기장 중에는 총각이 적지 않다. 뒤에서 설명하겠지만 기장·부기장의 연봉은 상당한 수준이다. 게다가 외국 생활을 한 경험도 많아 매너까지 세련돼 있다. 이러한 총각을 예쁜 처녀 승무원이 가만히 둘 것인가? 이런 이유로 총각 부기장 중에는 여승무원과 연애해 결혼하는 이가 적지 않다.

    캡틴의 세계가 항상 우아하고 품위 있는 것은 아니다. 때로는 아찔한 위기 상황에 접할 때도 적지 않다. 지난 9월21일 프랑스 이스트르에서 파리 오를리 공항으로 오는 팰컨항공기 조종실에 탑승했을 때의 일이다. 이미 해는 져서 깜깜한데, 짙은 안개가 끼어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 비까지 뿌렸다. 조종실 앞유리창에도 와이퍼가 달려 있다. 이 와이퍼는 유리창에 붙는 빗물을 힘차게 훔쳐주건만 정작 유리창 앞은 깜깜하기만 했다. 이런 가운데 팰컨항공기는 오를리공항에 착륙하기 위해 고도를 낮춰갔다.

    조종사들은 이착륙을 할 때 가장 긴장한다. 착륙 직전 항공기는 매우 천천히 난다는 느낌을 준다. 그러나 생각밖으로 빨라서 시속 350㎞ 내외에 이른다. 착륙 바퀴를 접지시키는 순간의 속도도 시속 250∼300㎞다. 한참 고도를 낮추었는데도 오를리 공항의 활주로 불빛은 보이지 않았다. 이때 조종실에서 너무 굵어서 카리스마까지 느껴지는 중년 남자의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스리 헌드레드” 잠시 후 다시 “투 헌드레드”라는 소리가 이어졌다.

    모든 민항기 조종실에는 항공기가 지상에 충돌하는 것을 막기 위해 일정 고도 이하로 내려가면 자동으로 고도를 읽어주는 장치가 있다. 조종사가 아무런 조취를 취하지 않아도, 300피트(약 100m)까지 내려가면 “스리 헌드레드”, 100피트로 내려가면 “원 헌드레드”, 50피트에 이르면 “피프티” 식으로 녹음된 중년 남자의 저음이 터져 나온다. 이 소리는 매우 크고 음산해서 깜박깜박 졸던 조종사라도 퍼뜩 정신을 차릴 수밖에 없다.

    “원 헌드레드”를 부를 때까지도 보이지 않던 활주로 불빛이 “피프티”를 외치기 직전 영화의 한 장면처럼 나타났다. 언제 안개가 있었냐는 듯 활주로 불빛은 찬란하기 그지없었다. 그러나 비는 여전히 내리고 있었다. 잠시 후 “쿵” 소리를 내며 팰컨항공기가 착륙했는데 그 순간 살짝 미끄러지는 느낌이 들었다. 객실에 있던 사람들은 전혀 느끼지 못했으나 전방을 주시하고 있던 기자는 이를 분명히 느낄 수 있었다. 기장은 그 순간 재빨리 바퀴 방향을 틀어 팰컨기가 활주로 정중앙을 달리도록 했다.

    기자는 이러한 미끄러짐을 영어로 어떻게 표현하는지 몰랐다. 그래서 활주로를 빠져나와 천천히 주기장(駐機場·항공기를 세워 놓는 곳)으로 달릴 때쯤 기장을 향해 “유 슬라이딩(You sliding·당신 미끄러졌지)”이라고 말을 걸었다. 프랑스인 기장은 그 뜻을 알아듣고 쑥스러운 듯 어깨를 으쓱하며 “댓스 라잇(That’s right·당신 말이 맞아요)”이라고 대꾸했다. 팰컨항공기가 미끄러진 것은 ‘수막(水膜) 현상’ 때문인 것으로 추정된다. 물이 흐르는 활주로에 고속으로 달리는 항공기 바퀴가 닿는 순간, 얇은 물의 막이 생기는 데 이를 수막 현상이라고 한다.

    수막현상이 생길 때 당황해서 기수를 크게 꺾으면, 시속 250㎞라는 엄청난 속도로 달리던 항공기는 활주로를 벗어나 잔디밭에 처박힐 수도 있다. 이때의 충격으로 항공기가 동강나면 휘발성이 강한 항공유가 새나온다. 이 항공유는 가벼운 정전기에도 점화되므로, 동강난 항공기는 화재를 일으킬 가능성이 높다. 이처럼 변화무쌍한 일기 속에서 온갖 위험을 제압해 가며 안전하게 항공기를 모는 것이 기장이다. 그래서 ‘캡틴’인 것이다.

    지난 10월22일 대한항공의 캡틴·코파일럿(co-pilot·부기장)들이 어깨띠를 두르고 “우리도 노동자다” “비행수당 인상! 비행시간 축소!”를 외치며 전면 파업에 들어갔다. 조종사의 파업은 선진국의 전유물인 줄 알았는데, 한국에서도 그러한 일이 일어난 것이다. 그에 앞서 지난 5월31일, 대한항공의 기장·부기장들은 노동부로부터 대한항공 조종사노조 설립 신고필증을 받아내 합법적으로 대한항공 조종사노조를 출범시켰다. 이때만 해도 “과연 조종사들이 파업을 하겠느냐”는 분석이 많았는데, 예상을 깨고 전면 파업을 성사시켰다.

    파업 직후 언론에서는 쟁점 사항인 기장들의 연봉에 관한 보도가 쏟아졌다. 기장들의 연봉은 기본급과 비행수당·상여금 3대 요소로 구성된다. 기본급은 월급쟁이들처럼 호봉과 직급 상승에 따라 올라가는 것이고, 상여금은 이 기본급에 따라 결정된다. 쟁점이 된 비행수당은 조종사들의 비행시간에 따라 결정된다. 비행시간이 많으면 기본급보다도 많은 비행수당을 타고, 적으면 그 반대가 된다.

    조종사노조의 파업은 생각지 않은 사태를 몰고 왔다. 한국인 승객들은 연발착만 해도 피해 보상을 요구하며 단체 행동을 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외국 공항에서도 집단 행동을 불사하는 이들이니, 한국어가 통하는 한국 공항에서 비행기가 뜨지 못하는 사태를 좌시할 리가 없다. 신혼부부가 많이 찾는 한국 제일의 관광지 제주도는, 항공편과 배편을 제외하면 육지로 나올 방법이 없다.

    아시아나항공은 파업을 하지 않았지만, 대한항공이 더 많은 편수를 취항시키고 있다. 이러한 대한항공이 파업에 들어갔으니 제주공항이 승객들의 항의로 발칵 뒤집힐 수밖에. 분노한 승객들은 대한항공 영업직 직원들의 멱살을 잡고 흔들어댔다. 파업 이틀째 노사 합의로 비행이 재개되자 이번에는 기내로 소동이 확대됐다. ‘성난’ 승객들이 객실 여승무원들을 향해 손가락질을 하며 거친 말을 내뱉은 것이다. 그러나 영업직 직원이나 객실 여승무원은 파업과 전혀 무관하다.

    이렇게 되자 대한항공 사(使)측과, 영업직원과 객실 여승무원을 노조원으로 한 일반 노조, 그리고 새로 출범한 조종사노조가 모두 곤란해졌다. 때문에 사(使)측을 대표해 심이택 사장이 제주공항에 내려가 직원들을 위로하고, 박대수 대한항공 노조위원장(40)도 제주공항을 찾아 멱살 잡힌 노조원을 위문하고, 이성재 대한항공 조종사노조위원장(51)도 제주공항을 찾아가 사과하는 웃지 못할 사태가 벌어졌다.



    비행시간 규정은 지켜지고 있다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은 내국인 조종사가 부족해, 전체 기장의 20∼30%를 외국인 기장으로 메우고 있다. 대한항공의 조종사노조는 파업에 들어가며 “한국인 조종사들이 외국인 기장에 비해 비행수당은 적고 비행시간은 많은 부당한 대우를 받고 있다. 이러한 혹사로 인해 항공기의 안전 운항이 위협받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로 인해 우리 조종사들의 비행시간이 논쟁거리가 됐다.

    비행에 관한 ‘세계법’은 미국의 연방항공국(FAA)이 만들고 있다. 미 연방항공국이 만든 연방항공규정(FAR)에는 ‘조종사들은 연간 1000시간 이상 비행할 수 없다, 2인 1조로 비행하는 조종사들은 연속하는 30일 동안 100시간 이상 비행할 수 없다, 3∼4인으로 비행하는 조종사들은 연속하는 30일 동안 120시간 이상 비행할 수 없다’고 돼 있다.

    법을 어떻게 만드는가는 각 나라가 결정할 일이다. 연간 비행시간을 2000시간 이내로 하든 800시간 이내로 규정하든, 그것은 그 나라의 주권(입법) 사항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문명 국가는 미국 연방항공국이 만든 룰을 차용한다. 한국도 미 연방항공규정을 차용해 ‘조종사들은 연간 1000시간, 연속하는 30일 동안 100시간 이상 비행할 수 없다. 3∼4명이 함께 비행할 때도 연속하는 30일 동안 120시간 비행할 수 없다’는 규정을 만들었다.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은 같은 내용을 운항 규정으로 정해놓고 있다.

    앞에서도 잠깐 설명했지만 민항기 조종실에는 반드시 기장-부기장으로 된 두 명의 조종사가 탑승한다. 미국과 한국은 비행시간이 8시간 이내인 노선에는 각 1명씩인 기장과 부기장이 탑승해 이륙에서부터 착륙까지 책임지도록 한다. 그러나 8시간 이상 12시간 이하의 노선에는 기장-항로기장-부기장으로 구성된 3명의 조종사가, 12시간 이상인 노선에는 기장 2명-부기장 2명으로 구성된 4명의 조종사가 탑승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8시간 이상 12시간 이내 노선에서는 3명의 조종사가 번갈아 가며 조종하는데 이륙과 착륙 등 가장 중요한 순간에는 기장과 항로기장(항로기장은 명칭만 기장이지 실제로는 부기장이다)이 조종석에 앉아 조종을 한다. 이때 부기장은 기자가 앉았던 항법사 자리에 앉는다. 그러다 위험이 적은 항로비행에 들어가면 기장은 조종실 안에 있는 ‘벙커’(두 사람이 누워 쉴 수 있는 공간)에 들어가 휴식을 취한다. 이때 부기장석에 앉아 있던 항로기장이 기장석으로 옮겨 항로비행을 책임지고, 항법사 자리에 있던 부기장이 부기장석에 앉아 항로기장을 보좌한다.

    12시간 이상인 노선을 비행할 때는 A조 기장-부기장이 조종석에 앉아 이륙에서부터 총 비행 시간의 절반 지점까지 책임진다. 이때까지 B조는 객실에서 휴식을 취하는데, 기장은 퍼스트 클래스 부기장은 비즈니스 클래스에 앉는다. 그러다 중간지점이 오면 B조가 조종실에 들어가 착륙 때까지 비행을 책임진다. 임무를 마친 A조는 객실로 나와 기장은 퍼스트 클래스, 부기장은 비즈니스 클래스에서 착륙할 때까지 휴식을 취한다.

    이처럼 3∼4명의 조종사가 비행할 때는, 조종석에 앉지 않는 사람이 생긴다. 민항기 조종을 위해 탑승했지만, 조종석에 앉지 않는 것을 ‘편승(便乘)’이라고 한다. 과거에는 편승시간을 비행시간으로 인정하지 않았다. 그러나 미국이 편승시간을 비행시간으로 인정하면서부터 한국도 편승시간을 비행시간으로 인정하는 쪽으로 규정을 바꾸었다. 이러한 편승시간이 포함돼 있기 때문에 3∼4명이 조종할 때는 연속하는 30일 동안 최고 120시간 미만까지 비행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대한항공 조종사노조의 파업이 있은 다음인 지난 10월29일 KBS의 ‘취재파일’은 ‘긴급점검- 조종사는 피곤하다’는 프로를 방영했다. 이 프로에서 충격을 준 것은 뒷 모습만 나온 익명의 조종사가 “밤새도록 서울로 날아와 김포에 내리려고 했는데 (기상이나 기타 사정이 나빠) 제주로 갔다가 다시 서울로 왔다. 그때 하도 피곤해서 랜딩기어(착륙 바퀴)를 내리고 깜빡 졸았다”고 말한 대목이다. 국내 항공사들은 수익을 올리기 위해 관련 규정을 어겨가며 조종사들에게 깜빡 졸 만큼 과도한 비행을 맡기고 있는가?



    화두는 안전 운항



    정답은 “아니다”이다. 조종사들은 대개 기본급이나 상여금보다 더 많은 돈을 비행수당으로 벌고 있다. 또 일정 비행시간을 기록해야 부기장은 기장으로, 기장은 선임기장으로 승진할 수 있다. 그래서 비행시간에 관한 기록은 회사와 공동 관리한다. 따라서 사(使)측이 항공규정을 어겨가며 과도한 비행을 시켰다면, 조종사노조는 이러한 사실을 얼마든지 찾아내 대한항공 대표를 항공관련법 위반 혐의로 고발할 수 있다. 그러나 파업에까지 들어간 조종사노조는 이러한 조처를 취하지 못했다. 대한항공은 물론이고 아시아나항공 조종사들도 관련 규정이 허용한 범위 내의 비행시간을 비행하고 있다.

    조종사들은 연간 1000시간 이상 비행하지 못하므로, 이를 12개월로 나누면 월 평균 83시간까지 비행할 수가 있다. 그런데 성수기가 되면, 항공사는 승객이 몰리는 인기노선에 임시편을 투입한다. 임시편 조종까지 맡게 된 조종사는 그달의 총 비행시간이 확 늘어날 수도 있다. 그러나 얼마 후 그는 1000시간 규정을 지키기 위해 비행시간이 대폭 줄어들므로 그의 월평균 비행시간은 83시간 미만이 된다. 이때는 비행기를 더 타려고 해도 탈 수 없다. 따라서 비행시간이 많다고 한 조종사노조의 주장은 주관적으로는 옳을지 몰라도, 법률적인 면에서는 객관성을 가질 수 없다. 조종사들이 안전 운항을 이유로 비행시간을 축소하라고 주장하는 것은 비행수당 인상을 위한 전략일 수도 있다. 전면 파업을 통해 대한항공의 조종사노조는 내년 4월부터 비행수당을 월평균 100만원 정도 올리기로 회사측과 합의했다.

    대한항공 조종사들이 파업에 들어갔을 때 언론은 사(使)측이 제공한 자료를 근거로 기장들의 연봉은 대략 6000만원에서 9000만원 수준이라고 보도했다. 이러한 보도는 대체로 사실이다. 우리 사회 통념으로 본다면 기장들은 고소득자임이 분명하다.

    조종사 노조는 ‘안전운항을 위해 비행시간을 줄이고 비행수당을 올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흥미로운 것은 임금 인상을 요구하는 노조나, ‘임금수준이 높은데 뭘 더 바라느냐’는 회사측 모두가 ‘안전운항’을 내세운다는 점이다.

    과거 10년의 자료를 들춰보면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은 사고를 많이 냈다. 건설교통부 자료에 따르면 91년부터 99년 사이 대형 항공사고가 없었던 것은 95년과 96년뿐이고 99년 대한항공은 연속 3건의 대형 사고를 냈다. 그렇다면 이러한 사고를 낸 주 책임은 누구에게 있는가. 사측에 있다면 무리한 운항지시 때문에 사고 위험이 있다는 조종사들의 주장이 옳은 것이 되고, 조종사측에 더 큰 책임이 있다면 조종사들의 파업은 명분이 작아진다.



    사고시 기장의 책임은 어디까지



    먼저 기장의 실수로 인한 사고를 살펴자. 10월31일 대만 장개석공항에 일어난 싱가포르항공기 사고가 대표적인 경우다. 싱가포르항공은 홍콩의 캐세이 퍼시픽, 호주의 콴타스와 더불어 세계적으로 사고가 적은 항공사다. 그러한 항공사의 비행기가 이륙 도중 대형 인명사고를 냈으니 이유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이륙을 앞둔 기장에게는 ‘노탐(NO- TAM: NOtice To Air Man)’이라고 하는 이륙지와 착륙지 공항의 기상과 상태, 그리고 항로에 관한 자료가 제공된다. 싱가포르기 기장에게 제공된 노탐에는 이 공항의 한 활주로가 수리 공사를 위해 폐쇄됐다는 내용이 들어 있었다.

    그런데도 싱가포르기 기장은 폐쇄된 활주로로 들어가 이륙을 준비했다. 관제탑에서 이륙을 허가하자 이 항공기는 전속력으로 활주로를 달리다 공사 크레인과 부딪쳐 전소했다. 여기서 의문은 관제탑에서는 왜 폐쇄된 활주로로 들어선 이 항공기를 보지 못했는지에 대한 의문이다. 그것은 관제탑의 레이더는 비행중인 항공기를 보는 데 사용되고, 지상에 있는 항공기는 대개 무선으로 교신하기 때문이다. 관제사가 무선으로 교신하지 않고 창 너머 육안으로 봤다면 싱가포르기가 폐쇄된 활주로에 들어선 사실을 알았을 것이다. 그러나 폭우가 내리는 밤이었기에 관제탑은 이런 사실을 포착하지 못했다.

    대만공항에는 지상에서 이동하는 항공기를 비추는 모니터가 있다. 관제사 중 한 명이라도 이 모니터를 봤다면 사고를 막을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누구도 이 모니터를 보지 못했다. 이 경우 관제사는 도의적인 책임은 있을지 몰라도 법률적인 책임은 전혀 없다. 노탐을 통해 이미 활주로 폐쇄 사실 등이 통보되었으므로 사고 책임은 전적으로 조종사에게 돌아간다.

    반대로 기장 책임이 적은 사고도 있다. 김대중 대통령이 아시아나항공의 비행기를 타고 중국과 말레이시아 순방에서 막 돌아온 다음의 일이다. 98년 11월30일 오전, 서울을 출발해 뉴욕의 존 F. 케네디 공항에 도착한 B747 화물기가 사고를 당했다. 이 화물기는 안전하게 착륙한 다음 활주로를 빠져나와 주기장으로 향하다가 부근에서 작업중이던 크레인을 날개로 쳐 날개가 파손됐다.

    항공사고가 많던 해였으므로 즉각 이 사실이 보도됐다. 대통령을 모셨던 아시아나항공 측으로서는 이러한 소식이 달갑지 않았다. 그래서 사고 원인이 밝혀지기도 전에 화물기 기장을 권고사직시켰다. 그러나 이 기장이 받은 ‘노탐’에는 이 공항에서 공사를 벌이고 있다는 정보가 없었다. 존 F. 케네디 공항의 관제사들도 공사에 관한 정보를 주지 않았다.

    B747기의 한쪽 날개 길이는 무려 60m다. 조종사가 이 날개 끝을 보려면 후방 135도로 시선을 돌려야 한다. 설사 기장과 부기장이 후방을 돌아봤다고 하더라도 조종실에서 70m쯤 떨어져 있는 날개 끝이 부근에 있는 물체와 부딪칠 것인가를 판단하기는 불가능하다. 따라서 대형기는 활주로나 유도로에서는 정중앙을 따라 움직이는 것이 중요한데 화물기는 유도로의 정중앙을 따라 움직이다 사고를 당했다. 그런데도 아시아나 경영진은 기장을 권고사직시켰다.

    아시아나 경영진의 이러한 판단과 상관없이 미국의 교통안전위원회(NTSB)는 사고 조사에 착수해 수개월 후 아시아나 화물기(전후측방 주시 불철저)와 더불어 공항과 건설회사도 책임이 있다는 결론을 내렸다.

    각종 보고서에 따르면 세계 항공사고의 64.4%, 우리나라 항공 사고의 78.3%가 조종사 과실로 발생했다고 한다. 조종사 실수가 가장 높은 비율을 차지하고 있는 것이다. 항공기는 사고가 나면 전부 대형사고로 이어지기 때문에 위험을 알리는 각종 경보 장치가 즐비하다. A라는 장치가 고장나면 B로 대치할 수 있고, B마저 고장나면 임시방편으로 C로 대신할 수 있도록 만들어졌다.

    지상에 가까워지면 “스리 헌드레드” “투 헌드레드”라고 고도를 불러주는 계기가 있고, 민항기가 날아가는 항로 근처로 접근해 오는 다른 항공기가 있으면 “트래픽! 트래픽(traffic·전방 물체 출현)”이라고 외쳐, 공중 충돌 위험을 경고해주는 티 카스(TCAS)라는 장비도 있다. 아무리 비싼 자동차도 이런 장치는 붙이지 않는다. 이 때문에 비행기는 가장 안전한 ‘탈것’이라는 역설도 성립한다. 이러한 장비가 있는데도 조종사가 실수를 범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지난 93년 7월26일 전남 목포로 향하던 아시아나항공의 B737기는 목포공항으로 접근하던 중 활주로를 찾지 못하고 활주로 앞에 있는 운거산과 충돌해 66명이 사망하고, 비행기가 전파되는 대형 참사를 일으켰다. 이날 목포공항 일대에는 비가 내리고 안개가 끼어 있었다. 사고가 나기 전 이 비행기는 두 차례나 착륙하기 위해 고도를 낮추고 내려갔다가 착륙에 실패해 복항(復行·Go Aronnd)한 바 있다. 그리고 세 번째 착륙을 시도하다 목포공항 활주로 전방에 있는 운거산을 들이받은 것이다.

    97년 8월6일 새벽 괌에는 천둥번개를 동반한 강한 비바람이 몰아치고 있었다. 이런 가운데 대한항공 B747기가 괌의 아가냐공항에 내리려고 접근하다 활주로 전방에 있는 니미츠언덕에 부딪혀 229명이 사망하고 항공기가 불타는 초대형 참사가 발생했다. 이 항공기 역시 활주로에서 한참 떨어진 전방에 활주로가 있다고 판단하고 내려오다가 언덕에 부딪힌 것이다. 대한항공기는 복항과 선회비행 없이 바로 내리려다 사고를 냈을 뿐, 사고 유형은 아시아나기와 매우 흡사했다.

    두 항공기에서도 앞서 말한 경보장치는 울렸다. 그런데도 사고를 일으킨 것은 무엇 때문일까. 조종사가 일부러 무시했거나 다른 일에 너무 몰두해 까맣게 있은 경우로 추정해 볼 수 있다. 착륙시에는 고도를 낮추는 조작을 하기 때문에 “투 헌드레드” … “피프티” 따위의 소리가 터져 나와도 상승 조작을 하지 않는다. 조종사가 ‘이제 활주로가 나타나야 하는데…’라고 생각하는 순간 거대한 숲이 나타나고 그 순간 큰 충격과 함께 암흑으로 변하고 만 것이다. 왜 조종사는 잘못된 위치에서 활주로가 있다고 착각하게 된 것일까. 한 고참 기장의 말이다.

    “목포 사고를 일으킨 아시아나기는 두 차례나 착륙에 실패하고 세 번째 시도하다 참사를 당했다. 악천후일수록 조종사는 착륙 마지막 순간만은 활주로를 보고 착륙을 결심하길 원한다. 그래서 활주로가 보일 만한 높이까지 고도를 낮추는데 활주로가 보이지 않으면 ‘이대로 내리면 위험할 수도 있다’고 판단하고 일단 복항한다. 이런 일을 두 번 반복하게 되면 기장의 모든 신경은 활주로를 찾는 데 집중하게 된다. 계기판의 경보 장치가 깜빡이고 경보음이 터져 나와도 들리지 않거나 무시하는 상태에 빠지는 것이다(기자도 한참 원고 작성에 몰두할 때 누가 이름을 불러도 듣지 못한다).

    이를 과도한 집중이라고 하는데, 과도한 집중에 빠지면 기장은 계기에 주목하지 않고 경험칙에 매달리게 된다. 즉 첫 번째는 여기서, 두 번째에는 이쯤에서 고도를 낮췄는데 활주로가 보이지 않았으니, 이번에는 좀더 전방에서 고도를 낮춰보자고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활주로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서부터 기수를 낮추므로 부근에 있는 산과 충돌하게 되는 것이다. 잘하려고 한 것이, 과도한 집중을 불러 오히려 참변을 부른 것이다.”

    전투기를 제외한 대부분의 항공기에는 기장과 함께 부기장이 탑승한다. 부기장의 역할과 기능은 기장과 똑같고 부기장 앞에 놓인 계기판과 조종간도 기장 앞에 놓인 것과 똑같다. 따라서 두 사람 중 한명이 쿨쿨 자더라 다른 사람이 조종하면 비행기는 얼마든지 안전하게 비행할 수가 있다. 좁은 조종실에 같은 임무를 맡은 사람을 둘씩 태우는 것은 과도한 집중을 막기 위해서다(최전방 GOP 초소에 병사를 두 명씩 배치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사고 사슬을 끊어라”



    그런데 악천후를 만나면 두 사람 모두 뭔가에 홀린 것처럼 일심동체가 된다. 프랑스에서 팰컨항공기를 타고 오를리공항에 올 때 느낀 것이지만, 날씨가 음산해지자 기장이 말수를 줄였고, 덩달아서 부기장도 입을 닫고 긴장하는 듯했다. 노련한 프랑스인 기장은 이때 과도한 긴장을 깨기 위해, 기자와 부기장에게 가벼운 농담을 걸기도 했다. 그런데 이와 반대 상황이 벌어져 기장도 긴장하고 부기장도 ‘덩달이’가 돼 긴장하게 된다면, 둘은 동시에 계기판의 경보를 놓치게 된다. 이렇게 모든 상황이 사고가 날 수밖에 없도록 연결되는 것을 ‘사고 사슬(chain of accident)’이라고 한다.

    분명히 경보장치는 작동했고, 한 사람이 과도하게 집중하는 것을 막기 위해 한 명을 더 태웠는데 그마저 과도하게 집중해, 아무도 ‘사고 사슬’을 끊지 않을 때 사고가 일어나는 것이다. 비행중 유리창 너머의 상황에 현혹돼 사고를 일으키는 것은 혼자서 비행하는 공군 전투기에서 더 자주 일어난다. 전투기 조종사들은 “달 없는 밤 바다 위를 비행하다 보면 바다를 하늘로 착각할 때가 있다”고 말한다. 유리창 너머를 바라보다 바다가 하늘이고, 어선의 불빛은 별빛으로 판단해 하늘로 올라간다고 기수를 조작한 것이 그만 바다로 뛰어드는 결과를 낳는다.

    이를 ‘버티고(vertigo·비행착각)’라고 한다. 지난 11월1일 공군의 F-5 전투기 한 대가 동해 상공을 비행하다 감쪽같이 사라졌다. 같이 비행한 다른 F-5는 기지로 돌아왔는데 이 비행기만 없어진 것이다. 공군 탐색전대는 이 전투기가 사라진 해역에서, 기름띠를 발견했다. 그리고 잠정적으로 내린 결론이 ‘이 F-5기는 버티고(비행착각)에 빠져 바다로 들어간 것 같다’였다. 인간은 비행기를 개발해 하늘을 날게 됐지만, 밤하늘은 생텍쥐페리가 소설 ‘야간비행’에서 묘사한 것처럼 여전히 사람의 마음을 홀리게 하는 신비로운 힘을 갖고 있다. 밤하늘에 홀리지 않으려면 기장은 의식을 분산시켜야 한다.

    그러나 기장·부기장이 원수 같은 사이일 때도 문제가 일어난다. 기자는 가끔 운전을 하다 아내와 다툴 때가 있다. 화가 많이 나면 가속기와 제동기를 콱콱 밟아대며 화가 무척 났다는 것을 표현한다. 자동차라는 좁은 공간에 미운 사람과 같이 있으니 더욱 화가 나는 것이다. 기장과 부기장 사이도 이와 같을 때가 있다. 애초부터 ‘주파수’가 안 맞는 사이인데, 비행을 하면서 기장이 “왜 이것도 제대로 못해. 저것 좀 똑바로 해”라고 부기장을 야단치면 사태가 험악해진다. 보는 사람도 말리는 사람도 없으니 바로 감정 충돌로 갈 수 있는 것이다.

    1966년 일본에서는 웃지 못할 사건이 일어났다. 도쿄 하네다(羽田)공항에 착륙하려던 전일공(ANA) 항공기가 활주로 앞에 있는 바다에 빠졌다. 하네다 공항은 바다를 메운 곳이라 앞에 바다가 있다. 비행기가 하강하다 바다에 떨어져도 항공기는 가라앉지 않으므로 승객과 승무원을 무사히 구조할 수 있었다. 구조가 끝난 후 사고 조사에 들어갔는데, 조사결과 운항 도중 기장과 부기장이 조종실에서 계속 다툰 것이 원인으로 밝혀졌다. 기장의 ‘성깔’에 화가 난 부기장은 “어디 혼자 잘 해보라”고 팔짱을 껴버렸다. 기장은 책임이 있으니 혼자서 씩씩대며 착륙을 시도하다 활주로 앞에 있는 바다에 비행기를 빠뜨렸다. 기장은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는 처지였다.

    그런데 조금은 책임이 가벼운 부기장 이 가만히 있었으면 좋았을 터인데 참지 못하고 “바다에 빠진다는 것을 알면서도, 기장이 얼마나 잘 하는가 두고 보려고 가만히 있었다”고 쏟아놓았다. 그로 인해 부기장은 하루 아침에 ‘또라이’로 지목되었다. ‘덩달이’도 문제지만 이런 ‘또라이’도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이 사건 후 전세계 조종사들은 정기적으로 뇌파 검사를 받게 되었다. 뇌파가 불안하게 나오는 사람은 조종간을 잡을 수 없게 한 것이다.

    미국에서는 대형 항공기 사고가 일어나면 국가교통안전위원회(NTSB)가 사고 원인 조사에 착수한다. 조사는 1년 가까이 진행되는데 이 기간에 항공사측은 단 한번도 입을 ‘뻥끗’하지 않는다. 사측은 국가교통안전위원회의 조사가 끝난 후에야 비로소 의견을 밝힌다. 그러나 우리는 정 반대다. 우리나라에서 일어난 항공사고는 건설교통부 항공안전과에서 원인을 조사하는데, 항공안전과 요원들이 사고 현장에 도착하기 전부터 도하 언론은 ‘조종사 실수인 듯’이라는 제목을 뽑아 올린다. 여기서 조종사들은 ‘회사 관계자가 기자들에게 흘려준 것이다. 회사측에서 죽은 조종사에게 책임을 떠넘기려 하는구나’라고 의심하게 된다.

    그러나 대형 항공기 참사 중에는 다른 이유로 발생한 것도 있다. 82년 사할린 상공에서 소련 전투기가 쏜 미사일을 맞고 격추된 대한항공 007편과 87년 11월29일 마유미(김현희) 등이 설치한 고성능 폭약 때문에 안다만해 상공에서 폭발한 대한항공 858편이 대표적인 경우다. 그런데도 사고만 나면 거의 무조건적으로 ‘조종사 실수인 듯’이라는 제목이 나오니 조종사들은 예민해지는 것이다.

    항공기 사고에서 조종사 책임 비율은 어느 정도일까. 70년부터 97년 사이 한국에서 일어난 항고사고 중에 조종사 과실이 원인이 된 것은 78.3%이고, 정비 불량은 11.0%, 악천후 2.0%, 기타가 8.7%다. 59년에서 95년 사이 일어난 세계 항공사고 중에 조종사 과실이 원인이 된 것은 64.4%, 정비불량은 3.3%, 악천후는 4.8%, 기타는 27.5%다. 한국과 세계 모두 조종사의 과실에 의한 사고 비율이 제일 높은 것이다.

    조종사 과실 비율이 이렇게 높은 것은 항공법에 따라 조종사(기장)가 항공기 운항에 관한 전권을 쥐고 있는 것도 한 원인이 된다. 출발에 앞서 노탐(NOTAM)을 제공받을 때 이륙지의 기상이 너무 나쁘거나 착륙지가 위험하다고 판단되면, 기장은 비행을 거부할 권한이 있다. 또 기장은 이륙에 앞서 정비사로부터 정비 일지를 넘겨받아 읽어보고, 정비가 불량하면 탑승을 거부하고 재정비를 요구할 권한이 있다. 이러한 권한을 가진 기장이 비행기에 탑승한 것은 기장이 노탐과 정비에 이상이 없다는 것을 확인했다는 뜻이므로 사고가 나면 조종사 쪽으로 시선이 몰리는 것이다.

    조종사는 착륙시에도 전권을 가진다. 착륙을 할 것인가 말 것인가는 전적으로 기장이 결정한다. 관제사는 몇 번 활주로로 착륙해도 좋다는 허가를 내리고, 그쪽 활주로로 오도록 유도해주는 착륙의 보조자일 뿐이다.

    높은 고도에서 순항중인 민항기의 속도는 약 300노트(시속 약 555.6㎞)지만 태풍은 64노트(시속 약 118.5㎞)에 불과하다. 따라서 민항기가 태풍을 뚫고 나가는 것은 일도 아니다. 물론 태풍을 뚫고 나갈 때 기류 불안으로 기체가 크게 흔들릴 수는 있어도 비행기가 태풍에 날아가는 사태는 결코 일어나지 않는다.

    그러나 착륙할 때는 속도가 느려 태풍보다 약한 측풍이 불어와도 밀린다. 이렇게 되면 기장은 활주로 정중앙을 놓치지 않기 위해 기수를 돌려, 활주로 정중앙에 맞추는 조작을 한다(그림참조). 이런 자세로 활주로에 내린 항공기가 곧바로 바퀴 방향을 활주로 정중앙에 일치시키는 조작을 하지 않는다면 활주로를 이탈하게 된다. 측풍이 무서운 것은 이 때문이다.

    그러나 이러한 측풍이 불어도 관제사는 “현재 20노트(시속 37㎞)의 바람이 ○○ 방향에서 불어오는데, 순간적으로 40노트(시속 74㎞)의 돌풍이 될 수도 있다”는 정보만 제공한다. 착륙에 관한 전권은 기장에게 있기 때문에 “돌풍이 예상되니 내리지 말라”고 명령하지 않는다(그러나 활주로가 이착륙 항공기로 붐빌 경우 관제사는 순번을 정해 차례로 내리도록 명령할 수는 있다. 그러나 이때도 착륙할지 여부는 기장이 결정한다). 이러한 현실도 사고시 기장에게 가장 큰 책임이 돌아가는 원인이 되고 있다.



    창공의 대통령, 지상의 노동자



    항공법 제50조에 따라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의 기장은 항공기 문이 닫혔다가 열릴 때까지는, 대한민국 대통령을 대신해 항공기 안의 질서를 책임지는 ‘창공의 대통령’이 된다. 이 창공의 대통령이 지상에 내려오면 비행시간에 따라 임금을 받는 월급쟁이가 된다. 비록 고임금자일지라도. 때로는 사고에 대한 책임을 억울하게 뒤집어 쓰기도 한다. 그래서 이들은 자신을 노동자로 규정하였다. ‘창공의 대통령’과 ‘지상의 노동자’라는 큰 편차가 이들을 전면 파업으로 몰아넣은 진짜 이유인지도 모른다.

    기장 실수로 판명된 사고라 하더라도 다른 사람은 전혀 책임이 없는 것일까. 스스로 ‘파리목숨’이라고 생각하는 기장들의 생각은 여기에까지 미친다. 아시아나항공기 참사를 일으킨 목포공항이 좋은 사례다. 대체적으로 군용기는 크기가 작기 때문에 민항기에 비해 사용하는 활주로 길이가 짧다. 목포공항은 해군 공항이라 활주로가 짧다. 아시아나항공기 참사 후 목포공항의 활주로가 짧은 것이 문제점으로 지적됐다. 그래서 활주로 길이 연장공사를 했는데, 연장 방향이 운거산 쪽이었다. 이로써 짧은 활주로 문제는 해결됐으나 활주로는 운거산과 더 가까워져, 민항기가 운거산과 충돌할 위험은 더 커졌다. 기장들은 이를 가리켜 개선이 아니라 개악이라고 개탄한다.

    대한항공기의 괌사고 때는 아가냐공항의 최저안전고도경고(MSAW) 시스템의 경고음 장치는 작동이 중지돼 있었다. 이 시스템은 착륙하려는 항공기나 너무 낮은 고도로 내려오면 경고음을 보내주는 장치다. 이 장치만 작동했어도 사고기는 실수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을 것이다. 이 경고장치 작동을 중지시킨 공항측의 관리부실은 사고를 부른 한 요인이다.

    관제에는 공항관제와 접근관제가 있다. 공항관제는 이륙과 착륙 순간을 통제하는 것이고, 접근관제는 공항으로 날아오는 비행기와 공항에서 막 이륙한 비행기를 항로까지 유도해 주는 것이다. 대부분의 공항은 공항관제 시설은 갖추고 있으나, 접근관제 시설은 갖추지 못한 곳도 있다. 대표적인 경우가 울산공항인데, 울산공항의 접근관제는 포항공항의 접근관제소가 담당한다. 문제는 포항공항과 울산공항 사이에 산이 있어, 포항공항의 접근관제레이더는 300피트 이하의 울산공항 상황을 보지 못한다는 점이다. 포항공항의 접근관제레이더는 울산공항에서 비행기가 이륙하는 것을 보지 못하는 상태에서 “이륙해서 ○피트까지 상승하라”고 지시한다. 이때 같은 방향에서 착륙하는 비행기가 있다면 위험한 상황이 벌어진다.

    드물지만 비행기도 공중 충돌을 일으킨다. 1971년 일본 모리오카에서는 훈련에 나선 항공자위대 소속 F-86 세이버 전투기가 전일본항공(ANA)의 B727과 공중충돌해 여객기 승객 162명이 몰살하고 세이버 전투기 조종사만 비상탈출해 살아난 적이 있었다. 지난 11월13일에는 일본 본토와 홋카이도(北海道) 사이에 있는 바다에서 미 공군의 F-16 전투기 두 대가 공중충돌해 추락하는 사고가 있었다.

    공항은 이착륙하는 비행기로 붐비는 곳이라 공중충돌 위험이 상존한다. 따라서 관제 레이더는 민항기의 이착륙을 보고 있어야 안전하다. 그러나 건교부측은 “접근관계는 공항별이 아니라, 몇개 공항을 묶어 섹터별로 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공중충돌은 하지 않더라도 두 비행기가 가깝게 스쳐지나가는 것을 ‘니어 미스(Near Miss·스치기 비행)’라고 한다. 국제민간항공기구(ICAO)는 ‘니어미스는 두 항공기가 충돌위험이 있을 만큼 가까이 근접한 상황’으로 막연히 규정하고 있다. 미국 연방항공국은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공중충돌에 가까웠던 순간’이라는 뜻을 가진 NMAC(Near Mid-Air Collision)이라는 용어를 사용한다. NMAC는 두 항공기가 500피트(150m) 안쪽으로 스쳐지나간 상황으로 규정돼 있다. 국제민간항공기구는 공중충돌은 ‘사고(accident)’로, 니어미스나 NMAC는 ‘준사고(incident)’로 규정한다. 기장들은 접근관제레이더가 없는 울산공항 같은 곳은 사고나 준사고가 일어날 수 있다고 지적한다.

    다음으로 살펴볼 것은 외국인 기장과 한국인 기장의 차별 대우 문제다.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의 조종사들은 비행시간 과다가 아니라 외국인 조종사와 차별대우 때문에 더욱 분노하는 느낌을 준다.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은 국내 조종사가 부족해 용역회사를 통해 외국인 기장을 고용하고 있는데, 이들은 같은 기종을 모는 같은 경력의 한국인 기장에 비해 연봉이 많다. 한국인 기장들은 “비행수당이 비싼 외국인 기장에게 성수기 임시편 비행을 맡기면 그만큼 사측은 많은 임금을 지불해야 한다. 그 때문에 사측은 증편된 임시편의 조종을 한국인 기장에게 맡기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러한 주장은 비행시간이 연간 1000시간을 초과하지 못하도록 한 규정에 배치된다.

    내국인 조종사 부족은 88년 아시아나항공이 설립되면서부터 나타난 문제다. 아시아나항공 출범 후 대한항공 조종사가 대거 아시아나항공으로 옮겨가자 양사는 법정 다툼을 벌이기도 했다. 양대 민항은 자체적으로 조종사를 양성하고 있으나 아직은 군 출신 조종사가 다수를 차지한다. 그러나 민간기업의 고용상태가 불안해지면서 전역신청을 하는 군 조종사가 줄어들고 있다. 그래서 양대 항공사는 용역회사를 통해 외국인 기장을 계약제로 수입했는데, 그러다 보니 국제 수준의 인건비를 지불하게 되었다. 그러나 한국이라는 중진국에 선진국의 베테랑 기장이 올 리는 없다. 대한항공 한 고참 기장의 지적이다.

    “아시아나항공이 설립되기 전에도 대한항공은 외국인 조종사를 수입했다. 이중에는 부기장도 있었는데, 외국인 부기장의 봉급이 한국인 기장보다 많았다. 그러나 그때는 ‘이들은 우리보다 GNP가 높은 나라에서 온 사람이니 우리보다 많이 받아야만 제 나라에서 가족이 살 수 있을 것’이라며 이해해 주었다. 그런데 요즘 들어오는 외국인 기장을 보면 미국이나 유럽인은 거의 없고, 우리보다 못사는 동구나 동남아·중남미인이 많다. 우리보다 GNP가 적은 나라의 사람들에게 우리보다 많은 연봉을 주니 화가 나는 것이다.

    인도네시아 국적의 한 기장은 ‘대한항공에서 받는 월급이 자기 나라에서는 초등학교 교사의 봉급 30년치에 해당한다’며 만족해한다. 인도네시아·말레이시아·방글라데시·파키스탄·브라질 등 우리보다 GNP가 적은 나라의 기장들이 우리보다 많은 연봉을 받는 현실을 받아들이기 어렵다. 수입 기장 중에는 러시아인도 있는데, 구소련은 82년 사할린 상공에서 대한항공 007편을 미사일로 쏴 처참히 격추시키지 않았는가. 007편이 항로를 이탈했기로서니 민항기인데 어찌 미사일을 쏜단 말인가. 이러한 나라의 기장을 수입하니 자존심이 상하는 것이다. 우리는 벨도 없단 말인가.”



    외국인 조종사 문제



    외국인 기장 문제에 대해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 사측의 설명은 이렇다.

    “그들은 계약제이기 때문에 항상 해고될 수 있다는 부담을 안고 있다. 퇴직금도 없고 자녀 학자금도 지급되지 않는다. IMF 위기가 닥쳐 운항 편수를 줄였을 때 회사는 외국인 기장만 해고했다. 그들에게 지불되는 돈이 많은 것은 사실이지만, 그 돈은 그들이 소속된 용역회사에 주는 것이다. 용역회사를 통해 그들이 받는 돈은 그렇게 많지 않을 것이다. 국내 조종사가 부족한 현실에는 외국인 기장을 수입할 수밖에 없고, 수입하면 국제 기장 시장이 정한 수준에 따라 급료를 지불할 수밖에 없다.”

    외국인 기장이라고 해서 솜씨가 다 좋은 것은 아니다. 활주로에는 착륙하는 항공기들이 바퀴를 착지시켜야 하는 지점이 선으로 표시돼 있다. 이 선을 훨씬 더 지나쳐서 바퀴를 착지시키면, 이 항공기는 달릴 수 있는 거리가 너무 짧아져, 활주로 끝을 지나칠 수가 있다. 이를 오버 런(over run)이라고 하는데 오버 런한 항공기는 활주로 밖의 잔디밭에 처박히거나 공항시설이나 주기중인 다른 항공기와 부딪칠 수가 있다. 따라서 착지 지점을 지나쳐 착륙했을 때는 다시 엔진 출력을 높여 이륙하는 것이 안전한데, 이를 ‘복항(復行·Go Around)’이라고 한다.

    94년 8월10일 제주공항에서는 대한항공 A300 항공기가 착륙지점을 훨씬 지나 착륙하다가 활주로 끝을 지나쳐 공항 담장과 충돌했다. 다행히 사망자는 없었으나 항공기는 수리할 수 없을 정도로 대파되었다. 이 항공기 기장은 캐나다인이었고 부기장은 한국인이었다. 이 항공기가 착지선을 훨씬 지나 착지했을 때 한국인 부기장은 엔진 출력을 높여 다시 이륙하자며 “고 어라운드(Go Around)”를 외쳤다. 그러나 캐나다인 기장은 이를 무시하고 엔진을 역추진시키며 제동에 들어갔다. 그러나 활주거리가 너무 짧아 공항 담장과 충돌하는 오버 런 사고를 일으켰다.

    외국인조종사라고 해서 자기 실수를 인정할 정도로 프로 정신이 강한 것은 아니다. 캐나다인 조종사는 사고를 낸 후 즉시 외국으로 빠져나가 현재도 북미 지역의 한 항공사에서 조종을 하고 있다고 한다.

    조종사들의 월평균 비행시간이 83시간이라는 사실이 알려지자 일부 국민들은 “월급쟁이들은 주 5일 근무하는 좋은 직장에 다닌다 해도, 하루 8시간씩 근무하니 일주일이면 40시간씩 일하는 셈이다. 그렇다면 조종사들은 월급쟁이 기준으로 2주일 정도만 일하고 나머지 2주일 이상은 노는 것 아니냐. 그런데 뭐가 부족해 파업을 하느냐”는 의견을 보냈다. 이에 대해 조종사들은 노동강도를 거론한다. 노동강도는 국내선과 국제선에 따라 성격이 다르다(그러나 국내선과 국제선 기장이 명확히 나눠 있지는 않다).

    앞서 설명했듯 조종사들은 이륙하거나 착륙할 때 가장 긴장한다. 국내선과 일본 중국 등 근거리 노선을 다니는 조종사들은 하루에 이러한 이착륙을 4∼5차례 반복한다. 이들의 일과는 김포를 출발해-부산을 거쳐-다시 김포로 왔다가-일본 후쿠오카로 가서-제주도로 날아가고-다시 김포로 돌아오는 식이다. 이러한 노선을 맡은 조종사는 이착륙을 하루 4∼5번씩 하지만, 규칙적인 생활을 할 수 있다는 것이 큰 장점이다. 시차나 해외출장으로 인해 가족과 떨어져야 하는 고통도 적다.

    반면 국제선 기장들은 장시간 앉아 있어야 하는 고통과 시차에 의한 괴로움을 호소한다. 한국은 동북아시아에 위치해 있어 유라시아 대륙을 가로질러 유럽까지 가거나, 태평양을 건너 미국까지 가는 장거리 국제노선이 발달했다. 미국이나 유럽을 갈 때마다 승객들은 긴 비행시간 때문에 지겨워한다. 두 끼 이상의 식사를 하고 두세 편의 영화도 보고, 잡지도 뒤적이지만 시간은 더디 흐른다. 기내가 좁아 돌아다닐 수도 없다. 더구나 기내는 얼마나 건조한가. 기장들도 이러한 고통과 싸워야 한다. 이들은 책임이 있기 때문에 운항중에는 잘 수도 없다.

    긴 비행시간이 지나 목적지에 도착하면 조종사들은 회사가 계약해 놓은 호텔에 들어가 휴식을 취한다. 도착 첫날은 무조건 비행이 없으니 휴식에 들어가고 그 다음날은 통신이 되는 범위 내에서 자유 시간을 갖고, 셋째 날은 비행이 예정된 조종사가 사정이 생겨 비행을 못할 경우에 대신 들어가는 예비 상태에서 또 하루를 쉰다. 그리고 다음날 비행기를 몰고 서울로 돌아온다. 하루 일한 다음에 3일이나 쉬게 해주는 것은 시차를 극복하도록 휴식을 취하라는 뜻이다.

    3일 가량의 휴식 시간에 조용히 책을 읽는 조종사도 있지만 일부는 푹 자기 위해 술을 마시거나 골프를 치는 사람도 있다. 음주와 골프는 적당한 선에서 끝내지 못하면 오히려 피로가 가중되는 특성이 있다. 양대 항공사 측은 “KBS 취재파일에서 LA에서 서울로 날아왔는데 너무 피곤해서 랜딩기어를 내린 채 깜빡 졸았다고 한 기장은 이런 상태였을 것이다. 그는 비행시간이 많다고 강조하기에 앞서 기장으로서 쉬어야 할 의무를 제대로 수행하지 않은 사람이다”고 비난했다.

    쉬는 시간조차 비행을 위해 쉬어야 하는 것이 국제선 조종사다. 조종사들은 쉬는 시간도 비행과 관련된 것이므로 월 평균비행 83시간은 결코 적은 시간이 아니라고 항변한다.

    조종사 세계를 취재하면서 기자는 양 항공사 조종사들과 과연 조종사가 노동자인지를 놓고 격론을 벌였다. 기자는 “항공법은 기장에게 항공기 승무원을 지휘 감독할 권한을 주고 있으니, 기장은 노동자가 아니라 관리자다. 또 당신들의 연봉은 대기업체 이사 이상이다. 대기업에서도 대개 부·차장급 이상은 관리자로 보고 노조원이 되지 않는다”고 공격했다.

    이에 대해 조종사들은 “항공기 사고는 났다 하면 기장을 포함해 상당수의 인명이 희생된다. 우리 연봉이 많다고 하지만, 기본급은 그만한 연차의 일반 기업체 대졸 사원과 비슷하다. 연봉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는 비행수당은 말만 비행수당이지 사실은 생명수당이다. 객실 여승무원도 공항이나 본사에 근무하는 여직원에 비해 연봉이 많은데, 이 또한 비행수당이란 이름으로 생명수당이 제공되기 때문이다. 당신 같으면 이러한 연봉을 받고 목숨을 내놓겠는가. 그리고 조종사들은 파리목숨이다. 우리도 자존심을 지키며 인간답게 살기 위해 노조를 결성했다”고 항변했다.



    부분파업을 했어야



    이제 조종사노조는 거스를 수 없는 대세다. 건설교통부의 항공 정책과 양대 민항사의 경영정책은 조종사노조가 있다는 것을 전제로 작성되어야 한다. 조종사들을 자주 접하는 사람들은 ‘조종사들은 모래알’이라고 평가한다.

    이들은 비행 외의 회사 일에 대해서도, 사회가 어떻게 돌아가는지에 대해서도 비교적 관심이 적다. 중년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그들 스스로 “세상을 잘 모른다”고 평가하고 있다.

    조종사들은 노조를 만든 이유에 대해 “과거 일본항공(JAL)은 사고가 많았는데 노조를 결성해 조종사들의 자부심이 높아지면서부터 사고가 훨씬 줄었다”고 말한다. 그러나 일부 항공전문가들은 미국의 팬암이나 노스웨스트는 과도한 노사분규로 세계 일류 항공사에서 무너져 내렸다고 지적한다. 대한항공 조종사노조는 지난 파업사태 때 전면파업이 아니라 부분파업을 했어야 했다. 제주처럼 다른 교통수단이 없는 곳에는 제대로 취항하고, 서울-부산처럼 기차나 고속버스 등 대체할 수단이 있는 노선에서 파업을 했다면 훨씬 더 좋은 평가를 받았을 것이다. 외국의 선진항공사들도 대개 부분파업으로 그들의 의사를 관철시킨다.

    어떤 상황에서든 ‘창공의 대통령’이 안전 비행을 책임져준다면 사회는 ‘지상의 노동자’를 인정할 것이다. 그러나 안전에 실패해 창공의 대통령 노릇도 제대로 하지 못한다면, 사회는 ‘지상의 노동자’를 인정하지 않으려 할 것이다. 안전한 항공사는 흑자를 낳고 흑자는 조종사들의 임금을 올리는 선순환 구조를 낳지만, 그 반대가 되면 최악의 구조가 탄생한다. 이제 노조를 만든 이상 조종사들도 이러한 불문율이 있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자기들만의 세계를 벗어나 폭넓게 주변을 살펴보아야 한다.

    한 조종사는 이렇게 말했다. “조종사들은 차를 운전할 때 여간해서는 남의 차를 들이박지도 않고, 또 박히지도 않는다. 항공기를 조종할 때의 조심성과 상황 예측성이 몸에 배서 방어운전을 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조심성으로 노조를 운영한다면 ‘우리의 날개’와 ‘색동날개’는 힘차게 퍼덕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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