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 12월호

‘개성파 글쟁이’ 7인의 글쓰기 노하우

  • 입력2006-07-28 11: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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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평생 글쓰기와는 무관하게 살아온 사람일지라도 때로는 무언가를 써보고 싶은 욕망을 느낄 때가 있다. 혹은, 쓰지 않으면 안될 때도 있다.
    • 그러나 대부분 사람들에게 글쓰기는 ‘두렵다.’
    • 왜 두려운가? 안해본 일이라서? 어렵고 골치 아파서? 해보지도 않고 그런 말을 하면 곤란하다. 처음엔 서툴고 유치한 글이 될지라도, 그 안에 글쓴이의 진심이 담겨 있다면 충분히 감동적이다. 쓰고 싶을 때 써 보자.
    • 그러면 당신의 삶이 달라질 수 있다.
    바로 보아야 바로 쓴다.

    시를 잘 쓴다는 것은 자기가 사는 당대 사회를 자기만의 눈으로

    해석하고 담아내는 일이다.

    김용택 (시인)

    글을 쓰는 일은 어떤 일일까? “사물을 바로 보마”라는 말은 김수영 시인의 시 구절이다. 사물을 바로 보는 것. 그것이 시를 잘 쓸 수 있는 가장 기본적인 자세다. 보지 않으면 무엇이 생각나지 않을 것이고, 마음에 생각의 파문이 일지 않으면 글을 쓸 수가 없다. 보고, 생각하고, 생각한 것을 표현하는 것, 그것이 글쓰기의 기초다.



    글을 쓰는 사람은 세상에서 벌어지고 있는 모든 일에 관심을 갖는다. 관심을 가질 뿐 아니라 그 관심을 종합해서 자기의 시적 경험으로 자기화해 그것을 시로 형상화한다.

    글을 쓰기 전에는 그냥 무심히 보아 넘겨버렸을 그 어떤 것을 기억해 두었다가 시를 써야 할 때 그것을 끄집어내 글로 쓰는 것이다. 글쓰는 사람들의 보관 창고에는 그러므로 온갖 것들이 보관되어 있을 것이다.

    나는 아이들과 매주 글쓰는 시간을 갖는다. 처음 글을 쓰기 시작했을 때 아이들은 아무런 자기 감정이 담겨 있지 않은 글들을 아무런 감흥 없이 써 왔다. 모두 관념적인 표현들뿐이었다. 아이들과 함께 글을 쓰기 시작한 지 반년이 되어서야 아이들은 자기 생각을 담아내는 글들을 쓰기 시작했다.

    글을 쓰지 않을 때에는 그냥 스쳐지나버렸을 풍경들을 마음에 담는 습관이 생긴 것이다. 달이 떠 있는 강물, 혼자 보는 별, 하늘을 나는 새, 자기 집에 있는 곡식들과 짐승들의 모양, 아버지 어머니가 일하는 모습들을 마음에 담아 두었다가 글을 쓸 때 풀어내는 것이다.

    나는 늘 아이들에게 자기가 한 일을 쓰라고 권한다. 없는 일을 만들어 쓰지 말고 한 일을 쓰게 함으로써 아이들은 사실을 쓰기 시작하고, 그 위에다가 자기의 생각을 얹어 보는 것이다. 나는 나무를 보는 일을 시킨다. 보아라 나무에 무슨 일이 일어나는가? 보아라 강물에서 일어나는 일들은 어떤 것이 있는가? 아이들은 그러므로 사물을 보는 것이다.

    시는 무엇보다도 마음에서 우러나야 한다. 억지로는 절대 글이 되지 않는 법이다. 세상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들을 자세히 보아야 바로 보는 것이다. 바로 보는 일이란 남의 눈이 아니라 자기만의 눈을 갖는 것이다. 세상에는 새것이 없다. 다만 새로운 눈으로 세상을 해석하는 것이다. 그래서 시인은 탄생한다고 한다. 그것이 창조다. 창조는 경이의 눈으로 사물을 보아야만 가능하다. 그래서 시인들은 감동을 잘 한다. 다른 사람의 눈에는 하찮고 별 볼일 없는 풀 한 포기로 세계를 읽어내는 경이의 눈을 시인은 갖고 있다.

    우리 반 2학년 창우가 어느 날 아침 나에게 일기장 대신 글쓰기 노트를 가져왔다. 창우는 앞으로 일기 대신 동시를 쓰겠단다. 그러면서 글 한 편을 가져 왔는데 제목은 ‘반디불’이다. 반딧불이가 아니라 반디불이지만, 그리고 받침과 띄어쓰기와 문장의 앞뒤가 잘 맞지는 않았지만 나는 감동했다.

    “반디불은 살으는대가 어디일까 반디불은 밤에 우리 집에 만치만 참 아름답다 반디불은 돌아다니는 게 참 예쁘다 나는 반디불이 아름답다 그리고 예쁜 반디불이다”

    중요한 것은 창우가 드디어 무엇을 본 것이다. 반딧불이들이 날아다니는 앞산을 보고 방에 들어와 시를 썼을 창우의 마음과 모습은 그림이요 시다. 날아다니는 시인의 마음을 가지게 되었다.

    창우가 그런 시를 쓰고, 시인의 마음을 가지게 되었다고 해서 시인은 아니다. 창우는 시의 눈을 가졌지만 세상을 종합하는 힘이 없는 것이다. 창우는 시 속에 아무런 사상이나, 사회와 역사, 그리고 인간 생활 전반에 대한 그 어떤 철학적인 내용을 담을 수 없는 것이다.

    시를 잘 쓴다는 것은 자기가 사는 당대 사회를 자기만의 눈으로 해석하고 담아내는 일일 것이다. 자기와 세계 간의 긴장을 시라는 형식을 통해 새로운 눈으로 해석하는 것, 그것이 시를 잘 쓰는 것이다. 우선 사물을 자세히 보고, 그리고 사물을 바로 보는 일이야말로 자기를 세상에 바로 세우는 일일 것이다.



    약장수가 가수를 내세우는 까닭

    노회한 약장수는 지나가는 사람 붙잡고 다짜고짜 만병통치약 살 것을 요구하지 않는다. 노련한 작가도 마찬가지다.

    이윤기(소설가)

    나는 어떤 도시로 여행하면 먼저 그 도시의 장거리를 구경하고 싶어한다. 국내의 도시로 여행하든 외국 도시로 여행하든 마찬가지다. 해거름에 장거리에서 첫날의 저녁밥을 먹는 일은 그 도시의 속살 냄새를 맡는 일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남도(南道)의 한 소도시. 나는 초행인 그 소도시의 장거리를 홀로 걷는다. 어디에선가 슬픈 노래가 들려오고 있다. 텔레비전이나 라디오에서는 더이상 들을 수 없을 듯한, 한물간 여가수의 흘러간 노래다. 나의 걸음은 그쪽으로 쏠린다. 짐작했던 대로 약장수가 판을 벌이고 있다. 보고 듣는 사람의 마음을 짠하게 하는 여가수의 노래는, 울긋불긋하게 차려입은 차력사의 차력 시범으로 이어진다.

    발길 돌릴 것 없다. 잠들기 전까지 마땅히 할 일도 없다. 밑져야 본전이다. 차력사의, 보아도 그만 안 보아도 그만인 차력 시범은 원숭이 묘기로, 원숭이 묘기는 약장수의 본론인 약 선전으로 이어진다. 그러다 나는 그만 여가수의 페이소스, 차력사의 오버액션, 약장수의 허풍에 차례로 정이 들고 만다.

    어둑어둑해진 녘에 장터를 떠나는 내 손에는, 나도 모르는 사이에 사게 된, 나에게는 소용도 없는 만병통치약이 들려 있다. 약장수는 여가수의 노래로 나를 판으로 끌어들여 약을 팔아먹은 것이다. 언필칭 성동격서(聲東擊西)다. 공갈은 동쪽에다 치고 주먹질은 서쪽에다 하기다.

    나는, 글쓰는 일 역시 장거리 약장수가 약을 파는 것과 흡사하다고 생각한다. 장거리 약장수가 약을 팔려면 먼저 사람을 모아야 하듯이, 글로써 자기 뜻을 전하려면 먼저 독자를 글 속으로 끌어들임으로써 독자로 하여금 읽게 해야 한다. 읽히는 데에 실패한 주장은 발화(發話)되지 못한 주장이나 마찬가지다. 약장수에게, ‘독자를 글 속으로 끌어들이기’ ‘그 글을 기어이 읽히기’에 해당하는 것이 바로 사람 모으기다. 그래서 노회한 약장수는 지나가는 사람 붙잡고 다짜고짜 만병통치약 살 것을 요구하지 않는다. 그는 먼저 여흥을 베풀어 사람들 마음을 느슨하게 푼 다음에 본론을 슬그머니 내놓는다. 노련한 작가가 쓴 글의 도입부는 대체로 사람 마음을 푸근하게 만든다. 그래서 독자는 그 글에 끌려 들어간다. 작가는 한참 끌고 들어가다가, 본론에 이르면 안면을 싹 바꾸어 버린다. 약은 이 대목에서 파는 것이다.

    “어린이 여러분, ‘보통’의 반대말이 무엇이지요?” 하고 선생님이 묻자, “예, 선생님, ‘곱배기’요” 하는 대답이 즉시 튀어나왔다. 그는 자장면 집 아들이었다. 이와 같이 사람들은 자신이 젖어 있는 습관이나 스스로 처해 있는 상황에서 쉽게 벗어나지 못한다.…

    경제학자 정운영 박사가 올림픽 이후의 경제를 걱정하면서 지금부터 12년 전에 ‘한겨레신문’에다 쓴 글의 들머리다. 이 노련한 약장수는 이런 들머리로, 경제수치 읽는 것이 질색인 나 같은 사람에게까지 자신의 주장을 펴는 데 판판이 성공한다.

    군대 생활할 때 나는 책을 좀 읽고 싶었다. 하지만 하급자 시절에는 책을 읽을 수가 없었다. 하사관들이나 고참병들은 내가 즐겨 읽는 영미 소설이나 일본 소설을 자주 빼앗아가고는 했는데 나는 책을 빼앗길 때마다 심한 절망을 느끼고는 했다. 항의하다가 얻어맞은 일도 있다. 그래서 나는 전략을 수정했다. 표지를 갈아 끼운 것이다. 말하자면 표지를 ‘세속의 길 열반의 길’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 ‘존재와 무’ 따위로 바꾼 것이다. 하사관이나 고참병들은 더 이상 빼앗아가지 못했다.

    그들로 하여금 쇼펜하우어의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를 읽힐 묘안을 낸 것도 그 때다. 책표지를 ‘청춘의 쌍곡선’으로 바꾸면 얼마든지 가능했을 것이다. 나는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도 들머리는 ‘청춘의 쌍곡선’ 같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한번도 뵌 적이 없지만, 미국까지 싸가지고 간 ‘광대의 경제학’ ‘저 낮은 경제학을 위하여’를 정독하면서 글쓰기를 배웠으니 나는 그분의 문하인 셈이다. 약장수가 가수와 차력사를 내세우는 까닭을 이제야 어렴풋이 짐작한다.



    글쓰기 노하우글쓰기는 내 삶의 표현

    내게는 문학이 반찬, 미술이 밥이다. 둘이 다투는 경우는 거의 없다.

    두 우물에서 나온 물은 행복하게 뒤섞여 공존한다.

    김병종(화가)

    많은 사람들로부터 받는 한결같은 질문이 있다. 화가인 당신은 왜 글을 쓰느냐. 한 우물만 파도 될까말까 한 세상에 그렇게 여러 가지를 하면 화가로 성공할 수 있겠느냐와 같은 것이다.

    가끔 호의적인 반응을 보내오는 분도 있기는 하다. 전문적으로 글쓰는 일에 종사하지도 않는 당신이 어쩌면 그렇게 글을 잘 쓰느냐는 물음이 그것이다. 지난 30년간 이런 질문을 하도 많이 받다 보니 이제는 누가 물을라치면 속으로, 또 그 얘기, 하고 실소해버린다. 이런 질문을 받을 때마다 나는 사람들의 머릿속은 참으로 토지등기등본처럼 영역가름이 선명하구나 하는 것을 느끼곤 한다.

    나는 왜 글을 쓰는가. 한마디로 말해서 글쓰기가 내겐 삶의 한 방식이기 때문이다. 그림 그리기가 내 삶의 한 방식인 것처럼 글쓰기도 나의 유력한 삶의 방식이기 때문이다. 그 점에 있어서는 독서나 여행도 마찬가지다. 나는 서음(書淫)이라 할 만큼의 독서광에, 세계를 예순 나라 이상 돌아다닌 여행광이다. 독서나 여행 또한 내 삶과 분리해서 생각할 수 없는 삶의 한 방식임은 물론이다.

    그런데도 허다한 사람들의 뇌리 속에는 그림은 언제 그리나 하는 ‘껄쩍지근함’이 있는 것 같다. 그러나 그런 염려일랑 접어두어도 좋을 듯하다. 나는 충분히, 그리고 열심히 화가라는 역할을 감내하고 있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들이 ‘문학의 시대는 갔다’는 비관적인 견해를 피력한다. 더 나아가 인문학은 죽었다고 말하기도 한다. 어느 정도 사실일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전자 매체가 발달한다 해도 문학이나 글쓰기의 행위는 죽을 수 없는 사항이다. 인간이 사색하는 한 글쓰기는 계속될 것이다. 오늘도 나는 사색한다. 그리고 그 사색의 결정물들을 성격에 따라 글과 그림으로 나누어 표현한다.

    내가 글쓰기에 별 어려움을 느끼지 않는 것은 물론 수십 년 동안의 왕성한 독서 때문이라고 생각하지만, 내 나름의 회화적(繪畵的) 글쓰기 스타일을 갖게 된 것에는 그림의 상상력이 많은 도움이 되어주었다. 마찬가지로 그림 그리는 작업에는 문학적 상상력이 많은 영향을 끼치게 되었다. 그래서 내게는 문학이 반찬, 미술이 밥이다. 둘이 다투는 경우는 거의 없다. 두 우물에서 나온 물은 행복하게 뒤섞여 공존한다.

    문학과 글쓰기가 죽어버린 시대인지는 모르겠으되 요즈음 문학과 글쓰기의 영역이 현저히 줄어버린 것은 사실이다. 이것은 유감스러운 일이다. 왜냐하면 사색이 줄어들고 행위만 난무하는 시대라는 증거일 것이기 때문이다. 사색 없는 행위는 얼마나 건조하고 위험한 노릇인가. 노래방이 퍼져서 아마추어 가수들이 넘쳐나게 되었듯 작문 교실이라도 퍼져서 글쓰기의 유행이라도 불어닥쳤으면 싶다.

    나는 무슨 글이든 탈고하려면 거짓말 조금 보태서 열댓 번을 뜯어고친다.

    그러면서도 언젠가는 과학을 시로 쓰리라 꿈꾼다.

    최재천(동물학자)

    나는 어려서부터 글쟁이가 되고 싶었다. 자연과학을 하는 사람의 고백치곤 좀 어쭙잖겠지만 아홉 살 때부터 시를 쓰기 시작했다. 학교 교지에 몇 편 실은 것을 빼고는 어디 변변하게 시다운 시 한 편 발표한 것도 아닌 주제에 감히 어려서부터 시를 썼노라고 떠들 수 있으랴만, 단 몇 줄의 시를 쓰기 위해 며칠씩 가슴을 졸인 경험 정도는 있다는 말이다.

    고등학교 시절 한 동안은 조각에 푹 빠져 한때 미대에 가려는 꿈을 꾸기도 했다. 문과를 가려다 무슨 운명의 장난인지 이과에 배치된 이 불행한 소년에게 그래도 가장 문과 냄새가 나는 자연과학 분야는 생물학이었다. 어려서 아버지를 따라 상경하여 학교는 결국 서울에서 다녔지만 방학이란 방학은 거의 깡그리 고향 할아버지 댁에서 보낸 나에게 동물을 공부할 수 있다는 것은 상당한 위안이었다.

    문학도의 꿈을 접은 지 여러 해가 지난 오늘 나는 동물행동학자가 되어 돌아와 어느 문인 못지않게 왕성한 집필활동을 하고 있다. 내가 쓰는 글은 거의 모두 생명이 그 주제다. 돌이켜보면 나는 늘 생명에 대해 고민하며 살아온 것 같다. 생명의 아름다움을 시로 표현하려 했고, 생명의 모습을 깎아보려 하다가 이제는 아예 그 속을 헤집고 있다.

    나는 내가 자연과학을 하게 된 것을 무척 다행스럽게 생각한다. 과학자치고 제법 글 흉내를 낸다고 생각해주는 덕에 여기저기 겁없이 글을 뿌리며 산다. 또 자연과학, 그중에서도 동물행동학을 공부한 덕에 그냥 글만 써온 이들에 비해 소재가 풍부한 편이다. 저 광활한 자연에서 퍼오는 내 글의 소재는 쉽게 마르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과학이 내 글에 준 가장 큰 선물은 뭐니뭐니 해도 정확성이다. 과학논문의 글이란 문학적 수려함보다 내용의 정확한 전달이 더 중요한 법이다. 미국에서 공부한 죄로 나는 과학논문을 영어로 연습했다. 영어에 비하면 우리말은 아름답긴 해도 그리 정확한 언어는 못된다. 많은 경우 주어가 없어도 그만이고 여러모로 느슨한 구조를 지녔다. 영어로 배운 글쓰기가 내게 준 가장 큰 교훈은 쉽고 정확하게 쓰라는 것이었다.

    우리 나라에도 그의 책들이 번역되어 잘 알려진 하버드 대학의 진화생물학자 스티븐 제이 굴드는 크고 화려한 붓을 휘두른다. 그러나 가끔 서평가들로부터 그가 도대체 무슨 얘기를 하려는 것인지 모르겠다는 비판을 듣는다. 자신의 박식함을 알리는 데 급급한 나머지 때로 글을 쓰는 본분을 잊는다는 것이다. 그에 비하면 하버드 대학의 내 스승 윌슨은 어느 서평가로부터 다음과 같은 평을 얻었다. “윌슨의 글을 읽은 후 ‘그래서 그가 무슨 얘길 하려 했느냐’를 묻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몇 년 전 결코 짧지 않았던 미국생활을 청산하고 귀국하여 처음으로 원고 청탁을 받았을 때 며칠 밤을 꼬박 새우며 괴로워했던 기억이 난다. 어려서 흉내내던 문학적인 글쓰기와 영어로 배운 과학적 글쓰기가 내 안에서 서로 뒤엉켜 싸움질만 할 뿐 도무지 게워지질 않았다.

    컴퓨터가 아니었더라면 나는 아직도 그 전쟁에 휘말려 헤어나질 못하고 있을 것이다. 일단 이 술 저 술 실컷 들이키곤 컴퓨터에 모든 걸 왈칵 토해버렸다. 그러고 나서 차근차근 주워담기 시작했다. 몇 번의 산고를 겪으며 그렇게 끄집어낸 내 글은 어릴 대의 문학적 감성은 조금 잃었을지 모르나 대신 간결함과 명확함을 얻었다.

    아직도 우리 문인들 중 상당수는 컴퓨터가 두려워 원고지에 글을 토하고 있다 들었다. 나로서는 상상이 가질 않는 일이다. 컴퓨터는 내가 미처 잊기 전에 마구 쏟아놓은 낱말들을 그리 어렵지 않게 자르고, 옮기고, 붙이고, 꿰매준다.

    나는 무슨 글이든 탈고하려면 거짓말 조금 보태서 적어도 열댓 번은 뜯어고친다. 그래도 아직 한번도 컴퓨터를 구겨 쓰레기통에 던져보지 않았다. 한 문장 한 문장 소리 내어 읽으며 글이 내 귀에 음악이 되어 구르는가 점검하는가 하면 주어, 동사, 형용사, 관사가 제가끔 틀림없이 자기 자리에 앉아 있는지를 확인한다. 남의 글을 읽을 때 문장이 정확하지 않으면 글맛이 딱 떨어지기 때문이다. 그러면서도 언젠가는 과학을 시로 쓰리라 꿈꾼다.



    문체와 사고에 대한 몇 가지 단상

    글의 설득력은 곧 그 인격의 설득력으로 연결된다.

    그래서 쉼표 하나에도 개성을 담는 게 가능해진다.

    정은숙(시인)

    1. 말은 잘 하는데 글은 못 쓴다

    디지털 시대, 하이퍼텍스트 시대가 되기 전부터 직업적으로 타인의 글을 읽어온 사람이 보기엔 현재 너무 많은 글이 난무하고 있다는 느낌이다. 흡사 봇물이 터진 것처럼 많은 사람이 자신의 이야기들을 글로 적어 출판사로 투고하고 있다. 이제 출판사들은 투고 원고만을 전문적으로 읽어주는 사람을 고용해야 할 상황이다. 디지털 혁명이 글쓰기 혁명을 불러온 형국인데 문제는 타인의 글을 읽고 나면 내 자신이 먼저 착잡해진다는 것이다(보내온 원고의 내용들도 착잡한 경우가 많다).

    무슨 채팅방이나 게시판을 기웃거리지 않아도 도처에 설익은 말을 글로 바꿔놓은 숱한 문자들(글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함량미달이라는 뜻에서)을 만나게 되는데, 그 순간 연옥이 따로 없구나 하는 감상 속으로 빠져드는 경우가 한두 번이 아니다. 세상 모든 일이 그렇듯 남 앞에 나서려면 어느 정도 공력을 쌓은 후라야 한다. 언제까지 문화가 ‘어린 것들’의 재롱을 보는 것과 같은 날것 취향에 빠져 있어야 하는가.

    그것도 십대에 한정되는 듯하지만 글을 쓰거나 매만지는 사람의 입장에서 볼 때 너무나 말은 잘하는데 글을 못 쓴다는 느낌이 든다. 이름만 대면 누구나 다 알 만한 유명인사의 글을 본 적이 있는데 브라운관에서 자신의 생각을 피력할 때와는 너무 딴판인 글쓰기 앞에 황당했던 기억이 난다. 물론 그것은 글쓰기보다는 말하기를 더 큰 가치로 두는 작금의 상황이 작용하고 있다는 것은 모르는 것은 아니지만.

    2. 사는 만큼 쓴다

    기능적인 글쓰기에 대한 나 자신의 혐오는 글쓰기란 결국 삶 쓰기이고 사는 만큼 쓴다는 고전적인 생각에 바탕을 두고 있다. 기능적인 글쓰기, 단지 의사전달 위주의 말을 대신하는 글쓰기가 위세를 드높이다 보니 쓴 것은 많은데 그 어디에도 그 사람의 생각이 들어 있지 않은 경우를 쉽게 발견하게 된다. 흡사 누군가 머리 속에서 불러주는 것을 저 19세기 말 초기 다다이즘의 초현실주의적 자동기술법으로 받아 적은 것이 아닌가 하는 의문이 드는 것이다. 그런데 다다이스트의 언어는 기능적인 언어가 아니라 예술적인 언어였잖은가.

    따라서 글쓰기는 결국 독창성, 사고력에 바탕을 둔 삶 쓰기이고, 글의 설득력은 곧 그 인격의 설득력으로 맥락지어진다. 필자 가운데는 쉼표 하나에도 개성을 담는 이가 있는데 이런 이들은 곧 그 삶의 태도가 그 속에 스며 있다고 판단되는 것이다.

    물론 여기에서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이 어디 있느냐고 말할 수 있지만 상호 텍스트성에 기대면 인용조차 자신의 독창적인 글쓰기의 연장임을 우리는 추측해볼 수 있다. 어느 비평가의 ‘인용만으로 된 글짓기를 해보고 싶다’는 토로는 바로 이것을 말한 것이다. 그런데 우리의 현실은 생각의 독창성보다는 사고의 편이성 때문에 남의 생각을 베끼는 글짓기가 성행하고 있는 것이다. 결국은 모든 것이 글쓰기 이전으로 환원되고 마는 것이다.

    3. 쓰는 것이 삶이 되면 불행하다

    글을 쓴다는 것은 삶을 쓰는 것이고 삶을 쓰는 것은 삶을 부단히 애쓰며 산다는 의미라고 나는 생각한다. 글쓰기와 삶쓰기는 이처럼 분리할 수 없는 그 무엇이다. 그러나 동시에 문학적인 언어에서는 위반해야 할 그 무엇도 된다. 삶의 불행은 문학의 축복이 된다. 물론 모든 불운했던 삶이 위대한 문학이 되지 않는다는 것은 새삼 말할 필요가 없다. 시를 쓰는 눈으로 바라보는 삶, 문학을 하는 눈으로 바라보는 세계는 그 전과는 다른 시각을 갖는다는 뜻이다.

    역설적으로 불행이 뜨게 하는 눈은 문학적인 시각을 갖게 한다. 위대한 시인, 작가들의 삶을 한번 들여다보라. 삶의 불행을 담보로 하지 않은 작가들을 찾아보기 어렵다. 이제는 그런 삶의 제한적인 의미가, 제한적인 또 다른 삶에서만 공감을 주는 희소성의 시대, 순응의 시대가 되어버렸다. 많은 기능적인 글쓰기가 난무하는 시대, 그런 시대에 만족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참으로 새로운 글쓰기의 진경시대를 열어갈 것임을 나는 희구한다.

    연애는 인간을 성숙시킨다. 글쓰기도 그렇다.

    일단 쓰면, 삶은 다른 옷을 입고 당신 앞에 나타날 것이다.

    김영하(소설가)

    어느 날 내가 작가가 됐을 때, 가장 많이 받은 질문 중 하나는, 어떻게 습작을 했느냐는 것이었다. 그러니까 특별한 문학 수업 방법이 있었냐는 질문이었는데, 그때마다 나는 이렇게 대답해왔다.

    “연애편지를 많이 썼다는 것밖에는 별다른 게 없었습니다.”

    질문을 던졌던 사람들은 농담으로 생각했을 테지만 농담만은 아니었다.

    연애편지는 우선, 독자가 분명하다. 독자의 취향과 성격, 수준이 분명하다. 단 한 명의 독자만 만족시키면 되는 글, 그것이 바로 연애편지다(때로는 상대방의 친구나 부모까지도 겨냥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그런 경우는 예외로 하자). 타깃 독자가 분명하다는 것은 글쓰기에 있어 매우 중요한 요소가 된다. 누가 읽을지 모르는 글을 쓰는 것만큼 힘든 일도 없다.

    또한 연애편지는, 목적이 분명하다. 연애편지는 대체로 ‘읽는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는다’라는 확실하고 명쾌한 목표를 가지고 있다. 목표가 분명해지면 글쓰기는 한결 쉬워진다. 작자는 독자의 마음을 사로잡기 위해서 다양한 비유와 인용을 동원하게 되며, 그것을 통해 점점 더 자신의 글을 발전시켜 나가게 된다. 반대로 목적이 불분명한 글은 쓰는 사람도 괴롭고 읽는 사람도 힘들다.

    마지막으로 연애편지는, 작자가 가지고 있는 역량을 총동원하게 만든다는 점에서 좋다. 그러니까 연애편지는 대충대충 쓸 수가 없는 글이라는 얘기다. 욕망이 너무 강하기 때문에, 그 욕망이 나로 하여금, 아는 것 모두와 가진 재능 모두를 소비하게 만들었던 것이다. 사랑에 빠지면 뭔들 못하겠는가. 밤을 새워가며 시집을 뒤지게 만들고 수십 번에 걸쳐 글을 고치게 만든다. 연애편지의 이런 특성은 글이 언급하고 있는 대상, 즉 화제(話題)를 사랑한다는 사실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난을 정말로 사랑하는 사람의 글이라면, 그의 문재(文才)가 아무리 박약하다 해도 어쩔 수 없이 전해져오는 따사로움이 있게 마련이다. 개를 싫어하는 사람이 단지 애견협회에서 청탁을 받았다는 이유만으로 개에 관한 글을 쓸 수는 있다. 그러나 그런 글로 사람들을 감동시키기는 어렵다.

    나는 좋은 글을 쓰는 일이 연애편지를 쓰는 일과 결코 다른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감동적인 연애편지에 해당하는 덕목들은 고스란히 멋진 글에도 들어맞는다. 그러니까 혹시 지금부터라도 글쓰기를 시작하려는 분들은 연애편지적인 글쓰기에 대해 한번쯤 생각해보라고 권한다.

    그러니까 이런 식이 되겠다. 우선, 독자를 한정한다. 연애편지처럼 한 사람이라도 좋고, 아니면 가족이나 회사동료도 좋다. 네루도 자기 딸에게 보내는 편지 형식을 빌려 ‘세계사 편력’이라는 명저를 완성한 바 있지 않은가. 두 번째로 글쓰기의 목표를 명확하게 정한다. ‘가족의 역사를 정리한다’ ‘내 인생을 반성한다’ ‘등산의 즐거움을 사람들에게 널리 알린다’ ‘사람들을 울린다’ 등등 무엇이든 좋다. 목표 없는 글쓰기처럼 공허한 것이 없다.

    목표를 드러낼 필요는 없지만 적어도 글쓴이만큼은 확고한 목표를 가지고 있어야 한다. 김구의 ‘백범일지’나 이순신의 ‘난중일기’가 지금도 읽히는 것은 그들의 글이 독립정신 고취나 방어임무 완수라는 분명한 목표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반면, 얼마 전 자살한 한 고위공직자의 유서가 별다른 감동을 주지 못하는 것은 그 글이 궁지에 처한 자신의 처지를 변명한다는, 자기 스스로도 납득 못할 어설픈 목표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연애편지적 작법의 마지막은 간단하면서도 어렵다. 자신이 사랑하는 대상을 택하라. 아이, 꽃, 나무, 자전거, 오토바이, 여배우, 뭐라도 좋다. 사랑하는 것에 대해서 쓰는 일은 일단 즐겁고 유쾌하다. 적어도 싫어하는 것에 대해서 쓰는 것보다야 얼마나 좋은가.

    이 정도면 연애편지적 글쓰기의 요체는 다 정리된 셈이다. 이제는 그저 쓰기만 하면 된다. 아, 한 가지 빠트릴 뻔했다. 연애의 장점은 그 과정만으로도 인간을 성숙시킨다는 것이 아닐까. 글쓰기도 그렇다. 일단 쓰시라. 그러면 삶은 다른 옷을 입고 당신 앞에 나타날 것이다. 때로는 따귀를 날려오는 경우도 있겠지만, 그것도 다 성숙의 길이 아니겠는가.



    문장의 생명은 ‘진실’

    지난 달에 낸 내 책의 부제가 ‘바른 세상을 갈망하는 마음’이었다.

    사실은 ‘마음’대신 ‘순정’이란 말을 쓰고 싶었다.

    한승헌(변호사)

    “나도 글을 잘 쓸 수 있다.”

    이런 제목을 놓고 글을 쓸 처지는 아니다. 한번도 내가 글을 잘 쓴다고 생각해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기자의 청탁에 고사(固辭)를 관철하지 못한 책임을 다하는 뜻에서 어설픈 체험 고백으로 지면을 채우고자 한다.

    나는 학생 때 현상 논문 모집에 응모한 적이 있다. 고3 때던가, 당시 미국공보원(USIS)에서 ‘국제연합(UN)과 한국’이라는 제목을 내걸고 현상 모집을 했던 것이다. 한국동란 후 10월24일을 ‘유엔(UN) 데이’로 정하고 공휴일로까지 삼던 시절이었다. 그때 요행히 당선되어 미제 라디오 한 대를 상품으로 받았다. 당시로서는 상당히 귀한 물건이었다.

    대학 1학년 때는 인권주간을 기념하는 인권옹호 논문 현상에 응모했다가 역시 용케도 당선이 되어 상당액의 상금을 탔다.

    이렇게 쓰다보니, 내가 소시 적부터 무슨 작문 소질이라도 있었던 것처럼 비쳤는지 모르겠으나, 실은 그것이 아니었다. 두 번 다 현상으로 내건 상품과 상금이 욕심 나서 만용을 부려본 터였다. 실인즉, 6·25 전란으로 몹시 피폐했던 때인지라, 가난한 학생의 공부방에 라디오가 없었는가 하면, 학교생활 안팎에서 진 빚을 갚아야 할 돈이 필요했던 것이다.

    결국 상품과 상금이라는 잿밥에 끌려 글을 썼고, 그 점에서 나는 조숙한 ‘프로’였는지 모른다. 그리고 그런 탄생 비화를 가진 내 글이 신문에 연재되었을 때의 기분도 예사롭지는 않았다.

    그 후로 나는 본래 지망과는 달리 법조인이 되었고, 1960년대 이후의 군사독재 시대에 정치범 내지 양심수들의 변호에 매달리면서 얼마쯤 저항적인 입장을 견지했다. 그러다 보니 사건 변호의 필요에 끌려, 또는 언론의 청탁이나 민주화운동단체의 요청에 못 이겨 부역 잡히는 식으로 이것저것 글을 쓰게 되었다.

    얼마쯤의 찬사가 있었는가 하면, 반공법 올무에 걸려 징역 살고 변호사 자격까지도 박탈당하는 필화도 겪었다.

    나는 법조인이기에 우선 법률문제를 중심으로 한 논증(論證) 위주의 문장을 써야 했다. 변론서나 준비서면 등 재판 문서의 작성이 일상화되어 있는데다가 청탁 원고도 대개 법률 분야 내지 시론적인 내용이 되다보니 그럴 수밖에 없다.

    일반적으로 법률 문장은 딱딱하고 난삽해서 이해하기가 어렵다. 전문(법률)용어의 풀어쓰기에도 한계가 있다. 논리에 얽매이다 보니 장황해지기도 한다. 이런 난점을 극복해보려고 노력은 해보았지만 그 성과는 미지수다.

    감사원에서 일할 때에는 감사문장 바로 쓰기 교육을 했다. 감사문장도 법률문장에 준하는 터여서 일반이 이해하기는 적지 아니 어렵다.

    또한 A4 용지 한 장을 다 읽어도 ‘다’자는 안 보이고, ‘고’자와 ‘며’자만 나온다. 이래서는 안 되겠다 싶어 외부 전문가들을 모셔다가 하루 4시간씩 나흘 동안 특강을 받았다. 그에 뒤이은 직원들의 자발적인 노력으로 ‘감사문장편람’을 만들어 실무에 활용토록 했다.

    글은 되도록 간명하고 쉽게 써야 한다는 것이 나의 지론이다. 어려운 것을 쉽게 쓰기는 참으로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그것은 ‘표현의 민주화’를 실천하기 위해서도 필수적인 과제라고 믿는다. 더구나 전문성이 엷어도 되는 경우에는 대중의 이해를 돕기 위해서도 쉽게 써야 한다.

    흔히 ‘좋은 글’이라면 내용 위주로 생각하고, ‘글을 잘 쓴다’고 하면 표현력을 연상하는데, 욕심으로야 그 두 가지를 다 갖추기를 바라는 것이 인지상정이다. 내용이 아무리 좋다 해도 그것을 제대로 이해시킬 만한 표현이 부족하다거나, 내용은 좋지 않은데 글의 기교만 현란하다면 그 어느 것이나 바람직하지 못하다. 위의 두 가지 요소를 겸비하자면 많은 독서와 꾸준한 글쓰기 외에 달리 왕도(王道)는 없다.

    글의 생명은 진실에 있다. 내용도 표현도 진실에서 벗어나면 공감을 얻기가 어렵다.

    이렇게 말하는 나는 얼마나 글을 잘 쓰는가. “야구해설자가 반드시 야구를 잘 하는 것은 아니다”라는 말로 변명을 하는 수밖에 없다. 다만 거짓, 과장, 술수로서의 글쓰기만은 하지 않았다는 것을 다행으로 여길 뿐이다.

    지난 달에 낸 내 책의 제목이 ‘법이 있는 풍경’인데, 거기 붙인 부제가 ‘바른 세상을 갈망하는 마음’이었다. 사실은 ‘마음’ 대신 ‘순정’이란 말을 쓰고 싶었다. 비록 서툴기는 하지만, 이 세상을 향한 간절한 ‘순정 고백’으로 나는 글을 써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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