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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광 5人의 한국축구를 위한 고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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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광 5人의 한국축구를 위한 고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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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본축구 의식하지 말라



강석진/서울대 수학과 교수



한국 축구가 위기라고 한다. 시드니올림픽과 아시안컵에서의 잇단 졸전과 부진으로 한국 축구가 총체적 위기에 빠졌다는 것이다. ‘위기’란 ‘위험한 때나 고비’를 뜻한다고 국어사전에 나와 있다. 그러니까 지금 우리나라 축구가 아주 위험한 지경에 이르렀다는 뜻인데 나는 ‘보지 않고도 믿는 것’과는 거리가 먼, 심지어는 ‘눈으로 보고서도 잘 믿지 않는’ 수학자이므로 우리 축구가 어디가 어떻게 위험하다는 것인지 따져 봐야 할 필요를 느낀다.



시드니올림픽 첫 경기에서 우리 올림픽대표팀은 스페인과 맞붙어 말 그대로 ‘졸전’ 끝에 3대 0으로 완패했다. 경기 시작 30분 동안 온갖 촌티를 줄줄 흘리며 정신없이 우왕좌왕하다가 잇달아 세 골을 허용하고 무너졌다. 그렇지만 그 뒤에는 전열을 정비하여 모로코를 1대 0으로 눌렀고, 칠레와의 마지막 경기에서는 이천수의 퇴장으로 전반 중반부터 10명이 싸우는 불리함 속에서도 투혼을 발휘하여 1대 0으로 승리, 2승 1패의 성적을 거두었다. 물론 8강 진출은 실패했다. 네 팀 중 상위 두 팀이 8강 토너먼트에 진출하는데 하필이면 한국, 스페인, 칠레 세 팀이 2승 1패 동률이 되는 바람에 골 득실차에서 밀려난 것이다. 스페인과의 첫 경기가 두고두고 아쉬운 상황이었다.

그런데 이 성적을 가지고 ‘부진’이라면 나는 조금 의아해진다. 그동안 우리 축구가 올림픽 무대에서 거둔 성적을 살펴보자. 우리나라는 1948년 런던올림픽에 처음 출전하여 멕시코를 5대 3으로 격파하고 첫 승리를 올렸다. 그리고 그 다음이 1996년 애틀랜타올림픽에서 가나를 1대 0으로 이긴 것이다. 무려 48년을 기다린 것이다. 그런데 이번 대회에서는 2승이나 거두었다. 지난 48년 동안 거둔 성적을 단 번에 거둔 셈이다. 그런데 어째서 ‘부진’인가?

결과만 놓고 볼 때는 그렇지만 경기 내용이 신통치 못했다고 반박한다면 그동안에는 시드니올림픽의 경기 내용을 ‘부진’이라고 표현할 만큼 훌륭한 경기를 펼쳤느냐고 반문하고 싶다. 우리나라는 런던올림픽에서 스웨덴에게 12대 0으로 진 적이 있고, 도쿄올림픽에서는 이집트에게 10대 0으로 졌다. 이건 사치스럽게 ‘경기 내용’을 논할 수준도 못된다. 도쿄올림픽 이후 우리나라가 ‘자력으로’ 올림픽에 출전하기 시작한 것은 1992년 바르셀로나올림픽 때부터다. 그때 3무승부, 애틀랜타올림픽에서 1승 1무 1패, 그리고 시드니올림픽에서 2승 1패. 이만하면 차츰 성적이 나아지는 유망한 학생 아닌가? 경기내용 역시 그때라고 지금보다 썩 훌륭했던 것도 아니다.

시드니올림픽에서 우리를 밀어내고 8강에 올랐던 스페인과 칠레는 각각 은메달과 동메달을 차지했다. 이 정도면 우리나라가 ‘부진’한 것이 아니라 ‘불운’했다고 표현해야 되지 않을까?

아시안컵도 마찬가지다. 우리나라가 아시안컵에서 우승한 것은 1956년과 1960년이다. 호랑이가 담배 피던 시절 얘기다. 그 뒤로는 1980년 쿠웨이트 대회와 1988년 카타르 대회에서 준우승을 차지한 것이 고작이다. 지난 1996년 아랍에미레이트 대회 때는 다들 기억하는 것처럼 이란에게 6대 2로 대패하여 8강에서 탈락했다. 1992년 아시안컵 대회의 성적은? 놀라지 마시라. 우리나라는 지역 예선전에 대표 2진을 출전시켰다가 태국에게 덜미를 잡혀 본선에 나가지도 못했다. 결국 이번 레바논 아시안컵에서 3위를 차지한 것은 ‘최근 들어‘ 가장 좋은 성적이다.

또 이번 대회를 되돌아봐도 쿠웨이트에겐 이길 수 있는 경기를 ‘졸전‘ 끝에 졌고, 이란에게는 진 뻔한 경기를 재수 좋게 이겼으며, 사우디아라비아에겐 이길 수도 질 수도 있는 경기를 놓쳤다. 따라서 3등이면 실력만큼 한 것이다. 아니 지금 우리 축구가 처해 있는 현실을 냉정하게 바라볼 때 아시아에서 3등이면 ‘무지무지’ 잘 한 것이다. 그런데 왜 한국 축구가 위기라고 하는가?

우리나라 사람들이 요즘 들어 한국 축구가 위기에 빠졌다고 느끼는 것은 모두 일본 때문이다. 지난 20여년 동안 사우디아라비아, 쿠웨이트 등 중동의 산유국들이 남미와 유럽의 명감독들을 오일 달러로 데려와 축구에 집중 투자할 때도 우리 축구팬들은 위기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런데 바로 옆의 일본이 잘하니까 갑자기 위기감을 느끼는 것이다. 일본이 어떤 나라인가. 우리에겐 자존심과 열등감의 알파요, 오메가가 아닌가.



한국 축구의 상대성 원리

역설적으로 우리 축구가 위기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는 것도 일본 때문이다. 일본은 그동안 “脫아시아”를 외치며 세계무대를 두드려 왔다. 그 첫 번째 결실이 1968년 멕시코올림픽에서 명장 크라머 감독의 지휘 아래 동메달을 따낸 것이다. 그때 일본 최고의 스트라이커 가마모토는 득점왕이 되었다. 그런데 어찌된 영문인지 그 가마모토가 뛸 때에도 일본이 우리나라를 이긴 적은 거의 없다. 그때 우리나라엔 이회택, 박이천, 김호, 김정남, 이세연 등 지금 이름을 불러봐도 가슴뛰는 아시아 최고의 스타들이 즐비했다. 그렇다고 세계 수준과의 거리가 지금보다 가까웠던 건 아니다. 오히려 지금보다 더 뒤쳐져 있었다.

그 뒤 일본 축구는 약 20년 동안 침체해 있었다. 반면 한국 축구는 1983년 박종환 감독이 이끄는 청소년대표팀이 ‘멕시코 4강 신화’를 일구어내면서 전 국민을 열광의 도가니로 몰아넣었다. (그때부터 우리 국민들 사이에서 ‘몇 강’ 아니면 성적으로 치지 않는 터무니없는 습성이 생겨났을까?)

그리고 프로축구가 생겨났다. 우리 선수들이 이젠 생계를 걱정하지 않고 운동에만 전념할 수 있다는 꿈을 갖게 된 것이다. 1986년 멕시코월드컵과 1990년 이탈리아월드컵 출전권을 연거푸 따내면서 한국 축구는 전성기를 구가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런데 갑자기 위기가 찾아왔다. 1993년 카타르 도하에서 열린 미국월드컵 예선전에서 일본의 미우라에게 일격을 당하고 만 것이다. 더욱 충격적인 것은 경기내용 면에서 일방적으로 밀렸다는 사실이었다.

그동안 일본은 축구발전을 위한 장기 계획을 세우고 유소년 축구 육성, 유망선수 선진국 유학, 우수선수 해외진출, J리그 출범 및 월드컵 유치 등을 치밀하게 준비해 왔다. 한국 축구인들이 염불처럼 외는 천연잔디구장은 도처에 깔려 있다. 1994년 J리그가 출범한 뒤 일본의 경기력은 무서운 속도로 발전했다.

우리나라가 일본에게 경기 내용에서 밀리기 시작한 것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선수 개개인의 기량, 벤치의 전략 및 전술, 실전에서의 경기 운영 등 모든 면에서 현저하게 밀리고 있다. 레바논 아시안컵 우승을 계기로 일본 축구는 그야말로 “脫아시아”의 야망을 이룬 것처럼 보인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일본 선수들은 한국만 만나면 제 기량을 발휘하지 못했고, 우리 선수들은 “한민족 전체의 과거와 미래를 걸머진” 사명감과 투혼, 그리고 “하느님의 보우하심”으로 여러 차례 결정적인 고비에서 일본을 이길 수 있었다. 만일 레바논 아시안컵에서도 우리가 사우디를 꺾고 결승에 올라갔으면 또 다시 일본을 꺾고 우승했을지도 모른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우리나라는 3위에 그쳤고 일본은 우승을 차지했다. 그리고 우리 국민들은 ‘일본이 우리보다 잘 했으므로’ 한국 축구가 위기에 빠져 있다고 느끼고 있다. 이것이 바로 ‘한국 축구의 상대성 원리’이며 현재 한국 축구에 대한 여러 가지 위기설이 난무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월드컵이 끝나도 축구는 존재한다

그러나 정작 한국 축구의 가장 큰 위기는 모든 위기설의 초점이 2002년 월드컵 성적에만 맞추어져 있다는 데 있다. 사실 이제 와서 별 짓을 다해 봐야 2002년 월드컵까지 한국 축구의 전체적인 수준을 세계적인 수준까지 끌어올리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러나 “2002년 월드컵 16강 진출”이 한국 축구의 유일무이한 목표라면, 그건 지금부터 노력해도 충분히 가능하다. 당장 국내외를 막론하고 한국 출신으로 최고의 기량과 재능을 지닌 선수 40명을 뽑아 충분한 경제적 보상(2년 간 10억 원 정도면 될까?)을 약속한 후 ‘공포의 외인구단’처럼 ‘지옥 훈련’을 시키는 것이다. 물론 월드컵 때까지 대표팀이 일사분란한 조직력을 갖추어야 하니까 국내 프로축구야 죽건 말건 국내경기 출장을 금지시켜야 한다. 오로지 해외 전지훈련과 국가대표팀 간의 A매치를 반복하여 ‘축구기계’를 만들면 된다.

그렇게 하면 월드컵 우승은 몰라도 16강 진출은 얼마든지 가능하다. 실제로 몇몇 외국 감독들은 8강 진출도 가능하다고 떠들고 있지 않은가? 그렇지만 그게 어디 사람이 할 짓인가? 그리고 그게 우리가 진정으로 원하는 축구 발전인가? 2002년 월드컵에서 우리나라가 16강에 진출하면 한국 축구는 위기에서 탈출하는가?

굳이 일본과 비교하지 않더라도 한국 축구에 문제가 많다는 것은 축구를 사랑하는 사람은 누구나 알고 있다. 그리고 그에 대한 대책 또한 누구나 줄줄 욀 정도로 진부한 얘기들이다.

‘유소년 축구 육성, 충분한 천연잔디구장 확보, 정정당당한 경기문화 확립, 생각하는 축구를 통한 경기력 향상, 연령별·지역별 리그제 도입, 대한축구협회 행정 쇄신, 프로축구 활성화, 우수 지도자 및 심판 양성을 위한 교육과정 개설, 학원축구 개혁….’

문제는 이런 ‘희망사항’을 어떻게 ‘실천사항’으로 바꾸는가 하는 점이다. 특히 ‘학원 축구의 개혁’과 ‘정정당당한 경기문화 확립’은 당장 해결할 문제다. 한 시대를 풍미하며 수많은 축구팬들에게 멋진 감동을 선사했던 뛰어난 축구인들이 대학입시 비리에 연루되어 별로 더 깨끗할 것도 없으며 심지어는 ‘축구도 잘 못하는’ 사람들에게 이리저리 끌려다니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은 정말 고통스러운 일이었다.

1999년 한국 프로축구 챔피언결정전의 승부가 ‘비열한’ 핸들링 골든골로 결정된 것도 도저히 용납할 수 없다. 정정당당한 승부에 대한 믿음이 없는 축구판을 누가 애정어린 눈길로 쳐다 보겠는가? (그때 수원 삼성의 샤샤는 분명히 고의로 볼을 손으로 쳐 넣었으며 심판을 한 번 쳐다본 후 골 세레머니를 연출했다.) 따지고 보면 우리 사회처럼 각 분야의 전문가들이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고 어디서 이상하게 굴러먹다 온 인간들이 온갖 정치적, 경제적 권력을 장악하고 설치는 나라에서 축구판만은 신성하길 바라는 것 자체가 우스운 일일 것이다.

한 가지 지적하고 싶은 것은 방송 매체의 발달로 우리나라 축구 팬들이 안방에 앉아서 유럽과 남미의 선진 축구를 감상할 수 있게 된 지금, 우리 축구가 처한 현실은 돌아보지도 않으면서 대표선수들에게 세계 수준의 경기력을 요구하는 것은 부당하다는 것이다.

“한국 축구가 왜 이 지경이냐”고 묻는 당신은 당신이 속한 분야의 모습을 한번 돌아보라. 한국 정치는 왜 이 꼴인지, 한국 경제는 왜 이렇게 헷갈리는지, 한국 과학계는 왜 이 모양인지, 한국 금융계는 왜 그렇게 절망적인지, 한국 언론은 왜 그렇게 천박한지….

이런 상황에서 한국 축구만 우리들의 모습과 다르기를 기대하는 건 너무 뻔뻔스럽지 않은가? 한국 축구 위기의 본질은 스스로의 모습을 냉철하게 돌아보지 못하고 실상과 환상 사이의 머나먼 거리를 헤매고 있는 우리 사회의 슬픈 자화상인 것이다.

2002년 월드컵이 끝난 뒤에도 축구는 존재한다. 내가 한국 축구에게서 바라는 것은 훌리건들처럼 인생의 절망을 폭력으로 대치시키는 흥분제도 아니고, 아프리카 선수들처럼 가난에서 탈출할 수 있는 비상구도 아니다. 한국 축구가 날마다 일본을 이겨주지 않아도 좋고, 2002년 월드컵에서 16강에 오르지 못해도 좋다. 그저 정정당당하고 흥미진진한 경기를 가족, 친구, 연인들이 상쾌한 마음으로 즐길 수 있는 그런 ‘폼나는’ 축구 문화를 가지고 싶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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