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 12월호

“기업 매각협상 자신 없으면 용병 고용하라”

  • 이병혜

    입력2006-07-28 11: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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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우리나라는 기업을 외국에 팔아본 적이 거의 없습니다. 외환위기 이후 우리 기업들은 외국인 상대 인수합병작업 등을 통해 많은 국제협상을 한꺼번에 경험했습니다. 그러나 국제협상의 중요성에 대한 전반적 인식 부족이 엄청난 경제적 손실을 낳고 있습니다.”
    미국 포드자동차의 인수포기로 매각작업이 원점으로 돌아간 대우자동차가 지난 11월8일 결국 부도처리됐다. 지난해 8월 이후 1년이 넘게 진행돼 온 워크아웃(기업개선작업)의 성과는 찾아볼 길이 없고, 이제 1만여 협력업체들마저 연쇄부도를 걱정해야 하는 최악의 상황이 벌어졌다. 대우차의 기업가치는 더욱 더 떨어져서, 제너럴 모터즈(GM)에 팔더라도 헐값으로 넘길 수밖에 없는 형편이다.

    처음부터 치밀한 매각협상으로 일찌감치 새 주인을 찾았다면 지금 대우자동차는 어떤 상황일까. 국가적 협상력의 부재로 인해 치르는 대가가 너무 크다는 생각을 누를 길 없다.

    국제협상 분야의 전문가로 알려진 전성철 세종대 세계경영대학원장은 83년 이후 미국 뉴욕의 라이드 앤드 프리스트(Reid · Priest) 법률회사와 한국의 김 앤드 장(Kim · Chang)에서 기업전문 국제변호사로 일하면서 한국 굴지의 대기업들과 정부를 대리해 수많은 국제협상에 참여해왔다. 미국에서 일하는 동안 현지에 진출한 한국의 7대 종합상사 중 6개사를 고객으로 확보했고, 한국의 10대 그룹 계열사들을 모두 대리한 경험이 있는 그는 국내에서 몇 손가락 안에 꼽히는 국제협상전문가다. 미국이 슈퍼 301조를 내세워 한국을 위협할 때, 미의회 등을 상대로 그 부당성을 설파해 그들의 시퍼렇던 기세를 한 풀 꺾은 일화도 갖고 있다.

    지난 7월 세종대 세계경영대학원장에 취임한 뒤 ‘글로벌 경영전문가 육성’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는 그는 국제협상의 중요성에 대한 우리사회의 전반적 인식 부족이 엄청난 경제적 손실을 낳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무엇보다 정부와 민간기업이 협상의 중요성을 깨닫고, 협상전문가 양성을 서둘러야 한다고 강조하는 그에게 실패로 돌아간 대우차 매각 얘기부터 꺼냈다.

    ─포드가 갑작스런 대우차 인수포기를 선언해 마치 뒤통수를 맞은 느낌이었습니다. 대우자동차 매각협상에 도대체 어떤 문제가 있었던 것입니까?



    “우선, 무슨 일이든 다 지난 다음에 평가하고 비판하기는 매우 쉽습니다. 그런 면에서 이번 대우차 협상도 가혹한 비판의 유혹에 빠지기 쉽습니다. 그동안 신문에 보도된 여러 가지 징후로 볼 때, 이번 협상에 참여한 한국측 인사들이 대우차를 최대한 비싼 값에 팔기 위해 일단 최선을 다했다고 믿어집니다. 다만 그 과정에 일부 실수가 있었을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앞으로 그런 실수를 되풀이하지 않도록 바둑으로 치면 복기를 한다는 뜻에서 몇 가지 문제점을 지적하고 싶습니다.

    무릇 모든 협상에는 상업적 조건(com-mercial term)을 결정하는 것과 리스크의 범위를 결정하는 두 가지 요소가 있습니다. 다른 말로, 물건을 어떤 값에 사고 팔 것이냐 하는 상업적 조건도 중요하지만, 돌발상황이 발생할 경우 책임을 어떻게 나눌 것이냐를 정하는 리스크 관리도 그에 못지 않게 중요한 요소인 것입니다. 대우차 협상은 한 마디로 이 리스크 관리 면에서 다소 문제가 있지 않았나 생각이 됩니다.

    정부와 채권단은 입찰에 참여한 3개 컨소시엄 가운데 포드 1개사를 우선협상대상자로 지정해서 협상을 진행해 왔는데, 한 마디로 만약 포드가 실사를 다 한 후 인수를 일방적으로 포기할 경우는 어떻게 할 것이냐 하는 리스크 관리면에서 미흡했다고 볼 수 있지요.



    대우차 매각협상의 문제점



    ─오호근 전 대우구조조정위원장은 “집을 사려는 사람에게 집을 둘러보게 해 준 뒤 안 산다고 해서 어떻게 위약금을 요구하느냐, 그것은 국제관례가 아니다”라는 말을 했는데요.

    “그 말은 ‘국제관례’ 라는 말의 정의를 다소 잘못 이해한 점이 있지 않나 생각됩니다. 고정불변의 국제관례라는 것은 없습니다. 국제관례가 있다면 그것은 자기의 이익, 즉, 어떤 리스크든 리스크가 있다면 그것을 제대로 파악하고 그에 대비하는 것이 국제관례라 할 수 있겠지요. 지금까지 그런 예가 없었다고 해서 국제관례가 아니라고 할 수는 없겠지요. 예를 들어, 우리가 국민감정을 고려하여 포드의 회장이 한국을 방문했을 때 비행장에서 큰절을 한번 하도록 하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한다면, 과거에 그런 예가 없었다 해도, 그런 것을 요구할 수 있다는 게 국제관례입니다. 상대방이 그것을 적절치 않다고 생각해서 동의하지 않으면 할 수 없지만 우리의 이익을 보호하기 위해 지금까지 전례가 없던 것을 요구하는 것은 얼마든지 있을 수 있는 일입니다.

    이번 대우차 협상의 경우, 포드가 실사를 다 해보고 안 사겠다고 나자빠질 위험성, 즉 리스크는 분명히 있었습니다. 이러한 리스크에 대비하는 것이 도리어 국제관례라 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예상되는 리스크는 몇 가지 방법으로 관리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우선, 인수 희망 업체들에게 실사를 먼저 하게 하는 것입니다. 3개 사가 다 실사를 해보고 그 다음에 가격을 써내도록 하는 것입니다. 즉 입찰을 하는 것입니다. 그 입찰에 대해서는 당연히 두둑한 입찰보증금을 부과할 수 있고, 그랬으면 입찰을 해놓고 뒤로 나자빠지는 상황이 발생할 가능성은 매우 적었을 것입니다.

    우리는 그런 식으로 하지 않고 우선협상자를 먼저 지명하여 그에게만 실사를 하도록 했습니다. 그런데 포드만을 우선협상자로 지정하여 배타적인 실사권을 줄 때는 그에 대한 대가를 받을 수 있었을 것입니다. 즉 집을 사려는 사람이 여럿 있고 그 모두가 집을 보고 싶어 할 때 한 사람에게만 집을 보여준다면 이는 다른 사람에 비해 큰 특혜를 주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 특혜에 대해 아무런 대가를 받지 않고 공짜로 준 데에 문제가 있었던 것입니다.

    예를 들어, ‘너에게만 보여주고 네가 좋다면 너에게 팔겠다. 그러나 네가 다 보고 안 사겠다고 하면 다른 사람도 도망가게 될 것이고 그것은 우리에게 너무 큰 리스크다. 이 리스크에 대해 너희가 어떤 보상, 또는 안전장치를 해 달라’는 것은 얼마든지 타당성 있는 요구입니다. 아마도 이런 요구를 했다면 포드로서는 대충 다음의 몇 가지 시나리오 중 하나로 반응했을 가능성이 크다고 봅니다.”

    포드와 대우차 매각 협상이 무산된 데 대해 전원장은 무척 아쉬움이 많은 듯 이른바 리스크관리의 문제점을 논리적으로 자세히 설명했다.

    “첫번째 시나리오는 ‘우리가 사기는 반드시 산다. 다 보고 안 사는 일은 없을 것이다. 다만 값은 변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가 꼭 살 것이라는 보장의 징표로 예상 인수가격의 X%를 보증금으로 걸겠다’고 나오는 것일 테고, 두번째는 ‘우리가 살지 안 살지는 실사를 해봐야 한다. 그러나 지금 현재로 봐서는 아마도 살 것 같다. 다만 우리가 사지 않는다면 그것은 대우차가 생각보다 너무 나빠서 사지 않는 것이지 우리 내부사정(예를 들어 타이어 리콜사건 등) 때문에 사지 않는 것은 아닐 것이다. 우리 의도가 진지하다는 징표로 각서를 제출하겠다. (한국측의 요구에 따라) 그 각서의 이행 보증을 위해 예상 인수가격의 X%를 보증금으로 내걸겠다’고 나왔든가 아니면 세 번째로 ‘당신들이 염려하는 리스크는 알겠다. 그러나 우리는 이 시점에서 어떤 약속도 할 수 없다. 살 가능성, 사지 않을 가능성이 다 있다. 당신이 정말 우리가 사지 않을 가능성이 염려되어 어떤 보장책을 원한다면 우리는 차라리 단독협상자가 되지 않겠다. 협상대상자를 복수로 지명해도 좋다’는 식으로 나왔을 겁니다. 문제는 우리가 과연 포드가 그렇게 나자빠질 가능성을 예상하고 그에 대한 대비책을 요구했느냐 하는 것이지요”

    ─입찰보증금을 걸었다면 포드가 인수를 포기하는 일은 없었을까요?

    “물론 입찰 보증서의 조건에 따라 다릅니다. 예를 들어, 위의 첫 번째 시나리오의 경우에는 포기했다면 무조건 보증금을 떼였겠지요. 그러나 어지간해서는 포기하지 않았을 겁니다. 그러나 두 번째 시나리오의 경우 대우차를 속속들이 살펴봤더니 예상보다 부실이 너무 많다든지, 대우차 자체에 심각한 결격사유가 있다면 포기할 수가 있었겠지요. 포기하더라도 입찰보증금은 되돌려 받았겠죠. 다만 포기 이유가 대우의 부실 때문임을 입증할 책임은 포드에 있었겠죠. 하지만 만약 우리 정부가 설명하는 것처럼 포드가 타이어리콜 사태 등 자기 회사 내부의 문제로 대우차 인수를 포기하는 것이라면 보증금은 떼이게 되었겠죠. 이런 경우 우리로서는 매각이 지연되는 손해는 있지만, 적어도 금전적인 보상은 챙기게 되는 것입니다.”

    ─결국 입찰보증금을 받지 않은 것이 대우차 매각책임자들의 최대 실수라고 하겠군요.

    “제가 협상의 전말에 대해 신문에 난 것 이외에는 알지 못하니 그분들이 실수를 했다고 단언하기는 어렵겠지요. 예를 들어, 우리측이 포드에 단독 우선협상 권을 줄 때 ‘당신들이 다 보고 안 사겠다고 하면 우리측의 피해가 너무 크다. 그에 대한 대비책을 강구해 달라’고 요구했지만 포드측에서 막무가내로 거절하고 우리가 너무 급한 김에 그 리스크를 의도적으로 부담하기로 했는지도 모르지요. 협상에서는 계산된 리스크를 의도적으로 부담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 당시는 GM도 상당히 관심이 많았던 때인지라 그렇게 큰 리스크를 부담할 필요가 있었는지에 대해서는 판단의 문제를 제기할 수는 있겠지요.”

    화제를 돌려서, 제일은행과 서울은행 대한생명 등 외환위기 이후 정부가 주도한 부실기업 매각협상 전반에 대한 견해를 물었다. 정부는 이들 기업에 대한 매각협상과정에 “너무 나쁜 조건에 팔았다”는 비판에 몰리거나, 아예 매각 자체를 성사시키지 못해 실망을 주었다.



    크게 부족한 협상인력



    ─외환위기 이후 정부가 주도한 주요 매각협상의 허실을 평가한다면 어떻게 말씀하시겠습니까?

    “제일은행의 경우 매각이 이루어진 것 자체가 우리 정부로서는 상당히 큰 일을 한 셈입니다. 가격에 대한 논란이 있지만, 우리가 생각해야 하는 것은 제일은행이 국제입찰에 의해 팔렸다는 점입니다. 그것은 그 가격이 바로 국제 시장에서 제일은행이 받을 수 있는 시장가격이었다는 의미입니다. 만약 그것이 수의계약이었다면 값에 대한 논쟁이 나올 수 있겠지요. ‘화장실 가기 전과 갔다 온 후’ 논란은 의미가 없습니다. 우리나라처럼 관료적인 사회에서 그래도 정부가 주도하여 은행을 팔아 치울 수 있었다는 것은 평가할 만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잘 되지 못했거나 못하고 있는 케이스도 상당히 있을 것입니다. 예를 들어 한보철강의 경우, 네이버측의 대금지불에 선행하는 조건들(condition prece- dent)을 우리가 다 이행했느냐 하는 문제가 명쾌하게 규명이 되었는지 모르겠습니다. 사실 우리 정부 관료들이 협상을 하는데는 여건이 매우 어려운 점도 많습니다. 우선 정부에 사공이 너무 많아요. 이래라 저래라 지시하는 사람이 많다는 것입니다. 언론의 반응에도 신경 써야 합니다. ‘국부유출론’등 협상대표를 위축시키는 논쟁이 수시로 터져 나오죠. 정치사회적 분위기가 협상대표의 입지를 너무 좁히는 것이 문제입니다.

    둘째는 협상대표의 능력부족입니다. 한 마디로 우리 정부는 M·A 같은 대규모 국제협상을 한 경험이 별로 없습니다. 경험이 없으니 인재가 별로 없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지요.”

    ─그렇다면 민간기업들은 어떻습니까. 지난 2~3년간 외국기업과의 인수합병 혹은 자산매각이 아주 활발했는데, 협상기술이 좀 성숙했다고 볼 수 있을까요?

    “사실 우리나라는 기업을 외국에 팔아 본 적이 거의 없습니다. 외환위기 이후 우리 기업들은 외국인을 상대로 한 인수합병작업 등을 통해 많은 국제협상을 한꺼번에 경험했습니다. 과거 수십년간 전혀 경험해보지 못했던 일을 처음 하게 된 기업도 적지 않았습니다.

    위기상황에 자산매각 등이 이뤄졌기 때문에 오너들의 태도도 과거보다 좀 더 개방적으로 변했고, 협상담당자들의 협상기술도 상당히 발전한 것으로 보입니다. 전체적으로 봤을 때 우리 기업의 협상능력이 정부보다는 우수하다고 봅니다. 하지만 아직도 총체적으로는 우리 기업 역시 개선할 점이 많습니다.

    예를 들어볼까요. 우선 협상의 중요성에 대한 최고경영자의 인식이 부족한 기업이 많습니다. 협상대표와 최고경영자간의 커뮤니케이션이 부족하고, 협상대표에 대한 권한 부여가 충분하지 않은 경우도 많습니다. 또 협상테이블에 내보낼 인력이 부족하다는 것도 결정적인 문제인데, 기업내부에서 협상 경험이 있는 인재의 수가 절대적으로 부족하고, 키우는 분위기도 아니기 때문이죠.”



    미국 대기업의 협상가들



    ─선진국 기업들은 우리와 어떻게 다른가요?

    “아주 뚜렷한 차이가 있습니다. 우선 선진국 기업들은 협상이 ‘전문가의 일’이라는 분명한 인식을 갖고 있습니다. 그래서 협상에는 반드시 전문가를 내보냅니다. 미국 대기업에는 직함 자체가 협상가(negotiator)인 사람들이 있습니다. 우리 기업들은 건물을 사고 팔 때 협상이라곤 전혀 해본 일이 없는 총무부장을 무조건 내보내는 식이지만, 선진국 기업들은 전문적인 협상전문가가 총무부장의 지원을 받아 협상 테이블에 나갑니다.

    둘째 그들은 협상에 앞서 논리와 전략을 치밀하게 세웁니다. 상대방의 진정한 이해(interest)가 무엇인지 파악해서 어떤 논리로 설득할 것인지 작전을 세우는 것이죠. 또 예상되는 상황별로 대응 시나리오를 마련합니다. 반면 우리기업들은 ‘개당 500달러를 관철시키되, 마지노 선을 400달러로 하자’는 식으로 목표(position)만 정해나가는 것이 태반이죠.

    셋째 선진국 기업들은 리스크 관리에 매우 신경을 씁니다. 예상할 수 있는 모든 경우를 가정해서 그때 어떻게 대응할 것이냐를 검토하고, 이를 계약서에 빠짐 없이 반영하려는 노력을 합니다. 반면 우리 기업들은 리스크 관리 면에서 매우 소홀한 경향이 있습니다.”

    ─협상과 관련해서 선진국과 우리 사이에 이렇게 큰 수준 차가 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우리의 경우 근본적으로 협상의 중요성에 대한 인식이 제대로 돼 있지 않다는 데서 문제가 시작되는데, 그 결과 정부든 민간이든 협상전문가를 키우지 않는 풍토가 심각합니다. 한 마디로 협상을 ‘누구나 할 수 있는 일’로 인식하는 데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협상이라는 것은 한 마디로 테이블 위에서 벌어지는 경제전투입니다. 이 전투 하나 하나에서의 승패가 결국 전쟁의 승패를 좌우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전투에 참여하는 군인이 훈련이 잘 되어 있으면 전투를 잘 하고 그렇지 않으면 못하는 것입니다. 선진국에서는 협상은 훈련된 전문인이 하는 것이라는 인식이 확실히 자리잡고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그런 인식이 부족하니 전투에 아무나 내보내는 것이고 그렇기 때문에 전투가 잘 안되는 것입니다.

    물론 다른 요인들도 있습니다. 우선 공무원의 경우 소위 순환보직제 때문에 협상에 나서야 할 보직의 주인이 너무 자주 바뀝니다. 그렇다보니 중요한 협상에 업무파악도 제대로 되지 않은, 또 훈련받지 않은 신참이 나서기 일쑤이고, 결과는 국익 손실로 돌아옵니다. 협상전문가가 조직 내에서 별로 대우를 받지 못하기 때문에, 우수한 인재들이 그 자리를 기피한다는 것도 협상전문가 육성에 걸림돌이 된다고 봅니다.

    민간에서도 앞서 지적한 것처럼 협상전문가의 필요성에 대한 인식이 부족해서 인재육성이 잘 되지 않고 있죠. 또 사회적으로도 변변한 협상전문과정 하나 없는 실정 아닙니까. 외국의 경우 어지간한 대학에는 협상전문가 양성코스가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이런 것이 필요하다는 공감대조차 아직 형성돼 있지 않은 실정입니다”

    답답해 하고 있기에는 우리앞에 놓인 현실이 너무 급박한 게 사실이다. 대안을 찾는 것으로 화제를 돌렸다.

    ─대우차와 한보철강 같은 실패를 반복하지 않도록, 정부의 부실기업 매각담당 관계자에게 조언을 한다면 뭐라고 하시겠습니까?

    “앞에서 한 여러가지 이야기 외에, 협상에 자신이 있으면 직접 하고 없으면 용병을 고용하라는 것입니다. 협상에 익숙한 사람에게 임시 직함이라도 주어서 협상을 주도하게 하는 것도 한 방법입니다. 또, 아예 인센티브를 충분히 주어 협상을 전문가에게 통째로 맡기는 것도 좋은 방법입니다. 예를 들어, 미국의 투자은행가(investment banker)들은 대체로 무자비한 협상가들입니다. 값을 많이 받으면 받을수록 그들에게 돌아가는 커미션이 많도록 하는 방식으로 그들에게 맡기는 것도 고려해 볼 수 있는 좋은 방법입니다. 그들이 받는 값이 바로 시장가격이라고 생각해도 큰 무리가 없을 것입니다.

    또 하나 중요한 것은 상업적 조건(commercial term)을 유리하게 이끌어내는 것 못지 않게 리스크 관리에 최선을 다하라는 겁니다. 돈 몇 푼을 더 받아내는 것보다 만일의 상황에 대비해 손해를 최소화할 수 있는 장치를 잘 마련하는 것이 더 중요할 수도 있습니다. 리스크 관리를 제대로 하기 위해서는 협상팀 내 변호사와 협상주체가 의사소통을 긴밀하게 함으로써 상황에 따른 리스크 발생의 가능성을 충분히 알려주는 것이 중요합니다.

    협상은 배울 수 있고 가르칠 수 있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협상에는 몇가지 공인된 수칙이 있습니다. 계약서의 첫 초안 (first draft) 작성을 상대측에 맡기지 말고 우리측이 작성하는 것이 노력은 더 들지만 항상 유리합니다. 우리가 원하는 조건들을 처음부터 포함시키기가 쉽기 때문입니다. 이런 유의 수칙들에 대해 교육을 받아야 합니다.”

    ─우리의 협상수준이 크게 낙후돼 있음을 지적하셨는데, 그렇다면 이를 하루 빨리 선진국 수준으로 끌어올리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앞서 강조한 것처럼 정부와 민간기업이 모두 ‘협상은 전문분야’라는 인식을 새롭게 해야 합니다. 그것이 출발점입니다. 협상전문가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적극 육성해야 합니다. 그리고 중요한 협상에는 그 분야의 기능적 담당자(예를 들어 관리담당 상무)외에 전문지식과 경험이 있는 사내(협상을 많이 해본 직원) 또는 사외 협상전문가(국제변호사 등)를 반드시 함께 보낸다는 자세가 돼야겠죠.

    구체적으로 정부는 공무원의 경력관리 시스템을 개선해서 정책적으로 협상전문가를 육성하고, 이들의 처우를 개선해야 합니다. 그래서 가장 유능한 인력이 협상 테이블에 나설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특히 이들의 보직이동은 가급적 최소화해서 업무의 연속성을 확보할 수 있어야 합니다. 사실 외교통상부 같은 곳에는 이런 통상협상 전문가들이 우글거려야 정상입니다.

    또 정부 내에서 전문가를 찾기 힘든 협상에 대해서는 과감하게 민간전문가를 활용해야 합니다. 때에 따라서는 외국의 유능한 인재를 활용할 필요도 있죠. 외환위기 직후 우리나라가 외채구조 조정협상을 성사시킨 데는 미국인 마크 워커 변호사의 도움이 컸습니다.

    기업들도 마찬가지로 협상전문가 육성을 서둘러야 합니다. 특히 이들의 외국어 실력 배양을 위해서라도 사내에 외국인력 채용을 늘릴 필요가 있습니다. 가까이에서 외국인과 늘 대화하는 환경이 아니면 국제협상에서 충분히 활용할 만한 외국어 실력을 쌓아나가기가 현실적으로 어려울 것입니다. 사회적으로 경영대학원 등에 질적으로 우수한 협상전문가 양성코스가 마련된다면 더욱 좋겠죠.”

    ─협상전문가 육성을 목표로 최근 국내 일부 국제대학원들이 전문강좌를 개설하고 있지 않습니까?

    “아직은 만족할 만한 수준이 못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만 이런 노력들이 더욱 확산될 필요가 있습니다. 세종대 세계경영대학원의 경우도 협상 스쿨의 개설을 구상하고 있습니다.”



    협상의 기본은 신뢰와 합리성



    ─내일이라도 당장 협상에 나서야 할 실무자들을 위해, 전문가로서 ‘필승 협상’의 노하우를 좀 소개해 주시죠.

    “협상을 잘 하려면 몇가지 원칙을 지켜야 합니다. 이 원칙을 잘 지키면 어떠한 협상이라도 성사시킬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

    첫째는 인간관계를 협상의 논점으로부터 분리해야 합니다. 협상에 성공하기 위해서는 두 상대방이 같이 노력하여 이슈들을 함께 공략한다는 협조와 공생의 정신이 필요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상호간에 ‘신뢰’가 쌓여야 하고, 신뢰를 쌓기 위해서는 ‘합리성’을 항상 견지해야 합니다. 성공적인 협상이란 한 마디로 ‘신뢰’와 ‘합리성’이라는 말로 표현할 수 있습니다. 인간적으로 좋은 관계를 맺으면서 부드러운 분위기에서 협상을 진행하려는 노력이 필요하지만, 상대방의 불합리한 주장에 대해서는 터프하게 접근해야 합니다. 그런 것도 신뢰를 쌓는 방법의 하나입니다.

    둘째는 상대방의 진정한 이해관계(Interest)과 외형적 요구조건(Position)을 구분해서 진정한 이해관계를 공략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협상에서 상대방이 내거는 요구조건이란 사실상 빙산의 일각이 나타난 것에 불과합니다. 그 밑에 있는 빙산의 90%가 과연 무엇인가를 파악하여 그것을 공략해야 합니다. 실패한 협상의 경우 대부분 협상대표들이 처음 내세운 요구조건을 관철시키는 데 너무 경직되게 매달리다가 실패하는 일이 많은데, 상대방의 진정한 관심이 무엇인가를 파악해서 이를 만족시킬 수 있는 타협안을 찾아낼 수 있어야 합니다.



    국가와 기업의 핵심경쟁력



    셋째는 성공적인 협상은 갭을 좁히는 것이 아니라 선택의 폭을 넓히는 작업이라는 것을 명심해야 합니다. 갭을 줄이려면 모두 양보해야 하는데 그것이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조금만 창의적이면 갭을 줄이지 않고도 모두가 만족할 수 있는 제3의 대안(Option)을 쉽게 찾을 수 있습니다.

    앞서 말한 대로 양쪽의 진정한 이해관계를 반영하는, 양쪽이 모두 만족할 수 있는 윈-윈의 대안을 찾을 수 있도록 창의력을 발휘하는 작업이 중요합니다.

    그래서 협상은 테이블 한 쪽에 두 상대방이 나란히 앉고, 다른 한쪽에 문제를 놓은 채 함께 해결책을 모색해 나가는 과정이라는 말도 합니다.”

    ─요즘 젊은이들 중에는 오대양 육대주를 누비면서 국제협상 전문가로 기량을 발휘하겠다는 꿈을 가진 사람이 많다는데, 탁월한 국제협상 전문가가 되려면 어떤 자질이 필요할까요?

    “일단은 언어구사 능력을 충분히 갖춰야겠죠. 협상이라는 것이 논리로 상대방을 설득하는 작업인만큼 외국어능력뿐 아니라 정치 경제 문화 역사 등 다양한 지식을 배경으로 자신의 생각을 인상깊게 전달할 수 있는 능력이 필요합니다. 또 상황에 대한 판단력, 순발력, 창의력도 협상의 쟁점을 파악하고 대안을 마련하기 위해 중요한 요건입니다.

    덧붙여 상대방이 호감을 갖고 신뢰할 만한 풍모를 갖췄다면 더더욱 좋을 것이고, 사람과의 관계를 제대로 설정하고 발전시킬 줄 아는 사교성도 필요합니다. 이와 함께 어떤 쟁점을 놓고 합의점에 도달할 때까지 상대를 설득하는 끈기와 배짱도 필요하죠”

    인터뷰를 마치면서 전 원장은 세계화 시대에 국제협상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를 다시 한번 강조했다. 과거에는 총칼로 전쟁을 했다면 이제는 비즈니스의 전쟁이 벌어지고 있고, 그 전쟁의 수단은 협상이라는 것이다. 그는 “협상테이블에서 엄청난 기업이익과 국가이익이 좌우되고 있다”며 “협상을 유리하게 이끌어나갈 수 있는 능력은 곧 그 나라와 기업의 핵심 경쟁력”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전 원장은 또 국가간의 협상에 있어서 강대국의 ‘힘의 논리’가 어느 정도 작용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합리의 원리’도 엄연히 존재한다고 지적했다. 우리가 탄탄한 논리를 바탕으로 상대방을 설득하면, 아무리 상대가 강대국이라 하더라도 수긍할 수밖에 없는 것이 국제협상의 세계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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